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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 콤플랙스 >>
많은 사람이 "여자 머리는 새머리"여서 감정적이고 단순하며 남성보다 사고력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은 집안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데 적합하고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일이나 사회 활동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버린다. 일반적으로 지적 능력이란 감각 기관을 통해 느낀 것을 의미있게
해석하고 이것을 사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형상과 구조, 기질의 차이가 대부분
유전적으로 결정되듯이 지적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접어 둔 채 남성은
활동적이고 독립적이며 지성적인 반면, 여성은 감성적이고 감각적이라고 일반화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이렇게 성에 따라서 지적 능력을 이분화함으로써 여성이 지식을 얻을 기회를 합리적으로 제한하였다.
그리하여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질 기회를 갖지 못한 여성은 자연히
지적 능력이 떨어 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첫 손님이 안경 낀 여자이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 "암탉 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나서서 되는 일이 없다" 등등의 말로 배우고 똑똑한
여자에게 심한 편견과 거부감을 드러내어, 여성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계속 계발시켜 나가기보다는 교양
수준에서 머무르게 된다. 지적 능력을 갖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지적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제한됨으로 해서 오늘날 여성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사회의 적재 적소에서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들은 심한 열등감을 느끼고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적극성을 잃어버린다. 이와 같이 사회가 부여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에서
열등하다"는 것을 여성 스스로 내재화함으로써 나타나는 지적 열등감을 '지적 콤플랙스'라고 한다.
이러한 지적 콤플랙스는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이야기를 할 때 여성은
남성이 주도권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여성을 싫어한다.
그리고 남성의 주장은 받아들이면서도 여성의 주장은 어딘지 미심쩍어 한다. 특히 "여자가 너무 많이
알면 팔자가 세다", "여자가 똑똑하면 시집가는데 지장이 있다"등의 말은 여성 스스로 너무 똑똑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특정한 환경 덕분에 -- 부모의 진보성이나 정신적, 경제적 혜택 등
-- 자신의 지적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들도 같은 분야의 남성들에게는 지적 열등감 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여성에게는 거꾸로 지적 우월감을 갖는다. 과거부터 남성들의 독점 영역이라고 하는 법조계,
의료계, 정치계, 언론계에서 소수의 여성들이 활동하고 있으나, 대부분 사회에서 '여자 역할'이라고
여겨지는 부분, 즉 가정 법원, 산부인과, 소아과, 문화부, 여성부 등에서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계로 이들은 남자들과 같은 분야에서 활동은 하지만 동료인 남성에게 지적 열등감을 가지며 다른
여성들에게는 능력이 자기들보다 모자란다고 생각하여 우월감을 갖는다.
오늘날 사회는 모든 부분에서 산업화, 기계화되고 있으며, 이에 맞춰 고도의 지식을 요구하는 복잡한 사회로 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새로운 것을 알고 적응하는 것이 곧 '지적 능력'의 기준이 된다. 결국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여성은 지적 콤플랙스를 지닐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다양한 형태로 지적 열등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여성들이 지적 콤플랙스를 느끼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1991년 8월부 터 9월에 걸쳐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았다. "남자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
하는 질문에 "남자보다 일을 잘 처리하지 못했을 때"(33.0%), "남자보다 공부를 못했을 때" (17.5%),
"의견을 무시당했을 때"(14.5%), "실력 있고 성공한 여자를 주위에서 찾아볼 수 없을 때"(9.5%) 느낀 적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특히 어떤 면에서 남자보다 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논리력과 분석력'(42.0%), '전문성'(19.0%), '리더십'(19.0%) 에서 주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이해력'에서는 불과 5.0%만이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볼 때 여성은 공적 영역에 필요한 논리력과
분석력에서 남성에게 지적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을 지적 콤플랙스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볼 때 한 사회의 지배층은 다른 성원을 지배하기 위해 교육의 기회를 차단하곤 하였다. 교육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힘을 주는 것이므로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곧 지배 계급 에 도전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신분 사회를 대표하는 조선 시대에도 상민이나 노비들은 배움의 기회가 차단되어 있었기에 지식을 소유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하 관계를 당연한 사회 질서로 여겼다. 그리하여 자신들 스스로가 무지하다고 생각하였고 유식한 양반층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그 당시 지배층에 속해 있던 남성도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서 여성이 교육받을 기회를 제한하였다.
