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爲諸菩薩(위제보살)하사 說大乘經(설대승경)하시니 名無量義(명무량의)라 敎
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니라
위제보살(爲諸菩薩)하사, 여러 보살들을 위하사
설대승경(說大乘經)하시니, 대승경을 설하시니, 대승경이라 하는 것은 아주
수준높은 경전, 그 말입니다.
아주 고급경전, 그렇게 이해하면 돼요.
그러니까 소승불교는 낮은 불교이고 소승경은 낮은 경이라면은 대승은 아주
높고 차원높은 고급스러운, 그런 경전을 설하셨다.
설하시니
名無量義(명무량의)라
이름이 무량의(無量義)라,
그러니까 무량의 경을 설하셨다 이말이죠.
법화경 설하기 전의 설한 경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고 관계를 이야기하는 거니까요.
무량의(無量義) 라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의미를 가진 말씀, 헤
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의미를 가진 그런 경전을 無量義經이라 그렇게 합
니다. 그런 무량의(無量義)이거든요, 무량의.
名無量義(명무량의)라 敎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니라
그런데 이 경전은 무얼하는 거냐?
교보살법(敎菩薩法)이다.
보살을 교화하는 법이다, 보살들을 가르치는 법이다 이 말입니다.
보살은 우리 대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불자들을 한꺼번에 ‘보살’
이라고 이렇게 하는 그 범주 속에 다 모일 수 있어요.
佛所護念(불소호렴)이니라
그래서 부처님이 상당히 아껴.
보호할 호(護) 자 생각할 념(念) 자이니까요.
호렴한다, 부처님이 ‘호렴하는 바’다 하는 말은 부처님이 상당히 아끼고,
소중하게 여긴다하는 그 뜻입니다. 佛所護念(불소호렴)이라, 부처님이 호렴
하는 바라.
그러니까 무량의(無量義)라고 하는 경은요, 부처님이 상당히 아끼는 경전이었
다.
佛說此經已(불설차경이)에 結跏趺坐(결가부좌)하시고 入於無量義處三昧(입어
무량의처삼매)하사 身心不動(신심부동)이러라
불설차경이(佛說此經已)에
부처님이 이 경을 설해 마침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시고
가부좌를 떠억 맺고 앉았다, 가부좌, 연화좌라고도 그러죠.
이제 부처님의 앉는 자세를 가부좌라 그럽니다. 아마 무량의경을 설할 때에는
가부좌를 하시기도 하고, 또 가부좌를 풀기도 하고, 또는 뭐 책상다리를 하
기도 하고, 의자에 걸터앉는 형식도 있을 것이고, 또는 설 수도 있을 것이
고 뭐 그럴 것입니다.
그런 경을 다 마치고 이제 가부좌를 틀고 떠억 앉으셔가지고
入於無量義處三昧(입어무량의처삼매)하사
입어(入於), 들어갔다.
무량의처(無量義處)라고 하는 삼매(三昧)에 들어갔다.
삼매에 들어갔는데 삼매 이름이 무량의처(無量義處)야.
그 삼매도 이름이 있지요, 그렇게.
무량의처(無量義處)라고 하는 삼매에 들어가시니
身心不動(신심부동)이러라
신심부동(身心不動)이라.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더라.
그 다음에
是時天雨曼陀羅華(시시천우만다라화)와 摩訶曼陀羅華(마하만다라화)와 曼殊沙華(만수사화)와 摩訶曼殊沙華(마하만수사화)하야
而散佛上(이산불상)과 及諸大衆(급제대중)하며 普佛世界(보불세계)가 六種震動(육종진동)이러라
|
是時天雨曼陀羅華(시시천우만다라화) 摩訶曼陀羅華(마하만다라화)와 曼殊沙華
(만수사화)와 摩訶曼殊沙華(마하만수사화)하야
그 때에,
부처님이 그러니까 어땠습니까? 대중들이 모였지요? 그리고 경전을 설했는데
- 무량의경- 이라, 무량의경을 다 설하고는 어떻게했지요?
삼매에 들어갔어요.
떠억 앉으셔서 삼매에 들어갔다. 이 삼매(三昧)라고 하는 것을 유인물에서 설
명을 드리겠는데 우리가 경을 강의하기 전에, 또는 법문을 하기 전에, 또는
불공을 올리기 전에 또 천수경을 치기 전에, 모든 불교의 어떤 일이든지요,
시작하기 직전에는 항상 선정(禪定)이 됩니다.
잠깐 말하자면 입정(入定)하는 거죠. 입정.
스님들 불공할 때 가만히 보세요.
처음에 목탁 딱 잡고 앉아 한참 있다가 그 다음에 천수경을 치기 시작한다구
요. 들어오자 마자 허벌떡 거리면 그건 잘못된거지.
그래가지고 무슨 천수경이 되고 무슨 불경이 되겠어요?
