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소통이다
- 나눔의 공간이 필요하다
최 봉 희(시인, 수필가, 김포중학교 교사)
예술에 대한 오랜 논란 중의 하나가 예술이 그 자체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인간에게 평가될 때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예술은 분명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다. 그러나 예술은 개성적인 창작을 통하여 보편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기술이자 지적(知的) 활동임이 분명하다.
예술가는 보편적인 것을 직관(直觀)하여 그것을 종이· 그림물감 · 돌 · 소리 · 기호 · 몸짓 따위 물질적 재료에 의하여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을 보아주고 평가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존재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사실상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예술작품으로부터 감상자가 향유하는 것은 단순히 관능적 쾌감에서 그치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작품을 통해서 미(美)를 창조(創造)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적인 창조성 가운데도 보편성이 나타난 예술작품이 높이 평가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까닭이다.
예술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은 삼라만상에게 매혹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그래서 예술에서의 미(美)는 삼라만상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름다운 교향곡을 듣고 자란 식물이나 동물들은 훨씬 잘 자라고 육질이 더 부드러운 특징을 지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아울러 미술치료, 음악치료, 독서치료 등 문화 예술 활동이 인간의 소외와 아픔을 해결하고 치유하는 상황에까지 와 있다. 이런 사실은 여러 실험결과를 통해 밝혀졌고 객관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분명 예술은 결국 인간이 의미 짓고 평가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부여했을 때 제대로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까닭에 예술은 반드시 소통을 전제로 해야 한다. 소통하지 않는 예술은 그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죽은 예술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이 개인의 주관에서 출발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예술은 단지 개인의 주관적인 놀이만은 결코 아니다. 혼자서 작업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에 머문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권태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개인의 감각적인 놀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예술은 소통하는 놀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작가는 문학을 창작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몸짓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작가와 대중이 만나는 예술을 통한 소통의 자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 핵심이 바로 작품의 전시활동과 발표활동이다. 그 활동이 활발하면 할수록 그만큼 예술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이 높고 공감과 나눔의 활동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열과 성취감은 최대의 극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가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한순간에 결코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다 장기적인 투자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와 더불어 학교 현장이나 사회교육기관에서 문화 예술교육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야 한다. 그래야 생활 속에서 예술이 자리매김이 될 뿐만 아니라 예술적 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요즘 K-POP은 물론이고 각 문화예술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한류의 열풍은 대단하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적으로 명성을 드높인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한 국가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국내의 문화예술의 현실은 어떠한가? 제대로 예술을 공유하고 향유하는 환경이 되어 있는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 수준의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능력과 자질도 뛰어나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예술에 대한 소통을 통한 공감대 형성과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아낌없는 지원과 관심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필자 역시 처음 문단에 등단했을 때 글을 쓰면서 문학에 심취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 널리 알려진 베스트 작가의 대열에 끼지 못했다. 하지만 문학에 심취해 있는 동안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에 직면한 경험이 있다. 전업 작가로 예술 활동을 전념해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것이 한국 예술문화의 현주소다. 예술은 더 이상 본업이 아닌 부업으로 해야 하는 일이 된 것이다.
물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작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꽤 많다. 나름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소통의 공간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상황과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극빈의 상태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예술가가 의외로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예술이 제대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까하는 부분에서는 회의적이다.
호구지책도 될 수 없는 예술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예술에 대한 열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일단은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그 다음의 문제가 해결되고 여유를 가졌을 때 진정한 예술에의 접근 또는 향유가 되지 않겠는가.
자녀를 키울 때 봉급생활자로서는 예술가를 키워낼 수 없다는 어느 부모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재능이 먼저냐 자신의 의지가 먼저냐, 아니면 돈이 먼저냐 등 여러 가지 상황이 연출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술가와 대중이 만나는 진정한 소통과 만남의 장이 자주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서로 공감과 나눔의 장이 마련되었을 때 진정 예술은 빛을 발할 수 있고 참다운 문화를 깨닫게 되고 진정한 예술을 읽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핸드폰 판매원에서 세계적인 성악가로 명성을 날리게 된 폴 포츠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인간의 예술적 재능은 결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의 재능이 뒤늦게 발굴되었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는 그의 재능을 능히 구가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이에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듯이 심혈을 기울인 하나의 작품은 영원토록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선사한다. 그것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고 우리의 영혼을 뒤흔드는 제대로 된 작품일 경우에는 더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훌륭한 작품이 창작된 이후에 물거품처럼 쉽게 사그라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진정한 가치를 가진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 대해서는 존경과 배려의 마음을 가짐이 마땅하다. 이제는 우리도 나름 살만해졌다면 아등바등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예술적인 부분에도 우리의 눈을 한 번쯤 돌려봐야 되지 않을까.