그러나 18세기를 지나 19세기에 접어들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이 시대적 조류로 등장하면서 이러한
사상은 바뀌었다. 모든 인간이 교육 및 정치적 권리를 누릴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사상이 대두된
것이다. 우선 사회에 서는 모든 사회 성원에게 신분이나 성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부
여하였다. 그러나 지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개개인은 독립된 개체로서 각기 다른
자질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을 통해 암암리 에 지적인 열등성이 유지되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조선 시대의 양반층 여성들의 교육은 물론 근대에 들어와서 이루어진 제도 교육도 여성의 잠재된
지적 능력을 드러내기보다는,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 능력에서 열등하다는 것을 바탕으로 한 현모 양처
교육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졌다. 근대 이후 여성이 제도 교육 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여성도 지식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여성 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그 교육과정을 보면 현대 사회에
이르러 서로 약간의 표피적인 변화만 있을 뿐 그 내부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지적 능력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여성이 지적 열등성을 갖는 데는 많은 요인이 있다. 여성은 어릴 때 겪 는 사회화 과정부터 장난감, 놀이 문화 등에서 지적 능력에 제한을 받으며, 이것이 유치원 교육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여성이 지적능력에 제한을 받는 것은 국민학교를 위시한 제도 교육에 와서는 더욱 큰 폭으로 확산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지적인 열등성을 내재화하여 지적 콤플랙스를 갖게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여성이 지적 콤플랙스를 갖는 데 가장 큰 요인을 제도 교육이라고 보고, 이것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왔는지 알아봄으로써 여성이 어떻 게 해야 지적 콤플랙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실마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 지적 콤플랙스를 만들어 내는 교육 -
< 전통 교육 - "여자는 그릇 한 죽만 셀 줄 알면 된다" >
고대 사회부터 남성은 사유 재산을 바탕으로 각종 권리를 행사하였으나, 여성 은 가사 노동을 밭고 정숙과 복종의 도리만을 교육받았다. 남자는 신분이 낮아도 교육과 기술을 익혀 비록 제한적이지만 특권과 지위를 누린 반면 여자에게는 교육의 기회라곤 전혀 주어지지 않아 기껏해야 산파, 배우, 창녀 아니면 성의 노예로 살았다. 특히 중세
사회에서는 여성은 지적인 면에서나 도덕적인 면에서나 능력이 열등한 존재로 규정되었다. 의사들은
여성에게 교육을 시키면 자궁의 혈액이 머리로 올라와 히스테리를 일으키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남성의 영역인 지식의 세계에 도전했던 여성을 '마녀'로 낙인 찍어 화형에 처했다. 이들은 억울한
사람을 위해 변호를 할 줄 알고 산모와 아이를 돌보거나 병자를 치료하며 약초를 다룰 줄 아는, 이를테면
오늘날의 약사, 의사, 조산원, 예언자, 변호사 같은 여성들 이었다. 12-17세기 유럽에서만도 1백만 명에
달하는 여성이 남성의 영역인 의사 역할과 정치적 행위등을 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했다. 동양에서는
주로 음양 사상과 유교 문화를 배경으로 여성의 지적 열등성이 합리화되었다. 특히 여성의 행동 규범
지침서인 "여대학"에서는 여자는 우둔하므로 남성에게 복중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래서 여성이
똑똑하면 오히려 집 안을 망친다 하여 여성에게는 교육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남성은
성균관, 학당, 향교, 서당 등에서 학문을 통해 세상의 질서를 배울 뿐만 아니라 여성을 다스리는 법도
터득했다.
여자는 그릇 한 죽도 셀 줄 몰라야 복이 많다고 하고 재능이 없음을 오히려 미덕으로 알던
조선 시대에, 시인 이옥봉의 삶은 바로 지적인 여성이 경험해야 했 던 불행한 삶이 어떤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웃집 여인이 찾아와 자기 남편이 소 도둑 누명을 쓰고 있으니 해결해 달라는 호소에 옥봉은
한 편의 시를 지어 원님에게 바치게 했다. 누명을 풀어주었으나 남편 조원은 "시를 지어 분규를 해
결하는 일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니다"하여 옥봉을 내쳤다.
"무재주 상팔자"라는 속담처럼 여성은 까막눈일수록 행복하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고, 따라서 교육과 학문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래서 당시 여자의 글을 '세 초"(洗草)라 하여 태우거나 물에 글씨를 빨아 버렸다. 이렇듯 여성은 남성에게 묶여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교육 기회 자체를 막음으로써 여성은 열등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기껏해야 언문이라 하여 천대하던 한글만을 배울 수 있었다. 신분이 놓은 계층에서는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있기는 했으나 현모 양처라는 가정 교육이 전부였고, 이에 맞춰 "삼강 행실도"라든지 충신, 효자,
열녀, 수절 등 유교 사회에서 여성에게 모범이 될 만한 부분만을 골라 기록한 책만 볼 수 있었다.
< 근대 교육 - 교육 기회의 부여, 교육 내용의 이중성 >
18세기 이후 서양 여성은 여러 돌파구를 찾아 다양한 삶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쥐고 남성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도 하였고, 살롱 문화를 이룩하여 그 시대의 새로운 사상을 태동시키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은 평등하다는 근대 시민 사상은 여성으로 하여금 제도적인 평등을 요구하도록 이끌었다. 그들은 참정권과 교육 기회가 균등해야 한다고 외쳤다. 교육 운동을 통해 여성은 그 동안
남성이 독점해 온 지식과 직업 분야에서도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고 느끼고 남녀간의 능력차란 인위적인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등 사회적 변혁으로 신분제를 중심으로 한
중세 가부장제가 무너졌음에도 새로운 가부장제가 틀을 잡아 여전히 여성을 집 안에 얽어 매 었다.