딱 앉아가지고 한 5분 쯤 딱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
이것 꼭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법회할 때에도 그렇고, 항상 불교행사에는 으레 그렇게
되어있어요.
부처님이 그렇게 했어요. 평생을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게 또 옳은 이치이
고, 옳은 이치이고.
집에서 기도를 하시든지, 사경을 하시든지, 경을 읽으시든지 항상 그런 태도
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뭐 손 씻자마자 뛰어가지고 책 펼쳐가지고 그럴게 아니고, 딱 앉아가지고 한
참 이렇게 숨도 좀 고르고 그러고 나서 책을 이렇게 펼쳐야 뭔가 들어오든지
나가든지 하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부처님이 하신 일이면서 또 말하자면 틀이지요.
이런 태도가 말하자면 법도에 맞는 그런 태도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때에
是時天雨曼陀羅華(시시천우만다라화) 摩訶曼陀羅華(마하만다라화)와 曼殊沙華
(만수사화)와 摩訶曼殊沙華(마하만수사화)하야
그 때에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천우(天雨)라,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이말이여.
무슨 비가 쏟아졌느냐?
만다라화(曼陀羅華)라고 하는 꽃입니다. 꽃 이름이에요.
꽃비가 쏟아졌다. 그런데 그 꽃도 이름이 다 있는 꽃들입니다.
曼陀羅華(만다라화)摩訶曼陀羅華(마하만다라화)와 曼殊沙華(만수사화)와 摩訶
曼殊沙華(마하만수사화)하야
만다라화, 마하만다라화, 만수사화, 마하만수사화...
그러니까 마하란 말은 크다 란 말이니까, 작은 만다라화, 큰 만다라화, 작은 만
수사화, 큰 만수사화 이런 것들로써 꽃비가 쏟아져가지고 어떻게?
而散佛上(이산불상) 及諸大衆(급제대중)하며 普佛世界(보불세계)가 六種震動
(육종진동)이러라
이산불상(而散佛上)라
부처님 위에다가 막 흩는거예요. 꽃이, 꽃비가 내려가지고 부처님 위에다 막
덮고, 그리고
급제대중(及諸大衆)하며
대중들에게 까지도, 부처님만 그런게 아니고 모든 대중들에게도 하늘에서 꽃
비가 내려서 곳곳이 꽃비가 내려서 쌓인다 이겁니다.
꽃비가 쌓인다 이거여.
이것이 부처님께 꽃 공양 올리는 가장 원형적인 모습입니다.
요게 아주 전형이에요.
지금은 아주 꽃 꽂는 기술이 발달해가지고 자꾸 가서 꽂고 그러죠.
그리고 막 그냥 흩어놓으면 또 사람 많은데 모양이 그렇죠.
그러나 아직도 인도에는 꽂는 것 보다 흩는 일을 더 많이 해요.
지금도 가보면은 꽃을 따가지고 뭐 목걸이를 해서 걸거나 아니면 막 뿌립니
다. 계단 같은데도 뿌리고 또 부처님 무릎이라든지 부처님 앉아있는 주변이라
든지 꽃을 계속 뿌려요. 그것도 시들면 그걸 또 쓸어서 담는 사람도 있고.
경전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꽃비가 내려서 부처님 위에와 대중들에게 뿌렸
다.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아주 그야말로 법화경이 설해지려면 이쯤 모양새를 갖
춰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역시 여겨
집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은
普佛世界(보불세계)가 六種震動(육종진동)이러라
보불세계(普佛世界)가 육종진동(六種震動)한다.
온 세계가, 널리 부처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을 하더라 그랬어요.
우선 그 유인물 제일 밑에 육종 진동 한번 볼까요? 육종 진동이 나왔으니까
1번은 동(動) 흔들려서 불안한 것 2번은 기(起) 일어날 기(起) 자인데 아래
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 그 다음에 3번은 용(涌)은 솟을 용(涌) 자 예요. 솟
아 오르고 꺼져 내려가는 것. 그 다음 4번은 진(震), 은은하게, 은은히 소리
가 들리는 것. 그 다음 5번은 후(吼), 이것은 부르짖을 후(吼) 자 거든요. 꽝
하고 소리를 내는 것. 그 다음 6번은 각(覺), 사물을 깨닫게 하는 것 했는데
전 3은 모양이 변하는 것이고, 후 3은 소리가 변하는 것이다 이렇게 했는데 그
다음 괄호 안에 있는 것이 진짜 의미예요.
여러분들 지구가 이런 식으로 흔들리는데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이 살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느낌이, 이런 법화경을 설해지고 이
많은 대중이 모이고 또 부처님은 삼매에 들으셨고, 경을 설하고 나서 삼매에
들었고 그러고 난 뒤에 그 부처님의 삼매에 드신 모습에 공양 올린다고 하늘에
서 꽃비가 내린다. 이런 광경에 대한 느낌이에요, 우리의 느낌.
