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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가을 그리고 봉정암
설악산(1708m) 강원도 속초시, 인제군 북면, 양양군 서면, 고성군
일시: 2006월 10월 8일, 9일 (1박2일)
인원: 황 태석 부부, 이 수철 부부.
누가 설악의 단풍을 모를까. 조금이라도 산에 관심이 있는, 아니 TV에서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가을만 되면, 그리고 첫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설악을 보여주는 게 공식화 되어있다. 화면 가득히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대청봉과 손을 흔들고 있는 등산객들을 보여주며 설악의 단풍 절정기를 알려주지만,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발 딛을 곳도 여의치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오히려 절정기를 피해 늦은 가을에 설악을 오르곤 했었다.
그러나 올 해에는 추석 연휴가 주 5일제와 개천절이 연이어 있어 일부 회사들은 9일 동안 휴가 아닌 휴가를 즐기는 기현상이 생기면서 설악 최절정기의 단풍을 인파에 부대끼지 않고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추석연휴가 끝나는 일요일인 8일 새벽에 서울을 출발하여 설악에 오르면 다른 등산객들은 긴 추석연휴를 즐기고 귀가할 때 우리는 9일 월요일까지 1박2일의 설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청에서 속초 앞 바다를 바라 본다. 안개로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이 제안은 황태석씨 부부와 10월 3일 개천절에 강화도 마니산에 올랐을 때 태석이가 낸 아주 너무나 매혹적인 유혹이었다. 그러나 와이프가 발목을 다쳐서 수술한 후 2년 반 가량을 높은 산에 가보지 못하고 집 주위의 낮은 산이나 남한산성, 청계산 같은 육산을 올라가 본 게 고작인데, 설악산 같은 험한 산을 더구나 오르막이 심한 오색 코스를 탄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오기 힘든 이 기회를 무리를 해서라도 살리기로 합의하고 8일 잠실에서 새벽 6시에 만나기로 하였다.
홍천을 지나 집에서 준비해온 주먹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3시간을 달려 설악산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자 두려움과 설렘으로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오색에서 대청으로 가는 길은 거의가 계단 길이다.
옥녀탕 휴게소를 지나가면서 이번 여름의 수해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글자 그대로 쑥대밭이 된 휴게소는 아직도 그때의 참화를 보여주고 있는 듯, 휴게소 건물은 다 부셔져 형체만 남아있고 흙투성이 자판기와 냉장고 들이 마당에 그대로 버려져있다. 계곡 중간에는 흙더미와 통째로 뽑혀진 나무, 그리고 뒤집힌 바위들이 군데군데 뒤엉겨 있다. 아직도 수해 복구 사업이 진행 중이어서 중장비 들이 여기저기서 작업하고 있다. TV에서 만 보던 참화 현장을 직접 목격하니 너무도 황량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붉은 색 광명단을 칠한 철제 다리들이 무참히 구겨져서 쓰레기 더미와 함께 길가에 방치되어 있는 한계령 고갯길엔 단풍철을 만나 줄지어선 관광객들의 자동차가 북적일 줄 알았는데 쓸쓸하고 한적한 모습이다. 그래도 단풍객을 유치하기위해 복구를 서둘러온 듯 한계령 임시 개통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이 걸 언제 다 복구하고, 폭우 속에서 수해 민들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 것이며 이번 겨울을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즐거움도 멀리 날아가 버린다. 오색으로 가는 길에 설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자랑하던 남설악의 주전골과 흘림골은 어디가 입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망가져 누런 황토의 급경사로 미끄럼틀 같은 모습이었다. 아름답던 계곡 입구들의 끔찍한 현장에 “어어” 하고 입만 벌리고 있다가 오색에 도착했다.
휴식을 취하는 시간은 자동으로 단풍에 취하는 시간이다.
대청봉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9시 반에 매표소를 지나 쉬엄쉬엄 오른다. 하산하는 산 꾼들이 지친 모습으로 다리를 끌고 내려오는 모습도 보인다. 2년 만의 산행이라 조금 늦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올라가는데 와이프가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이제 시작인데 난감해하니 태석이가 무릎 보호대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걸 착용하고 천천히 올라가니 별 무리가 없는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된다. 2시간을 천천히 오르니 설악폭포가 나온다. 대청봉으로 가는 길 중에서 유일하게 물이 있는 곳이고, 이곳이 중간이라 누구나 이곳에서 쉬어가는 곳이다. 우리도 배낭을 내려놓고 커피도 한 잔하며 탁족을 하기로 한다, 맑은 계곡 물에 낙엽이 둥둥 떠내려 와 한편에 모여 있다. 낙엽 속에다 손을 담가 본다. 설악폭포라 해도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폭포 상단이라 폭포수를 보려면 다시 내려가야 하는 모양이다, 그런 안내판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설악 폭포에 오면 반은 오른 것이다. 이제 온 것만큼만 더 가면........