상류층 여성은 예비 지배 계급인 신사들의 취향에 따라 교육이라 하여 '선반 위의 도자기'처럼 어학이나
예절, 취미 같은 교양 교육을 받았고, 하층 여자들은 가장에게 복종하는 교육을 받았다.
서구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개화기의 여성 역시 이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선교사를 통해 서구 문명이 들어오고,
청춘 과부의 개가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 한 동학이나 독립협회 등에서 열녀, 부창 부수, 현모 양처 등
전통적인 여성관 을 비판하고 남녀 평등과 일부일처를 주장하며, 여학교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여성을
독립적인 인간상으로 보는 새로운 여성관이 만들어졌으나, 당시 여성 교육은 근본적으로 여성을 가정
교육자로서 어머니와, 개명한 내조자로서 아내를 길러 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즉 가정이 화합해야
국가가 힘을 기를 수 있 다는 논지에 따라 여성의 교육을 주장한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 제국주의자는
본격적인 식민 자본주의를 심기 위해 울안의 여성을 공장과 사무실로 불러 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황국 식민화 교육을 바탕으로 여성에게 간단한 실업 교육을 시킨 뒤 노동자로 양성하여 그 노동력을
착취하였 다. 교육의 기회 균등으로 남성 사이에서는 계급이 사라져 갔으나 여성만은 여전히 차별
받아야 했다. 그 당시 신교육을 받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자각한 신여성들은 잡지와 신문에
기고하거나 여성 단체를 통해 여성의 자아 의식을 확산시키며 문화 운동을 펼쳤다.
최초의 여성 화가인 나혜석은 그 당시에 여학교를 '신부 양성소'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현모 양처 이데올로기로 여성을 가부장제의 노예로 만들고 있 다고 비판했다. 여성의 지성과 자율성은 무엇보다 성의 자유에 있다고
생각한 신여성들은 전통 적인 가정 생활 양식을 부정하고 자유 연애와 신정조론을 내세웠다. 결혼은 사
랑이 문제이지 법률 따위의 형식은 아무 문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으며, 사랑이 끝나면
도덕적,법률적으로 그 결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도 하였다. 그래서
신여성은 동경 유학중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 기도 하고 강제 결혼에 불만을 품고 이혼 소송을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들은 비난과 냉대를 피할 길이 없었다. 마침내 신여성은 성이
문란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로, 첩과 동일어로 쓰이기도 했다. 이렇듯 낭만 주의적 자유 연애는 기존
도덕을 파괴하겠다는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이 후 보수적인 윤리관이 등장하면서 자식 양육 및 가사
역할을 중심으로 한 개량주의적 여성 교육이 주를 이루었다.
< 여자 기죽이는 오늘날의 제도 교육 >
여성의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면 이는 본성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런 것이다. 즉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 경험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여성들이 자각하고 있다 하더라도 깊게 박힌 여성의 지적 콤플랙스의 뿌리를 뽑아 낼 정도는 되지 못했다. 오늘날 표면적으로는 여성 천시 사상이 사라졌지만 여성 차별과 지적 열등감을 부추기는 제도나 사회 통념은 여전히 여성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학문과
교양을 쌓은 여성이 아직도 가정과 직장에서 차별을 받으며, 남자는 가기보다 학력이 높은 여자와
결혼하기를 꺼린다. "적당히 배워 시집 가는 것"이 여성 교육의 기본 태도가 되고, "여자는 결혼하면
그만"이라는 통념으로 굳어져 여성에게는 일정 정도 이상 교육을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설문 조사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지적인 면에서 열등한 이유를 물었을 때 "배워 보았자 활용할 기회가 없다"(37.5%),
"자라면서 기회가 남성과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36.5%), "배워도 여자는 결혼하면 그만이기에 노력을
하지 않는다" (13.5%)고 대답한 반면, "원래 여자는 남자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에는 4.0%만 이 응답하고
있다. 무조건 여자는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기존의 통념은 깨어졌다. 그러나 사회에 유용한 인간을
키운다는 교육 목표와, 여성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역할 사이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여성은 지적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의무 교육 제도 등에 힘입어 교육의 기회가 남녀 모두에게 균등해졌으나,
가정 교육에서 학교 교육으로 교육의 주체가 옮겨지고부터 오히려 학교 교육은 여성의 지적 콤플랙스를
심어 주는 근원지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지 않으면, 여성이 무슨 이유로 지적 열등감을 갖게 되는지 찾기 어렵다.
