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짓기 첫걸음
김상은
제 3 강 선경후정(先景後情)을 마음에 새겨라
선경후정(先景後情)이란 경치가 먼저요, 그 다음이 정서란 뜻이다. 이를 시작(詩作)과 관련하여 말하면 경치를 먼저 묘사한 다음에 그 경치를 보고 느낀 것, 즉 정서를 풀어내라는 뜻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정서란 어떤 사물을 접하고 난 다음에야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은 이런 말을 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시작에 있어서 그 작법을 이야기 하자면 논리적 체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이 용어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선경후정’, 이 말을 누가 처음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참으로 묘한 말이다. 이제 처음으로 시조를 지어보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동양 사람은 서구인들처럼 낱낱이 귀납적으로 논증하지 않더라도 이미 그 원리를 터득하는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판단이나 결론을 이끌어 냄에 있어서 서양 사람의 글은 설명이 길고, 동양 사람의 글은 짧다. 따라서 서양 사람의 책은 두껍고, 동양 사람의 책은 얇다.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선경후정을 잘 나타낸 시조를 몇 편 찾아 살펴보기로 하자.
梅花 늙은 등걸
성글고 거친 가지
꽃도 드문드문
여기 하나
저기 둘씩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것만 남을듯.
⎯조 운의 <古梅(고매)>
위 시조는 행을 늘여 놓아서 초보자는 좀 낯설 것이다. 행을 3행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梅花 늙은 등걸 성글고 거친 가지
꽃도 드문드문 여기 하나 저기 둘씩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것만 남을듯.
3행으로 맞추어 놓으니 초장, 중장, 종장이 뚜렷이 구분되어 온다. 이 시를 다시 잘 살펴보면 초장이 ‘고매’라고 하는 자연의 한 사물적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중장도 역시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대상을 먼저 묘사’한다는 것은 곧 ‘선경’을 이름이다. 늙은 매화나무가 보여주는 경치, 즉 그 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초 ‧ 중장에서 먼저 서술하고 있다. 초장의 “성글고 거친 가지”라든가 중장의 “꽃도 드문드문”, “여기 하나 저기 둘씩” 같은 표현은 ‘고매’라는 자연적 대상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와 같이 자연의 묘사를 먼저 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시조시학에서는 ‘선경’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면 ‘후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 종장에 나타난다.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것만 남을듯”이라는 표현은 경치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보고 느낀 자기의 내적 정서를 진술한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경후정’은 시조 작법에 있어서 한 지침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알 똥 말 똥 하면 어쩌나!? 확실히 알기 위하여 몇 수(首) 더 살펴보기로 하자.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조 운의 <石榴(석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위의 시를 3행으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선경후정의 원리를 위의 시에 적용해보면 초장이 경(景)에 속하고 중장과 종장은 정(情)에 속한다. 경을 먼저 초장에서 다루었으니 이는 선경이 되고, 후에 중장과 종장에서 정을 다루었으니 이는 후정이다.
위 시는 석류라는 대상과 시적 화자인 자아와의 일치를 보여준다. 그래서 “투박한 나의 얼굴”과 “두툴한 나의 입술”은 곧 투박하고 두툴한 석류의 모습이다. 초장은 이런 석류의 모습, 즉 경을 묘사하고 있다. 중장과 종장에 와서야 비로소 화자의 답답한 심정을 빠개 젖힌 석류 알로 형상화(形象化)하여 임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화자의 내적 정서를 그대로 꺼내 보여준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너 한 잎, 나도 한 잎 사랑을 따던 날이
외로운 바람결에 아쉬움만 남겨 놓고
차라리 울 수도 없는 아득한 사랑이여.
⎯김유신의 <아카시아)
시인이 어떤 대상을 놓고 시상(詩想)이 떠오른다는 것은 이미 주어진 그 대상의 경으로부터 정이 발동한 까닭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연적으로 경을 보고 정을 느껴 시를 쓰게 된다. 그러니 선경후정으로 되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가 이 원리에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시는 경과 정, 정과 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이는 선경후정에서 한 걸음 진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의 내용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 형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선경후정이 아니라 오히려 선정후경도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경의 묘사만 있는 또는 정의 진술만 있는 경우도 있다. 시조에 있어서 ‘선경후정’이란 시작(詩作)에 있어서 하나의 기본 구조라는 뜻을 담고 있는 개방성의 이념임을 인식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