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일상이 곧 관광지-중국의 남쪽 운남성

[이노랠빌려서]

홍등의 물결, 동양의 베네치아 리장

좁은 골목길 사이로 운하가 잔잔히 흐르는 리장은 베네치아를 닮았다. 오늘날 리장은 중국 전역에서 가장 로맨틱한 밤공기를 마실 수 있는 홍등 거리를 가지고 있다. 아늑한 동양적 옛 고을의 넉넉한 풍수를 지닌 리장에서 홍등 가득한 운하 주변을 걸으며 황홀한 밤기운을 맞이해보자.

ⓒmarie claire 글/김후영(여행가) Photographed by KIM HOO YOUNG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중국의 첫 번째 여행지는 상하이나 베이징이 아닌 운남성(云南省)이었다. 운남성은 동남아와 접경해 있을 정도로 중국 대륙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연중 마일드한 기후로 여행자들에게 겨울철 피한지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운남성은 지형적으로 다양한 경관을 나타내는데, 남쪽의 시샹반나 지방을 중심으로 한 열대 우림 지대를 비롯하여 북쪽의 만년설로 뒤덮인 티베트 고원까지 다양한 지형이 펼쳐져 있다.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어 문화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것이 운남성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 소수 민족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이곳 운남성에 거주하고 있다.
바이족, 나시족, 푸미족, 먀오족, 이족, 장족 등 수많은 서로 다른 소수 민족들이 그들만의 고유한 색채를 풍기며 서로 뒤엉켜 살아가고 있다.

중국 고전 멜로 영화의 감상적인 무대
운남성의 주도인 쿤밍과 삼탑사로 유명한 다리(大理)를 거쳐 리장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다리에서 작은 미니 버스를 타고 세시간 달려 도착한 리장의 시내 모습은 그다지 감동스럽지 못했다. 리장의 신시가는 중국 대부분의 중소 도시들처럼 눈부신 경제 성장을 반영하고 싶어 안달하는 중국 관료들의 몽환적 이상을 담은 고층 건물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는 것으로 대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시가의 버스 터미널을 나오자 자신의 민박집을 안내하려는 소위 ‘삐끼들(이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다)’이 타지에서 온 여행자들을 알아보고 접근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게스트 하우스의 사진들을 보여주고는 가격을 제시했다. 다리나 쿤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구시가에 숙소를 얻기 위해 이들 중 한 명을 따라나섰다.
구시가에 들어서자 여행자들이 지향하는 이상형의 실체가 또렷이 떠올랐다. 왜 그렇게 많은 여행자들이 리장에 오고 싶어 안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중국 고전 멜로 영화의 감상적인 무대가 될 법한 눈부신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잘 깔려진 포석길과 그 양 옆으로 잘 보존된 채 자리 잡고 있는 오랜 양식의 목조 건물들은 전형적인 동양의 옛 고을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구시가의 주택가에 몰려 있는 게스트 하우스는 전통 가옥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2층 가옥이었다.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정겹게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 좋았다. 여행이란 관광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이 더 귀할 때가 있는 법인데, 리장의 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그러한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여장을 풀고 가지고 온 라면으로 간단히 허기를 때운 뒤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같은 구시가이지만 관광 중심지로 들어서려면 오밀조밀한 골목길을 따라 수로 위의 돌다리를 몇 개 건너가야만 했다. 좁은 운하 위에 흐르는 담수가 아담하게 놓인 석교 아래로 흐르는 모습이 매우 운치를 자아냈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바라보는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시팡지에에서 만난 나시족의 전통문화
구시가의 중심가에 가보니 시팡지에(四方街)라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너댓 개의 작은 골목길이 방사선 모양으로 퍼져 있었는데, 각 골목에는 크고 작은 상점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가게, 귀금속 가게, 의류 가게, 특산품 가게 등이었는데, 질서 있게 정렬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리장에 며칠 머물면서 시팡지에 광장 주변의 골목들을 자주 찾게 되었다. 이러한 골목 사이에는 숨겨진 작은 아트 갤러리나 공방을 찾아다니는 기쁨이 숨겨져 있었다.
공방이나 갤러리에서는 이곳 소수 민족인 나시족들의 전통문화와 예술적 의지를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그들의 공예품에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조각가의 칼끝이 서려 있었다. 동바 문자라는 알 수 없는 고유의 문자가 해독하기 힘든 상징 체계의 모습으로 나시족들이 만든 종이나 장신구, 도장 등에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리장은 소수 민족인 나시족들의 본고장이자 중심지이다.
약 30만 명의 인구를 지닌 나시족들은 운남성과 사천성(四川省) 주변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조상은 이 지방으로 이주해온 티베트의 유목민들이며 최근까지 모계 중심의 사회를 이루어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나이 많은 여자들이 집안의 재산을 상속 받으며 집안의 결정권 또한 이들에게 있었다고 한다. 나시족 여인들은 오늘날까지 그들의 전통문화를 고수하며 파란색 상의를 입고 검은색 앞치마를 착용하는데 이곳 리장의 구시가에서도 가끔씩 그러한 복장을 입고 걸어가는 노인네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리장이 특별한 것은 한마디로 구시가에 잔잔히 흐르는 운하와 밤마다 수로를 붉게 물들이는 홍등의 행렬 때문이다

