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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자료실]/참고 산행기
2007-05-30 17:51:22
지리산 종주 산행 - 2004
2004. 8. 6. / 박광용
산행기간 : 2004. 8. 1. – 8. 3. (2박 3일)
참 가 자 : 박광용, 박규일 (조카, 고2), 박규빈 (아들, 중2), 허건녕 (처조카, 중2). 이상 총 4명
산행구간 : 성삼재 – 중산리 : 총 33.4 Km
1일차 성삼재 – 노고단 산장 – 노고단 고개 – 돼지령 – 임걸령 – 노루목 –
삼도봉 – 화개재 – 뱀사골 산장 (1박)
2일차 뱀사골 산장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 산장 – 형제봉 – 벽소령 산장 –
덕평봉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 산장 (1박)
3일차 세석 산장 - 촛대봉 – 삼신봉 – 연하봉 – 장터목 산장 – 제석봉 –
통천문 – 천왕봉 – 로터리 산장 – 칼바위 – 중산리
교통편
영등포 역까지 : 자가용 이용
영등포 – 구례구역 : 새마을호 (07:57발, 12:25착)
구례구역 – 성삼재 : 택시
중산리 – 진주 터미널 : 택시
진주 – 강남 고속 터미널 : 우등 (동양 고속, 19:00발, 23:18착)
강남 고속 터미널에서 : 자가용 이용
프롤로그
지금까지 학교 다닐 때 한라산, 설악산, 금정산 등 몇 군데 산을 친구 따라 다녀 본 것이 거의 전부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는 뒷동산에나 가족들과 나들이 해 본 것이 고작인 내가 작년 가을부터 규칙적인 산행을 결심하고 난 이후 서울 근교 산을 혼자 혹은 옆지기와 함께 오르기를 시작하면서, 올해 초 가족 모임에서 규일이, 규빈이를 동반한 지리산 종주를 제안해 버렸다.
나 자신도 지리산 종주는 처음 생각한 것이라 심적으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아들과 조카 녀석들의 정신적 육체적 훈련을 겸하여, 내 자신의 정신적 극기훈련의 일환으로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내 자신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 친지와 친구들에게도 공표하여 동행자를 모집하였으나 다행히 많은 인원이 모이지는 않았고 – 참가자가 많지 않아 다행입니다 - 규빈이와 나이가 같은 처조카 허건녕이 참가를 희망하여 동행하기로 결정하였고, 마침내 총 인원 4명이 ‘8월 1일 (2박 3일), 지리 종주 산행 개시’를 만천하에 공고하였다.
사전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여러 등산관련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한국의 산하’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발견하고 그 내용이 가장 충실하다고 판단하여, 이곳에 올라온 여러 가지 산행기를 참조하였으며, 특히 올 여름 온 가족 (5명)이 지리 종주를 마친 내 친구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음을 밝혀둔다.
자료 준비만으로 종주를 완성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내 자신의 육체적 단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주말마다 산행을 결심하고 서울 근교의 산을 섭렵하기 시작하였다. 더러는 옆지기와, 더러는 친구들과, 아주 간혹 규빈이와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검단산, 용마산, 예봉산, 남한산성, 대모산 등등 4-6시간짜리 산행을 매주 빠지지 않고 다닌 덕분으로 다리에도 근육이 붙어 탄탄해지고 심폐기능도 상당히 호전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육체적으로는 준비가 된 것으로 판단되니 자신감도 생긴다.
지리 종주 산행 공고가 나가고 이에 대한 예행연습으로 지난 7월 18일 청계-광교산 연결 종주를 실시하기로 참가자를 집합시켰으나, 규일이가 빠지고, 규빈, 건녕이 참가하여 종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규빈이는 그런대로 따라오는데 건녕이가 많이 힘들어 하면서도 따라오기는 한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운데도 불구하고 망경대에서 마왕굴-석기봉으로 이어지는 험로에서도 침착하게 잘 따라와 준 규빈이와 건녕이가 고맙기까지 하다. 하오고개에서 건너편 광교산 지역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건녕이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청계산 종주로 만족하기로 한다. 광교산까지 끌고 갔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둔 판단이었다.
더불어 산장을 예약하는데 에피소드 한도막, 총 인원 4명이므로 두 사람이 나누어서 예약을 하여야 하는데, 내가 3명을 예약하고 건녕이네가 1명 예약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8월 1일 뱀사골 산장 예약은 7월 16일 밤 12시에 무사히 마쳤다. 8월 2일 장터목 산장을 예약하기로 하고 7월 17일 밤 12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국립공원관리공단 사이트에 접속이 안된다. 한 시간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그냥 자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7시경, 접속을 해보니 장터목은 예약이 끝난 상태고, 세석은 약 30석 정도 남아 있다. 얼른 세석에 3인 예약을 마치고 건녕이네로 전화하니, 건녕이는 6시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혼자 장터목에 예약을 하였단다. 그때에 자기는 4번째로 예약했다는데, 왜 내게 전화 안했냐고 하니까 나는 어른이니까 알아서 잘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단다. ㅎㅎ 결국 ‘허건영’ 이름으로 세석에도 예약을 해두었다.
산행 준비
극기 훈련을 겸비한 산행이므로 의복과 식량도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도록 지시 했다. 애들의 의복도 기능성 섬유 제품으로 갖추기에는 비용이 만만찮았다. 그냥 쿨맥스 티셔츠 한장만 준비하고 나머지 옷은 집에서 입던 면 티셔츠를 준비했다. 양말은 쿨맥스 제품으로 준비하고, 등산화도 각자 준비했다.
개인 식량은 6끼니에 해당하는 먹거리를 각자 준비하기로 하고, 밥을 지어 먹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아 햇반과 라면으로 준비한다. 이는 취사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엄청 편리하다. 부식은 포장 김치, 김, 국거리, 장조림, 깻닢, 고추장 등을 각자 조금씩 준비하였다.
우천 산행에 대비하여 비옷을 준비하라고 일렀고, 나도 애들을 위하여 비닐 우의 3장을 준비하여 배낭 망사 포켓에 넣어둔다.
