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든 이후 황우석 교수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며 황우석 신드롬까지 만들었다. 그가 몰고 온 파고는 지진해일(쓰나미)에 비유될 만큼 높았다. 대다수 국민은 황 교수의 연구 성과로 줄기세포에 '메이드 인 코리아'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연간 500억 달러(약 60조원) 이상의 의료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란 장밋빛 미래를 낙관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계와 생명윤리학계에서는 적지 않은 이가 황 교수의 연구를 생명윤리에 대한 위험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하나의 생명인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천주교 정진석 대주교는 "인간 배아의 파괴를 전제로 하는 일종의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동원해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 같은 논란은 난치병 치료와 인간 존엄성을 함께 살리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생명윤리 논쟁의 핵심 내용과 절충을 할 수 있는 대안을 전문가들의 토론과 전문기자의 분석을 통해 정리했다.
-사회=지난달 15일 황우석 교수와 정진석 대주교가 만나 양측의 의견을 나눴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이창영=황 박사의 실험을 가톨릭이 인정하고, 이해한 것처럼 일부 언론이 오보했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자는 데는 공감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에선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생명체인 배아의 파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가톨릭에선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박세필=가톨릭의 생명에 대한 일관된 인식을 잘 알고 있다. 주교님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 치료를 위한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연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사회=배아도 엄연히 생명이란 주장이 있는가 하면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구인회=정자와 난자가 합쳐진 배아는 물론 체세포 핵 이식을 통해 만들어진 배아 역시 생명체로 봐야 한다. 둘 다 인간으로 성장.발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도 배아가 인간인지 아닌지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사냥꾼이 덤불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가 멧돼지인지, 사람인지 잘 모를 때는 총을 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배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배아를 파괴하는 연구는 비윤리적이다.
▶박세필=보는 관점에 따라 생명의 출발점은 다르다. 정자와 난자가 막 결합한 상태를 생명으로 보긴 약하지 않으냐. 원시선이 나타나는 수정 후 14일 이후를 생명의 기준으로 보는 학자가 많다.
▶이창영=배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부정하는 것이다. 배아가 자라면 개.돼지가 될 수 있는가. 결국 사람이 된다. 더욱이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이름을 짓고, 태몽을 하며, 한 살을 먹는 등 생명권을 인정해 왔다. 그런데도 선진국과는 달리 태아보호법도 없는 실정이다. 14일 기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2003년 7월 사이언스지엔 원시선이 수정 후 수 시간 내에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도 14일 기준에 대한 합의점은 없다.
▶박세필=원시선이 (수정 후) 14일 이전에 생긴다는 논문이 나왔지만 많은 과학자는 이를 아직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연구자들을 통해 그 논문이 재현돼야 정설로 인정될 것이다.
▶권복규=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는 생명윤리의 본질적인 문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입장은 개인.종교적 신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국내외에서 수십년간 평행선을 달려왔으며 그 절충점을 찾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사견을 말하면 수정되는 순간부터 인간이라고 본다. 그러나 체세포 핵 이식을 통해 만들어진 (복제) 배아는 난자와 정자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수정된 배아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복제 배아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회=배아를 자궁 안에 착상시키면 인간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불임환자의 임신 목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잔여 배아마저 생명체로 봐야 하는가?
▶구인회=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만약 배아 입장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의미 없이 폐기되는 것보다는 과학 발전을 위해 연구용으로 사용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러나 배아가 이런 희생을 원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시술을 결정하는 사람으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떤 사람이 심장을 기증하겠다고 할 경우 이를 수용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이창영=일부에선 잔여 배아를 잉여 배아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인간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용어다. 냉동보관해도 배아의 존엄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교황청에선 아직 잔여 배아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내지 않았지만, 냉동보관해도 배아의 존엄성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입장이다.
▶권복규=여러 나라가 잔여 배아 연구는 윤리적 위험성이 적다고 본다. 히틀러 통치하에서 인체실험을 한 원죄가 있는 독일에서는 배아를 파괴하는 연구를 금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일본과 같은 아시아권 나라들은 물론, 최근까지 이 연구를 금지했던 프랑스.스페인 등도 잔여 배아를 이용한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박세필=잔여 배아는 어차피 버려질 운명이다. 국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에도 5년 이상 된 냉동 잔여 배아는 관련자의 동의를 받아 연구에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종교계에선 냉동 잔여 배아도 생명체이므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요즘 종교계와 생명공학계의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얼리기 전인 신선 배아는 안 되지만 냉동 잔여 배아는 연구에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또 수정 후 14일 이전의 배아는 '잠재적'생명체로 간주해 난치성 질환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를 보인다.
-사회=대다수 국민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 극복엔 박수를 보내지만 인간 복제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배아 줄기세포를 통해 부분 장기가 아닌 인간 전체를 만들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박세필=체세포 복제 배아를 자궁에 넣으면 인간 복제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동물의 복제 성공률이 10~15%이므로 20개의 난자가 확보되면 2~3명의 복제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 이런 일은 적어도 가까운 장래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제반 기술.지식이 충분히 확보되면 불임치료의 한 방법으로 거론될지는 알 수 없다.
