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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살림농원 원문보기 글쓴이: 좋은생각
오덕동이원돌가옥 (吾德洞李源乭家屋)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206호 포항시 기북면 오덕1리 291 1988.9.22 |
이 가옥은 농포 정문부(農圃 鄭文孚)선생이 임진왜란후 사위인 이강에게 별옥일체(別屋一體)를 양여할 때의 부속건물 중의 일부로서 이강의 둘째아들 이덕령(李德齡)에게 물려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고 현 소유자인 이원돌(李源乭)은 이강의 9세손(世孫)이다.
정면4칸, 측면6칸의 목조와가인 이 가옥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조선중기에 창건한 건물로 당시의 시대상을 잘 나타내주는 주택평면구성이다.
용계정(龍溪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43호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 180
1989.4.21
임진왜란(1592)당시 북평사를 지낸 농포 정문부선생의 별장으로 조선 명종 원년(1546)에 건립하였고 숙종 12년(1686)에 증축하였다. 정조 이후에는 세덕사의 부속건물인 강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고종5년(1868) 서원 철폐시에 용계정을 세덕사지와 분리하기 위해 밤새도록 담을쌓아 세덕사만 철폐되고 용계정은 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건물규모는 정면5칸, 측면2칸의 목조와가 팔작지붕의 5량집이다. 방 4칸, 마루6칸으로 된 누각으로 방위에는 다락이 지붕과 이어져 있으며 마루끝에는 난간을 달았고, 부연과 난간 천장마루의 기법이 훌륭하다. 건물 뒤편은 후원에 연결되고 건물 앞쪽은 계곡의 기암절벽과 마주하고 있으며, 현재 정문부의 손서인 이강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용계정 부속건물로는 정면 5칸, 측면2칸의 맛배지붕인 포사가 있으며 수백년전 은행나무, 향나무, 백일홍 등이 용계정을 둘러싸고 있다.
오덕동사우정고택(吾德洞四友亭故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1호
포항시 기북면 오덕리 306
1988.9.23
사우정은 농포 정문부선생의 조부이신 정언각이 청송부사로 재직당시 지리에 밝은 청지기가 일러준 길지로 "활란가거 천하지낙양"이라 불렀다고 전하며, 이로부터 땅을 점유하여 집을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지명이 송을곡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송자가 든 지명에서는 패전한다는 설이 있어 이곳을 피난지로 삼았다고 전한다.
농포 정문부선생의 사위인 이강에게 양여하였고 이강은 3男 이덕삼에게 다시 물려주었으며, 그후 이헌순이 그의 호를 따서 사우정을 당호로 정했다고 한다. 방형의 담장으로 둘러쌓인 바깥마당으로 들어서면 일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ㅁ자형의 안채가 있으며 우측 담장 모서리에 사당지가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목조와가이고, 사랑채는 정면 칸, 측면 1칸반이 목조와가로 맛배지붕이며 조선중기(1600년대)상류계층의 생활상을 짐작케해 주는 고택이다.
오덕동애은당고택(吾德洞愛隱堂故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0호
포항시 기북면 오덕리 186
1988.9.23
북평사 전주부윤 전주진병마절제사를 지낸 바 있고 임진왜란 당시 많은 공을 세운 농포 정문부선생이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하다가 임진왜란 후 고향인 전주로 이사하면서 그의 사위인 사의당 이강에게 재산일체를 양여하였는데 1695년 3월 이강의 7남매 자녀 분가시에 4男 이덕소의 분가로 관리해 오다가 현재의 소유주인 이동우의 5대조 이재급이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애은당고택이 위치한 지형은 거북형으로 건물배치를 거북형으로 축조하여 거북 앞발위치에 각각 별당과 방앗간을 두었고 머리부분에 속하는 앞면에 잠실이 있었으며 꼬리부분에 화장실이 있다.
정면 사랑채와 붙은 대문을 들어서면 5칸 곡자형의 안채가 자리하며 좌측에는 창고와 방이 딸린 부속사(고채)가 자리하면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정면 4칸반, 측면3칸반이며,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목조와가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주택의 평면구성이 ㅁ자형을 이루고 있어 당시 상류층의 생활상을 나타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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