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히브리서 11:1-12)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성금요일, 그리스도 고난일입니다.
여러분 나를 위해 받으신 예수님의 고난을 집중적으로 묵상하며 이 주간을 지내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동시에 고난 받고 있는 북한동포들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고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 주일은 부활절인데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라면서 동시에 북한교회의 부활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통일선교를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일에 해서서 가지고 있는 생각, 통일관을 정리해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통일이 되기는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여러 단계를 밟아야 할 것이다, 교류를 확대하고, 연방제,, 연합체,, 공동체, 여러 제도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단계적 통일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통일? 안 될 거야!’라는 생각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통일? 안 됐으면 좋겠다. 통일이 되면 통일비용도 많이 들 것이고, 오랫동안 다른 체제 가운데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고방식, 습관이 많이 달라져서 마찰이 심하게 일어날 텐데 그런 혼란을 겪을 필요 없다. 이대로가 좋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부정적 통일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즘 통일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이런 부정적 통일관을 가진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통일관을 가져야 합니까?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 예기치 않은 때에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통일이 이뤄질 것이다. 그것을 믿고 통일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통일관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초월적 통일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우리는 이런 통일관을 가져야 한다”입니다.
대단히 강하고 단정적인 느낌을 주는 제목입니다.
군인교회에 와서 설교하기 때문에 군대에 어울리게 하느라고 이렇게 정했는데 그와 함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꼭 이런 통일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의미도 숨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런 통일관’이라고 한 것을 바로 초월적 통일관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초월적 통일관을 가져야합니다.
제가 “초월적인 힘‘‘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바꿔서 하는 말입니다.
그 힘의 주인은 말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일을 주실 것이다. 그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준비하자’ 이것이 초월적 통일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인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싱이요”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통일을 바랍니다.
여기에 나오는 ‘실상’이라는 말은 ‘바탕’이라는 뜻입니다.
바라는 것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을 바탕으로, 바라는 것이, 통일이 이뤄질 줄 알고 그것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모범을 보인 조상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많은 분들의 공통점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이뤄질 줄로 믿고 그것을 바라보며 샇았다는 것입니다.
7절 이하에 노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보고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 때 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해가 평소보다 더 쨍쨍 내려 쪼였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노아를 보고 노망들었다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가족들을 방주로 들어가게 하고, 생명 있는 것들을 종류대로 둘씩 방주로 들어가게 하고 양식을 저축할 때 더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도 노아는 묵묵히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통일이라는 방주를 만들어 나가야합니다.
노아는 홍수 이후를 위해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여들였습니다.
우리도 통일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8절 이하에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하실 때 갈 곳을 알려주고 그 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내가 네게 보여 줄 땅”,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보여주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따지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히 12:4)
히브리서 11장은 그렇게 산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성경에는 예언적 완료형이라는 독특한 시제가 있습니다.
아직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미 이뤄진 것처럼 기록한 것을 두고 예언적 완료형이라고 합니다.
모세오경을 보면 아직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미 들어 와 있는 것처럼 기록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에, 그 예언이 성취될 것을 의심한지 않았기 때문에, 예언의 성취가 이미 완료된 것처럼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이 예언적 완료형을 알기 쉬운 말로 ‘현재적 미래형’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일인데 현재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통일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바로 그렇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7) 하나님께서 통일을 주실 줄로 믿고 통일 이후에 해야 할 일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용산과 관계가 깊은 사람입니다.
본적이 용산이고, 용산에 근거를 두고 80년 가까이 살고 있고, 용산초등학교, 용산중학교, 용산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이 가운데 혹시 초등학교 동창, 부군들 가운데 고등학교 동창이 있을지 몰라 횟수를 밝히면 용산초등학교는 10회, 6․25 전쟁이 나던 해인 1950년에 입학해서 1956년에 졸업했고, 용산고등학교는 13회, 1962년 졸업생입니다.
삼각지에 있는 용산감리교회가 제 모교회이고 은퇴 후에 돌아와서 적을 두고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용산과 관계가 깊은 처지인데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오는 날이 있으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통일도 그렇게 올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국방부 건물이 새 대통령 집무실이 되는데 여러분, 그 건물이 어느 쪽을 향해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북쪽을 향해 있습니다.
요즘 그 건물을 바라볼 때마다 대통령께서 북쪽을 바라보면서 대북정책을 바르게 세우고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새 대통령 집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육안으로 잘 보이는 곳에 해방촌이 있습니다.
해방촌은 분단 때문에 만들어진 곳입니다.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직후부터 월남하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그 분들을 ‘38따라지’라고 불렀습니다.
그 분들이 남산 기슭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하꼬방, 우리말로 판잣집을 지어 모여 살기 시작해서 해방촌이 만들어졌습니다.
거기에 있는 보성여자중고등학교는 평안북도 선천에 있었던 기독교 학교입니다.
