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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사랑, 전통적 가치, 영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심리학> 요약 및 독후감
곽은서 목사
1. 요약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는 훈육이고, 2부는 사랑이며, 3부는 성장과 종교이고, 4부는 은총입니다.
1부는 훈육이 주제입니다.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으로 정의를 내린 뒤, 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를 훈육으로 제시합니다. 훈육은 괴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테크닉이고, 문제가 주는 고통을 겪으면서 끝까지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훈육이란 문제 해결의 고통을 피하는 대신, 문제 해결의 고통을 건설적으로 취급하는 기술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108쪽). 그 과정 중에 우리는 배우고 성장합니다.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훈육시킨다는 것은 괴로워하는 법과 동시에 성장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의미입니다. 훈육은 괴로움을 감당하게 하며 문제로 인한 고통을 건설적으로 겪게 합니다.
훈육의 의미는 크게 4가지인데,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균형 잡기입니다. 스캇 펙은 이 도구의 복잡함이 아니라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훈육을 사용하려는 의지를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1.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아이들은 스스로 훈육할 줄 아는 역할 모델과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 하고 존재의 안전함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산들은 부모의 자기 절제와 순수하고 일관된 보살핌을 통해서 획득됩니다. 이것이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부모에게서 이러한 선물을 받지 못할 경우 다른 곳에서 획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그 획득 과정은 힘든 투쟁이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평생 걸릴 수도 있고 그나마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일에 실패한 사람은 그의 인생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간을 낼 마음만 있으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느라 성급하게 아무 조치를 취함으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문제를 외면하고 해결을 피하려고 하다가 더 문제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2. 책임을 지는 것
우리는 먼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스캇 펙은 책임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신경증과 성격 장애를 사용합니다. 신경증인 사람은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려하고, 성격 장애인 사람들은 응당 져야할 책임조차 피하려 합니다. 무엇보다 자녀를 바르게 훈육하기 원하는 부모는 신경증인 사람들처럼 행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해서도 안 되며, 책임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유로부터 도피를 시도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성인의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집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자신을 희생자라고 느낄 것입니다.
3. 진리에 대한 헌신=진실에 충실하기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영혼이 성장하려면 이것이 항상 필요합니다. 스캇 펙은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지도의 개념을 가져와서 설명합니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삶의 영역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지도와 같습니다. 지도가 진실하고 정확하면 기본적으로 우리의 현재 위치를 알게 될 것이고, 가고 싶은 곳이 정해질 때 그곳에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지도가 잘못돼있고 부정확하다면 대개 길을 잃을 것입니다. 그는 특히 지도를 만드는 데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무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정확한 지도를 위해 계속해서 지도를 고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캇 펙은 이 지도를 고치기를 원하지 않고 계속해서 낡은 지도에 얽매여 삶으로써 발생하는 정신 질병을 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전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진실이나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사람들은 이를 피하게 마련입니다.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절제력이 있을 때만이 지도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절제력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진실에 전적으로 충실해야 합니다. 이 말은 진실이 우리의 편안함보다는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하고 절대적임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역으로 표현하면 항상 개인적 불편함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여겨야 하며,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는 진정으로 심지어 그것을 반겨야 합니다. 정신 건강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진실에 충실하는 진행형의 과정입니다.
전적으로 진실에 헌신하는 삶은 먼저 지속적으로 쉼 없이 철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둘째, 자진해서 다가오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진정 자기 훈육이란 비본능적으로 살아가도록 자신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입니다. 셋째, 정직한 생활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실과 현실을 우리가 아는 그대로 가능한 한 정확하게 대화에 반영하고 있는지-내용뿐만 아니라 말하는 방식도-를 끊임없이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균형 잡기
훈육 자체가 또한 훈육되어야 하는데, 스캇 펙은 훈육을 훈육하는데 필요한 훈육을 균형 잡기라 명명했습니다. 균형 잡기란 우리에게 융통성을 주는 훈육입니다. 성숙한 정신 건강에 필요한 것은 상충되는 요구, 목적, 의무, 책임, 목표 같은 것들 사이에서 융통성 있게 균형을 잡고 계속해서 이를 조정해나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이러한 균형 잡기라는 훈육에서 근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포기(옛 자아를 포기하거나 상실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포기하는 과정이란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완만히 이루어지는 점진적 과정이 대부분입니다.
