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고들 일이 있고 멈출 일이 있다. 물론 그 기준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성취가 필요한 일에 매진하는 것과 엉뚱한 일에 천착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악마를 보았다>는 살인범 장경철(최민식)과 희생자의 약혼자인 김수현(이병헌) 사이의 대결과 복수에 대한 영화다. 장경철은 악질 연쇄 살인마다. 장경철은 강간, 살인, 시신 훼손이 주취미다. 장경철에게는 절도와 상해는 범죄 축에도 안 들 지경이다. 한편, 김수현은 약혼녀를 사랑했다. 약혼녀는 임신 중이며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장경철이 약혼녀에게 고통을 주고 처참하게 살해하고 신체를 절단했다. 직업이 국정원 경호요원이라 치고 받는 일에 능숙한 것 외에는 평범했던 김수현이 복수에 나선다.
사이코패스 장경철. 혹시 연쇄살인범 장경철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럴 리가 없다. 우선 감독이 범죄 행위 외에는 장경철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없는데, 관객이 무슨 수로 이 영화 안에서 장경철의 심리를 설명한단 말인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즉 이유 없이 무차별적으로 범행과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바로 사이코패스의 특징이기도 하다. 사이코패스가 죄책감이나 동정이 없이 어떤 식으로 극악무도한 행동을 일삼는지에 대해서는 영화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비록 이러한 나열에 영화적 장치가 들어 있건 혹은 영화가 현실을 다 보여주지 못했건 간에, 사이코패스의 본질은 반영되어 있다.
이상심리학적으로 분류하자면, 반사회적 성격장애 중 일부가 사이코패스에 해당된다. 사이코패스는 도덕과 양심이 전혀 없으며, 무책임하고 규칙을 조롱한다. 혹시 도덕적 기준에 대해서 입으로는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도덕적 감정은 전혀 없다. 자기애가 강하고, 대인관계에서는 애착이 없다. 폭발적이고 충동적인 범죄가 빈번하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문제는 감정과 공감 능력의 결여다. 감정 분화는 원시적 감정인 ‘쾌-불쾌’수준에서 끝이다. 그들은 심심해서 강간이나 살인 등의 잔혹한 행위를 하면서 자극을 찾을 뿐이다. 희생자의 고통이 어떤 지는 전혀 모른다.
희생자나 희생자 가족이 아닌 경우에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람인데, 새 사람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이코패스에 대한 교화나 교정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면 대략 맞다. 심리학자 김태형의 저서 <사이코패스와 나르시시스트>(2009)를 인용하자면, 현재까지는 사이코패스의 치료는 아예 불가능하거나 어린 시절 이후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102-103쪽). 현재로서는 사이코패스의 원인은 정서와 관련된 뇌 영역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치료라면,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처럼 캡슐에 넣었다가 치료방법이 확실히 개발되었을 때 깨어나게 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복수의 화신 김수현. 장경철의 심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과는 달리, 복수에 나서는 김수현의 심리는 어느 선까지는 공감할 수 있다. 훼손된 약혼녀의 시신 앞에서 김수현이 느꼈을 감정은 슬픔과 분노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약혼녀의 장례를 치르는 ‘화장터 장면’까지는 김수현이 느끼는 슬픔에 빠르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또한 약혼녀가 처참한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 구조를 기다렸을 일을 떠올리면, 저절로 ‘도대체 나는 그때 무엇을 했나?’라고 자책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김수현의 눈물 뒤에는 무력감, 죄책감, 상실감이 깔려있다. 김수현이 자신의 아파트에 홀로 앉아 희미한 불빛 속에서 잠을 못 이루는 장면은 그의 우울과 좌절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우울은 그 무게만큼의 분노로 바뀐다. ‘복수하리라. 처절하게 복수하리라.’ 김수현은 복수를 위해 보름간 휴가를 내서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살인범 장경철을 잡는다.
‘상실과 죄책감-우울-분노-복수’의 연결은 공감 가능하다. 범인을 잡는 것까지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안전한 범위 내에서 수긍할 수 있다. <악마를 보았다>의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잡았다 놓아주기를 반복하면서 줄줄이 희생자가 발생하는 지점부터는 영화에서 이야기의 전원이 꺼지고, 김수현의 심리도 오리무중이다. 김수현의 경우는, 충격적인 사건과 극도의 스트레스 경험이 애도 기간과 겹쳐지면서 ‘단기간의 사고장애가 동반된 비정형적인 우울증과 복수 강박증 상태’가 아닌가 의심될 지경이다. 길게 말했지만, 한마디로 그 시점부터는 김수현도 제정신이 아니다.
