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장가계 여행기..
중국의 상해로..
상해, 장가계를 여행하기 위하여 부산을 향하나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다!!
20여 년을 함께 하였던 친구들의 모임이나 사소한 문제가 앙금처럼 쌓여서 남아
있는데다가 생업의 문제로 부부동반 모임에서 집사람이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해외 여행 경험이 없는 부산의 작은 형이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조금 위로가 되기는 한다!!
일본과의 독도 분쟁 등으로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이 중국으로 몰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부산발 상해행 북방항공편은 그래도 빈자리가 제법 많다..
부산에서 겨우 1시간 반 정도를 날아가니 중국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각되는
상해의 푸동 공항에 도착한다..
총2,300만명이 함께 하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한 도시이다..
(참고로 최고 인구의 도시는 중경으로 약 3,50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첨단과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라는 이미지는 공항에서부터 나타난다..
최첨단의 이미지를 자랑하는 공장 이미지와 달리 아직도 별다른 장비없이
단지 인력만으로 활주로 공사가 진행되며 공항 곳곳에는 부동 자세를 취한
엉성한 차림의 중국 공안들이 여기저기 자주 보인다..
팩캐지 여행 상품의 한계를 절감하며..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곳으로 보는 것(상해,항주, 장가계 유람)으로 일정을 짜다보니
너무나 많은 시간을 이동에 허비함으로 4일의 숙박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한
시간은 거의 없다..
상해 대충 관광에 장장 3시간을 이동하여 항주로 향하고 항주 역시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보고 또 버스로 정체를 감수하며 상해로 돌아와서 야간 비행기로 중국 중심부에 위치한
장가계로 이동 이틀동안 관광 후 심야에 상해로 돌아와서 꼭두새벽에 귀국하여야 한다..
대부분 호텔 출발 시간이 아침 7시 전후이니 아침 운동이라도 즐기려면 무조건 5시전에
기상하여야 겨우 아침 식사라도 할 수 있는 일정이다..
게다가 워낙 싼 가격(제반비용 포함 75만원)에 계약을 하다보니 중국 현지 랜딩 가이드의
쇼핑 일정까지 소화하여야 하니 여유 있는 관광은 기대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일행들이 좀 더 보는 관광에 적극적이면 억지로라도 보는 관광에 주력할 수가 있으나 같이 하는
일행들이 팩캐지 관광객 수준이니 여유있는 관광을 기대하기는 당연히 힘들어 진다..
일전에 발리 여행에 이어 팔자에 없는 팩캐지 관광을 2년여의 시간에 두 번이나
경험하여 보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나라는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이동하기에는 워낙 척박한 환경을 가진 나라이기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단체가 저렴하게 여행하기에는 팩캐지 이외의 뾰쪽한 대안도 없는 실정이다..
나중에 생업에서 은퇴하면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중국을 돌아볼 수 있는 행운이 돌아오기를 바랄 수밖에..
중국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급격하게 발전하면 여유있는 관광에 지나치게
많은 수업료를 지불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인이 들으면 펄쩍 뛸 생각이기는 하지만 올림픽 이후에 중국 경제가
한없이 추락하기나 기대하자!!!"
적은 비용으로 경험하는 나라로 끝없이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상해 임시 정부 청사 그리고 상해 관광..
상해를 관광하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돌아보는 장소가 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홍구 공원(지금은 노신 공원)과 임시 정부 청사
그리고 황포강과 동방명주의 야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영국 조차지였던 외탄 지역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임시정부는 상해의 마당로(馬當路)에 있는 3층 벽돌집으로,
1926년부터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직후까지 청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그 이후 일본의 탄압에 의하여 항주, 광동, 유주 등으로 이동에 이동을 거듭하다
중경에서 광복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내부에는 임시 정부 요인들에 대한 자료와 사진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관리는
중국인들이 하며 국교 수립이후 국내 모 기업이 관심을 가져 중국인에게서 장소를
매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홍구 공원은 이제는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노신을
기념하기 위한 노신 공원으로 바뀌어 있으며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의거
현장으로 기억되는 폭탄 투척 장소도 노신의 동상이 차지하고 있다..
매정(梅亭 : 메이팅)이란 이름의 정자와 "윤봉길 의거현장"이라고 세겨진 비석
그리고 정자내에 가네자와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윤의사에 대한 기록과 그 이훙의
기록이 남아 있으나 입장료까지 받고 있어 한국인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리기 위한
관광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온작 짝퉁이 난무하는 상해의 짝퉁 시장과 무려 5대의 모터 사이클이
조그만 원형 철망에서 현란한 곡예를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 화려한 상해의 서커스 구경,,
이제는 상해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어 버린 "동방명주"의 야경을 보기 위하여
황포강 하구의 외탄 지역을 방문하기는 하였으나 5.1절을 맞이하여 엄청나게 몰려든 중국 관광객의
인해 전술에 밀려다닌 기억이 상해에서 가장 큰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중국의 노동절인 5.1절은 무려 7일간이 정부 공식 연휴이다!!! 부러워라..)
서씨, 소동파로 대표되는 도시 항주로.(영은사 편..).
소주와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항주는 진시황에 의하여 2,700년전에 도시로 형성되어
중국인들에게 낙원으로 불리우는 도시이다..
소주는 상해에 인접하여 상해의 위성 도시로 전락하여 공업화가 진행되어
그 명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으나 항주는 소동파와 백거이의 시에서 중국의 미인
"서씨"에 까지 비교되는 아름다운 서호가 있는 곳으로 아직 오염이 심하지 않아
많은 중국인들이 동경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남아 있다..
이 도시에는 역사속의 도시 답게 무려 70여 개에 달하는 중국인이 선호하는
관광지가 있으며 매년 음력 8월 15일경에 일어나는 전단강의 역류를 구경하기 위하여
수많은 중국 관광객이 모이며 중국의 모든 일간지와 방송에 소개되기도 한다..
동방명주의 야경을 중국인들에게 포위(?)되어 외탄 지역에서 겨우 관광한 후 고속 도로를
3시간 이상 달려 항주의 호텔에 도착하면 새벽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아침 운동을 쉴 수야 없는 노릇이기에 버스에서 대충 잠을 떼우고
아침 5시 기상하여 항주 시내를 달리기 시작한다..
물과 산의 도시라는 명칭에 걸맞게 상해와 달리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불과
10분을 달리지 않아 운하가 나타난다..
과거에 북경에서 이곳 항주까지 운하를 건설하였다고 하는데 이 운하가 그 전설의 운하가
맞는지는 중국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물어보지를 못한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중국인들이 모여서 북적거리는 건물을 들어가 본다..
중국인 전통 재래 시장이다..
거의 아비규환 수준의 광경이 벌어진다..
여기 저기 떨어져 있는 동물들의 사체 일부위들... 그리고 냇물을 이루며 흐르는 피..
그런 옆에서 태연히 아침식사를 하는 중국인들과 여러 가지 먹을 것을 흥정하는 사람들..
과거 심양 재래 동물 시장에서 경험한 축소판이 벌어진다!!
"아침밥은 먹을 수 있으려나???"
어제와 같은 중국인의 인해 전술을 경험하지 않으려 아침 일찍 영은사로 향한다..
영은사는 인도에서온 혜리 스님에 의하여 창건된 절로 선종 10대 사찰중의 하나이며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백마사, 소림사에 이어 중국의 삼대 사찰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 영은사에는 다른 지역과 다른 독특한 볼거리가 3가지가 있다..
