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에 간다. 산에 오른다.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며 자연과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눈다. 정상에 오른다. 저 아래 세상을 내려다본다. 어느새 세상 진(塵)이 다 씻기고 맑은 대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정상의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싱그러운 자연의 모습… 그래서 또 산에 오른다.
<준비>
2000년 하계 장기 산행 코스를 설악산 공룡능선과 가야동계곡으로 정하고, 산행조와 계곡조로 나누어 조편성도 끝낸 뒤 설명회에서 코스를 따라 주변 경관까지 생생하게 시연까지 하였다. 내설악과 외설악의 풍광을 능선을 걸으며 계속 감상할 기대감에 우리는 얼마나 가슴 부풀고 흥분했던가! 그러나 출발 1주일 전에 이 코스가 산행 금지구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갑자기 코스를 변경하게 되었다. 한편 서운하면서 또 한편 잘 된 것은 대원들이 두 팀으로 구분되지 않고 함께 산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출발>
당일 아침 날씨는 구름이 잔뜩 낀 듯… 아침 7시 30분.
이화광장에서 버스는 출발하였다. 행여나 아침식사 못한 대원이 있을까 누군가가 돌리는 따듯하게 삶은 감자를 먹으며 따듯한 마음까지 나눈다. 모두 설레는 분위기. 마치 오랜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버스 안이 가득 찼는데…이화산악회 회장께서 이번 산행 일정을 발표하였다. 버스가 휴게소에서 잠시 쉰 후 다시 출발. 삼행시 짓기를 하였다. 오늘의 주제는 대. 청. 봉. 삼행시를 짓는 동안 지난번 명성산 산행 비디오를 감상하고, 곧이어 삼행시 발표를 하였다. 기발한 착상과 재치가 톡톡 튀는 작품들이 많아 우열을 가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바탕 웃음 속에 가장 썰렁한(?) 작품 7편을 엄선, 시상을 하였다. 상품은 등산용품(스푼세트와 공기베개). 수상작품은 이화산악회 홈페이지에 1주일간 실리는 영광을 드린단다.
버스는 망우리에서 대원 네 사람을 더 태웠다. 이번 산행 대원은 모두 33명. 일기예보는 오늘도 내일도 한 차례 소나기 예보가 있었지만 창 밖은 화창하고 햇빛 뜨거운 여름이다. 창 밖 풍경은 어느새 도심을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는가 싶더니 또 강을 끼고 달린다. 양평, 홍천, 인제를 지나자 푸른 산과 산이 겹겹이 보이니 강원도 설악산이 가까웠구나!
점심식사는 용대리에 있는 백담휴게소에서 했다. 전화로 예약을 해놓은 덕택에 도착하니 식탁은 벌써 차려져 있고, 우리는 시장했던 터라 맛있게 먹었다. 산나물, 마늘쫑장아찌, 두부조림, 된장찌개, 특히 곰취잎장아찌 등 시골스런 분위기의 음식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주인인 듯한 젊은 남자가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시중을 들어 주며, 곰취잎장아찌를 강조하며 자랑한다. 맛있게 먹은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어떤 대원은 마늘쫑장아찌와 곰취잎장아찌 등을 산에서 먹는다며 따로 얻기도 했다. 몇몇은 그 집에서 자랑하는 뽕나무열매인 오디로 담근 술을 선물로 받아 가슴에 품고 나오기도 했다.
주인 남자의 허리까지 구부린 정중한 작별을 받으며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잠시 후 백담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고 셔틀버스를 대절하다시피 하여 백담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버스 차창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백담계곡의 경치는 우리가 이번에 올라갈 설악의 예고편 같아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예전엔 이 길을 힘들여 걸어서 올라갔는데 이젠 편하게 차를 타고 올라간다. 셔틀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니 다 왔다고 내리라고 한다. 강교 주차장이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걸어야 하는구나.
햇볕은 계속 따갑고 소나기는커녕 구름들은 다 어디로 갔나. 오늘은 전혀 비가 올 것 같지 않다. 아무렴 비가 쏟아지는 것보담 뙤약볕이 낫지. 바로 눈앞에 새로 세운 듯한 대리석 다리. 수심교(修心橋)라 써 있다. 저 건너에 백담사(百潭寺). 백담사에 오려면 수심교를 건너라. 마음을 정하게 가다듬고 백담사 경내로 들어갔다.
