튈르리 정원 (Tuileries Garden)
루브르 박물관 반대 길로 쭉 따라가면 튈르리 정원을 가로지르게 된다.
정원이란 이름에 최초 떠올랐던 규모가 아니었다.
정원 끄트머리에 모네의 <수련>이 걸려있는 오랑주리 박물관(Orangerie Museum)도 위치하고 있다.
위 사진을 보면 Grand Bassin Rond라는 분수가를 중앙에 두고 여러 석상이 분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뇌하는 남자의 나체상
아녀자를 약탈해가는 듯한 빈인반수 상
그 옆엔 격퇴당하고 있는 빈인반수 상이 있었다. 이번엔 머리가 동물이다.
누군가를 부축해 끌고가는 것같은 아이.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장 궁금했던 조각이었다.
지친 기성세대를 묵묵히 떠안은 신세대들로도 보이는 것만 같았다.
처음 튈르리 궁전은 1559년 앙리 2세가 죽고난 후 홀로남은 카트린 드 메디시스 왕비가 지으려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는데,
그 때 카트린 왕비의 주문이 반영된 것일까.
이런 정보는 좀처럼 찾기도 어렵다.
궁금하지도 않은 유명한 부분에 대한 정보는 넘치는데 이곳저곳에 깨알같이 박혀있는 조각들은 도통 뭘 의미하는 지 모르겠다.
유명한 것도 좋지만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이런 여행길에선 더 기억에 남는다.
눈을 부릅뜬 남자의 머리를 들고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 조각 역시 그렇다.
앙리2세 사후에 왕비가 이 궁전을 지었다는 정보와 연결되었을 때, 왕비는 앙리2세를 미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하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튈르리 궁전을 최초 설계한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앙리 2세 부인)
<출처: 위키피디아>
이 캐서린 왕비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당시 유력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메디치가의 유일한 후계자였던 그녀는 피렌체 출신으로 이탈리아 여자였다.
Q1) 그런데 어떻게 프랑스 왕가로 왔을까?
증조부인 교황 레오10세는 그녀를 로마로 데려와 돌보면서, 자신의 동생 서자와 결혼시켜 피렌체를 통치시킬 생각이었다.
후에 그녀의 남편이 된 앙리 2세의 아버지, 프랑수아 1세가 그녀의 후견인을 자처했지만 레오10세는 번번히 거절했다.
레오10세가 죽고나자 캐서린은 다시 친척들 손에 떠돌게 되었고, 또 다른 친척이 교황에 즉위하자 이번엔 교황 클레멘스7세의 캐어를 받았다.
교황 클레멘스7세는 레오10세와 달리 프랑수아 1세의 러브콜을 오케이하여, 카트린은 프랑스 왕가에 살림을 차리게 된 것이었다.
이때 카트린이 데려간 이탈리아의 요리사와 식사예절 등이 이후 프랑스 요리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Q2) 카트린은 어떤 여성이었나?
우선 예쁘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세대에 태어났으면 저리 러브콜을 받을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앙리 2세가 마상시합이라는 중세 기사 싸움으로 어처구니없이 죽고 난 후에
남편을 대신해 섭정 정치를 꽤 해냈을 정도로 신중하고 명석한 여성이라는 평이다.
섭정 정치 시엔 개신교에 적대적이지 않았고 개신교든,가톨릭이든 프랑스 정부에 충성하면 된다는 태도를 보였다.
합리적이면서도 적을 두지않으려는 이런 모습은 신중한 성격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Q3) 앙리2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최초의 궁금증이었다.)
최초 카트린이 프랑수아1세의 러브콜로 프랑스 왕가로 왔을 때는 프랑수아1세의 정치적인 계산이 꽤 반영되어있었다.
그러나 프랑수아1세는 이후 그녀를 통해 빼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그녀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한다.(메디치가 남은 재산 시망)
진심으로 시아버지인 프랑수아1세를 존경하고 따랐던 카트린의 인품이 그렇게 만들어낸 것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정작 남편과의 관계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앙리2세의 왕비가 되기 전부터 앙리2세에겐 정부(디안)가 있었고, 디안의 눈꼴사나운 짓은 앙리2세가 죽기까지 이어졌다.
10년 동안 자식을 낳지 못해 주변의 디스를 받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앙리2세를 깊이 사랑하여 관심을 끌고자 노력했다 한다.
