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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맑은 물 흐르는 곳 원문보기 글쓴이: 들풀처럼
(기독교교육)
------------------------------------------------------------------------------------- 1. 구약 시대의 종교교육 A. 히브리인의 교육 1) 시기: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과 가나안 정착과 분단 시대까지 2) 장소: 중요한 교육 장소는 ‘家庭’으로 규정하였다. 3) 교사: 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부모, 예언자, 제사장, 현자(賢者:Sage),시인 등 4) 목적: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 편협한 선민사상에 따른 부작용을 초래. 5) 교육 방법: ① 생활교육 - 가사와 생활과 직결된 생존을 위한 내용을 가르쳤다. 부모는 유목 문화에 필요한 것으로 남자에게는 목양, 사냥, 활소기, 돌팔매질을, 여자에게는 곡식 빻기, 밀가루 반죽, 실 만들기, 염색 등 가족들의 활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삶에 필요한 것을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배우는 비형식적인 교육이었다. 생활 직결된 교육이었다. 이외에도 포도원 재배, 밭갈이, 도자기 굽기, 상업술 등을 교육하였다. 직업교육으로는 포도원 제배, 밭갈기, 도자기 굽기, 상업술 등을 갈쳤다. ② 신앙교육(신 6:4-9) - 부친의 엄격한 절대 권한 아래, 하나님의 뜻이 담긴 내용인 Shema(들으라!!)를 자녀들의 행동을 통제함으로 행하였다. 이 교육은 부모가 먼저 마음 판에 새긴 다음, 자녀가 3세가 되면 그 때부터 함께 있을 때에는 대화를 통하여 의식화함으로 항상 마음 판에 말씀을 새기도록 교육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자녀들이 율법을 준수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은 아버지의 권위와 부모의 책임에 속하는 것이었다. ③ 상징을 통한 교육 - 출13:1~10, 신 6:4~9, 신13:13~21을 기록한 끈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기도 하고 또는 상자를 만들어 넣고 다니도록 하여 촉각과 시각적 효과를 지닌 Tefillin를 착용했다. 양피지에 기록한 나무상자 (Mezuza)를 문설주에 달아놓고 출입하면서 말씀을 기억하여 말씀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교육을 했다. ④ 생애 주기(Life cycle)를 통한 신앙교육 a. 출생시: 남자 아이는 전나무를 시고, 여자 아이는 소나무를 심어서 결혼시에 그 나무를 잘라서 결혼식장을 꾸몄다. b. 할례: 생후 8일만에 하는 종교의식인 할례를 행하여 약속의 자녀로 확인하고 부모가 신앙으로 양육하겠다는 다짐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c. 40일: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치른다. d. 이유식: 젖 떼는 날 잔치를 베풀고(창21:8), 제사를 드렸다.(삼상1:21-25) e. 3세: 구전(口傳)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압축한 성경 이야기인 쉐마의 말씀을 좇아 아버지가 교사가 되어 가르쳤다. f. 13세: 율법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成人式 바르미쯔바 (Bar Mizwah)를 하면 이스라엘의 공동체의 정회원으로서 책임과 종교적 책임을 지닌다. * 현재에도 월, 목요일에 예루살렘 성벽 서쪽 뜰에서 시행한다. 서쪽 벽의 건물에 한쪽은 기도실이고 한쪽은 두루마리 성경이 보관되어 있다. 기도실에서 두루마리 성경을 들고 나와서 뜰 테이블을 중심으로 가족이 들러 앉아 의식에 참여한다. * 교육은 사고력과 창의력을 개발하는 의식이 있다.(out put) 그리고 인간형성의 주된 기능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도록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의식이 필요하다(imprees) 개신교의 입교식에 교육적 의미를 심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강화시키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⑤ 절기의 종교의식 참여를 통한 교육 - 어린 때에는 인지 능력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五觀(청각, 시각, 미각, 촉각, 후각)을 활용한 방법을 사용하여 교육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들에게는 삶 자체가 종교적 의식이었다. 유대의 3대 절기인 逾月節에는 無膠屛과 쓴 나물을 통하여 질문을 유도하고 의미를 설명하면서 역사를 회상시키기도 하고, 五旬節에는 감사를 통한 종교성을 인식시키고, 帳幕節에는 야영을 하여 조상의 고난을 회고하는 훈련에 시킴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알게 하였다. 히브리 가정의 가족 전체의 생활과 종교의식들은 그래도 교육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는 절기가 있을 때 마다 의식에 참여하여 그 날을 상징하는 음식을 먹고 행동을 하게 하므로 공동체 의식을 자각시킬 수 있다. B. 유대인의 교육 1) 시기- 바벨론 포로시대 2) 교육 형태: 회당(Synagogue)과 학교(Schule)와 아카데미(Academy) ① 회당교육의 출현- 포로시대에 중요한 것은 민족정체성을 형성하여 유대인의 자기보존이었다. 예수 탄생 전까지 민족위기에서 신앙을 고수하려는 ‘남은 자’(Remnant)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려진 ‘토라’(Torah)를 후손들에게 교육하여 왔다. 성전의 제사중심 예배와는 다른 교육중심의 의식이 있었다.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갖는 예배순서는 쉐마로 신앙을 고백하고, 성경봉독(율법서, 예언서)을 했다. 먼저 히브리어로 읽고 포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위하여 번역하여 낭독하였다. 다음에 제사장이 축복기도를 했다. 회당 교육에는 회당장과 보좌하는 하잔(Hazzan)에 의해서 집행되었다. 회당 안 강대상 뒤에 마련된 두루마리 성경을 꺼내어 배웠다. ② 학교교육의 등장 - 바사시대 포로귀환으로 회당에 예루살렘에 세워졌다.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헬라문화의 영향을 받아 학교교육이 등장하게 되었다. a. 벧. 핫세퍼(책의 집) - B. C 75-64년경에 설립되어 남자가 6세에 입학하여 율법서(토라)를 듣는 초등학교로서 암기식으로 교육받는데 20-50명의 학생을 핫잔(교사)이 가르쳤다. b. 벧트 탈무드(연구의 집)와 벧드 하미드라쉬(설명의 집) - 율법해석과 고등해석과 연구를 질문과 해답, 설명의 방법으로 토론식 교육을 랍비(선생)가 선민사상을 고취하는데 주력하였다. c. 아카데미 - 유대인의 생활을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랍비가 되려는 후보생들이 모여 토라를 연구하였다. C. 유대의 종교교육과 현대의 종교교육 1) 유대인 종교교육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 부모에게 의무화한 하나님의 계명으로서의 하나님 경외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가정에서 신앙양육을 위한 훈계의 중요성과 의식에 참여시킴으로 형성되는 공동체 의식함양과 적절한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식사습관, 배설습관, 인사습관 등을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생활의 기본 습관을 가르치는 종교교육이 병행 또는 우선되어야 한다. 2) 여호와 종교교육이 결속된 민족공동체 의심을 심어 주는 것은 * 기독교적이며 하나님의 듯에 일치한 교육을 우리는 하고 있는가? 우리 민족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교육을 통해 이루고 있는가? 이스라엘도 민족종교교육으로서 기여한 바는 크지만, 민족의 종교가 아닌 우주적 종교와 신앙을 심어주지는 못하였다. 성전을 중심으로한 제사장적 기능인 종교교육은 성공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심어준 종교 본질인 예언자적 기능은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종교전통 전수에 만족하였다. 제사중심의 종교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었으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을 아는 눈을 뜨게는 하지 못하였다. 3) 한국 교회를 향한 교훈 * 교회에 충성하는 교인은 많으나 삶의 현장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교인을 지극히 작다. 교회 안에 갇힌 하나님, 죄악의 세상이라고 정죄만 할 뿐 세상 소에서 해야 할 일은 차단하고 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도록 종교교육에 관심해야할 때이다. 히브리교육이 지혜를 강조하므로 종교교육 전통에 따라 교리만 주입하였다. 제사중심의 교육, 문자중심의 교육으로 전락하여 지식을전 수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율법주의가 되어 율법의 근본정신은 망각하고 말았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율법의 근본정신은 망각되고 율법주의에 바졌으며 제자로서의 섬김보다는 삶의 변화는 따르지 않았고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된 교육이 없었기에 지적인 교만이 가득찬 제자교육이 되어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현대의 교회교육에서도 교리와 성경만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해서 강의식에 몰두하며 삶의 변화는 없고 지식적 교만에 만족하는 교인을 양성하고 말았다. 제자훈련이 섬김의 삶으로 전화되어야하는데 지식전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말았다. 교회 안에 충성된 교인됨과 동시에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에 성실한 청지기적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해야할 것이다.
