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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별난집별난맛(T.F.C) 원문보기 글쓴이: 氣坤
신석기 시대- 토기가 제일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신석기시대이다.
이시기에 만들어진 토기로는 이른민무늬 토기와 덧무늬 토기 그리고 빗살무늬 토기가있다. 대표적으로 빗살무늬 토기가 있는데 빗살무늬 토기는 위가 넓고 아래가 좁고 표면에 여러개의 사선이 그어져있다.
이 빗살무늬도 시기별로 틀린데 오래될수록 문양이 단순해지고 거칠어진다. 이시기의 토기는모래가 많이 섞겨있고 800˚C 내외에서 구웠기 때문에 흡수성이 많다.
청동기 시대-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토기는 민무늬 토기로 바뀌었다.민무늬 토기는 밑면이 넓고빗살무늬 토기와 마찬가지로 모래가많이 섞겨있는데 겉면에 무늬가 없고 주로 갈색을 띤다. 그리고 앞선 시대의 민무늬 토기보다 흙이 고운 토기도 있는데 붉은 간토기,검은 간토기등이 있고,약간의 무늬가있는 덧띠토기등이 있다. 민무늬 토기는 모래가 많아 단단하고 실용적인 반면 붉은 간토기(홍도)와 검은 간토기(흑도)는 모래가 적게 함유되어 있어서 만들기 힘들어서 수량도 적고 의식용 ,제례용등 특수한용도로 쓰인다.민무늬 토기와 빗살무늬 토기는 옹기의 전신이 된다.
원 삼국 시대-청동기시대가 가고 철기시대(삼한시대,원삼국 시대,BC.2C~AD.3C)가 오면서 토기는 와질토기와 연질토기로 바뀌어갔다.와질 토기는 단단하고 회백색인데 구워진 정도가 기와와 비슷해서 이름이 붙여졌다.와질 토기 이후에 회청색 경질토기가 제작되었는데 높은 온도에 견디는 가마를 만들어1000도 이상에서 구워냈다.
이때 내화도가 높은 질흙을 찾아내고 물래와 돌림판을 만들어 토기가 획기적을 발전했다.
삼국 시대-삼국시대는 국가별로 약간다른데 고구려는 황갈색이나 검은색이 전형적이고문양이 거의 없다.고구려의 토기는 후기로 갈수록 아가리 부분이 넓어지고 몸체가 가늘고 길어진다.백제토기는 삼한의 토기를 이어 받아서 경질토기가 주종을 이루고 고구려와가야의 영향도 나타난다. 백제는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선진 기술을 습득하여경질토기에 녹갈색의 유약을 입혀 녹유기를 만들었다.백제는 가마에서도 많은 발전을 보였는데 언덕을 따라 올라가 축조한 반지하식으로만들어져있는데 고화도를 효율적으로 유지시켜주어 보다 더 견고한 도기를 만들수있게 하였다. 조금더 발전하여 나중에는 창불구멍을 낸것도 나타난다. 신라도 삼한의 영향을 받아 회청색 경질토기와 적갈색 연질토기가 주종을
이룬다.토기의 형태는 목이 길거나 짧은 항아리나 굽다리접시가 기본형인데 무늬가 기하학적인 무늬에서 도장무늬로 바뀐다.후기가 되면 굽다리가 낮아지고 문양도 없어져 통일신라 토기로의 이행이 일어난다. 가야는 전채적으로 신라와 비슷하지만 신라 보다 날렵하고 세련되고 이형토기가 많다. 신라에는 특징적으로 토우라는것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고려.조선시대- 고려시대로 오면서 토기는 많은 발전을 하게되어 더이상 토기가 아닌 도자기로써 역할을 하게된다. 여기에 중국의 기술을 받아 들여 청자를 만들고 고려의 청자는 중국의 것보다 더욱 우수하게 된다.그리고 경질토기의 발전으로 저장성이 우수해져 항아리등으로 쓰이게된다. 옹기는 조선초가 되면서 완성되게 되는데 [경국대전]황옹 ,[동국여지승람],[세종실록지리지]옹기장,용어 에 보면 도기소와 옹장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것으로 보아 실생활에 많이 이용되고 중요도높아진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말경(19C 말)부터 일제시대까지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옹기에는 광명단이라는 화학 약품을 유약에 섞게된다.광명단은 페인트의 원료로 이것을 섞으면 윤기가 좋아지고 낮은 온도에서 녹기때문에 땔감이 덜 들어가 이윤을 높일 수 있다.그렇지만 광명단의 납성분 때문에 음식물에 독소가 들어가고 옹기의 숨구멍을 막아버려 음식이 자연스럽게 발효가 되는것을 막는다.이 광명단 때문에 전통 옹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대부분 몰락해 버리고 몇몇만이 남아 전통옹기의 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지금 시장에서 파는 옹기의 대부분은 광명단유약이 사용되고 있다.