백담사는 내설악을 대표하는 사찰로 신라 진덕여왕 1년(647년)에 자장이 세운 한계사라는 절이었는데 무려 일곱 차례에 걸친 화재를 만났다고 한다. 백담사라는 이름의 유래는, 어느 날 밤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의 웅덩이를 세어보라고 해서 이튿날 세어보니 100개였다. 그래서 담(潭)자를 넣어 백담사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부속 암자로는 봉정암과 오세암이 있다.
백담사 경내로 들어가니 정면 극락보전 바로 옆에 全대통령이 기거하던 화엄실이 있다. 비좁고 누추해 보이는 공간과 사용했던 생활용품들. 그러나 세상과 연을 끊고 수양에 정진한다면 결코 부족함이 없었을 터…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세월 그 수양을 한 권의 책에라도 담았더라면… 조금 떨어진 곳에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비(詩碑)와 기념관이 있다. 아! 이분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저려온다. 이 분의 일생과 그 시대와 그 많은 주옥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그분의 사상. 시비는 큰 바위에 '나룻배와 행인'이 조각되어 있었다. 기념관 내에는 그 분을 소개하는 많은 일화들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일부 판매도 하고 있었다.
백담사를 나와 수심교 위에서 단체로 사진을 박았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이다. 햇볕은 거침없이 내리쬐이고 따가왔으나 곧 울창한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걷고 또 걸었다. 계곡을 따라 걷다가, 건너서 또 계곡을 끼고 걸으며,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벗삼고 걸으며, 햇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큰 암반과 바위 사이에 크고 작은 소(沼)들이 계속 우리를 유혹한다. 발 좀 담그고 쉬었다 가라고. 선두는 어느 틈에 보이지 않게 되고 후미도 보이지 않는다. 길 한쪽에서는 매미소리, 여치소리, 또 이름 모를 풀벌레소리와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합창으로 쏟아지고, 알 수 없는 향긋한 나무의 내음새가 아찔하도록 취하게 한다. 무슨 향기일까, 어느 나무일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앞사람과 처질세라 또 부지런히 뒤쫓아간다.
그래도 양심이 있기는 있는가보다. 걸음이 잰 대원들이 앞서가다 숲그늘 명당자리에 진을 치고 후미 팀을 기다리느라 간식을 들며 담소들을 나누고 있다. 이때 신 윤리관이 진리처럼 통용되는 사례가 생기는데, 무거운 것을 힘들여 지고 온 사람이 간식을 돌리면 받아먹는 사람들은 짐짓 고자세다. 상대방 짐을 덜어 준다고. 이 담에 다른 세상에 가면 선행 한가지 신고할 셈인 듯…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하니 앞서 도착한 대원들이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수고했다며 맞아 준다. 시계를 보니 5시. 예정 시간대로 도착했네? 짐을 숙소에 놓고 조별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시냇가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에서 버너를 피우고, 쌀을 씻고,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볶고, 반찬을 꺼내고, 모두 너무 신이 나서 손발이 척척 맞는다. 우리 2조는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는 냇가 결의(?)를 맺었다. 한 번 조는 영원한 조다. 우리 2조는 누구도 파할 수 없다. 조장은 목숨을 걸고 우리 2조의 결의를 지킨다. 환상의 2조원들은 남이 볼세라 서로 마주보며 낄낄거렸다. 다른 조들도 다 그러했을 터…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냇가에 모였다.