설악을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 가장 재미없는 길이 바로 이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확 트인 전망도 별로 없고 그냥 계속 위로 올라가는 계단 길. 그래도 대청봉으로 직행하는 가장 짧은 길이라서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길이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등산객들은 서울에서 밤늦게 출발해 이 코스를 밤새 올라 대청봉에서 동해 일출을 보며 다음 산행을 시작하는 무박 2일 코스의 대명사격인 길.
이 길을 한 밤에 걸어본 기억이 있다, 십여 년 전 무작정 산에 가고 싶어 배낭 하나를 달랑 들고 동대문 주차장으로 가니 설악으로 가는 안내 산악회 버스가 10여대가 줄서있다. 그중에서 용아장성 코스를 골라 버스에 올랐다. 저녁 10시경에 출발하여 새벽 1시에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고 오색 입구에 도착하니 새벽 2시 반. 버스에서 산악회 명찰을 하나씩 배낭이나 가슴에 붙이고 내리니, 오색 매표소 입구는 10여대의 버스에서 내린 등산객들로 이미 시장터로 변해 있었다. 그 곳에서 대장이라는 사람은 엄숙하게 말한다. "아침 8시에 봉정암에서 봅시다. 그때까지 봉정암에 도착한 사람들은 용아장성을 오를 것이고, 그 후에 온 사람들은 2진으로 구곡담 계곡으로 하산하게 될 것입니다.“ 용아장성을 가기위해 등산객 속에서 기를 쓰고 밤길을 오르다가 이곳 설악폭포에서 잠시 한 숨 쉬기로 했다. 바로 옆에서 우리 산악회 가이드들이 쉬고 있다 산악회 명찰을 보고 ” 힘드시죠. “ 하고 말을 걸어온다. 그 들도 매주 산을 타지만 한 주만 빠지면 자신들도 힘이 든다며 격려해준다. 캄캄한 밤중이라 이곳이 설악 폭포라는 것만 알았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던 곳이다.
멋진 뿌리와 줄기를 가진 나무
다시 길을 재촉한다. 이제 반을 올랐으니 이만큼만 더 오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 솟는다. 이제 어느 정도 올라왔겠지 하며 뒤 돌아보니 점봉산 자락이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단풍은 다 말라버리거나 떨어져 산 아래에서 보던 색깔은 나타나지 않지만 대신 점봉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설악폭포에서 한 시간을 더 올라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었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주먹밥과 빵 그리고 과일로 점심을 대신하고 저녁은 봉정암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준비했었다. 커피도 한 잔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한지 한 시간 출입금지 간판이 붙은 옛 대청 산장이 나타났다, 지금은 폐쇄되어 을씨년스런 시멘트 콘크리트 덩어리로 남아 있지만, 중청봉에 있는 설악산장이 지어 지기 전에는 이 대청산장을 이용했었다. 대청봉의 찬바람을 피해 여기에서 라면을 끓여먹던 기억이 새롭다.
공룡 능선이 꿈틀거리며 이어지고 있다. 마등령은 안개로희미하게 보인다.
대청봉이다. 오후 3시 30분. 오색 매표소에서 5시간 걸렸다. 발목을 다쳐 아직도 아픈 일행과 함께 무사히 오른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설악산을 여기 저기 내려다본다. 설악 정상에 서면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는 뿌듯한 성취감과 쭉쭉 뻗은 장엄한 설악의 암봉들 모습에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드는 것 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서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대청에서 설악을 공부한다. 여기는 공룡 저기는..........
