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겨레가 나날이 살아가면서 입으로 말하고 글로도 쓰는 말이, 밖에서 들어온말에 밀려나고 버림받고 죽어 가고 있어, 지금 우리 말은 아주 엉망진창이 되었다.우리 말이 이렇게 병들고 죽어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겨레가 병들고 죽어 가고있는 것이다. 우리 말을 살리지 않고 우리 겨레를 살릴 수 없다.
우리 말을 어떻게 살릴까? 무엇보다도 먼저 잘못된 말 병든 말을 찾아내어야 한다. 쉽고 깨끗한 우리 말과 우리 말이 아닌 말(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우리 말이 되어서는 안 되는 말, 남 따라 쓰는 말, 책에서 배우고 방송을 듣고 그대로 쓰는 말)을 갈라 놓아야 한다. 우리 말이 아닌 말을 낱낱이 가려내어 이런 말이 우리 말을 잡아먹는 황소개구리라는 사실을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는 이 황소개구리 같은 말을 몰아내는 '우리 말 살려 쓰기'를 사람마다 나날이 밥을 먹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겨서 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바르고 깨끗한 우리 말과 병들고 비뚤어진 말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어떤 원칙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이 일을 해야 할까? 그리고 이 일은 누가 해야 하나? 아무나 다 이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먼저 이 일을 누가 할 수 있나 하는 문제부터 생각해 보겠다. 우리 말과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우리 말을 죽이는 말을 바로 보고 느끼고 그것을 잘 판단하는 일은 방안에서 책만 읽고 글만 쓰는 사람이나 책에 파묻혀 연구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는 결코 올바르게 할 수 없다. 오히려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일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서민들)이 잘 할 수 있다. 원칙은 어디까지나 그렇다. 그 까닭은 오늘날 우리 말이 이렇게 병들어 버린 근원은 책과 글에 있고, 그 책과 글을 만들고 지어 놓은 지식인들 쪽에 모든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깨끗한 우리 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또 잘못된 글쓰기 문화에 짓눌려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에 자신을 잃고 있다.(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을 '문맹자' '글봉사'라고 해서 아주 없애야 할 미개인으로 따돌리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 되었으니,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에서도 거꾸로 된 세상의 틀을 그대로 이용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래서 말과 글에 관한 참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백성의 한 사람으로 숨쉬고 살면서 백성의 삶과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대신해 말해 주면서 모두가 살아 있는 우리 말을 지키고 가꾸어 가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무엇이 우리 말인가, 우리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말을 버려야 하나 하는문제다. 우리 말의 원칙을 여러 가지로 들어서 말하기에 앞서, 그 원칙이 나오게 된 밑뿌리를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가 된다.
첫째, 깨끗한 우리 말일 것.
둘째, 글보다 말이 으뜸이다.
셋째, 살아 있는 말이라야 한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해서 좀더 자세히 우리 말의 원칙을 들어 보겠다.
<원칙>
① 시골의 농사꾼들, 학교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 글을 읽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거의 모두 깨끗한 우리 말이다.
②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는 방송을 따라 하는 말이나 학교에서 잘못 배운 말, 어른들한테서 잘못 배운 말이 더러 나오지만, 대체로 어른들의 말보다 깨끗하다.
③ 지금부터 60년이나 70년 전부터 누구나 입으로 하던 말은 우리 말이다.
④ 입으로 하지 않는 말, 글에서만 나오는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다. 다만 옛날부터 우리 글에서 쓰던 말이나, 옛날에는 입으로 하던 말이 지금은 글에서만 쓰게 된 말은 그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지금 우리가 입으로 널리 하고 있는 말이 있으면 그 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⑤ 밖에서 들어온 말이라도 그 말이 우리 말과 어느 정도 잘 어울리고, 또한 그 말에 대신할 우리 말이 없으면 우리 말로 삼는다.
⑥ 같은 뜻을 가진 우리 말이 두 가지 있으면 그 어느 쪽 한 가지를 쓸 수도 있고,두 가지를 다 쓸 수도 있다.
⑦ 모든 글은 그것을 읽었을 때 귀로 들어서 곧 알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귀로 들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다.
⑧ 꼭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도 오래 전부터 글로 써 왔고, 그래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말은 그대로 글로 쓸 수 있다.
⑨ 어떤 전문 분야(철학·종교·정치·경제·금융·상업·농업·공업·의학·건축……들)에서 쓰는 말, 곧 누구든지 나날의 삶에서 흔하게 쓰지 않는 말은 그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말로 다듬어 쓰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도 될 수 있는 대로 그 전문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쉬운 우리 말로 다듬어서 쓰는 것이 옳다.
