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동을 소머리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이곳에 소의 머리처럼 생긴 우두산(牛頭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산은 하늘에서 내려온 소가 소양강 물을 먹는 형상이다. 이 우두산 꼭대기에 '솟을뫼'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가)춘천읍에서 10리 되는 곳에 우두산이 있는데 그 우두산에 오래된 무덤이 있다.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무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무덤은 중국임금의 무덤이지요.이 무덤을 파 보았더니 순전히 황토만 나왔어요.그래 두려워서 다시 봉분을 만들어 놓으려 하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봉분이 저절로 전과 같이 솟아 나왔어요.그 후로 소나 말이 봉분을 밟아 헤쳐 놓아도 다시 전과 같이 솟아 나오지요.그래서 이 무덤을 솟을뫼라고 한답니다."
내가 소양정에 올라 그 터를 바라보니 훤하게 빛나는 것이 대지임이 분명하였다.-이유원,1871
(나)우두산의 꼭대기에 하나의 분구(墳丘)가 있는데 세간에는 이를 소잔명존(素盞鳴尊)의 능역(陵域)이라고 여기기때문에 일본왕자(日本王子) 소슬(蕭瑟)의 무덤이라고 하는 자도 있는데 모두 잘못된 것이다.연전(年前)에 무덤을 파서 조사해 본 즉 300년전의 기와가 나왔을뿐 다른 징험할 만한 것이 없었다.-江原道誌,1940
(다)옛 노인이 말하기를 소와 말이 밟아도 흙이 솟아나고 여전하여지고 또 금초를 한 즉 반드시 소원을 성취한다 하여 서로 먼저 금초를 하였다하며 가뭄이 심하거나 장마가 심하면 이 곳에 투장한 것을 알고 관민이 출동하여 파내었다.-壽春誌,김영하,1953
(라)그런데 왜정때에 왜놈이 나와서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그 자리를 파보았대.솟을모이를.그런데 그 반을 파도 아무것도 없고. 그런데 청천의 날 그냥 뇌성벽력을 하면서 그리 내려 두드려서 그 왜놈이 게서 피를 토하면서 다 죽고 그랬는데 그 구덩이가 우묵할게 아니야,근데 그게 차차차차 흙 한 삽을 안 넣었는데 솟아서 도로 분상이 되었어.그래서 솟아났다 해서,솟을모이고,또 시방은 거기 놀러가는 사람이 없지만 그전엔 거기 참 많이 놀러 나갔지.그런데 그 떼를 밟고 이제 뭉그러지고 그래도 그 이튿날이면 그 떼가 도로 살고,발자국이 우묵한 게 도로 살고 또 소도 매면 그냥 디리 비비고 그 분상을 깨뜨리고 발자국이 있는 거 그 이튿날 가보면 도로 여전해.그래서 그 모이를 솟을모이라고 그러는거지-최광모,1989
(가)는 중앙정부에서 영의정을 지낸 고위 관료의 기록이고 (나)는 도청에서 발간한 道誌편찬자의 기록이다.(다)는 향토학자의 기록이고(라)는 농민의 구연이다.
(가)에 의하면 솟을뫼는 중국 임금의 무덤이고 (나)에 의하면 일제시대에 솟을뫼가 일본왕자 무덤이라는 소문이 유포되어있었다는 증거이다.즉,솟을뫼는 조선시대엔 중국왕,일제시대엔 일본왕자의 무덤이라고 전해졌었다.
(가)와(나)에 의하면 솟을뫼는 조선시대에도 파헤쳐 졌고 일제시대에도 파헤쳐 졌다.그런데 조선시대엔 파헤쳐졋던 무덤이 저절로 솟아올라 봉분이 만들어졌다는 데에 반해 일제시대에는 솟을뫼를 파헤쳐 놓아도 신성징조가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나 (라)에 의하면 일제시대에 솟을뫼를 파헤친 사람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
여기서 우리는 우두산은 신성한 산이었고 그 우두산의 신성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솟을뫼라는 것을 알 수 잇다.(가)(나)(다)(라)의 전설에 의하면 우두산에는 솟을뫼만 있어야한다.다른 묘가 있어서는 안된다.우두산에 다른 묘를 쓰면 천재지변이 일어난다.솟을뫼는 언제나 정결해야한다.사람들은 다투어서 솟을뫼의 풀을 깍아줘야한다.솟을뫼를 훼손시켜서는 안된다.만약 솟을뫼를 훼손시킨다 하여도 솟을뫼는 스스로 다시 솟는다.솟을뫼는 외경의 대상이다.솟을뫼를 훼손시키는 사람은 피를 토하고 죽는다.영원히 다시 솟아오르는 솟을뫼는 신성성 그 자체이며 외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솟을뫼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러한 신성성을 계속 상실해왔다.
여러차례에 걸쳐 솟을뫼를 발굴해본 것 자체가 사람들이 그 신성성을 믿지않았기 때문이다.솟을뫼의 신성성이 상실되면서 솟을뫼의 전설은 다음과 같이 변이되기도 한다.
"솟을뫼에 묻힌 사람은 중국의 임금도 아니고 일본왕자도 아니다.거기에 묻힌 사람은 자손이 없는 비둘기 부부이다.비둘기부부의 방계자손은 그 무덤을 돌볼 길이 없었다.이에 그 방계자손은 아들이 없는 부인이 이 무덤을 몰래 벌초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그리고 소나 아이들이 이 무덤을 훼손시켜놓으면 그 방계 자손이 밤에 몰래 원상태로 손질해 놓고 솟을뫼 이야기를 퍼뜨린다.즉, 이 묘는 사람이나 짐승이 훼손시켜도 저절로 다시 솟아 오르는 신비한 묘이기에 솟을뫼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퍼뜨린다.그리고 방계자손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그 후로 아들을 낳고 싶은 부인들이 다투어 솟을뫼를 벌초하여 이 무덤은 지금까지도 건재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솟을뫼의 신성성은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고 솟을뫼에 묻힌 사람도 중국임금,일본왕자,한국의 서민 순으로 바뀌어 왔다.이것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궁극에는 神이 나타날 것이다.솟을뫼는 죽은 사람의 묘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있는 신을 모셔 놓는 신전(神殿)이었던 것이다.솟을뫼는 천신을 모시는 제단이었다.그리고 솟을뫼 전설은 원래 신화였다.신화였던 솟을뫼 전설은 제의(祭儀)등 신화구성요소는 없어지고 신화만 남아서 구비 전승되어 오다가 신성성을 점차 상실하고 전설로 변모한 것이라고 보인다.
솟을뫼전설로 유추해 보면 옛날 옛적 춘천지역에 최초로 사람들이 모여 살 때 이 지역 이름은 우두였고 그 중심 우두산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있었으며 우두산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