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도를 향해서.
요즘은 중 · 고등학생들도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간다고들 하지만 나의 수학여행은 고급스러워봤자 강원도 수련회였다.
나를 포함한 다른 팀원들 또한 시대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라, 제주도에 가본 사람은 진화 한 명.
단지 제주도에 가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팀원들의 욕을 먹어가며 배안에서도 구석에 처박혀야 했던 진화를 제외하고서,
기대만으로 제주도에 날아갈 것 같은 Mahayana의 제주도 공모전 여행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제주도 푸른 밤하늘 아래로~’ 팀원들의 들뜬 노랫소리가 배가 만들어내는 물결에 맞춰서 부드럽게 흔들렸다.
배를 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제주도에 도착한 것처럼, 기대 100%를 향해 치닫는 사진담당 제갈현열선배는 5개나 바리바리
싸온 카메라도 팀원들, 배, 하늘, 바다를 열심히 찍기 시작했다.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코끝에 와 닿는 짭쪼롬한 바닷내음을 맡고 있으면
선배가 흥분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제주도에 도착했다.
2. 하늘의 색을 느끼다.
제주도 UCC공모전이니만큼 무턱대고 제주도에 왔단 이유로 놀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새 세상처럼 보이는 제주도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섬은 그 존재이유만으로도 사람을 두근거리게 하는 법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하는
운전 겸 촬영담당 김영현 선배를 무시하고서라도, 하늘은 아름다웠다.
비가 올 마냥으로 어둑해진 하늘은 마냥 맑은 빛을 띠고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우울한 빛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푸른빛 같기도 하고, 짙은 보랏빛 같기도 하고 파스텔톤의 색이 섞인 것 같기도 하고 원색을 띠는 것 같기도 한
제주도의 하늘은 말 그대로 한글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본래 하늘을 묘사하는 것은 인간의 언어세계를 벗어난 거라고들 말하지만,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말하기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
대구와는 다른 느낌을 가진 하늘인 것도 사실.
한라산에서 찍은 하늘은 눈과 같은 색을 띄고 있었다.
사람들이 밟아서 조금 더러워진 탓에 잿빛깔을 띠고 있는 눈처럼 하늘도 짙은 회색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눈을 잡아끄는 하늘이 못내 부러워서인지 메마른 나뭇가지는 카메라의 렌즈 안에 제 뻣뻣한 몸뚱이를 디밀었다.
나뭇가지가 깨뜨려버린 하늘의 파편에 조화를 느꼈다.
일몰을 찍기 위해 올라간 사봉낙조.
어둡고 무거워 보이는 구름 아래로 드리워진 바다는 그 경계가 뚜렷하지만 부드러운 색을 띠고 있어서 팀원들의 감탄사를 불러일으켰다.
먼 곳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바다의 물결은 하늘의 구름을 닮아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제주도의 하늘이었다.
제주도의 하늘은 바다와 닮아있었다.
오랜시간동안 서로를 마주하며 서로를 물들여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바닷빛과 닮은 하늘은,
여전히 말하지 못할 만큼 예뻤고, 그 이상으로 말하지 못해서 나의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다.
2. 땅의 기운에 감탄하다.
산방굴사는 멀리서도 놀라웠다.
꼭 합성한것처럼 파아란(다기보다는 이 말밖에는 하늘을 표현할 길이 없는 나의 모자란 언어에 아쉬움을 표한다)하늘 아래로
자리한 산, 저 산의 어딘가 부처님의 상이 새겨져 있을 것이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분명 아름다울거라는 걸.
굴 안에서 새겨진 큰 부처님상도 예뻤거니와 굴 어딘가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도 맑았다.
법경을 외우고 계시는 듯한 스님은 귀찮으실텐데도 웃으면서 우리에게 이것저것 말씀해주셨고
사진보정담당인 이진화양과 함께 사진도 찍어주셨다.
더불어 샘물이 맛있다며 꼭 먹고가라고 말씀해주셨다. 굴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밑에 고여있는 물과 마찰하여 맑은 소리를 냈다. 실제로 먹어본 물은 돌의 딱딱하고 강건한 느낌이 들면서도 시원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뭐니해도 굴 밖으로 바라본 우리의 세계였다.
자기 몸에 부처를 새겨놓은 인자한 산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그런 산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세계 역시 환상같았다.
어두운 굴 밖으로 펼쳐진 현실(역시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나의 부족함을 느낀다.)이 아름다운 것은
이 곳이 제주도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멀리 보이는 바다는 노래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억새밭을 발견했다.
갈대밭이 참 예쁘다는 팀원들에게 갈대가 아니라 억새라고 조언해줘도 이미 여기는 갈대밭으로 굳혀진 것 같다.