- 남성 위주의 교육 과정 -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에 들어간다는 희망을
갖고 국민학교에 들어가지만, 이 다음에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쯤 되면 성숙한 나의 인격체라기보다는
'여자'라는 반쪽의 삶만 익힌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우수한 여학생의 경우에도 남학생보다 자신감이 덜하고 실패할 가능성에 대해 더 겁을 내어 아예 자신의
목표를 낮추고 만다. 흔히 여학생은 어학, 남학생은 수학을 더 선호하는데, 수학은 적성에 관계 없이
도전의 가능성이 많고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많긴 하지만 평가 기준은 객관적이다. 문제를 푸는
방법을 알든지 모르든지 둘 중 하나이며, 모르는 것을 위장하거나 적당히 넘어가기 어렵다. 그러나
어학은 기본 어휘만 배우면 점차 쉬워지므로 실패의 가능성이 적으나 그만큼 평가 기준은 모호하다.
그러므로 여학생은 수학보다는 안전하게 어학을 택한다. 또 평가 기준이 애매하여 이 분야에서 성공했을
때라도 자신이 지적으로 우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남학생은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에
적응하도록 키워졌기 때문에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데 더 매력을 느끼며 자신의 지적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학생은 일반적으로 생물을, 남학생은 화학이나 물리를 선택한다. 실험
실습이나 자연 시간을 통해 남자 아이는 어려운 과제들을 택하여 인내하며 극복 하는 방법을 배우고, 여자
아이는 실패의 위험이 있는 상황을 회피하는 쪽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많다. 기술과 가정과 같은 과목은
남녀에 따라 구분되어 여학생은 가정과 가사, 남학생은 공업, 기술을 배운다. 여학생은 당연히 가정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여 집안 살림을 맡고, 남학생은 사회 활동에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교육된다.
가정과 기술 과목에 공통으로 나오는 직업과 진로 단원에서조차 인간이 추구하는 차원 높은 욕구는 자아
실현이며 작업을 통해 이를 성취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가사 활동은 직업으로 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교과목 분리는 모든 것이 기계화 되어 가는 산업 사회 속에서 여성을 또 다른 무지의 세계로
이끈다. "우리 학교는 교양 과목의 경우 수강 인원이 많기 때문에 마이크 시설이 있는 대형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는다. 그런데 마이크 시설이 낡아서 소리가 나지 않 거나 잡음이 나는 등 수업 받기가 곤란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이 기계에 대해 아는 사람이 나와서 고쳐 보라고 하면 다들 자신 없어
한다. 우리는 가정에서는 물론 초 중 고교를 통해 기계에 대해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기계를
만진다는 것 자책을 두려워 한다" 일반 교과서 내용을 보면 여성은 나오지 않고 나온다 해도 쉬운 책속에
배경으로 등장하거나 지적 활동과는 거리가 먼 가정 생활과 전통적인 여성 역할로 국한된다. 이에 비해
남성은 지적 능력을 발휘하고 모험심을 부추기는 다양한 직업과 역할의 담당자로 묘사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영어 교과서(교학사)에는 "His Dreams and Her Dreams"(남성의 꿈과 여성의 꿈)라는 단원에서
남자의 꿈 은 과학자, 의사, 근로자로 나오며, 여성의 꿈은 교사, 음악가 그리고 어머니로 그리고 있다.
남자가 장래 희망에 아버지가 되겠다는 내용을 적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고정 관념 때문에 "She
is a scientist.", "He is a nurse.(그녀는 과학자다. 그는 간호사다)와 같은 문장은 틀렸다고 생각하게
된다.
- 보이지 않는 차별 -
형식적인 교육 내용 못지않게 교사의 태도, 상벌 체계, 나아가서는 학교의 인사 구조, 보상 체계 등
모든 환경에서 여성은 지적 능력을 키우는 데 따돌림을 받는다. 초등학교 교사는 거의 90%가 여성이다.
중고등학교의 여교사 비율은 줄어든다. 고등 교육에 가면 남성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여학생은 학년이 올 라갈수록 역할 모델로 삼을 만한 여성을 만나기가 어렵다. 학교 방침에서도 남학생은
체벌을 가하지만 여학생은 말로만 꾸중을 하여, 교묘하게도 지적인 도전에 직면할 때 여학생은 그것을
성취하겠다는 의지를 상실하고 만다. 충분히,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채찍질을 받아 보지 못한
여학생은 실제로 지적으로 도전을 해야 하는 분야에서 성취 의지를 갖지 못하는 것 이다. 국민학교에서
여자가 절반을 차지하는데도 여자가 반장이 되기는 어렵고, 전교 어린이 회장이 된다는 것은 과거
급제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학교 생활에서도 남자는 여자보다 칭찬을 많이 받고, 용기를 내라거나
적극적인 성격이 되라고 부추김을 받지만 여자에게는 관심을 그다지 기울이지 않는다.
