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팔도론
아! 위대한 우리역사
1. 역사란?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 없듯 역사는 그 나라 그 민족이 나가야 할 정확한 좌표를 가르쳐 주는 거울이다.
2. 잘못된 우리 역사
역사는 한 치도 오차 없이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여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나라의 역사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였던가?
전․노 쿠데타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역사는 민족의 정통사관을 외면한 체 힘 있는 왕조사관이나 일신의 영광을 위하여 왜곡되고 변질된 수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예로 국토의 14/15를 잃어버리고 1/15를 차지한 신라의 삼국통일이 그러하며, 김부식의 사대사관이 그러하며, 이성계의 모반사건에 의하여 조작된 용비어천가가 그러하며, 일제의 의해 왜곡 날조된 역사가 그러하며, 해방 이후 북한의 김일성 부자의 역사날조와 오늘날 한국의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교육이 그러한 것이 아닌가!
정통 우리의 역사는 어디로 가 버리고 얼빠진 사대사관과 외세 잡것들이 판치는 세상에 어찌 위대한 한민족의 정신적 힘이 나올 수 있을 것이며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3. 역사인식과 생명세포
심리학자들은 인체 내에 수많은 정보 세포 중에 역사인식 세포가 존재하여 이 역사인식 세포는 인격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서울역 앞에 구두닦이가 있다.
한 구두닦이의 조상은 정승이며 한 구두닦이의 조상은 거지이다. 누가 더 구두를 닦을까?
정승의 조상을 둔 구두닦이가 구두를 잘 닦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정승을 조상으로 둔 아들은 오늘 비록 구두를 닦고 있을망정 언젠가는 돈을 벌어 나도 조상처럼 정승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닦을 것이요 거지의 조상을 둔 구두닦이는 내 팔자는 거지 팔자인가 보구나 생각을 하며 적당히 닦을 것은 당연한 논리다.
왕 대 밭에 왕대 나고 신우대 밭에 신우대 나듯 좋은 조상과 훌륭한 가문을 가진 후손들은 역사와 조상인식 DNA 세포에 의하여 사고의 인식과 행동화가 달라짐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대한 삼신(三神)을 둔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신이니 설화니 하여 스스로 자기 역사를 평가절하 시켜 잠재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4. 좋은 역사도 활용하지 못하는 민족
하늘을 보라 !
하늘에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좋다. 나쁘다”, “부처다. 성경이다” 이라는 글자가 없건마는 인간이 가공하여 만든 단어다.
일본은 2,000여 년도 못된 역사지만 <천조대신(天祖大神)>을 신으로, 중국은 <황제(黃帝)>를, 인도는 <브라흐만>을, 유태인은 <여호와>를, 회교도는 <알라 신>을 최고의 신으로, 창조주로, 유일자로 가공하여 신격화 내지 종교화로 꾀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세계 각국은 조그마한 건더기만 있으면 그것을 과대 포장하여 자기합리화를 시켜 신격화 내지 종교화를 시키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무엇인가?
위대하고 위대하신 삼신(三神)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실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신으로 취급하여 파괴 내지 말살을 시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 민족에게는 상고 시대 때 인류를 다스렸던 대성형인 삼신(三神)의 조상이 있으며, 우리 민족은 하느님을 가장 잘 받드는 민족이란 사실을 밝히고,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바로 세우기 위하여 우리의 역사를 재 기술하지 않을 수 없다.
5. 인류의 시원
인류의 시원은 창조설, 진화론 등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이직도 명확한 근거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우주탄생 150억년, 지구탄생 50억년, 인류의 시원은 지금부터 500만 년 전 인류가 탄생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중국의 곤륜, 남아프리카 아우스트랄로피테쿠스, 인도네시아 쟈바 섬으로 추정을 하고 있을 뿐, 그 누구도 인류의 조상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태다.