2. 예수님의 교육 1) 선생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들 ① Lewis J. Scherrill(기독교교육학자)은 예수님께서 사역하던 당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으나 추종자들에게 비친 이미지는 전도자나 설교자보다는 敎師(선생)로서 보였다고 한다. 랍비(12번), 라보니(2번) 등 선생과 비슥한 용어로 사용된 단어의 횟수를 61번이라고 한다. ② Nels F. Fene (조직신학자) ‘A Theology for Christian Education' (pp. 99-152) 에서 기독교교육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인격적인 하나님이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관심하였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교육적 언어로 표현하였다. ③ Los Lebar(기독교교육학자) ‘Education That is Christian(ch.3) ’기독교교육의 기초‘에서 예수님의 교육방법을 소개했다. ④ H. Horne (기독교교육학자) ‘Teaching Techniques of Jesus'에서 The Holy Spirit as Tutor (성령이 인격적 실체로 우리를 가르치는 개인교사) ◉ JX as Examlpe of God's Pedagogy (성육신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가르친 하나님의 교육학의 시범) ⒜ God's Pedagogy - Examplor ⒝ 헬바하는 과거의 지식과 유산 등 외적요인에 중점을 두고 교육했고 죤 듀이는 인간 내면의 가능성에 관심하여 교육행위를 강조하고 실험주의 학습에 무게를 둔 경험중의 교육론을 주창하였으나 (3장) 하나님께로부터 온 교사인 예수의 가르침을 분석해 보면 교육이념과 교육방법이 가장 이상적인 교육 형태를 보여 주었다. 니고데모, 수가 성의 여인과의 대화에서 성서교육의 교육방법론을 제시해 주셨다. ⒞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원리를 제공 2) 교육목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선포와 완성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3) 방법: 삶을 통한 방법으로 ①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實體를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직접 가르쳤다.(세족) ② 權威가 있는 말씀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지 않았다. ③ 교육의 과정 속에서 필요한 전문적 지식과 技術을 가르침의 형태에 따라, 학습자의 대상에 따라 각 개인에게 적절한 해설과 설명을 하였다. a. 大衆을 위한 講義式 방법은 관계성 차원의 언어(Langage of Relationship)로 알아듣기 쉬운 설교 양식을 사용했다. b. 개인을 위한 대화식방법으로 상대방의 감정, 형편을 인정하고 교류하는 교육 c. 실습 교육(Learning by Doing) ④ 교육철학 // 양보다 질에 관심 하여 철저한 제자 훈련에 관심을 두었다. 공동생활, 공동 기도를 통하여 12명을 3년간 교육하였고, 제자들에게는 선포된 의미를 재설명하기도 하였다. 부활 후 대중보다는 제자들과 40일을 더 있으면서 동동체구조를 세우셨고 성령 강림으로 사도로서 창조적 일꾼을 양육하셨다. 4)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 지니고 있는 모습들
① 예수님이 보여주신 교육자장 (요 10:10)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이 생명을 전하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 교육가이기 이전에 갖추어야할 인격을 점검해 보아야한다. 인간을 위한 헌신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사랑의 교사이며 목장이셨다. (눅 15:) 잃은 양의 비유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인간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신다. 교육자는 세속적이 가치의 영향을 나타내면 기독교의 본질이 약화된다. 풍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전문성 속에서 짖밟히고 있는 인간성, 학문, 기술개발 이전에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랑의 관계, 차별 없는 관계를 지녀야 한다.
② 예수님이 보여주신 탁월한 교육방법 - 우리가 개발해야할 요소
* 가르침의 방법(A modeling method in the incarnated Word) - 하나님의 실체를 자신의 모습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셨다. (요 14:) - 사도 바울: “내가 JX를 본 받은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 받은 자 되라” - 베드로: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 JX: 세족 의식 후에 “내가 너희들에게 본을 보인 것 같이” - 우리의 모습: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와 향기가 되어야 한다.
