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리게 되네요^^;;졸작이라 형편없지만, 그래도 올려봅니다^^;;
생각해보니 수필부문에 냈던 '소설'이네요;;; 주제가 있다보니 실제 경험을 주제어인 '철새'에 맞게 각색하다 보니 어느덧 소설이 되어버렸네요;;;(이건 역시 저를 위한 변명뿐이겠죠^^;;)
어쨌든 그저 비루먹은 작품, 예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겨우 장려상일뿐이니 큰 기대는........
(아, 창피함에 말이 자꾸 길어지고 있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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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의 철새
그 애는 철새 같았다. 매우 작은 키에, 동글동글하게 귀엽게 생긴 얼굴은 철새 중에서 콩새, 라는 귀여운 이름의 새가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름은 공 진영. 이름의 동그란 발음도 그 아이의 귀여운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아이가 철새 같은 진짜 이유는 철마다 돌아다니는 철새와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시험 철’이 되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 가서 친해지고, ‘수행평가 철’이 되면 각 과목 당 수행평가를 잘 보는 아이들과 더 친해지고.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친해지는 그 아이를 아니꼬운 눈으로 보던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물론, 나는 진영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항상 귀여운 얼굴에 상냥한 미소를 띤 진영이는 여자든 남자든 모두가 친해지고 싶어할만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가끔은 몸을 사리지 않고 망가지는 진영이 덕분에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고는 했다. 거기다 공부까지 잘하니, 모두의 질투의 대상이 될 만했다.
진영이가 딱히 나쁘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반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한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에 부러워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겐 없는 능력이었기에.
하지만 여고에서 진영이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존재였다.
파벌―이라고 하긴 우습지만, 어쨌든 그런 비슷한 게 있다―이 중요하던 여고에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파벌도 없이’ 친해지는 진영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다른 아이의 무리와 함께 지내느라 자신의 무리와 지내지 못하는 거면 몰라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분자 진영이는 대다수 아이들의 표적이자 경계의 대상이었다.
진영이와 친해지려면 자신의 무리에서 빠져나와야 할 정도로 아이들은 진영이를 멀리하고 있었다. 그걸 그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평소와 같이 아이들과 웃고, 장난치며 생활을 했다.
“야, 공진영, 짜증나지 않냐?”
“어, 진짜 제대로. 완전 밥맛이야.”
“쟤, 필요할 때만 이거 도와주라, 우리 친구잖아~하면서 붙잖아. 그거 완전 재수 없어.”
“진짜 친구도 아니면서 맨날 필요할 때만 친한 척, 착한 척. 아우, 밥맛이야.”
결국 내가 속해 있는 무리에서도 호박씨를 까는 입들이 벌어졌다. 나는 이 와중에 진영이를 좋게 생각해, 라는 말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없었다. 그저 아무 말 않고 듣고만 있었다. 여기서 말을 잘못했다가는 나는 무리에서 쫓겨나는 것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박쥐가 되어버릴 게 분명했다.
“난 이제 공진영이 뭐 부탁하면 안 해 줄 거임.”
“나도, 나도. 쟤는 진짜 버릇을 고치던가 해야지. 제대로 철새 짓이야.”
“풋, 자기도 알까? 철새가 어떤 뜻인지?”
“모르겠지, 뭐. 알고도 저러고 다니는 거라면, 제대로 밥맛인거고.”
괜히 듣고 있는 내가 안절부절,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진영이도 아니고, 얘들이 진영이를 앞에 세워놓고 욕하는 것도 아닌데, 불안감에 심장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괜히 나를 찌르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라고 물어오는 친구에게 으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불안한 심장에 죄책감까지 덧붙여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게 욕을 한 다음 주의 주번이 진영이와 나였다. 김씨인 내가 3번이고, 공씨인 진영이가 1번이었는데, 하필이면 2번이 갑자기 유학을 떠나게 돼서 나와 진영이가 같이 주번을 맡게 된 것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색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게 되어버렸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결과적으로 보면 나는 무리들에 섞여 진영이의 욕을 한 것이 되었고, 그런 진영이와 친해질 수도 없고, 멀리하기도 싫은 애매모호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저기, 진영아. 너 체육 안 나가?”
“아, 오늘은 배가 좀 아파서 쉬려고. 너는?”
“아, 나도 몸이 좀 안 좋아서…….”
하필이면 체육시간에 둘이 아플 건 또 뭐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아침부터 감기기운이 있어서 체육을 나가지 않고 편하게 쉬려했는데, 옆에서 여유롭게 문제집을 보고 있는 진영이를 의식하며 한 시간 동안 있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감기약을 사발로 먹고 잠들어 버리기라도 할까, 하는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저, 혹시 진영아. 아이들이 너에 대해서……. 아, 아냐.”