옹기의소개
질그릇은 그 화도에 따라 저하도 질그릇과 고화도 질 그릇으로 나뉘어지는데 그 중 저하도 질그릇은 다시 검은색과 붉은색 질긋으로 나뉘어 지게된다. 검은색 질그릇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고화도 질그릇은 회청색, 흑색, 적갈색으로 그 그릇들의 다양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중 흑색의 옹기는 소금유약의 그릇으로 푸레독이라 불리운다.
오지 그릇은 쓰느 유약과 색에 의해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자연유에 의한 붉은 색 오지와 잿물 유약의 적갈색 오지 그리고 유연유약의 적갈색, 흑색 오지이다. 이 흑색 오지에서 내열성을 갖춘 것을 약탕관, 질솥으로 쓰며 석기를 소지한 것은 칠기 그릇으로 쓴다.
지금의 전통옹기는 조선시대부터 만들어져 왔다. 신라토기, 백제토기, 고려토기로 불려지는데 토기는 잿물을 바르지 않은 점토만으로 빚은 제품을 토기라 하고 그후 잿물기법의 과정을 거치며 옹기라 하였다. '독'자는 물을 걸러 정화한다는 뜻이며 조선초기에 이 재물기법을 발명했다.
점토자체도 바이오이며 황토(매운재)도 소나무 땐 재나 콩깍지 땐 재도 자연의 부산물로서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이루어짐으로써 신비스러운 옹기가 태어난 것이다. 정화를 해주고 해독을 해주고 숨을 쉬고 자연 온도조절을 하는 우리나라만이 가지 고있는 재물기법이라 할 수 있다. 1300도의 고온 온도로 구워지므로 내구성이 뛰어나며 장 맛과 김치 맛을 가장 좋게 해주며 산소공급을 해줌으로써 최적을 발효를 제공하는 이 놀라운 옹기를 우리는 너무 소홀히 한 것은 아닐지... 새삼 김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지금 옹기도 김치와 더불어 우리의 음식문화를 이끌어온 일등공신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옹기는 인체에 무관하다.
'독'이란 말이 정화한다는 말에서 비롯 되었듯이 찰흙에다 나뭇잎이 썩어 만들어지는 부엽토와 재를 썩어 만든 잿물을 입혀 구워내는 옹기는 우리가 쓰는 그릇 중 가장 환경친화적인 그릇이며 때문에 우리의 몸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 그릇이라 할수 있다. 옹기는 잘만 사용하면 백년이상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사용하던 그릇이 금이 가거나 깨지더라도 그릇의 성분이 자연의 것이기에 쉽게 흙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자기는 땅속에서 부서진 조각으로도 발견되는 것과는 달리 옹기의 조각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물을 담으면 정화정수를 해주며 산소를 공급해주어 육각수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신비한 옹기를 우리는 왜 잊고 살았는지.. 가족을 위해 항아리를 소중히 하시던 우리어머니.. 그 속에 담긴 장과 김치가 어머니의 사랑이다.
옹기는 통기성이 강하다.
