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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에서 갠지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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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Varanasi)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 주 남동부에 있는 도시로, 인도의 젓줄 갠지스강 왼쪽 둔덕에 자리 잡고 있다. 힌두교도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7개 도시 중 하나로 '빛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더욱이 성지 갠지스 강을 끼고 있어 다른 곳 보다 더욱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며, 신앙심이 깊은 힌두교도들은 누구나 일생에 소원이 바라나시를 방문하고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어서 매년 100만 명이 넘는 힌두교나 불교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죽음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삶이 운집한 가장 인도적인 도시이다.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답게 갠지스강가에서 죄를 씻는 종교적인 정화의식을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3천년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 BC 2000년경에는 종교와 철학의 중심지였고 모슬린 ∙ 견직물 ∙ 향수 ∙ 상아제품 ∙ 조각품 등으로도 유명한 상업 및 산업의 중심지였다 한다.
∘ 사르나트(sarnath)
사르나트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후 5명의 제자에게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처음으로 설법한 곳이다. 보드가야에서 성도(成道)한 부처는 그 진리를 가슴에 품은 채 11일 동안 219km를 걸어서 사르나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때 행한 설법에는 함께 수행했던 5명의 수행자와 숲 속에서 나온 사슴이 동석했다 한다. 그래서 이곳을 녹야원(鹿野苑 : 사슴의 동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일설에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브라흐마닷타'왕이 사슴들이 살게 내놓았던 땅이라 하며, 불교의 4대 성지 중의 하나로 굽타 양식의 불상이 많이 만들어진 곳이다.
►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
"진리를 보는 탑", 아쇼카왕이 세운 탑으로 굽타왕조에 의해 증축되었다. 부처가 첫 번째 설법을 했다고 전해진다. '다매크'(Dhamekh)는 법(法)의 바퀴를 굴렸다는 '달마 치크라'(Dharma Chakra, 法輪)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탑의 상층부는 허물어져 있지만 현재도 높이가 34m, 기단은 직경이 36m에 이른다. 지상에서 11m까지는 커다란 돌로 둥글게 쌓아올렸고, 그 위는 벽돌 탑으로 되어 있다. 1835년에 이 탑 속에서 5세기의 서체로 쓰인 석판의 법신게(法身偈)가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도 티벳 승려들이 아침저녁으로 '옴 마니 받메 훔'(Om mani padme hum)을 외며, 이 탑을 돌고 있다 한다.
► 다르마라지카 스투파(Dharmarajika Stupa)
부처가 설법한 장소에 '아쇼카' 왕이 세운 '다르마라지카'라는 큰 탑 터가 있다. 이 탑은 '다메크 스투파'와 함께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하는데, 1794년 바라나시 마하라자의 관리였던 '자가트 싱'(Jagat Singh)에 의해 부서졌다. 당시 이 탑에서는 부처의 성골 상자가 발견되었는데, 그는 이것을 갠지스 강에 버렸다고 한다. 당나라현장은 이 탑 앞에 '아쇼카 석주'가 세워져 있었다고 기록했다. 초전법륜상도 이에서 출토되었다 한다.
► 아쇼카 석주(Ashock Pillar)
기원전 250년경 '아쇼카'왕에 의해 세워졌으며, 높이가 15.24m이다. 기둥 위 4면에는 하나씩 4개의 사자 머릿돌이 돌아가며 있었는데, 현재는 고고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되고 있다. 석주는 부처의 탄생과 관련된 최초의 금속학적 유물로, 석주에는 바라문 글자로 '아쇼카 왕이 그의 재위 12년에 여기를 방문했으며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여 석주를 세운다.'라고 새겨져 있다. 무슬림에 의해 기둥의 파괴되었는데, 마우리아 시대에 사암(砂岩)으로 다시 붙여졌다.