저녁 여덟 시, 산 속의 해는 빨리 진다. 수렴동의 하늘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손바닥만하게 뚫려 있다. 바람은 시원하고, 낮에 땀으로 흠뻑 젖었던 옷은 어느새 다 마른 듯, 냇가 바위에 여기저기 둥글게 모여 앉아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된다. 산악회장님 인사말씀. 오늘 출발부터 모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를 잘 해준 대원들께 감사드린다며, 누구보다도 일등 공신이 날씨였음을 천명함으로써, 피조물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산행리더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내일의 산행이 순조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로이자 산악회 會牧(?)이신 조관휘 대원께 내일도 좋은 날씨를 주시도록 오늘 밤 하나님께 기도 잘 드리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회목의 기도 덕으로 장마전선이 피해 가고 산행기간 내내 날씨가 좋았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나광식 총무의 사회로 산중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었다. 이화의 사위들이 보여 준 그 다이내믹한 쇼! 명가수 주미향 부부, 부창부수라더니 부부가 모두 그렇게 노래를 잘하니, 좀 공평하지 못한 것 같더라~, 그리고 명댄서 이재창 부부, 마치 빙반위의 피겨 금메달 선수 같은 화려한 율동, 그리고 이복희 부부, 마치 러브스토리 영화 촬영 장면을 보는 듯, 노래와 농(濃)담(談) 스토리가 이어지고… 그런데 사회자야~, 부탁이 있어야~, 담부턴 노래 못하는 사람은 미리 알아서 시키지 말아야~, 어둠이 내려와 앞사람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되자 오락을 끝내고는 조금 큰 바위 아래쪽 물 속에서는 나무꾼들이, 위쪽 물 속에서는 선녀들이 목욕을 하였다. 그 차고도 상쾌함이란!
오늘 산행 3시간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일의 10시간 산행을 생각하면… 모두들 내일의 산행을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허나,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색소폰 소리는 아닌 듯한데… 희귀한 악기를 조율을 하는지, 연주를 하는지, 그것도 하나 둘도 아니고, 누군가 옆에서 눈치를 주는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또 연주를 한다. 가끔은 남자들 잠자리에서 트럼펫 소리도 터트린다. 웃음을 참다가 어느 틈엔가 잠에 빠져들었다.
<제2일> 아침 5시 기상.
그러나 4시부터 부스럭거리며 수선을 떠는 대원들 덕에 할 수 없이 일찍 일어났다. 아침 식사와 점심밥 준비까지 해야 한다. 어젯밤에 두 끼 분의 쌀을 씻어 물까지 부어 놓았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어스름한 새벽 빛깔 아래 조별로 식사 준비하느라 모두 부산하다. 냇가 바윗돌 사이 여기저기 조별로 아침 식사를 부지런히 끝내고는 점심밥을 행동식으로 한다고 김밥을 만든다. 우리 조는 밥에 깨소금을 넣어 버무리고, 김을 펴서 밥을 그 위에 얇게 펴놓고 소금을 솔솔 뿌리고 둘둘 말았다. 믿음직한 김영철이 엄지손을 세우고 힘을 주며 웃는다. 아마도 꿀맛일 것이 틀림없다 그 뜻이겠지? 먹기 편하게 반 잘라서 남자는 3개 여자는 2개씩 나누어 가졌다.
7시 출발. 모두들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런 산행 한 두 번 해봤나? 새벽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앞사람을 따라 행진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날씨가 청명할 것 같은 예감. 바람도 시원하고. 조금 걸으니까 땀이 솟기 시작한다. 숲 속 길은 소나무, 상수리나무, 또 이름 모를 큰 나무들로 울창하고, 계속 계곡을 따라 걷다가, 철사다리로 계곡을 건너서, 또 가파른 산길로, 또 높게 이어진 철사다리를 힘겹게 오르고, 땀은 뚝뚝 떨어지는데…, 철사다리 중간에서 뒤에 큰 바위 위로부터 폭포가 흘러내리고, 이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느라 몇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냥 계속 걸어 올라갔다. 나중에 그 곳이 쌍폭이라는 것을 알고는 폭포를 하나밖에 보지 못한 것을 서운해했다.