침묵만이 감돌던 교실에 조심스런 내 목소리가 울리자 물끄러미 날 쳐다보는 진영이의 눈이 너무 투명하고 무심해서 입을 닫았다. 뭔가 깨끗한 철갑옷을 입고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철새라고 부르는 거? 아니면 회색분자라고 부르는 거? 그거 말고 또 있어? 음, 왔다 갔다 하는 재수 없는 년, 정도이려나?”
옆집 강아지 별명 이야기 하듯이 무심하게 말하는 진영이를 쳐다보는 눈이 저절로 커졌다. 알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뒤에서 아무리 욕해도 대놓고 욕할 정도로 뻔뻔하고, 싸가지 없는 아이들은 한 반에 한두 명 정도였고, 진영이처럼 모두에게 상냥한 아이는 그렇게 싸가지가 없는 아이라고 해도 함부로 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 알고 있는 줄 몰랐나봐.” “……미안.”
“……괜찮아. 어차피 한두 번도 아니고, 일일이 반응하다보면 힘들어서 학교 못 다니지. 그래도 알아서 사과하는 애는 니가 처음이라 조금 놀랐어.”
조금 놀랐다고 말하는 진영이의 얼굴에는 정말로 놀랐다는 게 드러나서 내가 더 미안해졌다. 괜한 입방정 때문에 상황이 더 민망해 졌다고 느껴져서 머리를 책상에 박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절망적인 마음 옆, 한 구석에서는 궁금함이 스믈스믈 기어 올라왔다.
“그럼, 왜 애들이랑 안 다녀?”
“그런 거, 갑갑하고 싫지 않니? 밥 먹을 때도, 정해진 누구들이랑 붙어먹어야 하고, 하교할 때도 누구들이랑 붙어서 하교 하고. 어쩌다 다른 애들이랑 하면 괜히 눈총이나 받고. 갑갑해. 그런 거. 우리 반 애들이랑 다 두루두루 친한 게 좋은데. 그게 안 된다면 그냥 혼자인 게 나.”
문제집을 보며 말하는 진영이의 옆모습에서 괜히 있을 리 없는 흉터 자욱들을 본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견뎠을까. 모진 말로, 모진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진영이의 모습은 더 이상 작은 철새 같지 않았다. 당당하게 자기 소신대로 사는 텃새였다.
오히려 우루루 몰려다니며 소신대로 사는 텃새들을 비웃고, 원하는 것만 취하려고 이곳, 저곳 찔끔 찔끔거리며 다니는 모습의 우리들이 바로 철새였다. 한 곳에서 우직하니 소신을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없었다.
“저것 봐, 또 시작이야. 공진영 진짜 재수 없지 않니?”
“아냐, 내가 진영이랑 주번해봐서 아는데 진영이 착해. 당당하기도 하고.”
“헐…. 까짓 게, 당당할 게 뭐가 있다고.”
“그건 니가 몰라서 그래. 우리 이 얘긴 그만하고, 매점이나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여전히 나는 무리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철새였다. 하지만 떳떳하게 가슴을 쭉 펴고 사는 진영이를 닮고 싶어, 용기와 배짱을 만드는 중이었다. 진영이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진영이가 모르는 곳에서도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진영이의 뒷모습에 괜히 혼자만 아는 웃음을 던졌다. 갑갑하고 무서운 철새의 무리에서 벗어나진 못하더라도, 너보다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거라고. 그래서 가슴을 쭉 펴고 시원한 웃음을 길게 뽑아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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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시 읽어보니 진짜 민망하네요;;;;
첫댓글 굉장한데요 학생이 쓴 글이라기엔 놀랍습니다. 여학생들 특유의 삼삼오오 집단화 습성을 잘 지적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항상 몇명이 강한 유대를 고집하고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은 퇴출, 다른 사람은 영입 금지, 한 번이라도 안 지키면 배신자 이런 인식을 매섭게 지적한 글인 것 같습니다. 이걸 보고 몇몇 우리 학교 학생들이 반성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우리 학교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고인 우리학교가 해당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닌거 같습니다.
와~ 놀랍습니다. 철새란 주제가 주어졌을 때, 그 의미를 살려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자현님은 앞으로 꼭 글을 쓸 사람이라 생각이 듭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면 앞으로 꾸준히 마음을 울리는 글들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수필은 교실 상황을 통해 요즘 학생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심리들을 섬세하게 다룸으로써 철새라는 주제와 잘 결합시킨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제의식도 잘 살렸고 글의 완결성도 잘 살렸습니다. 자현님은 내면의 섬세한 흐름들을 잘 포착해서 언어화 하는 글을 잘쓸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글쓰기 작업 기대할게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