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맞춤”은
안성유기(鍮器)가 조선시대에 최고의 상품으로서 안성 장인들의 유기를 제작하는 솜씨가 뛰어나, 모두 일품(一品)만을 만들었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솜씨가 좋아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만, 오로지 좋은 품질이나 모양새 그리고 기능이 뛰어난 제품이라 하여 "안성맞춤"이라는 말에 모든 이가 공감하고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유기는 세가지 제조기법으로 만들어 지고 있었는데, 그 기법으로 구분하여 방짜유기(方字鍮器), 반방짜유기(半方字鍮器), 주물유기(통쇠)로 나누어 부르게 되었으며, 이 중 놋쇠를 망치로 두드려 넓게 펴서 모양을 만들어 가는 '방짜유기'가 가장 제작하기 어려우며 가장 좋은 제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방짜유기로는 평북 정주의 납청유기(納淸鍮器)가 유명하고, 안성유기는 주물유기로서 반방짜유기 (전라남도 순천유기)보다도 제작기술이 뛰어난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의 다른 두 곳의 유기보다 안성유기가 조선시대에 더 유명하여 오늘날까지 "안성마춤" 또는 "안성맞춤"이라는 용어를 거의 모든 백성들이 작금에 이르기까지 자주 아래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사유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안성맞춤'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1. 요구하거나 생각한 대로 잘 된 물건 2. 조건이나 상황이 어떤 경우나 계제에 잘 어울림'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경기도 안성의 유기가 주문하여 만든 것과 같다는 뜻에서 맞추어 한 것처럼 알맞게 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나의 중학시절 당시 역사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꼭꼭 짚어서 '안성맞춤'에 대해 말씀을 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과 같이 주문자의 주문이 일정한 양식으로 된 주문사양서에 의하여 작성된 것도 아니고, 실제 주문자인 양반가의 사람들이 직접 안성에 와서 주문하는 것이 아니며, 안성장 날에 장에 나오는 하인이나 머슴들에게 심부름시키되 '이마만한 기럭지에 요마만한 깊휘로 아주 옴팍진 요렇게 생긴 모양'이라고 손 동작 등을 섞어 표현한 유기를 맞추고 오라고 지시하면, 하인이나 머슴들이 수 십리길을 걸어서 안성장에 나와 유기장에 들려서 길 떠나기 전에 주인님이 주신 말씀과 동작을 기억하여 다시 전할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문이 전달되는 과정이 일정한 형식이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거나 기껏 지푸라기나 나뭇가지 또는 손동작 등으로 크기와 모양새를 나타내어 주문자의 뜻을 전했으므로 그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크게 오차가 날 수 밖에 없었던 시절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아! 어찌하였길래 안성의 유기장인들은 오로지 심부름꾼들이 전하는 이야기만 듣고서도 노심초사 불안스러운 마음으로 주문한 물건을 기다리고 있었을 양반가(주문자)들의 속뜻을 훤히 꿰뚫어 읽어 그 들의 마음에 쏙 드는 유기를 생산해 낼 수 있었단 말인가?" 라고 반문하시면서, 최소한 안성의 유기장인들은 당시 시대의 생활상을 정확히 파악하였을 것은 물론이고, 각기 다른 소비자의 욕구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있었으며 이를 파악하기 위한 부단하고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신 기억이 압니다. 아울러 그들은 가히 천재적인 감각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파악하고 이를 제품으로 구현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통하여 고객만족이라는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한 최초의 상인이었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셨습니다.
그 피와 정신이 안성에 태어나 안성 땅에서 성장한 우리들에게도 흐르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오늘날의 우리에게서 화인((火印)과 같이 숙명으로 이어져야 할 '안성맞춤'의 전통이 피내림한 징조나 흔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없다는 것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렇게 끊어져 버린 좋은 전통에 대해 아무도 애닯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안성에 사시거나 안성이 고향이신 분들께 여쭈어 볼라치면 시원한 말씀도 주지 못하시고, 이런 이야기가 아니냐고 넌즈시 뜻을 전하면, "그랬었나...... 난 모르고 있었네...... 우리 집안에는 유기장인이 없었으니까...... 요즈음은 유기그릇도 쓰지 않고......그러니 아무래도......"라고 애둘러 대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세계화가 가져다 준 무한경쟁 시대에 반드시 배워야 하는 자신의 생존전략으로 또는 후학들에게는 마케팅의 전문분야로서 이를 전공하게 하면서 특별히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 ; when customers are pleased with the goods they have bought )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권유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자화상을 우리 스스로 발견할 수 없는지요?. 이는 마치 손안에 들고 있었던 "안성맞춤"이라는 고귀한 정신은 내다 버리고, 외국으로부터 소개된 마케팅 전략인 '고객만족정신'을 새로이 보석처럼 귀한 것을 얻은 양 다시 집어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스스로 역사속의 참다운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여 이미 쓰레기처럼 던져버린 안성맞춤의 정신보다 결코 높은 가치가 될 수 없는 고객만족이라는 서양의 마케팅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이미 깨어 버린 역사의 거울을 통해서 볼 때, 일그러져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고향의 유기장인들은 주문자인 고객께서 스스로도 전하지 못한 부분까지 챙겨서 아주 만족스러운 안성유기를 완성하여 고객의 집으로 보낼 수 있는 뛰어난 장인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를 받아 본 고객(양반)들은 그저 "거 참 안성맞춤이네" 라는 소리가 탄식처럼 새어 나올 수 밖에 없었으매, 저 산 너머 또 그 너머 안성장터 어드메 쯤 유기장(鍮器場)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익히 읽어내어 아주 만족한 유기제품을 만들어 보낸 안성 유기장인(鍮器匠人)의 정성에 반할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침이 마르도록 이를 칭찬하였던 생생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자랑스러운 공감대가 한반도를 뒤덮었고, 세월이 흘러 산천이 변했을지라도 모두 누구랄 것도 없이 "안성맞춤"이라는 단어를 오늘날까지 "맞추어 한 것처럼 알맞게 된 것"이란 뜻으로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역사적 전통은 우리의 고향, 안성의 땅에서 태어난 것이긴 하나, 오늘날 우리나라가 만드는 모든 수출제품에 안성맞춤의 고객만족 정신이 어느새 혼입(魂入)되어 전세계의 고객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완벽한 고객만족 정신!
서양의 그것보다 이미 수세기를 앞서 간 안성맞춤의 정신입니다.
결코 서양의 것에서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찾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 보아야 함을 무언의 웅변으로 가르쳐 주셨던 나의 중학시절 역사선생님께 다시금 머리를 깊이 조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