* 탁월한 교수방법과 교육 원리 (Theaching Technique) - 가르침의 형태가 다양하고 권위가 있었다.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으나 상황에 따라 개인에게 적절한 해설을 했다. -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는 비판적 가치 규범을 변증적 언어로 교육했고 - 민중에게는 기적과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으며 - 제자과는 도제교육으로 하나님 나라와 고난의 종인 자기 정체성을 교육 학습자 중심의 교육방법으로 대중을 위한 강의식교육, 개인을 위한 대화식교육, 제자들을 위한 실습교육(Learning by Doing)을 했다. 대화 상대자의 감정과 형편을 인정하므로 개인과의 인격적이 상호 교류가 있었다. (눅 10:25) 예수님의 대화의 원리는 대화자의 중심을 헤아려서 그를 통찰하면서 guiding question을 하여 이웃에 대한 concept을 설명하기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사용하였다. meaning이 전달되었으면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행하라’고 권면하셨다. 예수님은 대화를 하실 때 언제나 이러한 기본구조를 가지고 대화를 하셨다. 상대방 인정 - 상대방을 open시킴 - 말씀을 전하심 - 삶으로의 적용 이러한 인격적인 교육과 목회가 되려면, 양들의 문제와 상태, 그들이 속해 있는 문화와 분위기를 알고 사회를 사회과학적 차우너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기술을 잘 터득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알아듣기 쉬운 설교를 하셨던 배경에는 Language of Word - 전문성 차원의 언어 Language of Relationship - 관계성 차원의 언어가 있었다. 그러므로 영적 통찰력과 성장 세대가 가지는 특징을 연구한 발달과정, 성장이론, 심리학을 숙지할 때 상대방에 대한 접근이 더 용이해 진다. 그리고 프로그램, 평가방법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③ 예수님은 건강한 영성을 가진 사역자이었다. 공생애 직전 40일 금식을 하셨고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날 밤에는 철야기도를 하셨으며 평상시에는 이른 새벽에 기도를 하셨다. 사역을 앞두고 기도로 준비하는 영성을 지니셨다. 계시에 기초한 기독교교육은 강력한 영성이 필요하다.
④ 예수님의 교육철학(전략)은 양(성장)보다는 질(성숙)에 초점이 있었다. 3년간의 공동생활로 12제자를 도제교육으로 양육하셨다. 대중 속에서 선포하신 것을 제자들에게는 선포된 의미를 재해석해 주셨다. 부활 후, 대중보다는 제자들과 함께 40일을 보내셨다. 제자들을 공동체 구조 속에 세우셨고 성령 강ㅁ림을 통하여 사도로 변모하게 교육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기본구조를 인식하여 창조적인 사역자 양육에 관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교육자는 영성과 사회과학적 방법에 따른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3. 바울과 초대 교회의 교육 1) 바울의 교육 기독교사의 연대기들 속에서 독특한 인물로서 자리를 잡고 있는 바울은 복음 전도자의 열정, 목회자의 동정심, 학자의 지각, 선생의 교육적 기술, 그리고 정치가의 외교술을 겸비하였다. 그는 공통적인 일치점에서 시작하여 그가 대면하는 개종자들의 기독교 신앙을 그들 자신이 보다 심원하게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도록 인도해 줌으로써 그들을 바로잡아주고 가르쳐 주었다. 그는 이방인들의 전파자요, 선생이었고, 부활 사건 후의 기독교 사상의 해석자였으며, 그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기량을 사용하였다
① 유연성의 교육자로서의 바울-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그들에게 그들의 이해 범위 내에서 의미 있게 설교할 수 있었고, 유대교와의 약간의 접촉이 있었던 이방인들에게나, 유대교적인 가르침에 전혀 생소한 이방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안디옥의 회당에서(행 13:16-41) : 유대인들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 즉 유대의 역사 및 성경에 큰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구약으로부터 인용한 본문들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밑받침했다. 루스드라의 사람들에게(행 14:15-17) : 유대적 전통이나 희랍 문화가 거의 침투되지 않았던 소아시아의 오지에 사는 이들에게 그는 자연으로부터, 즉 “비와 결실의 계절”이라는 말로부터 시작하였다. 아레오바고 앞에서(행 17:22-31) : 그 지역의 종교적 예배로부터 시작하였고, 희랍의 시인들을 인용한다. 그는 유대의 역사나, 히브리 성경이나, 자연에 관한 증거를 결코 이야기하지 않았다.
② 모범적인 교육자 바울 - 바울은 자신의 특출한 장점과 자신의 개인적인 약점 모두에 관하여 건전한 자각을 갖고 있었다(고후12 :1-10, 빌 3:12-16)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의 진리성과 능력과 삶을 변화시키는 성질에 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참으로 겸손했다. 자신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하던 모든 이들에게 이르기를 그러한 마음을 품고,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는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신약성서에서 바울은 그가 대하는 개종자들에게 자기의 본을 따르라고 권고하였다. 2) 초대교회의 교육 ① 상황 - 임박한 재림에 대한 대망 때문에 가르치는 교회 보다는 선포하는 교회였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면서 종말론의 재해석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시작하였다. 주님과 동행하였던 사람들이 죽기 전에 예수님의 행적을 글로 남기는 일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교리 정립과 신도의 신앙 훈련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르침에 중점을 두게 되었고 타 문화권에서 기독교 문화적 환경으로 유입되면서 겪게 되는 변화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조직적인 교육체계가 요청되었다. (행 2:)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기본 사역인 하나님의 나라 전파, 가르침, 돌봄(치유) 3가지을 하였다. 초대 사도사역에서 오늘의 교회기능이 드러났다. * Kerygma (설교와 전도) - 성령강림으로 베드로가 말씀을 선포하는 일방적 사역으로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하는 사역이 있었다. * Didache (교육) - 날마다 모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예수님의 주되심을 고백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사역을 교회가 하였다. * Leitugia (예전과 예배) - 모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역이었다. * Koinonia (나눔) - 교제하며 함께 식사하는 나눔의 기본구조를 형성했다. * Diakonia (봉사) - 있는 사람이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섬겼다. ② 교육의 대상 a. 개종한 이방인 - 이방인들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관 교정과 복음을 배워 세례를 받게하려는 준비과정을 3개월간 하였는데 이 교육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귀에 반복적으로 들려준다’는 의미를 지닌 敎理問答(Catechism)을 가르쳤다. 이들은 3년간의 정규 과정 동안 이수한 후에 성례전에 참여할 자격을 주었다. b. 신앙인의 자녀 - 신앙의 약화를 방지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을 교육 ③ 장(場) - 중요한 교육의 장으로는 가정과 교회로 한정되었다. ④ 내용 - 예배, 교육, 카테키시스, 이교 문화에 대한 변증 - 기초 지식을 문답 형식으로 실시하는데 성적 문란으로 인한 사생아의 추행과 영아 살해, 기아 행위를 금지하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삶을 귀중히 여기는 교육을 하였다. ⑤ Catechetical School(敎理學校)의 등장 - Didache를 실현하는 곳
