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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간직한 아빠의 편지>
10여 년 전쯤 시드니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보내준 메일을 지금도 가끔 꺼내 봅니다.
그 때 당시 아버지는 구산동에서 자하문 고개 너머 시내를 돌아 들어 오는 시내버스를 운전하실 때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딸아 잘 지내고 있지?
가난한 농부 부부가 살고 있었단다.
어느 날 남편이 꾼 꿈의 내용이 이랬단다.
수염이 멋지게 자라고 아주 점잖게 생긴 노신사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어느 어느 길로 어느 어느 만큼 가면 큰 나무가 한 그루가 있을 거고, 그 나무를 조심해서 베어보라" 하고서 연기와 함께 사라졌단다.
다음날 이 우직한 농부는 톱 한 자루를 날을 잘 세워서 챙겨서는 먼길을 떠났어.
긴 여행 끝에 꿈에 본 나무를 만나 열심히 톱질했고, 큰 나무가 쓰러지자 그 밑 둥 안에 새 둥우리가 있었데.
그 둥우리 안에 알이 두 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깨지며 예쁜 새 한 마리가 나와서는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남은 알 한 개를 깨 보면 그 안에 반지가 들어있을 거고 그 반지에게 소원을 말하면 딱 한 번 들어줄 거라고....
그러고는 그 새는 아름다운 노래를 하며 하늘 높이 날아갔단다.
반지 한 개를 달랑 들고 집에 온 농부는 그의 아내와 밤새워 고민하고 또 수많은 밤을 새워 고민했단다.
아빠 대형 버스 라디오 음악 프로 시그날에 묻어 이쁜 아나운서의 차분한 목소리의 짤막한 이야기가 아빠의 가슴을 막 뛰게 했어.
아빠가 그 이야기의 농부가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펴서 시드니로 간다.
무슨 소원을 말할까?
어릴 때부터 꿈이던 과수원을 달라 할까?
좋은 집을?
소를?
필요한 게 참 많았어.
그런데 정작 결정을 하려고 하면 뭔가 아쉬움이 남고 아깝고.....
그렇게 고민 고민하는 사이 몇 날이 지났고 결론은 이렇게 났지.
우선은 급한 것이 없으니까 살다가 꼭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 때 꺼내 소원을 말하기로.
그리고는 손수건에 잘 싸서 장롱 깊은 속에 간직하고 그리고는 더욱 열심히 살았어.
큰 어려움이 생기면 해결해 줄 반지가 있기에 항상 든든했고 그렇게 세월은 가고 그러는 사이에 황소도 장만했고 그 황소가 아이들을 많이 낳아 집도 마련했고 그래서 오랜 소원이던 과수원도 마련했고... 큰 부족함 없이 세상을 살며 예쁜 딸을 셋이나 낳고 행복하게 살았어. 그렇게 세월은 흘러 그 농부 하늘의 부름을 받아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의 손에 묻혀 하늘나라로 갔고,
남들처럼 똑똑하고 잘 나지는 못했어도 제 아내를 끔찍이 사랑해 주던 낭군을 떠나보낸 아내는 그 후 여러 해를 딸들의 효도를 받으며 살다가 그녀 역시 하늘의 부름을 받기 전 세 딸과 사위들을 불러 모아 놓고 오랜 세월 간직했던 반지를 꺼내놓으며 사연을 얘기하고 지금까지 잘 살아준 딸들한테 고맙다며 이 반지는 필요한 사람이 썼으면 좋겠다 하고 낭군 곁으로 갔어.
어머님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세 딸은 난리가 났지.
이 귀한 보물 반지를 누가 가질 것인가?
큰 딸과 맏사위 : "당연히 아들 없는 우리 집안에서 장녀인 내 몫이야!"
둘째와 그 남편 : "무슨 말이냐 언니와 연년생 동생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게 자라왔는지 다 알지 않느냐 그러니 당연히 내 몫이야!"
막내딸과 그 남편 : "울 엄니 아부지가 살아생전 날 얼내나 이뻐 했냐. 그러고 언니들은 다 잘 사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내 몫이야." 했어.