산행기
8월 1일 (일), 아침 6시 30분 규일이가 우리집으로 왔다. 건녕이네의 도움으로 자동차를 타고 6시 45분 우리집을 출발하고, 영등포 역에 7시 15분 도착한다. 7시 57분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으로 출발, 열차가 연착을 한다. 12:12 도착예정이었으나 12:25에 도착했다. 근처 식당은 전부 회집 뿐이다. 그래도 그 중 깨끗한 집을 찾아가니 가장 빨리 준비되는 메뉴로 재첩국을 준비하고 있단다. 맛있게 한 그릇씩 뚝닥.
다시 역 앞으로 걸어 나와 곧바로 택시를 탔다. 멋진 검은 색 그랜저 XG다. 성삼재로 출발이다. 한참을 가더니 갑자기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 서 있다. 혹시 성삼재까지 밀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으나, 천은사 매표소에서 입장료 징수 때문이다. 10분정도 지체하며 매표소를 통과한다. 1시 35분 성삼재에 도착하여 잡다한 볼 일을 보고난 후, 지리산 입체지도가 그려진 붉은색 마후라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제작한 지리산 산행지도를 사서 애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붉은 마후라를 목에 둘러 매니까 그런대로 유니폼 같다.
1시 50분,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성삼재를 출발한 산행은 화창한 날씨의 도움(?)으로 큰 힘 들이지 않고 뱀사골 산장까지 갈 수 있었다. 중간중간 힘든 부분도 있었으나 고비마다 잘 참아 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태풍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고 작열하는 햇살이 따갑기는 하였으나 계속되는 숲길은 그리 덮지는 않았는데, 산행으로 인한 땀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할 시련이 아니던가? 흘린 땀의 대가로 스쳐가는 바람 한 점의 시원함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나? 지나온 힘든 길도 가볍게 느껴지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두려움도 자신감으로 바꿔주는 바로 그 바람 한 점 때문에 우리의 산행은 계속 되었다.
요즈음도 돼지가 출몰한다는 돼지령을 지나서, 임걸령샘에서의 그 물맛을 기억하겠니?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바로 그 물맛! 땀을 비오듯이 흘린 우리가 그 어떤 물을 먹던 맛이야 왜 없겠냐 마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물맛 좋다고 평가하는 물이니 우리는 그대로 믿기로 하자. 그 때, 그 오이 한 조각이 그렇게 단맛일 줄이야!
원래 예정으로는 반야봉을 오를 생각이었으나 진행 시간을 고려해 보니 반야봉을 오르게 되면 예약한 뱀사골 산장에 도착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 것으로 판단, 반야봉을 생략하고 노루목을 지나친다. 7시까지 뱀사골 산장에 도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산죽이 흩어져 있는 지루한 길을 지나서 오르막에서 건녕이가 힘들어 한다. 이번 오르막만 오르면 산장에 도착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마지막 응원을 보태준다. 어느덧 삼도봉이다. 원래 이름은 ‘날라리봉’이었다고 일러준다. ‘낫날봉’이라는 어원을 가진 이름의 봉우리가 많은 산악인들에 의해 ‘날나리봉’으로 불리고 있었으나, 지리산 국립공원이 지정되면서 개명한 것이라고 한다. 3초 만에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나니 건녕이와 규빈이가 삼도봉 표지를 붙잡고 한바퀴씩 도는 시늉을 한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오늘의 마지막 구간으로 내리막 길이니 큰 걱정은 없으나 내 자신이 경험이 없으니 일말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가는 길을 재촉하여 화개재에 도착하니 6시 8분이다. 화개재에서의 어렴풋한 저녁 안개를 기억하느냐? 저녁무렵 저 멀리 골짜기 사이로 내려 앉은 안개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뱀사골 산장지기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 준다. 멋진 용사의 모습도 장하고, 쌍계사 쪽 골짜기에 내려 앉은 안개가 훌륭한 배경이 되어 준다.
이제 200미터만 내려가면 된다. 둥근 나무를 받쳐놓은 계단 길이 보폭에 맞지 않아 쿵쿵거릴 때마다 무릎이 아프다. 그 200미터가 굉장히 길게만 느껴진다. 드디어 뱀사골 산장에 도착, 자리를 배정 받아 2층 침상에 배낭을 풀어놓고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취사장에도 식탁에도 꽉 차서 빈자리가 없다.
조금 기다리니 취사장에서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 옆의 식탁에서 정리 정돈하는 움직임이다. 다음 차례로 우리가 사용하는 것으로 하고 식수도 받아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우리 손으로 지어 먹는 첫번째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가져간 ‘햇반’을 먹기로 하고 물을 끓인다. 햇반 세개를 넣으니 큰 코펠이 꽉 찬다. 5분쯤 지나고 건져낸 후 다시 두개를 더 익힌다. 갖고 간 돼지고기 삼겹살을 구워가며 햇반 다섯 개를 모두 먹어 치운다. 나는 소주 두어 잔도 기울인다. 하지만 큰 실수!!! 국거리로 육개장을 먹기로 하였는데 물의 양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너무 싱거워 아무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첫번째 식사는 실패였다. 하지만 밑반찬과 시장함 때문에 그 맛은 꿀맛이었으리라. (나 혼자 생각인가??)
식사를 마치니 8시30분쯤 되었다. 문제가 발생했다. 육개장 국물을 버릴 곳이 없다.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가져온 쓰레기는 모두 되가져 가라’는 주문이다. 쓰레기 봉지를 가지고 내려가는 것은 얼마든지 찬성이지만, 그래도 잔밥 처리는 용인해 줘야 할 것이라 생각되는데 여기서 옥신각신할 필요는 없다. 고민이다. 내일 아침에 해결하기로 하고 육개장 국물이 담긴 코펠을 취사장 모퉁이에 두고 잠자리를 준비한다.
침낭을 받아오고, 이빨도 치약 없이 닦고 나니 9시가 넘었다. 소등시간이 10시란다. 물이 충분하지 못하여 손발 씻는 것이 번거롭다. 규일이가 샤워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모든 것을 이틀 뒤로 미루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작은 소망을 포기하고 잠자리에 든다.
