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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되살미사랑나눔봉사대 원문보기 글쓴이: 되살미 대장
한국 중국 연대표
중국은 수많은 나라가 흥망성쇠를 격으며 중국이란 명칭은 1900년경에 세워졌다 하여 그옛날 역사를 모두 중국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를 오도하는 것이라 마땅한 구절이 생기기전까진 대륙이라함
흔히들 우리민족을 동이 (東夷), 군자의나라 (君子不死之國) 동방예의지국 (禮義之國), 동이(東夷) 대륙 동쪽에 있는 9개 부족 (아홉 오랑캐) 곧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를 말한다 (필자주)☞ 공자가 흠모하던 나라로 봐선 진나라가 대륙을 평정하고 경쟁상대로 본 이후에 오랑케로불리지 않았겟는가 무지개가 뜨는 나라, СОЛОНГОС (솔롱고스/(Solongos)) 은자의나라 (The Hermit Kingdom), 백의민족 (白衣民族), 동방의등불 고요한 아침의 나라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동이(東夷) 동이(東夷)는 협의의 동이와 광의의 동이가 있는데 협의의 동이는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 중국의 동부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등지에 살던 족속으로 중국인들의 조상인 화하족(華夏族=漢族)과는 다른 이민족을 칭하는 말이며, '동쪽에 있는 이(夷) 즉 큰 활(大弓)을 잘 쓰는 족속'이라는 뜻이다.
광의의 동이는 진나라 이후 만주와 한반도에 살고있는 조선족과 숙신과 동호의 후신은 물론 일본, 유구 등지에 살던 족속들을 ‘동쪽 오랑케'라는 뜻으로 비하하여 화하족 우위의 사상(中華思想)에 의거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과 같은 맥락으로 동이(東夷)라 하였기 때문에 겨레의 갈래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 : 한문자전 동이(東夷)란 동쪽에 사는 사람이다. 오직 동이(東夷) 만이 대의(大義)를 따르는 대인(大人)들이다. 동이(東夷)의 풍속은 어질다. 어진 사람은 장수하는 법이라 그 곳은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다. (有君子不死之國)
고로 공자도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니 나는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인 구이(九夷)에 가고 싶다. 하고 뗏목을 타고 바다로 띄웠다 한다. 참으로 이유있는 일이로다. <夷 東方之人也 唯 東夷從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故孔子曰 道不行 吾欲之君子不死之國九夷 承孚 浮於海 有以也.>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동쪽에 있는 예의의 나라'라는 말로서 '동이열전'(東夷列傳)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데~~
그래서 은(殷) 태사(太師) 기자(箕子)가 주(周) 신하가 되지 않고 동이 땅 (고조선)으로 갔고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동이에 가서 살고 싶어 하셨다. 나의 벗 노중련(魯仲連) 역시 동이로 가고 싶어 한다. 나도 역시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 예전에 동이 사절단이 온 것을 보니 대국인(大國人)다운 모습이었다. 동이는 대강 천년이상 전부터 중국과 우방으로 서로 왕래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고 주나라는 화족이라고 분명희 선을 긋고 있다 요순시대인 하,은나라는 신화시대로 분류 그런대 은허에서 은나라 유적이 발견됨 이 유적에서 갑골문자 발견 한자를 만든 창힐은 동이족이었으며 천.지.인 의 형상과 복희 8괘와 녹도문자를 이용하여 상형문자(象刑文字)로 만들어 이를 죽간竹簡에 써서 올챙이 모양이어서 과두문자 라고도 하였다. 지나족(중국)은 한漢나라 때 이 한자 문화를 발전시켜 한자漢字 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고 그로서 한자가 지나족이 창제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군자의 나라,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서두에서 “동이가 천성이 유순하고 도리로 다스리기 쉬워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 일컬어졌으며, 그래서 공자가 구이에서 살고 싶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약 2300년 전에 공빈이 썼다는 동이열전에는 단군과 자부선인 그리고 동이 사람인 순(舜)이 중국 백성들에게 윤리와 도덕을 가르쳤음 등을 언급하며,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義之國)가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시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무지개가 뜨는 나라 СОЛОНГОС (솔롱고스/(Solongos)) 솔롱고는 몽골어로 무지개란 뜻이다. 몽골인들은 한국을 가리켜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무지개 뜨는 나라’의 뜻이다. 한국을 솔롱고스라고부르게 어원은 이렇다. 몽골인들이 중국을 점령했던 원(元)나라시대때 고려에 공녀로 차출해갔는데 그중에 기황후라는 여자가 황제의 눈에 뛰어 왕비가 되었죠. 그 뒤로 원나라의 황제가 고려를 무지개가 뜨는나라 라고 불렀다고 ” 정확한 어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 몽골인에게 솔롱고스는 아주 친근한 나라 이름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동방의 등불
동방의등불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타고르 라빈드라나드 (Tagore, Rabindranath)
타고르는 조국 인도와 비슷한 시기에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던 한국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달랐다. 타고르는 한국을 소 재로 한 시 두 편 '동방의 등불'과 '패자의 노래'를 남겼다. 이 중 '패자의 노래'는 육당 최남선의 요청으로 3.1운동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 있는 한국인을 위해 쓴 것이다. ' 동방의 등불'은 그가 192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태로(李太魯) 당시 동아일보 도쿄지국장이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국인에게 보낸 격려의 송시다.