오랜만에 설악을 오르니 너무나 좋다. 여기저기서 주위를 돌아다보며 저기가 공룡, 저쪽은 칠성봉, 그 옆은 화채봉 하며 설악을 처음 오른 동료들에게 설명해주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도 예외가 없다. 그런 행동들은 이곳 설악에선 너무도 자연스럽고 또 사방에 우뚝 솟은 봉우리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다. 조금 아쉽게도 속초 앞 바다와 설악의 진면목이 조금 흐려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냐? 2006년 10월 8일 우리가 설악산 대청봉에 서있다.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2006년 10월 8일. 여기가 바로 설악의 꼭대기 대청봉
이제 하산하자. 봉정암에 저녁 공양 시간 전에 들어가야지 밥이라도 얻어먹지. 중청으로 내려가는 길엔 항상 눈에 확 띄는 게 있다. 하나는 중청 산장이고 또 하난 공룡 알이다. 공룡 알(?) 누가 그런 이름을 붙여 놓았는가. 5,6년 전만 해도 흉물스럽게 철조망으로 둘러쳐놓고 그 철조망에다 붉은 색 페인트로 출입 금지란 팻말과 함께 군대군데 “지뢰조심” 이란 경고판을 붙여 놓았다. 어차피 대청봉을 갈려면 그 옆 을 지나야 하는데, 공연히 가슴을 졸이게 만들곤 하던 공룡 알이다.
설악 산장에서 대청봉으로 가는 길. 하단에 산장 지붕이 보인다.
중청 산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한가하게 쉬는 사람들은 아마 이 곳에서 오늘 밤을 지낼 사람들일 게다. 중청 산장 앞마당에 서면 희운각 산장이 보이고 그 위로 신선암과 연이어 공룡능선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범봉과 천화대 그리고 1275봉, 그리고 천불동 계곡주위의 이름 모를 암봉들을 다시 한 번 감상하고 소청으로 향한다. 소청에 서면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을 볼 수 있다. 글 자 그대로 용의 이빨 같은 바위들이 보이고 조금 더 하산하면서 잘 찾아보면 소청산장과 봉정암도 보이기 시작한다.
대청에서 소청으로 내려가면서
소청으로 내려가면서 우리는 어제 10월7일 연휴의 마지막 날에 봉정암에서 4000명이 밤을 새웠다는 말을 듣고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정암이 크다고 해도 4천 명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가. 그 많은 사람들의 공양은 무슨 수로 해결하였을까? 우리가 예상한 대로 어제 설악은 호되게 몸살을 앓은 모양이다.
소청 산장을 거쳐 5시40분에 봉정암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어간다. 봉정암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잇다. 기도 접수처라고 쓰인 곳에서 우리도 방을 배정 받았다. 절이라 그런지 남녀 숙소는 엄청 떨어져 있다 태석이와 함께 남자들 숙소로 내려와 배낭을 벗고 땀에 찌든 몸을 씻기 위해 세면소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몸을 씻느라 복잡한데, 여자들 세면소엔 물이 안 난다며 바가지를 가지고 쑥 들어오는 여자들도 있다. 오히려 남자들이 더 당황해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남자 숙소 6호실에는 이미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십여 명이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지리산 종주할 때 산장에서 잠자던 것과 비교하면 그런대로 지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 말에 의하면 어제 이 방에서 40여명이 앉아서 잤다고 한다. 오늘은 많이 빠져서 다행인줄 알라고 말한다.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 우리 같이 설악산에 등산 온 사람인 줄 알았는데 기도를 목적으로 온 사람들도 꽤 되는 것 같다. 기도와 등산을 겸해 친구들을 데리고 온 사람도 있다.
저녁 공양시간이다. 한 사람이 자장면 그릇 같은 하얀 대접에 쌀밥을 퍼주면 그 옆에서 미역국을 그 위에 한 국자 부어 준다. 오이김치를 서너 조각 얻어서 적당한 곳에 앉아서 먹으면 저녁 식사 끝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라 그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밥이 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씩만 담았으니 부족한 사람은 한 번 더 먹으라고 친절히 방송도 한다. 태석이와 나는 한 그릇을 더 가져다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먹어도 하루 종일 산행을 해서 그런지 아주 맛있게 먹었다.
저녁 예불은 7시 부터라고 한다. 예불에 참석할까 하고 잠시 생각하다. 저녁 예불은 너무 지루 할 것 같다. 김 선생님만 예불에 참석하고 9시에 다시 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서 누어있자니 그것도 지루하다. 바닥은 전기 판넬을 깔아서 따뜻하다. 앞에 있는 사람들은 매 년 기도하기 위해 올라온다고 한다. 이제 조금 더 날씨가 추워지면 이곳도 사람이 없어 조용하다고 하며 눈이 오기 전에 봉정암에는 최소한의 사람만 남아 겨울을 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산 밑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9시 까지 기다리기도 무료하기고하고 봉정암을 좀 더 구경하기 위해 나왔다. 마침 와이프도 나와 있어 같이 절을 한 바퀴 돌고 사리탑으로 올라가 3배를 올렸다.