⑴ Catechumenal School (교리문답 학교) 이방인이나 유대인으로서 개종한 자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1-2 C 어간에 세워졌고 2C부터 정규교육이 실시 * 동일한 어근을 가진 헬라어 이해 Catechsm- 교리문답, Catechumen -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교육에 참여하는 신입교인 Catechesis - 신입교인이 세례문답하기 위한 교유과정의 내용 Catechumanate - '귀에 반복적으로 들려주어서 가르친다‘ * 발전과정 - 200-325년에 발전하기 시작하여, - 325-450년 전성기에 제도적으로 교육의 구조를 갖추었다. * 교육기간(2~3년간 교육) 1st. 예비단계 (Preliminaries) 개인적으로 학습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확인하는 기간 2nd. 교리문답 교육, * Hearer - 2년간 듣는 것을 계속하는 피교육반 과목으로는 히브리 성경의 기독교적 해석, 초대교회가 선포한 kerygma인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님의 가르침과 생애, 윤리적 교훈과 도덕교육 * Kneeler - 기도반 3rd. 세례준비 특별교육(Competenes)-과정을 이수하여 자격을 갖춘 자들이 7주간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4th. 세례문답 : 신앙고백 5th. 세례
⑵ Catechetical School (교리문답 교사학교) * 교리문답 교사학교 : 가르치는 지도자 양성기고나으로 신학교로 발전 * 2세기말: 지식 중심의 교육으로 신학 교육을 시킨 고등교육기관 * 3세기말: 세속과목인 문법, 논리학, 기하학, 산술, 수사학, 철학도 교육
⑶ 교부들의 교육 - 저술과 직접적인 교육을 통해 당시의 신학 사상을 주도해 나갔던 대적인 사교부들은 다음과 같다. * 저스틴 마터 -로마의 교리문답학교 교사이며 저술가로서 스토아 철학과 플라톤 철학의 측면에서 기독교의 체계화 시도하였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 이교도의 개종을 위해 이교도 철학의 우매함을 주장하였고, 그리스도를 신적인 교사로서 드러내어 기독교의 가르침을 참된 최고의 종교로 설명했다. * 오리겐 - 이방적인 사상과 기독교 사상의 접목을 추구하였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공격에 대항하여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과 윤리의 순수성을 증명했다. * 크리소스톰 - 교육의 도덕적 목적을 강조했으며 생활에 관한 교설로 교육적인 내용을 많이 담은 책을 저술했다. * 아우구스티누스 - 397년에 ‘기독교교육과 고백’ 저술했고 교육방법은 현대적인 주장과 거의 흡사한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하였다.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깊은 교육사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 클레멘트 - 알렉산드리아의 마가가 세운 학교에 클레멘트가 교장 취임하였고 예루살렘과 콘스탄티노플에도 세워졌다. 4. 중세기의 기독교교육 1) 형태 : 교권 확장에 이용, 특권 충만 허용, 특정 여건자에게만 제공. ① 수도원학교 (Monastic School) - 은둔생활의 수도사들이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토록 교육하는 학교로서 529년에 네딕트의 카지노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② 사원학교 (Cathedral School) - 교구 감독이 자리하고 있는 성당 내에 세워진 학교로서 선배 신부들에게 교육을 받는 성직자 양성 기관이었다. ③ 문법학교 - 성직자와 귀족 외에 희망하는 학생들이 의학, 법률학, 신학을 배움. ④ 대학(University) - 공식 교육의 획기적인 계기로서 학문적 조직을 함 * 12C의 이탈리야 볼로냐(Bologna)대학은 법학을 주로 강의 * 노틀담사원 학교에서 출발한 파리대학은 신학을 중심으로 학문을 형성 2) 평신도를 위한 교육 기회가 박탈 - 성직자 양성교육기관만이 존재하고 편신도의 교육의 기회는 차단된 채, 상징을 통한 교육만 있었다. 성찬 참예로서 주님의 피와 살을 기억하게 하는 성례전 교육, 성경의 그리스도 사건을 미술로 간접 체험하게 하는 종교 미술을 통한 교육, 성경의 사건을 재현하는 성탄 극이나 수난극으로 성극 교육,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 여행 교육, 교회 행사를 교회력에 맞추어 가는 교회력 (Church Calendar) 교육이 있었다. 제도적 교회로서 평신도와 성직자를 분리 고착화하여 평신도는 피동적 교회 참여로 실질 교육의 기회가 없었다. 5. 종교개혁과 기독교교육 1) 루터 (Martin Luther) * 신앙교육 - 루터의 종교개혁은 ①오직 믿음으로(Sola fide) ②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 ③오직 은혜로 (Sola fratia) ④만인제사장설(Allgemeines Priestertum)로 시작된다. 개인의 신앙각성을 교육개혁으로 이루려는 방법을 시도하여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 독일어 성경번역 - 대중에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 성경번역은 종교개혁만 아니라 독일 민족에 있어서 언어의 혁신을 가지고 왔다. 문자로서의 독일어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고 있다가 루터가 독일어 성경이 편찬되면서 독일어 문법이 완성되었다. 그는 성경을 예배에 가지고 와서 설교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에서 선포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새로운 시대적 음성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 요리문답(Catechism) 완성 - 설교하는 자들이 기독교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성직자들을 깨우칠 목적으로 요리문답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성직자와 평신도를 깨우치기 위해서 배우도록 하였다. 이것은 일명, Laien Bible 이라고 한다. 매년 종교개혁 행사가 되면 오늘날에도 이 책을 읽고 있다. 지금도 독일 여행자들에게는 이 책을 소지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대화서, 상담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아세례를 위해서 텍스트로도 사용되고 있다. * 공립학교(Volkschule) 설립 - 교육기관 창설의 교육 안을 제시하여 시의회와 정부에 발송하여 공립학교가 설립되어 서민들이 교육 혜택을 받게 하였다. 그리고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교육안을 제시하여 시민정신을 키웠고 사람의 계층 구별이 없이 균등한 기회를 주장하였다. 만인제사장론으로 평신도 교육을 촉구했다. 학교에서 반복교육으로 성경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그래서 현재 독일에서는 성경교육이 윤리적 기초로 작용하고 있으며 수상은 성경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 가정교육의 강조 -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은 부모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녀들을 주신 것은 의식주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가정의 목자로 보내 준 것을 강조했다. 2) 깔뱅 (John Calvin) * 기독교교육학의 기준설정 - 성서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과 세계, 그리고 교회와 인간에 대해, 기독교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특히 인간이해는 타락과 더불어 죄인이고 부족한 존재이므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함과 교육함을 통해서만 완성을 향하여 가까이 갈수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 교육목회의 구상 - 교회학교나 견신례교육으로 제한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이해했다. 