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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塵에 뭇친 분네 이 내 生涯 어떠한가?
길
보리피리 불며 파랑새 날 듯한 南道의 짙푸른 보리밭 사잇길.
개망초꽃이 눈 덮인 듯 피어있는 산의 야트막한 언덕길.
강진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호젓한 오솔길.
내소사와 월정사로 들어가는 울창한 전나무의 숲길.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핀 강원도 내륙의 메밀꽃밭 속의 사잇길.
.....
길의 종류가 아니라 걷고싶은 길의 일부분이다. 허나 걷고 싶으나 힘들고 괴로운 길도 있다. 백두대간길! 사람들은 모두 그 길을 가려 애쓴다. 흔히 왜 산에 가느냐고 한다. 산이 거기에 있어서..... 산은 왜 거기에 있느냐? 오르라고 거기에 있다. 왜 오르냐고? 누구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라 한다. 산이 정복되어질 존재인가? 이런 사람은 여자와 하룻밤 자고 나서도 똑같은 소리를 할 사람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하늘에 가까이 가기 위해 조금 더 높은 산에 오르려 한다고..... 하늘! 인간세상의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至上의 세계. 그 세계에 오르고 싶은 것이라고....
그 백두대간의 한 코스. 미시령에서 한계령까지의 1박 2일 산행을 하려 한다.
6.30일 오후 반가를 내고 저녁 6시에 집합장소에 가니 끝내리 마샘 혼자 앉아있다. 급히 맥주 몇 캔을 사다 시원하게 들이키자니 일행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팔당에서 시끄리 동지를 태우고 양평을 거쳐 홍천을 지나 인제 전에서 저녁 겸 막걸리 한 잔 후 다시 내쳐 달려 내설악의 용대리,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리는 지역에 오니 10시경.
급히 민박 장소를 잡고 간단한 소주 파티를 열어 회장이 가져온 인삼주를 다 마셔 가는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새벽에 미시령에서 산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걱정들이 앞선다. 코스가 힘들고 바위지대가 많아 계속 비가 올 때에는 어떡할 것인가를 놓고 말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우선 새벽 상황을 봐서 미시령에 가서 결정하기로 하나 나는 ‘비가 와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우겨야지’ 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내일 7.1일은 우리 지부 MT인데 산행 때문에 한 소리 들어가면서 못 간다며 빠져 나온 길인데, 안 올라가면 무슨 낯으로 지부원들을 보나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모기 한 마리에 잠을 설치다 깨보니 새벽 3시경. 아직도 밖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이리뒤척 저리뒤척이다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4시 반경인데 비가 그쳐있다. 일단은 다행이다 싶어 준비를 하고 나서니 산자락에 걸려있던 구름이 걷히며 푸른 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차를 몰아 미시령에 오르니 멀리 동해바다가 보이며 햇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5시 반. 휴게소에는 차 한 대 없고 적막강산이다. 산행들머리에 입산통제소가 있는데 지킴이는 없고 철조망만..... 통제구간을 몇 번 다녀봤지만 너무 형식이란 느낌이 든다. 하기사 그러니까 우리도 산행을 하고 있지만.... 조금 오르니 眺望處가 나오는데 벌써 바지와 신발이 젖어든다. 밤새 내린 비에 나무와 풀에 있던 빗물 때문이다. 미시령 건너편 신선봉의 옆으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데 내설악쪽으로는 구름이 산 중턱에 걸려있는 모습이 너무 경이롭다.
급히 사진을 찍고 오르려는데 먹구름이 순식간에 몰려오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그럼 그렇지. 설악이 쉽게 우리를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 급히 우비 걸치고 난리 치다 숲길을 조금 오르니 먹구름도 지나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싶어 능선상에 오르니 동해바다와 함께 두 개의 호수 사이로 속초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시끄리 동지가 위는 영랑호요 아래는 청초호란다. 숲길을 한참 지나 오른쪽으로 크게 한 번 휘어지더니 앞에 거대한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천보산 날다람쥐라 자칭하는 떠드리 동지와 다른 사람들은 신난다며 바위를 건너뛰며 오르는데 삐리리 회장과 구리지부의 씽크대 박 동지는 유난히 힘들어 하며 오르고 있다. 중턱에 오니 멀리 울산바위가 우람한 자취를 드러내놓는데 가히 장관이다.