► 주 사원(Main Shrine)
이 사원은 2~3세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의 벽은 돌로 만들어졌고, 벽돌로 쌓은 기저 층이 그 위에 있다. 현장의 여건으로 보아 주 사원의 높이는 61m로 추정된다. 주요 출입문은 동쪽에 나 있는데, 길 양편에는 다양한 크기의 봉헌 탑이 있다. 성지의 통로 복도는 길이가 13.8m로 벽에 움푹 페인 홈이 있는데, 이곳에 거대한 입상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사원의 바깥쪽 벽 사방에는 불상이 든 감실을 두었다. 이 주 사원에는 5개의 예불당을 두었는데, 그중 하나는 굽타시대의 형식이다.
► 물간다 쿠티 사원(Mulgandha Kuti Vihar)
'다메크 스두파' 맞은편에 있다. 이 사원은 1931년도에 스리랑카에 본부를 둔 ‘마하보디회’(Mahabodhi Society, 大覺會)의 지도자인 '달마팔라'(Dharmapala, 1864-1933)가 세웠다. 입구에는 일본이 선물한 커다란 종이 있고, 절 안에는 설법하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박물관의 불상을 모사(模寫)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생애를 그린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전의 일본화가 '고세추 노수'(Kosetsu Nosu)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사원에는 1931년 스리랑카의 아누다라쁘르에서 옮겨 심은 보리수나무가 있다. 석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 있던 그 보리수의 종자를 얻어다 심은 것이라 한다.
► 고고학 박물관(Archaelogical Museum)
작은 규모에 비해 뛰어난 소장품들이 많은 고고학 박물관은 1910년에 개관되었다. 이곳에는 그 유명한 '아쇼카'왕의 석주 상륜부에 있던 네 사자상과 법륜, 그리고 초전법륜상이 모셔져 있다. 네 마리의 사자들이 꼬리를 가운데로 맞대고 사방을 바라보며 사자후를 토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아래 원반모양의 좌대에는 사방으로 4개의 법륜이 있고, 그 사이에는 코끼리 ․ 사자 ․ 황소 ․ 말이 새겨져 있었다. 사자상은 오늘날 인도 정부의 국장(國章)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인도의 화폐에도 그려져 있는 것이다. 박물관은 입구에서 좌측은 불교유물이, 오른쪽은 힌두의 일등신인 '쉬바'(Siva) 신상을 비롯한 힌두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부처님의 코도 우리나라의 석불 마냥 뭉개져 있다. 여기서도 부처님 코의 돌가루가 아들을 낳는데 특효(!)가 되는 것인지?
그리고 바라나시로 들어오는 길, 고가도로가 건설되고 있는 현장이 목격되었고, 서너 명의 인부들이 대야에 반쯤 담긴 흙을 날라 파진 곳에 메우고 있었다. 가이드 말대로 이 도로가 준공되려면 '선생님들의 손자에 손자 때나 가능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 우리는 그냥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결코 조급하지도 않고 오늘은 오늘 일만을, 그리고 내일은 내일 일만을 생각한다는 그들의 여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돈이오는 광경이었다.
저녁을 마친 우리는 갠지스강으로 나가기 위해 숙소인 호텔(Temple Town)에서 나왔다. 그리고 어느 곳인가 까지 버스로 이동했고, 이어 '사이클릭샤'라는 것에 올랐다. 거리는 넘쳐나는 사람들과 자동차, 릭샤, 자전거들로 몹시 붐볐고, 거기다가 할 일 없이 서성이는 소와 개, 때로는 코끼리까지 등장했다. 사방에서 눌러대는 클랙슨 소리와 상인들의 호객소리가 범벅이 되고, 인구 200백만 명에 사원이 15,000개가 넘고 집집마다 모시는 신이 다르다는데, 이곳에서 내품는 매캐한 향냄새와 도시의 악취가 한데 섞여 진동하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 아르띠 뿌자(Arti Puja)
힌두교의 일몰 제사의식이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는 84개의 가트(Ghat)가 있는데, 아르띠 뿌자는 그 중 메인 가트인 다샤스와매드 가트(Dashashwamdh Ghat)에서 매일 저녁 7시부터 1시간 30분간 행해진다. 우리는 나룻배를 타고 강으로 나와 가트 위에서 행해지는 힌두의식을 관람했다.