미국에서 실시한 한 조사에 의하면 읽기 능력이 떨어지는 남학생은 보충 수업 을 받도록 하는 학교가 많지만 산수가
떨어지는 여학생은 보충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지 않다. 여학생은 협동적 상황에서, 남학생은 경쟁적
상황에서 더 나은 성적을 올리는데, 학교에서는 경쟁적 환경을 만들어 남학생의 학업 성취를 높이 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여학생은 갈수록 사기가 떨어지고 지식 세계에 서 멀어지면서 지적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한 여대생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여학생은 졸업하면 선생님을 찾아오지 않지만, 남학생은 결혼해서도 아내를 데리고 찾아와 인사를
한다는 말을 하며, 선생님은 여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없어서라고 말하곤 했다."
교사가 좋아하는 학생은 예외 없이 남학생이며, "가장 좋아하는 학생은 똑똑한 남학생이고 반대로 당돌한
여학생은 가장 싫어하는 학생"이라고 한다. 대학은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 주고 가족의 통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여학생은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대학에 간다. 그러나 남자교수는 남학생에게 사회적이고 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여, 제자로 여기고 지식을 전수하지만 여학생에게는 단순한 여제자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여학생이 더 공부를 하려 하면 "시집이나 가 지 뭐 그렇게 어렵게 살려고 하느냐"는 식의 반문을 하기가
일쑤이며, 학문적, 사회적 성취 의욕을 적극적으로 격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학생을 진지하 게
대하지 않고 그 학생의 학업 성취에도 구제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렇 듯 학교는 여성을 지적 세계에서 단절시키며 지적 열등감을 심어 주고 있다. 남녀 공학은 겉에서 보면 남녀 학생이 같은 공간에서 배우고 생활하기 때문에 전인적인 인격이 형성되리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남녀공학은
남학생은 남성 답고 여학생은 여성답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쟤는 여자니까", "그럼 그렇지. 쟤는
남자야"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여학생이 일등을 하면 그것은 의외의 일 이며 남학생이 하면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남녀 공학을 다니는 여학생은 남학생과 비교하며 자신을 여자라는 편협한 틀에
맞추어 간다. 남녀 공학의 장점 은 "남자는 남자다워지고 여자는 여자다워진다"는 데 있다고 하여, 정작
학문의 세계에서 소외된 여학생은 위축되고 콤플랙스는 더욱 깊어진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해마다
늘고 있지만(1980년 23.6%, 1985년에 34.1%, 1991년 현재 40.3%) 여학생은 전체 대학생의 30%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학 졸업 후 고학력 여성들의 취업률은 매우 낮다. 학생들의 진학 지도에서도 여학생은
감성적이고 비지성적이며 비이성적이니까 어문학 또는 예술 분야를 선택하라고 하고, 남학생은
논리적,이성적,지성적이기 때문에 사회 과학, 의학, 공학을 권한다. 결국 사회 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학문을 책한 남자들이 더 쉽게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학교나 사회에서는 남자가 예술계나 어문학계를
선택하려 들면 "밥 굶겠다"고 말리면서, 여자가 공학계, 농림계, 수산 해양계에 뛰어들려 하면 "드센
여자"라고 막는다. 실업계에서도 공업 학교는 거의 남학생으로 구성되어 기술 교육을 받은 후 전문
기능직에 진출하지만 여학생은 상업학교에 들어가 졸업후 '여자의 일'로 여 겨지는 서비스직, 판매, 타자,
경리직에 진출한다. 최근에는 공업학교에도 여학생이 늘고 있으며 취업이 잘된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남학생은 선반, 기계 조립, 용접 분야 등이 전공인 반면, 여학생은 기계 제도 등 섬세한 분야를
전공하여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여 있다. 여성은 취업시 능력보다는 키, 외 모가 우선시되어 '여자의
일'로 되어 있는 분야에 취업하지 못하면 생산직 단순 노동에 취업하여 그나마 배운 지식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다.
교육 과정을 통해 볼 때 형식적이든 비형식적이든 여성에게는 지적 성취에 대한 기대 수준이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배움의 목표 자체가 남성 위주로 되어 있어 여성에게는 확실한 목표없이 교육 기회가 제공된다. 남성과 여성의 활동 범위를 사회와 가정으로 분리시키고, 학문 영역을 성에 따라 지성과 감성으로 이분화하는 교육의 이중 구조는 여성에게 사회에 대한 객관적 지식들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 또한 사회 역시 남성이 주도하며 남성들의 비공식적 접촉에 의 한 운영이 일정한 원칙보다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실제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경험이 없는 대다수 여성들에게는 학교에서 배운 제한된 지식과 사회를 연결시킨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직업을 갖고 사회의 한 영역에 공식적으로 지출하고자 하는 여성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현실에 대한 무지하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 황은 결과적으로 여성으로 하여금 지적 콤플랙스를 내면화시키고 열등감을 심화 시킨다.