⑩ 문학은 전문 분야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글쓰기이고,또한 말로 창조하는 예술이고, 겨레말을 살리는 일을 하는 자리다. 따라서 소설이든지 수필이든지 시든지, 그밖에 어떤 종류의 글도 일반 국민들, 백성들이 잘 알 수 있는 우리 말로 써야 한다.
⑪ 더구나 어린이들에게 읽히거나 들려주기 위해서 쓰는 글은 한층 더 깨끗한 우리 말로 써야 한다. 입으로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⑫ 관청이나 언론에서 또는 책에서 퍼뜨려 놓은 잘못된 말은 비록 오랫동안 널리 썼다고 하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⑬ 우리 말의 뿌리요 둥치가 되어 있는 농민들의 말은 우리 말 사전에도 올려 있지 않는 말이 아직도 많다. 이런 말을 모두 '사투리'로 잘못 알고 있지만, 깨끗한 우리 말로 보아야 한다.
⑭ 우리 말 사전에 올려 있는 말 가운데는 실지로 쓰지 않는 말,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되어서는 안 되는 말이 아주 많다.
⑮ 우리 말 사전에는 말을 풀이해 놓은 글이 우리 말이 아니고 우리 말법이 아닌 것이 아주 많다.
토박이말이 없어 들온말을 인정할 경우에 한자말과 서양말 두 가지가 있을 때는, 어느 것이 더 잘 우리 말에 어울리는가, 더 쉽고, 자연스럽게 쓰이는가, 어느 것이 먼저 들어온 말인가를 살펴서 그 어느 쪽을 우리 말로 받아들인다.
관공리나 지식인들이 새로 쓰는 어려운 말은,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들어온 말이든 우리 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 나라의 어떤 단체나 사람의 이름을 줄여서 나타낼 때는 외국말이나
외국글자로 써서는 안 된다. 또 우리 말로 나타내더라도 그렇게 줄인 말이 이상한 느낌을 주거나 엉뚱한 이름으로 잘못 느끼게 되지 않도록 줄여서 써야 한다.
모든 글은 한글로만 쓴다. 다만 특별한 경우에 어떤 외국의 글자를 묶음표 안에 넣어 쓸 수 있다.
맞춤법은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맞춤법 가운데 누가 보아도 잘못되어 있는 것은 바로잡아 쓸 수 있다.
눈으로 보거나 소리내어 읽었을 때 그 말뜻을 잘못 알게 되도록 쓰고 있는 맞춤법은 바로잡아서 쓴다.
<기준>
앞에서 든 스물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우리 말을 깨끗한 우리 말과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말로 나누고, 이 두 가지를 다시 몇 가지 갈래로 나누어서 그 보기를 들어 보겠다.
깨끗한 우리 말.
본디부터 있던 토박이말.
들어온 말.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말)
한자말
어려운 한자말.
느낌이 좋지 않거나 엉뚱한 뜻으로 알게 되는 말.
우리 말이 있는데도 공연히 쓰는 말.
일본말
일본말.
일본한자말.
일본말법.
일본글말.
일본글 셋째가리킴대이름씨.
일본 속담.
서양말
서양말, 또는 서양말 흉내낸 말.
서양말법.
서양 정서, 전통 흉내낸 말.
잘못 쓰는 글말.
다음에 보기를 든다. 각 항목마다 얼마쯤씩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사전에 올려 있는 모든 말을 이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깨끗한 우리 말
본디부터 있던 토박이 우리 말.
하늘. 땅. 바다. 구름. 나무. 바람. 눈. 비. 물. 안개. 길. 사람. 아이. 어른. 소.
마음. 새벽. …(이름씨)
나. 너. 그이. 저이. 이것. 저것. 그대. 누구. …(대이름씨)
하나. 둘. 셋. 첫째. 둘째. 셋째. …(셈씨)
본다. 듣는다. 간다. 일한다. 말한다. 먹는다. …(움직씨)
기쁘다. 반갑다. 슬프다. 아름답다. 깨끗하다. … (그림씨)
이다. 아니다. (잡음씨)
이. 그. 저. 새. 헌. 한. 두. 세. 서. 넉. 네. …(매김씨)
아주. 가끔. 빨리. 천천히. 저절로. 더구나. 방긋방긋. 팔랑팔랑. …(어찌씨)
아아. 아차. 어이쿠. 아뿔싸. 후유. 영차. …(느낌씨)
가. 이. 는. 에. 에서. 까지. 부터. 야. 을. 한테. 마다. 으로. …(토씨)
밖에서 들어왔지만 우리 말이 되어버린 말.