뭐라고 하는고 하면 법의 희열과 감동에 대한 육근의 느낌.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가 그냥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좋으니까 막 전율이 일어나는 거죠. 전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걸 육종진동(六種震動)이라 그래요.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그리고 또 어떤 경우는 육종 십팔상으로 진동한다 그랬어요.
육근(六根)·육진(六塵)·육식(六識), 그러면 십팔계(十八界)야.
고거는 틀림없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조금만, 진도 한 5~6만 되어도요, 집이 막 무너지고 형편없지 않습니까? 그런
데 여기에 표현된 것만 보면 지구가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사정없이 흔들리고
깨지는 상태이거든요.
그런데 요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느낌이.
느낌이 마치 그렇게 흔들리고, 솟아오르고 막 그런 그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이건 진실이에요. 그러나 사실은 아니야.
이런 사실이 있는 것은 아닌데 느낌이 그러니까 이건 진실이라구요.
그렇게 됩니다. 경전에 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그 뭐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죠. 어떤 상황에서도 예를 들어서 아주 신
기한 것을 보면은 뭔가 어떤 그 조용하죠. 조용한 상태인데도 전율이 일어나는
거죠.
뭐 그림을 봐도 그럴 수가 있고 음악을 듣고도 그럴 수가 있고.
그런 예가 한 두가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특히 경전에서는 부처
님의 어떤 그 세계를 표현할 때 육종 진동이라고 하는 이런 이야기를 잘 합니
다 아주.
어떤 상서로운 광경을. 그렇다고 해서 지구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죠. 말이 지
구가 흔들리는 것 같지만, 그 느낌이 지구가 흔들리는 것 같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배고파 죽겠다.’ 그러고, 그거는 아무도 그거는 말이 잘못 되었다고 말 안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을 따져보면 잘못 된 말이라.
죽을 정도가 아니야. 한 번 쯤 굶어도 안 죽는데 한두 번 안 먹어서
안 먹어서 죽겠다 그러는데 그거는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라.
그 사람의 현재의 상태가 진리이라구요, 그게. 배가 그만치 고프다 그거예요.
그러니 사실은 아니야.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사실은 아니죠.
그러나 그 말의 진실은 들었어요. 그런 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일상 생활에 그런 말 아주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부지기수로 쓴다
구요.
뭘 이렇게 일을 시켜 놓고 ‘안 하면 죽여.’이런 말 막 하지.
죽일 듯이 혼을 내긴 하지만 죽이는 것 하고 거리가 아주 천양지차(天壤之差)
로 멀죠. 그러나 그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그 사실은 아니지마는 그 마음은 그
렇게 어떤 진실이 담겨 있는, 그 말 속에 진실은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고
렇게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 안그러면 무슨 염○가 있겠는가?
지구가 이 정도로 흔들린다면 남아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말이에요. 그
러나 요런 광경을 겪는 대중의 마음은 이렇게 표현해야 맞아. 이렇게 표현해야
맞지 안그러면 부족해서 성이 안차죠.
우리 일상 생활에 그런 말을 찾아 보면 얼마 든지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爾時會中(이시회중)에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와 天龍夜叉(천룡야차)와 乾달婆(건달바)와 阿修羅(아수라)와 迦樓羅(가루라)와 緊那羅(긴나라)와 摩후羅伽人非人(마후라가인비인)과 及諸小王(급제소왕)과 轉輪聖王(전륜성왕)과 是諸大衆(시제대중)이 得未曾有(득미증유)하사 歡喜合掌(환희합장)하고 一心觀佛(일심관불)하더라
|
이시(爾時)에 회중(會中)에, - 회중 하는 것은 ‘법회 가운데’이죠. -
그 때 법회 가운데에서, 법회 중에서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와 우바새
는 남자 신도, 우바이는 여자 신도.
또 천룡 야차, 건달바,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 인비인(人非人)
-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그런 부류 - , 그리고 여러 소왕들 작은 뭐 면장이라든
지 군수라든지 작은 나라의 왕이라든지 그리고 전륜성왕, 이거는 큰 나라를 다
스리는 왕을 전륜성왕이라 그래요. 전륜성왕과 이 모든 대중들이 得未曾有(득
미증유)하사, 미증유, 일찍이 이런 일은 보지 못했다. 이런 일은 보지 못했다
하는 것. 처음 보는 일이다. 그걸 미증유(未曾有)라 그러죠. 미증유를 얻어서
환희합장하고 ‘화아~’ 너무나도 기분이 황홀하고 기뻐서 환희하는 마음으로
합장을 하고서
일심관불(一心觀佛)이라
부처님을 뚫어지라고 쳐다보고 있는거죠.
일심으로 부처님을 보고 있더라.
광경이 이쯤이면 누구라도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을, 뭔가 큰일이 일어
날 것만 같은 그런 조짐인거야.