스캇 펙은 균형 잡기라는 훈육의 하위범주 중 한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괄호로 묶기’라고 불렀습니다. ‘괄호로 묶기’란 근본적으로 개인적 안정감과 자기주장의 욕구와 그보다는 새로운 정보와 더 큰 이해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자아를 한쪽에 제쳐놓음으로써 새로운 자료를 집어넣을 여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괄호로 묶기라는 훈육은 포기와 훈육 일반에 관한 것을 가장 잘 설명해줍니다. 즉,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보다 많이 얻게 됩니다. 자기 훈육이란 자기 확장의 과정입니다.
균형 잡기라는 훈육과 그 근본이 되는 포기에 관해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포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먼저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부는 사랑이 주제입니다.
스캇 펙은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정의에 대한 근거를 다섯 가지로 설명합니다(페이지 114-117 참고).
1. 사랑이 아닌 것들
그는 먼저 사랑이 아닌 것을 살펴보면서 사랑의 본질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사랑이 아닌 것은 첫째, 사랑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참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환상입니다. 여기에 영향을 미친 것은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신화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사랑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사랑이 자아 영역을 확대하기 때문입니다. 스캇 펙에 의하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사랑을 향한 동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는 사랑은 아니지만, 그것은 크고 신비로운 사랑이라는 세계의 일부입니다.
둘째, 사랑에 관한 흔한 오해 중 두 번째는 의존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존은 의존하고 싶은 욕구나 느낌(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의존적인 상태(의존성, 수동적인 의존, 집착, 수동성 의존적 성격 장애)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부부가 실제로는 서로 의존하면서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그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자유와 성장을 축소시킵니다. 이렇게 사랑을 오해한 사람의 잘못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행복과 만족을 얻기 위해 수동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는 자녀에게조차 기댑니다. 그래서 불만스럽거나 불행할 때 처음부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요컨대 의존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치열하게 애착하도록 만드는 힘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과는 정반대입니다. 처음 그것은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데서 시작해서 영원히 사랑에 실패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추구하게 하며 성장하기 보다는 어린 아이로의 퇴행을 부추깁니다. 자신과 타인을 자유로운 해방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트리고 압박합니다. 궁극적으로 의존성은 관계를 쌓기보다는 파괴하고 사람들을 성장시키기 보다는 망가뜨립니다.
의존성의 특징은 영적 성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존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영양 섭취에만 관심을 두고 그 이외의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들은 만족과 행복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성장은 갈망하지 않으며 성장에 따르는 불행과 고통은 견디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가 의존할 상대의 영적 성장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관심이 자신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 중요합니다. 의존성은 ‘사랑’이라는 말을 잘못 갖다 붙인 여러 행동 유형 중 하나입니다. 또한 영적 성장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보살피거나 애착을 갖는 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예, 취미생활, 물질, 애완견, 자녀에게 선물 사주기 등등).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분별 있게 주고, 마찬가지로 분별 있게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별 있게 칭찬하고, 분별 있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분별 있게 논쟁하고 싸우고 맞서고 몰아내고 밀고 당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리더십입니다. 분별 있다는 것은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판단은 본능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심사숙고해야 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필요로 합니다.
셋째, 사랑은 자기희생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이것은 자기희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확대인 셈입니다. 나중에 논의하겠지만 순수한 사랑은 자기를 채워나가는 활동입니다. 사실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축시키기보다는 확대시키고,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합니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은 똑같이 이기적입니다. 여기에 사랑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기적이지 않다는 역설이 성립됩니다.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건 이기적인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그 구별은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가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경우 그 목적은 항상 영적 성장이고, 사랑이 아닌 경우에는 그 목적이 항상 다른 것에 있습니다.
넷째, 사랑은 느낌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에서 나옵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려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랑의 느낌이 없어도 사랑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습니다.
2. 사랑인 것들
첫째, 사랑은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자아를 확장하는 것) 자신의 확장이나 게으름의 타성과 싸우면서 움직여 나가는 것을 우리는 노력이라고 합니다. 두려움에 맞서 나아가는 것을 용기라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랑은 일종의 노력이나 용기입니다. 특히 사랑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해 시도하는 노력과 용기입니다.