1. 비래봉(飛來峰)
영은사와 마주보고 있으며 10-14세기 경에 만들어진 석불 330여 개가 조성되어 있다.
영은사 창건주인 혜리 스님에 의하여 인도에 "영취산"이 날아온 것 같다고 하여
비래봉으로 명명되었으며 석불중 대표적인 것은 송대의 것인 미륵좌상으로 얼굴이
개성적이고 독특하다고 하나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웃고 있는 달마가 더 낫다..
"아는 것만큼 느낀다고 했던가??"
2. 천왕전과 대웅보전
천왕전(天王殿)에는 "云林禪寺(운림선사)"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민가 잠행으로 유명한 청대 강희(康熙) 황제의 자필로 알려져 있다.
강희제가 남쪽 지방을 순찰하던 중 항주에 들러서 북고봉(北高峰)에 올랐는데,
구름이 자욱하고 안개가 덮인 곳 속에 영은사가 있는 것을 보고
이 네 글자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이른 시간임에도 대웅보전과 천왕전은 엄청난 중국인으로 붐비며 엄청난 양의 향을
들고 왔다 갔다 함으로 화상을 입는 참변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천왕전의 사대천왕은 하나같이 다리를 들고 있다..
이 들고 있는 다리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당 나라의 초대 황제인 주원장이 어린시절 영은사에서 동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마당을 쓸고 있는데 4대 천왕이 주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큰 덩치의 천왕들이 낙엽을 밟고 있으니 청소를 할 수가 없다..
어린 주원장이 겁도 없이 천왕들에게 청소를 하려고 하니 다리를 좀 들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천왕들이 보니 어린 동자승이기는 하나 눈빛이 형형한 것이 보통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리를 들어 주는데 청소를 하고 나서는
내려라는 말이 없이 가버린다!!
황제의 말이기에 불쌍한(?) 천왕들은 지금까지 다리를 들고 있는 것이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높이 33.6미터의 중국 저명안 건축물중 하나다.
보전 안에는 24.8미터의 여래불상이 있는데, 1956년에 절강미술대학 교수와
예술인들이 합작해 만든 작품이다..
대전 양옆에는 20존자 천불상이 있고, 대전 앞에는 송대에 건축된 8각 9층석탑이
있으며 뒤쪽의 진흙으로 만든 관세음 보살 삽화는 대단한 위용을 자랑한다...
3. 5백 나한전
최근에 만든 듯한 5백 나한전에는 청동으로 만든 각기 다른 모양의 5백 나한 좌상과
중앙에 중국의 사대산에 기거하는 보살의 청동상이 있다..
보타산. 화산, 오대산 등에 기거하는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보현보살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불교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 규모의 장엄함외에는 그다지 느낄 것이
없다..
전통 불교에는 오직 4명의 보살밖에 없다고 하는 데 우리나라 절에는
아주머니 보살들이 엄청나게 많은 이유를 모르겠네???
과거에 산적 출신에서 개과천선한 성인들이 5백 나한이라고 하는데 모양과 표정은
각양각색이더라도 귀들은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는지 축 늘어져 있다!!!
생각 같아서는 등산로로 조성된 계단을 따라 비래봉을 등산하여 보고 싶으나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일행들의 분위기에 묻혀 다음 관광지인 서호로 향한다..
서씨와 소동파로 대표되는 서호 유람..
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에서
항주를 뜻하는 대부분은 서호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서호은 소동파와 백낙천에 의하여 이 지역의 미인인 서씨에 비교되어 맑으면 맑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밤에는 밤대로, 낮에는 낮대로 좋으며
춘하추동 사계절도 말할 것이 없이 좋다고 노래되고 있다..
****중국의 미인****
말이 나온 김에 중국의 미인에 대하여 공부한 내용을 잠시..
전통적으로 중국의 미인은 크게 두지역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항주미인으로 옛부터 이곳 출신의 여자는 황비(皇妃)로서 이름을 떨쳤다.
항주는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이면서 비단과 물로 유명한 곳이다.
항주의 미인은 항주를 대표하는 또다른 명물이라 할 수 있는데,
중국의 대표적인 미인인 서시(西施)가 이곳 출신이고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오(吳)나라의 미인들 대부분 이쪽지방 출신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이들은 주로 상해나 북경의 대도시로 진출하여 영화계에 많이 진출하고 있으며
스튜어디스로도 많이 활약하고 있다.
또 하나는 동북미인으로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도 있으며,
중국영토 경영에 함께 경쟁했던 소수민족의 미인들이 선조다.
동북미인은 요녕, 길림, 흑룡강의 동북3성 출신으로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큰 키에 피부가 희다.
장점은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남자들과도 잘 통하며,
단점으로는 척박한 환경에 의해 피부가 거친 편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미인은 흑룡강성 출신의 미인으로
중국의 아나운서들 중에는 이곳 출신이 많다.
또한 세계적인 배우인 공리도 요녕성의 심양출신이다.
중국의 4대 미인
■ 서시(西施)
하(夏)왕조의 말희, 은(殷)왕조의 달기와 더불어 주(周)나라의 서시는
지금의 항주 출신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미녀로 불린다.
서시가 웃는 것을 보기 위해 황제가 변방의 봉화를 올렸다는 고사와
비단찢는 소리를 좋아하여 수많은 국고를 탕진하며 비단을 찢었다는 이야기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서시는 주나라를 침입한 흉노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며,
오늘날에는 중국의 4대미인 중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서씨는 가슴앓이 병을 앓고 있어 언제나 찡그리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너무 아름다워 당시 중국의 모든 여자들이 가슴을 잡고 찡그리고 다녔다고 한다..
■ 왕소군(王昭君)
왕소군은 전한 원제(元帝) 조정의 후궁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그림을 본 원제에게 간택되었고,
오늘날에는 왕소군이 고국 한나라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처절하게 표현되어있는
유명한 시가 남아있다.
■ 초선(貂蟬)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연환계의 주인공이다.
절세미인으로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결국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했지만, 여포가 죽을 때까지 그의 첩으로 지냈다.
또한 초선의 운명이 가인박명(佳人薄命), 즉 여자의 용모가 아름다우면
운명이 짧거나 기구하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더욱 그녀의 미모에
많은 호기심이 여전히 남아있다.
■ 양귀비(楊貴妃)
동양의 클레오파트라로 불리는 당 현종의 총애를 받다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미인이다.
원래 양귀비는 현종의 며느리였으나 35세의 나이를 뛰어넘는 로맨스로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양귀비의 모습은 백락천의 "장한가"에 의하면 글래머에 닮은 꼴이라고한다.
하지만 체구는 작은 편이어서 당현종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 새처럼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 전설도 있다.
소동파가 조성하였다는 동제와 여러 개의 조형물과 탑들이 서호 주변을 장식하고 있으나
이곳에서도 엄청난 중국인 관광객의 위세 외에 그들만큼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한다..
다만 서호 유람선에서 마시는 중국의 "이과두주" 한잔 술에 기분만은 아주 좋아진다..
항주의 마지막 관광지 "육화탑"
북송 개보(開寶) 3년(970년)에 지어진 것으로, 전당강(錢塘江) 북쪽 연안에
위치해 있으며 전단강의 대 역류를 막고자 하는 기도를 반영하여 세운 탑이다.
이 탑의 이름인 육화(六和)라는 의미는 원래 불교에서의 규약인 '육합(六合)'
즉, '천지사방(天地四方)'의 의미다.