너덜지대의 바위 마다에는 귀한 석이버섯이 자라고 있고 너덜사이로 올라온 잣나무가 바람에 못 이겨 옆으로 가지를 뻗어있는데 잣이 탐스럽게 달려있다. 잣을 발아래 구부려 따보기는 또 첨이다.
누운잣나무라. 중청에서 대청을 오르다보면 눈잣나무라고 있는데 이것은 단지 잣나무가 옆으로 누웠을 뿐이지 종류도 틀리고 우선 달리는 열매인 잣부터가 확연히 다르다. 너덜지대를 2개나 걸쳐 오르니 황철봉이어야 하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어 지나치다 보니, 저항령 내려가는 삼거리에 도착해 보니 벌써 황철봉은 지나쳐왔다. 아무리 통제구간이라 하지만 국립공원인데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웠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아니면 우리가 못 보고 지나쳤나.
바위 밑에 바람이 누그러지는 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때우는데 찬 밥이라도 맛만 좋다. 허기가 들어 그런가 보다. 내설악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한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보니 까마득히 내리막길에다 반대편은 급경사 오르막 길인데 중간에 시커먼 너덜지대가 있다. 한참을 내려가 저항령을 거쳐 다시 너덜지대 급경사를 오르니 전망이 좋은 1249.5봉이다. 바람이 점점 더 세차게 불기 시작하는데 얼려온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니 바람에 무게중심이 안 잡힌다. 발 밑으로 거대한 雲霧가 힘겹게 올라 저항령을 타고 외설악 쪽으로 빠져나간다. 저래서 ‘구름도 울고 넘는 저 산 아래.....’란 노래도 있구나 싶어 읊조려 보다가 神仙이라도 된 기분에 ‘紅塵에 뭇친 분네 이 내 生涯 어떠한가?’ 하니 옆에 선 끝내리 마똥이 특유의 실웃음을 지우며 쳐다본다.
지금부터는 험한 봉우리들이라 트레바스하여 빠져 나와 지루한 숲길을 몇 봉우리를 오르내려 마지막 너덜지대를 오르니 구름에 덮인 공룡능선이 우리들 앞에 펼쳐진다. 좌측의 험한 세존봉이 우리를 오라 하는데 험해서 갈 수는 없고 조망이 좋아 한참을 구경하다 오른쪽으로 틀어 마등령으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니 눈에 익은 표지판이 보이는데, 2003년 가을 설악동에서 마등령까지 올라가 공룡능선을 가려다 비 내리는 음습한 날씨에 일부만 가고 나머지는 뒤돌아 내려갔던 쓰라린 추억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마등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터라 공터에 오니 공단 직원과 공익 한사람이 재활용품 쓰레기를 정리하다 인사를 하는 우리에게 고압적으로 ‘어디서 오냐’ ‘황철봉에서 오냐’ 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우리 일행을 쳐다본다. 기분이 영 안 좋아 급히 일행을 눈짓으로 재촉해 다시 공룡능선으로 접어든다. 이 상황은 나중에 희운각에 가서 다시 자세하게 언급하려 한다.
혹시나 하여 배고픔도 잊고 한참을 달려 나한봉을 휘돌아 넉넉한 장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짐을 내려논다. 누룽지에, 라면에 점심을 먹고 나니 피로가 몰려오며 가고싶은 맘이 사라지는데 떠드리는 자꾸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둥 하며 괜히 겁만 주고 있다.
지금부터는 침봉들의 연속으로 로프와 바위들을 부둥켜안고 협곡을 오르내리다 보니 식수가 나오는데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수량이 풍부해 모두 간단히 세수도 하고 물통에 물도 충분히 보충하고, 다시 급경사의 깍아지른 바윗길을 두 개 오르내리니 1275봉이다.