“̋강가 마이야 키자이 (어머니 갠지스 강에게 영광을) - !!!
“̋하르 하르 마하데브 (시바 신에게 영광을) - !!!
그리고 무슨 神, 무슨 神, 무슨 神, 신들이여 오늘 하루도 고맙습니다. 그런 의미의 만트라(진언) 만이 이어지는데, 마이크 잡고 낮은 톤으로 웅얼거리는 사람을 사두(師頭)라고 하며, 의식을 집전하는 사제가 일곱 명으로 모두 힌두대학 종교학과의 브라만 계급의 젊은이들이라 한다.
우리는 나룻배들 사이를 날렵하게 건너오는 어린소녀에게서 산 '디아'(Dia : 기름먹인 종이접시에 꽃과 나뭇잎을 놓고 촛불을 세움)에 불을 밝혀 갠지스강에 소원을 담아 띄워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상점에 들어앉아 있는 소를 보았다. 주인은 쫓을 생각을 않고 옆에 있는 손님만을 대하는 듯 했다. 인도의 소 숭배는 원래 사람들의 경제적인 필요와 관계가 있다. 고대 인도에서 소는 부(富)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 베다시대의 유목민들에게 소는 고기에서부터 심지어 똥, 오줌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 경제적인 필요와 관련하여 소를 중시하던 전통에 신화적인 해석이 가미되었다. 예를 들면, 소는 '브라흐마'(Brahma)신과 같은 날에 태어났고, 또 소의 각 부위에는 여러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가슴에는 '스깐다'(Skanda)신이, 이마에는 '쉬바'(Siva)신이, 혀에는 '사라스오띠'(Sarasvati)신이 살고, 소의 똥에는 '락슈미'(Lakshmi) 여신이, 그리고 우유 속에는 여신 '강가'(Ganga)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차츰 소는 신격화되고 숭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인도 전체 소의 3분의 1이 버려진 소라 한다. 성물이란 미명으로 젖도, 똥도, 노동력도 철저히 착취당하고 병들어 쓸모없게 되면 길에 버려지는 소, 힌두교의 이중성에 고개가 갸웃 해진다.
그리고 강으로 나올 때 탔던 비썩 마른 아저씨가 모는 릭샤에 다시 올랐다. 갈
때 태웠던 손님은 돌아올 때도 자기가 태워야 하는 룰이 있는지 자기 릭샤에 타라 한다. 그런데 나올 때도 그랬고 돌아갈 때도 영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 땀을 뻘뻘 흘리며 맨 뒤로 처졌고 안쓰러운 마음에 안줘도 되는 1불을 건넸다.
∘ 갠지스강의 일출과 화장의식
3월 21일(일) 여행 4일 째, 이른 아침 우리는 갠지스강으로 다시 나왔다. 해돋이와 힌두교의 화장의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밤 그 혼란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갠지스강의 새벽은 야단스러웠다. 우리는 자그마한 나룻배에 태워져 강안으로 나갔다. 강가에는 빨래하는 사람들이 넙적한 돌에 빨래를 휘둘러 치고 있었으며, 그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욕실의 타월이 거무스레한 것은 갠지스강에서 손 빨래 했기 때문이란다. 신화 속에서 그들의 시바신이 목욕한 성소라 떠오르는 해를 맞아 목욕하기위해 몰려든 시민과 순례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불결한 강물에 목욕하는 흰두교인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상상한 성지의 거룩함을 뒤엎는 것이다. 먼동이 붉은 빛으로 짙게 물들여지고, 이내 아득한 고요와 신비에 쌓인 채, 억겁을 돌고 돈 붉은 나신(裸身)이 갠지스 강 위로 긴 꼬리를 드리우며 둥그렇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고 붉은 기운을 깊이 들어 마셨다.