당시 건축계의 거장인 유호(喩皓)가 ≪목경삼수(木經三首)≫를 근거로 하여 설계하여
외관은 13층이며, 내부는 7층으로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59.89m이며, 중국 목조 건축 분야의 걸작으로 평가되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이 육화탑이 음력 8월 15일 경에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된다..
항주가 위치한 성의 이름이 절강성이 된 것은 이 곳을 통과하는 전당강(錢塘江)이
높은 곳에서 보면 갈지자(之) 형상으로 마치 끊어진 강처럼 보인다고 하여 유래가 되었는데
이 전당강이 매년 음력 8월 15일 전후에 약 5일간 달과 바다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대역류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남미의 아마존 유역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곳을 안내하는 가이드에게 대 역류를 보았느냐고 물어보니 구경은 왔으나
사람들이 워낙 많아 소리만 들었을 뿐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고 한다..
***전당강의 대 역류***
전단강은 항주의 남쪽을 흐르는 길이 410km인 절강성 제1의 강이다.
이곳에서는 음력 8월 18일 무렵이 되면 항저우만의 만조 때 해수가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현상이 일어난다.
흔히 남미의 아마존강 대역류와 비교되기도 하며 이것은 시속 25km의 속도로
전당강의 상류 쪽으로 물이 거슬러 올라오는데 3.5m 높이의 파도가 칠정도로 강하다.
이 현상은 전당강의 나팔형상에 원인이 있다.
항저우만으로 흘러드는 하구 근처에 100Km에 달하는 강의 너비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급격히 좁아져 육화탑 부근에서는 고작 2Km에 불과할 정도(항저우만의
50분의1정도)로 좁아진다.
게다가 달의 인력의 영향을 받아 만조시라도 되면 이 대역류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옛날에는 물살이 거세어 가옥이나 가축이 많은 피해를 당하기도 했으며
이 현상에 대해서 '그 모양은 일만여 마리의 말이 일제히 질주하는 것과 같고
산악을 늘어놓은 것 같으며 소리는 마치 천둥이 치는 것과 같다'고 표현되고 있다.
음력 8월 18일 전후에 항주를 찾는 다면 이 전당강의 대역류를 보실 수 있으며 2000년에는
중국 CCTV에서 전당강의 대역류를 생중게 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이 현상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절강성의 하이링시에 있는 염관진이라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이 현상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몰려온 관광객이 급류에 수십명씩 목숨을
잃는다고 하는데 별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과거에는 역류에 의한 피해가 엄청나 육화탑을 지어 부처의 힘으로 막아보려고
노력하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엄청난 돈이 몰려 들어오는 관광 상품이 되었으니
육화탑의 효험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하겠다..
항주에서의 쇼핑과 음식..
항주 관광을 마치고 중국 패캐지 관광의 가장 큰 아쉬움(?)인 쇼핑이 진행된다..
이 지방에서 유명한 양식 진주와 "용정차"를 위주로..
양식 진주는 잘 아는 품목이기에 용정차와 점심 식사에 나온 항주의
특산 음식에 대한 간략한 소개..
***동파육***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서호를 준설하여 동제를 만들면서
동원한 2,000여명의 인부에게 제공하였던 요리라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돼지고기 갈비살 한 덩어리를 냄비에 담고 물을 조금 붓고 술 ·소금 ·생강을 넣고
알맞게 삶아낸다.
간장 ·설탕 ·파 ·다진생강을 섞은 양념장을 만들어 고기를 쟁여 놓았다가
간이 골고루 배면 녹말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기듯 지진다.
이것을 보기좋게 썰어 원 모양대로 알맞은 그릇에 담고 마늘 ·생강을 편으로
썰어 얹은 다음 쟁였던 양념장에 녹말가루를 풀어 잠깐 끓여 걸쭉한 국물을 끼얹어
찜통에서 약 30분 간 찐 다음 파슬리로 장식하여 그릇째 낸다.
워낙 음식을 안가리는 성격이어서 먹을 만하나 일부 일행들의 얼굴에서는
맛있다는 표정을 보기가 어렵다..
***거지닭***
중국음식에 富貴鷄라는 닭요리가 있다.
이름을 "부귀" 라고 역설적으로 붙였지만 일상에서는 "거지닭"요리로 통한다.
그러나 그 맛이 담백하고 요리방법이 특이하여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어왔다.
옛날 중국 강남지방의 소흥주로 유명한 소흥근처에 걸인들이 인근마을의
닭서리를 하여 털을 뽑고 황토진흙을 발라 어느 곳에 파묻어 두었다가
한 마리씩 꺼내 구워먹었다고 한다.
황토를 발라 놓으면 쉽게 상하지 않으면서 주위의 눈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심복들과 함께 암행중인 건륭황제는 밤이 너무 늦어 숙소를 찾지 못해
야외에 노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잠자기 전에 한 곳에 모갯불을 놓았다. 모두들 불 주위에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고소한 닭고기 익는 냄새가 진동하였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출출한 일행에게는 참을 수 없는 냄새였다.
한참만에 그 맛있는 냄새의 진원지를 찾았더니 뜻밖에 모갯불 아래에서 나오고 있었다.
황제의 심복들은 곧바로 그곳을 파 보았다. 황토흙에 싸여 있는 닭이
모갯불에 익혀지고 있었다.
황제일행은 질그릇처럼 구워진 황토를 깨내고 그 속의 닭고기를 뜯어 야식으로
맛있게 포식을 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후 이 요리가 알려져 지금도 통닭에 황토흙을 발라두었다가 구워내어
딱딱하게 구워진 황토를 깨고 김이 무럭무럭나는 하얗게 익은 살이 나온다.
중국요리집에서는 중국말로 거지라는 뜻의 叫花子(지아화즈)의 닭이라는 의미의
叫花鷄라고 부르기도 하고 거지가 먹던 닭을 부귀로운 사람(황제일행)이
먹었던 닭이라는 뜻으로 富貴鷄라고도 부른다.
또는 이 닭을 먹으면 부귀로워진다는 소망의 뜻도 있다고 한다.
그릇없이 다녔던 거지들의 음식과는 달리 요즈음은 접시에 담겨져 나오네???
동파육과 더불어 항주 지방에서 아주 유명한 고급 요리인데 아무리 좋은 점수를 주려고
해도 닭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맛이 거지같다는 이상의 점수를 주기는 무리다!!!
***용정차***
원나라 때부터 재배해온 용정차(龍井茶;룽징차)는 항주(抗州;항저우)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녹차입니다.
용정이란 명칭은 원래 샘 이름이었고 이어 용정사란 절이 세워 졌으며 이 절에서
차를 재배한 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는 것이다..
용정의 물은 얼마나 표면 장력이 좋은지 찻잔으로 3cm나 부풀어 오르고 동전이
쉽게 뜬다고 하는데 시간 관계상 확인하여 보지는 못한다!!
용정차는 짙은 향, 부드러운 맛, 비취 같은 녹색 그리고 참새 혀모양의 잎새라는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 '4절(四絶)'이라 호평 받고 있습니다.
용정은 물을 끓였다가 섭씨70-80도 정도로 식혀서 마시는데,
생선 요리 때 넣으면 비린내가 없어지고 냉장고에 넣어두면 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식후에 마시면 가장 맛이 있고 지방질을 분해하므로 닭백숙에 차잎을 넣고
끓이면 아주 담백한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용정차에는 비타민 C와 안기산 등 유익한 성분이 다른 차보다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중국 예방의학 과학원의 연구원이 항암 차로 발표한
17가지 차 중의 하나입니다.