우리나라에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모셔 있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이곳 설악산 봉정암과. 오대산의 적멸보궁, 통도사의 금강계단, 태백산의 정암사 수마노탑과 영월 사자산 법흥사의 5곳이다. 이곳에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모셔 져 있는 곳이다. 당연히 부처님이 계신 곳이니 법당에는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상이 없다.
식당 마당에는 커피 자판기가 2대가 있다. 그 옆에는 100원 짜리 동전이 수북이 쌓인 바구니가 있다. 누구나 커피를 뽑아 먹으라고 놔둔 것이다. 보기 드문 광경이다. 이곳이 절이 아니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예불이 점점 길어진다. 스님이 설법하시는 말씀이 마이크를 통해 경내에 울린다. 식당 마당에 앉아 법문을 듣고 있자니 추워온다. 이윽고 예불이 끝나고 김선생님과 다시 사리탑에 올라 예를 드리고 내려오니 MBC에서 봉정암에 오르는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다. 추석 보름달을 배경으로 단풍잎을 찍고 있다. 11일 이후방송 할 것이라 한다. 김 선생님은 철야 기도는 못하지만 내일 아침 일찍 새벽 예불에 참석 할 것이라고 한다. 이제 들어가 내일을 위해 잠을 자 두어야한다.
새벽 예불이 끝나고 아침 공양 시간이 왔다. 출발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식당 마당에 모여 스님의 구령으로 간단한 체조와 스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 나서 공양을 시작한다. 어제와 같은 미역국에다 오이 몇 조각. 그러나 맛은 있다. 봉정암에 계신 스님이 8분 그리고 자원 봉사자 몇 사람이 이 모든 식구들의 식사를 맡아 한다고 한다. 신앙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점심에 먹을 주먹밥까지 챙겨 준다.
하산하는 길은 구곡담 계곡이다.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은 어제 보다 훨씬 멋있는 단풍과 운치를 보여 준다. 가는 길목 곳곳이 이번 수해로 계곡을 건너는 철제 다리가 망가져 임시로 통나무를 묶어서 길을 내 놓은 게 눈에 띈다. 가끔 쓰레기 더미와 흘러 내려온 통 나무들이 계곡에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구곡담의 비경을 속속들이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은 너무도 행복하다.
계곡에 주저앉아 어제와 오늘 아침 부실하게 씻은 것을 보충한다. 다시 세면도 하고 양치도 해본다. 양말도 벗고 발을 계곡 속에 담가 본다. 벌써 발이 시리다. 아침에 절에서 준 주먹밥을 먹는다.
이번 설악산 등산은 최대로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코펠이나 버너를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 이럴 때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단풍의 색깔이 밑으로 내려 갈수록 짙어 진다. 따라서 우리들의 감탄사도 더 커진다.
망가진 등산로에 임시로 가설해 놓은 통나무 길이 더 재미있다. 백담사까지 내려가도 시간이 남으면 속초에서 회라도 사먹고 서울로 갈 계획이었는데 그렇게 까지 시간이 남을 것 같지는 않는다. 이번 홍수로 계곡이 워낙 망가져 어느 정도 내려 왔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시간상 이정도면 거의 왔을 텐데 하고 내려오는데 저 멀리 수렴동 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수렴동 대피소까지 오면 다 하산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피소에 앉아 잠시 쉬다 백담사로 간다. 백담사에 도착하니 입구로 내려가는 버스가 막 도착한다. 작년부터 백담사까지 버스가 온다는 것이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지친 몸으로 하산하여 다시 버스를 타기위해 10리 너머 걸어간다는 것이 참 힘들었었는데 정말 고마운 일이다. 백담사 입구에서 택시를 합승하여 우리 차를 주차시켜놓은 오색까지 갔다. 4만원이 나왔다.
처음에 아픈 발로 어떻게 등산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무사히 마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제는 좀 더 다른 산에도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 설악산을 돌아다본다. 이번 가을 같이 절정기의 단풍철에 이렇게 조용하게 설악을 오를 기회가 또다시 만들어 진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 설악의 단풍에 푹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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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지난번 E-mail로 보내준 산행기를 잘 읽었는데 또 다시 읽게 되니 새스럽다. 정말 좋은 글 문구며, 전개 솜씨가 훌륭하구나. 계속해서 올려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