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행기는 1호로 만들어졌다 슬그머니 없어진 사보노조 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방태산․개인산-우리나라 오지중의 오지
2003.7월 중랑산악회의 산행지는 방태산. 매월 첫 주에 행사를 치르다 이 달부터는 본부산악회가 첫 주로 오고 그 바람에 중랑지부는 자연스레 둘째 주로 밀려버렸다.
언제나처럼 렌트카에 상계동파(정태종, 임용주, 마용성)를 싣고 화랑대역에 나타난 떠드리 조유환, 멀리 남양주에서 장원경 동지가 새로 동참, 신내동파는 유희삼 나 혼자뿐, 망우리 우림시장을 가서 범면목동파(김시중, 김인식, 새로이 김상수, 이만식)를 싣고 팔당에서 경기광주의 김주동 동지를 태우니 06:40분경. 늦었다 싶어 부지런히 달려 홍천 화양강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못한 사람들 땜시 잠시 시간을 늦추어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 내린천 계곡에서 개인동 계곡을 들어가려 다리를 건너니 9시가 넘었다. 외길 산자락을 휘도는 비포장 산길을 오르자니 머리털이 쭈빗쭈빗, 아래는 낭떠러지요 길은 울퉁불퉁. 그 와중에 누군가 한마디한다. 굴러도 죽지는 않겠단다. 요는 차가 밑으로 굴러도 한번이면 나무에 걸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나..... 지금 생각해 보니 떠드리 조유환 동지가 한 소리 같다. 사실 작년 여름 가족들과 이곳에 피서 왔다 승용차로 이 길을 넘어 개인약수 먹으러 가려다 질려서 포기한 적이 있다. 몇 번을 180도 지그재그로 산마루 하나를 넘으니 커다란 분지 형태의 개인동 마을이 눈에 들어오는데 海拔 800m는 넘어보이는 이 곳에 개인약수의 유명세에 따라 몇 채의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개인동 이 곳은 방태산 連峰들, 즉 깃대봉, 주억봉, 구룡덕봉, 개인산, 숫돌봉, 침석봉으로 이어지는 삐쳐 쓰는 'ㄱ'자 형태의 連峰 속의 마을로 온갖 患亂도 비껴간 곳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산장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좌측 개인약수 방향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한국의 奧地답게 울창한 樹林속의 개울을 따라 난 산길을 오르려니 곳곳에 瀑布요 沼가 있으나 오르는 힘겨움에 감상할 새가 없다. 이런 곳이 서울 근교에 위치했다면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련만.... 하기사 이 곳에 있었기 망정이지 서울 근교에 있었다면 벌써 예전에 유원지가 되어 못된 商術의 터전이 되었을 것이다.
근 40여분을 오르니 그 유명한 개인약수가 특유의 빨간빛을 띠며 우리를 반기는데 반가운 마음에 두 바가지를 연달아 들이키니 갑자기 배가 불룩해진다. 몇몇은 냄새가 난다며 먹기를 꺼린다. 이런 사람들 보았나. 남들은 이 약수를 먹기 위해 근처에 집을 짖고 먹었다던데 이렇게 힘들게 올라와 한 모금 먹어보지도 않다니.....바로 밑에 울창한 樹林 속으로 하늘이 올려다 뵈는 공터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개인사'란 절터로 예전 維新獨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던 1․21사태 후 간첩들의 은신처가 될 것을 우려하여 헐어버린 터라 하니 또 다른 우리 민족의 빨간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맘이 들 뿐....어쩐지 이 깊은 산길에 꽤 오래 전에 깔았다 싶은 돌로 된 길이 있었다.
