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부터 갑자기 추어졌던 날씨가 새벽에는 더욱 맹위를 떨친다.
집에서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날까지 잠깐 걷는 사이에 빰은 찬바람에 에이는듯 하고 귀는 떨어져 나갈듯이 아파온다.
포천행 버스에 오르니 비어있는 국도를 거침없이 달려 잠깐사이에 포천터미날에 닿는다.
버스에서 내리니 냉기가 사방에서 파고 들며 바람은 더욱 강해진다.
급히 대합실로 들어가 바람막이를 속에 껴입고 귀덮개를 한후 졸고있는 택시기사를 깨워 무럭고개로 향한다.
무럭고개에 도착하니 밝아져 오기 시작하는 약수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운동을 하고 줄을 서서 약수를 받고 있다.
길가의 산에는 눈이 꽤 쌓여 있는것 같아 미리 스패츠를 착용하고 단단히 점검을 한다.
길을 건너서 능선에 오르니 등산로 안내판이 서있고 왕방산은 4.4km라고 적혀 있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고 완만한 나무계단이 연속적으로 있어 오르기가 아주 좋다.
진달래등 키작은 관목사이의 등산로는 흰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 잘 다져진 눈길이 계속 이어진다.
산밑으로는 고층아파트들이 보이고 아파트에서 바로 올라오는 등산로도 만들어져 있다.
삭막한 콘크리트더미 옆에 있는 이런 크고 아름다운 산이야 말로 항상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푸르게 하고 넉넉하게 할 것이다.
얼마 되지않아 일출이 시작되고 눈부신 햇빛이 온 산야에 골고루 비쳐지며 대기는 점차 차가운 기운을 잃기 시작한다.
올라가다 땀을 훔치고 두터운 상의를 벗으며 보니 일출후의 운해가 넓게 펼쳐져 있고 구름위로는 높고 낮은 여러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곳곳에 나타나는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이어지는 몇개의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면 보덕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보이고, 이곳을 지나 가파른 길을 약간 오르면 왕방산정상(737.2m)이다.
정상은 억새가 무성한 공터이고 사방에 방해물이 없어 조망이 그야말로 거칠것이 없다.
북쪽으로부터 금주산과 관음산 그리고 명성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국망봉부터 운악산까지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연봉들이 뚜렸하게 보인다.
남쪽으로는 죽엽산과 불암산 그리고 수락산과 도봉산이 멀리 보이고 바로 앞으로는 해룡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국사봉이 지척에 있고 그 뒤로 감악산과 소요산 종현산들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국사봉 꼭대기에는 미군부대가 넓게 주둔하고 있고 안테나들이 솟아 있으며 정상에 있는 안내판에는 국사봉까지 2km라고 적혀 있다.
잠시 쉬고 앞으로 바로 보이는 국사봉을 향한다.
정상을 돌아 내려가는 길부터는 응달이 들어 춥고 바람이 세게 불며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눈이 많지만 인적은 없고 황사때문인지 눈은 누런 색으로 지저분하다.
어둡고 침침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심곡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보이고 안부를 통과하여 희미한 길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면 587봉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몇개의 낡은 표지기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바로 앞의 국사봉을 향하여 휘날리고 있다.
눈덮힌 급경사 내리막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숲이 우거진 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막 길을 올라가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암릉들이 자주 나타나고 길은 가파르고 미끄럽다.
나무와 바위들을 잡고 힘들게 오르면 넓은 벙커로 이루어져 있는 국사봉정상(754m)이다.
정상에서는 도봉산에 가려 왕방산에서는 보지 못했던 백운대와 인수봉이 뚜렸하게 보이고 그뒤로 예봉산과 검단산도 보이는듯 하며 국사봉에서 소요산까지 이어지는 능선과 봉우리들이 확실하게 나타난다.
소요산 바로 전에 있는 봉우리는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어 다소 험준해 보인다.
지도를 보며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종주코스를 골라 보는것도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지도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3-4개의 산들을 고른후 각각의 지도를 모아 통합지도를 만들고 접근로 탈출로 예상시간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산행계획을 짜서 시간이 날때 직접 실행하고 달성했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수 없다.
전부터 왕방산이 소요산과 연결된다는 말을 듣고 산행준비를 해 보았으나 자세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상세지도 없이 개념도에 의지해 산행을 하려니 처음부터 미진한 마음이 있었는데 소요산근처의 암봉을 보니 절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든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능선으로 내려가는 길을 찿아보나 길은 보이지 않는다.
미군부대쪽으로 가서 철조망을 따라 길을 찿으니 한국경비원이 어떻게 왔냐고 물어본다.
소요산으로 간다고 하니까 길을 잘못 왔고 잠시후에 오는 청소차를 태워 줄테니 동두천으로 가라고 그런다.
사정을 말하고 철조망을 돌아 정문앞의 포장도로로 나와서 눈덮힌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내려간다.
약30분정도 내려가니 얼음이 두껍게 깔린 새목고개가 나오고 맞은편으로 능선이 보인다.
능선을 보며 올라가 보나 뚜렸한 길은 없다.
쓰러진 마른 억새와 잡초더미위에 쌓인 눈을 밟고 올라가니 발은 쑥쑥 빠지고 미끄러진다.
