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산(高德山,603.2m)
▶개요와 자연경관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이 서북으로 63.3km를 달려서 완주 주화산에 이르러 두 갈래를 친다. 이곳에서 북으로 실징적인 금남정맥(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을 보내놓고, 남으로 398.7km를 뻗어가며 곰티, 만덕산, 슬티를 지나서 경각산으로 가기 직전의 옥녀봉 옆에서 지맥 하나를 내려놓는다. 이 산줄기는 북서쪽으로 5.5km를 줄다름 치다가 고덕산을 솟구쳐 놓고, 완주군과 전주시를 감싸않고 서쪽으로 뻗어가며 남고산과 천경대, 억경대, 만경대 등을 일구어 놓고 구이 금성산에서 여맥을 다 한다. 고덕산의 물줄기는 삼천천과 전주천을 통하여 만경강에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대성동과 완주군 구이면, 상관면에 경계해 있고, 전주의 남쪽방향에 우뚝 솟아있다. 전주시내와 구이면 광곡과 평촌, 신리방향 등 어느 곳에서도 조망된 산이다. 육산인 듯하면서도 사면이 깍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정상은 평평한 분지로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다. 조망은 사방이 툭트여 아주 좋다. 북서쪽으로 전주와 익산시가지, 기린봉과 치명자산이 다가오고, 북쪽으로 연석산과 주줄산의 연봉, 숫마이봉, 부귀산이 보인다. 동쪽으로 만덕산과 그 너머로 덕유산과 지리산 연봉들이 연이어 있어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남으로는 구이 저수지와 경각산, 서쪽으로 모악산이 조망된다. 문화유적의 보고인 남고산성과 남고사, 삼경사, 관성묘 등을 구경하면서 가족산행코스를 즐길 수 있다. 정상에서 남쪽의 산줄기는 호남정맥으로 이어지고, 서쪽 뻗어가는 산줄기는 중간지점에서 왼쪽으로는 평화동 방면으로, 오른쪽은 남고산으로 이어지며, 수많은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다.
고덕산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고대산(孤大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달(高達)'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이어서 '높다라기'로 불리었다. '하늘높이 달아매기'란 뜻이겠으니 여기에 산(山)자를 말미에 붙여서 '높닭산'으로 줄임말이 되었다. 이 '높닭산'이 다시 '높달산'과 '높달산'은 '고달산'이 되었고, '높닥산'은 고덕산(高德山)으로 차음된 것이다. 고덕산은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 고덕마을에 금남호남정맥의 지맥의 산줄기에 암봉으로 이루어진 고덕산(高德山)과 이름이 똑같다. 따라서 혼선을 피하기 위해서 필자가 호남정맥 지맥에 있는 산은 전주 고덕산, 금남호남정맥 지맥에 있는 산은 임실 고덕산으로 명명하였음을 밝혀둔다.
▶문화유적 및 명승지 [전주 10경] ①기린토월(麒麟吐月/기린봉 정상에서 비갠후에 여의주처럼 솟아오르는 달) ②寒壁晴煙(한벽청연/한벽당에서 바라본 청아한 풍경) ③南固暮鐘(남고모종/해질무렵 남고사의 저녁 종소리) ④다가사후(多街射帿/다가천변 활터에서 활쏘는 모습) ⑤비비낙안(飛飛落雁/한내천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떼를 비비정에서 바라 본 모습) ⑥德津採蓮(덕진채련/풍월정에서 내다보는 덕진연못의 연꽃풍경) ⑦威鳳瀑布(위봉폭포/위봉폭포의 비경) ⑧동포귀범(東浦歸帆/완주 용진의 하천을 따라 오가는 배의 행렬이 만든 풍경) ⑨坤止望月(곤지망월/목마른 말을 남천과 사천에서 물을 먹이고 바라보는 달맞이) ⑩南川漂母(남천표모/한벽당과 남천교 부근에 빨래하는 아낙네의 모습)이다.