디지털카메라에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아니 잠깐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 떠드리 조유환 동지가 큰 맘 먹고 두어 달 전 디카를 구입했는데 山行時마다 열심히 가지고 와 작품(?)을 만들려고 무지 애를 쓰는데 도무지 사람들의 호응이 없다고 서운해 한다.(누구 이야기로는 자랑할려고 한다는 소리도 들렸다) 찍어 달라든가, 아니면 찍어 줄테니 폼 한번 잡아봐라 이런 식으로 나와야 디카를 가지고 오는 보람이 있건만 사람들이 너무 하는것 아니냐고 한마디 하는 바람에 멋지다고 생각되거나 조망이 좋다하면 먼저 포즈를 취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만 빠지는 거라, 그래도 좋단다. 항상 산행시마다 굳은 일을 제일 많이 하는 동지로 차 렌트해서 운전하지, 사진찍어주지, 점식 식사 대비한 用品을 가장 튼실이 하지( 해병대 시절 취사반이었기 때문이라고 닐리리 정태종 동지는 항상 놀린다. 사실은 해병대 운전병 출신이라는데 그 중에서도 군수품(식량 관계되는 쪽)을 운반하는 차량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恥部해 버리기를 좋아한다) 여하튼 떠드리 조유환 동지에게 산악회 총무로서 항상 미안한 마음 감출 길 없다.
다시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데 반바지를 입고 있기 때문인지 종아리가 따끔거리고 아프다. 이쪽 白頭大諫의 구룡령에서 갈전곡봉을 거쳐 조침령, 단목령에서 점봉산까지에는 진드기들이 많아 고생을 한다는데 혹시나 그런 것이 붙어있나 다리를 들여다보아도 진드기는 없다. 아마도 쐐기 종류나 풀의 뾰족한 잎에 찔리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반바지 입은 모두가 異口同聲으로 聲討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긴 바지를 입은 임용주, 마용성 동지다. 자기들만 대비해서 긴 바지를 입고 왔다며 이야기하지만 딴은 더위에 비하면 차라리 조금 따가운 것이 더 났다는 표정들이다.
이윽고 방태산 連峰의 한 중간인 능선에 올라섰다. 북으로 방동리, 진동리 넘어 설악산의 남쪽 봉우리들이 일망무제로 하늘금을 그으며 동에서 서로 길게 이어져 있다. 정말 장쾌하다.
조금 있으려니 뒷 대오가 다 도착되어 다음 산행지를 이야기하다 보니 새로운 제의가 들어온다. 원래의 계획은 동쪽의 주억봉을 먼저 오른 후 다시 뒤돌아와 배달은석을 거쳐 깃대봉을 오른 후 한니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김시중과 임용주가 두 패로 갈라 산행을 하잔다. 하나는 여기서 서쪽으로 가서 깃대봉에서 하산하는 쪽과 한 패는 동쪽으로 해서 주억봉을 거쳐 구룡덕봉, 개인산까지 가자는 것이다. 조금은 무리인 듯 싶었으나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일단 헤어지기 전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터를 잡아 헤매다 여장을 푸니 모두 준비를 단단히 해왔다. 기본적인 야채나 과일, 술, 안주 등을 준비했는데 일단 오늘의 코스가 만만치 않은 관계로 여유있게 남겨 두자며 배분 후 식사를 하는데 오늘도 주메뉴는 양념돼지갈비다. 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이번 산행으로 이 메뉴는 없애기로 합의를 본 뒤라 그런지 더 맛이 있다. 모두들 싸 온 밥에 돼지고기에 김치 넣고 두루치기로 먹자니 웬일들인지 술을 마다한다. 앞으로의 산행 걱정인지, 배가 불러서인지, 아무튼 불러오는 배를 추스르며 다시 산행준비를 한다.
나머지 식구들을 깃대봉 쪽으로 보내고 나, 회장인 김시중, 양 등반대장인 조유환, 임용주, 그리고 마용성 동지와 김주동 동지 이렇게 여섯이서 동쪽으로 길을 잡아 출발하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허허롭다. 모두 같이 산행하며 자연을 벗삼아 우의를 다지는 것이 좋으련만.... 아무튼 다음 산행부터는 모두 같이 움직이기로 하고 부지런히 가는데 방태산에 걸맞지 않는 곳이 여러 곳 나온다. 이유인즉슨 방태산 하면 거의가 육산으로 온갖 초본류와 나무들이 많아 식물의 보고라는데 곳곳에 단발성으로 암봉이 있어 다행이 조망터가 되니 錦上添花다.