습하고 더운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특히 2층이라 더 심한 것 같다. 거의 찜질방 수준이다.애들도 나도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뒤척이다가 12시가 되었을 무렵 좌우를 둘러보니 규일이 규빈이가 없다. 건녕이는 그 와중에도 살짝 코를 골고 있다. 귀에 대고 살짝 불러 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조심조심 밖으로 나가보니 규일이 규빈이가 세수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등, 미루었던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침실 밖에는 자리를 배정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 저곳 비박하고 있다. 취사장에도 처마 밑에도 빈자리가 없다. 차라리 침상보다는 여기가 더 시원하고 잠자기에는 더 나을 듯 싶다. 하지만 애들을 데리고 온 나로서는 그런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아무런 비박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벽에는 추위가 느껴질 정도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계단에 앉아 규일이와 규빈이에게 오늘 산행에 대해 물어 보았으나 별다른 감흥이 없는 모양이다. 더운데다가 재촉하는 산행을 하였으니 뭐 생각할 여유나 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보니 별이 너무 많다. 서울의 하늘이 원망스럽다. 맑은 하늘을 기대하며 내일의 즐거운 산행을 바라며 다시 잠자리를 찾았다.
아니 이게 웬 일인가? 어느 아저씨는 코를 심하게 골고 있고, 초등학생으로 여겨지는 어린 학생은 계속해서 잠꼬대를 하고 있다. 건녕이 바로 옆에서 자는 친구인데 조금이라도 팔다리에 부딪히는 것이 있으면 알아 듣지 못할 소리로 잠꼬대를 해댄다. 자기 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천하 태평이다. 오히려 간간히 코까지 골아 버린다. 거의 미칠 지경이다. 잠은 오는데 못 이루는 잠을 어쩌랴……
8월 2일 (월), 눈을 뜨니 5시 반이다. 약 3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애들은 아직 자고 있다. 오늘 산행 계획을 세워 본다. 가능하면 장터목까지 진행해 볼 생각이다. 예약은 세석에 4명 모두, 장터목에는 건녕이 혼자만 돼 있으나, 날씨가 괜찮다면 장터목 처마 밑에서라도 자 볼 생각을 해 본다. 6시 45분에 애들을 깨운다. 그래도 군소리 없이 일어난다. 고맙다. 서울에서라면 지금 시간이 한밤중일 것이다. 모두 야행성으로 생활 패턴이 바뀐 탓이다.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데 오늘도 햇반이다. 가져온 김, 김치, 고추장에 그런대로 밥을 넘긴다. 국물 없이 하는 식사는 뭔가 허전하다. 설거지를 하는데 모든 그릇은 휴지로 닦고 설거지를 끝내야 한다. 하지만 어제 저녁에 실패한 육개장 국물이 말썽이다. 버릴 곳이 없으니 도로 가져가란다. 할 수 없이 실례를 했다. 물통 하나를 비워 국물을 따르고 그냥 구석진 곳에 숨겨두고 나왔다. 나의 생각대로 처리한 결과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산장에는 잔반 처리는 할 수 있게 돼 있었다. 그래도 우리의 흔적, 쓰레기는 계속 짊어지고 다닌다.
아침에 꼭 해야 하는 일 등을 마치고, 2일차 산행 준비를 한다. 등산화 끈 동여 메고, 배낭끈 조여 메고, 뱀사골 산장 앞에서 멋진 사진 한 판을 찍고, 토끼봉으로 출발이다. 우선 어제 화개재에서 내려온 200미터를 다시 올라가는 오르막에서 건녕이가 처음부터 힘들어 한다. 200미터 오르고 휴식을 취하는 산행이 반복된다면 산행 진행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첫 오르막이라 휴식을 충분히 취한 뒤 갈 길을 재촉한다.
토끼봉 오르막이다. 토끼봉의 어원에 대해 일러둔다. 모양이 토끼를 닮아서가 아니라 반야봉에서 정동쪽(‘卯’ 방향)에 있는 봉우리라서 이름하였다고 일러둔다. 건녕이가 힘들어 하여 규일이와 규빈이를 먼저 올려 보내며 토끼봉 정상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건녕이를 다독거린다. 산행 리듬을 잃으면 서로가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건녕이는 많이 힘든 모양이다.
겨우겨우 토끼봉에 올랐는데 규일이 규빈이가 없다. 혹시나 지나쳤나 하고 휴대폰을 걸어 보지만 불통이다. 건녕이가 문자라도 보내보라고 하여 시키는 대로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 연락이 없다. 이곳 지리산에서까지 도시에서처럼 통화가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 거라 생각하면서, 추후 위성 통신이 일반화 된다면 불가능할 것도 아니지 싶다.
건녕이를 한 곳에 앉혀두고 앞뒤로 오르락 내리락 두 번을 반복하고 나니 죽을 맛이다. 마주 오는 산행객 한 분께 물어보니 중고생 2명이 조금 더 내려간 곳에 앉아 있노라고 전해준다. 다행이다 싶어 내리막 길을 재촉하여 약 10분 후, 규일이 규빈이가 환히 웃으며 앉아 있다. 규일이의 대답은 토끼봉 표지판을 보지 못하여 그냥 왔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지나쳤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규일이에게 일행간의 연락 방법에 대하여 일러둔다. 앞선 일행이 뒤따르는 일행으로 연락이 가능하고 반대편으로 스쳐가는 사람에게 얘기해 주면 뒤따르는 일행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일러두었다.
건녕이는 내리막 길은 그런대로 잘 가고 있는 듯하고 오르막에서 많이 힘들어 한다. 슬슬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지난번 청계산 산행에서도 그 험한 길도 마무리하지 않았던가? 가는 길을 재촉하여 명선봉을 향한다. 산행길은 능선 꼭대기를 지나지 않고 북쪽으로 우회하게 나 있었다. 그래서 명선봉인 줄도 모르고 지나치며,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였다. 예정시간보다 30분이 지체되었다.
벽소령 산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는데 이곳 산행객 한명이 벽소령에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전해준다. 그래도 여기서 11시 20분에 점심을 먹으면, 저녁시간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식사 리듬도 맞출 수가 없다. 벽소령에 가면 좀 많이 내려가야 하기는 하지만 샘물이 있다.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벽소령으로 전진이다.