[비래방장]옛날 보덕대사(普德大師)가 고구려 반룡산(盤龍山)에서 고달산 중턱에 내려놓은 집이다. 보덕은 일찍이 고구려 반룡산 연복사(延福寺)에 주석하면서 고구려가 도교(道敎) 숭상하고, 불교를 업신여겨 오래지 않아 망할 것을 걱정하며 안전한 거쳐를 찾던중 제자 명덕(明德)의 의견에 따라, 667년(고구려 보장왕 26년) 3월3일에 전주 고달산에 옮겨졌다. 반룡산에서 천리(당시의 거리 계산)였다. 또한 제자 명덕을 따라오게 하여 비래암 동쪽 골짜기에 가서 주방자를 땅에 꽂으니 삼대(麻幹)같은 물이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현재 비래암 유지에는 암자로 섰던 고가 한채가 남아 있어 비래방장의 옛터였음을 추정케 한다. 옛날 번성했던 시절을 연상케하는 정교한 석성과 수문이 남아 있으며, 절터로 추정되는 밭에서는 기와와 고려자기 등 파편이 출토되고 있다. 현재 이지역을 璞成洞(박성동)이라 부르고 있다. '璞'자는 숨어있는 왕이란 글자가 아담한 성이 숨어있는 뜻이라 한다.
완주군지에 경복사(景福寺)는 고달산에 있고, 고구려 보덕화상(普德和尙)이 백제말에 열반종의 근본도량으로서 절안의 비래방장(飛來方丈, 堂)에 보덕화상의 화상(畵像)이 봉안돼있고,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이곳에 와서 보덕화상의 행장과 비래방장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였고, 지금의 구이면 평촌리에 그 유지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보광사(寶光寺)는 고덕산에 있으며, 백제시대로부터 대가람으로서 신라시대에는 10대찰중의 하나였고, 1337-1347년에 전주출신으로 당시 원(元)의 자정사(資政使)이던 고룡봉(高龍鳳)의 후원으로 굉장하게 중창되었던 사실이 고려말 이곡(李穀)의 기문(記文)에 적혀 있다고 적혀 있다.
[남고사,南固寺] 668년(신라 문무왕 8년) 무진년에 개산조(開山祖)인 명덕화상(明德和尙)이 창건했다. 명덕화상은 열반종조 보덕대사(涅槃宗祖 報德大師)의 상제라서 보덕대사를 따라 고달산에 와서 경복사를 창건하여 열반종의 근본도장을 정하고 나서 남고사를 개창하여 산내 말사(山內 末寺)로 자격을 유지토록 했다.
남고사는 당초에 남고연국사(南高燕國寺)라 했다. 燕國(연국)은 안국(安國)이란 말로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이어서 산성사찰로 이용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뒷날에 '연국' 두 글자는 자연적으로 없어지고 남고사로서 조선조 동국여지승람을 편집할 때 까지 불리웠으니. 고달산(高達山)의 '고(高)'자를 버릴 수 없었던 미련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후 남고사(南固寺)로 글자 한자가 바뀌게 된 사정은 미상하나 전주 주변에 세워진 진북사(鎭北寺), 동고사(東固寺), 서고사(西固寺) 등 전주부중의 터를 진압하고 굳힌(固)다는 뜻과 남고진(南固鎭)이란 명칭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남고산성]효종때 신설한 중영진(中營鎭), 숙종때 신설한 위봉산성과 더불어 전주 삼진의 하나로 손꼽혔다. 1811년(순조11년) 견훤 고성지(古城址)에 따라 성을 증축하고, 남고진을 창설한 다음 임진왜란 당시 전주부의 남쪽 40리 지점인 용암리에 있었던 요새지 자리에 만마관(萬馬關)을 구축했다. 남고산성 서문지(현 남고사 입구)에는 이삼만(李三萬) 글씨인 남고진사적비가 서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전주 수성장 이정경(李廷경)의 사적등을 담아 놓고 있다. 또 하나의 유적지로는 고려 왕건에게 강화(935년)하고, 견훤의 아들 신검(神劍)은 왕건에게 패망했으니(936년), 견훤이 세운 후백제(892-936년)는 45년의 단명으로 끝났으나, 전주는 한때 후백제의 왕도였다. 견훤의 왕궁터는 동고산성으로 전하고 있는데, 후백제 패망후 그 유적은 고려에 의해 여지없이 파괴되어 형태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한 유일한 유적인 견훤성이다.