그러다 날이 샜지.
그러나 세 자매는 용감했어.
울 엄니 아부지는 이것 사용 않고도 우리 셋 잘 키우고 우리 모두 잘 살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의가 상하고 다투지 말기로.
그래서 그 반지를 고이 싸서 어머니 시신 곁에 넣어 보내었대.
그랬어. 아빤 부모님한테 튼실한 몸 하나 받아 왔어.
30년 전, 논 한 마지기 밭 한 뙈기 숟가락 젓가락 한 벌 없이 작은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아들 앞에서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드시던 아버님이 얼마나 안쓰럽고 불쌍하던지 그저 제때 밥도 제대로 못 얻어 먹고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두가 제일 넘기 힘들다는 보릿고개의 힘든 과정을 마지막 세대로 겪으면서 인가(국가인증)도 없는 중학교를 겨우 마치는 것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전 재산이었어.
배고프고 앞길이 보이지 않아 무작정 집을 떠나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고 거기서도 열심히 교회를 다녔어.
그러다 오례 낭자의 눈에 밟혀 지금의 아빠 되어 여기까지 왔어.
열심히 살았지 앞만 보고 부지런히 살았어.
몸이 약한 아내가 금방 죽어 버릴 거 같아서 힘겹게 장만했던 과수원도 미련없이 정리하고 늦은 나이에 천리 먼 길 서울살이도 겁 없이 뛰어들었지.
그 사이에도 오례는 연약한 몸을 잘 버티며 세 딸과 가족을 잘 보살펴 주었고 별아 시은이 은실이는 어엿한 규수되어 한 번도 부모 가슴에 못질 않고 잘 자라 주었지. 그 세 딸은 대학도 부족하여 바다 건너 해외에까지 유학길에 오르며 꿈을 펼쳐가고 있으니 아빠는 얼마나 행복한지 아니?
이제는 예쁜 딸들이 좋으 ㄴ남자 친구 데리고 오면 소개받을 일만 남았잖아^^
며칠 전에는 새벽 한 시 넘어 퇴근했더니 직장 다니는 두 언니가 맥주 파티하다가 아빠와 합석 했어.
건강이 안 좋은 엄마가 이사하고 나서 아직도 회복되질 않아 걱정이야 이러다 쓰러질까 걱정된다는 아빠 말과 큰 언니 결혼 이야기.
둘째 언니 남친 이야기를 나누다 아빠는 이렇게 말했어.
이번 달 상여금은 몽땅 엄마 보약값으로 쓰겠다고 일단 한방 병원 가서 진료를 받고 최고의 약 처방을 받아볼 작정이라고, 그리고 언니들한테 이렇게 얘기했어.
엄마 아빠 건강할 때 집안이 평안할 때 시집가라고.
어느 날 엄마가 쓰러지거나 아빠가 큰 병 나면 집안이 어려워지고 그 땐 너희들 결혼도 안 편할 거라고.
멀리 가 있는 딸에게 걱정되는 말 해서 미안한데 아빠는 늘 그걸 각오하고 사는 사람이거든.
살고 죽는 걸 우리 임의로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아빤 그래.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오래 살지 않아야 하는 게 소원이야.
그래서 젊어서 미리 장기 기증도 해놨잖니.
그 반지 이야기 계속해 보자.
그 아나운서의 얘기처럼 지금 아빠가 그 반지를 사용할 수 있다면 무조건 엄마 건강으로 쓰고 싶어.
딸아, 유학 생활 시작한 일이니까 집 걱정은 말고 열심히 하고 오거라.
몸 건강하고!
몸 조심하고!
아빠 자야 해, 그러고 낼 새벽 세 시 반에 기상이야.
-2010년 5월 19일 아빠가-
지금은 우리 세 자매 모두 결혼해서 자녀들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도 몸 약하다 걱정하던 어머니도 딸들 다 출가시키고 아버징와 단란하게 살면서 우리 가족 모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계시고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백련산 아래서, 딸이!
첫댓글 아버지 불러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