6. 한민족의 시원
우리의 한민족의 조상에 관한 기록은 삼성기(三聖記)와 삼신오제 본기(三神五帝 本記)를 보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최초 조상 할아버지는 나반(那般)이고 할머니는 아만(阿曼)이다. 나반이라는 말이 아반→아바이로 변했고 아만이라는 말은 아마→아마이로 변하여 오늘날의 아버지 어머니의 말로 변화된 것이다. 나반과 아만이 최초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阿耳斯陀)이며, 꿈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 혼례를 치른 이후 낳은 후손들이 황이(황인종), 백이(백인종), 현이(흑인종), 적이(붉은 종), 남이(갈색종)이다.
그렇다면 최초에 나반과 아만이 만난 지역이 어디인가?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중국의 곤륜산 아래 천산지역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곳을 추정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5-3만 년 전에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한 가장 적당한 온도와 물과 먹이를 구비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7. 인류최초의 나라인 환인의 나라
우리 조상의 최초 고대 국가는 환국(桓國)이다..
환국은 지금부터 1만여 년 전에 파내류(派奈留)산 아래에서 천지(天地)를 중심으로 남북 5만 리와 동서 2만 리의 땅이 있었다.
이를 통치하신 영능자(靈能者)가 환인(桓因)이다.
환인은 소도(蘇塗)를 세워 하느님에게 제사지내는 일을 주관하고, 하늘을 대신하여 교화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원망하거나 차별이 없고 남녀의 권리가 평등했다. 이와 같이 나라를 잘 다스리자 수만 명의 백성들이 모여 영능자인 환인을 높이 추대하여 천제(天帝)가 되었다.
환인은 제1세 안파견 환인, 제2세 혁서 환인, 3세 고시리 환인, 제4세 주우양 환인, 5세 석제임 환인, 제6세 구을리 환인, 제7세 지위리 환인의 일곱 분으로 3301년(BC 7199 - BC 3899), 혹은 63,182년 동안 다스렸다고 하나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자세히 알 수 없다고 조대기(朝代記)와 삼성밀기(三聖密記), 삼성기(三聖記)에 기록되어 있다.
환인은 모두 열 두 나라를 통치하였으며 그 다스린 나라 이름은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사남아국, 선비이국, 수밀이국이다. 그 중 수밀이국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수메르 문화를 일으켰다. 수메르 문화는 우리의 상고시대 문화와 너무도 상통한 부분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성서에 나오는 구약 역시 우리 조상의 문화와 너무도 흡사하다. 아메리카의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도 지금부터 1만여 년 전에 아시아로부터 건너간 우리 민족이라는 사실은 인디언 추장들이 증명을 하며 그들이 말하는 <아파치>란 말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아버지', '지도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환국을 다스린 영능자는 남성이 아니라 일곱 분의 여성이 아닌가 한다. 미국의 애틀랜타 주 데모리 대학의 더글러스 박사는 10만 년 전 여성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세계 각 지역의 여성 800여명의 미토콘드리아를 집중 조사한 결과 황인종 여성에게서 공통인자가 발견이 되었다 하며, 최초의 여성은 아시아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 한문글자에 시작(始作)이라는 문자가 계집녀(女)변으로 시작을 하고 양음이 아니고 음양이란 말을 보더라도 여성이 먼저다. 또, 절에 있는 칠성당(七星堂)이 바로 우리 민족의 최초 영능자인 7분의 환인이라는 것이다. 칠성당은 불교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우리 민족의 토속신앙이지만 이 칠성당이 머지않아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르게 해줄 것이다.
환인이 살았다는 천산고원 일대에는 1만 2천여 개의 우물터가 있다. 이 우물터에는 북두칠성 모양의 별이 각인되어 있다. 또, 여기에는 천지(天地)라는 큰 호수가 있고, 견우직녀를 상징하는 은하수가 흐르고 있으며 견우강과 직녀강이 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우리의 역사를 밝혀내야 한다.
