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산 은 행 소 식지역문인 수필릴레이세모歲暮의밤
한밤, 근처 할인점에 들렀다.벌써 설 선물 세트가 주인을 기다리며 곳곳에 성처럼 쌓여 있다. 설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 곳이 아린 느낌이 든다. 수 없이 설을 맞이하고 쇠어왔는데 아직도 설 앞에 서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옛날 고향에서는 이맘때쯤 설맞이 준비로 한창 바빴다. 그 가운데 잊히지 않는 것은 집안 천장까지 묻은 그을음을 털어내고 이불 홑청 빨아 풀 먹이고 정지에 있는 그릇들을 다 씻은 후 마지막으로 놋그릇 닦는 일이었다. 둘둘 뭉친 짚으로 재를 묻혀가며 윤이 나도록 빡빡 닦았다. 얼굴 뒤로 마당 끝에 선 감나무까지 훤히 비치던 놋그릇. 지금은 그을음도 풀 먹일 이불 홑청도 닦아야 할 놋그릇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다만 그때의 풍경만이 가슴에 담겨있어 추억할 따름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의미의 설은 낯설음의 시간이다. 아직 다 보내지 못한 옛것에 대한 미련과 익숙하지 못한 새것에 대한 낯섬이 공존하는 시간.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설날에 고향을 찾아 설빔을 입고 세찬을 즐겨 먹으며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는 일로 바쁘게 보낸다.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버려두고 오로지 설날을 위한 제삼의 시간으로 채울 뿐이다. 이번 설날에도 틈이 없을 것 같아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의식의 시간을 미리 가져 보기로 마음다진다. 몇 년을 미루어 온 일이라 단단히 벼르고 시작해 볼 참이다. 손지갑 안에는 표지 없는 작은 수첩 하나가 있다. 언제라도 생각나면 연락해 볼 요량으로 얇은 종이를 묶어 깨알 같은 글씨로 채워 지갑 안에 넣고 다닌다. 이십 년 가까이 나와 함께한 까닭에 손때 묻고 닳아 몇 번의 수술 자국이 있는 수첩이다. 이 작은 수첩 안에는 나의 소중한 연緣들로 채워져 있다. 몇 번이고 새 것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본디 부지런하지 못하고 마음과 행동을 일치시키는데 오래 걸리는 굼뜬 성격 탓과 한 번 내 것은 끝장을 볼 때까지 쓰는 고집이 맞물려 많은 시간을 넘어온 셈이다. 굳이 또 하나의 이유를 더 붙인다면 아마 두려움이라 하겠다. 첫 장을 열어본다. 혹여나 발생할 비상사태에 대비한 수첩 주인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먼저 띈다. 소심하고 잔걱정 많은 사람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증조부의 기일을 비롯하여 여러 기일과 생일들이 반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 갓 결혼해서 만든 수첩임이 드러난다. 그 아래로 자동차보험회사 전화번호와 알지 못할 비밀 숫자 조합들이 늘어서 있다. 아무리 봐도 무슨 암호인지 몰라 세심하지 못하고 소심하기만 한 성격이 티를 낸다. 아마 오늘 밤은 새지 싶다. 두 번째 쪽에는 가족 친지들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차지하고 있다. 이름보다는 호칭으로 쓰인 게 더 많다. 이제는 보지 않아도 떠오르는 번호들이지만 갑작스런 변고나 훗날 가물가물해질 기억을 염려한 까닭일 게다. 다음 장을 열어본다.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둘선 미희 이영 삼숙 선자 미숙 정숙 막순……. 하나하나 얼굴이 그려진다. 한때는 매일 연락했던 선, 가끔 만나도 늘 만난 사이 같던 희,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도 잊히지 않은 영. 형편이 안 좋아 시댁으로 들어갔다는 숙. 아이가 아파 늘 근심이 끊어지지 않다던 자야. 친구들이 한없이 그리운 밤이다. 언젠가 숙의 전화를 받았다. 부유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집안사정으로 고향을 떠나 지금은 빈집만 휑하니 남아있어 가슴을 아리게 하던 친구다. 