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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새로 쓰는 수필론│수필과 인접 장르와의 만남
수필의 글맛과 시의 글맛
―수필과 시의 독자성에 대해
유 경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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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수필이고 시는 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고 말한 어느 스님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시를 써 오면서 수필 전문지에도 더러 이름이 오르는 것을 보고, 편집자가 이런 글을 쓰라는 것으로 짐작한다. ‘수필과 시의 혼성과 독자성’이라는 소주제가 그런 의도임을 짚어 보게 한다.
답을 위한 필자의 소견은 간단하다. 수필은 수필이고 시는 시일 뿐이다. 수필과 시, 이 두 가지에는 특별한 혼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형식상 독자성이 따로 따로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수필과 시 사이에 어떤 혼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문학형식에 대한 확대해석이거나 확대진단에서 오는 오해라고 여긴다.
모든 문학양식은 본질적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는 내면에 문학의 가치라는 공통성을 지닌다는 말, 이 말을 더 보탤 수 있으리라 싶다. 어떤 이는, 풀어서 쓰면 수필이고 압축시키면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충분한 설명은 못 된다. 외양에서는 다르나 내면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말과 같다.
흔히 월평에서, 시인이 쓴 ‘수필’에는 시적인 표현이 삽입되어 있다거나, 서술방법이 부드럽다거나, 또는 전개기법이 환상적이라거나 하는 지적을 읽게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표현기법의 한 가지 방법임을 지적하는 것이지, 그 글이 수필로서의 격(格)과 품(品)을 지녔느냐 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즐겨 동원하는 형용사 부사의 과다 사용은 수필의 주제를 혼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주제를 아주 놓치게 하는 역기능도 한다. 수필에서 화려한 표현기술이 대접 받지 못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화려한 표현기술이 역기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아는 시인이면 구태여 수필에서 표현의 기법 기술에 치중하겠는가.
수필다운 수필을 써낼 기량이 부족할 때 또는 기량 부족을 자각할 때 장황한 표현기법을 연막처럼 택하여 자기 부족을 메꾸려는 계산, 이런 계산을 우리는 가끔 시인의 글에서 읽게 된다. 그러나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며 그 글은 끝내 수필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그러하였던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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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50년대 중반에 『현대문학』지에서 시 부문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등단 이후 시만 쓴 것이 아니고 산문도 썼다. 그러나 그 시절 썼던 산문은 수필이라고 하기엔 미흡한 글이다. 구태여 일컫는다면 ‘시인의 글’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1974년에 『길에서 주운 생각들』이라는 첫 에세이집을 범우사에서 출간하였다. 이후 수필 청탁을 받기 시작한다. 최근의 『나무호미』, 『다리놓기』 따위에 이르기까지 몇 권의 산문집을 내놓았다. 하지만 한번도 자신을 수필가로 자처한 적이 없다. 그냥 시를 쓰며 수필도 쓰는 작업에 충실하려고 할 뿐이다.
『현대문학』에서 등단한 지 10년 만에 현대문학상을 받고, 40년 만에 정지용문학상을 받는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은 이렇다.
세상에
큰 저울 있어
저 못에 담긴
고요
달 수 있을까
산 하나 담긴
무게
달 수 있을까
달 수 있는
하늘저울
마음일 뿐.
―「낙산사 가는 길·3」 전문
몇 줄에 불과한 시행이지만 상당히 긴 이야기를 압축하여 넣었다. 이 한 편을 수필로 썼다면 2백 자 원고지 12장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시에는 농축이 기교이고 수필에서는 서술이 기교라고 말하겠다. 시제 「낙산사 가는 길」조차, 산절 이름만이 아닌 압축된 불교적 상징으로 쓴 것이다(필자는 가톨릭 신자이다).
