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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잃어버린 티켓과 수표를 다시 발급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오후에는 관광을 하는 싸이클이 계속되었다.
우선 방문했던 곳 중 기억에 남는 곳은 프라도 미술관이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큰 미술관 답게 도착했던 오후 3시 무렵에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줄의 길이를 보아하니 최소한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할것 같아 포기를 하려 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래층으로도 사람들이 입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줄이 없다! 이게 웬떡이냐 싶어 표를 사고 얼른 입장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윗층 줄은 특별전 입장하는 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게 길게 줄을 서가며 볼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든다.
[프라도 미술관 앞마당에 나란히 서있던 국산차 라비타(유럽명 Matrix)와 액센트. 미술관 안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기에 이것이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프라도 관련사진이다]
어쨌든 프라도 미술관에서 우리는 여러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직접 두 눈으로 감상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들 - 루벤스(만화영화 프란다스의 개에서 소년이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바로 그 루벤스. 화구세트 브랜드 중에도 루벤스 있다), 벨라스케스, 고야, 엘 그레코 등의 작품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니.
그러나 솔직히 고백한다. 프라도 미술관, 우리에게는 그저 그랬다.
작품 감상을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도 한 몫을 했고 작품들이 지향하는 바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코드와는 별로 맞지 않았다.
작품의 대부분은 그 당시 왕이나 왕비, 또는 귀족들의 초상화, 그리고 신을 향한 신앙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
당시에 그정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대단한 것이었겠지만 이면에 감추어진 왕족이나 귀족들의 군림, 피치못하게 권력앞에 나약할 수 밖에 없었을 화가 자신, 자신들의 권력과 동일시하기 위해 돈을 주고 시킨 종교화 등등이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웠다.
특히 종교화에 대해서 죠셉이 한마디했다.
"저게 정말 신앙심의 발로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니?"
화가가 느낀 만큼 우리도 느껴야 하는데, 어느 쪽의 느낌이 부족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가 되어있었다.
그때문에 사진이 한장도 없다.
그래서 유일하게 우리가 감명받았던 고대 espanol의 Medieval pictura들을 소개하는 데도 지장이 많은 듯 하다.
지하쪽에 자리잡은 이 Medieval pictura관은 굉장히 미개하고 원시적인 2~3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시대의 회화를 담고 있다.
벽돌색같은 돌가루 물감같은 것으로 칠해놓은 인물이나 풍경은 투박한 붓놀림에도 불구하고 내 눈을 사로잡으며 나를 그 옛날 그들이 살던 당시로 인도하는 듯 했다.
만일 마드리드의 프라도를 방문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계획에 넣을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관람중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1층에 마련된 조각상 전시실에는 아폴로 상이 서있는데 아쉽게도(?) 남근이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훼손이 된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가 다른 남성상을 보는데 또 남근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이건 또 어디간거야?"라고 말했는데 옆에 있던 죠셉이 배를 잡고 웃었던 적이 있다.
사람마다 보는 것은 다 같은 모양.
조각상의 표정은 안보여도 그곳은 놓치지 않고 보게 되는데 어떤 집착강한 여성인지, 아니면 남성인지... 가져가버리다니.
그것을 기념품으로 집에 보관하고 있는 것도 우스울텐데.
아마 볼때는 단순한 호기심에, 아니면 탐이 나서 떼어냈을 테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보고는 쓸모가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되돌려줄 방법을 찾지 못해 그냥 장농 서랍속에 감춰뒀을지도.
그러고 보니 대다수의 종교화에는 남녀의 나신을 비롯해 각종 천사들이 옷을 벗은 채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매우 교묘한 방법으로 주요부위를 가리고 있다.
거의 천조각은 몸에서 흘러내렸는데 하필이면 주요부위를 가리며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예 옷자체가 없는 어린 천사들의 경우에는 지형지물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예를 들자면 옆에 자라던 포도나뭇잎이 갑자기 뻗어나와 천사를 도와준다!
조금 장난스럽게 써내려온 느낌이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때 당시에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종교적 검열이 어떠했는지 느낄 수 있다.
[다시 관광을 할때는 이런 투어 버스를 타고! 사진은 Madrid Vision 버스]
프라도를 다녀오면서 내 나라, 내조국의 박물관, 미술관도 안가보면서 이런 데는 오다니 조금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우리나라에서부터 관심을 가지려 한다. 만일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우리 것에도 눈을 돌려볼 것을 권해본다.
국립 현대 미술관 http://www.moca.go.kr/
국립 중앙 박물관 http://www.museum.go.kr/
그렇게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고 우리가 간 곳은 왕궁(Palacio Real)이다. 처음에 이 "레알"이라는 단어에 의문이 많이 갔다.
까막눈으로 스페인어 Palacio Real을 살펴보면 대충 "진짜 궁전"정도로 보일 법도 하다.
그런데 왜 왕궁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영어의 "realm(왕국)"과 어원이 같은 것으로 추측된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도 왕실에서 후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곳곳에서 우리는 이 "레알"을 만나왔던 것이다.
왕궁의 마당은 매우 넓어서 보기에도 시원하다.
궁중 유물들도 한 눈에 들어오게 잘 전시되어 있었다.
나중에 필자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방문하는데 그곳보다 이 곳이 한 수 위라는 느낌이 들었다.
[청명한 하늘만큼이나 앞마당도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왕궁에서 바라본 마드리드 전경]
크기에서는 앞서지만 내용이 다소 부실한 베르사이유, 그리고 알이 꽉찬 석류같은 스페인의 왕궁이라고 하면 어떨까.