8. 배달나라인 환웅의 나라
환국의 마지막 지위리(智爲利) 환인은 후손이 많이 늘어나고 산물이 적어 부득이 이동해야 할 땅을 찾게 되었다. 이 때 임금의 아들 중 환웅(桓雄)이 어질고 지혜와 용맹을 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항상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태백산(太白山)에 보내어 다스리게 하면 좋겠다고 신하들이 말하였다.
지위리 환인은 이를 받아들여 환웅에게 우주와 인간을 다스리는 원방각(圓方角)의 문양이 새긴 천부인(天符印)을 주며 허락하니 환웅(桓雄)은 3,000무리를 이끌고 해가 뜨는 동쪽으로 이동하여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서 인류 최초로 신시(神市)를 열고,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나라라 하였다. 배달나라는 임금이 18대(代) 1565년간 (BC 3898 - BC 2333) 홍익인간 이화세계로 나라를 다스렸다.
배달국 제1세 거발한 환웅은 BC 3898년에 하늘 문을 열었다. 연호를 개천(開天)이라 하였고, 백성들에게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가르쳐 곡식, 목숨,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지금 같으면 국회의장인 풍백(風伯), 국무총리인 우사(雨師), 대법관인 운사(雲師)에게 나누어 다스리게 했다.
제6세 다의발(多議發) 환웅의 동생인 복희씨(伏羲氏)는 몸에 영(靈)이 내려 천문지리를 달통하여 팔괘(八卦)를 만들었고 여동생인 여와(女? )씨는 영특하여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7일 만에 혼을 불어넣어 사람을 만들었다고 고사변(古史辯)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구약성서가 우리 조상들의 행적과 일치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와씨 뒤를 이어 신농씨(神農氏)가 지금 중국 섬서성에 있는 강수(姜水)에서 살았으니 강씨(姜氏)성이 바로 여기서 생겼다.
제14세 자오지(慈烏支) 환웅은 치우천황(蚩尤天皇)이라고 하는데 BC 2707년에 천황에 오르면서 12제국을 합병하였으며 중국의 양자강 하구의 동북부, 티베트, 몽고까지 다스렸으니 우리 민족 역사 가운데 가장 위력을 떨친 천황(天皇)이다.
그 뒤로 300년 간 아무 일이 없다가 제 18세 거불단(居弗檀) 환웅이 재위 1565년 만에 배달나라를 마치고 이어서 환검(한검, 단군)시대가 열렸다.
9. 우리 시조인 단군의 나라
단군의 아버지는 거불단 환웅이며 어머니는 곰족(熊族)의 공주다.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단군할어버지의 어머니인 웅녀를 웅국의 딸이며, 사위가 단군이라는 가정하에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적혀있는 곰(熊)과 호랑이(虎)에 관하여 후세 사람들의 해석이 구구하여 외세 하수인들과 일부 종교인들은 단군사실을 설화니 미신이니 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거불단 환웅이 동물의 곰과 혼인을 하여 낳은 자식이 한민족이라는 망발을 하고 있는데 사람과 곰의 DNA가 다른데 어찌해서 사람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이는 한민족의 정통 혼을 말살시키려는 한민족 파괴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정확한 의미에서 곰(熊)이란 곰씨 종족의 처녀이며, 호(虎)란 호랑이 종족의 처녀다.
제1세 단군왕검이 성장하여 비서갑(菲西岬) 처녀와 결혼하여 부루(扶婁), 부소(扶蘇), 부우(扶虞), 부여(扶餘)를 낳고 구환(九桓)의 백성들이 모여 BC 2333년 10월 3일에 총회를 열어 임금으로 추대하여 도읍을 아사달(王儉城)에 정하고 나라 이름을 단(檀)이라 하였다.