그리고 너무나도 기분이 상쾌하고 좋고. 그러니 아니나 다를까 그때
爾時佛(이시불)이 放眉間白毫相光(방미간백호상광)하사 照東方萬八千世界(조동방만팔천세계)하야 靡不周遍 (미불주변)하니라
|
부처님이
爾時佛(이시불)이 放眉間白毫相光(방미간백호상광)하사
이시에 불(佛)이 방미간백호상광(放眉間白毫相光)하사
미간에 백호상광을 놓았다.
그리고 어떻습니까? 부처님은 삼매에 들어있어요.
삼매에 들어있는데 세계는 육종으로 진동을 하고 대중들은 이렇게 많이 모여가
지고 환희 합장하고 일심으로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삼매에 들어 있다가 문득 방광(放光)을 하시는거죠.
미간백호로부터 방광을 했다. 이 말입니다. 방광.
그래가지고 저 동방 만 팔천 세계를 비춘다, 동방으로 일만 팔천 세계를, 만
팔천 세계를 비춘다. 요것도 만 팔천 이라고 하는 게 육근(六根), 육진(六塵),
육식(六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또 우리가 말하자면 삶을 펼쳐가는 모든 부분 부분을 다 통틀어서 말 할
때 십팔계라 그래요. 십팔계(十八界).
육근(六根), 육진(六塵), 육식(六識).
육근(六根)은 뭡니까?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육진은 육경이라고도
하는데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
눈(眼)의 대상이죠. 눈은 사물을 보니까 사물의 색(色)이야. 귀(耳)는 소리니
까 소리는 성(聲)이고 코는, 비(鼻)는 향(香)이 비(鼻)의 경계 대상이고, 고런
관계에서 우리 인식이 그 속에 있잖아요. 우리 안(眼)이 눈이 사물을 볼 때
‘아, 저 사물은 뭐가 어떻다.’하는 분별 인식이 거기서 활동을 하는 거예요.
결국은 우리가 활동을 하고 있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뭔고 하니 열여덟 가지
야. 18계(界) 뿐이라구요.
그러니까 우리가 만 팔천 이라고 하는 것이 18계를 좀 부연하면 그렇게 하는거예
요. 인간의 모든 삶의 세계를 전부 비춘다.
이 뜻입니다. 인간의 모든 삶의 세계를 다 비춘다.
환히 부처님 백호상을 비춰가지고서 환희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렇
게 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미불주변(靡不周遍) 이야.
비추지 아니한 데가 없더라.
어떤 일들이 있지요? 우리는?
⑵ 他土六瑞
(①見六趣瑞 ②見六諸佛瑞 ③聞諸佛說法瑞 ④見四衆得道瑞 ⑤見菩薩所行瑞 ⑥見佛涅槃瑞)
下至阿鼻地獄(하지아비지옥)하고 上至阿迦尼타天(상지아가니타천)하며 於此世界(어차세계)에 盡見彼土六趣衆生(진견피토육취중생)하며 又見彼土(우견피토)에 現在諸佛(현재제불)하고 及聞諸佛所說經法(급문제불소설경법)하며 幷見彼諸比丘比丘尼(병견피제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의 諸修行得道者(제수행득도자)하며 復見諸菩薩摩訶薩(부견제보살마하살)이 種種因緣(종종인연)과 種種信解(종종신해)와 種種相貌(종종상모)로 行菩薩道(행보살도)하며 復見諸佛(부견제불)이 般涅槃者(반열반자)하며 復見諸佛(부견제불)이 般涅槃後(반열반후)에 以佛舍利(이불사리)로 起七寶塔(기칠보탑)이러라
|
下至阿鼻地獄(하지아비지옥)하고 上至阿迦尼타天(상지아가니타천)하며 於此世
界(어차세계)에 盡見彼土六趣衆生(진견피토육취중생)하며
밑으로는 아비지옥에 까지 이르며, 우리가 뭐 지옥 짓거리를 얼마나 합니까?
또
상지아가니타천(上至阿迦尼타天)이라
천상에 가 있는 듯한 그런 시간도 또 있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의 광명이 지
옥에도 비추고 저기 천상까지 비춘다.
우리의 삶이에요, 그게. 전부 우리의 삶의 모습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아가니타천이라고 하는 것은 유정천이라 해서 제일 높은 하늘을 유정천이라.
그러니까 그런 우리가 그런 천상에 가 있는 듯한 그런 시간도 있고, 지옥에
가 있는 듯한 그런 시간도 있고 그런 모든 것들을 부처님은 다 지혜로써 아신
다.
於此世界(어차세계)에 盡見彼土六趣衆生(진견피토육취중생)하며
이 세계 안에 있는 그 국토의 육취중생(六趣衆生) - 지옥(地獄)·아귀(餓鬼)
·축생(畜生)·인도(人道)·천도(天道)·아수라(阿修羅), 이게 육취죠. -
그런 류의 중생들을 다 본다, 진견(盡見). 부처님의 광명을 통해 다 본다.