용정차가 당연히 그 중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용정차는 모두 16등급으로 나누어지며 1등급차는 청명(4월 5일) 이전에 것으로
명전( 明前)차라 하고 2등급 차는 곡우(4월 20일) 이전에 따는 우전(雨前)이라한다.
3등급은 5월의 것이고, 그외에 여름과 가을에 따는 차는 쟈스민차나 홍차를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용정차란 항주에서 나는 차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무려 120g 한통에
4만원이나 하는데도 일행들은 정말 많이도 산다..
중국 같은 차 문화가 없는 곳에서 차를 마신다는 것은 웬만한 정성이 없으면
힘든 일이며 얼마나 좋은 차인지 모르지만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 몽땅
좋은 차는 아닐 것인데 쓸데없는 곳에 많은 돈을 쓴다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뒤에 중국재래 시장을 둘러보니 용정차와 같은 색을 띤 새싹의 차가 5kg에 240원이다..
중국의 문화를 보아서 흥정을 하면 150원이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차의 이름도 명전으로 표시 되어 있고.. 물론 같은 품질은 아니더라도 차를 잘 모르는
문외한에게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넉넉하게 계산하여 용정차 200g에 300위안, 그냥 명전차 5kg에 150위안???)
쇼핑을 마지막으로 차량 정체로 인하여 무려 4시간을 넘는 시간을 이동하여
장가계로 향하기 위하여 상해로 이동한다..
시속 430km로 달린다는 자기부상열차의 승차는 일행들의 반대와 시간적인 제약으로
다음 상해 방문 기회때로 미루어야 겠다!!
암봉들의 거대한 축제장 "장가계"를 향하여..
상해 공항에 도착하니 출발시간까지 1시간 30여분이 남는다..
그런데 국내선 상해 공항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만든다..
물과 주류를 비롯한 액체 종류는 대합실에 반입이 불가능하다..
또 모든 승객이 항공기 예약권과 항공 티켓, 여권을 모두 가지고 수속을 밟아야 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출발 시간이 아예 명시가 되어 있지 않고 달랑 게이트만 표시된다..
대합실은 엄청난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어 돗떼기 시장이 따로 없고..
장가계를 향하는 기내는 몽땅 한국인이다..
그래도 만석이라는 안내와는 달리 여기저기 빈 자석이 제법 많이 보인다..
상해에서 1시간 30분을 날아가 "장가계" 공항에 도착한다..
중국 지도에서 장가계로 지명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과거 지명은 "대용"이었다고 한다..
주로 산적 출신인 "토가족"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는데
대용이란 지명은 "용렬한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비교적 좋지 않은 의미였다고 한다.
지금의 "장가계"란 지명은 펼칠 장, 집 가, 세상 계를 사용하여 널리 우리 사는 곳에
세계에 펼친다라는 뜻이라고 하니 중국인들의 관광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가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가
있겠는가?"
또는 "장가계를 보지 않고 산을 이야기하지 말고, 구채구를 보지 않고 물을
이야기하지 말라!!"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라고 하니
내일의 관광에 대한 기대가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이곳을 안내하는 조선족 가이드가 보통 뺀질뺀질한 것이 아니다..
아예 형님들을 가지고 놀려고 이 곳이 보통 험악한 곳이 아니라고 엄포를 놓으며
자신의 행동 반경과 입장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아예 혼자서 호텔 외 출입을
금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불편하게 하는 녀석(?) 길들이기가 주전공이니 어쩌라???
숙소가 배정되고 방을 방문한 녀석에게 적적하게 타이르니 그래도 다소곳하다???
아!!! 천자산 그리고 원가계여..
식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행들 탓에 황당한 한국 음식으로 거북하여진 입맛을
형님과 둘이서 중국 야시장의 술집에서 먹은 양고기와 가재 철판 음식으로 돌려 놓는다..
그리고 아침 일찍 장가계 시내 조깅..
40여분을 달렸을까 하늘이 컴컴하여 지더니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결국은 호텔에 돌아오니 비에 젖은 생앙쥐 꼴이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관광 출발 시간이 되어서도 그치지를 않는다..
장가계의 첫 경관..
백장협은 구름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아쉽기가 그지 없다!!
백장협을 지나 걸어서 가는 첫 장가계의 관광지인 보봉호를 향한다..
보봉호 입구에서 만난 첫 중국인 상인들..
항주 그리고 지금까지 방문한 중국 관광지에서와 같이 몽땅 천원을 이구동성으로
떠들어 댄다!!!
일행들은 이제 지겹다고 난리다..
"몽땅 천원"!!
중국인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 같은 문화를 만든 한국인들이 더 문제가 있지 않을까??
관광지에서 만난 한국인들 대다수가 재미로 사고나서는 바로 버릴 기념품을
중국인 상인 놀린다는 기분으로 정말 수도 없이 구매한다..
부채하나 천원 하는 것을 어떤 사람은 다섯 개에 천원을 샀다고 자랑하고
또 조금 있으면 열 개에 천원에 샀다고 자랑한다..
싸게 산 것이 자랑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매하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오만한 문화가 없어지지 않는 한 세계에서 가장 "건방진 관광객"이라는 오명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여행에서의 쇼핑은 얼마나 싸게 구매하였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자신에게 필요하고 충분히 질 좋은 물건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가 와서 아침에 구매한 중국 우산은 하루 일정이 지나지 않아 망가져 버린다..
아직까지는 중국 물건은 대표하는 명성은 엉성함과 조잡함이라고 보아야 한다..
보봉호는 댐을 쌓아 물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이다.
길이는 2.5㎞이며, 최고 수심이 72m이다.
아름다운 호수와 그윽한 주위 환경이 어울려 무릉원의 수경(水景) 중의 대표작으로 뽑힌다.
호수 안에는 작은 섬이 있고, 바깥쪽으로는 기이한 봉우리들이 들어서 있으며,
봉우리는 물을 감싸 안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산 속에 비취 알맹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하는데
비 내리는 가운데 기암 괴석을 배로 유람하는 기분도 그럴 듯하다..
보봉호를 내려와도 계속되던 비는 한약제 쇼핑과 식사를 마치고 나니 잦아든다..
무료로 발맛사지를 제공한다는 한약재 쇼핑장에서도 중국인의 끈질긴
쇼핑 권유는 계속된다..
전혀 구매하지 않으니 발맛사지 하는 녀석이 하도 황당하다는 듯 이런 말
저런 말을 걸어와서 눈에 잔뜩 힘을 넣고 노려보았더니 성의 없던 맛사지가
더 성의가 없어진다..
이곳에서도 우리 일행들은 정말 쇼핑을 많이도 한다..
과연 저렇게 산 물건들이 얼마나 사용이 될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국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약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면 저 보다 더 좋은 약이
수도 없을 텐데..
국내에서 저들이 침을 튀기며 자랑하는 무좀약과 관절약이 3-4만원을 호가한다면
누가 약국에서 선뜻 돈을 지불하고 약을 사려는 지 궁금하다???
사전 지식으로 경험한 장가계 관광의 백미인 천자산과 원가계 관광이
오후에 계획되어 있는데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천자산을 오르며 구름 사이로 보이는 기암 괴석은 상상을 초월할 규모를 자랑한다..
천길 낭떠러지에 설치된 천자산 로프웨이는 전체 길이가 2084m이며,
상하 높이 차가 692m이다. 보통 한 대의 케이블카에 6명 정도가 탈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한 시간에 960명의 승객을 수송할 수 있다.