백의민족(白衣民族), 구한말 서구사람들이 단편을 보고 힌옷을 즐겨입는다고 하여 생긴 비하한 말이라 본다 우린 원래 화려한 채색옷을 입었는데 구한말 국가경재가 핍해지자 채색하지 못한 옷을 입는 때라 생각된다.
필자주 : 중국의 사서들에서도 여러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남사(南史)>79권 이맥전(夷貊傳)에는 신라에는 합사 비단이 있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新羅... 國有六啄評 五十二邑勒 土地肥美 宜植五穀多桑麻作縑布服 …』 신라는 .... 나라에는 6개 탁평이 있고, 52개 읍륵이 있었다. 토지는 비옥하여 오곡을 재배했고, 뽕나무와 마(麻)가 많았다. 합사 비단으로 옷을 해 입었다...
은자(은둔)의나라(Corea The Hermit Nation) 숨은 선비의 나라란 뜻입니다. 미국의 저술가·동양학자·목사. 필라델피아 출생. 1870년에 일본에 건너가 도쿄대학 물리학·화학 교수로 있으면서 일본 연구에 몰두하던 중, 일본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고대로부터 일본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준 한국을 알아야 됨을 깨닫고, 목회자가 아님 입국거부로 미국의로 건너가 선교사 자격으로 그리피스는 한국을 두번 방문했 는데 2차방한은 1926-27년이었다. 그가 조선의 역사를고대부터 현대의 을사조약까지 기술한 책. 각종 문헌과 현지 답사를 통해 한국연구에 노력했다. 한반도,고 조선,임진왜란,조선의 지리와 풍물,격언과 속담, 러일전쟁 등 53개 장으로 나눠 서술했다. 1900년 왕립아시아학회 한국분회 명예회원이 되어 유럽인의 한국 연구에 길잡이 역할을 했다. 뒤에 본국에 돌아가 목사직에 종사했으며 많은 외국 여행기를 저술했다. .
한국인의 DNA 後漢서 東夷전에 보면 王制云.東方曰夷.夷者,柢也 라고 했다. 즉, "왕의 제도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최초로 생겨났는가, 동방에있는 동이들로부터 생겼다. 바로 동이야 말로 인류의 뿌리다.“
후한(後漢) 시대의 채옹(蔡邕)이 <독단(獨斷)>에서는 "천자라는 이름이 동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풍속이 아비를 하늘이라 하고 어미를 땅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자라 하였다 (天子之各號 始於東夷 其俗 父天母地 故曰天子<獨斷>)
고대 중국문헌인[동방삭신이경(東方朔神異經)」에는 자세히 단군조선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이경이 동이족 문서 산해경을 모델로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동방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남자는 모두 흰 띠에 검은 관을 썼고 여자는 다 색 옷을 입었다. 언제나 겸손하여 말솜씨가 험하지 않으며, 서로 칭찬은 하되 헐어 말하지 아니하고 누가 환란(患亂)이 있는 것을 보면 죽음을 무릅쓰고 구출하는데, 얼른 보면 어리석게 보이지만 이들을 부르기를 선인(善人)이라 한다" 하였다.