예전 교과서에서 본 가을날의 추수밭처럼 연한 황토색의 식물들이 길게 자라서 흔들리는 모습은 상상외로 제법, 볼만했다.
산방굴사에서 본것처럼 가슴이 쓰릴 정도로 웅장한 아름다움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아름다움은 있었다.
3. 사람의 인심을 사랑하다.
시장가는 길, 네비게이션이 있지만 운전담당이 어제 잠을 잘못 잤는지 어영부영한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을 때 우리 뒤로 4대의 차가 멈췄다.
모두 당황하고 있을 찰나 내가 깨달은 사실 한 가지. 아무도 크렉션을 울리지 않는다는 것.대구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4대의 차가 줄줄이 멈춰서서 우리가 가기를 기다리고 있는대도 빵빵거리지 않는다는 것은 차라리 컬쳐쇼크에 가까웠다.
급기야 내려서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주시기까지 한 이름 모를 사장님께 인사를 건네고서는
제주도민의 인심을 결코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사람의 냄새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은 바로 시장 아니겠는가. 동문 재래시장과 동문재래수산시장, 이렇게 2개가 있는 듯했다.
내가 길치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꽤 헤매면서 돌아다닌 것같다.
사진담당들은 시장사진을 찍는데 여념 없었고, 나는 기록을 남기는데 바빴다.
이렇게 돌아다니다 발견한 것이 바로,
밀빵. 밀빵이라니. 호빵도 아니고. 처음듣는 단어에 꽤 신기해하고 있을 때 대구에서 왔다는 소리를 듣고
밀빵가게 사장님이 이 밀빵을 무려 두 개나 공짜로 주셨다. 쑥, 보리, 밀가루 이렇게 있었는데 셋 다 따뜻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사람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더불어서 우리를 놀라게 했던 두 번째 음식, 광어회. 5천원이라니. 사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광어회라고 한다면 학교 앞 싼 횟집에서 2만원어치는 먹어야 저 정도 양이 나오지 않는가.
광어회를 파는 아주머니께서는 떨이라며 사람 좋게 웃어주셨고, 우리는 당연히 망설임도 없이 집어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광어회 5천원짜리 2개를 8천원에 주셨다는 것.
대구에 와서 말하면 분명히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일이었지만
숙소에 가서 먹을 광어회 역시 분명히 부드러운 맛을 우리에게 줄 터였다.
거리에서는 연등과 풍선의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이름의 축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제법 많이 모여 있었고,
연등 밑으로는 소원을 간단하게 적은 종이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커피와 차를 공짜로 나눠주고 있었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우리를 보고
추우니까 잠시 들어왔다가라며 자리를 비켜주시기도 했다.
저녁은 먹고하냐며 군고구마를 건네어주시는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와 같은 미소를 띠고 있어서 행복하게 아팠다.
제주도 ucc공모전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말에 그저 기뻐했던 우리, 마나마나.
배를 타고 오면서 게임만 열심히 하는 바람에 제주도에 막 도착했을 때에는 힘들었지만 기념으로 사진은 빼놓지 않았다.
제주도 바다와 새파란 밤하늘 밑에서 우리는 기대했다. 그리고 이때 모두 다짐했을거다, 꼭 무언가를 남기고 가겠다고.
모두와 함께한 크리스마스 파티. 트리는 무려 가져와서 직접 꾸민거다. 간단한 케이크로 브쉬 드 노엘을 대신하고,
모두 모여서 사진 한 장. 어떤 크리스마스파티보다 조촐하다면 조촐할 수도 있겠지만 창 밖으로는
제주도의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소소하게 보낸 이 추억만큼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첫째날 숙소에서 흑돼지를 대접해주셨다. 이렇게 숯불에 직접 구워먹었던 돼지는 쫄깃하고 굉장히 맛있었다.
반찬과 밥까지 모두 주셔서 배부른 한때를 보냈다. 굉장히 추웠고 빗방울이 희미케 제 존재를 알리고 있었던 밤.
숯불은 앞으로 제주도를 기억하라며 타닥이며 우리를 위로했다.
하늘은 놀라울만큼 제 색을 가지고 있었고, 땅에서는 흙내음이 촉촉하게 묻어났다.
사람들은 급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이들이 많았고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추억으로 남았다.
숙소에서 본 제주도의 바다는 묘한 빛을 띄고 있었고 저 멀리 수평선으로 갈수록 점점 더 짙은 빛을 띄어 밤에는
그 경계를 쉽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까맣고 먹먹했다.
하늘과 바다와 땅은 닮아있었고, 사람들조차 바다향기가 났던 소중한 추억의 섬이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