운행시간은 편도의 경우 6분 26초이지만, 날씨에 따라 다소 변동이 있다.
산술적인 숫자보다 로프웨이 앞 차가 가끔씩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신선이 되는 모습을 짧은 순간에 상상하여 보기도 한다..
하룡공원과 어필봉, 선녀 헌화봉 등을 관상할 수 있는 천자산의 높이는 1.250m이다..
천자산에서 볼 수 있는 어필봉은 흙이 없는 돌봉우리 위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서
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 같다하여 붙은 이름으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전쟁에서 진 후 천자산을 향해 황제가 쓰던 붓을 던졌다고 해서
"어필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필봉은 무릉원의 수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걸출한 대표로 뽑힌다.
하룡 공원에는 하룡 장군의 동상도 있다..
하룡은 모택동 시절 10대 장군중의 한 사람으로 원수계급에 군부 2인자였으며
6.25때 한국전에도 참가했단다.
몸체를 주변의 바위 모양으로 강인한 옷을 입힌 것이 인상적이며 그는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었지만 그 후 이렇게 천자산 높은 곳에다 많은 비용을 들여
동상을 세워 추모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 집단 세력들은 역사에 역행하여
살고 있는게 아닌가 느껴진다.
동상은 9.3톤의 무게로 3토막으로 잘라 산아래에서 이 곳까지 인력으로 끌어올리는데
3개월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우리 같은면 장비를 당연히 이용할 것 중국에서는 대부분 인력에 의존한다!!
기상 조건이 좋지 않아 어필봉과 선녀 헌화봉이 구름사이에 간간히 보이는 것을
즐기며 보고 있으니 일행들은 벌써 원가계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있다..
구름사이에서 보이는 경치를 느긋하게 구경하는 여유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쉬우나
혼자 고집만 내세울수 없는 입장이기에 같이 아쉬움을 접고 버스에 오른다..
장가계에서 원가계로 가는 길에서 잠시 졸다보니 버스는 한참을 간다..
원가계 입구에서 마주친 천하제일교..
어느정도 규모는 생각하고 왔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입이 벌어진다..
기암 괴석 사이로 만들어 놓은 소로에서 눈앞에 마주치는 기암 괴석들의 시위현장..
장(씨)가계에서 가장 잘되는 집이 원(씨)가계라는 입소문을 무색하게 하는 곳이다..
shop in shop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장소이다..
원가계를 대표하는 두 장소인 천하 제일교, 미혼대 뿐 아니라 40여분을 걸어가는
곳곳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어떤 한국인은 "동양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나 "그랜드 캐년"도
장담컨대 원가계의 분위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표현 능력이 부족하여 원가계의 장관을 필설로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약 1시간 동안의 도보 여행으로 비가 내려 흐린 원가계 도보 여행을 마친다..
도보 여행에 준하지 않을 환경이면 가장 적당한 시간에 마감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경치도 똑 같은 환경에서 보면 점점 좋은 정도가 줄어드는 것이니까??
언제 중국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도보 여행이 아닌 등산 목적으로 원가계를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중국이란 나라는 관광이란 상품에 눈을 뜨고 나서는 정말 엄청나게 상품화가 빠르다..
장가계의 중점 관광지역인 원가계에 입장하는 입장료가 247원이며
이 입장권이 놀랍게도 지문인식 스마트 카드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입장료가 지불하는 전액이 아니라 버스를 이용하면 버스대로
로프웨이는 로프웨이대로 이번에 이용하는 천길 낭떠러지에 건설될 백석리프트는
리프트래도 몽땅 따로 계산을 하여야 한다..
금액도 거의 50원-100원 수준으로 중국 물가에서 비해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장가계 국립 삼림공원내 수요사문에 위치하는 백룡 엘리베이터는 높이만도
335미터나 되는 세계 제일의 관광전용 엘리베이터이다.
실제 운행 높이는 313미터로 밑으로 156미터는 산속 수직동굴이며
그위 170미터는 산의 수직 바위벽에다 철강구조물을 고정시켜 만들었다.
수요사문, 금편계, 삼림공원에서 원가계, 천자산, 오룡채를 3대의 엘리베이터가
운행하여 연결하고 있다
규모는 장관이나 내려오는데는 별 대수롭지 않은 리프트에서 내려
또 돈을 지불하고 차로 이동하니 오늘의 마지막 관광지인 십리 화랑이다..
십리화랑은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하는 십리의 계곡길이 마치 자연의 만들어 놓은
화랑(galley)과 같다고 하여 명명한 이름이다..
엄청나게 많이 바위들이 도열한 계곡 길을 중국인들이 만든 장난감같은 덜컹거리는
모노 레일을 타고 이동하는 것인데 생각 같아서는 모노레일 옆에 만들어진 소로를
따라서 뛰어서 관광하고 싶었으나 일행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참는다..
십리 화랑 관광을 마치고 다시 관광의 출발점인 무릉원 입구로 돌아오니
시계가 벌써 6시를 가르키고 있다..
하루 동안 많은 곳을 이동하여 다녔음에도 일반적인 관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음으로 뭔가 허전한 것이 좀 더 볼 수 있는 많은 곳을 놓쳤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8시에 호텔 객실에서 예약된 발맛사지가 도착하지 않는다..
중국인의 "만만디"와 금전 지상 주의가 겹쳐 우리가 먼저 예약되었음에도
또 하나의 단체 손님이 호텔이 아닌 발맛사지 영업장에 도착하여 요구함으로
우리는 "개털"이 되어버렸다..
밤 11시로 예약 시간을 변경하여 어제 먹었던 철판 요리를 안주로 마지막 뒷풀이를
하기 위하여 야시장을 찾는다..
13명의 한국인이 있으니 주인이 귀한 고기가 있다며 오소리 비슷한 잡아 놓은
고기와 또 살아있는 금계를 꺼내더니 먹어보라고 권한다..
입이 짜른 일행들이 많기에 망설이고 있었더니 일행중 한 명이 일어서더니
대뜸 먹어보자고 한다!!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싶어서 알아서 하라고 하고는 앉았더니 조금 있다 음식 금액을
묻지 않았다고 핀찬을 준다!!
황당!! 나선 사람이 해결하는 것이 원칙인 것 같은데..
내일 일정이 빡빡하여 여행 마지막 술자리가 되기에 황당함을 가슴에 묻는다..
(결국 나중에 술값을 계산하여 보니 전체 금액이 1,390원인데 우리가 먹은
천연기념물 금계 금액이 무려 800원이다..
억지로 생떼를 부려서 1,200원으로 마감한다!!
한국돈 15만원으로 천연기념물인 금계를 포함하여 13명이 푸짐하게 먹은 것이다..)
아니 대다수가 입맛에 맞지 않다고 얼렁뚱땅 먹었으니 나를 포함한 몇 명이
푸짐하게 먹은 것으로 보아야 겠다..
사실 이번 여행은 대다수가 음식에 적응을 하지 못하여 유명한 중국 음식을
제대로 먹어 보지 못하고 또 빡빡한 일정으로 제대로 된 밤 문화도 즐겨보지 못하였으니
관광을 제외하고는 이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일행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중국 술 정말 좋은게 많다..
그런데 이술 저술 먹어보니 한가지 원칙이 생긴다..
일단 비싼 술이 맛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큰병(500미리 이상)에 15원에서 28원 수준인 "이과두주"와 "공부가주"는
누룩 냄새가 강하고 약 100원 수준이 되는 "소품주"나 "귀주" 수준이 되면 아주 좋다..