교회의 핵심적인 사역인 설교, 수업, 치리, 성찬과 세례에 이르기까지 교육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교육적인 효과와 기능을 발견하여, 목회를 교육적으로 이끌어 가는 교육목회의 개념을 구상하였다.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로서 교육의 과정 가운데에 있는 ‘교육인간학적’ 이해에 입각하여서 전개하고 계속적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라고 하였다. * 하나님의 교육 사상 -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사역과 인간을 인도하시는 모든 행위를 ‘패다고기아 데이’ 하나님이 인간을 교육하시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 교육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신자들을 양육하는 어머니와 같다고 하였다. * 학교설립 - 1538년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고등교육 제도를 실시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주체자의 형성을 위한 침묵교육을 하였고 고전적 지식을 중시하고 교회의 구조를 교육과 봉사의 기능으로 구분하여 교육행위를 교회라는 터전 위에 세웠다. 신앙과 문화의 차원에서 실시하였다. 외면상으로는 인문주의와 흡사하나, 그 핵심적 내용에 있어서 인간성의 완성과 인간 교육을 추구하는 인문주의 교육과는 분리된다. 폭넓고 체계적인 신학적 사고 때문에 그러하다. 그는 종교개혁자로서 누구보다도 깊이 있고, 조직적이고 포괄적인 신학을 전개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다. 그의 명저 ‘기독교 강요’는 종교개혁의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신교 신학을 대표하는 책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신학적인 측면에서, 교회교육 이론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교육신학적 입장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교육학의 방향설정에, 이론정립에, 그리고 사고의 방법에서 종교개혁적인 뿌리를 제시하는 한사람의 위대한 기독교교육 사상가로서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6. 근세기의 기독교교육 14세기 말엽 이후 이태리를 중심으로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나 고대 정신의 순수성을 되찾으려는 새로운 관심이 일어났다. 이런 흐름은 당시 교회주도적 교육의 흐름을 바꾸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당시 로마 천주교의 형식주의와 상징주의 교육의 맹종적인 교육형태의 기반을 뒤흔들어놓았다. 만인제사론의 기초에서일반신도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적극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있다는 교육적 실마리를 얻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일반 신도도 성서를 직접 읽을 수 있도록 성서를 번역했고, 이를 읽을 수 있도록 국어 교육을 겸한 종교교육의 장이 바로 민중학교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루터는 여기서 외면되었던 대중의 교육기회 균등화 작업, 공교육의 실시에 획기적인 기회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성서를 교회의 독점에서 학교와 대중의 성서로 바꾸는 일, 의무교육을 위한 시 정부의 책임을 촉구했다. 칼빈은 제네바 아카데미를 만들어 거기에서 초급반과 고급반을 두어 공교육 제도를 실시했다.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등장으로 교육의 교권 주도적 상황이 세속적인 세력의 주도권으로 바뀌게 되었다. 정교분리의 원칙으로 세속적 학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사립학교, 교회의 지원을 받는 학교, 자선학교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근세에 이런 세속적 흐름에 대응하려는 기독교적 사상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 조류를 형성했다. 하나는 정통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경건주의이다. 특별히 경건주의는 나름대로 기독교교육을 실시하려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코메니우스(J. Commenius)를 들 수 있다. 그는 당시 이단으로 몰리던 모라비아에 가담하여 방랑생활을 하면서 대교수학(Didactia Magna)란 책을 기술했다. 여기서의 교육의 핵심은 교육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신앙적 회심을 중요시하며, 합리주의를 수용하여 신앙과 기독교교회를 재해석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1) 형태: ① 사립학교(경제적으로 부유한자를 위한 학교) ② 교회와 연결된 학교(교회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학교) ③ 자선학교(중세기에 공립학교로 남아 있던 학교) 2) 사상의 흐름과 교회의 학교 변천 ① 정통주의 - 세속세력과 단절하고 개혁자들의 주장을 고수하려는 입장 ② 경건주의 - 내면의 개혁을 위한 강력한 훈련을 시도하는 입장에서 교육의 책임과 신앙적 回心에 관심한 ‘코메니우스’를 중심으로 형성했고 영국의 부흥운동과 미국의 각성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③ 합리주의 - 이성과 과학적 합리성, 진화론적 사고의 수용으로 신앙과 교리를 재해석하려는 자유주의신학과 연결되었고 20세기 종교교육에 영향을 끼쳤다.
7. 주일학교 운동과 기독교교육 1) 창시자: 영국 글로우체스터(Gloucester)에서 출생한 로버트 레익스(Robert Raikes, 1735-1811) 1780년 글로우체스터 빈민촌 뒷골목에서 공립학교에서 은퇴한 주부들을 유급교사로 채용하면서 주일학교를 시작하였다.
2) 시대상황: 산업 혁명으로 인한 생활구조는 도시화 공업화의 사회변도을 가져와서 농촌은 피폐해지고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수공업의 공업화가 나타났다. 숙련공인 남자들은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값싼 노동자인 어린 아이와 여자들이 일터로 나서게 되었다. Raikes는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사회 문제를 보도하였고 교도소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인간의 죄는 사회구조적인 면에 있다고 보고 방치된 채 비행으로 치닫는 청소년 교화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젊은이들의 무지가 비행의 요인이 됨을 인식하고 교육사업에 관여하게 된다.
3) 교육과목: 6-12세의 남자 어린이에게 오전 10시-12시, 오후 1시-5시에 3RS(쓰기, 읽기, 셈하기)를 교육하였고, 성경공부와 문답식 교리교육, 음악, 예배참석등 철저한 생활교육을 실시하였고 노동소년들은 성실과 양보와 순종으로 적응했다. 실험학교가 3년간 지속된 후, 1783년 11월 3일 글로우체스 저널에 공개를 하자 언론들이 곤심을 보였도 주일학교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 주일학교의 태동: 1785년에는 윌리암 폭스(William Fox)가 앞장선 주일학교 협회(Sunday School Society)가 결성되어 초교파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가난한 어린이를 위한 교회학교였으며 일반 학교교육을 종교교육과 함께 실시하였는데 평신도가 주도하였다. 1787년에는 영국 전역에 25만명, 1831년에는 125만명이 등록하여 전문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5) 주일학교의 반응: 사회개혁을 위한 효율적인 교육운동으로 지지하는 긍정적인 견해가 있었으나 귀족들은 주일학교를 통해 자신들의 선량한 일꾼들을 선동하여 위험스러운 의시을 일깨우는 ‘악당의 조직’ ‘악마의 기구’ 라고 매도하면서 극심하게 반대하였다. 무지한 청교도적 교회지도자들은 주일학교 운영자체가 안식일을 범하는 이교적 행위르서 이교집단으로 규정하고 박해하였다. 그래서 영국보다는 다른 나라, 특히 미국에서 더 크게 수용하였다. 미국교회에서는 교회 내에서 활용할 뿐 아니라 어린이 복음 전도 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되었다. 미국에서 발달된 것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주일학교로 발전한 것이다.