이 시에서 느끼는 글맛은 수필로 풀어서 썼을 때의 글맛과 다르다 할 것이다. 시에서는 독자들 해석의 폭이 커서 독자 나름의 다양한 감상이 가능하지만, 수필에서는 주제가 거의 노출되므로 한 번 읽어서 주제 파악이 되면 되풀이 읽지 않게 된다. 시에서는 독자 자신의 해석력이 상당히 요구되나, 수필에서는 독자의 해석력이 시에서 만큼 요구되지 않는다. 따라서 글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시의 감상처럼 힘들지 않게 수필에서는 글맛을 느낄 수 있다. 감상을 위해 지불하는 것이 시에서보다 덜한 편이기에 글맛도 가벼울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수필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사유의 깊이와 범위에서, 수필은 시만큼 중량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문학이다.
시는 인생의 문제를 외곬으로 깊이 파고 내려가는 갱도일 수 있으되, 수필은 깊이보다 지평을 넓게 요구하는 보편적인 사유를 공감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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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필자는 월간 종합교양지 『사상계(思想界)』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시절 의사 김성진, 화가 천경자, 학자 김원룡, 교사 윤오영 등에게 수필을 청탁하여 받아 오는 것이 필자가 맡은 일 가운데 한 가지였다. 당시 편집자들의 수필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의 그것과 달랐다. 전문직을 가진 지식인 가운데 전문분야 밖의 것을 보통의 독자들이 읽도록 써 줄 수 있는 필진을 가려내어, 그들에게 청탁하는 여적(餘滴)의 글이었다.
그러므로 남은 시간에 한가로이 쓰는 여기(餘技)적인 성격의 글이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수필과 신변잡기를 식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수필 전문작가(이후 수필가로 지칭)들이 문학으로서의 수필을 외치게 된다. 수필의 격(格)을 찾게 되고 피천득, 이양하 등의 작품을 순수문학의 반열에 귀속시킨다. 하지만 신변잡기의 위상에서 본격으로 수필의 지위가 높아지자, 이번에는 장르에 대한 시비가 늘게 된다. 이른바 영역침범론이 나오는 것이다 ‘시를 쓰면 시만 쓰지, 왜 수필에까지 손을 대느냐’가 그런 시비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우리 나라에서만 보게 되는 현상이다. 자기 입지가 줄어든다는 경계 의식의 발로와 다름없다. 그 실증적 뒷받침을 필자는 이렇게 알게 된다. 월간 『사상계』가 5·16 세력에 의해 숨을 거두자 필자는 서울에 있는 한 신문사로 직장을 옮겨 60년대에 문화부장직을 몇 년 맡은 적이 있다. 해마다 늦가을에 노벨문학상 수상 지명자가 외신을 타고 들어오는데, 그 시간이 서양과의 시차 때문에 우리 나라의 새벽 3시쯤이다. 조간 신문을 인쇄하는 새벽 최종 마감 시한에 맞추어 지명자에 대한 기사를 쓰기가 어렵고 벅차다. 때문에 미리 유력한 후보자들에 대해 예측 기사를 작성해 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수상 후보자들이나 지명자의 문학적 경력을 보면, 거의 모두가 시 소설 수필 희곡 전 장르를 횡단하고 있다.
지명이유를 보면, ‘전 장르에 걸친 작품들 가운데 올 수상 지명자는 시집으로, 또는 소설 무엇으로, 희곡 무엇으로 그의 문학사상을 가장 잘 드러냈으므로 올 수상자로 결정한다’는 말이 반드시 들어 있다.
작가가 내면에 지닌 문학사상을 표출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유의지이며 자유로운 선택일 뿐이다. 문학사상을 표출하는 표현양식을 어떤 것으로 택하든 그것은 작가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단지 발표된 작품이 지닌 작품성이, 문학의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이어서, 인류의 보편적 예술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느냐만 저울질될 뿐이다.