그리고 100원 이상 수준의 술도 좋기는 하나 우리 입으로는 구분이 더 이상 힘드니
100원(한화 13,000원) 수준의 술이 가장 권할 만 하다..
여행 마지막이라고 이사람 저사람이 내놓은 술에 일행이 모두 취하여 호텔로
들어가고 나서 동행한 형과 마시고 호텔로 향하니 이미 12시가 되어 있다..
일행들 방을 보니 발맛사지 마지막 단계를 하고 있다..
장난기가 동하여 맛사지하는 녀석에게 우리방에도 보내라고 하였더니 12시가 넘은
시간에 정말 맛사지사가 나타난다..
엄청 시원하기는 한데 술이 취하여 잘 모르겠다..
맛사지 금액은 여행 약관에 포함되었기에 일행이 약속한 팁인 3,000원을 주었더니
입이 닷발은 나와 있다!!
한국 관광객들의 선심 팁 제공이 이들의 버릇을 나쁘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소문난 잔치 별 볼 일 없는 황석채..
오늘 대부분의 일정을 소화함으로 내일은 금편 계곡과 황룡 동굴 관광만이 남았다..
가이드는 황석채 관광을 권유하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금편 계곡 7.5km를
걸어보는 것이 오히려 낳을 것 같다!!
그러나 여론에 밀리어 80만원의 공통 경비 중에서 남은 돈으로 옵션 관광을 하기로
결정..
금액 조정하는 것도 또 당연히 내 몫이다!!
12명분인 480불에 결정..
이른 아침 다시 한번 장가계 시내를 달려보니 어제와는 달리 날이 너무나 좋다..
멀리 보이는 산이 너무나 맑게 보이는 것이 오늘 여행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한다..
다시 한번 무릉원으로 들어가 이제는 반대편 출입구인 금편 계곡 쪽을 향한다..
어제의 지문 인식 스마트 카드는 단 한사람의 에러 없이 작동이 잘된다..
아마 중국 기술이 아니라 외국 기술을 도입한 것이리라..
황석채를 오르는 케이블카 입구에는
"황석채를 오르지 않고 어찌 장가계를 구경하였다 할 수 있으랴??"라는
문구가 보인다..
아마 원가계보다는 풍광이 빼어나지 못하기에 뻥을 치는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생각하여 본다..
황석채를 이야기 할 때에는 한고조 "유방"과 '한신" 그리고 "장량"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초한지는 대다수의 남자들이 읽어보았을 내용이기에 여기서는 간단하게...
천하의 용장 항우와 다투어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이제 신변의 위협을 느껴
사병을 보유한 장수들을 하나둘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눈의 가시와 같은 한신을 제거하면서 그 유명한 고사 "토사구팽"이 나오죠??
이 "토사구팽"이 사대주의적인 측면을 제외하고라도 전혀 그 고사에 어울리지 않을
용렬한 우리 정치인들이 엄청나게 사용하기도 하고요..
한신이 "토사구팽"이 되고 나자 "장량"은 현실을 직시하여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스승인 황석공이 살고 있던 장가계로 숨어 든다..
그러나 "유방"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여 "장량"을 죽이려고 병사들을
그 곳으로 보내죠..
그러나 "장량"이 은거한 곳은 엄청나게 험한곳으로 돌덩이를 던지며
불과 수십명의 병사로 유방의 대군을 막아냅니다..
대군들이 사용할 방법은 당연히 장기 농성..
당연히 위에서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에 스승인 황석공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니 무려 8백근(중국인의 그 대단한 뻥!!!)
무게의 잉어 3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병사들이 감동하여 먹으려고 하니 "장량"이 청천벽력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그 잉어들을 먹지말고 한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래로 던져 버리라고...
주군의 명령이기에 병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그 영물을 던집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은 목숨을 건지고 장량은 나중에 신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왜??? 당연하겠죠..
먹을 음식이 너무 많아 그 영물을 아래로 던지는 병사들을 한의 대군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올라가지를 못하는데 이길 방법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래서 황석공이 살던 자리라고 이 곳이 황석채로 명명된다고 합니다..
이 장량의 일화는 한신과 비교되어 아직도 많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석채 소문과는 달리 원가계와 비교하여 별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맑은 날에 기암 괴석을 함께 할 수 있기에 관광할 만한 가치는 있기는 하나
제가 혼자 여행하였다면 금편 계곡을 편하게 일주하는 편을 택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국인들이 상술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열쇠: 천하제일교 주변 난간대에 주렁주렁 열쇠들이 달려있는데 열쇠 장사꾼들이
이 난간대에다 애인끼리 열쇠를 채우고 이 열쇠가 서로의 변심을 막아주는 맹세를
하는 곳으로 이용한다.
키는 계곡에다 버리고 헤어질려면 키를 다시 찾아서 열어야 된다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나게 많은 열쇠들이 잠겨 있으며
이 열쇠에는 이름까지 새겨져 있으며 이 곳외에도 중국의 높은 경승지에는
온통 열쇠가 주렁 주렁 달려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2. 관광지를 다니면 중국인들이 안마하는데 천원이라고 유혹한다.
오질없는 한국사람들이 천원을 주고 그 안마를 받으면 그 사람은 조금하다가 가고
다른 사람이 하다가 또 천원을 요구하고 나중에는 5명이 달라붙어 주무르고
5천원을 요구한다.
한국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야지.....
이 터무니없는 요구에 또 주책을 부리고 중국인들의 욕을 얻어먹고..
산위 길목에서 군밤을 큰 바가지에 한바가지씩 들고 늘어서서 다~ 천원이라고 외친다.
또 한국 아줌마들이 싸다고 우루루 천 원 씩 주고 손을 내민다.
작은 비닐 봉지를 꺼내서 세 주먹만 담는다.
큰 봉지를 꺼내서 다 담으라고 하니 아니라고 손을 젓는다. 또 당했다!!
3.황석채에서 보면 커다란 그림에 멋있는 꽃그림으로 이름에 새겨 주면서 천원에 판다..
보기에도 멋있어서 하나를 사면 그 옆에 코팅 기계가 있는데 코팅 기계 옆에
콩알만한 글씨로 코팅 5천원이라 적혀있다..
장족 아가씨 복장으로 사진 찍는데 천원이라고 선전하면서 기념으로 한 장을
찍으면 아가씨들이 우르르 몰려드는데 또 이 아가씨들이 몽땅 천원씩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어서 이까지만..
그래도 바가지 쓰지 않는 방법이 한가지 있기는 하다..
절대로 물건을 받거나 서비스를 받기 전에는 돈을 내밀지 않으면 된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아예 그런 상술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고..
지하의 원가계 "황룡 동굴"
이제는 중국 장가계의 마지막 관광지인 황룡 동굴로 향한다..
동굴은 계림의 장장 13km에 달하는 풍어암과 너무나 아름다운 관암이라는 동굴을
경험하였기에 큰 관심이 없으나 처음 본 사람에게는 대단한 감동을 줄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석회암 동굴은 우리의 성류굴이나 소백산의 천동굴처럼 석화암이 매끄럽지는
않으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기에..
여기서 석회 동굴에 대하여 아는 지식을 나열하고 나서 계속 설명..
석회동굴은 이산화탄소가 녹은 지하수가 석회암 지대에 생긴 틈에 따라 오랜 세월에
걸쳐 흐르는 동안 석회암의 틈을 녹여 넓혀져서 생긴 동굴을 말합니다..