수필지에 실린 태작馱作‘이랑과 고랑’을 읽어 보았다며 울먹울먹 거렸다. 나도 울었다. 아마 영원히 지우지 못할 이름들이다. 창문 새로 스며드는 한기에 몸을 떨며 잠시 눈을 감는다.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고향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 설날 새벽에 듣던 그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스르륵스르륵 여인들의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 토박토박 코신 딛는 소리, 웅성웅성 여명을 뚫는 소리. 한 손에 정성껏 마련한 세찬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가슴까지 끌어안으며 두루마기 입은 남자들의 뒤를 졸졸 따라 세배 가는 익숙했던 모습이 어느새 낯선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리움을 너머와 수첩의 또 한 페이지를 넘긴다. 옛 직장 동료의 이름이 채워져 있다. 이십 년 가까이 한 직장에 머물며 부대껴 온 사람들이다. 서툴러 헤맸던 날들, 바빠서 허덕이던 날들, 정들자 이별하는 아쉬움의 날들, 친자매처럼 아껴주며 지냈던 선배 동기 후배 이름 하나하나 위로 어제 일같이 지나간다. 내 젊음을 고스란히 풀어낸 삶터에서 남은 사람이 고작 작은 수첩 한 페이지밖에 채워지지 않다니 그리움과 아쉬움이 점철되어 밀려온다. 맨 마지막에는 이름 뒤에 또 한 이름이 따라붙어 나온다. 직장을 그만두고 만났던 이웃이나 학교 어머니회에 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어떤 이름은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수첩은 미완성 상태에서 일시 정지로 되어 있다. 이제 새로운 수첩에 옮겨야 할 순서다. 그동안 한 번도 전화 한 적 없는 친구, 어디서 어떻게사는지 모르는 옛동료,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사람……. 내 이름 석 자는 과연 몇 명의 수첩에 적혀있을까. 그들은 수첩을 정리하면서 내 이름을 새로이 옮겨줄까. 내가 그들을 지우고 잊듯 그들도 내 이름을 지우며 잊을 테지. 좀 더 부지런히 살아 볼걸. 누구도 지워내지 않은 채 그대로 옮겨둔다. 그래도 이미 먼 세계로 떠나 연락할 길 없는 이름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 온다. 차마 다 지우지 못하고 빈 번호 앞에다 이름만 남겨둔다. 그동안 수첩 정리를 미루고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시간이 두려워서인지 모른다. 요즘은 수첩에다 전화번호를 기록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바로바로 저장하고 나서 언제라도 불러오기만 하면 연결이 되는 아주 편리한 세상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알게 된 사람들이 수첩에 빠져있다. 휴대전화기에 저장된 번호들을 수첩에다 옮길 참이다. 수첩에 적어놓으면 가끔 넘겨보며 이름이라도 훑어보지만 기계에 저장되고 나면 애써 불러오지 않으면 그냥 묻히고 마는 경우가 생긴다. 새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다. 올 설맞이는 의미가 깊다. 저물어 가는 한 해에 기대어 옛 시간을 뒤돌아보지 않았는가. 내년 이맘때도 오늘같은 시간을 갖고 싶다. 내가 오늘 추억해 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내 이름이 간직되어 있기를 바라는 욕심까지 부려본다. 날이 밝으면 오랫동안 소식 보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 겸 전화라도 넣어 봐야겠다. 할인점에서 얻어 온 선물세트 안내장을 펼쳐든다. 세찬은 이미 세속의 욕심이 베인 선물꾸러미로 변했다. 나 또한 지금 그것을 앞에 두고 있다. 올 설에는 주머니가 한층 가벼워질 것 같다. 들어낸 주머니 무게만큼 가슴이 채워지는 설이 되고 싶다.
<조영희 수필가>는 2005『수필세계』로 등단하였으며 부산문인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부경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