시팡지에 주변의 즐거움은 저녁놀이 지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둠이 밀려들면서 집집마다 가게마다 수놓아져 있는 붉은 홍등(紅燈)에 점점이 불이 들어온다. 그러면 거리는 마치 불타오르는 화염으로 휩싸인 것 같은 모습이 된다. 그 거리 위로 활보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붉은색 번짐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리장이 베네치아를 닮은 이유는 곳곳마다 작은 운하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위가 낮고 폭이 좁아 배가 다닐 길은 되지 못한다. 저녁이면 이 운하 위에 종이로 된 연꽃을 띄운다. 물 흐르는 듯한 리듬과 영롱한 빛깔들이 띄워 보내는 자들의 감성을 노크한다. 연인들은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아내는 자식과 남편의 건강과 축복을 위해, 여행자들은 앞으로의 남은 일정의 안전을 위해 연꽃을 띄워 보낸다. 연꽃 위에는 작은 촛불이 얹어 있어 띄우는 자에게는 촛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흘러가기를 바라는 염원도 담겨 있다.
운하 주변은 카페촌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운하 주변을 걷다 보면 진한 커피향과 풀내 섞인 전통차의 향내가 교묘히 섞여 은은하게 퍼져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카페촌의 밤 분위기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현란한 모습을 자아낸다. 가게마다 수놓은 화려한 홍등 장식과 행인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있기에 밤거리 문화는 더욱 빛을 발한다. 미각의 향연이 펼쳐지는 이곳 레스토랑들의 음식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차이니스, 웨스턴, 이탈리안 등 메뉴도 다양하고 음식 맛도 일품이다.
카페나 레스토랑의 내부 역시 화려한 색상의 등불들로 장식되어 판타지의 무대를 연상시킬 만큼 조명과 장식이 요란하다. 문화적 욕구들이 꿈틀거릴 때면 DVD 영화를 상영하는 카페를 찾아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커피나 차를 마시며 감상하면 된다. PC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곳들도 많고, 다양한 외국 잡지나 영문 서적, 영자 신문 등을 구비해 놓은 곳들도 있어 여행자들이 넉넉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준다.

