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1989년은
5억만년 전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해당하는 때와 같다.
입학식이던 3월 2일
3월의 해는 그리 따갑지 않았다.
대기 중의 얼음 알갱이를 뚫고 나오면서 냉각되고 있었다.
찬바람이 은근히 불어오며
버스는 나를 돌하르방이 우뚝 서 있는 교문에 내려줬다.
수 많은 입학동기들이 내렸다.
작년까지 우리학교 입학정원이 1,800 명이었는데
우리과가 부활하면서 40 명이 늘었다.
교문을 지나면서
이제는 아버님의 후배가 됐다는 생각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비록 그는 용담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하셨지만.
그런데 문득 눈에 들어 온 건
"수의학과 입학을 축하합니다 쇠막회 일동" 플래카드였다.
쇠막이 뭐지? 나중에 안 건 외양간의 제주어였다.
나중에
우리선배들이 오리엔탈호텔에서 입학축하파티를 열어주셨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후배입학 축하를 플래카드와 호텔파티를 열어줬다는 기사를 봐본적이 없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호텔에서 우리를 안내해 주신 분은 김재호원장님으로 선명하게 기억된다.
안희숙 학우
얼굴에 온통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났다. 장미빛 캠퍼스 라이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혹시 저 사람이 조폭이면 어쩌지?'
몹시 겁이 났다.
전날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이 망가진 거라 했다.
포니2 픽업을 샀다.
자가용족은 안희숙-고덕호-양재혁으로 이어진다.
도시의 무법자 - 고덕호.
5월 - 눈부시게 푸르른 캠퍼스의 잔디
축제를 처음보고
이승철의 [안녕이라 말하지마]가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었다.
까만색 액셀 유니폼
1번 권기윤 삼춘이 한다는 체육사에서 단체로 맞췄다.
양기천 교수님께서 매우 기뻐하셨다.
체육대회 때 우리의 입장모습을 보면서.
여름방학
학생운동축전으로 임수경씨가 평양에 갔다.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있었다.
교과서로만 배운 북한보습이 실제로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누구는 북한을 원더우먼이 타고다니는 유리비행기로 촬영한다고 했다.
그럴것이다. 그 폐쇄된 곳을 생생한 화면으로 볼 수 있으니.
동아리로 아마추어무선국 활동을 했다.
우도로 처음 놀러가고 거기서 2박3일간 세계사람들과 무전으로 이야기를 했다.
거긴 모래를 우도 밖으로 를 가지고 올수없다한다.
한 여자 동기가 몰래 가지고 나왔다.
이쁜 산호 왕모래를.
달라고 하니 안준단다.
내가 '20년 후에 학교 정문에서 만나서 줄래?'
그 여자애 '응'
20년이 지난 2009년에
약속장소에 갔지만 바람만 맞았다.
'아니 이 x이l!!'
가을
수원에 있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전국수의학도축전에 김의령학우와 듀엣으로 공연했다. 서로 기타치고 보컬을 교대로 했는데
[축가]를 불렀고 한 곡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디에 선들 어떠랴 어디에 선들 어떠랴 .....'
소농축전에 과대표로 나가서 김원중의 바위섬을 불렀다.
당시 반주는 나중에 가수가 된 앤틀러의 멤버였던 [진시몬]씨가 했다. 그는 우리학교 법학과 89학번이다.
사회는 경제학과에 다니고 나중에 제주MBC 아나운서로 활약했던 [권대정]씨가 맏았다. 당씨 꽤 빼빼 말랐었다.
비록 상은 못받았지만 열열한(?) 박수만 받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내 눈을 의심했다.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겨울
여전히 캠퍼스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삼춘이 작시한 옴팡밭 옆 '사슴상'이 고즈넉했다.
그해에
노벨문학상 수상작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샤무엘 베게트가 사망하였다.
그 때 그 소설을 알았고, 그 때도, 지금도 읽고 있으나 아직 완전히 이해되진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는 작품이란 걸 그때 알았다.
또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역시 아직도 읽고 있는데 더 난해하다.
1989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당시 단 2분의 교수님이 계셨다.
김승호, 양기천교수님
이젠 그 두 분을 더이상 볼수가 없다.
제주대학교 수의학과 Organized 1954
* 항상 사랑하며 살아가요
첫댓글
^-^ ..., 그땐 그랬지
기억력도 좋다.
김승호, 양기천교수님
이젠 그 두 분을 더이상 볼수가 없다.
교수님 사랑합니다.
양재혁 이 사람 글 꾼이로고나.
손이 근질 근질했을 텐데 우째 잘 참았구나.
자주 글 솜씨 뽐 내시게나.
놀랍다.
김재호선배님! 학창시절 이야기 올려주세요. 궁금합니다.
그 때 그 시절엔 술 술 술.
향토 장학금 나올 즈음
요정 집에서 정종에 안줏상 차려
색씨 끼고 허세 부리고
돈 떨어 지면 포장 마차에서
닭 대가리 안주에 막걸리
흥얼 흥얼...
비틀 비틀...
옛 생각 많이 나네요.
언젠가 그떄 그시절 애기할떄가 또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