이 때 비서갑 황후는 누에치고 베 짜는 일을, 태자 부루는 질그릇을 구워 내고, 둘째 아들 부소는 약과 병 치료 및 부싯돌을 발견하고, 셋째 아들 부우는 사냥을 맡아 짐승의 해를 막고, 넷째 아들 부여는 예절과 풍속을 가르치고, 신하인 팽우(彭虞)는 토지를 개간하고, 신지(神誌)는 글을 만들어 기록을 하며, 고시(高矢)는 농사일을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고시레, 고실레, 고수네 라는 말도 이 때 생긴 것이다.
BC 2283년에는 강화도에 8,000명 장정을 보내어 참성단(塹城壇)을 쌓게 하였다. BC 2267년에 태자 부루를 보내어 중국의 순(舜)임금을 도와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으로 물길을 다스리게 했다.
제2세 부루 단군은 한민족의 최초 노래인 어아가(於阿歌)를 불렀고, 충신인 대련(大連)과, 소련(小連)을 사도(司徒)로 삼아 동양 최초로 충효의 윤리 기틀을 세웠으며 후대의 공자(孔子)도 늘 대련과 소련 형제를 칭송하였다. 또, 부루는 칠회력(七回曆)이란 달력을 만들었다. 1일은 천신(天神), 2일은 월신(月神), 3일은 수신(水神), 4일은 화신(火神), 5일은 목신(木神), 6일은 금신(金神), 7일은 토신(土神)으로 정하여 달력을 만들었다. 이것이 서부의 바빌로니아로 건너가 일, 월, 화, 수, 목, 금, 토의 7요일이 되었다. 웇놀이판의 28수 원리와 천문도가 서쪽으로 넘어가 별 이름이 서양식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으나 밤하늘의 북극성(小熊星)과 북두칠성(大熊星)은 선대(先代)의 별이라 하여 바꾸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우리 민족은 머지않아 이 북극성과 북두칠성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대조신(大祖神)이요 정통 자손임을 증명하는 날이 돌아올 것이다.
제3세 가륵(嘉勒) 단군은 BC 2175년에 강거(康居)가 반란을 일으키자 토벌을 하였고, 또한 삼랑(三郞) 을보륵 (乙普勒)을 시켜 인류 최초 민주주의 체제라 할 수 있는 신왕종전지도(神王倧佺之道)를 세웠다. 이는 조정의 수직정치(┃)인 종훈(宗訓)과 백성의 수평정치(⁃)인 전계(佺戒)로 우주정치(宇宙政治)를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세계 최초로 상의원과 하의원을 둔 우리의 정치 체제였다.
또한 한글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가림토(加臨土) 38자를 만들었다. 만일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일본에서 나온 우리 한글과 똑같은 아히루 문자가 한글보다 200년이나 더 빠르니 한글이 일본 사람이 만든 글이란 말인가? 세종대왕은 우리의 옛 조상들의 글자인 가람다토 글자를 참고하여 만든 것이지 창안한 것이 아니다. B․C 2180 년에 신지(神誌) 고결(高契)에게 명하여 배달유기(倍達留記)를 찬수하였다.
제4세 오사구(烏斯丘) 단군은 동생인 오사달(烏斯達)을 임명하여 몽고리한을 다스렸으며 지금의 몽고족이 그 후손이라고 한다. B․C 2133년에 구멍 뚫린 패전(貝錢)을 주조하였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화패이다.
제5세 구을 단군은 처음으로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쓰고 월력(月曆)을 만들었다.
제6세 달문 단군은 사형 제도를 없애고 화백제도(和白制度)를 공정히 하여 세계최초로 공화정치(共和政治)를 했다.
제10세 노을 단군은 우주의 이치를 윷판(柶板)으로 역(易)을 만들었다. 윷놀이 판에 우주 철학과 달력과 정치 이치가 있는 줄 그 누가 알 것인가?
제11세 도해 단군은 돼지, 개, 양, 소, 말 족인 오가(五加)에 명하여 12명산에 국선소도(國仙蘇塗)를 설치하게 하였다. 당산나무인 단수(檀樹)를 많이 심도록 했고 큰 나무를 가려내어 환웅상(桓雄像)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지었으며, 최초로 의관(衣冠)을 쓰도록 했고 누전(樓殿)에 올라 경(經)을 논했다.