반대편의 동지로부터 무전기가 연신 울려댄다. 우리는 배달은석을 지나 깃대봉을 오르려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 같다. 한시간여를 달려 주억봉에 오르니 여기는 전망이 좋아 사방이 탁 튀어 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니 구룡덕봉이 저 멀리 보이고 거기에서 남쪽으로 뻗어가다 내린천 상류로 이어지는 개인산의 연봉들, 더 동쪽으로는 가칠봉을 거쳐 갈전곡봉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잠시 물 한잔씩으로 목을 추스리고 다시 내리막길을 한없이 내려가니 삼거리에 가족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 앉아 있다. 평상복에 운동화를 보니 휴양림 쪽에서 간단한 가족산행을 온 것 같다. 가벼운 목례 후 한참을 달리니 구룡덕봉이다. 주억봉에서 볼 때는 至近距離 같아 보였는데.... 도중에 가시오갈피 나무가 있어 유심히 보니 온통 상처투성이다. 계속 잘라 가는 바람에 새 싹이 나와 크기도 전에 또 잘리고, 분명 사람들의 짓일 것이고..... 불쌍해라. 조금만 더 길을 비켜나 자랐더라면 이런 수모는 안 당하고 살텐데. 이곳 구룡덕봉은 얼마전까지도 군부대가 있던 터라 민둥산이다. 이 곳까지 길이 나 있고 전봇대에, 철망에, 군부대 막사 건물에, 지금도 가동중인 안테나하며, 철수하려면 흔적을 제거하고 가던가, 이렇게 전망이 좋은 곳에 흉측한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래도 봄이면 새 싹들이 나와 이렇게 여름철이면 온갖 야생화가 흐트러지고 피우니 자연의 생명력이란.....
얼려 가져온 시원한 막걸리를 한 잔씩 걸치고 임도를 따라 개인산으로 이어지는 삼거리를 지나 내려가는데 등 뒤에서 요란한 엔진소리가 나 뒤돌아보니 off-road들만 찾아다니는 사륜구동 짚차 마니아들이다. 두 대가 올라오더니 우리가 금방 머물렀던 구룡덕봉으로 간다. 다행히 몇 분 차이로 그 들과 遭遇하지는 않았지만 하기야 그 사람들도 그런 방식으로 자연을 느낀다는데 참견해 무엇하리. 이 곳에서 개인산 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희미하고 草本類와 나무가 길을 가려 길은 있으나 보이지를 않아 계속 애를 먹었다. 다행이 길 옆으로 계속 멧돼지 무리들이 뿌리들을 캐먹느라 땅을 파헤쳐 놓아 군데군데 길이 보인다. 이런 모습은 계속 이어지는데 멧돼지란 놈들 진짜 힘도 세다. 오죽하면 김주동 동지는 감자가지고 와서 뿌리기만 하면 된단다. 멀리 가끔씩 보이는 하늘 사이로 우리가 지나왔던 방태산의 연봉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 곳 개인산 가는 길은 한국의 原始林답게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고 野生花와 나무들의 천국이다.
한참을 가다보니 분명 개인산이어야 할 곳이 나타나지를 않는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나그네길' 하던 노래가락이 갑자기 험난한 길로 생각되어지는 순간 우리들은 잠시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자신있게 이야기할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다. 한시간 반을 남파간첩이라는 별명의 김주동 동지를 필두로 해서 달려왔건만 개인산이라는 팻말도 안내판도 하나 없고 나뭇가지 사이로 내린천의 물줄기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더 이상 오르는 곳이 없어 우리는 여기가 개인산이라고 자위(사실은 집에 와서 싸이트를 뒤져보았더니 그 곳이 개인산 정상이 맞았다. 개인산은 전망도 없고 개인산이라는 팻말도 없다 한다. 이 자리를 빌어 인제군청 산림과나 홍보과에 계신 분들이 조그마한 안내판 하나라도 설치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하고 여기에 오르기 전에 개인동으로 내려가는 길을 봐 둔 터라 다시 뒤로돌아 내려와 능선 길을 버리고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이 곳은 하늘은커녕 한 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밤길 같다. 조금 내려오니 봄에 산나물 채취하기 위해 쳐 놓은 움막이 나타나 보니 커다란 솥에, 그릇에 세간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해마다 봄이면 올라와 살다 가는 모양이다.