- 현대 여성, 다중 인격체 -
개개인의 성취와 경쟁을 주 내용으로 하는 현대의 교육을 받는 여성은 심한 갈등을 겪는다. 그래서
남성과 같아지려는 여성, 겉으로는 겸손을 가장하지만 속 마음은 지적 열등감에 사로잡혀 갈등하는 여성,
지적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남성에게 지나치게 적의를 갖거나 자신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다른 여성에게
지적 우월감을 느끼는 등 비뚤어진 형태로 다양한 지적 콤플랙스를 드러낸다. 이러한 것들은 '진정한
자아'가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대신 자리 잡는 일종의 가면이고 합리화이다. 따라서 콤플랙스의
구체적 양상을 찾아보는 것은 곧 열등감 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을 제시할 것이다.
< 똑똑하면 시집 못 간다 >
대개 부모는 남자란 가장으로서 생계를 이어 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직업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아들의 교육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딸의 경우 여자도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시대의 흐름에, 또는 결혼에 있어 배우자에 걸맞는 수준 정도는 교육해야 한다는 정도에서 멈출 뿐 부모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어려서는 남녀에게 똑같이 교육 기회가 주어지지만 상급 학교로 갈수록 여자의 교육 기회는 줄어든다. 여성의 경우에 결혼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주위에서 진학을 포기하도록 하든가 혹은 본인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동안
어렵게 키워 왔던 지적 능력은 활용해 보기도 전에 가정으로 돌려진다. 여성은 고학력이거나 자립 기반을
가지고 있을수록 결혼은 늦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리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도 결혼 하지 않으면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는 여성이라고 취급한다. 여성은 학력에 상관 없이
기혼인 경우 어른 대접을 받고 미혼은 나이가 많아도 얕보는 경향이 있다. 1950년대 미국의 여학생들은
좋은 남편을 고르기 위해 대학에 갔다. 그중 60% 가 결혼하기 위해, 혹은 교육을 많이 받는 것이 결혼에
장애가 될까봐 대학을 중퇴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여학생은 좋은 결혼의 기회가 생기면 학업을 포기한 다. 그것은 여성이 성공을 해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한 여자 는 드세고 여성다운 매력이 없고 집안은 엉망"이라는 사회 편견이 두려워 성취 의욕이 쉽게 꺾이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은 좋은 결과보다 나쁜 결과가 더 많이 따르리라고 미리 짐작하여 성공을 향한 행동을 주저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여성은 자신이, 혹은 딸이 지나치게 똑똑하게 될까봐 우려한다. 활동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 한 남자에게 눌리고 그 밑에 안주해 가는 '말괄량이 길들이기', 아니면 직업 여성이
직장과 남편의 압박에 밀려 결국 가정으로 돌아오는 얘기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듣는다. 또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과 소 평가하거나 비난하고 때로는 웃음거리로 만들기로 한다. 그러한 사회 상황 속에서
여성은 "이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안 되는 일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순응해 살기로 마음 먹는다.
여성은 "똑똑하면 매력이 없다. 여자답지 못하다"는 말이 두려워 지적 욕구를 잠재우기도 하며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드러내어 인정과 호감을 받으려고 남자 앞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거나 일부러
져 주기도 한다.
지적 능력을 키워 사회 활동을 하려는 의지를 상실하고 택한 결혼은 대개 좌절과 실망만을 안겨 준다. 집안일은 과거보다 줄어들었고 가족 계획과 피임법의 발달로 자녀 양육에서 일찍이 자유로워진 여성은 물리적 풍요를 바탕으로 많은 여가 시간을 안일하게 보내게 된다. 여성들은 우선적으로 행복한 삶이란 힘든 일에서 벗어나서 육체적으로 편안한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육체적 인 일에서 벗어난 "어느 정도 배운 여성"에게, 현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대중 매체는 여성을 거대한 상품 시장으로 만들어 교묘하게 여성의 지적 콤플랙스를 자극하고 소비로써 대리 만족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적 욕구란 창조적인 일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 소비에
의한 욕구 충족은 이들에게 허전함을 가져다 주며 사회에서는 이들을 무분별한 과소비의 주범이라고
비난을 한다.
교육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여성에게 자아 의식을 심어 준다. 오늘날 여성 은 과거의 어머니처럼 자식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것만으로 행복해 할 만 큼 무감각하지는 않다. 이들 의식 속에는 남편과 자녀의 대리 인생을 사는 '나를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외면 하고 싶지만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의식 있고 자립 능력이 충분한 여성은 결혼을 주저한다.
< 지적인 현모 양처 >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 가정에만 머물러 있는 여성은 그들대로 지적 열등감에 시달린다. 남편이나 자녀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당신은 그것도 몰라? 집에서 놀면서 뭐해?", "엄만 그것도 몰라. 말이 안 통해", "무식 한 여편네"라는 말을 들으며 초조하고 불안해 한다.
여성은 사회에서 고립될 뿐 아니라 이제는 가족과 대화조차 할 수 없다. 불안한 주부들은 나름대로
극복해 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은 대체로 문제의 핵심을 보기보다는 회피하는 식 으로 이루어진다.