사랑할 때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할 일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은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의 성장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중요한 방법은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듣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는 괄호로 묶는 훈육입니다. 사랑은 노력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음의 본질은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이란 주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다루어온 훈육과 사랑이라는 주제에 내재된 숨겨진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캇 펙은 사랑의 용기를 설명할 때, 사랑이라는 모험으로 적용합니다. 사랑의 모험에는 상실, 독립, 헌신(책임감), 충고가 있습니다.
* 다른 인간에게 충고하거나 비판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본능적, 즉흥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비판하는 경우와 양심적으로 자신을 의심하고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옳다는 믿음 아래 비판하는 경우입니다. 첫째는 오만한 방법으로 가장 흔하게는 부모, 부부, 교사와 사람들이 일상에서 취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대체로 성공적이지 않을뿐더러 성장보다는 적개심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둘째는 겸손한 방법으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은 아닙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자아를 확장해야 하는 데 성공 확률이 더 높고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둘째, 사랑은 훈육되는 것입니다.
자기 훈육의 힘은 사랑에서 나오며 이것은 의지의 한 유형입니다. 따라서 자기 훈육은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훈육에 따라 행동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관계 역시 훈육이 바탕이 된 관계라고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적절하게 다루는 데에는 복잡하지만 균형 잡힌 중용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판단과 지속적인 조절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건전한 자기 훈육의 길입니다. 훈육 받아야 할 감정 중에 사랑의 감정이 있습니다. 스캇 펙은 계속해서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모든 훈육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며, 그것만이 근본적인 기쁨으로 삶을 인도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할 때 나 자신은 확장하며, 나 자신을 확장할 때 성장하는 것입니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오래 사랑할수록 나는 커집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다시 채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도우면 도울수록 나 자신의 영적 성장도 더욱더 촉진됩니다.
셋째, 사랑은 분리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는 행동이 자신의 성장도 촉진시킨다 할지라도 진정한 사랑의 주요 특징은 언제나 자신과 타인의 구별이 유지되고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항상 상대를 전적으로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인지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이러한 개별성과 독립성을 늘 존중하고 심지어는 격려합니다.
* 칼릴 지브란의 시, 예언자
넷째, 사랑은 정신 치료입니다. 스캇 펙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는 어떤 관계든 서로 심리 치료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영적 성장으로 가는 길은 멀고, 능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친구나 가족에게 심리 치료를 실행하는 것, 서로 모든 시간을 바쳐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며 성취해야 할 목표이지만 바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섯째, 사랑은 신비입니다.
3부의 주제는 성장과 종교입니다.
스캇 펙은 사랑은 신비임을 이야기하면서 3부에서 종교와 성장 과정과의 연관성을 논의하고 4부에서는 은총이라는 현상에 초점을 두고 그것이 성장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다루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종교에 있어서는 수 천 년 동안 익숙한 개념이지만 은총은 심리학을 포함한 과학에는 아주 이질적입니다. 어쨌든 은총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면 인간의 성장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근본적인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부디 다음에 계속되는 논의가 종교와 심리학자 사이에 접점을 서서히 확대하는 데 이바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훈육, 사랑, 삶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므로 세계와 그 안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한 이해도 당연히 빠르게 성장합니다. 반대로 훈육, 사랑, 삶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이해도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곧 종교입니다.
스캇 펙은 자기가 치료했던 환자들을 예로 들면서(캐시, 마르시아, 테드) 과학과 종교의 연관성에 대해서 밝혔습니다. 그가 과학과 종교의 상호 연구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개념은 ‘회의’였습니다(아기와 목욕물, 322쪽). 그는 회의를 통해야 비로소 영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심리 치료의 과정에 과학과 종교의 영역을 인정하는 시도를 합니다. 그 결과 정신 치료 과정에서 일어난 기적들을 은총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운 문제에 간단한 답을 찾으려 하고, 별 생각 없이 기대만 부풀어서는 인기 있는 과학 개념과 종교 개념을 결합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숱한 결합 사례가 실패했다고 해서 그러한 결합은 불가능하다거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터널 속에서 보는 식의 과학적 태도가 현실을 왜곡시켜서는 안 되는 것처럼, 회의를 위한 우리의 비판 능력과 역량도 영적 영역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눈멀어서는 안 됩니다.