6) 주일학교의 공헌 * 성서나 교리교육에 그치지 않고 삶과 사회변화를 모색하는 기독교사회교육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 레이크스의 열전적인 헌신은 바람직한 교사상을 보여 주었다. * 교회교육을 담당하는 평신도 운동이 열렸고 * 여성을 포함한 교회교육이 전개되었다. 8. 미국에서의 기독교교육 1) 1785년 대각성 운동과의 관계 - 주일학교를 회심과 전도의 효시가 되었다. ① 윌리암 화잇( William White)목사 1788년 건의하여 1790년 핑아텔피아에서 첫 주일학교협의회 창설되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자선학교 형태에서 시작하였으나 미국에서는 부흥운동의 도구로 시작되었다. ② 스티븐 팩슨( Stephen Paxon) - 어릴 때 무릎 부상으로 장애가 있었던 팩슨은 일리노이州 원체스터에서 주일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글을 배우고 성경을 공부하는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교육교사가 되었다. 1780년 후반은 미국 내에는 동부에서 서부로 개척을 하는 이동변화가 있을 때, 팩슨은 교회교육협회를 통하여 순회전도자로 자청하여 20년동안 1,314개 주일학교를 세워 83,00명을 등록시켰다. ③ 주일학교 연맹결성과 집중 사역 * 주일학교의 2중 목적 : 청소년기의 회심을 위한 인큐베이터 과정으로 취급하고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심판적 태도를 주입하는 수순으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성경을 암송시키고 성서를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였다. * 대계곡전도운동-평신도를 전도자로 파송하여 계곡마다 교회를 세우고 주일학교를 설립한다는 운동으로 * 평신도전도자파송-개척지순회로 주일학교과 책판매와 전도지를 배본했고 * 뉴욕 공교육 75 %, 필아델피아 보스톤에 80 %로 확산되었다. * 1872년 세계통일공과를 발간하였다. ④ 동부지역의 주일학교 교육 - 정부주도의 학교교육으로 종교교육이 축소되자, 1815년경 부터 내적경건에 관심을 가짐으로 체험 중심의 신앙부흥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Calvinism을 이어받은 청교도적 신앙 전통을 유지하였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인간의 무력함과 죄성, 전적타락을 강조하므로 인간에게 내재하여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회개운동이 여과없이 교회학교에 도입되어 신의 초월성에 강조하여 종교적 회심, 경험을 강조하는 분위기와 성경의 문자적 해석 분위기가 용서, 회개, 구원 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철저한 개인구원 위주의 신앙을 가르침으로 문제가 야기되었다. 이들은 어린 아이에게 주어진 영적 가능성을 차단하고 말았다. ⑤ 비교
⑥ 평가 * 개신교신도들의 종교적, 문화적, 교육적인 경험에 영향을 미쳤고 주일학교를 통해 교인훈련의 민주주의 훈련의 장이되었다. * 회심중심교육- 죄의 화개와 영혼구원에 초점두고 기계적인 성구암송을 중심으로 하는 성서교육을 함으로 역사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하였다. * 교육받은 흑인들의 노예제도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로 교육을 중비했고, 물질적 풍요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하는 기복내세 중심의 교육이었다. * 19세기 초에 어린이 사망률이 33%에 달하는 환경에서, 어린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매개로 회심을 강요했다.
9. 현대 기독교교육 A. 호레스 부쉬넬(Horace Bushnell 1802 ~ 1876)의 종교교육운동 1) 활동 - ‘현대 기독교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법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북부 회중교회에서 평생을 목회하였는데 건강을 위한 여행 중에 생각의 폭이 넓어져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터전에서 지성의 발전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Califonia에서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 어린이에 대한 이해 - 당시에는 어린이들을 죄인으로 취급하면서 회심의 준비로서 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회개를 강요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심리적인 무마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님을 지적하면서 신앙교육에서 과학적 합리성에 기준하여 신앙교육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어른들의 부흥은 회개를 통해서 가능하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회개라는 것이 맞지 않다’고 보고 어린이의 정상적인 발달과 그 발달의 법칙성을 따라 교육함으로 이상적인 신앙인격자로 성장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어린이들을 부흥회 속에서 죄성을 강조하면서 회심을 강조하는 잘못된 입장을 신학적으로 제시하면서 어린이 교육의 새 방향을 제시하였다. 3) 가정 - “은혜의 통로”로서, 언약 공동체인 가정의 개념을 중시하면서 유아세례의 전통 속에서 주어진 신학적, 유기적 통일성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부모가 어린아이의 양육 과정의 책임을 중요시하는 것에 관심하였다. 즉,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가정을 통하여 나타나며 가정은 성령이 임하시는 공동체이며 유아세례는 부모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으로 신앙양육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파격적인 제시였다. 그 당시의 가정교육은 어린이들도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성령을 통한 회심만이 구원을 일루수 있으며 죄인에게는 교육이 효과가 없으며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분별연령 이후에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죄인임을 빨리 깨닫게 하려면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해야하며 이를 ‘회심을 위한 준비교육’이라고 불렀다. H. Bushnell은 어린이를 하나의 교인으로 길러야하므로 언약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어린이를 이해하고 신앙의 자녀로 수용하고 양육할 것을 말했다. 이러한 양육과 성장의 교육이론을 정리하는 책이 ‘Christian Nurture(1847)’ 이다. 4) 저서 - ‘기독교적 영육’은 교육의 場을 가정으로 규정하고 양육과 성자의 기능을 이론적으로 정리하였고 특히 유아세례, 언약의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바람직한 교사상과 교육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回心인가 養育인가?' (Conversion Vs Nurture)에서 기독교교육함에 있어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에 관심을 한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려서 회심에 교육의 한계를 정하여 인간의 책임인 양육의 책임을 무시하는 과오를 지적하면서 회심보다는 야육에 더 관심을가지라고 권한다. 회심에 치유쳐서 교육의 한계를 정했기 때문에 양육의 측변을 대두시킨 것이지 회심을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즉 믿음의 가정에서는 양육을, 불신자의 가정에서 자란 어린이에게는 회심에 초점을 두라는 것이다. 5) 교육방법 - 사랑과 인내 안에서 형성되는 종교분위기와 부모의 모범을 중시했고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해했다. 6) 평가 - * 기독교적 삶의 형성과 인격성장에 초점을 기독교교육이론을 제시하였다. * 아동을 영적 가증성의 존재로 인식하는 새로운 제시를 하였다. * 가정의 종교적 분위기와 부모의 종교적 모델로서의 삶을 중시했다. * 진보족인 종교교육학파에 사상적 기틀을 마련하고 영향을 끼쳤다. B. 