又見彼土(우견피토)에 現在諸佛(현재제불)하고 及聞諸佛所說經法(급문제불소설
경법)하며 幷見彼諸比丘比丘尼(병견피제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
바이)의 諸修行得道者(제수행득도자)하며
또 본다, 우견(又見). 또 그 국토에 - 동방만팔천세계(東方萬八千世界)라고 하
는 그 국토입니다. - 그 국토에
現在諸佛(현재제불)하고 及聞諸佛所說經法(급문제불소설경법)하며
그 국토에 현재 있는 모든 부처님을 다 봐.
급문(及聞)
또 듣는다 이말 이여.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기도 한다, 무엇을?
제불(諸佛)의 소설경법(所說經法)
모든 부처님의 설하고 계시는 경을 전부 앉아서 다 들어.
그러니까 중생 세계 뿐만 아니라 부처의 세계까지도 부처님의 광명 속에 다 포
함된 거예요.
전부 다 포함된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광명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이렇게 쉽게 넘겨 들을 일이 아니고 또 선정
의 문제와 다시 말해서 삼매, 삼매의 문제와 광명의 문제는 경전마다 삼매(三
昧)가 나오고, 선정(禪定)에 들었다 하는 것이 나오고, 그 다음에 광명(光明)
이 나옵니다. 이건 경전 마다 다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마침 서두에 이러한
것이 나왔기에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말면은 이 중요한
것이 다 흘러가버리고 만다구요. 내가 말하면 여러분들이 일일이 다 적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노트 - 이렇게 중요한 대목만 - 했는데 한번 이제 보죠.
삼매(三昧)와 방광(放光)이라 그랬죠. 유인물.
삼매는 우리가 선정에 든 거예요. 아까 설법하기 전에 입정하는 것을 간단하게
우리의 삼매라면 삼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부처님의 삼매가 있겠지요.
그리고 미간 백호상으로부터 광명을 놓았다 하는데 그게 이제 방광.
이건 뭐 방광 이야기는 많이 아는 내용아닙니까?
선정의 딴 이름이다. 경전의 방광 뿐만 아니고 어떤 탑에서 방광했다, 어떤 큰
스님 돌아가시며 방광했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그 뜻을 아주 정
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삼매란 선정의 딴 이름이다.
선정에 들어있다, 삼매에 들어있다. 그러죠.
그리고 기도 일념이 되었거나, 화두 일념이 되었거나 그런 상태입니다.
그 다음에 방광은 지혜를 상징한다 그랬어요.
지혜를 뜻할 때, 부처님의 깨달은 그 지혜를 뜻할 때 말하자면 방광이라 그래
요. 빛을 발한다, 부처님의 몸속에 무슨 전기가 많이 들어가지고 빛을 그렇
게 놓겠어요? 뭐 어느 정도 빛은 가능하기는 해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런
빛은 넘어서 방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부처님의 지혜를 뜻하는 것입니다.
빛, 그 한번 쭉 비치는 그 무슨 의미가 있어요?
비쳤다 사라지는 그것 아무 의미 없어요 그거.
부처님이 항상 가지고 계시는 말하자면 지혜를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방광은 지혜를 상징한다.
상대적(相對的)인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절대(絶對)와 합일(合一)을 하시는
것이 삼매다 라 그랬어요. 이건 뭔 말 인고 하면 우리가 아까 교리 시작하
기 전에 말하자면 잠깐 삼매에 있었잖습니까?
그럴 때 어떻습니까? 뭐 화두를 들거나 염불을 했거나 하는 경우도 있겠지마는
내가 여기에 있다라는 사실을 아마 알았을 거예요. 누구든지. 그거 알면 제일
쉬워요. 손뼉 딱 세 번 치고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숨을 죽이고 앉아 있으면
한참 앉아 있으면 처음에는 잡념이 좀 일어나도 한참 있으면 ‘내가 여기에 이
렇게 있다.’ 라는 걸 알게돼.
그게 뭐겠어요? 합일(合一)이야. 합일.
떠돌아다니던 마음하고, 여기 앉아있는 나 하고 - 육신하고 - 합(合)이 되는거
야. 그거 참 묘한거죠. 그러다가 또 심심하면 또 떠나가. 딴 데가서 친구도 만
나고, 집에도 가고 뭐 온갖 것, ‘왜 공부 안하나? 뭐 이렇게 앉혀놓고 그냥
... ’ 그런 생각도 하게되구요. 그땐 벌써 앉아 있어도 합일이 제대로 안되는
거야. 합일이 되어야 되거든.
그러니까 이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합일하는데 뜻이 있습니다.
상대적인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절대에 합일하는 것이 삼매다.
우리로 치자면 뭐 육신과 마음이 내가 여기에 이렇게,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조용히 말하자면 명상하는, 하나가 된 상태에서 명상하
는, 그랬을 때에 경전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와요.
딴 생각하고 있다가 뭐 죽비치고 또 이야기하면 잘 안 들어가죠.