삼각고지를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형제봉 오르내리면서 건녕이가 발목이 아프다고 신고해 온다. 양말 벗기고 물파스 듬뿍 발라준다. 조금 가니 오른쪽 무릎이 아프단다. 배낭 속에 갖고 다니던 압박보호대를 무릎에 끼웠다. 조금 위안이 되나 보다. 배낭이 무거워 그러나 싶어 규일이와 바꿔 메게 하였다. 규일이는 건녕이 배낭이 더 편하단다. 건녕이도 규일이 배낭이 가벼워서 좋단다.
형제봉에서 내리막을 가는데 벽소령 산장에서 들리는 마이크 소리, 물이 조금씩 공급되고 있으니 아껴 써라는 부탁의 메시지다. 식수 구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벽소령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에겐 더 이상 반가울 수가 없다.
벽소령 산장에 도착하니 12시 50분. 점심은 라면이다. 넓은 마당에는 햇볕이 쨍쨍하고, 그늘진 곳을 찾으니 마땅치가 않아 머뭇거리다가 산장 건물 북동 편으로 그늘이 길어질 방향으로 은박 돗자리를 펴놓고, 물 길러 가는데 기다리는 줄이 길다. 한참을 기다려 물 길러오고 버너에 불을 붙인다. 라면 네 개에 햇반 하나를 얼른 비운다. 이제 설거지는 척척 처리된다. 물 휴지로 닦고, 마른 휴지로 한 번 더 닦아주면 다음 식사 준비에는 큰 지장이 없다.
휴식 시간, 모두 잠이 오는 모양이다. 건녕이는 디카로 잠자리 사진 찍기에 바쁘다. 형제봉에선가 건녕이가 FM 라디오를 수신한 결과 오늘은 국지적으로 소나기가 예보되고 있다고 했다. 저 멀리서 구름이 몰려왔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날씨야, 도와다오. 충분히 휴식하고 출발준비 한다.
덕평봉을 향하여 출발하는데 날씨가 수상하다. 금새 구름이 몰려오더니 가는 빗줄기를 뿌린다. 배낭커버를 꺼내 각자의 배낭에 씌운다. 이내 비는 잦아들고 비옷은 준비만 하고 배낭커버를 씌운 채 산행을 계속한다. 선비샘을 찾았으나 이정표도 못 보고 지나쳤나 보다. 마음이 다급해 진다. 물도 마지막 한 병만 남았다. 새로운 산장을 지으려는 것인지 여기저기 어수선하게 콘크리트를 매설하고 있다. 다른 산행객들도 자기들 갈 길만 재촉하는 분위기다.
칠선봉이라 생각하고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지도를 보면서 확인해 주는데 칠선봉 직전의 망바위란다. 내가 자진 지도에는 봉우리 표시만 있지 망바위란 이름이 없다. 여기서도 주변이 점점 어두워 진다. 남은 초콜렛으로 입가심하고 마지막 남은 물을 마시고 만다. 갑자기 쿵쾅하면서 빗줄기가 굵어진다. 배낭 속에 넣어둔 비옷은 꺼낼 여유가 없다. 배낭 망사 포켓에 넣어둔 비닐 우의를 꺼내 입고 서둘러 출발한다.
칠선봉을 향해 가는데 무척이나 힘들다. 특히 건녕이의 발걸음이 자꾸 미끄러진다. 걱정스럽다. 힘들게 오름을 계속하니 칠선봉이다. 건녕이가 완전히 퍼지는 모습이다. 겨우 다독거려 영신봉으로 향하여 작은 봉우리도 하나 지난 듯한데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영신봉 오름의 철계단에서조차 건녕이의 발이 미끄러진다. 큰일이라 판단하고 건녕이의 배낭을 내가 앞으로 둘러 메었다. 가슴 끈과 허리 끈을 뒤로 묶게 하고 메어보니 다닐 만하다. 앞을 보기가 어려워 고개를 옆으로 약간 돌리니 한결 낫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아니 장터목은 아니라 하더라도 세석 산장까지는 가야 한다.
건녕이의 상태가 심히 걱정스럽다. 옆을 지나치던 30대 중반 아저씨가 건녕이가 힘들어 보이니까 음료수를 권하는데도 안 먹겠다고 하고 그냥 지나친다. 아저씨가 민망할까 봐, 아이들이니 이해해달라 하고 내가 앞서 간다. 철 계단이 끝이 없다. 이윽고 영신봉이라 생각되는 지점에서 한숨을 돌리고 시간을 체크해 보니 6시 8분이다. 세석 산장에 7시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이 상태로 간다면 힘들 것 같다.
이제 내리막만 내려가면 세석 산장에 도착할 것인데, 나 역시 첫 경험이라 자신이 서질 않는다. 규일이가 규빈이와 먼저 가서 자리 배정을 받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하며 먼저 보내고 나는 산장으로 계속 전화통화를 시도해 보지만 연결이 안 된다. 그냥 가는 데까지 가자, 건녕아 힘 좀 내 다오. 안개가 자욱하고 비도 왔다 갔다 하니, 거리 분간이 도통 안 된다. 비옷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지고 다급해진 나도 가끔씩 헛발질을 한다.
안개가 자욱하여 거리나 방향 감각이 하나도 없다. 앞서 가던 어린이 한 명이 소리친다. “와, 산장이다.” 나는 아직 짐작을 못하겠는데 어린이는 직감적으로 느끼나 보다. 그러고 보니 저 멀리 안테나 같은 게 희미하게 보인다. 사람이 사는 곳인가 보다. 휴우~~~
산장 입구가 비에 젖은 사람들로 인산인해, 뒤범벅이다. 자리 배정을 산장 안쪽 창문에서 한다.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양말 벗고 들어 가야 한다. 먼저 도착한 규일이 규빈이가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고 소리친다. 결국 내가 들어갔다. 규빈이, 건녕이도 학생증 찾느라고 분주하다. 규빈이가 온 배낭을 다 뒤지며 어렵사리 학생증을 찾아 온다. 자리를 남자 2층 131-134번 침상으로 배정받는다. 아래층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고 물기가 온사방에 떨어져 있어 엉망이다. 2층이 나을 거라고 생각된다.
