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행기 역시 초대 회장인 정태종 동지가 쓴 글입니다.
중랑지부 산악회의 세번 째 산행지는 강원도 홍천지역의 가리산(1051m)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날짜는 4월 13일 토요일, 전날 황토비가 내린 뒤 2~3일 황사가 계속될 것이라는 절망적인 예보속에서도 산행을 강행하기로 했는데 아침이 되자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게 개었고 바람조차 잔잔해졌습니다. 매 번 갈때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것을 보니 왠지 불안해지기까지 합니다.
황사를 예견하면서도 상봉역에 모인 회원들은 14+1=15명. +1은 박원고회원동지의 땅콩같은 아드님이었슴다. 15명이 모두 모인 9시 10분경우리는 빌린 봉고차에 몸을 싣고 홍천 가리산으로 출발했습니다. 1종면허를 가진 본인과 김시중대장이 갈 때냐 올 때냐를 놓고 가위바위보 단판승부를 벌인 결과 행운의 여신은 본인의 손을 들어주어 제가 가는길운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행운은 '정상주나 조껍데기술'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15인승 봉고차를 그야말로 빼곡히 메운 회원동지들의 가벼운 마음과도 같이 홍천으로 가는 국도는 시원하게 뚫려 있었습니다. 물론 서울지역에서 약간 고전한 것은 잠시 뒤 기억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길이 멀고, 진입로가 비포장(정확히는 재포장을 위해 포장을 걷어낸) 상태라서 시간이 좀 걸려 11시를 훌쩍 넘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앵꼬' 직전의 차를 받은 관계로 기름값이 정확히 편도 만원이 들었다는 것도 추가정보로 말할 수 있습니다.
가리산은 휴양림이 있어서 입구에서 일인당 2000원의 입장료와 일차당 3000원의 주차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계산법으로 우리는 팁 1000원을 포함해서 20000원만 지불했습니다. 계산 당시 공익요원이 '몇 분이세요?'라고 물었을 때 제가 잘 기억을 못하는 관계로 '여덟명인가?'라고 중얼거린 적은 있었지만 그런 사소한 일이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빌미가 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디나 입장료는 왜 그렇게 아까운지......)
산에 오르자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서울과 달리 이제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한 노오란 개나리였습니다. 아니 개나리뿐 아니라 산 곳곳에는 참 맛있게 보이는 투명한 연분홍 진달래가 지천에 널려 있어 눈과 코를, 입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철쭉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이제 겨우 망울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산은 지리산 한자락을 연상시킬만큼 전체적으로 푸짐한 육산이었는데 처음 오르막은 다소 숨이 가빴지만 그 이후는 쭈욱 평이한 능선길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참나무나 낙엽송, 물푸레나무등이 주종인 숲이 비탈밭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비탈고랑은 2~3부 능선에서부터 약 8부능선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게 도대체 뭔지 궁굼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르막과 평이한 능선길을 약 두시간정도 걷자 처음으로 바위덩어리 세개가 보였는데 그곳이 바로 정상이었습니다. 가리산 경험이 있는 회원동지가 말하기를 그것이 바로 가리산의 1,2,3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낙오없이 쭉 함께 행동했던 회원들은 이곳에서 세부류로 나위었습니다. 몇 명은 세봉을 모두(이태범회원동지는 '애들 잘난체 하는 꼴을 못 봐서' 따라 올랐습니다), 몇 명은 두 봉 만, 나머지 한 반정도는 정상만 골라 올랐습니다. 어쨌든 모든 회원들이 정상에 모인 것은 한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듣던 바와 같이 정상에서의 조망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동서남북 어느 곳으로도 탁 트인 전경 속에는 많은 산들과 들과 호수가 그림같이 부드럽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경의 일부인양 마을도 몇 개 있어야할 곳에 있었습니다. 그림으로만 볼 때는 모두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았습니다만 내려가면 치열한 투쟁속에서들 살고 있겠지요. 우리 모두는 (나오진 않겠지만) 그림같은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 몇장을 찍었습니다.
바람도 먼지도 한 올 보이지 않아 우리들은 아예 정상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정상에는 특이하게도 70년대식 보도블럭이 정사각형을 이루고 깔려 있었는데 헬기장으로는 너무 작아 아까 그 비탈고랑과 같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훌륭한 밥상이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가벼운 산행인만큼 준비된 점심도 가벼웠는데, 김밥, 떡, 또떡, 과일, (김주동동지가 확보까지 한)쵸코파이, 찰떡파이 등이 주종이었는데, 이날의 메인은 역시 임용주동지가 준비한 '정상주를 곁들인 **라면'이었습니다. 임용주회원동지가 세번이나 **질을 해야할만큼 정상에서 **먹는 라면맛은 일품이었습니다. 그 무거운 라면물은 박현덕고문께서 소리소문없이 져날라 왔었습니다.
하산길은 올라왔던 길이 아니라 우에서 좌로 돌아내려가는 길이었는데 등산길과 마찬가지로 정상 근처에서 밧줄을 몇 번 잡는 것 외에는 아주 평이한 길이었습니다. 또 첫번째 산행에서 등장했던 정모동지를 비롯해서 등하산을 통털어 아무도 처지는 사람없이 계속 한덩어리로 움직였던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잠깐, 박원고동지는 그 땅콩같은 귀여운 아들과 따로 움직였는데 후에 하산해서 들어보니 본인은 8부능선까지 다녀왔다는데, 일설에 의하면 아들과 같이 크로바를 찾아다녔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역사가 평가해줄 것입니다.
뒤풀이는 틀림없이 땅에 묻어놓았을 것 같은 동치미국물을 살짝 얼려 국수를 말아낸 양수리의 '기가막힌 동치미국수'에 동동주를 곁들이기로 했는데, 머리만큼 손도 큰 우리 유희삼총무께서 추가를 연발하는 바람에 찐만두와 삶은 계란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건 고맙다는 얘깁니다. 어쨌든 산행보다 짧은 뒤풀이를 실현해내기 위해 우리는 비상한 각오로 품목선정에서부터 음주제한을 가한 결과 약 한시간의 뒤풀이를 마치고 곧 출발하여 6시30분경에는 출발지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부담없는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선정하여 많은 회원동지들의 참여 속에 소풍같은 마음으로 다녀 왔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소풍같은 산행, 다음에 또 갔으면 좋겠습니다. 산행에 참여해주신 동지들 모두 수고하셨씁니다.
* 이번 산행에 결합해주신 동지들
정태종, 박현덕, 김시중, 유희삼, 김인식, 임용주, 이태범, 김주동,
정덕영, 박원고(+땅콩같은 아들), 정은정, 전현숙, 조미영, 조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