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초기 영국과 스코틀랜드에는 수렵의 대상이 되는 조류가 풍부하였으며 헌팅은 하나의 스포츠인 동시에 식량을 얻는 현실적인 수단이기도 하였다. 회수견들은 수륙을 불문하고 야조 수렵에 적합한 크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인기를 독점하게 된 것이다.
골든리트리버 사육관리에 관한 가장 완전한 기록은 1835년에서 1890년에 걸쳐 스코틀랜드의 인버네스주에 있는 트위트마우스경의 영지 '쿠이사칸'사냥터 관리인에 의하여 기술한 기록 내용에 따른 것이다.
이 기록장에는 1952년 트위트마우스경의 조카벌이며 역사가인 동시에 수렵가였던 이르체스타의 6대째 백장이 선조가 남겨 놓은 자료를 출판 할 때 '컨트리 라이프'라는 제목으로 발행하게 된 것이다. 이와같은 것은 거기까지 대대로 전해온 이야기를 실증하는 것이 된 것이다.
이것 중에 골든리트리버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6마리의 서커스를 연기하는 러시안 트라카스'라는 유쾌한 이야기가 넓게 알려져 있었다고 하나 그 사실 관계는 확실치가 않다.
골든 리트리버를 육성할 때 워터스파니엘이 이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한 뉴펀들랜드와 아이리쉬 쉐터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속의 회수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사냥꾼들이 원하는 개는 차가운 물에 견디는 개, 수영을 잘하는 개였다. 그리고 야산에서 야조를 쫓을 때 풀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질적으로 건장한 개를 필요로 하였다.
트위트마우스경은 1865년에 부라이튼에서 옐로리트리버인 누즈(지혜라는 뜻)를 구입하게 되었다. 누즈는 그 전까지 치체스터 백작의 번식견이었다고 한다. 1870년경 찍은 사진의 모습은 웨이브가 있는 털을 갖고 약간은 대형의 골든이었다. 대영 박물관에 있는 사진 몇장의 그림에도 이들과 비슷한 개가 그려져 있다. 초상화가들은 그 당시 그곳의 주인과 가족 그리고 개와 함께 있는 것을 그린 것이다.
이 개들은 충실함과 건장한 몸, 오래전부터 그 용기와 지성, 어떠한 상황에서도 잡은 것을 물어 갖고 오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이들은 해안지방에서 사용하고 있던 워터독의 자손들이었다.
'브리티쉬독' 1881년 발간의 저자 타르지에 의하면 트위트워터스파니엘은 흐린 레바색을 하였고 곱슬털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직환모종과 장모종, 귀가 길게 늘어진 개, 그리고 하운드 등의 혼혈 중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털이 적고 앞다리 뒷쪽에 장모가 조금 있을 뿐 뒷다리는 깨끗하며 머리는 원추상이며 입술은 약간 늘어져 있다. 이와 같은 워터스파니엘의 변화 넘치는 계보는 실로 오랜동안에 걸쳐 골든리트리버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으로 결코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
구이사칸 사냥터 책임자의 기록부에는 누즈가 1867년에서 1868년경 벨이라는 이름의 트위트워터스파니엘과 교배시킨 일이 있었다. 벨은 레바색의 개였다. 당시 레바란 브라운이 없는 화운 모래색을 의미하고 있었다. 누즈와 벨은 4마리의 옐로 강아지를 낳게 된 것이다.
이름은 크롯카, 카우스립, 프림로즈, 아다였다. 카우스립은 트위트마우스경의 옐로 리트리버 번식 육성 계획에 중요한 역활을 남기게 된다. 바로 이 암컷은 트위트 워터스파니엘과 교배시켜 거기서 암컷 강아지 한마리를 남기게 되었고 다시 그것을 아다의 자손과 교배시키게 되어 옐로의 자식은 점차적으로 번식 기록부에 기록되고 그 교배 대상견은 아이리쉬 쉐터와 또다른 트위트 워터스파니엘이 있었다. 플랫트하운드도 교배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것으로 '누즈'와 '카우스립'이라는 기초견이 골든리트리버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옐로리트리버와 골든리트리버는 19세기 말경에 영국에서 유명해지게 된다. 1904년에는 필드트라이얼에서 골든리트리버가 처음으로 우승을 장식하게 된 것이다. 골든리트리버는 1908년 영국에서 개최된 크리스탈페레이스쇼에 처음 출진되었고 프렛코트(골든)로서 출진 목록에 기재되었다고 한다.
계속하여 1909년과 1913년에는 별도로(역시 플랫코디느로 구분되었다.) 출진 되었다. 1913년에는 모색에 따라 골든리트리버와 옐로리트리버가 별도로 엔트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떤 열성팬에 의해 골든리트리버클럽 오브 잉글랜드가 결성된 것이다.
그 후, 여행자들이 미국을 방문할 때 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예가 많았기 때문에 1890년대에는 미국과 캐나다에 골든리트리버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골든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영국, 캐나다, 미국의 동서 해안으로 퍼지게 되었다.
1925년 11월 골든리트리버는 AKC에 처음으로 등록되었다. 그 이전에는 이 견종은 털색에 따라 자세히 구분되어 리트리버로서 모든 종류를 등록하였다. 캐나다에서는 1927년 다른 견종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골든은 193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쳐 미국 각지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아메리카 골든리트리버 클럽이 1938년에 결성됨으로써 이 견종이 전람회링에 쇼독으로 출진하게 되었으나 주로 사냥개로 이용되었다.
견주들은 다시 풍부한 야조들의 사냥개로 건강하고 멋진 견종을 번식, 관리하고자 하는 번식자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게 된 것이다. 이들 번식가 들은 쇼링에 자기들이 번식한 애견들을 점차로 데리고 출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에는 진한색계의 개를 좋아하였으나 골든에 가까운 모색에 개들이 몇마리 나타나게 되어 진한색 계통과 함께 엷은색 계통도 다같이 영국 필드트라이얼대회에서 경쟁하게 됨으로써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쇼링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오늘날도 그 영향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함께 뜻있는 골든리트리버 애호가들이 생각하게 된 것은 무었보다도 바란스, 건전성, 바른 분양, 훈련을 잘 할 수 있는 기질 등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1936년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견종표준이 변경되어 밝은색 계통도 진한색 계통과 함께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때때로 밝은색 계통의 개가 쇼링에서 최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으나 미국에서는 그다지 흐린모색의 것은 환영받지 못하고 밝은색 계통이 최우승을 하였을 경우에는 다른 개보다도 필요한 보상요인이 그 개에게서 우선이자를 인정하였을 경우에 한하였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밝은색 계통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필드트라이얼에서도 멀리하게 되었다. 미국과 세계각국의 골든리트리버클럽은 이 견종 유지를 위하여 현재 상당한 주위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날 골든리트리버는 필드트리어얼헌팅, 오비디안용과 인간의 충실한 반려로서 아질리티, 플라잉폴, 프리스비 등을 비롯하여 맹도견으로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포획물 발견과 추적에도 우수한 취각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 즉, 마약 탐사견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977년 7월에 AKC오비디언스 챔피온쉽쇼가 최초로 시행되었는데 바로 그 영광을 차지한 3마리의 개는 모두 골든리트리버였던 것이다. 이들 중에 한마리는 암컷이었다고 한다. 3마리 전부 필드트라이얼과 헌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적당한 사이즈 복종적인 기질, 주인을 즐겁게 하는 욕구가 충만하였다고 하며 그 후 골든리트리버의 인기는 가속도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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