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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꽃 무궁화는 공공장소나 관공서에서만 접할 수 있는 꽃은 아니다.
무궁화가 겨레얼의 표상물로 떠오른 것이 우리 민족의 존립마저 위기에 처한 위급한 상황이었고, 우리말과 글도 쓰지 못하고 태극기마저도 함부로 지닐 수 없었던 시대에 독립지사들에 의해 지켜져 왔기에 자칫 관념 속의 국화로만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무궁화는 국민의 민의에 의해 국화로 정해졌고 무궁화가 지나온 자취가 그러하기에 더욱 국민 대중과 친근해질 수 있는 꽃이라 생각된다. 화폐와 우표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대하는 물건이다.
어느 누구도 동전 한두 개는 지니고 다닐 것이고, 언제든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우표이다. |
그런 것에 비해 화폐나 우표만큼 시대적 예술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도 흔치 않다.
이러한 화폐와 우표에 주도안으로 혹은 부도안으로 무궁화가 들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 심코 지나쳤던 역사의 현장에도 무궁화가 조각되어 있다.
나라꽃 무궁화는 단지 관념 속에서 국화로 인식되기보다는 우리 주위에서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꽃으로 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활 주변과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곳에서 다시 한번 무궁화를 찾아보는 것도 나라꽃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화폐(貨幣)는 상품교환을 매개(媒介)하며 지급수단으로서 사회에 유통되는 것으로 상품가치의 척도 또는 부의 축적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있다.
화폐제도의 출현은 인류 역사의 발달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나타난 것이며 새로운 화폐의 발행이나 화폐제도의 개혁(改革)은 시대의 흐름과 발전을 반영한다.
화폐는 대개 그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나 문양(紋樣)이 도안화된다.
화폐 도안의 가치에 대하여 월간《무궁화》(l989.8.)의〈화폐 속의 무궁화〉에서는 “둘째로 보는 이의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화폐는 기능적인 측면을 떠나 매우 아름답다.
화폐는 당대의 일류 예술가가 도안한 나름대로의 축소된 예술이다.
셋째로 화폐에 나타난 글자와 그림, 나아가 화폐 자체의 모양과 재질이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나라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에는 자급 자족하는 농업을 기본 경제로 하였기 때문에 곡물과 베를 중심으로 교역이 이루어지다가,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화폐의 필요성이 생겨나 고려 성종 15년(996) 우리 나라 최초의 화폐인 건원중보(乾元重寶)라는 철전(鐵錢)이 주조(鑄造)되었으며 공양왕 3년(1391)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지폐인 저화(楮貨)가 발행되었다.
우리 나라 근대 화폐는 대동은전(大東銀錢)의 발행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대동은전은 주조화(鑄造貨)이므로 만든 방법은 근대 이전의 화폐에 속하지만 모양은 둥근형에 네모 구멍이 뚫려 있는 엽전형을 벗어나 근대 화폐를 닮고 있기 때문이다.
화폐에 도안된 무궁화를 고찰(考察)함에 있어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화폐인 대동은전이 주화이므로 편의상 주화, 지폐, 기념화의 순으로 살펴보았다.
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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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십환주화 |
▲한국은행 일원주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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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근대 주화의 시작은 최초의 근대 화폐인 대동은전으로 부터 비롯되고 주화에 그림이 도안 된 것은 1885년 을유 시주화(乙酉 試鑄貨), 일냥화(一兩貨)에서 이화(梨花)와 도라지, 오얏[李花〕휘장이었다. 1892년(고종 29) 인천전환국에서 제조한 오냥 은화에서 무궁화(가지:枝)도안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은화는 당시 세계 각국의 무역 결재용으로 사용하던 크라운(CROWN)화의 규격을 채택하여 제조한 대표적인 대형 은화이다. 도안 중앙 상부에 이전의 일환 은화(一 銀貨)나 10문(十文)·5문(五文) 동화에 나타난 태극장(章) 자리에 왕실의 휘장인 이화장이 들어갔고 우측은 원래대로 오얏나무 가지(枝)이나 좌측에는 무궁화의 가지가 들어 있다.
이 주화에 나타난 무궁화는 활짝 핀 꽃은 아니지만 무궁화의 도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오냥 은화와 같은 무궁화 도안의 주화는 1895 년 5푼(五分) 동화, 1905년·1906년 반환(半 ) 은화, 오전 동화, 반전 동화로 계속해서 제조되었다.
1959년 제조된 십환 동화에는 주화에 최초로 무궁화의 꽃이 도안되었다.
1966년과 1983년에 제조된 일원주화에는 활짝 핀 무궁화 한 송이가 그려져 있다.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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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가 도안된 지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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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에 무궁화가 도안된 것은 주화인 오냥 은화가 1892년에 제조된 것에 비해 반세기나 뒤떨어진다. 조선시대는 왕가의 휘장이 이화(李花)였고, 화폐는 타(他)인쇄물에 비하여 정밀한 인쇄를 필요로 하므로 당초문양(唐草紋樣)을 즐겨 쓰던 당시에는 태극과 이화가 주도안을 이루었고 무궁화는 도안으로 사용되지 못하였다. 무궁화가 도안된 최초의 지폐는 1932년 일본 내각 인쇄국에서 발행한 10원권(拾圓券)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에 어떻게 도안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拾圓(십원)’문자를 기준으로 중앙에 무궁화가 도안되어 있다. 해방된 이후 발행된 지폐에는 무궁화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특이한 것은 6·25 동란시 북측에서 불법으로 발행한 천원권 지폐의 상단·하단·우측 세 곳에 무궁화가 한 송이씩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1962년 이후 발행된 지폐에는 대부분 무궁화 도안이 들어 있다.1962년 영국에서 인쇄하여 발행한 5종의 화폐에는 태극문양과 무궁화를 의장화한 마크가 그려져 있으며 1973년 발행한 만원권과 1975년 발행한 천원권 지폐에는 실물에 가깝게 그려진 무궁화가 들어 있다. 기념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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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가 도안된 기념주화들▲ |
기념주화는 국가적·국민적 차원에서 중요한 일을 기념함과 동시에 내외에 알리기 위하여 발행되는 화폐이다. 이러한 기념화에 무궁화가 도안되어 제조되었다는 것은 무궁화가 진정한 의미의 대한민국 국화임을 증명하는 한 예일 것이다. 1970년 대한민국 오천년 영광사 기념화가 발행된 이래 1988년 올림픽 기념화까지 각종 기념화에 무궁화 도안이 들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