아래층 복도에는 탈의실 앞으로 줄을 길게 늘어 섰다. 빗물을 닦을 공간도 없다. 할 수 없이 그냥 배낭을 들고 2층 침상으로 올라갔다. 이곳 산장은 뱀사골보다는 훨씬 좋다. 선반이 하나 있으니 배낭을 올려 놓을 수도 있고 줄이 처져 있어 빨래 늘기도 훨씬 편리하다. 비는 맞았지만 그래도 천만 다행인 것이 옷은 모두 비닐로 싸서 배낭에 넣었기 때문에 마른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여기서 젖은 속옷을 갈아 입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건녕이가 배가 아프단다. 발목에 무릎에 배까지 난리다. 건녕이에게 일단 조금 쉬라고 일러두고 세 명은 취사장으로 내려 갔다.
빈자리야 당연히 없겠지. 식탁 옆에는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비좁은 틈을 비집고 적당한 곳에서 앞팀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두 가족으로 보이는 한 팀이 설거지에 바쁘다. 얼른 양해를 구한다. 그 쪽에서도 흔쾌히 우리를 반겨주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 한다. 우리는 물부터 길어 오기로 하고 자리를 잡는다. 규빈이에게 건녕이 나와서 밥 먹으러 오라고 시키고 규일이가 물 길어 온다.
좁은 공간에서 맛있는 식사를 즐기기는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기본적 욕구는 채워야 하기에 라면과 햇반으로 저녁 만찬을 대신한다. 맛있는 저녁을 기대해온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건녕이가 저녁을 안먹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겨우 몇 숟가락 뜨더니 그만 먹는단다. 허기지면 큰일이다. 침상에 올라가서 소화제 약을 줄 테니까 몇 숟가락 더 떠 먹으라고 말하니 겨우 따라한다. 설거지는 이제 자동이다. 건녕이가 많이 거들어 주니 힘이 난다. 침상으로 올라 가려고 밖으로 나가는데 아직도 가는 이슬비가 간혹 흩뿌린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더운 밤을 지내려면 식수가 필수라고 생각되어 물통에 다시 물을 채워 규일 규빈 건녕이를 올려 보낸다. 나는 갖고 온 젖은 양말 등 속옷을 대충이라도 헹구려고 물가로 갔으나 식수만 졸졸졸 나올 뿐 빨래는 엄두가 안 난다. 물 한 바가지 퍼붓고 그냥 꼭 짜서 비닐 봉지에 넣고 침상으로 올라간다.
애들이 모포를 받아와서 벌써 잠자리를 꾸려 놓았다. 건녕이에게 물어보니 이제는 다리는 잘 모르겠고 배는 안 아프단다. 천만 다행이다. 배낭을 정리정돈하고 누었더니 소등시간이란다. 9시인가 보다. 뱀사골에서는 10시에 소등하였는데 여기서는 9시에 불을 끈다. 후덥지근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온기가 더해진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더운 열기에 습도 99%라 (맞는지 모르겠다) ??? 애들도 한참을 뒤척이더니 물을 몇 번이나 마시고는 어제 못 잔 잠을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이 잠이 들어 버린다.
걱정이다. 건녕이가 못 가겠다고 우기면 등에 업고서라도 곧바로 거림으로 하산해야 한다. 지도를 보니 2시간 반 거리다. 고민은 되지만 지금 어떻게 할 도리는 없다. 일단 내일을 기다려 봐야지 별 수가 없다. 살아가는데 가장 답답할 때가, 상황은 인식하고 있는데 대안이 없을 경우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너무 더워 헤드 랜턴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 본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앉아 어둠 속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주변은 온통 비박하려는 사람들이다. 처마 밑이고 식탁 옆이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사람들로 꽉 찼다. 아마도 이곳 세석 산장에 사람이 제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장터목에 예약을 한 사람들도 비 때문에 장터목으로 가지 못하고 여기에서 비박이라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우리가 장터목가지 갈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필요없는 생각이 든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 하는 얘기가 실종된 어린이 이야기다. 오늘 오후 덕평봉인가 칠성봉 지날 때 방송으로 하던 이야기가 이 실종사건을 알리고 신고를 받으려 했던 것이라고 이제서야 생각이 미친다. 그 때는 잘 들리지도 않았고 비오는 데에 신경을 많이 빼앗겼었나 보다. 초등학생 한 명이 천왕봉에서 노고단 쪽으로 가다가 연하봉 부근에서 실종되었다 한다. 그래서 경찰 구조대원들이 이곳 세석 산장에 많이 모여 있었구나 생각한다. 더구나 헬기도 이곳 헬기장에 대기하고 있는가 보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 헬기가 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침상으로 올라간다. 1층이 2층보다는 훨씬 시원하다. 배정받을 때 1층으로 할 것을 하는 후회가 들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다시 잠자리에 들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다가 웃옷을 벗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나 보다.
8월 3일 (화), 눈을 뜨니 5시 45분이다. 애들은 곤히 잠들어 있다. 깨울 엄두가 안난다. 모자라는 잠을 조금이라도 보충해야 할 것이리라. 좀 더 자게 놔두고, 밖으로 나가 보니 날씨는 계속 흐리다. 벌써 떠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벌써부터 식탁에 빈자리가 없다. 물론 3시가 되면 떠날 사람은 떠난다고 들었다. 애들을 데리고 그런 무리한 운행은 하지 않을 거라고 계획하였기에 마음의 여유를 부려본다. 해발 1500미터가 넘는 곳에서의 아침 공기는 차갑다. 여기 저기 둘러보고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마친다.
오늘 산행을 생각해 본다. 건녕이가 우리 산행에 있어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건녕이가 이상하다. 그렇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조금 쉬고 나면,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MP3 음악도 듣고, 초콜렛도 먹는 등, 자기 할 일은 다 하고 다닌다. 정말로 발목을 다쳤다면 걸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고나면 퉁퉁 부어야 한다. 그러나 통증은 없는가 보다. 옳다, 건녕이는 마음이 아픈가 보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상태를 점검해 보자.
6시 반이다. 아이들을 깨웠다. 건녕이를 보니 아픈 기색은 전혀 없다. 다리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래요’ 한다. 배는 어떠냐니까 안 아프단다. 됐다 싶어, 아침 식사를 위해 마당으로 내려간다. 코펠, 물통, 버너, 반찬 등등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니 처마 밑이 아닌 곳의 식탁 한 쪽 귀퉁이가 비었다.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같이 식사 준비한다. 물 떠오고, 버너 불 붙이고, 이제는 척척이다.