막영터에다 배낭을 내려놓고 1275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암봉에다 바람은 불고, 우측으로 간신히 바위 홈을 잡고 오르내릴 수 있는 코스가 있어 오르는데 코 앞에 솜다리가 반겨준다. 흔히 에델바이스라고 하는데 솜털 모양에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힘겹게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막힘이 없어 불어오는 바람에 중심 잡기가 힘들 정도다. 우측으로는 멀리 울산바위가 선명하게 보이고 가깝게는 금강굴로 오르는 빨간 철계단이 보이며, 그 건너에는 권금성부터 화채봉을 거쳐 대청봉까지의 화채능선이 위엄있게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좌로는 용아장성과 그 끝에 소청 산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귀때기청을 비롯한 서북릉이 하늘금을 이루고 있고, 앞으로는 우리가 거쳐왔던 공룡능선의 연봉들이 뾰족탑처럼 줄지어 서있다. 바로 옆에는 화려한 천화대의 암봉들이 보이는데 범봉의 위용은 더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너무 지체된 터라 내려오다 떠드리 동지 발을 헛디뎌 떨어질 뻔했으나 다행이 옆의 회장을 잡아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날다람쥐라고 너무 자만하지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해 희운각 대피소가 내려다보이는 신선대의 암봉에 오르니 석양에 노을이 지려 한다. 햇살이 제법 따갑다. 처음으로 등산객을 만났는데 그 사람도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 설악의 日沒과 공룡의 雲霧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올라온 사진작가란다.
앞으로는 내일 올라 가야할 소청, 중청, 대청의 연봉들이 시커멓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버티고 서있다.
희운각대피소에 다다르니 젊은 학생 십 여명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산장지기가 어디서 올라왔냐고 묻는다. 지금 설악산 전 코스가 폭우주의보가 내려 전면 통제란다. 어이가 없다. 이렇게 날씨가 좋았는데 통제라니.....학생들은 전날 올라와 1박을 했단다. 어쩐지 산행내내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더라니. 기상청의 일기예보 하나만 믿고 그 많은 사람들을 통제했다니.... 그래서 마등령에서 우리에게 꼬치꼬치 캐물었구만. 당연히 통제인데 올라온 것을 보니 통제구간인 미시령에서 황철봉을 거쳐왔을 것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 것을..... 잘못하여 설악동에서 마등령으로 올라왔다고 하면 100% 거짓말이 되는 것 아닌가?
다행이다 싶었다. 아무 말 없이 얼른 그 자리를 빠져 나온 것이..... 잘못하면 일인당 50만원인가 벌금이 부과되는데.
통제 덕분에 널널하게 산장을 예약하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삼겹살이 나온다. 냄새를 피워 조금은 미안했지만 소주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워댄다. 시끄리 동지 자기 술은 안 사왔다고 총무에게 투덜대니 산장에서 물어보나, 술은 안 판단다. 술을 잘 못하나 맥주 하나는 먹는데 분위기상 안 먹을 수가 없나보다. 대충 씻고 잠자리에 드니 바로 천국이다. 아침에 나와보니 다람쥐들이 먹을 것이 없나 돌아다니는데 겁들이 없다. 손으로 부르면 바로 손 앞에까지 와서 꼬리를 살짝 건드려도 도망을 안 간다. 너무 사람의 손을 타 野行性을 잃어 가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다.
여기서부터 대청봉을 바로 오르는 대간 길은 철저히 통제되는 터라, 다리를 건너 소청을 향해 까마득한 철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대학 2학년때 친구와 둘이서 텐트에, 부식을 짊어지고 용대리에서 대청봉을 거쳐 설악동까지 갈 당시에는 대청봉에서 날이 어두워진다고 장사를 하던 아저씨가 “죽음의 계곡”이라는 길이 지름길이라 하여 그 길로 내려가라 하여 들 뛰어 내려왔던 추억이 새롭다.
처음부터 소청까지는 오르막길. 중간중간 철계단과 돌계단은 더욱 숨을 몰아쉬게 한다. 무박으로 한계령이나 오색에서 올라왔음직한 등산객들이 하나 둘씩 내려온다. 뒤로 보이는 공룡능선의 웅장한 자태에 수시로 등을 돌려 쉬면서 오르다보니 소청봉이다. 백담계곡, 수렴동계곡, 구곡담계곡, 가야동계곡 등이 용아릉을 좌우로 하여 내려 뻗쳐있다. 그 꼭지점에 봉정암의 돌탑이 내려다 보인다.