죠셉은 특히 만찬 테이블과 여러 벽장식과 커튼 등에 관심을 보였다.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을 기다란 테이블. 저런 데서 밥을 먹으면 더 맛있을까요?]
[신비로운 커튼을 걷고 들어가면 아름다운 스페인의 공주가 나를 맞아줄지도...이런 환상속에 아무데나 걸어들어가면 경비원한테 혼나요!!]
[스페인의 왕궁답게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는데 프랑스 관광객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웃나라여서 놀러오기도 가장 좋은듯]
그 다음에 마드리드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플라멩코"이다.
어쩌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건물이나 전시와 분야가 달라 직접비교대상이 아닐 뿐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단연 플라멩코였다.
루까스 민박집 아저씨의 안내로 간 클럽은 "Las Carboneras"라는 조그만 클럽이었다.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더 큰 곳으로 가면 댄서들의 호흡이나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너무 앞자리에 앉으면 그들의 땀방울같은 것이 그대로 튀기도 하기 때문에 약간 뒷자리가 좋다며 자리를 잡은 "세심한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공연은 밤 10시 반경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3명의 여성과 두명의 남성 만으로 시작을 하는데 나중에 메인으로 보이는 남성댄서와 여성댄서가 각각 하나씩 더 나와 무대는 열기로 가득차게된다.
플라멩코는 알다시피 집시들에게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춤인데 그 안에 그들의 모든 감정이 다 담겨있다.
나는 그 말을 한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기쁨, 즐거움, 슬픔, 분노, 몰두, 공감, 보살핌, 사랑, 우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격정"과 "고요"같은 극과 극의 개념이 서로 잘 어울릴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같은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노래에서는 언젠가 그들이 떠돌았을 너른 황색의 벌판이 느껴졌다.
[여성3, 남성2, 기타 2로 구성이 되고 처음에는 여성 셋이서 번갈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뒤의 남성 둘은 코러스와 캐스터네츠를 치는 정도의 역할. 이것이 필자가 찍은 유일한 플라멩코 사진이다. 공연히 셔터를 누르느라 감상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아래의 사진들은 모두 죠셉의 작품]
[나는 플라멩코를 감상하면서 여러번 놀랐는데 그 중 첫번째는 여자들치고 너무 목청이 좋아서였고 두번째로는 머리도 뒤로 쪽찌고 의상도 화려한데 의외로 똥배가 나와서였다]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면 점점 홀안의 열기는 더해간다.]
[갑자기 남성 무용수의 등장. 홀안을 그의 넘치는 파워로 가득채워버렸다]
[이들은 엄청난 목청으로 노랫가락을 뽑아내다가도 갑자기 노래를 멈추는데 그때는 정말 숨막히는 긴장감이 감돈다]
[뒤에 이 집의 상호 Las Carboneras라고 멋들어진 기타모양으로 씌여있는게 보이시는지?]
[또다른 여성 무용수의 등장. 가장 어리고 아리따운 여성이 이 메인 무용수의 자리를 차지하는 듯 했다. 상당히 동양적으로 생겼던 그녀는 정말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의상 뒷편에 흐르는 자수가 매력적인 그녀의 바디라인을 잘 표현해준다]
[서로 손뼉을 쳐주며 웃어주고, 흥을 돋우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정말 예쁘게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플라멩코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었다]
[플라멩코는 참 흑백사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께서는 아시는지?]
[공연관람 내내 걱정이 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네들 손바닥 찢어질까봐. 어찌나 박수를 크게 치는지!]
플라멩코는 말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직접 보지 않고는 어떠한 감상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플라멩코를 보았다면 그것은 스페인을 본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가 마드리드에 도착한 5월 15일은 마드리드의 축제일이었다.
산 이시도르 성인의 기념일로서 많은 사람들이 마요르 광장에 모여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거대한 무대가 광장 한가운데 만들어져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근데 그 노래라는 것이 좀 멋있으면 좋았을텐데 영 분위기가 요즘 추세에는 어울리지 않는지라 같이 열광하기는 힘들었다.
무슨 80년대의 촌스러운 산레모 가요제나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두 가요제 다 80년대에 한국에도 TV에 잠깐씩 소개되곤 했는데 필자는 그때의 분위기를 2003년 5월에 마드리드에서 다시 기억해냈다!)
[산 이시도르 축제가 한창인 마요르 광장. 가운데에 설치된 큰 무대가 보인다]
광장에서 축제를 구경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던 도중 불꽃놀이를 만났다.
정말 그 폭발음은 굉장해서 예비군 병장 출신들인 우리들로서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이나 임산부, 노약자들도 같이 살고 있을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에서 그와 같은 굉음이 밤 1시가 되도록 울리는 것 보면 반대로 스페인 사람들이 얼마나 산 이시도르 축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만도 했다.
[멋지게 터지는 불꽃놀이 장면. 그 폭음때문에 우리가 촬영을 하던 다리 아래서 자고 있던 걸인들이 모두 벌떡 깨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었다]
마드리드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면 원래 계획에 있던 투우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못본것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는 유럽여행경험자라면 누구나 다시 한 번 다녀오기를 꿈꾸듯이 말이다!
꿈을 가지세요, 다시 갈 수 있어요!! ^^
첫댓글 와~ 사진으로 보니 너무 좋아요!! 나두 가고 싶다. ^^
하늘 사진 참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