죽비치고 잠깐 입정했을 때에는
‘내가 여기에 무엇을 하려고 여기에 있는가?’를 인식하는 그것이 합일 상태
이거든요. 나 자신을 바로 인식하는 그것이 아주 제일 필요한 그 시간의 말하
자면 필요한 삼매입니다. 그 시간에 필요한 삼매이죠. 그 삼매고, 이 삼매로
부터 지혜가 나오는 것이다 그랬어요. 이 삼매로부터. 그러니까 이 삼매에서
방광을 했지요. 이 삼매로 부터 방광을 했다구요. 그러면 지혜는 예를 들어서
경전공부 라고 합시다. 마음이 가라앉아 있어야 경전공부가 잘 돼.
아주 똑 떨어지는 소리라구요. 그래서 누구든지 들떠 있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공부하기 전에, 참선하기 전에, 설법하기 전에, 기도하기 전에 딱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을 집중시키는 그런 그 의식을 우리가 하는데, 바로 거기에 있
습니다. 이 삼매로부터 지혜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분별해서 생기는
우리의 상대적 지식과는 다른 절대지라 해야 할 것이다.
그 쯤 되면 좋지요. 정말 절대적인 지혜가 거기서 나오는 경우인데 우리 수준
에는 다음에 설해질 법문, 무슨 공부라도 가라앉은 마음으로 조용히 할 수 있
었으면 하는데 그게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지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백호에서 나온 빛(放眉間白毫相光)이 동방의 만팔천세계(東方萬八千世
界)를 샅샅이 비췄다는 표현이 과장된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의 지혜가 절대적인 것이라 할 때 시간, 공간의 제한이 있을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니 어찌 동과 동방에만 국한 되랴!
서방·남방·북방도 비칠 것이며 만 팔천 국토 뿐 아니라 무량한 세계를 비추
신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니 부처님의 그 지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제일 잘 표현한 말이요, 부처님을 표현할 때 가장 정곡을 찔러서 하
는 말이 뭔가 하니 지혜입니다, 지혜.
부처님 지혜에 있다.
물론 자비도 중요하지만 지혜 없이는 자비가 제대로 맥을 못 춥니다. 실컷 자
비를 행해도 그게 잘못되는 수가 많아요. 우리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요, 실컷
남을 위한다고 했는데 그게 잘못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한 소년이 구걸하고 있다. 그런데 안 되어서 (마음이 안쓰러
워서) 줬다 이거예요. 그런데 그 준 돈이 어디에 쓰일 줄은 모르는 거야. 이
놈이 마약을 하고 있는 놈이라면 당장에 가서 마약을 사 먹을 거야 또.
정말 배가 고파서 끼니를 때우는데 그 구걸하는 거라면 그거는 우리가 생각하
는 것 하고 딱 맞아. 맞지마는 사실은 그게 어디 쓸지 몰라.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에는 우리는 잘 한다고 했는데
물론 잘 한다면 복이 되겠지.
그러나 그것이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그런 경우도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지혜를, 자비보다도 지혜를 강조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
니다. 그래서 무량세계를 다 비춘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우리도 또한 방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중요해요. 뭘
우리가 하는 방광이냐? 여러분들 전부 방광하고 있어요.
꽃을 보고 우리가 아름답다 느낄 때.
그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나름 대로의 방광이야.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뭔가 여러분들은 마음을 보내어 가지고 마음
을 써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있고, 그 나름대로 표현을 하고 있고, 생각을 하고
있고 마음을 쓰고 있는 이 그대로가 방광입니다.
여러분들의 지혜 만치만 듣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지혜 만치, 지식만치만 듣고
소화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겠어요?
우리 각각 닦은 그런 어떤 지혜이죠. 그걸 ‘마음의 작용을 방광이라한다.’
이렇게 알아도 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지혜를 통해서 우리들의 - 중생들의 세계를 - 환히 들여다
보고 있다.’ 라고 내가 그렇게 이야기한 게 바로 그 점이죠.
우리가 말하는 광명이 꽃을 바로 꽃을 비추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꽃을 보고
아름답다 느끼는 바로 그 점이고, 산과 바다와 들과 달을 인식하는 경우도 같
다. 산을 본다, 달을 본다, 바다를 본다 ... 그게 뭐예요? 전부 그게 우리가
말하는 방광이에요. 그게.
우리 마음의 작용없이 그게 가능하겠어요? 마음의 작용이 그대로 방광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과 같다.
그 뿐인가? 내가 법화경을 읽을 때 미간 백호에서 나온 광명이 부처님의 세계
를 비추고 있음에 틀림없다. 우리가 법화경을 공부하면 내 나름의 광명이, 마
음의 광명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화경을, 부처님의 세계를 더욱 내 나름대로
비춰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추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다만 우리의 범부의 방광은 어때요? 무명에 가리웠기에 불완전하게 미약한 차
이가 있는 것 뿐이다. 부처님하고 비교하면 조금 차이가 있지요.
