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신문을 읽다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고 저는 제주도 문화행정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먼저 글을 쓰신 분도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우선 기사를 읽지 못한 분을 위해서 기사 전문을 올립니다.
한겨레2001년10월30일자
'섬집아기' 노래비 제주 구좌읍에 세우기로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는 가사의 자장가 `섬집 아기'의 노래비가 제주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 해안에 세워진다.
제주도는 29일 이 노래의 작곡가인 고 이흥렬(1909~1981) 선생의 가족과 함께 노래비를 세우기로 뜻을 모으고 1억5천만원의 예산을 투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래비 건립은 이 선생의 아들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영조 교수(작곡가)가 지난 6월 열린 제1회 탐라전국합창축제에서 창작합창곡 `한라산'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합창제 때 제주도 해안을 돌아보다 이 교수는 해안경치가 빼어난 종달리 해안이 노래비 건립에 알맞다고 생각해, `한라산' 노래 저작권을 제주도에 주는 조건으로 제주도와 `섬집 아기' 노래비 제막에 합의했다.
이번에 세워지는 노래비는 8분음표를 가운데 두고 양옆에는 까만 현무암으로 된 오름능선이 자리한 모습이다.
노래비 기공식은 이 선생의 20주기인 다음달 17일 종달리 해안에서 열린다.
함남 원산 출신인 고 이흥렬 선생은 `봄이 오면' `바위고개' `자장가' 등 400여곡에 이르는 가곡과 국민가요, 동요 등을 작곡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저는 이영조 교수 개인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1억5천만원을 쾌척해서 해안경관이 빼어난 구좌읍 종달리 해안에 노래비를 세운다고 하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건 어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 문화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문화행정의 일환이기 때문에 그 구성원인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서귀포시에 이중섭거리가 조성돼 있습니다. 이중섭씨는 한때 이곳에서 머무르며 작품활동을 했었고, 주변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소 그림도 이곳에서 그려졌다는 얘기가 있지요. 그래서 이중섭 거리는 지금은 소박하게 시작하지만 이 지역의 명물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섬집아기'의 경우는 다릅니다.
너무나 유명한 노래라 다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번 노랫말을 음미해 볼까요?
섬집아기
<한인현 작사, 이흥렬 작곡 >
1. 엄마가 섬 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듭니다
2.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어린시절 이 노래를 한 번쯤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는 명곡이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노랫말을 음미하노라니 아련한 향수에 젖어들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랫말 속의 엄마와 아기가 보여주는 따스한 서정이 어느 한 지역의 노래비 건립으로 구체화 될 때는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곡의 작곡가가 제주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거나 '섬집아기'라는 곡이 제주라는 섬을 소재로 해서 쓰여졌다거나, 노래에 담고 있는 정서가 제주를 연상케 한다거나 뭐 최소한 그런 요소들이라도 갖고 있다면 제 주장이 약간 억지스러워 보일지도 모르지요.
단지 섬을 노래하고 있어서, 또는 그 작곡가의 아들이 제주를 소재로한 합창곡 '한라산'을 작곡했기 때문에, 구좌읍 종달리의 해안 경관이 아름다와서, 또는 '섬집아기' 노래가 너무나 유명한 노래라서 등의 이유로 도정이 움직인다는 건 제 주장보다 더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제주도민들이 납득이 가게 사업의 타당성을 설명해 주는 친절을 베풀어주셨으면 좋겠구요, 저는 여기에서 섬집아기 노래가 제주에 세워져서는 안되는 몇가지 이유를 들고자 합니다.
앞엣 분도 지적을 하셨지만 노랫말의 정서가 제주의 정서와는 많이 다릅니다.
노랫말 중 엄마, 아기등 보편적인 정서를 빼놓고 섬그늘, 굴바구니, 갈매기 울음소리, 모랫길 등의 낱말을 쭉 열거해 놓고 떠오르는 섬 이미지를 찾는다면 그중에 제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또 제주도 사람 중에 굴바구니를 들고 굴을 따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노래속에 나오는 엄마의 굴바구니는 한끼 반찬거리 해결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생업의 의미가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제주에선 굴이 흔하게 보이는 먹을거리는 아니지요. 보말, 성게 등속을 잡다가 어쩌다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돌로 껍질을 깨어서 먹는 입가심거리나 될까요? 가장 심각하게 이질적인 요소입니다.
갈매기 울음소리 역시 제주의 바다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끼룩끼룩 하는 갈매기 울음소리를 근간에 제주바다에서 들어보신 분 있으세요?
저는 여기에서 오히려 전라남도의 다도해에 속해 있는 더 조그마한 섬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길게 드리워진 섬들의 그림자, 그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노니는 갈매기들…
제주에 이 노래비를 건립하려면 아마 노랫말중 '굴'을 소라, 성게 또는 그나마 '조개' 쯤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구좌읍 종달리에 굴 양식장이라도 세워야 할걸요. 웃기는 일이지요.
온 국민이 애창하는 명곡을 기념할 만한 노래비는 적재적소에 세워져야 더욱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두고두고 기리고 기념이 돼야 마땅합니다. 엉뚱한 곳에 세워서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주에는 제주에 맞는 노래비가 세워져야겠지요.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를 노래하는 도내 작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작고 소박하지만 그것을 찾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