나라 밖에서는 장르를 놓고 시비를 걸지 아니한다. 예로 피카소를 들면 구상에서 출발하여 추상으로, 심지어 도예까지 손을 댔다. 그래도 그는 화가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당신은 구상화가인데 왜 추상을 그리느냐, 당신은 추상을 주로 했는데 왜 구상으로 되돌아서느냐’고 따지고 든다. 우리는 왜 이럴까? 왜 좀더 크게 보지 못하고 밴댕이 속처럼 납작하게 구는 것일까.
김동리 황순원도 시를 썼고, 박경리도 시집을 냈다. 노천명은 시인의 이름을 계속 지니면서도 향기 짙은 수필을 썼다. 우리에게 퍼져 있는 경계 의식은 버려야 할 버릇이라고 본다. 마치, 데생으로 밑그림을 마친 화가가 구상으로 자기 생각을 펼칠 것인가 추상으로 구현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것이지 어떤 구속감에 의한 것일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창작충동을 자극 받았을 때 그 사상을 시로 형상화할 것인가, 수필로 담아낼 것인가 하는 것 또한 자유로운 선택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혼성과 독자성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써내는 글이 ‘시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그런 수준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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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알려진 사람이 수필을 발표하면 수필가들은 논의에서 항용 이를 제쳐놓기 일쑤다. 왜 그럴까를 곰곰 혼자 짚어 본 적이 여러 번이다. 그 첫째 이유는, 시인들이 (이미 알려진 자기 이름만 믿고) 여기(餘技)로 쓰듯 품을 덜 들인 채 수필이라고 내놓기 때문이고, 그 둘째 이유는 반대로 수필가들이 받게 되는 상대적 평가에서 비교평가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는 혼성과 독자성의 혼동이고, 둘째는 독자성에 대한 배타적 옹호이다.
필자는 고 박연구씨의 생존 시, 두어 번 수필작품 추천심사와 수필문학상 예비심사에 자리를 함께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시인이 쓴 수필은 맨 먼저 미뤄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런 일은 수필의 독자성에 대한 배타적 옹호라기보다 오해라고 하고 싶다. 요즘 시인이 쓰는 ‘수필’이 ‘수필이 아닌 시인의 글’인 경우가 허다한 것을 필자도 읽고 있다. 필자의 것도 다름 아니다. 그러나 시인이 쓴 수필의 본보기로 시인 이향아가 쓴 「영산홍」(『에세이』지 창간호)을 들어, 시인도 좋은 수필을 쓴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시인이 굳이 수필을 쓴다면, 수필다운 수필을 써야만 하는 책임을 통감할 필요가 있다.
문예지의 수필란에 게재된 글이 시인으로 알려진 문인의 것일 때, 수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그래서 ‘시인이 쓴 글’의 수준에 머무른 것이면 이 시인은 두 번 모욕을 받게 된다. 다른 시인들에게서 받는 것이 그 하나이고 수필가들에게서 받는 것이 그 다른 하나이다.
이런 까닭에서 ‘수필은 수필이고 시는 시이다’라고 말하는 근거를 찾는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수필이 갖춰야 할 구성상의 내적 질서와 완성도 높은 작품성을 지녀서 글의 향기를 뿜어야 한다. 이런 충분조건을 충족시킨 글이라면 시인이 썼다고 하여 미뤄질 까닭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수필에서는 구성면에서나 서술 전개의 기법에서, 시보다 훨씬 까다롭고 섬세하며 치밀한 기술을 요하는데, 이를 간과하는 시인이 적지 않다. 시의 작법과 수필쓰기를 혼동하는 것은, 곧 혼성과 독자성의 혼동인 것이다. 이것은 시인의 문제라기보다 혼성과 독자성에 대한 식별능력의 문제라고 본다.