2001.1.26. 일본 지하철서 취객이 선로에 쓰러져 있는 걸보고 달려오는 열차를 무시하고 한 한국인 청년이 뛰어들어 구하고 죽었다 일본인은 3000년 전 산해경 언구처럼 어리석은 짖이다. 의협심에선 구출할수 있지만 한국인 처럼 본능적이진 못하다 한국인이 이런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기에 우린 매년 여름이면 물에 빠진자를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고 죽었다는 뉴스를 항상 접한다 어쩌겠는가 유전인자 DNA가 그러한데
사대주의
우리가 중국에 지배당한 역사는 약 500년입니다 주(周)나라BCtleofh 춘추 전국시대에 내전으로 정신없었고 진나라 BC221-206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후 15년간 한(漢)나라 BC206-220 400년간 삼국시대 (위.촉.오) AD 220-280 60년간 내전 진나라 서진,동진 오호십육국 265-420년 약 155년간 남북조시대로 420-581년 161년간 남조 : 송.제.양.진나라 북조 : 북위.동위.북제.서위.북주 수나라 양제는 581년 진시황제 이후800년뒤 다시 통일후 한반도와 전쟁을 위해 5대강 하천을 연결하는 운하를 완성하여 전쟁 물자수송 길을 만든후 (독일에 히틀러 아우토반 건설도 같은 이유이다) 100만대군(역사엔113만)으로 침공 실패후 너무 많은 전비로 국가가 2대 만에 618년 망함 1.광통거 : 장안에서 하곡부 연결 약100Km 2.영제거 : 황하의 북안 강구에서동북쪽 굴착 천진 해하에서 북경 약750Km 3.통제거 : 서원-낙양-황하로 나가 영택-강소성 회음연결 약750Km 4.한 구 : 춘추말기 오왕부차가 건설 매볼된 한구를 준설 강도-양자강연결 약300Km 5.강남하 : 양자강 건너 소주-항주연결 강남하도 오왕부차가 중원 경략을 위해 한구와같이 건설 약250Km
수나라의 원수를 갚겠다고 수없이 처들어온 이연은 그 아들 당태종 이세민에게 유언을 하지요 다시는고구려를 치지말라고 이세민 역시 유언을 저버리고 10만대군으로 처들어와 양만춘 장군에게 패하고 화살을 눈에 맞아 그 휴유증으로 사망했다는
당나라 618-907 신라가 당나라지원으로 676년 삼국통일후 동맹관계 그러나 828년 장보고가 해상활동하던때를 보면 잠깐 이었고 그후 요나라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몽고) 시대였고 신하나라로 전락한것은 실제적으로 명(明)나라1368-1644시대부터 청(1644-1911) 1840(아편전쟁까지 약470년간이라고 봐야한다
우리나라는 역사이래 933번의 침략을 당했지만 한번도 그나라화 되지않고 남에 나라를 침략을 한적도 없지요 (약 2300년 전에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그 나라는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인들은 군자의 나라라했지요. 몽고제국은 한 국가를 점령하는데 3개월이 안걸렸다 합니다 우린 끝없이 반항하지요, 일본인이 우릴 싫어하는 이유가 승복하지 못한다는 거죠 중국에 진,한,삼국시대,서진,동진,남북조시대 다음 천하를 평정한 수나라는 100만대군(역사에는130만)이 처들어오죠. 중국에 동북공정에 변방에 오랑케를 치기위해 100만대군이 처들어옵니다. 그병력은 한반도의 조그만 나라가 중국을 치기위한 병력이지요. 전 세계 전쟁사에 없는 엄청난 병력이지만 그들은 패하고 너무많은 전비에 수나라는 2대만에 망하고
당태조는 원수를 값기위해 수차례 침공했지만 실패하고 죽으며 이세민에게 유언을 남기죠 다시는 고구려를 치지 말라고 우리모두 이런 역사를 스스로 폄허하는 사대주의 역사가들과 반도사관의 결과의 소치라 봐야죠
뭐 그냥 추론입니다. 진시왕은 천하를 평정하고 선남선녀 500명을 우리나라로 보내 불로초를 구해 오라했답니다. 이제 우리 역사학자들은 스스로가 우리나라가 아니라고 손사례하네요. 천하를 평정한 진시왕은 그 시대의 가장 선진국인 군자국으로 유학(개국공신들의 자녀 불모)을 보내 선진사상을 배워 진나라가 영원히 망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으로 불모겸 보낸겁니다.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면 당연히 자녀를 불모로 잡아둬야 반역이 없으니까요
인류 그 어떤 역사에도 없는 100만대군을 물리친 우리들은 그 당시 초 일류 강대국이없다는 겁니다 왠만한 전쟁에선 10만도 대병 입니다 실제로 전투에서 싸운는 건 3000기에 불과하니까요 수나라가 113만 대군이 필요한 이유 아시겠지요
우리민족에 DNA가 그러듯 평화를 지향하는 민족이지요 그러나 평화가 무너지면 끈질기게 항거하고 엄청난 에너지로 집결하여 100만대군을 물리치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답니다.