제14세 고불 단군은 B․C 1662년에 인구 조사를 하였는데 호구 수가 1억 8천만 가구였다. 이 당시에 우리 조상은 한반도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현재 중국 전체를 통치하고 있었다.
제16세 단군은 오늘날 애국가와 같은 애환가(愛桓歌)를 지어 둥글게 돌아가며 춤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 가사를 현대어로 바꾸어 말하면 “산유화(山有花)야 산유화야, 지난 해 심은 나무도 만년 살고, 금년에 심은 나무도 만년을 사네, 불함(不咸)에 봄이 오니 온천지가 꽃이 가득 피었어라, 하느님(天神)을 높이 받들고 태평(太平)을 즐겨보세”라 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애국가이다.
제19세 구모소 단군은 주천력(周天曆)과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을 만들었다.
제20세 고흘 단군은 영고 탑을 수축하고 이궁(離宮)을 지었다.
제46세 보을 단군 시에는 오가(五加)가 쟁립을 하였다.
제47세 고열가 단군은 “ 왕도가 쇠미하고 제한(諸汗)이 강(强)을 다투며 짐(朕)의 덕이 적어 백성들이 흩어지니 오가(五加)들은 현자를 천거하고 사형수 이하 모든 포로를 놓아주라.” 하고 제위(帝位)를 버리고 입산수도 하여 신선(神仙)이 되었다.
이로써 단군조선은 3301년 만에 종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단군 조선이 위치한 서울은 어디인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중국의 북경(북경의 옛 이름은 평양)주변이 바로 우리 민족의 중심 무대가 아닌가 한다. 또 중국의 요(堯)임금이 단군 제1세 임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林均澤 박사)
10. 한심스러운 잡것들
가정에서도 대대로 내려오는 족보가 있듯이 나라에도 역사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책은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칠 때 고조선과 부여의 귀중한 자료가 불타 버렸다. 고려 때에는 중국의 몽고와 정통 싸움을 하다가 우리 손으로 우리 역사를 불살라 버렸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중국의 천자를 받들면서 우리의 옛 땅이 중국과 만주 대륙까지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언제 또 힘을 길러 증원 땅을 넘볼까 우려하여 역사책을 불온문서로 취급하고 거두어 들여 스스로 불태워 버렸다. 일본은 우리 땅을 강제로 빼앗아 20만여 권이나 되는 책을 거두어 불살라 버렸다. 이 얼마나 원통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이러한 민족의 역사를 보다 못해 울부짖는 인물들이 있었다.
고려 이암 선생은
‘아 원통하도다. 부여는 정신이 없어진 뒤에 중국의 침략을 받았고, 고려의 정신을 잃은 뒤에 몽고의 침략을 받았다. 이처럼 자주정신을 키워 주는 정신이 바로 역사다’
라는 말을 남기고 강화도에 들어가 <단군세기>를 저술했다.
그 후손인 이맥(李陌)은 조선조 연산군 때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찬수관(국가문서편람 발간부서) 직책을 수행하면서 <태백일사>를 저술했고, 조선 숙종 때 북애(北崖)는 규원사화(揆園史話)를 저술했다.