인도인들의 삶과 죽음을 보는 곳, 너무 일렀는지 화장을 시작한 곳은 없고 하얀 천에 싸인 시신 한구만이 장작더미에 올려져있었다. 바라나시에는 두개의 화장터가 있다. 전통 화장터인 '마니까르니까 가트'(Manikarnika Ghat)와 전기 화장터인 '하리시찬드라 가트'(Harishchandra Ghat)이다. '하리시찬드라 가트'는 갠지스강의 환경을 보호하고자 설치한 전기 화장터이지만 실제로는 그곳에서도 전통 화장법이 행해진다. 화장의식은 남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데, 시신이 화장터에 이르면 상주들은 갠지스 강물을 손으로 떠서 시신의 얼굴을 적신다. 그들이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는 이유가 현생의 죄를 씻기 위함이듯 마지막 떠나는 이의 전생의 죄를 사함을 받게 하기 위함인 듯하다. 장작더미에 올려 진 시신에 불이 붙고 조금씩 타들어가기 시작한 화장 의식은 심장만이 남을 때까지 계속 된다. 불이 사그라지면 시신을 수습하여 한주먹 정도 크기의 심장을 40일 후 갠지스 강에 던짐으로써 어머니께 돌려보낸다. 마지막으로 흙으로 만들어진 붉은색 토기에 갠지스 강물을 담아 오른쪽 어깨에 얹은 상주가 강을 등지고 맨발로 걸어 그 토기를 깨뜨리는 것을 끝으로 장례의식이 끝나는데, 그들이 그토록 갠지스 강가에서의 화장을 염원하는 것은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함이라 한다. 그들은 아마 고통스러웠던 현생의 삶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인도인들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믿기에 이모든 풍경들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인간이 한줌의 재로 화하는 것을 보면 죽음에 대한 관념조차 부질없이 느껴진다. 허무를 감상없이 정면으로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인도의 화장 풍습은 정말 멋질 것 같다.
또 하나, 임산부와 아기들은 힌두계율 상 화장될 수 없어 시신에 무거운 돌을 메달아 갠지스 강에 수장시킨다고 한다. 그러니 일행 중 한분이 자신이 마신 물이 그 갠지스 강물을 퍼서 정수처리한 물이라는 이야기에 그만 탈이나 며칠간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 갠지스강(Ganges River)
히말라야산맥에서 발원하여 뱅골만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가 2,460km이다. 갠지스강은 강 자체가 신격화된 여신(Kanga Mata Ji / 어머니인 갠지스강)으로 숭배되고 있어, 힌두교도들은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에 대하여 씻김을 받고, 죽은 후에는 자신을 태우고 남은 재를 강물에 흘러 보내면 영혼이 자유로워져 극락으로 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현지에서는 갠지스라는 이름보다는 '강가'(Ganga)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곳을 다녀가는 힌두인들은 가족이나 지인들을 위해 갠지스 강물을 용기에 담아 가져 가기도 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일반 강물은 밀폐된 용기에 담아 놓으면 1주일을 전후해 상하기 시작하는데, 갠지스 강물은 몇 년을 담아놓아도 변치 않는다고 하니, 이를 믿어야 할지?
강가에서 돌아온 우리는 호텔지하에 마련된 홀에서 요가선생으로부터 잠깐의 요가교육을 받았다. 고대 인도에서부터 전하여 오는 심신 단련법의 하나로써,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는 훈련과 명상을 통하여 초자연적인 능력을 개발한다는 것으로, 인도 말로 결합을 뜻한다.
첫댓글 그때 그 광경을 다시 보니까 넘 좋고 좋구나 또 가고 싶어 지네요 카페지기 성문 사장님 고맙습니다 김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