소박한 추억거리인 나시족의 춤판
리장에 머물면서 얻은 소중한 추억거리 하나는 바로 시팡지에 광장에서 매일 저녁마다 펼쳐지는 나시족들의 민속 무용을 구경하고 같이 어울렸던 일이다.
이것은 특별 공연이라기보다는 시골 장터의 흥겨운 춤판처럼 소박한 놀이마당이었다.
밤하늘을 가르는 신선한 공기는 마음을 진정시켰고 흥이 절로 나는 이 소박한 춤판에 끼어들면 억눌렸던 엔도르핀이 분수처럼 샘솟는 듯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구경꾼들은 모두 다 어느새 춤판에 참여하여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색한 몸놀림의 피부색 하얀 외국인들도 춤판에 가담하여 부담 없이 손을 맞잡고 서로 어울렸다.
리장 구시가에서 벗어나 북쪽 끝에 위치한 흑룡담 공원(헤이롱탄 공관)은 운남성이나 리장 안내 브로슈어에 언제나 단골 사진으로 등장하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며칠간 함께 머물렀던 일본인 친구가 흑룡담 공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로 나를 안내했다. 언덕 위에 오르니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정자(亭子) 주위를 맴돌며 호수 위를 떠다니는 나룻배의 유유자적한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 풍경으로 마음속에 다가왔다. 또한 이곳에서는 시가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었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구시가의 옛 기와집들 지붕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장관을 한눈에 바라보니 밤에 느꼈던 색감이 풍부한 도시의 색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원색이 아닌 약간 빛이 바랜 색채의 도시만을 보여주었다.
리장은 에메랄드 물빛이 빛나는 새하얀 고급 리조트는 아니지만 주저 없이 며칠간 아무 생각 없이 푹 쉬었다 올 수 있는 곳이었다. 아늑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공간을 제공하는 이곳은 자신만의 쉼터를 조심스레 찾고 있던 이들이 가보면 기뻐할 만한, 꼭 추천해주고 싶은 반짝이는 예쁜 타운이다. 어느 여행자의 말처럼 이곳에서의 즐거운, 자신만의 시간을 위해서라면 여행지의 이면에 담겨 있는 거창한 깨달음이나 진리를 얻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느긋함을 즐기는 많은 여행자들이 리장에 일단 들어오면 자신들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훨씬 오랫동안 시간을 지체하다 떠난다.
어느 한 한국 유학생은 리장을 ‘늪’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번 머물기 시작하면 떠나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만큼 리장은 여행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문화적 매력과 값싼 물가, 다양한 음식과 쇼핑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리장에 들어오기는 쉬워도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이곳을 떠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여행정보
-가는 방법 대한항공은 인천과 쿤밍 사이를 매주 2회씩(월·금) 정기적으로 운항한다. 할인 요금은 시즌에 따라 60만원 안팎. 쿤밍에서 리장은 야간 버스로 열두시간 정도 소요되며(다리 경유) 매일 여러 편의 비행기가 운항하고 있다. 다리에서 리장은 버스로 3시간 거리이다.
-기후 운남성 일대는 가을철, 겨울철, 이른 봄철에 중국서 가장 따뜻한 기후를 자랑한다. 하지만 리장은 高地에 위치해 있어 겨울에는 따뜻한 옷을 준비해야 한다. 초봄에는 낮과 밤 사이의 일교차가 심하다. 추운 겨울(12~2월) 피한지로 방문해도 손색이 없으며 꽃나무들이 개화하는 3, 4월이나 화창한 날씨의 5, 6월도 좋다.
-숙소 구시가에 위치한 대부분 민박집들의 도미토리 룸은 1박에 Y15~Y20 정도이다. 싱글, 더블 룸일 경우 Y30~Y60 정도. 추천 호텔은 다음과 같다.
관팡 호텔(Guanfang Hotel) 리장에서 규모가 가장 큰 별 5개의 특급호텔로, 모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구시가에서 3km 떨어져 있으며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더블 룸 미화 $68부터. 스위트 룸은 미화 $400 정도.
주소 : Shangri-La Road, Lijiang 674100 전화 : 518-8888
아단게 호텔(Adange Hotel) 리장의 상업 지구에 위치하여 도시의 어느 방향으로도 접근이 용이하다. 별 4개 등급의 호텔로 구시가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이다. 모든 룸에는 에어컨,냉장고, 전화, 금고 등이 마련되어 있다. 싱글 룸, 더블 룸 모두 미화 $46(Y380) 주소 : Middle-Snow Mountain Road, Lijiang 674100, Yunnan, China 전화 : 516-6666
-레스토랑 리장의 유일한 한국 식당으로는 사쿠라 카페(Sakura Cafe)가 있다. 다른 한국 식당들과는 달리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인기 있다. 한국 음식뿐 아니라 중식, 일식, 서양식을 맛볼 수 있는데, 한국 음식 중에는 돌솥비빕밤(20Y)이 맛있다. 인터넷 한글자판이 깔려 있고 여행 책자나 한국 서적이 구비되어 있으며 시팡지에 광장에서 운하를 따라 북쪽으로 형성된 카페촌 골목의 세 번째 집으로 찾기 용이하다.
또 하나의 추천 레스토랑은 사쿠라 카페 옆에 위치한 나시 레스토랑(Naxi Restaurant)으로, 나시족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운하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면서 Fried bamboo, Fried Yak Meat와 같은 별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스태프들은 전통 나시족 의상을 입고 있다. 한 끼 식사는 Y50~Y70 정도.
-주의사항
·리장은 관광지이지만 치안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여성 여행자인 경우 밤 골목을 혼자 다니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리장의 기념품이나 공예품 상점에서 물건 구입시 외국인에게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경향이 있으므로 어떤 물건들의 경우에는 가격 흥정에서 그들이 제시한 금액의 50퍼센트이상을 깎을 필요가 있다.
-비자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인 경우 홍콩을 제외한 중국 방문시에는 중국 비자가 필요한데 관광 비자의 경우 30일 체류 비자(발급 후 90일간 유효), 90일 체류 비자 등이 있으며 여행사를 통해 비자(30일짜리 경우)를 신청할 경우 비자 fee는 대행료를 포함해 3만5천원 정도이다.
-환율 중국 화페 단위는 위안이며(CNY) Y1=150원 정도이다.
-전화 국제 전화 사용시 일반 전화국에 갈 필요 없이 전화 모양이 그려진 표지판이 붙어 있는 가게에 들어가 일반 전화를 사용한다. 한국으로 콜렉트 콜을 걸 경우 전화 비용은 매우 저렴하다. 리장 구시가의 지역 번호 0888번, 신시가 지역 번호 08891번, 중국 국가 번호 86번.
-이벤트 해마다 음력 3월 13일(3월 말~4월 초)에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가 벌어진다. 매년 7월에도 구시가 중심에서 횃불 행렬이 펼쳐지는 후오바 지에 축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