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교육제도는 외견상 우리의 교육제도와 대체적인 골격에서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교육구조는 5살부터 11살까지 초등학교에서 6년, 12살부터 18살까지 중·고등학교에서 6년을 보내게 되어 있으며, 2회의 국가고사(O레벨과 A레벨)를 거쳐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나라의 교육체계와 여러 가지로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우 선 교육여건이 우리의 교육환경과 현저히 달라 한 반의 학생수가 평균 20명에서 30명 수준 이며, 교사와 학생 간의 비율도 1대 16 정도이다. 이러한 지수는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더욱 낮아서 한 반의 학생수도 10여명선이며, 교사와 학생의 비율도 1대 10으로 나타나 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국가가 경영하는 공립학교에서의 교육이 무료라는 사실이다. 의무교육이 끝나는 16세까지 학생들은 학교당국에 수업료나 기성회비를 내는 일이 없으며, 부모들이 교 사들에게 촌지를 바치는 일도 없는 것이다. 학교교육에 필요한 기재와 시설(예컨대 실험실 습실, 도서실, 체육시설)이 완벽하게 교육현장 안에 갖추어져 있는 것은 물론, 교과서와 필 기기구도 모두 학교에 비치되어 있어 우리 나라와 달리 학생은 부모의 재정적 도움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다. 지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방의 초등학교의 경우에 는 스쿨버스가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통학문제도 지방교육청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러한 무료교육이 물론 사립학교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립학교는 초등교육이나 중·고등 학교의 경우를 가리지 않고 비싼 수업료를 받고 있으며, 대신 학교는 돈을 많이 받는 만큼 보다 훌륭한 시설과 교육환경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사립학교는 국가의 보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히 학생들의 수업료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수의 부유한 부모들 이 교육의 질을 선택하여 공립학교의 무료교육 대신 사립학교의 비싼 교육을 선호하는 경향 을 보이고 있다. 근년의 통계에 의하면 영국 내의 전체 학생수의 6.6%가 사립학교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 나라에 영국고등학교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튼(Eton), 해로(Harrow), 윈체스터 (Winchester) 같은 학교가 모두 사립이며, 이들 학교에의 입학은 심한 경쟁을 거치는 상황 이다. 영국이 트라팔가해전에서 이겼을 때 넬슨 제독이 전쟁의 승리는 이튼의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을 만큼 이튼이나 영국의 사립학교 교육은 영국의 교육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명문 사립학교들은 튼튼한 재정과 오랜 전통을 배경으로 훌륭한 교육환경을 더욱 좋게 향상시키고 있으며, 이와 정비례해서 보다 나은 학업성취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사립학교 는 넉넉한 보수로 훌륭한 교사를 영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 을 주어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을 사학으로 몰리게 하는 현상마저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결 과로 명문대학에의 입학이 이들 사립학교에 보다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많은 명문 공립학교가 정부의 보조를 사양하고 독립된 사립학교 체제로 전환한 이유도 바로 전통있는 기존 사립학교의 성공적 사례에 근거하고 있다. 정부의 제한된 보조와 교육부의 통제가 학교의 발전과 교육의 질에 역행하고 있음을 절감하여 유수한 인문계 고등학교인 그 라마스쿨들이 독립체제로 변신을 한 것이다. 옥스포드와 케임브릿지의 입학에서 항상 상위 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멘체스터 그라마 스쿨(Manchester Grammar School)이 그 대표적 인 예이다.
사회주의적 정치체제를 표방하는 영국에서 이러한 사학교육이 오랜 전통을 유지하면서(가장 오래된 사립학교인 윈체스터 스쿨은 1382년에 건립되었다) 아직도 그 뿌리가 계속 건강하게 뻗어가는 이유는 영국의 교육이념이 우리가 표방하는 미국식 교육이념과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의 교육이념은 영재교육이다. 재능 있는 학생을 학업성취도가 느린 학생의 수준에 맞추 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개개인의 특수한 능력에 맞추어 시행하기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빠 른 학생은 빠른 속도를 그대로 장려해 주는 것이다.