옹기하면 바로 따라오는 말은 '숨쉬는 항아리'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통기성이 아주 강한데 옹기의 기본재료가 되는 태토는, 자기보다는 수비를 덜하여 태토가 곱지가 않아 작은 모래 알갱이나 작은 돌덩이도 있고, 이런 것들이 소성을 통하여 그릇 안에 미세한 공간을 만들어 그런 미세공간이 물은 통하지 않지만, 안과 밖의 공기는 통하게 함으로서 안에 담긴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썩지 않고 천천히 발효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된장, 간장, 김치, 젖갈과 같은 발효음식의 저장 그릇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질그릇에 물을 담을 경우 잡물을 빨아들이고 독을 없애주는 효과와 수분을 빨아들여 몸체 밖으로 기화를 시키면서 기화열을 빼앗아 물을 자동온도 조절기능으로 항상 시원하게 만들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 있다.
햇볕을 쪼이지 않아도 또한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곰팡이 등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는다. 쌀이나 보리, 씨앗, 소금등을 넣어 두면 다음해까지 썩지 않고 그대로 잘 보관할 수 있다. 실예로 사과를 담아두었는데 다음해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옹기를 구울 때 연료로 사용되는 나무가 가마속에서 연소될 때 생기는 탄소 알갱이와 연기가 그 안에 들어 있는 옹기들을 휘감으면서 그릇에 끄으름이 입혀지는데, 이것이 옹기그릇 자체에 자연스럽게 입혀지는 방부성 물질이다. 탄소와 연기을 먹인 꺼먹이 효과가 과학적으로
청정작용을 한다. 그리고, 옹기의 유약은 약토(찰흙인 태토에 식물성이 함유되어 있는 부엽토의 일종)와 재를 일정한 비율로 조합하여 만드는데, 재도 독을 빨아들이거나 음식물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 역할을 한다.
옹기는 쓰임새가 많다 .
예부터 서민들에게 부담없이 생활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장독대, 부엌, 곳간등에서 사용되는 생활 용품에서부터 민간 신앙용, 의료용품, 민간 악기 등에 이르기까지 생활 속에 폭넓게 자리하였다. 민화를 통해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렇듯 옹기는 서민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함께 그 문화를 공유해 왔다.요즘은 김치나 장은 물론,어디에나 어울려 자연미가 돋보이는 인테리어 소품과 벌레가 생기지 않고 분위기를 살려주는 쌀독으로, 가로등 밑에 운치있게 위치해 고혹함을 더하는 야외나 실내용 재떨이로, 나무와 잘 어울려 더욱 빛나게 만드는 화분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옹기흙,흙만들기
점토 (흙)
1. 옛날 옹기를 만드는 옹기장이들은 쉽게 채취할 수 있는 동산의 황토흙을 물에 배합
하여 낫같은 깍기 연장을 이용하여 흙속의 돌과 나무뿌리를 골라내어 흙을 차지게
다져 점토 를 만들어 사용했으므로, 점토나 황토는 같은 맥락의 흙이라 볼 수 있으
며 우리들의 기 억에는 황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옹기가마가 있던 장소를 보면 좋은 황토흙을 쉽게 채취할 수있는 경사가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2. 점토는 옹기를 만들 때 주재료로 사용되는 점토로만 알고 있었으나 근래에 와서 원
적외 선, 바이오세라믹스, 게르마늄이 사람의 건강에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하여
생활 주거 용 및 생활용품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 점토는 표면이 넓은 벌집구조로 수많은 공간이 복층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스
폰지 같은 구멍안에는 원적외선이 다량흡수,저장되어 있어 열을 받으면 발산하여
다른 물체의 분자 활동을 자극합니다. 즉 점토는 유수한 세월동안 태양에너지를 흡
수하고 규소성광물 로서 쉽게 말해 ' 태양에너지 저장고' 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점토 한 스푼에는 약2억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어 다양한 효소들이 순환 작용을
일으키 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점토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 하여 엄청난 약성을 가
진 무병장수의 흙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 점토의 가장 근본적인 효능은 황토에서 파장되는 원적외선이다. 원적외선은 세포
의 생리 작용을 활발히 하고, 열에너지를 유해 물질을 방출하는 광전효과가 있습니다.
⊙ 우리나라 점토는 중국대륙에서 수십만년을 날아온 황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점토
의 효 소성분에는 카탈라아제, 디페놀 옥시다아제, 사카라제, 프로테아제의 4가지
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효소들은 각기 독소제거, 분해력, 비료요소, 정화작용을
역할을 하고 있습 니다.