그래도 중간에 큰 암반이 있는 곳에서는 선두가 기다려 주어 함께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오이나 과일을 나누며, 땀을 식히며, 목을 축이고, 숨을 돌리며, 함께 쉬기도 했다. 계곡이 끝나고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은 점점 가파라진다.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좁은 바위 사잇길을 돌아, 네 발로 기어가는 길이 계속되었다. 마치 바윗길을 일으켜 세워 놓은 것 같다. 한 줄로 서서 앞사람이 기어올라가면 다음 사람이 따라서 그 자리로 기어올라가고 하는데…, 앞에 섰던 나광식 총무 왈 "난 집에 가서 설악산에서 보고 온 것 그리라고 하면 이재창 선생 방댕이만 하나 가득 그릴 거야" 그 뒤에 섰던 나는 폭소를 터트렸다. 내 눈앞에도 방댕이만 하나 가득 보이는 걸. 어찌어찌 계속 기어올라 가노라니…, 아하! 여기가 깔딱고개라고? 햇빛은 내리 쬐이는데 중간에 숨돌릴 만한 좁은 자리에서 몇이 쉬고 있다. 나도 따라 앉았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과 계곡, 아래에서 계속 올라오는 사람들. 또 위에서 계속 내려가는 사람들. 내려가는 사람들은 "이제 다 왔습니다. 힘내세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하며 묻지도 않았는데 정보를 주며 격려를 해 준다.
"봉정암이 여기서 얼마나 걸립니까?" "이제 10분만 가면 됩니다" 시계를 보니 10시 35분. 그렇다면 이 좋은 경치와 바람을 와 아깝게 버리고 가노. 아직도 숨이 찬데. 봉정암 도착 예정 시간은 11시. 우리는 10분 전까지 계속 바람을 마시며 희희낙락 쉬었다. 어차피 후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데…
봉정암 경내에 들어서니 산악회장님과 총무처장님 또 몇몇 회원이 짐을 내려놓고 쉬고 있다가 반가이 맞아 주신다. "아! 지금 정각 11시네요. 산행 계획표가 저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나봐요? 제가 이렇게 신기하게 시간을 맞추었네요." "최선생 나이하고 키하고 체중하고 또 … 를 입력했더니 그런 결과가 출력되더라고." 한번 웃으니 피로가 싹 풀리는 듯. 봉정암은 전에는 조그만 암자였는데 지금은 법당을 크게 지었고, 불공을 드리러 온 수많은 아낙들이 이불을 펴놓고 앉아 있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하고, 아무튼 좀 놀라운 풍경이었다. 서울 근교에도 절이 많은데 이렇게 높은 곳을 힘들여 올라온 불자들이 어찌 저리도 많을꼬? 봉정암을 뒤로하고 계속 산길을 올랐다.
봉정암에서 소청봉 가는 길은 숨이 가쁘다. 가파른 길을 한참을 오르니 눈앞이 탁 트이며, 넓은 공터 바로 앞에 우리 팀이 나무 평상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아! 여기가 소청산장! 너무나 땀을 흘리고 힘이 들었기에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짐을 내려놓고 우리의 행동식 김밥을 꺼내었다. 평상에는 먼저 도착한 다른 팀이 차려 놓은 김치며, 장조림, 오이지무침, 단무지 그리고 너무나 예쁘게 한 입씩 먹게 만든 김밥과 초밥도 있었다. 아니 이건 행동식이 아니라 주문 요리 같다. 우리는 행동식과 그 예쁘게 만든 요리도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남은 음식은 깔끔하게 정돈하여 다음 도착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먼저 떠난 선두를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키 작은 나무들과 풀숲 사이로,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 속에서 전진 또 전진. 얼마 후 붉은 흙이 드러난 소청봉 공터에 우리의 선두 다람쥐(!) 조성숙이 배낭을 지키며 서 있다. 모두 배낭을 내려놓고 대청봉을 향했다. 중청산장을 지나 능선으로 계속 걸으며 왼쪽으로 저 아래 끝없이 이어진 산과 계곡들, 뾰족한 봉우리들, 푸른 산과 계곡들로 둘러싸인 한가운데에, 흰 바위를 깎아 만든 것 같은 봉우리 산들이 무리(群)를 이루고 있는데, 뾰족한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마치 부채를 펼쳐 놓은 듯한, 흰 바위 봉우리들이 햇빛을 받아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천화대(天花臺). 그 옆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바위 봉우리들이 줄을 서서 저 멀리 이어진 곳, 공룡능선의 등줄기가 보이는구나. 아래 산과 계곡에는 구름들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나무들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키는 작고, 가지는 굵고 단단해 보이며, 모두 한 방향으로 휘고 구부러져 있었다. 추운 겨울 모진 서북풍을 견디어 온 한설(寒雪)의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다. 대청봉 일대 바위들 위로 관목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아 가엾은 나무들! 이 열악한 환경, 바위틈과 기후 속에서도 그렇듯 생명을 지켜 왔단 말인가? 정상 부근은 큰 바위들이 우뚝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바위도 풍상(風霜)의 세월을 말해 주는 듯 금이 나 있고, 그 틈새로 작은 소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저 소나무가 자라면 바위의 금간 부분이 떨어져 내릴까? 아니면 소나무는 생존만 하고 더 자라지는 못해서 바위가 지나 온 세월만큼 함께 지낼 수 있을까? 정상 바로 아래는 많은 부서진 바윗돌들이 소실되지 않도록 얕게 축대 공사가 되어 있었다.