우리가 갖고 간 하나 남은 김치 봉지가 부어 올랐다. 먹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햇반과 김치를 사러 매점으로 갔다. 김치는 없단다. 햇반만 사서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있는데, 등산객 한 분이 김치를 갖고와서 공단 직원에게 먹을 거냐고 묻길래 내가 먼저 먹겠다고 하여 받아 들고 왔다. 김치까지 해결된 셈이다. 김치와 김 그리고 햇반, 절묘한 조화이지 싶다. 건녕이는 고추장에 비벼서 맛있게 한 그릇을 다 비운다. 아침이라 국물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 마음은 급하여 벌써 천왕봉에 가 있는데……
설거지 정리를 마치고, 물 뜨러 가는 사이 건녕이가 ‘천왕봉까지 몇시간 걸려요?’하고 묻는다. 이제 모든 것이 해결이다 싶다. 건녕이가 먼저 천왕봉을 가고 싶어 하니 답은 나온 것이다. 결심을 하고 침상에서 배낭을 정리한다. 건녕이 배낭은 자기가 가져온 옷만 넣었더니 홀쭉이가 되었다. 먹을 것은 모두 처리가 되었거나, 다른 사람의 배낭에 넣었다. 갖고온 먹거리 중에 남은 김, 국거리 등은 기증받는 함에 남겨두고 떠날 채비를 완료한다. 갖고 가는 것은 오히려 짐이 되겠기 대문이다.
자, 출발이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다. 넉넉하게 잡아 11시에 천왕봉에 도착하면 오늘 마무리가 순조로울 것이라 기대해 본다. 건녕아, 아프지 말아다오!!! 호흡을 조절하며 규일이에게 천천히 가자고 일러두고 촛대봉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건녕이의 진행 속도에 일행의 속도를 맞추어 간다. 건녕이가 쉬자고 하면 쉬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쉬는 것 같다. 슬슬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너무 늦으면 11시 천왕봉 도착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촛대봉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초콜렛을 맛보고 삼신봉으로 출발. 간간히 건녕이의 불평소리가 들린다. 다리에 힘이 없는데 자꾸 빨리 가자 한다고 입이 튀어 나왔다. 건녕이 더러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야 한다고 몇 번을 일러 둔다. 삼신봉을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이 없다. 연하봉 바로 옆에서 쉬어 간다. 오르막에서 아프다던 건녕이도 이제는 포기한 듯 잘 따라 준다. 고맙다, 건녕아. 이제 내리막만 내려가면 장터목 산장이다. 좀 많이 쉬었다 가자.
9시 15분 장터목에 도착한다. 건녕이가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고 자신만만하다.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다. 주변은 엄청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당일 지리산행을 하는 사람들도 장터목은 대부분 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천왕봉 일출을 계획한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장터목에서 묶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볼 일을 마친 뒤,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제석봉으로 출발한다.
제석봉 첫 오름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9시 40분, 규일이에게 특별히 천천히 갈 것을 부탁하고 출발이다. 건녕이가 힘들어 하긴 하나 겨우겨우 제석봉에 올랐다. 간식거리가 모두 바닥났는데 매점에서 준비를 못하고 그냥 왔다. 실수였다. 마지막 남은 초콜렛을 나누어 먹는다. 이제는 규일이 규빈이도 조금씩 지치나 보다. 출발 준비를 하는데 배낭 메는 동작이 뜸하다. 천천히 내리막 길을 떠난다. 내리막은 곧 끝나고, 또 다시 오르막이다.
이제 남은 것은 천왕봉을 향한 마지막 오르막이다. 돌길을 따라 오르니, 곧 바위 길로 이어지고, 이제는 철계단이다. 숨을 헐떡이며 건녕이를 밀면서 오르니 통천문이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다. 그런데 실제로는 막힌 문이다. 180도로 꺽이며 철계단은 계속된다. 그래도 천왕봉 봉우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50미터 앞을 분간할 수 없다.
오르고 또 오르니 사람들 소리가 수근수근 들린다. 다 왔는가 보다. 좀 넓다란 공간에 작은 좁은 바위 덩어리가 솟아 있다. 마지막 힘을 다하니 드디어 사진에서 보았던 천왕봉 표지석이다. 와, 다 왔다!!! 건녕아, 규빈아, 규일아, 우리는 해냈다. 정말 장하다!!! 그때가 11시 25분이다. 예정보다 늦었지만 도착 시간 따위는 중요치 않다. 우리는 성취한 것이다.
표지석 주변은 사진 찍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울퉁불퉁 바위 돌이라 걸음걸이도 조심해야 한다. 몇 차례를 기다려 우리도 천왕봉에서의 증명사진을 찍었다. 좁은 공간에서 네 명이 한꺼번에 찍으려 하니 갓쪽에 서있는 나와 규빈이의 모습은 조금 잘려 나갔다. 그래도 증명은 되는 것이니까 상관없다. 조망을 해보려 하나 어림없는 소리다. 50미터 앞도 안 보인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천천히 휴식을 취한다. 건녕이가 배낭을 뒤적이더니 육포를 꺼낸다. 첫날 육포도 가져왔다고 자랑을 하였는데,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을 안 했더니 멋 쩍었었던가 보다. 이제야 소리없이 꺼내 놓는다. 다른 간식거리가 없는 상황이라 육포 하나가 이렇게 기쁘게 할 줄이야!!! 함께 나누어 먹고 출발 준비를 한다. 30분을 쉬었나 보다.
하산 길을 물어보니 올라 왔던 길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안내해 준다. 대원사로 내려가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다. 가장 짧은 중산리로 결정하고 하산 길에서의 주의 사항을 다시 한번 전달 한다. 힘이 빠져 지쳐 있고, 길의 경사가 급하고 미끄럽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앞으로 넉넉히 잡아 4시간이면 되리라 생각해 본다.