인간이 모두 똑같은 능력과 역량을 타고 난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학교교육은 일찍부터 개 개인이 타고난 재능과 기량을 선별적으로 가려 내어 거기에 알맞은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교육의 이상이며 목표이어야 할 것이다. 영국의 어느 유명한 소설가가 역설했던 것처럼 나 폴레옹을 음악대학에 입학시켜봐야 베토벤 같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 아니며, 역으로 베토벤 을 육사에 입학시켜 봐야 나폴레옹 같은 위대한 장군이 될 수 없는 철칙을 이들 영국식 교 육은 현실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정신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에도 철저히 적용되어 있다. 전국의 초등학생 들을 대상으로 11살에 지능·적성검사를 실시하여 학생들의 역량에 따라 인문계학교와 실업 계학교로 분리하여 진학시키던 과거의 교육제도나 개정된 제도 하에서 능력에 따라 우열반 을 편성하는 현행 종합학교 (Comprehensive School)의 교육제도가 모두 평준화를 인정하지 않는 교육의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정신은 한 개인이 천부적으로 타 고난 가능성을 가려 내어 그러한 기량을 장려하고 개발하는 교육적 이념에 근거를 두고 있 다.
학생들이나 부모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는 체제에 불만이 없다. 여러 차례의 시 험을 거쳐 자신의 역량을 평가받고, 그 평가에 따라 개개인의 취향을 살리는 공부를 하게 되며 그에 따른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어 국가기관에 의한 평가와 판정에 불평을 하지 않는 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16살에 의무교육이 끝나면 중등교육자격증인 GCSE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를 받게 되며, 학구적인 삶을 택하지 않는 학생들은 이 GCSE를 가지고 사회에 바로 진출하거나 2년제 전문대학으로 진학하여 직업인으로서 훈련 을 더 받게된다.
GCSE는 1988년에 시행된 것으로 1951년부터 통용되던 중등교육자격증인 CSE(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O 레벨을 개정한 것이다. 학생들이 중등교육에서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평가를 받는 증서로서, 개개 학생은 자신의 장래와 결부시켜 자신이 임의로 선택하는 과목을 시험의 대상으로 한다. 과목 수는 대개 5~7개 정도이며, 여기에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변수가 따르기도 한다. 이것은 16세의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중등교육의 4단계를 정리해야 하는 자격증이기도 하다.
GCSE 다음의 자격증은 GCE A 레벨이다. 이것은 O 레벨의 다음 단계로, O가 Ordinary(보 통)의 약자인 반면 A는 Advanced(고급)의 약자이다. 학생은 GCSE를 치룬 2년 뒤에 이 시 험을 치루게 되며, 과목은 대개 2~3개이다. 물론 학생의 여력에 따라 5과목을 치루는 예외가 없지 않지만, 90% 이상의 학생들은 3과목으로 만족하며 대학교의 선발 기준도 3과목으로 충분하다.
이 A 레벨을 통한 평가는 사지선다형 시험이 아니라 주관식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시험방법 으로, 과목 수가 적은 대신 상당히 전문화된 추세를 보인다. 미국에서 상당수의 대학들이 영 국의 A 레벨 자격증을 취득한 학생들에게 학부의 1학년 과정을 면제해 주는 상황이 이 시 험의 평가수준을 가늠해 주고 있다. 10과목 이상을 OX식 사지선다형으로 시험치기 위해 암 기 위주의 공부에 몰두하는(그래서 대부분 시험이 끝난 다음 무엇을 외웠는지를 잊게 되는 소모적이며 낭비형) 우리의 고3 교육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우리의 입시공부가 대학에 가 기 위해 기술적인 지식의 테스트를 받는 것인데 비해 영국의 A 레벨 시험은 대학에서 배우 는 학문의 영역에 대한 기초작업을 확장하는 한 과정에 대한 평가로서 그 의미를 지니고 있 다.
A 레벨은 의무교육이 끝난 다음이어서 실제 이 자격증을 획득하는 학생의 수는 영국의 고 등학교를 이수하는 학생 전체의 25%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A 레벨을 준비하 는 학생들은 자신의 고등학교에 그냥 남아 2년 동안 이 과정에 대한 준비를 하거나(이 경우 대개는 유명 사립고등학교의 경우) 아니면 6th Form College로 옮겨가 공부를 하게 된다. 이 6th Form College는 우리 나라의 고3반에 해당되는 전문학교 수준으로 대개는 자기가 다닌 고등학교에 고3 반의 시설이 없을 때 선택하는 특수학교이다. 영국에서는 1992년에 정 부가 새로 교육령을 발표하여, 국가가 운영하는 종합고등학교의 상급반을 몇 그룹씩 묶어 하나의 6th Form College를 만들었으며, 대개는 한 학교에 5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다(여 기서도 졸업생 모두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교과과목도 대학진학을 원하 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개설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
자신이 다닌 고등학교에 고3 반이 따로 없어 몇 개의 종합고등학교가 연합으로 고3 반을 만 든다거나 고교졸업생의 25% 정도만이 A 레벨 자격증을 딴다는 사실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수가 그만큼 적다는 영국적 현실을 뜻하고 있다. 최근 4, 5년 사이에 기존의 전문대학이 정규 대학으로 체제를 바꾸는 교육변화가 영국에도 생겨 대학으로 진학하는 수가 50%를 선 회하고 있지만, 대체로 영국 내에서 대학으로 진학하는 열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모두가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우리의 현실과는 매우 상황이 다르다.