또 이 자리에 있는 우리도 사람 마다 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방광. 똑 같
은 꽃을 보고도 그 방광이 다른 거예요. 느낌이 다르다 이 말입니다, 느낌이
다르다. 이게 중요해요.
부처님의 백호 상광은 표현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 표현 그대로.
그러니까 그 의미는 진실이라 이말입니다.
‘우리가 방광하고 있다.’하는 걸 걸 알아야 돼요.
부처님의 방광, 그건 사실 부처님의 일이고,
‘나는 어떻게 방광할 것인가? 내가 하고 있는 방광은 뭔가?’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래서 그 방광을 좀더 우리 일상에다 이끌어서 법화경하고 연관시켜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일상에 말하자면은 응용을 해서 내 생활에 말하자면 어떤 실용
화해야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거죠. 결국은.
방광의 질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명을 놓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
을 쓰고 있는데 법화경을 통해서 그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우리의 마음의
광명을 어떻게 비춰볼 것인가?
이게 법화경에 대한 해설이었는데 공간이 있어서 좀 이렇게 메꿔봤어요.
법화경은 그 내용이 소중한 것인가? 그랬습니다.
또 그 정신이 훌륭한 것인가?
또 그 가르침은 실행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 가르침을 이해하고 믿고 실천하는 것에 의해서 평범한 사회생활을 꾸려가면
서도 어떻습니까? 우리가 수 많은 걱정과 괴로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심정
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법화경을 통해서 평범한 사회생활을 꾸려가면서도 수 많은 걱정과 괴로움에 마
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마음의 경지, 심경.
거기에 가까워지는 거죠.
그것을 확 떨쳐버리면 더 말할 나위없이 좋고 법화경을 통해서.
그렇지마는 거기에 몸을 빼앗기지 않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덜 흔들리려고
하는 그런 마음에 자꾸 가까워지려고 하는 그런 일은 가능할 거예요.
여기 다니시는 분들은 우리가 법화경 기도 시작을 했어요.
여기에 아주 마음을 딱 이렇게 붙들어 매가지고 열심히 하신다면 이거는 아마
가능하리라고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사람과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고 - 특히 우리 가족들 끼리 - 그
다음에 이웃들, 친척들 자꾸 이렇게 높여 나가야겠지요.
그리고 사람들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이지 않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심정으
로 변화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요건 이제 보살의 마음이죠.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고, 뭔가를 봉사하고 싶고,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그냥 저절로 마음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그런 심정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 참 얼마나 좋은 일
이겠습니까? 이게 보살이고 우리가 불교를 믿는, 그런 그 뭐라고 할까,
그런 그 공덕이라고 할까, 그런 그 효과라고 할까...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아마 이렇게 되어야되겠죠.
사람과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고 사람들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이지 않고는 견
딜 수 없는 것,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그런 식으로 변화되어야하는 것이다. 예
를 들어 하루에 그저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그러한 마음이 되어 본다면, 뭐 한
시간만이라도 좋습니다.
그 사람은 건강도, 주위 환경도 자연히 바뀌게 될 것이다. 자기 건강도 달라지
고, 자기 주위 환경도 달라지죠. 틀림없어요.
이것이 진정한 구원이다!
부처님의 구원을 얻었다! 예를 들어서
법화경을 통해서 나는 구제 받았다!
구원을 얻었다! 정죄(淨罪)를 받았다!
우리가 가능한 선이 바로 이런 거예요. 뭐 경선이니, 선불이니
그건 다 요원한 이야기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 되어 모두가 평
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법화경의 궁극적인 이상이며 염원인 것이다. 이걸 법화경이 염원
하고 있는 거죠.
부처님이 바로 이런 염원을 하고 있다.
실로 법화경은 인간 존중의 가르침, 인간 완성의 가르침, 인류 평화의 가르침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적인 가르침이다.
이제 우리가 법문을 듣고, 불공을 하고, 기도를 하고, 법회를 동참하고, 이러
면서 자꾸 ‘현실하고 다른데? 현실하고 다른데? 현실하곤 거리가 있는
데?...’이런 생각이 자꾸 들죠. 또 안 맞을 경우가 많고.
‘어떻게 조금이라도, 100분의 1이라도 어떻게 활용하는, 또 쓰이는 그런 길은
없을까?’ 이게 사실은 제일 큰 문제죠.
들에가서 나물이라도 한 바구니 뽑아 왔으면 집에 가서 해먹기라도 하는데, 이
건 뭐 좋은 공부라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또 좋은 공부 같이 여겨짐에는 틀
림없는데 정작 이것을 우리 일상생활에 뭔가 이렇게 내 자신이 변하고 생활이
달라지고 하는데 연관되게 하는 이런 것을 생각하면 참 답답할 때가 많고 오리
무중이야.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고 하는 그런 경우를 아마 여러분들이 많이
겪으실 것 같애요.