12시가 조금 못 되어 출발 준비를 마친다. 이제 한시간을 걸어 로타리 산장에서 점심을 먹을 것이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소연 한다. 아침을 좀 적게 먹었나 보다. 아마도 간식거리가 충분치 못하여 그런가 보다. 조금 서둘러 내려가면 1시 이전에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발길을 내 딛는다. 모든 산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정상에서 첫 내림길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급한 경사면을 따라 돌멩이가 굴러 다닌다. 아마도 중산리 등산로도 휴식년제로 통제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내가 밟은 돌멩이가 굴러 가 올라오는 사람 정강이를 맞힐 뻔하였다. 미안하다고 말하니, 그 쪽에서도 괜찮단다. 다행이다.
날씨는 계속 흐리다. 뭐 딴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다. 앞만 보고 가면 된다. 갑자기 건녕이가 못 가겠단다. 다리가 아프단다. 아마도 긴장이 풀리나 보다. 너무 자주 쉬게 되니 리듬이 깨진다. 할 수 없이 건녕이 배낭 속에 내 배낭을 집어 넣었다. 하나를 뒤로 메니까 어제처럼 배낭 두 개를 앞뒤로 메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건녕이의 발걸음이 자꾸 미끄러진다. 건녕이 정신 차리라고 아주 모진 소리도 하고, 정신 놓으면 죽는다고 엄포도 놓는다. 그냥 그렇게 길을 간다. 1시 15분쯤 되었을까 법계사 입구다. 애들이 올라가야 하느냐며 울상이다. 꼭 올라가야할 이유는 없다. 바로 코 밑이 로타리 산장인 것이다.
드디어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빈 식탁을 찾아보니 마땅치가 않다. 저쪽 구석진 곳에서 마침 설거지를 하고 있다. 기다렸다가 그 식탁에 우리의 점심 식탁을 차린다. 애들이 물 뜨러 가기도 싫은가 보다. 아까 내려올 때 식수장이 있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까닭에 그냥 내려 왔었다. 규일이를 달래어 규빈이와 식수 떠 오게 하고 나는 매점으로 간다. 오늘도 라면이다. 마지막 남은 라면 네 개를 끓이고 햇반 두 개를 더 샀다.
날씨가 수상하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린다. 우의를 준비하고 우산도 준비했다. 어제 입었던 비닐우의는 모두 버리고, 각자 가져온 간단한 비옷을 챙겨 놓는다. 건녕이는 비닐 우의 외에 준비가 없어 내가 항상 갖고 다니는 고어 자켓을 입힐 준비를 완료하고 라면을 끓인다. 라면을 끓는 물에 다 집어 넣었는데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럴 때에는 행동도 빠르다. 각자 우의 꺼내 입고 우산도 받쳐 든다. 행여 라면에 빗물 들이칠까봐.
다른 모든 사람들은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우리는 움직일 수가 없다. 끓는 라면을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흑흑흑… 라면을 먹는 도중 비는 점점 잦아 든다. 우산을 접고 조금은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비록 빗물 젖은 라면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나 혼자 생각인가???) 햇반 두 개도 국물에 말아 뚝닥 해치웠다. 그 포만감이란??
애들에게 이렇게 먹는 비 젖은 라면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규빈이는 ‘너무해요’ 한다. 규일이는 ‘이런 것 먹어도 돼요?’ 하고, 건녕이는 엉뚱하게 ‘고모부가 잔인해요’ 한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아까 내려오는 길에서 내가 좀 모질게 내 뱉은 말을 기억에 담고 있는 모양이다. ‘정신차리지 못하면 죽는다’라고 소리친 말이 뇌리에 박힌 모양이다.
설거지는 자동이다. 지금까지 채워온 쓰레기 봉투의 부피가 상당히 커졌다. 산장 매점에서 비닐 봉지 두 장을 더 얻어 네 겹으로 포장을 한다. 지금까지 내 배낭 뒤에 매달고 다닌다. 이제 건녕이가 기운을 차리나 보다. 얼굴이 밝아지고 사진 찍느라고 바쁘다. 아마도 건녕이가 배가 고파서 그렇게 다리가 아픈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건녕이가 이제는 자기 배낭을 메겠단다. 한시름을 놓은 것 같다. 이제 하산 길의 경사도 완만해졌다. 굴러가도 갈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1시 30분에 길을 출발한다. 3시간이면 중산리까지 충분히 가능하리라.
하산 길에 또 다시 비가 퍼 붓는다. 산악 지대에서의 비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느낌이 새롭다. 비옷은 입었지만 소용이 없다. 속옷까지 다 젖었다. 하지만 속옷 젖는 게 대수랴? 별 걱정 않고 길을 간다. 그런데 중산리 관리소에서 안내 방송을 하는데 폭우로 인해 계곡 물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며 계곡에 있는 등산객들은 빨리 피하라고 전한다. 아마도 입산이 금지된 모양이다. 세 번을 반복하여 방송하고 있다. 우리의 하산 길은 계곡의 물흐름 보다는 항상 몇 십미터 위에 조성돼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하지만 하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바빠진다. 나는 규일이에게 길이 미끄러우니 천천히 가라고 반복해 일러둔다.
개선문을 지나고, 망바위, 칼바위를 지나면서 안도의 한숨을 지어본다. 중간중간 건녕이가 헛발질을 하긴 하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약 30분 후, 중산리 야영장이다. 여기서부터는 포장 길이다. 진짜로 굴러서도 갈 수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던지, 발이라도 한 번 씻고 내려 올 것을 하는 후회가 든다. 여기서 쓰레기 봉투를 드디어 버릴 수 있었다. 우리의 흔적을 아낌없이 버렸다. 10여 분 포장길을 내려 오니 중산리 매표소다. 4시 10분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
원래는 20여분 아래에 중산리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진주로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택시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냥 진주로 가자고 했다. 이로서 우리의 산행은 마치게 된다. 이제는 내가 가는 것이 아니고 자동차가 가는 것이기에……
택시 안에서 건녕이는 잠을 자지 않는다. 규일이, 규빈이는 곯아 떨어졌다. 건녕이는 차 안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가 찍은 사진 중에 많은 부분이 풍경 사진인데 대부분은 건녕이가 찍은 것이다. 물론 비가 오니까 카메라를 꺼낼 수가 없어 찍지 못한 화면이 너무 많다. 이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식사 장면이 하나도 없다. 식사 때에는 카메라를 안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는 진주까지 약 45-50분 걸릴 거라 한다. 중간에 내 휴대전화기가 운다. 김재중박사다. 나의 계획을 알고 있는 친구이기에 전화기를 열고는 ‘잘 내려 왔다’고 소리쳐 준다. 내가 걱정되어 산행 선배로서 나를 챙겨주는 것이다. 고맙다. 좀 있으니 권택술 박사 전화다. 역시 나의 산행 일정을 알고 있는 친구라, 날씨 등이 어땠는지 물어 온다. 서울 가서 자세한 보고서 올리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택시 기사에게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 부근에 목욕탕이 있냐고 물으니 터미널 바로 옆에도 있는데 좀 걸어 나오면 찜질방 좋은 곳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까지 왔다 갔다 하기도 싫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5시 15분이다. 7시발 우등 고속으로 차표를 사고 목욕탕을 찾았다. 서울로 전화하여 7시 출발 예정이라고 전해준다.