석회암은 탄산칼슘(CaCO₃)을 성분으로 하는 퇴적암의 일종이며
탄산칼슘은 순수한 물에 잘 녹지 않지만 이산화탄소가 녹아있는 물에는
녹아서 탄산수소칼슘(Ca(HCO₃)₂) 이른바 석회수를 만듭니다.
지하수는 이산화탄소가 녹아 있는 약한 산성을 띠며, 탄산수소칼슘은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지하수가 석회암지대를 흐르게 되면 암석이 녹아 버려 구멍,
즉, 동굴이 생기게 됩니다.
석회암이 녹아있는 용액이 동굴의 천장에 스며 떨어질 때, 이산화탄소를
함유한 수분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다시 탄산칼슘의 결정(석회)으로
변해 고드름 모양의 종유석을 이루게 됩니다.
종유석을 타고 떨어진 용액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이산화탄소와 물이 날아가버려
생성되는 것이 석순이고, 종유석과 석순이 자라다가 맞붙은 것이 석주입니다.
결국 석회동굴은 아무리 작은 굴이라고 하더라도 지구 생성의 역사와
똑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고등학교 지학
시간에도 이렇게 배웠으며 또 언론 매체를 통하여 석회 동굴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물과 이산화탄소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동굴을 들어가게 되면
이 모든 환경이 변화하여 이 동굴은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하고 이제 성장이 멈추어버린
죽은 동굴이 되어 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구 성장의 역사와 똑같은 동굴을 인간이 개발함으로 더 이상 살아있는 동굴이
되지 않는 것이니 지구상에서 가장 오만한 동물이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겠죠??
쓸데 없는 지식이라도 열심히 듣고 배우는 것이 개인의 낙인데 동굴에 대하여 나와 비슷한
얄팍한 지식을 가진 가이드가 종유석 일미터가 자라는 데 만년이 걸리다고 이야기한다!!
황당한 이야기라고 반박하였더니 일행들 대부분이 가이드의 편을 들면서 그 이야기가
맞다고 수군댄다..
공연히 놀러와서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 할 것은 아니기에 묻고 말았지만 사소한 지식이라도
정확히 알아야 하기에 귀국하여 인터넷을 뒤져본다..
***인터넷에서 찾은 믿을 만한 정보***
동굴은 그 형성과정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용암동굴이며, 다른 하나는 석회동굴이다.
용암동굴은 거대한 양의 용암이 흐르는 동안 바깥 쪽은 먼저 굳지만 반면에 안쪽은 액체상태로 계속 흐르게 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래서 용암동굴은 동굴이라는 말보다는 용암터널이라는 표현을 쓴다.
제주도의 만장굴이 바로 유명한 용암터널이다. 반면에 석회동굴은 석회암이 용해되어 이루어진 동굴이다.
용암터널이 짧은 시간에 형성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나, 석회동굴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으므로
오래된 지구나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들이 있기에 다루어본다.
석회동굴에 들어가 보면 천장에 달려있는 종류석, 바닥에서 성장한 석순, 종류석과 석순이 만난 석주 등
아름다운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을 동굴형성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모양을 보면 동굴형성물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잘 자라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동굴이 넓어진 것이 먼저이고 다음에 동굴형성물이 공기 중에서
자유롭게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동굴형성물이 성장하는 속도는 얼마나 빠를까? 예상과 달리 이들이 느리게 성장했다는 이론은
실험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동굴형성물들은 오늘날 성장하지 않으며,
많은 지질학자들은 이들이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는 석순 속에 빠른
매몰을 지시하는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며, 오늘날 터널, 지하실, 다리 밑 등에서 종유석과 석순이
길지 않은 시간에 형성된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회암은 일반적으로 물속에 CO2농도, 산도, 압력이 높을 때, 유기물이 많을 때 잘 용해되며,
특히 온도가 낮을 때 잘 일어난다.
또한 지하수의 빠른 유속은 석회암이 더 잘 녹게 도와주어 동굴확장에 중요한 물리적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동굴형성은 당시에 위에 조건과 맞는 환경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겠다.
그런데 노아홍수 말기의 환경은 위의 조건에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석회동굴이 형성되는 과정을 노아홍수의 순서화 함께 그려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엄청난 양의 무척추동물 화석으로 이루어진 석회암은 노아홍수 때 퇴적되었다. 홍수말기 지구를 덮었던
물들이 바다로 물러가는 동안 퇴적된 석회암이 변형되고 많은 균열들을 남겨놓았다.
물이 바다로 물러간 후에는 지하수가 평형상태에 도달되기 위해 지하수는 빠른 유속을 갖게 되었다.
이때 빠른 유속은 석회동굴의 공간을 형성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실제로 동굴 내에는 진흙, 자갈 뿐 아니라, 다량의 물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수 미터의 돌들도 관찰된다.
지하수가 빠져나간 동굴은 공기로 채워졌으며, 이때 동굴형성물들이 빠르게 형성되었을 것이다.
노아홍수 때의 화산활동에 의해 높은 CO2의 농도와 산도, 그리고 홍수 직후의 추위는 이들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모든 석회동굴은 지하수면보다 위에 존재하고 있다.
즉 이들의 공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한 때는 동굴이 지하수면 아래에 존재해야 하며, 그 다음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빠르게 용해되어 동굴형성물을 형성해야 하는데, 노아홍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최근에 동굴에서 황산분해 반응의 산물이 발견되었다. 황산은 탄산보다 강산이기 때문에 석회암을 훨씬 빨리 용해시켜
훨씬 빨리 동굴을 확장시켰을 수 있다.
황산은 화산과 관련되어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증거 역시 노아홍수 말기에 물이 빠져나가면서 활발해진
화산활동과도 연관되었음을 암시한다.
석회동굴이 수 만년에 걸쳐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과학적 실험에 의해 얻어진 내용이 아니다.
이는 오늘날 동굴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진화론적인 발상일 뿐이다.
지구상에 수많은 석회동굴들은 성경에 기록된 전 세계적인 대격변만으로 설명될 수 있다.
(성직자이자 지질학 학자인 이재만씨의 글..)
지금까지 배운 지구 역사와 같은 시간을 지녔다는 이론에는 배치되지만 아주 믿을 만한
이론으로 생각된다..
자연 과학 세상의 이론도 좀 더 그럴 듯한 이론이 나오면 수정되어 가야 겠죠??
결국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관광하는 동굴으로 지하수가 흐르지 않으니 이미 죽은 동굴을 관람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니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야그입니다요..
결국 다른 광물체와 마찬가지로 반감기나 다른 여러 가지 과학적인 측정장비를 이용하지 않고는 석회암
동굴의 생성 시간은 측정하기 어렵다고 보아야겠습니다..
가이드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하여 자료를 뒤져보다 또 색다른 사실을 배웠습니다!!
세계 최대에 세계 으뜸의 석회암(?) 동굴이라는 중국 장가계에 있는
황룡동굴에 대한 소감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를 함께한 일행들에게 물으니
감탄사 “와!” 한마디로 대답한다..
이미 계림을 동굴들을 경험하였기에 배를 타고 이동하는 초입에는 큰 감동이 없었으나
원가계를 옮겨 놓은 듯한 지하 광장의 모습은 과연 계림과는 또 다른 압권이었습니다..
1983년 청년 7명이 발견한 이 동굴은 이듬해인 84년부터 일부 개방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발하고 있다. 개발과 개방을 동시에 하는 현재 진행형 동굴이다.