▶권복규=체세포 복제된 인간의 탄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소.돼지도 아닌데…. 또 독재정권이라면 몰라도 누가 다수 여성의 자궁에 복제된 배아를 착상시킬 수 있겠는가. 또 현행 생명윤리법도 이를 엄격하게 막고 있다. 물론 공명심에 불타거나 윤리성이 부족한 과학자가 비밀리에 시도할 가능성은 있다. 복제 동물은 잘못돼 죽어도 크게 문제될 게 없겠지만 복제 인간이 태어난 지 20년쯤 뒤에 예상치 못한 병에 걸린다면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이창영=복제 인간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명공학계의 약속을 믿고 반긴다. 그러나 음지에서 이런 일들이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복제양 돌리의 경우 평균 수명보다 훨씬 일찍 죽었다.
▶구인회=불임 치료를 위한 명목으로도 인간 복제는 해선 안 된다. 복제된 인간은 자식이 아니라 자신과 유전적으로 똑같은 존재다. 이는 전통적인 가족개념을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다. 남편의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한 배아를 이식받아 아기를 낳은 아내는 남편의 일란성 쌍둥이를 자신의 자녀로 두는 것과 같다.
-사회=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배아 사용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가 분명하게 지켜지고 있는지.
▶권복규=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장기 기증의 경우 기증한 사람을 미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기증한 사람의 인권과 건강에 대한 관심은 태부족했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서 필수적인 난자 기증도 마찬가지다. 난자를 많이 채취하기 위해 과배란을 시키면 여성의 10~15%에서 크든 작든 부작용이 올 수 있는데 기증한 사람의 인권과 건강에 대한 관심은 그에 비해 부족했다. 난자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 결정권을 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창영=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불임.사망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고도 여성들이 배아 파괴 연구에 참여했을지 궁금하다. 유럽인들은 황 교수의 연구 성과보다 16명의 여성으로부터 242개의 난자를 채취한 사실에 더 큰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박세필=너무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해 침소봉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여성의 과배란을 유도하는 시험관 아기 시술의 경우 지금까지 100만 건 이상이 시술됐다. 이 과정에서 가벼운 부작용은 간혹 발생했지만 죽은 사람은 없다. 또 미국에선 난자를 사고 파는 행위도 가능하다.
-사회=수많은 윤리문제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박세필=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 환자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약으로 손쓸 수 없는 환자에게 필요한 조직.세포를 얻는 데 있어서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다.
▶권복규=너무 배아 줄기세포의 장밋빛 미래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60조원 규모의 시장을 창출할 것이란 예상은 과장이 심하다. 현재 생명공학 기술로 수익을 올리는 회사는 거의 없다. 다른 연구소에 연구 기자재를 만들어 파는 회사들이나 돈을 번다. 또 생명과학 제품은 다른 공산품과는 달리 사고 등 변수에 취약하다. 리스크 비용까지 따지면 수익성이 엄청난 것은 아니다.
▶이창영=줄기세포는 배아 외에도 성체 줄기세포가 있다. 가톨릭은 성체 줄기세포가 윤리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대안으로 여긴다. 현재는 황우석 신드롬에 묻혀 배아 줄기세포에 연구비가 집중되고 있는데 성체 줄기세포에도 적정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사회=올해 초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생명윤리법에 대해 평가해 달라.
▶이창영=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법이므로 악법이다. 배아의 파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배아의 생명을 다루는 법인데도 내용이 충분히 홍보되지 않은 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됐다.
▶박세필=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새 법이 시행되면서 혼란스럽고 연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해도 되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구인회=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권한이 막강한데도 위원들로 위촉된 사람들이 생명윤리에 전문성이 없는 것이 문제다. 관계 장관 7명, 과학계 7명, 종교.윤리.시민단체 7명으로 구성돼 제대로 된 심의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명예직이 아닌데 나눠주기식 인선이 이뤄졌다.
▶권복규=국가생명윤리심의위의 구성이 생명공학 쪽의 발전을 우선시한 느낌이다. 시민단체.종교계 등 반대 목소리가 묻혀버릴 가능성이 있다.
-사회=끝으로 입장이 다른 상대측에 바라는 것을 말해 달라.
▶이창영=배아는 생명체다. 운 좋은 배아는 인간으로 행복을 누리고, 운 나쁜 배아는 파괴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문제는 21세기 최대의 화두이며,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류의 존망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깊이 성찰해 주길 바란다.
▶구인회=흥분을 가라앉히고, 우리의 배아 연구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인류사에 있어서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물꼬를 텄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이 연구에 부담 없이 나설 가능성이 있다.
▶박세필=현재의 논란은 과학적 지식이 너무 빠르게 발전해 종교.윤리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1978년 영국에서 최초의 시험관 아기(루이스 브라운)가 태어났을 때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그러나 지금은 보편적인 불임치료기술로 인정돼 윤리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천주교 신자들도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불임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난치병 치료를 위한 배아 줄기세포의 연구도 하루속히 긍정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권복규=배아 연구는 어느 나라든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합의가 어렵다면 결국 다수 국민이 원하는 길로 가야 한다. 찬반 양측이 더 많은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배아 연구는 자격을 갖춘 연구자가 분명한(난치병 치료) 목적 아래 엄격한 절차를 밟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연구는 또 계속적인 검토.비판을 받아야 하며, 연구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특히 생명윤리는 개인의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찾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교육이 중.고교부터 꾸준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리=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
tkpark@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
choijd@joongang.co.kr>
참석자이창영(신부·가톨릭신문 주간)
박세필(마리아병원 생명공학연 구소장)
구인회(가톨릭대 인문사회과학 교실 교수)
권복규(이화여대 의대 의료윤리 학 교수)
▶일시:7월 15일 오전 9시30분∼11시40분
▶장소:중앙일보 회의실
▶사회:고종관 (본지 건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