대청봉!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결국은 해냈다. 햇빛은 여전히 화창한데 저 산 아래로부터 정상으로 구름이 흘러 지나가고, 우리는 그 흘러가는 구름 사이에 서 있다. 저 아래 끝없이 이어진 산과 산, 계곡과 계곡, 구름에 덮여 있다가 홀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새로운 산과 계곡들… 바람은 더없이 상쾌하고… 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어라! 대청봉 표석(標石) 앞에는 사진을 박는 사람들로 혼잡하다. 우리도 몇 사람 더 오기를 기다려 단체로 사진을 박았다.
이제부터는 하산이다. 우리 일행은 대다수가 중·장년층이어서 내리막길을 더 조심스러워했다. 내리막길은 특히 무릎의 충격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를 가다 보니 선두와 중간과 후미가 또 많이 벌어지게 되었다. 오늘 숙소는 양폭산장. 여기는 전화도 없고 예약도 받지 않는다고 하여 선두는 숙소 예약차 부지런히 앞서갔다.
가파른 길을 한 시간 남짓 내려가서 희운각에 도착했다. 희운각 앞 작은 다리 아래에서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기다리고 있는 우리 대원들. 나도 배낭을 내려놓고 시냇물에 발을 담갔다. 물이 얼음처럼 너무 차서 발이 시리다. 후미가 막 도착하여 냇물에 발을 담그었기 때문에, 서둘지 않아도 될 터이건만, 서둘러 떠나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그저 또 따라갈 뿐이다. 울창한 숲 속, 인체공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높낮이를 맘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돌을 쌓아 만든 층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내리막 길, 여기 무너미고개를 통과하여 결국 오늘 우리의 보금자리 양폭산장에 도착하였다.
도착시간 오후 5시. 오늘 산행 10시간 완료. 일찍 도착한 대원들이 저쪽에서 시장기를 달래느라 라면을 끓여 나누고 있다. 배낭을 숙소에 갖다 놓고 함께 저녁 준비를 하였다. 몸은 종일 흘린 땀과 피로로 녹아내릴 듯한데 그래도 식사시간은 여전히 활기에 넘친다. 된장찌개를 제주도 감자와 매운 풋고추를 넣어 얼큰하게 끓여 먹으니 다시 땀이 확 나면서 피로가 확 풀리는 듯하다. 우리 2조의 대머리 김영재 선생님이 어제 서울에서 출발할 때 차량들로 너무 길이 막혀 수렴동 숙소까지 오지 못하고, 오늘 지금 설악동에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내일은 혼잡한 귀경길을 피해 출발 시간을 30분 앞당긴다는 발표다. 그렇담 내일 아침은 몹시 바쁠 터이니 라면食으로 때우기로 하고, 깨끗하게 남은 새 반찬들을 산장 매점에 드렸다.
양폭산장 속소 내부는 3층으로 되었는데, 오늘밤 대피객들이 많지 않은 편이어서 우리 산악회가 한쪽 독채를 다 사용했다. 맨 아래 칸은 여자들, 위 두 칸은 남자들, 여자들이 3층을 사용하는 것이 편하지 않겠느냐는 남자들의 권고를 따라 여자들에게 물었더니, 2층 올라갈 기운도 없단다. 모두 힘들어서 빨리 씻고 자고 싶어했다. 남자들은 모여서 막걸리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하고 있었다. 무슨 모의들을 하나 가보니 별 위험한 내용은 아닌 듯 그저 서로 정담을 나누고 있었더라. 어둑해져서 앞의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하니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자리를 일어선다. 아! 남자들은 좋겠다. 여자들은 아마 겨우 세수만 하고 잠자리에 들었을걸? 밤엔 약간 추웠다. 중간에 잠깐 깨었다 다시 잠이 들기도 하고.