다시 내려가는데 앞서가던 김주동 동지가 길이 아니란다. 다시 돌려 움막 쪽으로 와 길을 찾으니 뚜렷한 하산길이 없다. 조유환 동지가 그냥 내려가면 설마 길이 없겠냐며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 여기에서 막는 건데. 순간에 설마하니 내려가지 못하는 不祥事는 없겠지 하며 모두들 따라 내려가기 시작한 게 우리들의 遭難 일보 전까지 가는 시발점이 되는 줄 누가 알았으랴? 조금 내려가니 이제는 아마존의 밀림에 버금가는 온갖 넝쿨에, 썩어 넘어간 나무의 잔해며, 푹푹 빠지는 나뭇잎의 썩은 내음, 하여간 그 와중에도 개인 행동하지 말고 앞사람만 따라오라며, 조금이라도 능선으로 내려가야지 계곡 쪽으로 가면 넝쿨 때문에 전진을 할 수 없다며, 잘못 디뎌 죽죽 미끄러지면서도 서로에게 조심하라는둥,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한없이 내려가도 울창한 樹林 때문에 사방을 분간할 수 없으니 조금씩 마음의 동요들이 일기 시작한다. 시간이 벌써 내려가 다른 팀과 만나야 하는데 근 두시간을 헤매고 있으니..... 가뜩이나 疊疊山中의 해는 짧아 금방 어두워지고, 더군다나 험한 산길을 운전해 내려가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아는 바에야... 모두 조마조마해진다.
지나간 일이지만 불행 중 다행이도 그 와중에 식물 공부는 많이 했으니 강원도 산간에서 자란 나도 처음 보는 풀과 나무들이 있었느니 요 나무는 주동나무, 요거이 마똥나무 하는 식으로 命名까지 해주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능선길에서는 조그마한 주목들만 보았는데 여기서는 太白山이나, 小白山의 朱木처럼 아름드리 朱木을 여러 번 보았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누가 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일말의 헤맨 것도 행운이다 싶었다. 다시 작전을 바꾸어 우선 물소리가 나는 계곡쪽으로 가서 물에 빠져서라도 내려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싶어 비스듬이 능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구르며 미끄러지며 계곡을 내려가니 다행이도 구룡소 계곡길로 조그만 길이 보인다. 간단히 세수만 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하려 내쳐 뛰어 계곡 물을 두 세 번 건너니 개인동의 집이 보인다. 임용주 曰 '이제 끝났으니 濯足이나 하고 가자'는 걸 다그쳐 일단 차를 몰아 미산리 계곡으로 내려오는데 무전기가 불이 난다. 모두 한 잔씩 걸쳤는지 목소리가 악이 받쳐 있다. 하기야 근 세시간을 기다리게 했으니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우리도 말 못하는 고생한 걸 생각하니 괜스레 부아가 난다
어찌되었던 간에 내린천 계곡에서 간단히 씻고 서둘러 오다보니 홍천 내촌 정도 오니까 비가 오기 시작한다. 만약 이 비가 조금 더 빨리 우리가 헤매던 곳으로 안 오길 다행이라 생각하며 홍천에서 올갱이 해장국에 쐬주 한 잔 하니 오늘 참 좋은 경험했다는 마음으로 변해버린다. 올라오는 길에 이미 삐리리아닌 사람들이 삐리리해 가지고 '한잔 더'를 외치는 통에 캔맥주 하나씩 들이키며 그래도 또 두 개의 산이 우리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지는 쾌감을 느끼며 아무튼 처음 산행에 동참해 준 김상수, 장원경, 이만식 동지들에게 미안하고, 다음부터는 알찬 산행이 될 것이니 자주 동참하라는 말과 함께 이 글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