선천은 기독교가 매우 왕성해서 ‘선천은 기독교국’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보성여학교가 해방후 남으로 와서 거기에 자리 잡았습니다.
평양에 있던 숭실중고등학교도 해방후 해방촌으로 옮겼다가 1975년에 은평구 신사동으로 갔지요.
해방촌은 이렇게 분단의 산물인데, 대통령께서 해방촌을 보면서 분단극복에 힘써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국군중앙교회 밑 동네가 소문난 카페촌, 맛집촌이 되었습니다.
용리단길이라는 새 이름도 생겼는데 왜 그런 이름이 생겼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카페와 맛집들이 많은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네의 옛날 모습들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초라했지요.
그 동네가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네를 지날 때마다, 평양 거리도 높이 솟은 십자가들이 많은 모습으로 바뀔 날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평양의 별명이 ‘조선의 예루살렘’ 아닙니까?.
오늘도 그렇게 기도하면서 여기 왔습니다.
저는 이 국군중앙교회의 1950년대, 60년대 모습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이름이 ‘육군중앙교회’였던 것 같은데 동네에서는 그저 ‘육본교회’라고 했습니다.
그 때 국방부는 지금 자리가 아니고 후암동에 있었고 지금 전쟁기념관 자리에 육군본부가 있었습니다.
그 때 여기에는 이 교회 하나만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노란색 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는 높은 빌딩들이 없었기 때문에 사방에서 잘 보였습니다.
하나 더 기억나는 것은 당시 대통령이셨던 이승만 박사께서 이 교회에 오시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저기 삼각지 우리은행 앞길, 삼각맨션 아파트가 있는 곳에 전차 차고가 있었는데 그 앞길로 오셨습니다.
그 길 끝이 지금은 막혀 있는데 그 때는 막히지 않았습니다.
일요일에 그 길에 나가 놀고 있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싶으면서 검은 고급 승용차가 몇 대 지나가는데 들여다보면 낯익은 얼굴, 대통령께서 차 안에서 웃고 계신 것을 몇 번 본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통일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통일 일후에 해야 할 일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초월적 통일관이다. 기독교인들은 초월적 통일관을 가져야 한다.’ 제가 오늘 드리는 설교의 요점인데요, 그러면 물으실 것입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북한이 고향인 분들, 고향에 교회 세우기, 또는 고향을 위해서 무언가 좋은 일을 할 준비하는 것 좋지요.
북한이 고향이 아니더라도 북한의 한 지역을 택해서 그렇게 할 준비를 하는 것도 좋지요.
제가 올해 어느 곳에서 북녘지역교회사를 강의하면서 숙제를 냈습니다.
‘북한의 행정구역이 크게 변했습니다. 지금 북한은 1직할시, 3특별시, 9도, 시가 24개, 군이 145개가 있는데 그것을 모두 써내시오.‘라 숙제를 냈는데 숙제를 제출하면서 “북한의 행정구역이 이렇게 크게 변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와 군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으면서 그 곳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덧붙인 학생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숙제 잘 냈다’했습니다.
그것들과 함께 교회가 공통으로, 꼭 힘써야할 일이 있습니다.
‘화합’입니다
통일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국토가 하나가 되고, 정치체제가 하나가 되고, 통치자가 하나기 되는 통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물리적 통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화학적 통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글자로 줄여서 ‘화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통일에서는 아무래도 정부의 역할이 큽니다.
화합은 교회의 몫입니다.
교회가 훨씬 더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교회가 담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통일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텐데 이런 일도 일어날 것입니다.
“6․25때 너희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 죽였지? 원수 갚아야 하겠다!”
이런 일이 왜 없겠습니까?
이런 일도 일어날 것입니다.
북한이 해방되고 일곱 달이 채 되지 않아서 1946년 3월 5일에 토지개혁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지주들의 땅을 빼앗아서 소작인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북한 사회의 기본구조를 뒤흔들어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월남민들이 많이 생기가 시작했는데 그 때 땅문서를 가지고 내려온 분들이 있ㄷ,고 합니다.
6․25때 피난 오면서 그렇게 한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 땅문서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일도 있었습니다.
그 땅문서 가지고 올라가서 “이거 내 땅이야! 내 놔!” 하는 일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많을 것입니다.
그밖에 크고 작은 갈등, 충돌이 수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는 앞장서서 그런 것들을 줄일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통일에 대해서 우리가 많이 배워야 하는 나라가 통일 선배 국가인 독일이지요.
독일도 초월적 통일의 좋은 본보기가 되는 케이스입니다
1989년 10월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것이 독일통일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베를린 장벽이 순식간에 붕괴된 것은 동독 정권의 공보관, 그 이름이 샤보보스키인데 이 사람의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실수였는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시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990년 봄에 독일 수상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기자들이 독일이 언제 통일될 것 같으냐고 묻자 한참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아마 한국이 먼저 통일될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10월 3일에 독일이 통일되었습니다.