산. 강. 책. 신문. 학교. 학생. 교실. 역사. 사회. 문학. 예술. 철학. 자동차.
비행기. 전기. 전차. 민주주의. 자유. 국회. 회의. 내일. 냉장고. 정부. 감옥.
연필. 필통. 만년필. 운동장. 풍금. …
버스. 라디오. 텔레비전. 아파트. 피아노…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말.)
㈎ 한자말
㉠ 어려운 한자말.
조우. 해후. 호우. 기아. 미지수. 두건. 입자. 인후. 빈축. 선박. 유실수.불연성. 수수방관. 속수무책. 일전불사. 불가사의. …
㉡ 느낌이 좋지 않거나 엉뚱한 뜻으로 느끼게 하는 말. (우리 말에 어울릴 수 없는 말.)
오자. 오지. 오수. 오니. 오독. 비자금. 상판. 교각. 고객. 수수. 발발. 왕왕.의의. 의외. 의아(해한다.) 하자(흠). 종용. 우수(근심. 수심). 우아(하다.)
만끽(한다.) 끽연. 회화. 외화. 희화화(한다.) 화훼. 박차. 미풍. 미아. 영아.치아. 의상. 익사. 고의. 토로 …
㉢ 우리 말이 있는데 공연히 쓰는 말.
대지. 초원. 여명. 황혼. 야생초. 야생화. 수로. 농토. 소로. 대로. 영아. 유아.미소. 서식. 종자. 파종. 수확. 제초. 작물. 작황. 돌연. 돌입. 미래. 붕괴. 상호.석권. 관건. 도서. 기로. 우회로. 첩경. 해안. 계곡. 산정. 춘계. 추계. 하계.동계. 완구. 주방. 식탁. 사용. 성인. 실내. 노천. 수목. 온수. 냉수. 음료수.체구. 이환. 치유. 발한. 동일. 의복. 가구. 위치한다. 웅변한다. 등장한다.
소유한다. 유실한다. 분실한다. 망각한다. 증오한다. 비탄한다. 견고하다. 가능하다. …
㉣ 같은 한자말이면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말을 써야 한다.
대기(공기). 계기(기회). 종용(권유). 우려(염려). 표출(표현). 출범(출발). …
㉤ 많이 쓰는 말도 우리 말을 찾아 쓰면 더 좋은 말이 된다.
사용한다(쓴다). 활용한다(살려 쓴다). 도서(책). 인간(사람). 계속(자꾸.잇달아). 각자(저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사망(죽음). 작업(일).실천한다(한다). 노동한다(일한다). 출발한다(나선다). 도착했다(닿았다).관찰한다(살펴본다). 기록한다(적는다). 장소(곳). 시일(때). 이유(까닭). 등(들.따위). 도로(길). 가격(값). 노트(공책). 게임(놀이. 운동. 경기.) …
㈏ 일본말
일본말을 그대로 쓰는 경우.
야끼마시. 가다마에. 에리. 입빠이. 고데. 아다리. 가다로꾸. 요오지. 도비라.시와. 우라. 에에또. 앗싸. 요이샤. 찌찌. …
㉢ 한자 섞인 일본 글 따라 쓰는 말.
특히. 필히. 공히. 극히. 심히. 쾌히. 일제히. 일일이. 비해. …
㉣ 일본말법.
나의 집. 나의 학교. 나의 어머니. 나의 사는 곳. 나의 존경하는 사람. 만남의 광장. …
되어진다. 주어진다. 던져진다. …
불린다.(그는 천재라 불린다. 따위)
라고. ("……간다"라고 말했다.)
-에 있어. -에 있어서. -에 있어서의.
에의. 로의. 에로. 에로의. 으로부터(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따위). 에서의.와의. 마다에. …
보다(보다 나은…따위) 뿐만 아니라(우리 말은 '그뿐만 아니라')
그러나 (일본말 따라 글의 중간에 쓰는 경우)
㉤ 셋째가리킴대이름씨
그녀.
흔히 쓰는 일본말. 일본 이음말.
-에 다름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줄여서 '그럼에도' '불구'따위로도 나타남). -에 의하여. -를 통해서. -로 인한. …
일본 속담. 버릇말.
도토리 키 재기. 벌레를 씹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손에 땀을 쥔다.
…
첫댓글 이글을 여기서 또 보게 됩니다...이 오덕님의 존경하는 동무가 편지로 보내서 읽어봤지요..
인쇄해서 아예 들고 다니면서 외우다 시피 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