영국에서 느껴지는 대학에 대한 인식은 적성에 맞는 교육을 의무교육 연한까지 받는데 대한 통념에 근거를 하고 있어, 대학이 반드시 필수적 과정으로 거쳐야 하는 교육의 종착역이 아 니다. 중·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사회에 진출하여 직장을 얻고 한 개인으로서 만족한 삶 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대학이라는 부가적인 단계를 생략할 수 있으면 속성 코스를 밟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현 노동당의 블 레어 수상 직전의 보수당의 메이저 수상이 O 레벨만으로 사회에 나간 것이 그 좋은 예이 다). 이것은 영국사람들이 갖고 있는 행복에의 인식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중요한 사실 을 암시하는 예이다. 대부분의 영국사람들이 인생의 주어진 여건 속에서 만족하는 반면 우 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상의 것을 쟁취하여 정점으로 올라야 행복한 것으로 인 식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어, 두 나라 국민 사이의 사고에 커다란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영국의 고3 교육에는 우리식의 과외공부가 없다. A레벨 학생들은 학교의 정규 교과 과정에 따라 주어진 시간 안에서 공부를 하며, 3과목 정도를 선택하여 국가고사 준비를 하 기 때문에, 시험문제가 고등학교 정규과목을 착실하게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답을 쓸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리고 대학입학이 우리의 현실보다 대단히 용이하기 때문에 도시락 을 둘씩 싸서 새벽에 학교로 갔다가 밤 11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거나 비싼 과외비를 내어 별도로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영국에도 과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외는 입시를 위한 고3 과외가 아니라 바이올 린이나 피아노 같은 특수과목의 과외이며, 이러한 과외는 입학시험과는 대체로 무관한 성질 의 것이다.
영국식 교육에서 정규과목에 대한 과외는 사립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 학생이 어떤 과목에 서 이해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또는 본인이 자원을 하거나 학생의 담당과목 지도교 사가 권장했을 때, 학생은 그 과목에 대한 과외수업을 받게 되며, 이 경우에는 학생이 학교 에 낸 수업료와 별도로 과외비를 지불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외비는 액수가 많지 않고, 과 외지도도 제한된 시간에 불과하며, 학교 안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조학 습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외는 고3 반과 무관하게 저학년의 경우에 더 많다.
이런 성격의 영국의 과외수업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영국식 과외는 학교 교육이 표방하는 교육목표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모자라는 점을 보완하여 다른 학생들과 학 업성취도에서 균형을 이루는 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보충수업은 학문의 기초를 견고히 하는 방편이며, 교양교육의 폭을 확장하는 수단일 뿐 다른 동료학생을 누르 고 자신이 그 위로 올라가는 약육강식의 훈련이 아니다.
학교교육을 통하여 사회의 정상으로 오르는 것이 부모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고액과외를 받 고 그래서 점수를 더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타고난 능력에 따라 역량을 최대한도로 개 발하는 것이다. A레벨 시험 과목이 3개 정도로 조정되어 있는 이유가 학생의 논리적 사고 능력을 깊이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영재교육은 개인의 재능을 가려 내어 그것을 개발하는 데 역점이 주어져 있다. 이러한 과정에는 극심한 경쟁이나 상대 방 허물기식 교육이 용납되지 않는다. 이것이 영국교육의 특색이고 장점이다.
학교교육은 어디까지나 전인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운동과 체육교육이 중요한 위치 를 차지한다. 대학입시를 전제로 하는 A레벨 시험준비는 따로 설립된 6th Form College로 돌려져 있다. 그러나 이 6th Form College에서도 과외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 은 정규 A레벨 커리큘럼 범위 안에서 공부를 하면 그것으로 국가고사 준비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