▶산행안내 [제1코스] 임업시험장 앞-삼경사- 관성묘-우측능선-393봉-정상-삼거리-남능-임도-평촌(8.5km/3시간30분) [제2코스] 평화동-5봉-학산-북능-정상-동능-좌측안부-어두저수지-한일신학교-신리(12km/4시간30분) [제3코스]좁은목-풍남정-대승사-암릉-남고산성터-삼거리-393봉-정상-1.2암봉-안부(문씨묘)북능-대성자동차학원-영동고덕아파트앞 국도(13km/5시간) [제4코스]임업시험장-불정사-남고사-남고산산성터-삼거리-393봉-정상-삼거리-보광재-학산-북능-골프연습장-우정목련아파트앞[12km/4시간40분]
[제1코스]전주교육대학 아래의 도로변에 있는 전북임업연구소 앞 서학파출옆의 안내판을 따라 10분쯤 가면 충경사가 나오고, 곧 바로 남고사와 불정사 입구가 나온다. 남고사 입구에서 좌측은 불정사로 가고, 우측은 남고사로 오르는 길인데 불정사를 거쳐서 남고사 일주문 앞까지는 10여분이 소요된다. 남고사 입구에서 불정사와 남고사, 남고산성터를 따라 50여분을 오르면 삼경사와 관성묘를 거쳐서 오르는 삼거리와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동쪽으로 40분쯤 소요된다.
우측으로 10여분을 시멘트길을 걸어 오르면 삼경사에 이른다. 약수에 목을 축이고, 골짜기를 따라 8백여m를 올라가면 관성묘가 나오고, 왼쪽 구불진 산길을 한참 오르면 남고사에서 오는 길과 만난다. 또 중간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남고사가 나온다. 성문에서 오르막길을 50여m 오르면 7천평쯤 되는 분지가 나오고 윗편에 신라 문무왕 6년(664년)에 명덕화상이 창건한 남고사(南固寺)가 자리잡고 있다. 남고사에서 시계가 툭 터진 전주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보면 후백제의 천년고도 예향(禮鄕)고장을 엿 볼 수 있다. 남고사에서 노을진 석양에 들려오는 저녁종을 들으면 마음속 있에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게 된다.
정상까지는 어느 코스로 오르거나 2시간에서 3시간이면 충분하다. 정상에서의 하산길은 여러 코스가 있다. 남쪽은 구이 광곡과 평촌이고, 동쪽은 가장 먼길인 관촌 슬티재코스다. 동쪽으로는 신리의 한일신학대학코스이고, 북쪽 능선을 타고 암능을 타고 내려가면 왼쪽 대성동 영동고덕아파트 앞 국도로 빠지는 길과 신리 쌍다리 앞으로 가는 코스도 있다. 또 하나는 되돌아 오거나 서능을 타고 보광재를 거쳐 삼경사, 남고사로 빠지거나, 학산까지 와서 서쪽의 학소암, 북쪽의 평화동아파트지구, 완산여상앞, 골프연습장옆 우정목련아파트앞으로 빠지는 다양한 코스가 있다.