우리가 왜곡된 역사공부시 신라시대엔 중국에 속국이엇다고 배워지요 역사 도표에 보듯 676년 삼국통일후부터 이지요 그런데 그시대에 장보고는 지금의 신의주부터 베트남까지를 해안일대를 장악했지요
신라는 당을 등에 없고 삼국통일후 우리민족의 모든역사를 말살시키기위해 교육을 시작합니다 서당교육(양반)이지요 그래야 조선,고려라는 기억을 지워야 정권을 유지할터이니까요. (북한을 보면 이해가 갈겁니다) 명나라를 어버이라고 가르치며
근디 2500년 전 공자(BC551-479)는 선진의식으로 5호16국을 돌아다녀도 공자의 사상을 이해 못하자 실망하고 낙향하면서 나와 사상을 논할 수 있는 나라는 오직 군자국 밖에는 없다 하였는데 우리는 우리에 사상을 다 버리고 중국사상만 유일한 학문인양 쇠뇌교육이 시작되지요. 다시 고려.조선이 생겨나지만 우리들에 강인한 사상은 무너지고
반도사관(한반도 역사는 양국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대주의자들에 권력유지용으로 이용되다 민족관이 없다보니 결국 일본에 식민지가 되면서 또한 일본은 그나마 역사잔재를 외곡하기 위해 반도사관이라는 이론을 접목해 쇠뇌교육을 시키기위해 국민(초등)학교(평민)를 만들어 쇠뇌시키기 시작합니다.
우리들에 위정자들은 사대주의 사상 외곡된 반도사관에 교육을 받은 이들을 우린 수구세력이라 해야하나요 이들은 기득권을 위해 타인의(이웃국가) 세력을 등에없고 그 자리만 지키기위해 존재하는 이들입니다
역사이레 한국역사는 기득권세력으로 태평시대엔 권력에 이간과 물질의 탐욕으로 나라가 피폐해지면 불안한 화산과 지진과 해일에 위험으로 살수없는 섬나라는 대륙으로 진출하죠 우린 이미 피폐해져 상대할 수 없읍니다. 우리들에 기득권 세력들은 재산을 지키기위해 도피하고 우리들에 민초들은 가족과 땅을 지키기위해 끝까지 재산과 생명을 던져 독립하죠. 지친 점령국은 자기생명과 재산많을 지키기위해 도피한 이들과 협상을 맺죠(널 보호해준다는 국가관과 이성없는 이들) 경쟁자인 저항군을 숙청하긴 간단하죠(적이아니니까) 그래서 암살하고 나선 어쩔 수 없이 영웅으로 추대하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답니다. 그러군 여전히 매국노 들이 국가를 장악하고 기득권 세력으로 수구파로 존재합니다. 우리들에 저항군들은 가산과 재물을 군자금으로 사용하고 아비를 잃은 저항군 자녀들은 영영 가난에서 일어날 수 없다보니 매국자식들에게 밀려나고 그들은 계속 숙주로 계속 그들에 삶을 이어간답니다
이런걸 끈자고 노력하면 대통령이랄찌라도 그꼴못보고 끝까지 쫓아가 죽여야죠 아마 한(?) 대통령은 역사에 위대한 인물로 해석될겂니다
보수는 옛전통과 가치관을 지키되 이것이 폐악 즉 잘못된것이라 판단되면 그것을 수용하고 고치지만 수구는 단지 기득권 자신의 우월적인 기득권이 개혁세력에 의해서 침해당하는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세력을 말합니다
쟝웨이린 교수님은 1989년에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동북공정)편입시키는 일을 맡는 주요 책임자 중 한분이셨으며, 1990년 이 학술회를 시작으로해서 연구하시던 중 1995년 고구려 역사편입하는 작업에서 손수 물러나셨다고 한다. 역사학자란 두가지의 부끄러움이 있다. 한가지는 숨기는 것이다. 나의 조국의 부끄러움보다 역사앞에서 그 진실을 숨길 때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다.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정한 위인은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위인이란 모든 만인을 위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위인이며 나는 그 위인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순신
