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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 긴 여정
“전역 기념 - 금학산 계곡 약수에서 맺은 우정 진달래 피거들랑 생각하소서”. 이는 25년 전,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기리는 기념패에 담겨진 문구의 일부분이다. 1974년 6월에 강원도 철원에서의 숙명적인 만남, 그리고 2년 복무를 마치고 석별의 정을 나누며 헤어진 게 어언 4반세기.
서울의 김정범․이석진․이승무와 부산의 최인권, 그리고 제주의 김승태는 늦더위의 기승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역 25돌의 의미를 찾기 위해 젊음과 충정(忠情)의 현장이었던 철원으로의 출정. 지난 1월 11일, 후배 최현민을 심판으로 서울에서 이미 예고전(?)을 치르면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터이기에 대결 장소로는 금상첨화였다. 예상을 한 바이지만 전초전은 잊혀 지냈던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각자의 삶이 주요 화제로 떠오르면서 그 서막을 서서히 열었다.
노동당사 전경
의정부를 지나면서 차창을 스치는 이정표는 결국 군대 얘기로 반전하는 촉매가 되었다. 입대 당시의 설렘에서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한 우리들의 2년 동안의 군 생활이 하나의 파노라마로 펼쳐지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숱한 얘기는 운천과 관인을 거쳐 고석정에 이르면서 잠시 휴전(?) 상태.
예정보다 늦게 도착되어 부득이 전적지의 견학은 이튿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그리고 추억이 서린 곳을 찾아 나서는 길은 용맹스런 코란도와 용장(勇將) 이승무의 노련함이 곁들여지면서 ‘문혜리사격장~측지반숙영지~삼부연폭포~용화저수지와 용화OP자락~야포단본부~순담계곡~승일교(昇日橋 :120m 아취형 다리로 6․25 전후 남과 북이 반씩 놓아 연결함에 연유하여 항간에는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자를 따 승일교라고 명명되었다고 알려지기도 하지만 다리 입구에는 당시 다리를 완공한 박승일 대령의 업적을 기림에 관련한다고 기록하고 있음)~노동당사~백마고지전적비’를 휘젓고 다녔다. 자만(自慢) 때문일까? 도피안사를 참배하고 돌아 나오는 데 돌발 상황(타이어 펑크) 발생. 결투는 잠시 접어두고 서툰 솜씨를 총동원하여 무난히 교체 임무 완료. 화지리와 동송리를 거쳐 문혜리에서의 숙영(宿營) 준비도 끝.
숙영의 하이라이트는 소환계였다. 이름하여, 소(소주)․환(환타)․계(계란)가 적절히 배합되어진 이 명주(?)는 예전에 이 고장에 주둔한 군인들이 즐겨 마셨던 특산품이었다. 이를 재현시켜 주고받는 우정 어린 한 잔의 술은 시․공을 넘나들면서 전우애를 확인하는 데 최적이었다. 당시 대대장을 비롯한 장교, 하사관, 사병들과의 추억들이 금학산 계곡 약수처럼 밤새도록 쉼 없이 새록새록 솟아 나왔다. 영원히 잊혀 지낼 뻔했던 숱한 군사 용어들의 등장에는 모두들 환희와 숙연함, 그리고 삶의 청량제가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우리들에게 영원히 기억되어질 2001년 8월 18일의 아침은, ‘비상이냐? 기상이냐?’는 확인 절차도 없이 자연스레 출정에 따른 준비를 마쳤다. 시계(視界) 대단히 양호, 가까이로는 용화동 주위의 여러 봉우리, 멀리로는 명성산과 금학산, 그리고 주위의 나지막한 야산들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은 한 폭의 동양화 그대로였다. 이를 감상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은 분명 제주의 오름에서 얻은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탕(SBS드라마 ‘덕이’ 촬영 장소)~전적관에서의 견학 신청-~땅굴-~월정리역~백마고지전투전적비~대마리에서의 추억 반추~101, 102, 103, 110에 얽힌 숱한 희로애락~503~고석정~산정호수’까지의 여정 속에는 27년의 세월이 공감대를 이루면서 절정에 달했다.
국가의 안보, 스쳐 지나는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퇴색되어버린 그 현장을 보면서 군은 군으로서 그 책무를 다할 때 영예로움이 함께 할 것이라는 확신을 떨쳐 버릴 수 없음은 비단 나 혼자의 넋두리가 아닐 것이다. 용장(勇將) 이승무, 지장(智將) 김정범, 덕장(德將) 이석진․최인권이 벌이는 3일 동안의 치열한 전투는 1년 후에 그 장소를 남녘 제주로 옮겨 재대결하자는 협정서를 체결하고 결국은 휴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구파발의 추억을 아로새겨 준 지장(智將) 김정범 가족의 정성과 성원에 고마운 말씀을 드린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 월정역 (2001. 08.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