진보적 종교교육 (Progressive Religious Education) 1) 시대적 상황 - 미국의 발전과정 속에 개척 열정에 뒷받침하려는 세속학교교육의 전문성에 비해 교회 주일학교는 성경의 문자적 암기와 종교적 회심에만 강조점을 두고 아동들의 양육에는 관심이 없는 상황이 있었다. 비전문성을 풍자한 내용이 들어 있는 Mark Twain 의 ‘톰소여의 모험’(1876)은 당시의 교회학교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교육에 대한 비판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2) 사상적 기초 - 자유주의 신학(Liberalism)과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사회문제를 교육으로 해소하려는 진보주의 교육철학을 사상의 기초로 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듀이를 중심으로한 진보주의 교육철학자들은 경험을 통한 배움을 강조했고 이 사상은 ‘사회복음주의 운동’을 표방한 교육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2) 1903년 종교교육협회((Relious Education) 발족 - 당시 시카고대학의 윌리암 하프 총장이 종교교육자들을 소집하여 종교교육의 방향을 제시하자고 제안하였다. 강사로는 세속중의 교육을 주도했던 시카고 대학의 교수 죤 듀이(John Deway)와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종교와 철학을 가르치던 죠지 알버트 코우(George Albert Coe) 를 강사로 세웠다. 듀이는 세속학문의 틀을 교회교육에 도입하기를 제안했고, 코우는 ‘교육에 의한 구원’이라는 주제로 조교적 이념을 교회, 학교, 사회에 불어 넣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육에 의한 구원’은 교육의 진실성을 단고 있으므로 당시 미국의 발전과 진보라는 꿈으로 가득차 있었으므로 전문적이며 기능적인 지식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지식이 필요한 사회 속에 함께 참여하여 세속의 틀이 아닌 하나님, 인간, 세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교육을 통하여 실천하자는 교육적 의지를 주창하여 참여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의 제안으로 결성된 ‘종교교육협회의 이념’은 다음과 같다. * 교회 안에 현재 이루어지는 종교교육의 이론을 강화하고 확신시켜 나아간다. * 종교교육의 이념을 세속학교 안에서 살리자. * 대중 속에 도덕성을 함양하기 위하여 종교적 이념을 세워간다. 3) 종교교육의 특징 - 부쉬넬의 기독교적 양육사상에 영향을 받아 기존 주일학교 교육의 비전문성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결성되었으나 초월적인 힘에 의한 변화와 회심보다는 기독교적 양육에 의한 형성에 심취하므로 미국성향의 대중적이고 인위적인 종교교육에 머물고 말았다. 학습자를 교육의 주체로 설정하고 강제력과 규칙이 없이 교사는 안내자로서의 역할만 하는 ‘경험주의 교육’이 우세했다. 4) 대표적 학자 ⑴ 죠지 알버트 코우(George Albert Coe, 1862-1951) - 교육목적을 삶의 목적 실현과 하나님의 민주주의 실현에 두고 공정한 정부, 빈곤 없는 경제질서 확립, 하나님의 민주주의(Democracy of God)를 향한 헌신, 자기실현, 사회복지와 환경보호, 형제애 구현을 근거로 하는 공동체건설에 관심하였다. ⑵ 해리슨 엘리옷(Harrison Elliott) - 인간은 죄인이기는 하나 사회와 환경이 죄를 짖도록 함으로 사회적 죄를 극복해 가는 성숙한 기독교교인이 되기 위하여 인간의 경험개발에 교육의 희망을 걸었다. 권위적이고 주입식의 교리교육에 대한 반성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심리학의 도움, 사회학의 도움을 교육에 긍정적으로 인정하였다. 5) 활동과 공헌 * 1903에 출범하여 192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면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 기독교교육의 세계적 학술지인 ‘종교교육(Religious Education)을 발간했다. * 교육은 있으나 교육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개발하고 낙후된 주일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전문화한 업적은 크다. * 내용전달 중심의 교육에서 ‘삶 중심의 교육’으로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 기독교교육의 사회적, 역사적 차원과 책임을 강조하며 사역영역을 넓혔다. * 학습자 중심의 교육개발을 촉진하여 ‘계단공과’를 편찬하는 시도했다.- 1872년 미국에서 발간한 ‘통일공과’는 주석적 방법을 채택한 성경강해식이어서 학습자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보적 종교교육운동가들에 의해 처음 소개된 ‘계단공과’는 각 연령별 수준에 적절한 내용 선택과 교수방법을 제공하였다. 6) 제한점 - 도덕교육의 차원에 머무르게 되고 민주주의를 하나님의 나라로 대치하는 '신의 민주주의‘(Democracy of God)에 집중함으로 기독교의 초월적 차원에는 미흡한 방법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기초함으로서 인간 본성의 죄성과 세상의 악성을 간과하는 비성서적인 낙관주의 교육사상에 머물렀다. 성서의 중심이 되는 주님의 부활을 신화화했던 신학사상(1903-1930)을 도입하므로 부활의 능력을 일상적 질서의 법칙 속에서 소멸시켰다. C. 기독교교육학파 (Christian Education) 1) 시대적 상황 -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경제대공황으로 피폐하였다. 2) 사상적 배경 - 인간의 가능성을 주창하던 사상적 흐름은 참혹한 전쟁을 치루면서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초월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하는 종교적 심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칼 바르트 (Karl Barth)는 자유주의 싱학에 근거한 목회와 설교는 목회현장에 전혀 도움이 주지 못한다는 실존적인 문제를 깨닫고 자신의 목회현장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 비추어 로마서를 읽어가는 과정에 인간의 인격성을 짓밟는 하나님을 소개한다고 했던 롬9:-11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새롭게 보게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개닫고 ‘로마서 강해’(1918)를 집필하여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의 이 저서는 당시의 자유주의 사상의 오류를 지적하고 인간구원은 인간경험으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은총과 일회적인 그리스도의 사건을 ‘말씀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씀의 신학에 기초한 ’신정통주의‘(Neo-Orthodoxism) 신학의 등장을 이끌어 내었다. 자유주의에 기초한 진보적 교육운동이 지양되고 말씀중심,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신정통주의 시학이 등장과 함께 1940-1950의 갈등기간을 거치면서 기독교교육에 관련된 ’만남의 기독교교육‘ ’교회의 교육적 사명‘ 등 저서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적과 기본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 하나님과 인간은 질적 차이가 있다. * 종교적 체험과 신비주의를 빙자한 인간의 교만은 죄이다. *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죄를 극복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 3) 기독교교육학파의 태동 * 쉘톤 스미스(Shelton Smith) 'Let Religious Educatior Reckon With Barthians'(1934) 'Faith and Nuture'(1941) 스미스의 이 저서들은 기독교교육의 새로운 신학적 기초를 제공하였고 미국 N.C.C.