사이코패스 장경철의 경우 심리치료가 불가능한데 비해서, 희생자 가족 김수현은 심리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김수현은 약혼녀의 장례가 끝난 이후에 곧바로 복수에 나설 일이 아니라, 일단 안정을 취했어야 한다. 극심한 슬픔으로 울다 까무러치는 대신에, 김수현이 택한 것은 복수하다 까무러치는 일이었다. 그러니 치료적으로 보자면, 약혼녀에 대한 심리적 애도기간에는 정서상의 문제가 좀 정리되어야, 이후에 김수현이 적절한 적응이나 대처 행동을 보일 수 있게 된다. 물론, 복수 영화인데,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복수의 가치. 소제목을 보고 분석심리학자 카렌 호나이의 책을 떠올렸다면 약간 미안하다.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복수와 살인의 장면을 끌어가기 위한 인위성’은 이야기뿐 아니라 인물의 특성으로 보아도 이 영화의 맹점이라 할 수 있다. 김수현은 장경철을 잡았다 고통을 주고 놓아주기를 반복하면서 장경철이 후회하고 반성하기를 바란다. 그런 식으로 하면, 장경철이 무언가 느끼리라 기대하고, 자신의 행동이 복수라 여긴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서 사이코패스인 장경철이 과연 고통을 느끼거나 후회를 했을까?
그러나 사이코페스에게 자기 반성이란 없다. 혹시 사이코패스가 갑자기 기가 죽거나 순한 태도를 보여도 후회나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단지 자신의 ‘웅대한 위대성이 좌절’되거나 혹은 ‘체포된 것에 대한 자기 연민’일 뿐이다. 또한, 사이코패스는 자기 자신의 고통이나 공포도 정상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심리학자 리퍼트와 센터(Lippert & Senter,1966)의 실험에 의하면, 사이코패스는 불안과 공포에 관련된 정상적인 생리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즉 두려움조차도 못 느끼거나 거의 못 느낀다. 또 다른 실험을 보면 그들은 이별, 죽음과 같은 ‘감정적 단어’에 대해서도 사물에 대한 반응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즉 슬픔은 없다. 또한 고통을 주어도, 그 감정이 지속되지 않고 금방 사라져 버린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브라이언 이니스가 쓴 범죄심리에 대한 <프로파일링>(2005)에 나온 예다. ‘뒤셀도르프의 뱀파이어’로 알려진, 피터 쿠르텐이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는 참수형 전에 식사를 맛있게 한 후에 말했다. “잠깐 동안이나마 내 목에서 피 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 즐거움을 끝장내는 마지막 즐거움이 될 것이다(42쪽).” 이상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
김수현은 국가정보원 경호팀 소속이다. 즉 업무상 사이코패스의 특성에 대해서는 알만큼 아는 직업이란 의미다. 굳이 프로파일러가 아니라 하더라도, 범죄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이런 점들을 숙지하고 있다. 김수현이 연수 교육 시간에 구석에 앉아 졸았다면 모를까, 틀림없이 범죄심리 연수 평점을 이수했을 것이다. 그런 김수현이 장경철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하면 후회하고 슬퍼할 것이라고 여긴다는 말인가? 또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의 범죄패턴을 아는데, 잡았다 놓아준단 말인가? 설마 농담이겠지. <복수의 심리학>(2009) 저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마이클 맥컬러프에 의하면, 개인적 복수가 문명화된 법치 사회의 금기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욕망이기는 하다. 그러나 복수의 수단이 될 수 없는 행동으로 복수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복수상황 설정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셈이다. 결국, <악마를 보았다>는 사이코패스 장경철의 범죄행위를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희생자 가족 김수현의 복수와 심리를 보여주는 데는 다수의 의문을 남겼다.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인물 설정도 이야기도 설득력이 낮은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끔찍한 살인 행위와 인간성 파괴를 보여주는 일이, 더욱 파고들 일인가 멈출 일인가? 처음에 말했듯 물론 기준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오류를 밀고 나가는 것은 매진이 아니라 맹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