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샘의 귀환
열공을 하는라 하체 힘이 많이 약해져 있을 삼거리님이 오랜만에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어 경안에서 성남파를 태우고 반가운 마음으로 두 대의 차량의 합류지점인 새마을 휴게소로 향한다. 온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폭서의 여름을 지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반갑기도 하고 삼거리님의 열공 결과도 물어보고 등등… 다들 얼굴이 초가을 햇살처럼 밝아 보인다. 이번 산행의 주인공을 비롯한 우리 7명은 새마을 휴게소 인근 식당에서 두부전골로 아침 요기를 한 후 갈 길 먼 가리왕산 휴양림으로 향한다. 나로서는 이번이 두 번째 가리왕산 산행인데 전번에는 장구목이에서 가리왕산으로 오르는 겨울 눈꽃산행이었고 이번에는 가리왕산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하여 중봉- 가리왕산 -중왕산-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늦여름 비박산행이다.
어제까지는 거의 매일 비가 왔는데 오늘은 정말 비개인 화창한 초가을 날씨다. 향긋한 산촌의 정겨운 풍경을 보면서 우리의 산행이 아주 순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평창읍에서 물, 과일 등 비박할 물품을 추가 구입한 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없이 내달리니 가리왕산 휴양림입구 안내판이 보인다. 휴양림 입구의 전경은 강물이 산을 휘감아 돌고 그 낮은 비탈에 고추밭, 옥수수밭, 참깨밭들이 치마 헝겊 누더기처럼 펼쳐 있고 거기에 덕지덕지 허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군락을 이루고…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 한 구절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일리야“
하여간 세상을 등진 은둔자가 살기 딱 좋은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조수석 성남 박은 이런 곳이 농원을 조성하기가 딱 맞는 곳이라며 시골풍경만 보면 늘 열심히 농원사업 구상 중이다. 외로움, 무료함, 따분함, 불편함 등의 적응제이며 치료제인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성남 박에게는 농촌 생활이 지옥 같은 생활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휴양림 매표소 바로 왼쪽 편 다리 건너에 있는 커다란 흉측한 건물 쪽에 차를 세워놓고 중봉을 향해 올라간다. 사명산 산행이후 오랜만에 메어보는 배낭이라 처음부터 무겁게 느껴지고 늦여름 한 낮이라 무척 습하고 덥기도 하여 처음부터 힘이 부친다. 물론 A급 oo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골짜기 마다 물이 넘쳐나 시원한 바람이 일지만 그래도 날씨는 습하여 땀이 억수로 흘러내린다. 그런데 초반부터 웬일로 요즘 한창 데이트 중인 양평 노총각님이 매우 힘들어한다. 그럴 리 없는 데… 근 한 달간 가부좌 틀고 열공을 하여 무릎관절이 굳었다는 삼거리님, 엊그제 강화도 일주 자전거 투어로 허벅지가 굳었다는 삐리리님도 잘 가는데… 가장 젊은 A급 등산가가 힘들어 하다니… 그 이유는 뻔하다. 연애에 성공하자면 체력이 강해야 하는 법…
무거운 발걸음으로 두 시간여 오르니 중봉에 다다른다. 간단한 막걸리 휴식을 취하고 가리왕산으로 향하니 여기서부터 능선길이라 산행이 어렵지 않아 서로 잡담을 하며 산행을 한다. 한참 가다보니 오랜 풍상을 겪은 주목나무도 보이니 약간 낯익은 길이다. 40여분을 가니 드디어 가리왕산 정상이다. 가리왕산 정상은 족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의 공간이 있고 누가 쌓았는지 모르지만 돌탑이 있다. 예전에 왔을 때 돌탑 안에 조그만 석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부처님과 담을 쌓은 사람이 내다 버렸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없다 . 정상은 사방이 트여 경관 조망이 끝내 주는 곳인데 아쉽게도 신은 우리에게 조망권을 주지 않았다. 정상에서 사진을 몇 컷과 간단하게 시원한 막걸리를 들이 킨 후 서둘러 갈 길을 향한다. 언제 다시 이 정상에 올런지 아무도 모르지만…
가리왕산에서 마항치까지는 줄곧 내리막길이어서 무릎이 아프다. 한 시간 반 정도 내려가니 마항치에 이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쪽엔 잠자리 떼가 군무를 즐기고 있고 한 쪽엔 평상이 벤치와 평상이 한가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저쪽에는 자작나무가 도열해 바람소리 음악을 틀어주고... 아! 그곳이 꿈엔들 잊일리랴… 아직 17시 밖에 안 되었는데… 한두 시간 더 가야 내일이 편한데… 그렇지만 이 좋은 비박자리를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탁 특인 비박장소! 거기에다 평상위에 비박텐트를 치면 땅의 습기도 차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넓은 공간에 벤치도 있고 비박하기에는 끝내 주는 장소이다. 다들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마항치에서 비박하기로 한다. 부족한 물을 뜨러 갔다 오니 일행은 벌써 나와 조의 텐트까지 다 치고 맛있는 쭈낙전골 요리까지 해 놓았다. 다들 집에서는 모르겠지만 산에서는 요령을 피우지 않는 것 같다. 매번 산행 먹거리 준비를 하느라 수고하시는 조총무의 쭈낙전골 자랑에 힘입어 맛있게 먹는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먹구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유만만,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꼬치 삼겹살을 알불에 구워 소주한잔과 함께 기울인다. 그렇게 마항치의 밤은 깊어가고…
아침은 요란하다. 비가 올듯 말듯한 날씨에 바람소리는 요란하고, 그 바람에 펄럭이는 나뭇잎소리가 마치 비오는 소리 같고, 그 비오는 소리에 새벽잠을 설치고… 서둘러 누룽지를 끓여 아침 끼니를 때우고 중왕산으로 향한다. 중왕산은 몇 년 전 평창 미탄면에서 올라가려다 눈이 너무 많아 중도포기하고 내려온 적이 있어 다시 오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한 시간정도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니 탁 트인 중왕산 정상에 닿는다. 중왕산 정상은 헬기장이어서 이 곳 또한 비박장소로 손색이 없다. 산줄기가 중왕산으로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것 같다. 이번에는 가리왕산 정상과는 달리 안개가 걷히어 조망이 너무나 좋아 탄성을 지르고 기념으로 사진 여러 컷을 찍고 다시 청옥산으로 향한다.