개발인지 관광 수입을 얻기 위한 파괴인지 구별이 되지는 않지만..
현재 관광객들에게 개방한 동굴의 총 길이는 11.7km이고 동굴 내 제일 높은
수직 고도는 140m나 된다고 한다.
관광객들에게 개방한 동굴이라고 해서 그냥 사람이 걸어 다니기만 하며 구경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동굴과는 조금 차원이 틀린다..
동굴 속에 동굴이 있고 동굴 속에 강이 있다.
동굴 속에서 강과 산이 엇갈리고
석회질이 응고되어 석순, 석주, 종유석으로 자라며 기기묘묘한 형상을 형성하고 있다.
석순과 종유석의 형상은 마치 피어나는 꽃과 같으며 환호하는 군중의 무리와 같다.
수도하는 고승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으며 과일을 먹으려는 원숭이의 모습도 있고 뿌리가
삐져 나온 장뇌삼의 모습도 있다...
전원 풍경을 생각하면 눈앞에 구불구불한 다랑논의 논두렁이 보이고,
보석을 생각하면 큼직한 오색 칠보가 눈앞에 나타난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생각하면 뽀얀 젖무덤이 보이고 그곳에 우윳빛 물이 흐른다.
상상력을 동원해 마음에 그릴 수 있는 모습이란 모습은 다 있다..
수도 없는 양물의 모습이 있고 그 양물을 기다리는 여체의 일부분도 상상만 하면
얼마든지 보인다.. 이런 생각은 한마디로 얄궂다!!
황룡동굴은 4층으로 되어 있다. 위쪽 2층은 물이 없는 동굴이며
아래쪽 2층은 물이 있는 동굴이다.
동굴에서 석순이나 종유석이 자라려면 아무래도 물이 필요하니 물이 있는 동굴은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성장이 계속 될 살아있는 동굴이며 물이 없는 동굴은
이미 성장을 멈춘 동굴이라 하겠다.
물이 있어도 양이 적고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어 과거와 달리 성장은
아주 더디게 진행되겠지만..
동굴을 관람하는 데는 두 코스 중 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한 코스는 입구에 들어가서 동굴 내에 있는 강에서 배를 타고 2km쯤 들어가 도보로
관람하며 입구 쪽으로 나오는 방법이다.
또 하나의 코스는 이와는 반대로 도보로 관람을 시작해 나올 때 배를 타고
나오는 방법이다.
아무래도 배를 먼저 타는 코스가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고 좀더 급한 경사길을
내리 걸으며 관람할 수 있으니, 급한 경사길을 오르며 관람하고 완만한 경사를
걸어 나가 배 타고 관람하는 코스보다는 힘이 덜 들 듯하다.
우리 일행도 전자의 코스를 택한다..
20여명을 태우는 동력선은 시냇물에 띄운 종이배처럼 조용하게
물길 가르며 앞으로 나간다.
실내라는 특성과 동굴을 보호하기 위해 배터리를 이용한 동력선인 모양이다.
배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동굴 속에서 다시 시작되는 동굴로 들어가는 두개의 문이 나온다.
하나는 행복문이고 또 하나는 장수문이라고 되어 있다.
욕심에 행복 장수문을 몽땅 통과한다!!
다리 품을 팔며 여기 저기를 지나다보면 드디어 석주와 석순, 종유석이 도열한 광장이다..
이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나면 최고의 압권인 높이가 무려 19.2m나 되는 석순인
"정혜신침"이 있는 장소에 이른다..
중국정부에서는 이 석순의 귀함을 인정하여 무려 일억 위안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하였다 한다..
중간 부위가 잘룩한 것이 몇사람이 밀면 바로 넘어질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여기저기 눈길 돌리며 와! 와! 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다보면 등과 이마에서
땀이 촉촉하게 배어 나온다.
깊숙한 동굴이다 보니 바깥 기온과는 상관없이 항시 20여도를 조금 넘는
상온상태라고 하니 겨울엔 따듯하고 여름엔 시원한 천혜의 관광지다.
광장 저만치 동굴 안에 놓인 우리가 지났던 다리가 보인다.
돌을 정교하게 가공해 틀을 맞춰 아치형 다리를 만들었다. 참으로 경이롭다.
천용교(天龍橋)라 이름 붙인 이 다리는 길이가 20m 높이가 45m라고 하는데
철 구조물 하나 쓰지 않고 돌로만 되어 있다.
동굴 관람시간 내내 일행들의 감탄사를 듣다 보니 2시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동굴 관람 후 시내로 돌아오면서도 에피소드는 또 있다..
첫 날 엄청난 오버를 한 조선족 가이드 친구!!
교육을 단단히 시켰더니 좀 얌전하여 졌는데 점심때 이른바 관광용 스마트 카드에
광고된 술이 궁금하여 한병을 심부름 시켰더니 가격이 일만원대에서 칠만원대까지
다양하다며 그중 중국돈 5만 원대가 가장 맛있고 합리적이라고 한다..
일행중 한 명이 쏘겠다고 하여 녀석에게 부탁하였더니 점심때 가져오면서
중국돈 오백원이란다!!!
병을 뚜껑을 위조 방지를 위하여 진흙을 구어 만들어서 깨어야지만 술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제법 품위가 있어 보인다..
술맛도 그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백원은 어딘지 모르게 아쉬우나
이것까지 속이겠나 싶어서 넘어 간다..
그런데 일행들이 보석 쇼핑을 하러간 사이 슈퍼에 둘러보니 똑같이 술이 198원이다..
이 생업에 투철한 녀석은 그만큼 교육을 받고 또 나름대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받고도 또 술 값에서 무려 300원을 삥땅친 것이다!!
녀석의 무서운 생활력에 웃고 말았는데 녀석이 또 실수를 저지른다..
공연히 수입도 생기지 않는데 시내 슈퍼에 또 일행들을 데려감으로
술을 산 친구가 술값을 알아 버린 것이다..
그래도 속 좋은 우리 친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마감한다..
여행을 끝내고 두 가지 사건이 터진다..
장가계에서 같이 동행한 형이 지갑을 분실하고 내가 또 상해에서 아침에
지갑을 분실한 것이다..
가이드 대행을 하는 도중에 워낙 순한 상해 가이드 녀석이 부탁한 깨를 사기 위하여
버스 안에서 지갑을 꺼내었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없는 것이다..
이것저것 진행하느라 분주하여 차에 두었는가 하고 생각하였는데 부산가는 비행기
대합실에서 다른 일행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지갑 분실한 친구가 한 두명이
아니올씨다..
엄청 솜씨 좋은 중국이나 한국 소매치기 일당이 공항에 뜬 모양이다..
지갑에는 단돈 몇 만원과 카드가 달랑 들었는데 한국에서 신고하여 보니 다행히
카드에는 이상이 없다???
혹시 하는 생각에 월요일까지 중국에서의 연락을 기다려보나 감감 소식인 것을 보니
내 판단이 맞는 모양이다..
부산 친구들과의 마지막 여행에 대한 액땜으로 생각하고 잊어야겠다!!!
무려 50여회의 해외 여행에서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경험한다..
수도 없는 일행들의 분실 소식에 주의 부족이라고 비웃었는데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열 사람이 숙련된 한 도둑 막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사진을 첨부하려고 하였으나 기술이 부족하여 넣지 못하였습니다
인터넷에 다양한 사진이 있으니 사진은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십시오..
팩캐지 관광 주제에 기행문이 너무나 긴 감이 있어 송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