그래서 여기서 고런 것을 염두에 두고, 비단 여기서 법화경 공부 뿐만 아니고
어디 다른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적인 모든 일들이 기도나, 뭐 모든 것이 마찬가지예요.
기도나 참선이나 이렇게 되어져야 그게 부처님의 그 마음이고, 불교의 마음이
다. 불교의 꿈이 아주 그 꿈이에요. 여기 '법화경은...' 하고 여기 아주 설명
이 잘 되어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분의 해석을 인용을 해서 내가 이렇게 소개
를 해드렸습니다.
오늘은 18번 끝까지, 19번 전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법화경을 통해서 그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 明星華님! 감로의 법공양 고맙습니다... _()()()_
호위하심이 어찌 한 두번 이리오?...._()_
옳사옵니다..... ^^*
상대적인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절대와 合一을 하는 것이 삼매이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다.’ 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이 합일이다. 떠돌아다니던 마음하고 여기 앉아있는 나 하고 合이 되는 것이다. 이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합일하는데 뜻이 있다. 나 자신을 바로 인식하는 그것이 그 시간의 제일 필요한 삼매이며, 이 삼매로부터 지혜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분별해서 생기는 우리의 상대적 지식과는 다른 절대지이다... 明星華님! 감사드립니다... _()()()_
佛說此經已에 結跏趺坐하시고 入於無量義處三昧하사 身心不動이러라...부처님이 이 경을 설해 마침에 가부좌를 맺고 앉으시어 무량의처라고 하는 삼매에 들어가시니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더라...明星華님! 수고하셨습니다..이 고마움을 어떻게..._()()()_
부처님의 백호 상광은 표현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 표현 그대로. 그 의미는 진실이라. 법화경은 인간 존중의 가르침, 인간 완성의 가르침, 인류 평화의 가르침. 즉 한마디로 인간적인 가르침이다...明星華님! 고맙습니다._()()()_
법문정리 감사합니다_()()()_
법화경 기도---사람과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고 - 특히 우리 가족들 끼리 - 그 다음에 이웃들, 친척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고, 뭔가를 봉사하고 싶고,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을 키우고 증장시켜 나가는 일... 감사합니다

※ 위 법문 중간 쯤에 ( 그러니까 고렇게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 안그러면 무슨 염○가 있겠는가? ........ ) 에서 수 십번을 들어도 정확히 못 알아들었습니다. 앞 뒤 문맥상 염치? 는 아닌 것 같고..... ^^* 만약 틀린 글자나 내용이 있으면 언제라도 꼭 말씀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무량화* 님 ! 般若 님! 마니주 님! ...... 봄을 향하여 새끼 손가락을 가만히 내미는 고요한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귀하신 걸음마다, 또 모든 분들께 행복하신 매일 매일 함께 하시옵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_()()()_
아무리 들어도 '염치' 로만 들리니 어쩌지요?
저도요..._()_
()
^^* _()_
_()()()_
^^*_()()()_
부처님이 바로 이런 염원을 하고 있다. 실로 법화경은 인간 존중의 가르침, 인간 완성의 가르침, 인류 평화의 가르침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적인 가르침이다...... 明星華님! 님께서 정리하신 법문은 "김소월님의 진달래꽃"을 자꾸만 연상시키게 됩니다.....잘 거닐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_()()()_
늘 사진 속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려지는 一輪月 님
제가 부족한 사람이어 언제나 소중하신 님들께서 베풀어주시는 불사에 모두 참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서로를 늘 이해하는 마음이 있으니 .... 이렇게 몸소 오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_()()()_
_()()()_
_()()()_
_()()()_
명성화님...


어이쿠


.... 寶 月 님 황송하옵니다. 
明星華님 법공양 감사 드립니다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_()()()_
_()()()_
항상 천사같으신 청정안 님
.......명주 님
....... 
하세요

_()()()_
_()()()_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_()()()_ 明星華님 고맙습니다 환희심이나게 도와주시여 감사합니다 _()()()_
법공양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_()()()_
스님.명성화님께._()_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내가 여기에 무엇을 하려고 여기에 있는가?’를 인식하는 그것이 합일 상태.
나 자신을 바로 인식하는 , 아주 제일 필요한 그 시간이 삼매.
법화경은 인간 존중, 인간 완성, 인류 평화의 가르침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적인 가르침.
묘봅연화경 묘법연화경 묘법연화경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았읍니다
법회 청중이 다양하고 악인,악신도 포함된 것
;부처님이 교화하는 대상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
--부처님의 넉넉한 마음과 큰 자비
방광;지혜를 의미
--우리도 방광하고 있다,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방광의 질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사이 좋게 지내고 나중에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는 것
-보살의 마음
-부처님 공부의 효과,공덕
-이렇게 되면 자신의 건강도 주위 환경도 바뀐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