찜질방이라고 돼 있는데 목욕만 할 거라고 하니까 샤워만 된단다. 일단 씻기로 하고 들어 갔는데 ‘이건 영 아니올씨다’이다. 할 수 없다. 샤워 꼭지 네 개 뿐인 공간에서 각자 샤워만 하고 갈아 입을 옷이 마땅찮지만 지금 입었던 옷보다는 첫날 입었던 옷으로 갈아 입는다. 규일이가 옷을 많이 준비했나 보다. 깨끗하게 갈아 입고 먼저 나선다.
모두 몸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머리는 정리가 되고,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식당을 찾아 간다. 고기 냄새라도 맛보게 해야 되겠다 싶어 둘러 보지만 적당한 곳이 없다. 주변 택시 기사들한테 물어보니 저 집이 좋단다. 그 집으로 갔다. 돼지 불고기 5인분을 시켰다. 소주도 한 병 시켰다. 공기밥은 하나 더 주문하고 정말로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뚝딱이다. 소주가 무학 소주다. 입에서 약간의 저항이 있었지만 상관없다. 석 잔을 마시고 나머지는 남겨두고 왔다.
6시 50분 버스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 준비를 위해 화장도 한다. 버스 안이 시원하다. 좌석이 넓어 편안하다. 3시간 40분 내지 4시간 걸릴 거라 한다. 규빈이와 건녕이가 앞에 앉고, 나와 규일이가 뒤에 앉았다. 7시 정각에 버스는 출발한다. 규일이에게 내년은 어렵겠고, 후내년에는 지리산도 가고 고성도 한 번 들러보자고 약속한다.
버스에서는 위성 TV 방송을 계속한다. 시내 구간에서는 끊김이 많아 짜증스럽더니, 고속도로에서는 터널 구간을 제외하면 비교적 볼 만하다. YTN 뉴스에서 지리산 실종 어린이를 구출했다는 뉴스다. 참으로 극적이다. 그 녀석의 침착함은 그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40시간 만에 살아 오다니, 그 장대 같은 빗속에서도 백무동 계곡으로 내려 왔단다.
이제 몰려드는 잠을 주체할 수 없다.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잠을 청하자마자, 신탄진 휴게소다. 건녕이는 깨지도 않는다. 그냥 두고 규일이 규빈이는 화장실을 다녀오고, 오징어 한마리를 사고 버스에 오른다. 다시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뜨니 눈에 익은 도로의 표정이다. 건녕이 엄마가 마중을 나온단다. 11시쯤 도착할 거라고 일러 두었는데, 버스는 11시 18분에 도착했다. 버스 밑 화물 칸에 넣어둔 배낭을 각자 둘러 메고 밖으로 나가니 택시 정류장 뒤쪽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출발과 도착을 건녕이네가 도와 준다. 정말 고맙다.
에필로그
우선 우리의 장한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씩이나 비를 맞고도 잘 견뎌 준 우리 용사들이 너무 장하고 자랑스럽다. 나의 준비가 모자라 애들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미안하고, 화려한 것보다는 힘든 고생만이 기억될 것 같아서 조금은 걱정스럽다. 물론 극기훈련의 일환이었으니까 뭐 화려한 기억이야 있었겠냐마는 그래도 지나고 나면 웃음짓는 기억이 하나 둘은 생각나는 법인데 내세울 만한 것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산행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해야 하겠다. 배낭의 부피가 커지면 그 만큼 고생하게 돼 있는 것인데, 요령 부족으로 괜시리 부피만 큰 먹거리를 운반하느라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았다. 애들이 먹는 것이 부실하였던 것 같다. 국거리가 있었는데 시간에 쫒기다 보니 마음이 급해져서 국거리를 제대로 못해 먹었다. 앞으로는 취사병을 대동하고 다녀야 할 듯하다. 간식거리가 부족했던 것도 지적 사항이다.
우천에 대비한 장비를 갖추는 것은 지금 애들한테는 필요 없고, 장차 커서 산행을 계속할 것이라면 비옷 하나쯤은 좋은 것으로 준비해 둘 필요가 있지 싶다. 그리고 자기 배낭에 무엇을 찾을 때 즉시 찾아내는 요령이 필요한데 그런 훈련이 전혀 없었던 점이 아쉽다. 이번 경험이 그런 기회를 제공해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래 예정은 뱀사골, 장터목에서 자고 대원사로 하산하려 하였으나, 산장 예약이 여의치 못하여 장터목 대신 세석으로 예약이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다. 그리고 건녕이의 상태로 봐서는 대원사로 내려오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또한 반야봉도 올라볼 생각이었으나 시간에 쫒기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규일아, 맏형으로서 힘든 일을 도맡아 묵묵히 수행해 준 네가 정말 고맙다.
규빈아, 힘든 과정도 많았을 것인데 아빠를 믿고 따라준 네가 정말 믿음직스럽다.
건녕아, 정말 힘들었지? 하지만 끝까지 잔인한 고모부의 지시에 따라 그 힘든 장정을 마친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 그런 와중에 부상당하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고맙다.
규일아, 규빈아, 건녕아, 그날 집에서는 잘 잤니???
내년에 또 지리산 갈래, 1박 2일로???
아니면 설악산으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