교육의 중요성 아시아를 침탈이 아닌 도덕으로 다스리던 동이족은 진시왕의 중국 무력통일로 한반도로 물러나고 진시황제는 수하의 자제 선남선녀 500명을 뽑아 진나라가 불로장생 하도록 선진교육을 위해 동쪽 나라에 유학을 보낸다(불로초이야기). 중국의 대략 역사는 하(BC2100-1600) 진(BC221-206) 한(BC-206-AD23 삼국(220-265) 수(581-618) 당(618-907) 요(907-1125) 금(1115-1234) 원(1279-1368) 명(1368-1644) 청(1644-1911) 한국의 대략역사는 조선(BC2333-BC108) 고구려(BC37-AD668) 신라가 삼국통일(676-935) 고려(918-1392) 조선(1392-1910) 1905을사조약강체체결 한국은 진나라까지는 군자국으로 존경받았고 한나라와 삼국시대까지는 내분으로 정신없었고 다시중국을 평정한 수나라는 100만 대병으로 (편집자 주: 중국의 동북공정에 변방의 오랑캐를 치기위해 그렇게 큰 병력을 보낸 것은 거꾸로 한국이 중국대륙을 침범할 때 필요할 정도의 병력이다 10만도 대병이다 실제 전투는 2-3천기이다)) 한국을 침략 패배하고 전비로 2대만에 망하고 당으로 넘어가고 주원장 부친은 여러 번 한국정복에 실패후 다시는 치지 말라고 유언으로 남기고 우리들의 중국 섬기기는 당의 지원을 받고 신라가 삼국통일(676-935) 하고 중국 대륙을 초개처럼 여긴 사상을 바꾸어 대륙을 등에 지고 정권을 유지하기위해 사상교육이 필요 서당을 만들어 사대주의 사상을 주체사상으로 입력 (북한이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 우리들의 유구한 역사와 사상을 대국은 어버이나라로 모든 역사와 문화가 대륙에서 도래한 것처럼 교육에 전념 그것이 모든 것인 양 배워왔다. 이당시의 사람이 장보고(?-846)이다 장보고는 신의주에서 베트남까지 해안선 모두를 다스림, 원(칭기즈 칸)은 모든 나라를 정복하는데3개월이 안 걸렸다 하는데 우리조상들은 결코 승복하지 않고 저항하였다. 명나라에서 청으로 넘어가자 어버이(명)을 버리고 오랑캐를 섬기는 것은 군신의 예가 아니다 하여 수구파들은 역사에 최고의 수치를 당하고 우리들에 정치인들은 일본제국주의에 다시 짖발힌다. 일본은 한국의 역사를 잘 알기에 반도사관(한반도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 변화됐다) 이라는 왜곡된 교육이 필요해서 초등학교를 만들어 주체사상을 주지시켰다 사대주의 사상으로 학문이 전승되고 반도사관으로 한국의 왜곡된 역사를 배워 논문을 발표하고 교수 가된 이들이 한반도의 역사를 솔직이 시인하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대륙을 호령했던 기상은 왜곡된 역사에 묻혀 일본의 관 학자 미시나 쇼에이 이론처럼 되어져 가고 있지나 않은지 933번을 침략을 당해도 한 번도 굴종하지 않은 기백을 우리들의 수구파들은 일본으로 합병하든지 미국의 한 주로 들어가자 한다. 우리들은 단 2번의 교육으로 우리를 저버렸다. 지금의 교육은 어떠한가? 수구파들은 자기들에 존재가 들어나는 게 싫다 정치 역사 굳이 취업하는데 알 필요있는가 때에 맞는 행동을 하자 적당히 덮고가자!...이들의 생존이력은 태평성대엔 백성의 주리를 틀어 탐관오리 하여 재산은 곳 권력과 명예니 축척에 혈안이 되어 나라가 피폐해지면 기회를 엿보던 이웃나라가 침범해오면 국외로 산천으로 숨어들고 우리들에 민초는 가족과 땅을 지키기 위해 가진 재산을 전비로 항전하고 933번을 침략 당했어도 한 번도 굴종하지 않은 기백으로 지친 점령자는 국가관이 없는 산천으로 숨어든 위정자들과 협상을 벌여 점령자들에 신하가 되고 항쟁 자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은 자 이기에 어떻게든 숙청하고 나서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하고 가족은 재산과 어버이를 잃고 허울뿐인 빈민으로 대물림하는 아픈 역사의 연속이다 이런 역사의 고리를 끊어야 되는데 그 길은 오직 올바른 역사관이다. 차가 앞으로 잘 가기 위해선 반듯이 후시경을 보아야만 한다. -계속 2010.8.23. 대장 (청문회를 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