4부의 주제는 은총입니다.
무의식에 대한 평가는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보는 관점과(프로이트), 이에 반대하여 무의식의 지혜로 보는 관점(칼 융, 스카 펙)과 무의식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이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이다라고 보는 관점(스캇 펙)으로 구분됩니다. 특히, 스캇 펙은 융의 견해를 수용하여 무의식은 의식보다 지혜롭다고 주장합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초자연적인 사건과 관련해 말하고 싶은 것은 우연한 깨달음이라는 현상입니다. 웹스터 사전에는 우연한 깨달음을 ‘가치 있거나 호감이 가는 것을 일부러 애쓰지 않고도 찾아내는 재능’이라고 정의합니다.
스캇 펙은 4부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은총은 대부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소중하고 바람직한 것’에 의해 나타나며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것,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용하고 어떤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스캇 펙은 은총을 ‘인간의 의식 세계 바깥에서 생겨나 인간의 영적 성장을 돕는 강력한 힘’으로 정의를 내립니다. 이 정의에 따라 은총은 건강의 기적을 통해, 무의식의 기적을 통해, 우연한 깨달음이라는 기적을 통해, 진화의 기적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는 진화의 기적을 통해 영적 성장의 과정을, 특히 자녀의 영적 성장에 대해 그리고 부모가 가져야 할 책임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개념을 확장하여 그는 개인과 인류 전체의 등을 떠밀어 무기력이라는 본능적인 저항을 이기고 성장하게 하는 이 힘을 사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그가 내린 사랑의 정의를 토대로 하여 계속해서 성장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성장합니다. 또한 사랑 그 자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드높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다른 사람들 또한 드높입니다. 자아의 확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랑은 바로 진화의 행위입니다. 그것도 진행 중인 진화입니다.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진화의 힘은 인간의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인류 앞에 자신을 드러냅니다. 인간애 중에서 사랑은 엔트로피의 자연법칙을 무산시키는 기적적인 힘입니다.
스캇 펙에 의하면 은총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닙니다. 종교와 철학적 관점에서, 심리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은총의 근원과 목적을 밝히는 견해 또한 기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의 신비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궁극적인 실재를 신이라 불렀고, 무의식을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즉, 은총의 근원은 하나님이고, 은총의 시작과 끝도 하나님이고, 은총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의 목적에 이르도록 방해하는 것은 결국 게으름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스캇 펙은 1부 훈육에서는 꼭 필요한 고통을 피하려 하거나 쉬운 길을 택하려는 게으름을 살펴보았고, 2부 사랑에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아의 경계를 확장하려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게으름은 사랑의 반대말입니다. 게으름은 바로 우리 모든 삶에서 나타나는 엔트로피의 힘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원죄를 게으름으로 정의합니다. 그는 모든 두려움이 다 게으름은 아니지만 두려움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게으름이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결과 게으름과 두려움 때문에 훈육과 사랑의 성장에서 실패하게 됩니다(394쪽).
영적으로 보다 성장한 사람은 자신의 게으름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게으르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덜 게으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인류의 끈질긴 소망이자 본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간을 퇴행시키고 그가 태어난 자궁 속과 다를 바 없는 수렁으로 되돌리려는 엔트로피의 힘, 게으름이라는 원죄도 존재합니다.
스캇 펙은 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 악은 실재합니다. 둘째, 악은 게으름의 극한입니다. 셋째, 인간의 진화에 있어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악의 존재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넷째, 엔트로피는 거대한 힘인 반면, 가장 극단적인 악의 형태로 그것이 사회적인 힘으로 쓰일 때는 이상하게도 무능해집니다.