가 4년만에 폴 비트(Paul H. Vieth)의 ‘교회와 기독교교육’이 출판하게 된다. 4) 개신교 신앙교육의 3가지 潮類 ① 교회론적 기독교교육 -교회교육을 중심하여 * 스마트(James Smart) ‘The Teaching Ministry of the Church' (1956) * 와이코프(D. Camphell Wyckoff) 'The Task of Christian Education'(1955) * 컬리(Iria V. Cully) ‘The Dynamics of Christian Education'(1958) ② 대화적 기독교교육 - 관계신학을 배경으로 * 부버(M. Buber, 1878-1965) ‘I and Thou' * 밀러(Randolph Miller) ‘The Clue to Christian Education'(1950) * 헌터(David Hunter) 'Christian Education as Engagement' (1963) ③ 심리학적 기독교교육 - 실존주의 신학을 배경으로 하며 * 하우어(Ruel L. Howe) 'The Miracle of Dialogue' (1963) * 쉐릴(Lewis J. Sherrill) ‘The Rise of Christian Education'(1944) 'The Struggle of Soul'(1951) ‘The Gift of Power'(1955) 5) 활동과 공헌 * 1940년대초-1960년대 중반까지 발전한 기독교교육의 황금기를 열었다. * 교육의 단서로서의 신학을 도입함으로 이론적 기초를 든든히 세웠다. * 성서교육, 하나님의 계속적인 만남(Encounter)을 중시하는 신앙교육을 했다. * 교육 내용의 중심으로서의 성서와 교육의 기초로서의 복음을 강조하였다. * 초월성을 강조면서도 성장과 양육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하는 과학적이며 합리적 근거를 교육재료로 사용하였다. * 교육의 장(場, Feild)으로서의 교회를 강조하므로 교회교육에 관심하였다. * 이 기독교교육 운동은 현재의 교육서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6) 제한점 * 하나님을 경험하는 영역을 교회 안에 제함함으로 교육의 장을 축소시켰다. * 세속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시간과 영원의 이론에 머물렀다. 9. 새로운 기독교교육 운동 1960년대 Missio Dei 신학의 등장과 L. Russell에 의해 Christian Education in Mission 이라는 책을 통해 선교론적 교육론이 시도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 다양한 기독교교육의 학문적 흐름이 하나의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것을 다섯가지 메타포를 중심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종교교수(Religious Instruction)/ 여기서 종교교수란 S. Little에 의해서 사람들이 그들을 위한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고 평가하고 그럼으로써 응답하는 어떤 방법 안에서 교회의 존통과 자기 이해를 탐구해 가는 과정이라고 정의된다. 2) 신앙공동체/ 웨스트호프, 넬슨 등에 의해 주도된 흐름으로 신앙공동체가 그들의 신앙과 삶의 양식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3) 발달/ J. Fowler에 의해 주도된 흐름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학습자들로 하여금 신앙 전통 안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발달의 개념을 성장의 개인의 사적인 과정을 넘어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까지 확대되어 이해하고자 한다. 4) 해방/ P. Freire에 의해 주되된 흐름으로 바람직한 삶의 양식 즉 세계를 변형시키고 인간화시키기 위한 노력에의 급진적 참여에 관한 새로운 기독교 의식을 구체화하는 것을 말한다. 5) 해석/ T. Groome에 의해 주도된 흐름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빛 안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따라 충실히 살아가게 사람들을 돕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신앙의 이야기와 경험을 연결시키는 것이 요점이다. 1990년대 이후 최근에는 소위 실천신학 운동과 맞물린 기독교교육의 학문적 재정립과 실천신학으로서 기독교교육의 새로운 시도들이 모색되고 있다. 즉 교회 사역 전체의 시각에서 교육을 시도하는 교육목회라는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10. 한국 기독교교육의 특징 1) 선교교육 한국 교회는 기독교 교육을 선교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초대 선교사들이 시작한 기독교 교육이 선교 정책의 하나로 시도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신교육 기관인 배재학당, 경신학교, 이화학당을 비롯한 수 많은 학교들이 선교 교육의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를 중심하여 기독교 계통 학교를 오늘날도 (미션스쿨) (Mission School) 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교 교육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교 교육의 특징은 다음의 세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1) 근대화 교육- 개화 초기의 기독교 선교 교육은 한국 근대화 교육에 가장 중심적이 며 개척자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2) 계몽운동 - 성경을 읽히기 위하 여 문자를 보급하였고, 복음 전파를 통하여 여성 해방 운동이 신자의 경건된 생활을 위하여 술,담배,도박을 금하는 절제 운동을 전개하였다. 계몽운동은 후의 민족 운동으로서 새롭게 자극되었으며 일제하의 고통 속에서 민족의 구심점이 되었다. (3) 연합운동 - 모교회의 교파를 달리하는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선교 사업을 전개하 면서 성서공회, 기독교서회 등을 비롯하여 연합 운동을 전개하였다.문서운동, 교육운동을 함께 전개함으로 기독교의 능력을 집합시켰다. 2) 민족 교육 한국에서의 기독교교육은 민족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민족주의자였으며 일제 치하에서 고통을 당하는 민족으로서의 당시 상황에 크게 작용하였다. 기독교교육이 민족교육의 방향으로 전개되자 교회는 애국사상 고취와 민족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 기독교의 여러 기관들이 민족 운동의 본거지가 되었고, 3.1운동 신사참배 거부 운동 등이 민족 교육의 일환으로서 크게 작용되었다. 매 주일의 설교에서 출애굽의 역사를 강조하는 등 민족 교육의 한 모습이 여실히 나타나게 되었다. 3) 성경 중심의 교육 한국 기독교의 특징은 성경을 강조하고 이대로 살기를 원하는 경건주의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선교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네비우스(John Nevius) 원칙도 성경교육을 강조하였고 이를 실천하므로 장족의 발전을 할 수 있었다.
(1) 성경 중심의 선교방법 - 네비우스 원칙은 곽 안련 선교사가 지적한대로 성경적 선교방법이었다. 성경을 통하여 신앙을 갖게되면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자율전도(Self-prepagation)를 하게되고, 자기 일에 바빠서 시간을 내어 전도할 수 없으면 돈을 내어 다른 이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니 자율적 후원(Self-supprot) 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선교방법을 통하여 교회의 양적 성장이 있었고 그 결과 자립 교회로 서의 면모가 새롭게 되었다. (2) 성경 중심의 교육 - 한국 교회는 1894년부터 학습 문답제도를 실시하였다. 세례를 준비하기 위하여 성경, 요리문답, 교회법을 필수적으로 가르쳤다. 성경 중심적인 교육은 가정 교육에도 나타나 가정 예배를 실시하게 하였고, 만국 통일 공과를 통하여 교사들의 성경 교육을 강력히 행하였다. (3) 지도자 양성 - 성경 중심 교육은 지도자 야성으로 직결된다. 이것은 성경 연구 제도인 데 사경회, 성경학교, 신학교로 구분할 수 있다.사경회는 교회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로 알번 교인과 제직들을 위하여 성경공부 시간을 마련하였고, 성경학교는 전도사 양성을 위한 것이었으나 평신도 지도자를 위한 단기 성경 학교도 있었다. 신학교는 성경 중심의 과목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엿고 보수주의적 성경 해석법 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성경 중심의 교육은 한국 교회로 하여금 순교의 터 위에서 기회를 마련 하였고 오늘날의 이와 같은 부흥의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성경중심 교육은 성경 해석의 차이로 교파 분열의 비극을 낳기도 했으나 한국 교회의 저력을 이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