그 안에 여러 가지 과정이 있지만 전체를 보면 ‘독일 통일은 초월적인 힘에 의해 이뤄졌다’ 이렇게 요약됩니다.
그리로 독일 통일에 있어서 교회의 기여, 특히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의 월요 기도회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통일선교 운동가들이 독일의 전문가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초기에 들은 이런 말이 지금도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국은 통일에 있어서 독일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독일은 준비 없이 통일을 맞이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많습니다.”
통독 수에 오시(Ossi), 베시(Wessi)라는 말이 새로 생겼다고 합니다.
오시는 ‘게으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동독놈’ 이런 듯입니다.
베시는 ‘거드름 피우며 잘난 척하는 서독놈’ 이런 뜻입니다.’
자살율과 실업율이 높아지고, 교회의 성장은 오히려 둔화되고 그래서 ‘통일이 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남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지요.
최근에 다시 관계하고 있는 통일선교 교육기관에서 독일 학자들의 강의를 영상으로 받았습니다.
아직 그 내용은 보지 못했는데 제목을 보니 “화합”이라는 말이 들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화합의 모범을 보인 인물이 다윗입니다.
그것을 지금 말씀 드릴 시간이 없는데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사울 족 사람들과의 화합이라는 안경을 쓰고서 다시 말씀드려서 그런 관점으로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를 읽어 보시면 왜 다윗이 화합의 모범을 보였다고 하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칭찬하시고 통일을 빨리 주실 것입니다.
이 국군중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손봉기 목사님이 여러 해 전에 저를 찾아온 일이 있습ㅁ니다.
그 때 이런 말씀을 저에게 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정확하지 않더라도 양해하여 주십시오.
“목사님 저는 지금 합참에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데 합참에서 북한의 각 지역을 수복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힘닿는 대로 도움을 드렸는데 그 때 ‘아, 군은 통일 이후를 준비하고 있구나! 교회는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하겠다!’ 하는 것이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혹시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설교는 설교자가 모범을 보여야 하는 법인데 목사님은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저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푯돌 세우기’라는 것입니다.
분단 이전에 북녘에 교회가 3,000개 안팎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들이 있던 자리에 ‘여기는 이런 교회가 있던 자리, 그 교회는 이런 교회’ 알리는 작은 푯돌 하나씩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준비하고 있느냐?
30여 년 전에 어느 선교방송에서 일하고 있을 때 ‘북녘순례’라는 주간 프로그램을 제작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주일에 한 번씩 북한의 현행 행정구역에 따라 시나 군을 하나씩 찾아가서 그곳에 있었던 교회들을 소개한다’는 기획 밑에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방송했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지금과 달리 30여 년 전 그 때는 북한의 현행 행정구역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북녘에 있었던 교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발굴하면서 ‘아, 예전에 북녘에 있었던 교회들이 이렇게 큰 일을 많이 했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 감동을 받아서 실제로 눈물을 흘린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교회는 우선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으로서 예배 드리는 장소였고, 민족운동의 중심지였고, 주민들의 삶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가 주민센터였었다.”
동의 행정을 보는 곳을 처음에는 동사무소, 동회라고 했고 지금은 행정복지센터. 줄여서 행복센터라고 하는데 오랫동안 주민센터라고 했습니다.
주민생활의 센터 역할을 하겠다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예전에는 교회가 주민센터였었다”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들이 6․25때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교회들이 있었던 자리에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여기는 이런 교회가 있던 자리, 그 교회는 이런 교회’ 알리는 작은 푯돌 하나씩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보이는 것이 있어야 사람들이 기억하지요.
예전 북녘에 있었던 교회들의 존재, 그리고 그 교회가 한 많은 일들이 잊혀지지 안ㅍㅎ기 위해서 또 그 교회에 출석하던 분들의 후손들이 찾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간 조절용-성경 백독 이야기
백독을 못하고 하나님 앞에 가도 칭찬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릴고 18장에는 체포당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지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인 17장에 다섯 번 거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 번 찾아보세요.
성경을 보면 요한복음 17장의 제목이 “기도하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하나가 되게 하소서”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과 북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될 것입니다.
복음적 평화통일이 이뤄질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믿고 통일 이훙를 위한 준비를 잘 해 나가시는 국군중앙교회 권사회 히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나와 하나님의 관계, 나와 이웃의 관계를 회복시켜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남과 북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직 보이지 않는 홍수에 대비해서 방주를 만든 노아, 갈 바를 알지 못ㅅ하지만 순종하며 나아간 아브라함,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을 이뤄질 것으로 믿고 믿음의 길을 걸은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서 통일이 확실히 주어질 것을 믿으며 준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