중왕산에서 청옥산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 있는데 거기서 족발, 아오리 사과를 먹으면서 산 아래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고 난 후 다시 청옥산으로 향한다. 유총무가 일이 있어 일찍 올라가야 한다기에 몇 번 갈림길이 나오지만 몇 번 방향이 헷갈리지만 그래도 방향타를 잘 잡아 서둘러 40분정도 가니 벽파령에 이른다. 청옥산을 오르기 전에 벽파령에서 한 숨 고르기 위해 다들 쉬고 있는데 맨 뒤에서 오던 마샘 끝내리가 오지 않는다. 10분, 20분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 무슨 일이 생겼음에 틀림없는데 양평 노총각은 변비가 있으면 볼일이 길어져 늦어질 수 있다고 하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마샘 별칭대로 “이 산에서 끝내리”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다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혹시 발을 접질러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길을 잘 못 들어 엉뚱한 방향으로 간 것은 아닌지, 하여간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기다리다 못해 일부는 벽파령 밑 임도로 내려가고 일부는 오던 길을 돌아가보기로 한다. 나와 조, 임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은 정말 맥 빠지는 일이고 그 만큼 힘이 더 들어가는 것 같다. 가면서 연실 “마!” “마!” 불러본다. “마!”는 산꼴짜기로 수 없이 흩어져 내려가지만 대답은 없다. 말 없는 산천초목은 “마!”가 누군인지 모를 것이고, 이 인간 원래 말이 없으니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삐리리는 자기가 마지막으로 마를 보았다던 삼거리 갈림길 이것마저도 까먹어 어디인지 기억을 못하고, 해서 아까 전망 좋은 곳 휴식하던 곳까지 거의 다 갔다 되돌아온다.큰일 났다/ 이 깊은 산속에서 어떻게 찾나/ 오늘 더 찾아보고 그래도 못 찾으면 119에 신고 해서 수색하는 수 밖에/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데 조총무가 핸드폰을 받더니 밑에 임도에서 기다리던 유총무로부터 마샘을 만났다는 기별이 왔다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서둘러 임도로 내려가니 마샘이 얼굴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얘긴 즉슨 삼거리 갈림길에서 방향을 잘 못 틀어 임도로 내려갔는데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계속하여 가다가 아니다 싶어 다시 되돌아 임도로 한참 내려오다 보니 유총무가 보이더라나! 반가워 눈물이 나올 뻔 했다나! 에라이! 우리를 실 컷 고생시켜 놓고는… 육군 중위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기사 본인은 얼마나 암담했을까. 깊은 산 속에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 핸드폰도 없는 천연기념물인데…
근 두 시간 걸려 이 사건이 매듭지어졌다. 잃어버린 것은 청옥산 산행이고 배운 것은 뒤처져 산행하지 말라는 교훈이었다. 다들 너무 맥이 빠져 생라면으로 허기를 채운 후 바로 눈 앞에 치솟아 있는 청옥산은 뒤로 하고 임도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초죽음의 길 임도. 대부분의 임도는 비포장길인데 여기는 휴양림이라서 그런지 시멘트 포장을 했다. 두 시간 넘게 걸으니 발바닥이 따갑고 예전에 교통사고로 핀 박은 다리는 욱신거리고…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매표소 밑 큰 개울에서 시원한 물로땀 냄새를 지우며 산행을 마친다.
요즘 왕의 남자 이00가 화려하게 정치권으로 복귀하여 “왕의 남자 귀환”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건 우리에게 하찮은 의미의 용어일 뿐이고 비록 그 짧은 두 시간만이지만 커다란 동료애를 느끼게 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 온 마샘에게 보다 큰 의미의 용어를 부여하고 싶다.
“마샘의 귀환!”
첫댓글 “마!”는 산꼴짜기로 수 없이 흩어져 내려가지만 대답은 없다. 말 없는 산천초목은 “마!”가 누군인지 모를 것이고, 이 인간 원래 말이 없으니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절묘한 표현이다. 우리 시끌님 갈수록 글솜씨가 구수해집니다. 때론 "요즘 왕의 남자 이00가 화려하게 정치권으로 복귀하여 “왕의 남자 귀환”이라는 표현을 " 촌철살인(?)의 입담도 있고......하여간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나저마 큰 일이네. 떠드리가 기어코 또 1박3일 지리산 종주가자고 열차표도 예매해 놓고, 세석산장도 예약했다는데...... 간만에 비박산행을 한지라 아직 발목의 붓기도 안 빠진 것 같은데 금욜밤에 또 출발이라네. 미치겠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