이에 예술문화정책을 담당하는 분과 이에 관심을 가진 모든 분께 감히 말씀을 올리고 싶다. 예술인들이 마음껏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경기도 북부는 경기 남부에 비해 열악한 예술적 환경을 갖고 있다. 도청 소재지가 남쪽에 있다가 이제는 의정부에 북부청사가 생겼기는 하나 아직도 그 문화적 차이는 상당하다. 경기 북부에도 모든 경기도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예술적 공간이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몇 해 전 경기북부의 어느 지방단체장은 경제지상주의를 주장하면서 “00는 경제다”라고 지역 곳곳마다 슬로건을 걸어놓았었다. 한마디로 문화는 저 멀리 내팽개치고 오로지 기업유치를 위한 시설투자와 행정에만 전념하여 수십억 혹은 수백억을 투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침 해당 지역 청소년문화의 집에서 청소년문화행사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이에 필자가 학생들을 위한 순수 문화예술지원비로 시청의 예산이 얼마나 책정되었는지 질의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시청의 관계자로부터 청소년문화예술 지원비로 불과 몇 백만 원이 책정되었다는 답변을 직접 들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당 관계자도 청소년들을 위한 빈약한 예산을 스스로 인정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제우선주의의 시청 행정에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의 인기에 영합하여 지역 경제를 천지개벽의 상황에 이르게 하였지만 시민들이 자유롭게 숨 쉬고 쉴 만한 곳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역 문학단체 문예지 출간지원비로 매년 3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문인들이 책을 출간하는 일에 그리 뭐 비용이 많이 필요하느냐 식의 담당자의 반문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니 문학인으로서 자존심이 구겨지는 상황이었다. 음악단체에서 매년 연주회를 갖고 미술단체에서 전시회를 갖는다고 한다면 문학단체는 책을 내는 일이 가장 우선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문학을 냉대하는 차별적인 문화예술 담당자의 태도를 통해 뼈아픈 우리 문화의 현실을 경험했다. 어쩌면 그 지역은 예술이 죽은 도시라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스스로 다시 한 번 자문해 본다. 경제 강국이 문화 강국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다. 오히려 문화 강국이 경제 강국이 될지언정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결국 그 지역 자치단체장은 올해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제는 경제보다 예술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경기북부지역의 예술인들이 마음껏 자신의 작품 활동을 통해서 창작된 작품을 전시하고 모든 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 필요하다. 물론 지역자치단체장이 주도하는 예술적 단체의 육성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다양한 예술 문화 활동 속에서 충만한 삶의 에너지는 삶을 살찌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예술가들과 일반 시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예술적 공간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해야 한다. 1년 내내 자신의 작품을 마음껏 전시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이자 소통의 공간이 없다면 그만큼 예술은 죽어가고 쇠퇴되어 가는 것이다.
경기도 북부에 많은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자생적인 모임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자유롭게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도민과 시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상설적인 문화적 공간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상설전시장 및 창작 공간과 예술교육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 설치를 희망한다. 이왕이면 예술가들의 전용공간이라면 더욱 좋겠으니 그것도 어렵다면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전시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다행스럽게도 의정부시에서 얼마 전 의정부 시설관리공단 내에 문화예술 공간의 하나로 “문예샘터 갤러리”를 마련해 준 것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처럼 예술을 사랑하고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지역사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그 지역은 웃음과 행복이 꽃피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행복한 도시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성장하고 세계적인 문화예술 강국으로의 도약은 물론이고 행복한 문화가 꽃피우는 아름다운 국가가 될 것이다. 우리들 모두가 함께 더불어 문화 예술로 아름다움을 가꾸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꾸고 싶다.
예술은 분명 소통이다. 문학인으로서 진정 문화예술인의 참다운 나눔과 자유로운 교류의 공간이 하루 빨리 설치되길 기원한다.
예술은 소통이다(최봉희).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