북애(北崖)는 흘러가는 압록강을 바라보며,
“ 한 줄기의 땅인 압록강 저 쪽은 이제 우리의 땅이 아니라니... 슬프고 슬프도다! 우리 조상들이 살던 강토가 남의 손에 빼앗긴 것도 원통한데, 우리 백성들이 그 곳이 우리 땅이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아가다니, 정말 슬픔을 금할 길이 없구나. 아, 소견이 좁고 생각이 얕은 사람들은 무조건 사대주의만이 옳은 것이라 여기며, 내 나라를 빛낼 줄 모르니 이 어찌 천한 사람들이 아니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조상의 명맥이 신선도(神仙道), 선도(仙道), 화랑도로 이어져 오다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공격하여 백제와 고구려가 무너진 뒤부터는 서서히 삼신의 얼을 망각하기 시작했다. 고려 인종 때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묘청, 정지상의 낭가파(郎家派)와 모화사상에 물든 김부식의 사대파(事大派)와의 일전(一戰)에서 김부식이 승리하고, 고려 말에는 자주적인 노선을 표방했던 최영 장군과 사대적인 노선을 표방했던 이성계와의 결판에서 이성계가 승리하자 민족의 정통성이 지도층에서 끊겨 버렸다. 최영 장군이 처형당하던 날, 장안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고 울분에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며, 민족혼을 있겠다는 사람들은 무당과 당골, 남사당패로 서민 취급을 당하면서 실낱같은 명맥을 이어 왔지만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양반층이 어찌 조상의 맥을 찾아보려는 생각이나 했었겠는가?
양반과 쌍놈으로, 적자와 서자로,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간의 본질을 억누르는 사상이 과연 우리의 사상이란 말인가? 해방 이후 미. 소의 양 이데올로기에 앞장을 선 事大 잡것들이 우리 민족은 역사와 전통을 스스로가 피괴시켜버린 것이 아닌가?
필자는 일본의 오사까에서<왓소마쓰리>를 보고 있자니 두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일본은 우리의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발해, 고려, 이조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대축제를 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과 조상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더욱이 일본에는 일제 때 일본으로 끌려가서 억울하게 죽은 유골이 50여 만구가 아직도 사찰이나 탄광, 지하실에 방치되고 있어도 유골을 찾아와야 한다고 외치는 지도자가 없는 마당에 무슨 통일이니 애국애족이니 민족이니 하고 주장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해방 이후 우리의 우리의 역사관을 잊어버린 일제앞잡이와 양극화 논리에 중독된 정치인과 역사학자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와 언어가 난도질 당하여 우리의 정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온갖 부정, 부패, 무지, 불화, 대립, 투쟁... 등의 모순이 일어나는 햑심이 바로 역사의식 망각에서 나온 것이다.
11. 위대한 한민족을 만들려면
위대한 한민족을 만들려면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의 제국을 다스린 환인시대의 영광을 인식해야 한다. 칠성님의 위대한 모계사회의 역사성을 인식해야 한다. 환웅시대와 단군 시대 때 중원(中原) 전체를 다스린 영광을 인식해야 한다. 이 영광은 한민족을 위대한 한민족으로 만드는 대생명력이 될 것이다.
또한 하늘의 뜻을 펼 수 없어 해 뜨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한 조상들의 한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약육강식을 일삼는 제국주의 외침을 931회 당하면서 온갖 수모와 치욕 속에 하느님을 잊지 않고 미래에 그 날을 인내로 기다려 온 눈물겨운 조상님들의 한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일제의 해방과 더불어 전범국인 일본은 분단되지 않고 아무런 죄도 없는 한민족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같은 민족끼리 동족상잔을 해야만 했던 비통한 한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탐욕심과 약육강식과 전쟁으로 점철되어온 동물본능의 인류가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번영이 있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이다. 이것을 우리는 반만년의 피눈물 나는 역사를 통하여 피부로 체험하며 배운 것이다.
따라서 현세에 살아가는 우리는 영광스러운 삼신(三神)의 역사의 원형을 개발하고, 통일 신라 이후 잡것들의 오욕된 역사를 성찰의 계기로 삼아 위대한 미래로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뇌세포 속에 갊아 있는 영광된 삼신(三神)의 원형(原形)으로 계발하여 위대한 한민족으로 새롭게 창조해야 할 것이다.(얼의신)
눈덮인 들녘을 지나갈 때
함부로 발자국을 움직이지 말라
오늘의 나의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김구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