⊙ 최근들어 점토 침대화, 한증막이 각광을 받는 등 황토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급증하
고 있으며 앞으로 황토는 우리의 생활에 적용되어 큰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됩
니다. 또한 환경면에서 농약으로 오염된 토양의 지력을 회복하고 지장수를 가정에
서 이용하여 하천을 맑게 하는 방법도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옹기흙 만들기
우선 옹기의 원료인 흙을 채굴하여 옹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 우선 질대리기 좋게 이곳에 물을 뿌려 흙이 물에 붇도록 하룻밤 재우는데 이를 재운생질이라 한다. 수비 공정은 생질꾼에 의해 채굴된 생질인 조대흙을 일단 넓은 마당에 펼쳐 놓고 햇?에 건조시킨 것을 수비꾼은 이것을 물탕인 수비통 속에 적당히 넣어 옮겼다가 다시 수비밭에서 수분을 건조시킨다. 이와 같이 수비꾼에 의해 얻어지는 수비질을 사용한 옹기점은 경기도 강화도에서 처음 시도되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일부 지역과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어 왔다. 수비질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돌, 왕모래, 나뭇조각, 짚풀 등을 충분히 가려내지 못하므로 완벽한 옹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도입된 공법이라 하겠다.
19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노임 인상과 힘든 건아 작업을 기피하는 경향으로 기계 시설인 '롤러 밀 공법'을 등장시켜 복잡한 공정을 거쳐 정선된 바닥질을 준비하는 번거러움을 피하고 돌이나 모래가 없는 밑질을 손쉽게 얻기도 하였다. 이상과 같이 재래식 공법에 의한 생질꾼 작업 공정이나 수비꾼에 의해 마련된 수비질이나 롤러 밀에 의해 돌이나 모래가 없는 질을 모아 놓은 고작대미를 만든다. 이로써 기초적인 작업은 끝이고 다음 단계인 건아꾼 작업으로 넘어간다.
제작과정
수비질은 완벽한 옹기를 성형할 수 있는 정성된 질이라 하겠으나 질의 끈기가 없으므로 끈기있고 차진 흙을 만들어야 한다. 고작대미에 쌓여있는 생질을 우선 양 손잡이가 달려 있는 낫과 같은 흙깨끼칼로써 두께 0.2내지 0.3센티미터 정도 얇게 깎아 내며 생질꾼이나 롤러 밀에 의해 제거되지 못한 잡물인 돌, 모래, 나뭇조각, 짚, 풀, 금속물 등을 다시 골라내는 깨끼질 작업을 하게 된다.
잡물을 골라내는 작업뿐만 아니라 건조된 흙과 무른 흙을 좀더 치밀하게 배합 혼합시키면서 흙 속에 고여 있는 공기를빼내는 동시에 질을 부드럽게 만든다. 이를 가리켜 '첫깨끼한다'고 하는데 고작 대미를 처음 깎는 잡업을 말한다. 깨끼질을 하면서 깨낀 질은 40센티미터 정도로 둥글게 뭉쳐 놓은 질을 가리켜 질덩이 또는 질뭉치라 한다. 뭉쳐 놓은 질덩이를 손질 하기 위하여 우선 움바닥에 백토 가루를 뿌려 놓고 그 위에 질덩이를 서너 줄로 늘어놓지만 근년에 들어서는 백토 가루 대신에 마포나 광목 등의 길다란 포장을 깔아 놓은 뒤 그 위에다 질덩어리를 쭉 늘어놓고 매통이나 감투매로 고른 다음에 꽃매를 가지고 골고루 두들긴다. 이 작업을 가리켜 곧매 또는 꽃매질이라 한다.