스캇 펙은 의식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의식하게 된다는 것은 무의식과 함께 아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 무의식의 자리에서 은총이 시작됩니다. 그 결과 스캇 펙에 의하면 무의식은 곧 하나님이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무의식을 신비주의와 연결시켜 영적 성장의 목표를 설명합니다(407-408쪽).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영적인 권력(권위, 힘)이 주어지게 되며, 하나님과 교감하는 즐거움이며, 겸손이며, 헌신(실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며, 고독(홀로있기)입니다. 스캇 펙은 고독(홀로 있기)과 외로움을 구별합니다. 외로움은 어느 수준에서든 함께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는 상태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그와 대화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외로울 틈이 없고 오히려 외로움이 그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독은 같은 인식 수준에서 대화할 사람이 없는 상태입니다.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즉 성장하려는 의지는 어린 시절의 부모의 사랑뿐 아니라 삶 전체에 미치는 하나님의 사랑인 은총에 의해서도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총의 부름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도움을 거부하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은총에 의해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캇 펙은 은총을 거부한 사람들의 특징이 게으름(책임과 자기 훈육을 좋아하지 않음)이라고 말합니다.
은총에의 부름은 보다 더한 책임과 권력이 있는 지위로의 승진입니다. 은총을 인식하고 그것의 변함없는 존재를 개인적으로 경험하며 자신이 하나님 곁에 있음을 아는 것은 은총이 지닌 내적 고요와 평화를 줄곧 경험하고 아는 것입니다. 그런 한편 이러한 지식과 인식은 커다란 의무를 지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음을 경험하는 것은 즉 하나님의 의무를 체험하고 그의 권능과 사랑의 대리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총에의 부름은 사랑으로 세상을 돌보고 수고하는 삶,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는 삶에로의 부름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어린이에서 어른의 상태로 나아가라는 부름이며, 인류의 부모가 되라는 부름입니다.
은총이 내려주는 평화에는 책임과 의무와 임무가 뒤따릅니다.
은총이라는 부름의 궁극적 형태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책임을 맡으라는 부름입니다. 결국 그것은 완전한 성인이 되라는 소명인 것입니다.
지금껏 은총이라는 현상을 많이 논의해왔지만 역시 그 본질은 미스터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총을 선택함과 동시에 은총에 의해 선택된다는 역설은 우연한 깨달음이라고 하는 현상의 본질입니다.
은총이 취할 수 있는 다른 여러 형태-갑작스러운 통찰력, 예감, 동시발생적인 것, 우연한 깨달음-에 대해서도 똑같이 역설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443쪽). 은총에 관한 이 부분의 주된 목표는 영적 성장을 위한 여행자들이 우연한 깨달음이라는 능력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또한 우연한 깨달음을 재능 자체가 아닌, 의식 밖의 영역에서 오는 은총을 알아보고 그 선물을 활용하는 학습된 능력으로 다시 정의하려고 합니다. 이 능력에 힘입어 영적 성장을 향한 여행은 우리의 의식적 의지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과 상상할 수 없는 지혜를 따라 바른 길로 인도됩니다. 그렇게 인도됨으로써 여행은 더욱 빨라집니다.
은총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실재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개개인의 영혼이 성장하는 데 쏠려 있다는 사실에 관한 명백한 증거입니다.
2. 독후감
스캇 펙은 이 책에 의사로서 심리 치료 경험과 그가 도와주었던 환자들이 성장해가는 과정과 그들이 실패한 과정을 통해 얻은 통찰력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쓸 당시에는 불교에 심취해있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정신 분석학자로서 심리학과 종교(영성)의 관점에서 성장을 서술하고 있지만, 우리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소화하여 이해한다면 평생 동안 이루어야 할 사랑의 완성과 영적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큰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영성과 상담학을 바르게 적용하는 데에 지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랑의 바른 목적 속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바르게 성장하도록 섬길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캇 펙은 영적 성장의 길은 평생 걸리는 배움의 길이라고 말했습니다(411쪽).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책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 사랑, 전통적 가치, 영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심리학> 현재의 상태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계속해서 영적 성장의 길, 즉 사랑의 완성을 향해 달려 나가야 함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대한 큰 적이 바로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을 극복해가면서 영적 성장을 추구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1부 훈육을 읽으면서 훈육의 중요성과 절제되지 않은 훈육의 위험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내 자신에게 철저하게 훈육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가족을 포함한 모든 지체들에게 바른 훈육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훈육에 대한 개념과 훈육의 방법, 그리고 훈육의 실천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캇 펙의 주장처럼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훈육시킨다는 것은 괴로워하는 법과 동시에 성장하는 법을 가르치고, 책임과 바른 분별과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기에,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2부 사랑을 읽으면서 사랑의 목적과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캇 펙은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합니다. 