고덕산 산행시간은 짧은 코스가 왕복 3-4시간, 긴 코스는 5-6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정상에서 남쪽능선을 타고 호남정맥의 산줄기를 따라서 북쪽의 슬티재나, 남쪽의 경각산과 불재로 빠지면 하루종일 산행이 된다
[제2코스] 전주 평화동우미아파트 건너편 제일방앗간 옆 도로따라 신성리 맛나골의 학소암 입구까지 12분이 소요된다. 북쪽의 시멘트길을 10분쯤이면 학소암이고, 동쪽으로 7분쯤 오르면, 삼거리이다. 왼쪽은 흑석골, 또는 코오롱아파트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동남쪽으로 8분쯤 오르면 학산이다. 송림을 13분쯤 가노라면 보광재인데 보광사라는 큰사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으로 5분쯤 된비알을 치고 나면 그만그만한 봉우리를 지나서 묘가 있는 삼거리길이다. 왼쪽은 남고산성이나 임업시험장으로 빠진다. 오른쪽으로 8분쯤 가면 다시 삼거리이고, 15분이면 헬기장이다. 정상이 보이고 3분쯤이면, 삼거리이고 왼쪽은 고덕산장으로 빠지는 길이다. 잠시후면 오른쪽에 평촌으로 빠지는 길을 지나고, 다시 5분쯤 오르면 흉물스런 철탑이고, 잠시 평탄한 길을 지나 정상을 향해 바위길을 오르면 헬기장과 삼각점이 잇는 정상이다. 정상에서 조망을 즐긴 후, 하산은 북쪽으로 2분쯤 내려가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20여분을 양측이 깍아지른 절벽위 능선을 내려가면 초라한 묘를 지나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호남정맥 옥녀봉 방향길이다.
왼쪽의 급경사길을 지나면 감나무, 낙엽송군락, 잡목과 덩굴이 어우러진 너덜컹지대이고, 10분이면 메말라 버린 계류를 건너면 천주교묘지이다. 내어두 마을로 들어서서 마을앞으로 내려가면 신리-구이간 도로개설로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잠시후, 저수지가 나오고 다시 시멘트길을 따라가면 외어두 유스호스텔 시내버스승강장에 이른다.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약1시간이 소요된다.
[남고산성,사적 제294호]후백제 견훤이 처음으로 쌓았다는 설과 그 이전부터 쌓았다는 설도 있는 이 성은 220m의 높이의 남고산 정상을 중심으로 둘러 쌓았고 길이가 2.95km이다. 고덕산 줄기인 남고산에 쌓은 이 산성은 조선조 순조때 수축하여 남고진(南固鎭)을 이 곳에 두었으며, 효종때 설치한 중진영(中鎭營)과 숙종때 쌓은 위봉산성과 이고장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또 남고사 앞쪽에 남장대(南將臺) 뒷편에 북장대를 두고 남장대 아래에 계곡에 군기고, 화약고 등이 있었다.
[관성묘/지방문화재 자료 제15호] 교육대에서 남고사로 가는 길 왼쪽으로 300m 지점의 고덕산 초입에 있다. 이 관성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과 제갈공명의 영정을 봉안하고 춘추로 제사를 지낸다. 조선말기의 화가 소정산이 그린 [三國演儀圖/삼국연의도]의 10폭이 보존되어 있고, 본전 네 기둥에 중국의 한나라 영웅 관우를 이 나라에 봉안한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주교 성지 치명자산] 전주시 동남쪽 한벽당 뒷산인 승암산 가파른 산등에 천주교 성지인 치명자산이 있다. 세계의 유일한 동정부부인 유중철(요한), 이순이(루갈다)와 그 가족들이 묻혀 있는 천주교 성지로서 전국각지의 천주교인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천주교 성지에서 북쪽 산길을 따라 10분쯤 가면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고 45년동안 궁궐로 사용했던 궁터가 있고, 20분쯤 북쪽으로 더 가면 기린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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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일지가 정말 중요하군요~ 벌써 기억의 저편에서 가물가물하던 것이 다시 또렷해지네요~ 토방마루의 살살녹는 홍어채의 기억이 아침을 굶은 막내의 식욕을 자극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