중청산장을 오르니 몇몇이 여기서 쉰다며 대청봉엔 안 간단다. 여기까지 와서 안 올라가면 신이 노한다 해도 막무가내다. 배낭을 맡겨놓고 다섯 명이 오르는데 갑자기 운무가 오르더니 대청봉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다행이 정상에 서니 많이 걷히어 중청산장 등이 구름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大靑峰, 樂山樂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 후 내려와 일행과 같이 미숫가루로 잠시의 허기를 달래고 한계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지루한 숲길. 한참을 가다보니 끝청이다. 아직까지는 운무에 싸여 시야가 별로더니 한계령 방향의 산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끝청에 오니 한계령에서 올라온 한 무리의 등산객이 쉬다, 우리 일행중 한 사람을 보더니 건강보험공단에서 왔냐고 묻는다. 일단 반갑다. 자기들도 직원이란다. 어제 와서 통제로 못 올라오고 속초에 가서 회 먹고, 오늘 아침부터 올라오는 중이라며 우리보고 부럽단다.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이 세 部類라 어정쩡한 이야기만 몇 마디 나누고 등을 돌려 각자 방향으로 가기 시작한다. 오다 곰취나물에 빠져 한참을 떠들며 전망 좋은 곳에 오니 드디어 한계령의 꾸불꾸불한 길과 건너편의 점봉산의 바위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한계령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길. 떠드리, 중랑지부장, 삐리리, 끝내리. 이 네 사람에게는 황당하면서도 바보 같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작년 봄에 장수대에서 올라 서북릉을 타고 중청산장에서 1박 후 대청봉을 거쳐 새벽 야반도주하듯 화채능선을 타고 권금성까지 몰래 가서 케이블카 타고 내려온 서북릉 종주를 할 때..... 이 곳 한계령 삼거리에서 물이 없어 바로 밑에 샘(예전에는 있었는데 이 번에 보니 없어졌다)으로 물을 길러갔다가 못 찾고 한계령휴게소까지 가서 물을 떠왔다는 어찌 보면 대단하고, 어찌 보면 멍청이(?)들 같고..... 아무튼 그런 추억이 있는 곳이다. 왕복이면 자그마치 쉬지 않고 걸어도 3시간인데 그 시간이면 중청산장에 도착해서 다리 쭉 뻗고 있었을 시간이다. 나는 그 때 같이 가기로 했다가 시골에서 일이 생겨 한 주 연기해서 같이 가자고 그렇게 애원해도 안 들어주더니 쌤통이구먼. 아니지 두 사람만 갔다 왔으니 두 사람한테만 할 이야기로구만.
무덥고 습기 찬 날씨라 모두 하나같이 ‘캔 맥주’를 외치며 내달려 가는데 어디에서 힘들이 솟아나는지..... 그 놈의 캔 맥주가 뭔지. 오늘따라 이 길이 무지하게 길어 보인다. 중간중간 올라오는 산행객들 중 어여쁜 아가씨들과 용감한 아줌마 군단(4명이서 50리터는 됨직한 배낭들을 짊어지고 올라간다)도 쳐다보는 둥 마는 둥 오로지 캔 맥주 하나만 머릿속에 그리며 내려오니 드디어 한계령휴게소의 음악소리와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그 와중에 점봉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내려와 시원한 캔맥주를 들이키니 이 맛을 어디에다 비교하리요.
일행이 모여 ‘아자 아자’와 함께 무사산행의 고마움을 외쳐본다. 시간은 2시 반경.
미리 연락을 해 시끄리 동지의 동생이 차를 몰고 속초에서 와서 우리를 미시령까지 태워다주려 왔다. 일행은 원통 삼거리에 내려놓고 운전수와 시끄리 동지는 계속 타고 미시령으로 차를 가져오기 위해 갔다. 목욕할 곳을 찾다 같이 오면 하기로 하고 휴게소 나무 밑에 낮아 맥주를 들이킨다.
인제로 내려와 커다란 개울가의 다리 밑에서 옷들을 벗고 목욕을 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데, 마땅한 식당이 없어 소양강 상류 쪽의 뱃터로 나와 빠가사리 매운탕과 잡고기 매운탕에 소주 한 잔 걸치고 침상에서 잠시 낮잠도 즐기고, 서울에 도착하니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그냥 헤어질 수 없다는 왕회장의 특명에 맥주 한 잔 하고 의정부가 집인 떠드리 총무는 대리운전을 불러 집으로 가니 1박 2일의 이번 산행이 끝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고
.....중략 - 나옹선사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중략 - 박목월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중략 - 신경림
저 산이 날더러는 흙이나 파 먹으라 한다
날더러는 삽이나 들라 하고
.....중략 - 정희성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중략 - 정덕수, 하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