자의식이 약할수록 행복한 아내가 될 수 있다는 말처럼 이들은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기보다는 바쁘게
일에 매몰되어 버리려 한다. 끊임없이 집안 청소를 한다든가, 에어로빅, 꽃꽂이, 운전 면허, 교양 강좌
등 각종 사회 교육 과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전통 사회 여성의 이미지를 재생산 하고 자신의
지적 열등성을 감춰 줄 뿐이다. 가정 주부의 삶이 여성에게 가장 훌륭한 삶이라고 배워 온 이들은 다른
대안이 없기에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고 느낀다. 무언가 알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여성은 신문 보기, 뉴스, 독서하 기에 매달리지만, 신문은 사회면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훑어보고 독서라고해야 소설과 잡지류가 대부분이다. 사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는 매스컴의 유도대로
주부 노래 부르기, 관람객, 토크쇼에 방청객으로 나가 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정에서 살림만
하다가 모처럼 외출한 촌스러운 여자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빼어나게 예쁘지도 않고 뛰어나게 잘나지도
못한 대다수 평범한 여성은 무언인 가를 해보려고 하면서 인생을 소비한다. 모델과 여배우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이 여성은 외적인 아름다움만 으로 살아갈
수 없고 일정 수준까지는 교육을 받았으므로 어느 정조 지적인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아름다움은
타고나므로 어쩔 수 없다 해도 지성은 충분히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갖가지를 배우려 한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남자보다 지적으로 열등한 것을 "본인이 못나서",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극복 방안으로 독서를 꼽고 있다. 그 러나 독서 내용은 주로 교양 분야였고 그러한
의도 역시 자기 계발로서가 아니 라 남성과의 대화를 가능케 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그러한 대안이
근본적으로 열등감을 없애 주지는 못한다. 그 지적 추구 의 내용이란 결국 남편을 잘 보조하는 현모 양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좀더 교묘해지고 복잡해졌을 뿐이다. 사회가 바라는 지적인 여성이란 내적인
부드러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을 함께 소유한 사랑스럽고 우아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지적이고자 노력하는
여성에게 전문가는 좋은 남자를 만나서 놓치지 않는 방법, 어린 아이를 모유로 키우는 방법, 요리를 좀더
그럴 듯하게 만드는 법, 어떻게 하면 더욱 여성답게 옷을 입고 세련미를 풍길 수 있는가 하는 방법, 어떻
게 하면 결혼 생활을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 남편의 건강 관리법과 아이를 나쁜 길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신문이나 광고 문의인 "웨딩드레스 입는 법, A학점에서 F학점까지",
"좋은 가구 고르기 보고서" 등은 교육받은 여성의 관심사를 오직 결혼으로만 몰고 간다. 직장 여성
성공법이라는 것도 남성의 비위를 잘 맞추는 방법에 대해서만 세세히 언급되어 있을 뿐 아랫 사람 다루는
법은 아예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여성의 적극성을 다른 데로 돌리고 지적인 능력은 자기 자신의
계발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을 위해 쓰도록 부추김당하는 것이다.
< 갈등하는 전문직 여성들 >
여성에 대한 교육 기회의 확대와 부모의 경제적 이유, 그 밖의 혜택으로 인해 오늘날 여성들의 감추어졌던 지적 능력이 되살아나게 되었고, 이들의 활동은 사 회 각 분야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회의 기존 통 념을 깨뜨리고 있다. 과거부터 남성의 역할이라고 한 정치가, 변호사, 교수, 장관, 전문직, 관리직, 경영직에 여성의 참여는 기존의 사회 질서 속에서 여성들에게 새로운 역할 모델 을 제시해 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계층에서 특별한 업적을 이루고 있는 여성들 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는 다른 여성들과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여 "여자들이 란 별 수 없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며 이들에 대해 지적 우월감을 갖기도 한 다. 또한 다른 여성들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유능하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 며 남녀가 평등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한 전문직 여성의 이야기이다.
"매달 만나는 여고 동창 모임에 갔다온 날은 머리가 아프다. 하루 종일 아파트 평수 늘리는 문제,
옷, 자식 문제 등 사소한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 정작 최근 이루어진 가족법 개정이라든가 성 폭행 등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평소 직장 생황을 하면서 남성들과 교류가 잦은 나는
그들과 폭 넓은 대화를 즐기며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 다. 그러나 여성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그저 그런
얘기에 한계를 느끼곤 한다."
그러나 한편 남성은 사회적 역할, 여성은 가정 역할이라는 성 역할 고정 관념 과 남성의 지적 우월성이
존재하는 사회속에서 이러한 계층의 여성들은 같은 부류의 남성들에 대해서는 지적 열등감을 갖게 된다.