짐승 발자국들이 찍혀 있는 눈길을 따라 계속 오르니 낮으막한 봉우리가 나타나고 정상에는 큰 전광판같은 군사시설물이 서있다.
전광판을 지나서 멀리 보이는 소요산을 향해 나아간다.
눈덮힌 능선을 따라 몇개의 헬기장을 지나고 잡목이 우거진 벙커위의 작은 봉우리에 오른다.
왼쪽으로 동두천시내가 보이고 발밑으로는 온통 임도들이 사방에 깔려있다.
소요산쪽으로 향한 능선을 따라 무작정 내려오다 보니 갈림길에 포천산악회의 낡은 표지기가 하나 걸려있다.
언젠가 길도 없는 이 야산을 포천군계산 답사차 왔으리라.
키 높은 마른 억새가 지천에 깔려있는 능선을 지나 눈을 헤치고 길을 내며 내려가면 나뭇가지가 길을 막고 곳곳에 죽은 나무가 쓰러져 있다.
곧 임도로 내려서고 이곳에서 길은 바로 옆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곳곳의 싸리나무 군락지를 엎드려서 지나가고 제멋대로 자란 잡목지대를 힘들게 통과한다.
바람없는 숲속의 눈길에 서서 빵과 우유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찿아 걷다보니 갈림길에 국사봉전의 587봉에서 보았던 낯익은 표지기(sansami 소헌)가 한개 보인다.
이사람은 언제 어디까지 이 길을 찿아 갔을까 ...?
약 30분정도 눈길을 따라 내려가면 사방으로 잡초가 아주 무성한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곳을 지나 올라가는 길도 온통 마른 잡초에 묻혀있다.
계속 올라가니 철조망이 나타나고 미군부대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붙어있다.
철조망을 따라 능선을 오르면 울창한 잡목들 사이로 가시덤불과 마른 잡초들이 한키가 넘게 우거져 있어 발길을 막는다.
가시덤불울 헤치고 몸으로 마른 잡초들을 밀며 올라가니 마른 먼지들이 사방으로 일어나고 쏟아져 내려 숨조차 쉬기 힘들다.
최근에는 사람이 온적이 없는것 같고 여름철에는 통과할 엄두도 내지 못할 험로이다.
철조망가시에 살짝 닿으니 그 질긴 스패츠도 쭉쭉 찟어진다.
철조망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나뭇가지들을 꺽어내고 가시덤불들을 타고 넘어 오르니 국사봉에서 보이던 암봉들이 있는 413봉이다.
정상은 나무가 많아 서 있을 공간조차 없으며 발밑으로는 미군부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소요산은 지척에 서있다.
정상을 지나 눈덮힌 바위사이의 길을 내려가니 약 20미터 정도의 암릉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바위들을 잡고 올라 철조망을 따라 가면 다시 무성한 잡초와 가시덤불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우회도 하고 몸으로 밀어 붙이기도 하며 통과하니 다시 30m정도의 오르막 암봉이 길을 막는다.
홀드가 있어서 잡고 오를수는 있어도 자칫 잘못하면 추락할수도 있는 위험한 구간이다.
긴장해서 암봉을 통과하고 억새가 무성한 길을 내려가니 소요산쪽에서 반대로 왔었던 발자국이 보인다.
누군가 소요산에 왔다가 호기심으로 여기까지 와 보았을 것이다.
계속 억새사이를 걷고 뚫린 철조망으로 나오니 급경사 내리막이 보이고 안부에 누군가 서 있다.
반가운 마음에 부리나케 미끄러져 내려가 보니 나뭇가지 사이에 주인없는 빨간 점퍼만 매달려 있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10여분 올라가면 상백운대에서 나한대로 내려서는 소요산 능선에 닿는다.
왕방산에서 이어지는 주능선은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상백운대를 거쳐 초성리 열두개울로 내려가 종현산까지 연결되지만, 오늘은 소요산정상을 거쳐 하산하기로 마음 먹는다.
왼쪽 능선으로 꺽어져 잘 다져진 눈길을 따라가면 기암괴석사이로 노송들이 곳곳에 서있는 나한대가 나온다.
나한대를 지나고 미끄러운 길울 내려가 다시 급경사 바윗길을 힘겹게 올라가면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 소요산정상(570m)인 의상대이다.
소요산 정상에서는 왕방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국사봉을 거쳐 이곳까지 굽이치며 이어지는 능선들이 뚜렸하게 보인다.
식은 물에 커피를 타 마시며 보니 몸과 배낭은 온통 더러운 먼지와 잡초 부스러기들로 뒤덮혀 있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아이젠을 하고 급경사 내리막 길을 오랫동안 내려가면 구절터가 나오고 바로 자재암에 닿는다.
일주문을 지나 가겟집에서 뜨거운 어묵국물에 막걸리 한잔을 마시니 가시덤불을 뚫고 여기까지 온것이 아득하기만 하다.
매표소를 지나 좀 내려가니 버스정류장이 나오고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빈버스에 오른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능소화님! 안녕하세요? 서울 근교에서는 괜찮은 종주코스입니다. 한번 다녀오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