그런데 노스트라다무스와 노닥거리며 주술,점성술에 심취했다는 그녀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잔 달브레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을 독으로 암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도 좀 그렇다.
여기까지 이르자 튈르리 궁전 주변에 퍼져있는 독특한 느낌의 조각들에 이상한 힘이 느껴진다.
참 여행을 정리해본다는 것은 이런 것 같다.
사소한 궁금증이 가지를 치다가 한 여자의 인품까지 의심해보게 되는...
뭐 조각의 의도야 어쨋든 지금은 낮잠자기 좋은 공원이 되어버렸다.
널찍한 분수 주변에 비치된 안락의자 덕에 루브르 박물관에 지친 관광객들이 쉬고있다.
한쪽에는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공원을 종횡무진 누비며 뭔가를 적거나 그리고 있었다.
이 Grand Bassin Rond를 지나가면 또 다른 분수가가 나온다.
저 멀리 콩코르드 광장의 오밸리스크(Obélisque)도 보인다.
오랑주리 미술관 (Orangerie Museum)
튈르리 공원 끄트머리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특별 대우를 받으며 걸려있다.
<수련>작품 하나만으로 두 원형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원형 공간이 넓다는 얘긴 아니다.
덕분에 관람을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한산한 이곳에서 뮤지엄 패스를 구입하기도 하였다.
이곳 역시 뮤지엄패스 소지자를 위한 줄을 위와같이 별도로 두고 있다.
우아하게 관광책자에 소개되어있던 <수련>을 실제로 보니 그냥 수련을 잘 그렸구나 싶다.
작품명 수련의 뜻을 꽃의 이름이 아닌 자기 수련따위로 생각하고 들어갔으니 할말이 없다.ㅠ
다른 것보다 나를 당황시켰던 화장실이 기억난다...
보통 수도꼭지가 센서에 반응하든, 손잡이를 달고 있기 마련인데 바닥에 위치한 버튼을 밟아야 물이 나왔던 것이다.
당황한게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위안했다.
자세한 미술작품에 대한 설명은 다른 블로그를 참고해주세요~
1) 모네의 수련이 전시되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 내부를 잘 설명해주신 블로거: http://catstory.kr/1382
2) 모네의 수련에 얽힌 내력들을 잘 풀이해주신 블로거: http://blog.daum.net/deersunny/1670
콩코르드 광장 (Place de la Concorde)
튈르리 정원을 관통하여 밖으로 나서면 바로 콩코르드 광장이 이어지는데
이날은 어떤 전시회를 하고있어 유난히 북적거렸다.
콩코르드 광장 주변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이 꽤 인기가 있었다.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길거리 음식만큼의 관심도 받지못한 오밸리스크를 등지며 상젤리제 거리로 접어든다.
샹제리제 거리 (Avenue des Champs Elysees)
얼마 만에 본 길거리 화장실인지 모르겠다. 물론 유료 화장실이다. 보통 1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볼 일 한번보는데 1,500원 내는 꼴이다.
독특한 방식으로 구걸하는 파라오.
일행이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놀래킨다.
얼굴 가리고 부끄럽지 않게 구걸하는 그럴싸한 전략인 것 같다.
그냥 하루종일 자다가 집에갈 것 같은 느낌.
북한군 홍보영상의 걸음걸이를 연상케하는 동상이 서있다.
관광객 행렬을 따라 나무가 우거진 거리를 벗어나면 본격적인 거리가 보인다.
현재 파리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이 걸려있는 영화관이다.
좀 걷다보니 저 멀리에 영화관 스러운 것이 또 보인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루이비통 문구를 마주하며 본격적으로 샹제리제 거리에 접었들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명품 매장들이 빈번히 보이는 거리에 우리가 굳이 올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후에 로마 명품 동네 갔을 땐 더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쇼핑에 관심이 없는 관광객은 굳이 샹제리제 거리에 오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매장 건물에 느낌있는 조각들이 붙어있으니 브랜드가 고급스럽게 다가온다.
아무튼 이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에투왈 광장에 있는 개선문(Arc de Triomphe)이 나온다.
뮤지엄패스가 있으면 옥상에 올라가는 것도 무료이다. 물론 줄 설 필요도 없다.
우리 일행은 위 맵과 같이 튈르리 정원에서 쭉 올라가 개선문까지 걸어갔다.
중간에 원형 도로가 보이는 루즈벨트(Roosevelt) 역이 위치한 곳에서 샹제리제 거리와 직각으로 교차하는 길이 몽테뉴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