꽃매질이 끝나면 곧매를 다시 옆으로 뉘어 또다시 고루 치는 옆매질 작업을 한다. 옆매질 작업이 끝난 질을 가리켜 친흙, 익은질, 친질등으로 부르는데 익은질이라 함은 질을 반죽하였다는 뜻이다. 익은질을 목가래로써 운반하기 좋을 정도로 다시 잘라 이들을 한 곳에 쌓아올려 놓는다. 이렇게 쌓아올린 고작대미를 만드는 것은 '대낸긴다'라고 하며 이는 '다시 넘긴다'라는 뜻이다. 대낸긴 고작대미가 끝나면 또다시 깨끼를 가지고 고작대미를 두 번째 깎는데 이를 가리켜 '대깨끼한다'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대깨끼 곧 다시 깎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다시 질덩이를 만들고 마포 위에 늘어놓은 뒤 매통이나 감투매로써 질을 대리고 난 뒤 다시 곧매질을 한다.
두 번째로 이긴질을 뒤집어 놓고 곧매질과 옆매질을 계속한다. 옆매질로써 질을 대린 뒤에 목가래로 방형으로 잘라 놓은 것을 가켜 판장질이라고 한다. 대림질한 판장질을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옮겨 쌓아 놓은 뒤 표면이 건조되지 않도록 물헝겊 덮개로 덮어 놓는다. 질꾼인 건아꾼은 다시 대림질을 쨀줄인 삼줄 또는 철사줄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대장이 작업하는 물레칸 부근으로 옮겨 놓고 질재기 또는 판장질을 만들어 놓는다. 전라남도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질재기라는 코일을 사용하지만 전라남도만은 판장질이라는 특수한 코일을 이용하는 쳇바튀 타램질을 하는데 이러한 기법은 세계 유일한 기법으로 생각된다. 또 전라남도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에서는 건아꾼이 질재기를 준비해 놓지만 전라남도 지역을 제외한 전지영에서는 건아꾼이 질재기를 준비해 놓지만 전라남도에서는 대장이 판장질을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 질재기라 함은 흙덩어리를 떡가래와 같이 둥글고 길게 밀어 늘어뜨리는 것으로 보통 4센티미터 정도로 빚으며 길이 1, 2미터 정도로 길게 만들어 놓는다. 이것으로 건아꾼은 물레 작업 전의 일을 일단 끝내게 된다.
참고 - 대원사 옹기
옹기가마
옹기가마는 보통 통가마라고 부른다. 이 통가마는 미국의 tube kiln, 일본의 아니가마, 옹기가마, 용가마, 대포가마(한국) 등으로 불리는 통가마는 3,000여 년 전부 터 중국에서 사용되어 온 것으로 우리 나라에는 신라시대에 들어와 주로 신라토기와 옹기 등을 구 워 왔다. 작은 가마는 3∼4m,큰 것은 40∼50m의 긴 튜브 형태로서 20∼30°경사진 언덕에 세워 지며, 가마 밑부분이나 옆부분 1,2군데에 잇는 문을 통해 기물을 재임 하고 밑에서부터 소성을 시 작하여 예열한다.
천장에 난 작은 화구를 통해 나무를 투입, 가마 전체의 온도를 일 정하게 조절하므로 가마가 길어도 균일한 소성이 가능하며, 경사진 언덕에 가마를 짓기 때문에 경사도 그 자체가 굴뚝 역할을 하여 서서히 그리고 자연 스럽게 열이 올라 간다. 밑에서부터 점차 소성 하여 올라가기 때문에 소성이 끝난 부분은 자연히 냉각이 되고 그 윗부분은 예열이 되는 까닭에 반연속 가마에 속한다.
옹기가마중에 충청도와 전락북도 일원에서 사용해 온 조대불통가마의 구조는 특이하다. 외형상으로는 ㄱ자형의 구조로서 언덕에 지어져 잇고, 그 가마의 중간 윗부분 이 ㄱ자 형태로 꺾여 있다. 가마 중간에 2,3개의 문이 있고 봉통과 기물실이 살창으로 막혀 있어 불길이 기물에 직접 닿 지 않고 예열이 되므로 기물의 파손이 적다. 뺄불통가마는 봉통과 기물실 이 불턱으로 분리되어 있고 봉통이 긴 가마이다.
옹기를 굽는 가마는 도자기 가마와는 달리 경사진 곳에 길다란 통가마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가마 형태는 통가마인 뺄불통가마나 조대불통 가마는 모두 가마칸의 시설 을 갖고 있으며, 다만 불통부분이 다를 뿐이다.
옹기가마의 번조.