전문 직종의 고도의 전문성 을 요구하므로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진출할 수 있는 분야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문 분야에서도 여성들은 이른바 여성적이라고 간주되고 있는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면 여의사들은 소아과나 산부인과, 판사는 가정 법원이나 소년범 담당직, 기자들은 문화부나
생활부, 교수도 인문, 예능, 가정계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그 역할에서도 능률적이고 합리적인 일의
수행을 기대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여성 역할, 즉 양보하는 자로서의 모성적 역할, 부드럽고 관대함에
따른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러한 가운데 여성들은 가능한 한 나서지 않고, 자기 주장을 접어
둠으로써 눈에 띄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든가 공식적인 지도권을 남성에게
내줌으로써 남성의 지적 우월성을 인정하게 된다.
정신과 인턴인 H씨는 2주에 한번씩 돌아오는 세미나 때마다 심한 스트 레스에 쌓인다. 정신과는
특히 실력을 인정받는 분야로 이 분야의 여성은 매우 드물다. 여성은 H씨 하나이고 모두 남자들 뿐인 이
정신과 세 미나 그룹에 참가하여 발표할 날이 가까워 오면 그녀는 발표할 내용을 들고 남자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미리 그들의 견해와 평가를 받아오려고 안절부절 못한다. 자신은 남자들보다 덜 논리적이고
분석적이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남자 동료들에게 자신의 발표 내용이 논리적인지를 확인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여자 친구들에게는 세미나에서 성공적으로 발표를 했다고 자랑하며 자신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은근히 우월감을 내비치곤 한다.
이렇듯 이러한 계층의 여성들은 자신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성들과 평등한 관계 속에서 연대
의식이나 결속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들 에 대해 지적 우월감을 지니며 반대로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이 뒤진다는 사회적 통념과 성 역할 고정 관념을 내면화하여 남성들에 대한 지적 열등감을
갖게 된다.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적 능력을 인정받고 특별한 업적을 이루고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성공에만 만족하지 말고 진심으로 여성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 야 한다. 그러지 않고 사회적
허영심을 충족하고 자기 만족에 빠져 버린다면 이들의 이러한 성공은 다른 여성들 - 주부, 직장 여성,
천대받는 여성 - 의 지위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 여성인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 변화하는 사회, 똑똑한 여성 -
여성은 남성보다 본질적으로 열등하지 않으며 남성이 여성보다 뒤떨어지지도 않는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개개인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성의 삶을 볼 때 여자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창조적 인성은 거부당해 왔다. 여성과 남성의 지적 능력에 차이가 없다는 과학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자 머리는 새머리"라든가 여성은 본래 논리적이지 않다든가 하는 고정 관념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관념은 오늘날 사회의 가치 규범을 효율적으로 전파하는 제도 교육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자기 비하에 빠진다. 이 땅에서 근대 교육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들은 각
분야에서 사회 문화적으로 억제되었던 자신의 지적 능력을 발휘하여 각 분야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정치계, 학계, 예술계 등에서 여성의 능력이 남성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남성이 여성보다 지적 능력이 우월하다는 사회적 통념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그리고
여성 교육은 여성 스스로에게 기존의 관념과 사회제도가 유독 여성에게만 불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런데 여성들이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지적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자각하게 되자
남성 중심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따라서 과거부터 이루어진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은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관념을 근대 교육 제도를 통해 더욱 교묘하게 여성들에게
내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지식의 힘으로 의식이 깨인 여성들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충분히 활용 할 수
없고,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들은 사회에서 부여한 여성의 지적 열등함과 함께 자신의 무지함에
불만과 열등감을 가진 채 살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여성들은 배우거나 배우지 못하거나 똑같은 갈등에
빠진다.
이제 여성은 기존의 사회에서 심어 준 여성에 대한 여러 편견과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여성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회 제도적 지지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여성이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관념을 바탕으로 한 "남성은 사회 활동, 여성은 집안일"의 성 역할 고정 관념은 깨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 이래로 여성이 생산활동에 끊임없이 참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일이 주된 일은 아니라는 논리로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의 사회적인 활동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여성의 지적 열등감을 자극해 왔다.
이러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여성이 자신의 지적인 능력을 확인해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감추어져 있었던 자신의 지적 능력을 찾아내야 한 다. 현대 사회에서 전 산업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기계화, 자동화의 물결은 노동에서 남성과 여성의 분리벽을 허물고 있다. 성
때문에 창조적 인성이 제약된다는 사실은 낡은 시대의 산물에 불과하다. 여성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는 속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이루어질 때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온 "여성이 지적 능력에서
남성보다 뒤떨어진다"는 신화는 깨질 것이다.
첫댓글 이제는 한 인간이 인격을 갖춘 태양과 같은 존재가 될수 있는 자천의 문화가 여러곳에서 드러나고 있으니 남녀 차별의 문제는 자연적으로 사라질거라 기대해봅니다.
실제적으로 육체적인 특성이나 남녀 호르몬적 차이에 의한 역할차(예를 들면 남자가 아이를 낳기는 거의 불가능한것)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의해 차별이 아닌 더 맞는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