이 정의와 방법에 따라 사랑 아닌 것들과 사랑인 것들을 삶 속에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이 사랑의 정의에 따라 서로 영적 성장에 힘써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멘티를 사랑한다면 훈육을 통해 멘티의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멘토가 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반대가 게으름이라는 스캇 펙의 견해에 깊은 동의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랑을 방해하는 이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을 향한 관심과 훈육에 힘쓸 계획입니다. 이 깨달음을 금년 표어와 맞추어 ‘세워 주고 세움 받는 한 해’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스캇 펙은 심리 치료사의 자질을 진정으로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451쪽). 그는 심리 치료가 필요한 사람(내담자)에게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담 치료사를 찾을 것을 부탁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앞으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담자가 되기 위해 더 많은 추구가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제 자신이 먼저 더욱 성장해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에베소서 4장 11절-16절 말씀과 골로새서 1장 28절-29절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3부 성장과 종교를 읽으면서 사유하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스캇 펙은 맹목적인 생각을 버리고 회의라는 개념을 통해 사유하고, 그 사유를 통해 더 깊은 영적 세계를 추구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즉, 인식을 넓히는 과정이 이 책의 주된 주제이기에(278쪽), 새롭고 깊고 넓은 지식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지식을 버려야 합니다. 저는 영성 형성의 과정, 특히 히브리서 6장의 말씀을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6:1-3) 영적 진보의 과정도 이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또다시 영적 진보, 즉 완전한데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지식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진보의 자리를 소망하고 추구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날마다 계시를 통해 가르치시고 오늘 인도하시를 기도드립니다.
4부 은총을 읽으면서 ‘신비주의와 기독교 신비주의’ 그리고 ‘신비주의자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고, ‘은총의 목적’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안에는 사랑의 신비주의가 있습니다. 사랑의 신비주의자들은 사랑의 시작과 완성을 하나님께 근원을 둡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신자 안에 시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지막까지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스캇 펙은 이 근원을 신과 신의 은총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의 은총을 받고(부르심) 그 은총을 지키는 사람들은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지만(부르심에 귀를 기울임), 그 은총을 받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책임은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은총을 거부한 사람들의 특징인 게으름과 원죄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4부를 읽으면서 수도사들이 게으름과 나태와 태만을 극복하기 위해 영성 훈련에 정진했던 모습과 완덕에 이르기 위해 공동체 생활과 수도 생활을 했던 모습을 묵상해보면서 저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시대정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은총에의 부름은 사랑으로 세상을 돌보고 수고하는 삶,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는 삶에로의 부름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어린이에서 어른의 상태로 나아가라는 부름이며, 인류의 부모가 되라는 부름입니다.……은총이 내려주는 평화에는 책임과 의무와 임무가 뒤따릅니다.……은총이라는 부름의 궁극적 형태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책임을 맡으라는 부름입니다. 결국 그것은 완전한 성인이 되라는 소명인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동성, 의존성, 두려움, 게으름을 극복하면서(444쪽) 합당한 하나님의 참 아들이 되고, 순전한 신부가 되며, 지혜롭고 충성된 종(청지기)이 되는 것과 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드리는 것을 부르심으로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3-24)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6-8)
끝으로, 개인적인 면을 적용하고 독후감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 전체 주제는 아니지만 스캇 펙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27쪽, 383쪽). 스캇 펙은 훈육의 4요소(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균형 잡기)를 알고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 즉 사랑이 있어야 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먼저는 제 자신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구체적으로 실천해보고자 합니다.
둘째, 우리가 영적 성장을 이루어도 객관적 구속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능력과 능숙함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능력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미숙합니다(36쪽). 이 미숙함을 연약함으로 변명하고, 게으름과 타협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훈육에 종종 실패한 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심과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함을 알게 되었고,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서 깨달은 즉시 그 일을 처리할 생각입니다.
셋째, 칼릴 지브란의 시 ‘예언자’처럼, 자녀와 아내에게 사랑을 적용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