봉우리 가마나 옹기가마에 있어서의 가마재임은 '그릇 서린다' '가마 재임한다' '얹는다' 등의 말을 사용해왔다. 모두 비슷한 의미이다. 가마재임하기전에 가마 벽과 천장 을 손질한다. 이것은 천장의 모래나 그 외의 불순물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 과정은 '살창친다'라고 한다.
가마의 재임 방법은 도침(陶枕)이나 개떡을 사용했다. 도침이란 것은 항 아리의 수평을 맞춰주기 위해 항아리 밑에 고여 넣는 것으로 도지미혹은 고임 돌이라고도 한다. 옹기와 옹기사이엔 공뚜껑을 사용한다 붕판대용이라 볼수있다.
잿물을 입힌 옹기를 한 점씩 가마위쪽부터 재임해야 하며, 맨 밑의 기물은 가마 내 부가 경사져 있으므로 개떡을 기물 밑에 받쳐야한다. 처음 불을 피우는 것을 피움불이라 하며, 가마의 입고 좌우에 나 누워 피우는 경우와 가마 입구에 바로 피우는 경우, 그리고 불통 한쪽에서 피우는 방법이 있다. 피움불을 이틀 정도 피우면서 가마속의 습기와 냉기를 제거하면서 서서히 온도 를 높이며, 안전하게 굽는다. (이 시간은 가마마다 차이가
있다.) 그후에 차차 불은 돋군불이 되 며 이 돋군불은 약 30시간쯤 지속된다. 피움불과 돋군불이 진행되는 동안 가마 속의 날그릇의 표면은 완전히 검은색으로 입혀진다.
옹기가마 양쪽에서 피웠던 불덩이는 차차 연결되면서 불질은 가마통 속을 완전히 메워 가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릇과 가마통이 불길에 달궈짐에 따라 그릇 표면에 덮 여 있었던 검정은 차차 열에 의해 연소한다. 검정을 없애는 불길을 가리켜 백금불 또는 배낌불이 라한다. 이불은 5시간정도 지속되며, 이어서 큰불에 들어가게 된다.
큰불로 4시간쯤 지나면 다음단계로 가마등 양쪽에 마련된 창솔 구멍을 통해 가마 온도를 판단하면서 창불 작업에 들어간다. 창불 작업은 대장이 담당하는 것으로 양쪽 에서 두 사람의 대장이 창솔을 가지고 가마 속의 그릇 빛깔을 보면서 창솔을 넣는 것이다. 창솔 을 넣는 이유는 잿물을 녹이기 위해서이다. 창솔이 불통 쪽부터 계속 위로 올라 가는 동안 불통에 서는 뒷불을 피우는데 이를 가리켜 '뒷게한다'하고 한다.
옹기 굽는 온도는 950℃∼1110℃정도에서 구워지며 창솔을 넣을 때마 다 창때기를 덮으면서 건아꾼, 생질꾼들은 진흙으로 공기가 새나가지 못하도록 밀폐시킨다. 옹기 굽는 작업은 1주일간 주야로 계속되며, 모든 불이 끝나면, 아궁이와 창솔구멍, 굴뚝 등을
완전히 밀폐시킨다. 밀폐된 가마는 1주일 후에 가마를 열고 익은 그릇을 꺼 내는데 이것을 옹기라고 한다.
*가마마다의 차이가 있으나 제가 있는곳의 영천옹기 가마는 예전의 대포가마를 30년정도 전에 칸가마로 개량하였고 봉수는 13봉에서 현재는 10봉의 상태로 남아있다.
영천옹기요는 10일 가량이 소요되고있다.
* 통가마 * 등요
통가마를 좀더 개량한 것이 여러 개의 칸으로 나누어진 등요이다. 봉우리가 가마, 칸가마
또는 너구리 가마라고도 불리어 왔으며, 각 칸마다 입구가 따로 있어 가마재임과 칸마다의 온도조절이 편리하고, 마지막 칸은 그 앞 칸의 폐열을 이용하여 초벌구이를 하므로 열효율이 높다.. 내화재인 흙벽돌을 이용하기 때문에 단열효과가 우수하고 고온소성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