<제3일> 아침해가 채 밝기도 전 아직 어둑한데 부스럭 소리에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그런데 벌써 배낭을 정리하는 소리. 밖으로 나가는 소리. 산악인들이 부지런한 건 못 말린다. 모든 조가 일찍 서둘러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예정대로 6시 30분 출발.
조금 걷자니 습기찬 여름 날씨 어디 갈까? 벌써 또 땀에 옷이 젖기 시작한다. 한 30분 내려왔을까? 선두 팀이 냇가 반석 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냇물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철사다리길을 내려와 뒤돌아서서 올려다보니 바로 눈앞에 펼쳐진 깎아지른 듯한 큰 바위 벽. 하늘벽이란다. 다시 또 계곡 물줄기를 따라 한 30분쯤을 내려왔는가, 크고 괴이하게 생긴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이것은 귀신의 얼굴을 닮았다 하여 귀면암. 선두가 계속 발길을 재촉하니 부지런히 뒤따라갈 수밖에. 이제는 이 좋은 경치를 제대로 감상도 못하고, 버리고 가야 하는 아쉬움에 뒤를 돌아다보면, 치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계곡을 따라 줄을 서 있는데…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이별하는 것이 정한 이치이거늘, 안타까워함은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 다는 뜻인가? 여기가 천불동계곡. 잘 있거라. 후일에 또 볼 날 있겠지?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다리를 건너서 건너편 산길로 접어들려는데 갑자기 바위 뒤에서 몰래카메라가! 아이고! 영재선생님이 여기서 기다렸군요. 우리는 모두 반가워하며 순간 포즈를 잡았다. 조금 내려가다가 다 함께 냇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쉬고 있는데, 박일영 선생님 무슨 생각으로 물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다가 미끄러졌다. 이왕 버린 몸. 에라 내친 김에 아주 물 속으로 풍덩 들어가더니 우리보고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아주 시원하다고. 그런 줄은 알지만서도~. 아무도~. 큰 바위에 모여서 다 함께 사진을 박고, 비디오도 찍었다.
계곡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선두가 비선대 희게 빛나는 넓은 암반 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기암절벽 가운데 한 장의 넓은 바위가 못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누워 주변 경관을 감상하던 마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비선대라고 부른다 한다. 좌우를 둘러보니 북쪽으로 큰 봉우리 세개가 보이는데 계곡 쪽에서 미륵봉(일명 장군봉), 형제봉, 선녀봉이 보이며, 미륵봉 등허리 쪽으로 금강굴이 보인다. 이곳에서 천불동계곡을 지나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코스와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갈린다. 비선대 휴게소에서 시원한 막걸리와 아이스 바로 목을 축이고 또 하산을 계속했다.
설악동에 도착하여 마지막 단체 사진을 또 박고, 미리 와서 대기중인 관광버스를 타고 척산온천으로 향했다. 몸은 젖은 솜처럼 피곤한데…, 뜨거운 온천물에 피로를 풀고, 뽀송히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하늘로 날아 올라갈 듯. 점심식사를 서로가 모두 원조라고 우기는 유명한 미시령 할머니 순두부찌개로 맛있게 먹고 12시30분 서울로 출발.
이번 산행에서 우리 대원들이 보여 준 놀라운 모습. 통일된 행동력으로 계획된 일정을 차질 없이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한 명의 가벼운 부상자도 없이, 오히려 목표치 초과 달성이라는 위업을 이룩했다는 사실. 다 함께 박수로 치하합시다. 설악산의 비경을 가슴 깊이 새기며…
첫댓글 홈피 관리자님! 편집을 예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다시 보니 참 자세히도 기록했다 싶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역시 기록을 남겨 놓는 일이 필요하구나 새삼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