이쯤에서 늘어놓은 말을 간추려 보면 대충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줄일 수 있겠다. 수필과 시는, 서로 상응하여 반응하는 상관성(相關性)이 없다. 다만 동일인이 시도 쓰고 수필도 쓰는 경우, 이른바 ‘시 같은 수필’ 또는 ‘수필 같은 시’를 생산할 수 있겠는데, 모두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된 적이 없다. 수필 같은 느낌이 드는 시로서 산문시 형식을 들지만, 한 세대를 넘도록 풍미한 산문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수필다워야 하고, 시는 시로서의 요건을 갖춘 시라야 한다. 그래야 문학작품으로서 응분의 대접을 받게 된다. 서로 상통하는 가치는 문학작품성일 뿐이나, 연결된 것이 아니고 끝까지 독자적 성격을 지닌다. 다만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고 말한다면, 수필이나 시나 궁극의 종착지점인 문학적 가치라는 데서 일치한다고 하겠다.
시는 시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리고 수필은 수필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각기 성공하는 길이다. 수필의 특성은 단아한 문장으로 절묘한 구성 속에 주제를 담아내는 데 있다. 잎이 많은 나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듯이, 설명이 긴 서술은 주제를 가리기 때문에 간결 담백한 문장은 수필의 특성을 살리는 지름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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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수필은 ‘누구나의 문학’으로 확산되고 있다.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학으로, 그 질(質)과 양(量)이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도 인간으로 덜 익은 사람, 설익은 사람 곧 사유에서 덜 성숙한 사람까지 ‘누구나’의 범주에 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런 점에 오해가 낄 틈새가 있다. ‘누구나’의 범주는 글자 그대로이지 결코 ‘아무나’가 아닌 것이다. 아무나 작품을 창작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긍정하면서도, 누구나 작품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다.
왕조시대에는 시조라고 하는 형식, 곧 틀 잡혀 있는 표현양식에 삶의 정서를 담아내 즐겼기에,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지식계층 곧 양반계급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누구나 수필을 창작할 수 있다. 누구나 수필을 ‘나의 문학’으로 여기며 다룰 수 있다. 그 창작 의욕을 어떤 것으로도 구속할 수 없다. 그렇다 하여도 아무나 써내는 것은 아니다. 수필을 문학작품으로 다룰 줄 알게 되려면, 이 ‘아무나’의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나의 수준에서 ‘나도 수필가’라는 사람이, 오히려 ‘시 쓰는 사람이 왜 수필에까지 손을 대느냐?’고 자못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문학의 가치를 인정 받는 글, 곧 수필작품을 창작해 내려면 먼저 인생의 상당한 경지에 이른 체험자이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수필이 ‘아무나의 문학’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상당한 경지에 이른 생(生)의 체험자라면, 장르별 속성의 혼성과 독자성쯤은 초월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수필은 수필이고, 시는 시다. 이렇게 말한 근거를 뒤집어서 연역하면,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시는 읽는 이가 지닌 다양한 체험의 폭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고, 수필은 읽는 이가 지닌 다양한 지식의 양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시는 체험의 눈으로 읽을 때 그 글맛이 잘 우러나고, 수필은 지식(정보)의 눈으로 읽을 때 그 글맛이 제대로 우러난다.
시, 소설, 희곡 따위의 장르는 인간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다루는 데 비해, 수필은 정면으로 직접 접근하는 장르이므로, 수필에서는 글보다 그 글을 쓰는 인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수필에서는 수필가가 작품의 뒤에 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수필과 함께 있게 된다. 작품을 쓴 수필가를 제쳐놓고 수필 작품만 평가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수필에서는 작품과 작가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같은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시 소설 희곡 따위에서는 작가가 그 작품 뒤로 숨을 수 있으나 수필에서는 작품 뒤로 숨을 수 없다. 이것이 같은 문학작품이면서도 차이가 분명한 수필과 시와의 독자성이다. 아마도 수필과 시의 혼성이라면, 표현(작품성을 지니게 하려는 표현기법)에서 짚어질 수 있겠지만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수필세계 제3호 200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