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몽(朱蒙)
◇생졸년 : BC58~BC19(東明王 19).
◇재위기간 : BC37~BC19
주몽은 고구려(高句麗)의 건국 시조이다.
성은 고(高)이고, 이름은 주몽(朱蒙)· 추모(鄒牟)· 상해(象解)· 추몽(鄒蒙)· 중모(中牟)· 중모(仲牟)· 도모(都慕) 등으로 전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동부여(東夫餘)의 금와왕(金蛙王,BC89추정~BC24이후로 추정)이 데려온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부인 사이에서 동부여(東夫餘)에서 출생후 그곳 왕궁에서 자랐다.
주몽이란 이름은 부여어(夫餘語)로 "활을 잘쏘는 사람을 뜻한다"고 전해진다.
동부여 금와왕의 일곱 왕자와 신하들의 위협을 눈치챈 어머니 유화 부인이 주몽에게 멀리 떠나 큰일을 도모 하라고 당부한다 주몽은 몇명의 측근들과 함께 동부여를 떠나 졸본부여(卒本夫餘)로 망명하였다.
그는 비류수『沸流水,일명 부이강(富尒江)』가 흐르는 졸본(卒本)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
고구려는 일찍이 기마민족(騎馬民族)의 문화를 받아 들이고, 주변 비류국(沸流國) 송양왕(松讓王)의 항복을 받아내고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북옥저(北沃沮)를 멸망 시키는 등 여러 부족 국가를 정벌하여 영토를 넓혀 나갔다.
서기 3년(琉璃明王 22년)에 압록강 유역의 국내성(國內城)으로 천도(遷都) 하였으며, 이후 선비(鮮卑). 양맥(梁貊). 황룡국(黃龍國) 등을 정벌 하는 등 주변국과 전쟁을 통해 더욱 국력을 넓혀갔으며, 이예 따른 강한 리더쉽(leadership)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팽창 정책을 펼친 군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