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람을 일으키며 감아 도는 허리기운에 노닐다가 문득 시선이 창가에 머문다.
하얀 눈발 '윈소우' 손사위 따라 휘몰아치듯 하는데 마치 한 폭의 '기'의 운무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몸에 비상경경계령이 내려진 김목사님 따라 별 비상의 조짐이 있다고 인정이 되지도 않던
나도 덩달아 보리선생님의 명령으로 태극권수련을 시작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태극권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들이나 장래를 위해
호연지기를 길러야하는 애들이나 할 짓으로 여겨 그 고마운 수련의 충고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던 나였다.
일단 건강전선에 스스로 비상을 건 김목사님의 수련결심에 얼떨결에 동참하게 되었다고는 하나
준비되지 않은 수련자의 하루하루는 고달프기 그지없었다.
우선 김목사님은 집중력이 대단하셔서 불이태극권 타오루 8단계 전부를 끝내는데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것을 용납하기 힘들어 하셨다. 차분하게 새로운 일 보다는 있는 일 중심으로
끈질기게 하는 데는 남 못지않을 자신 있는 나였는데, 매일매일 한 단계씩 새로운 진도를
빼는 것을 낙으로 삼는 듯한 분하고 도반으로서 수련을 보조 맞춘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정된 자세 하나하나도 따라 하기 쉽지 않았다. 첫 단계부터 참아내기 힘든 일쯤으로 여겨졌는데
빠오치우, 난자이, 인양위 등 하체의 힘을 필요로 하는 동작들을 따라 삐걱거리며
겨우 흉내내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나를 보리선생님은 "연습부족"이라고 몰아세우셨다.
일주일쯤 하다 보니 무릎관절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고, 일부러 파스가 더덕 더덕 붙여진 무릎을
들쳐 보이며 내 억울한 심정이라도 항변하듯 주저앉기도 했었는데,
이런 투정이나 변명들은 보리선생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긴 김목사님은 당시 짠주앙을 한차례에 두 시간을 했다는 둥, 한밤중에 일어나
옥상에 올라가 자시 수련을 하는 데 타오루를 열다섯 번을 돌았다는 둥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막 내고 있었던 터라, 상대적으로 연약한 여성임을 내세워 좀 적당히 처신하고자했던
나의 처지로 보면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타오루 순서를 겨우 익히고 나서 보리선생님의 태극권 시연을 보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실바람에도 흔들릴 듯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손길 따라
유유히 장강대해를 방불케 하며 흐르는 몸짓! 이런 것이 태극권이라면 진작 시작했어야 마땅했었다.
내 무식한 소견에 태극권은 태권도나 중국 소림사에서 하는 권법들처럼 강인하고 빠르고
남성적인 그 무엇이라 생각하고 그런 것이라면 씩씩한 남성들이나
똑 부러지는 군인들이나 시킬 일이지, 나처럼 우아하고 한가로운 여성이 하기엔
너무 교양미가 없어 보이는 것이나 되는 냥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이제 나도 취미삼아 놀이삼아 한가롭게 심신을 닦고 유유히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을 수련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함께 수련을 했던 동기들은 우선 내가 힘들었을 때 가장 힘이 되어주었다.
와이의 이 총장님은 하도 바쁘신 분이라 보충과외수련으로 겨우 진도를 맞추어오셨는데
가끔씩 피곤에 지친 우리에게 '회'를 사주시는 등 좋은 일을 많이 베풀어주셨다.
서연이는 백두산 수련 때 자타가 인정하는 몸치로 소문이 나 있어서 나를 안심시켜준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정암스님 앞에서 시험볼 때는 제일 잘했다고 박수를 받았단다.
중원씨는 발 올려차기가 발군이었는데 동작이 남성적이고 자세가 안정되어
태극권의 자질과 소양이 풍부하다고 부러움을 샀다.
랜드피아 옥상의 수련기간 동안 난 수시로 힘에 겨웠는지 체하고 소화가 안되어 고생을 했고
그걸 핑계 삼아 지각을 밥먹듯이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세월을 뒤로하고 수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내 몸에서도 그토록 보리선생님이 강조하셨던
양생효과가 나기 시작했으니 이토록 고마울 일이 없을 것이다.
우선 거의 매일 소화가 안 되어 뱃속에 끄윽 소리를 달고 다니던 내가 지금은 그런 현상이 없어져버렸다. 처음 한 달 쯤 삐걱거리는 무릎관절을 질질 끌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고통을 호소하곤 했었는데 한두 달 지나면서부터는 싹 사라져버렸다.
짠주앙을 유난히 싫어해서 보리선생님으로부터 내내 잔소리를 들어왔는데
지금 걷는 내 걸음걸이는 참으로 경쾌하다. 걸을 때마다 사뿐하여 기분마저 상쾌하다.
'하체의 힘이 건강의 잣대요 장수의 요체'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실감난다.
그 후 광주 일곡지구 차훈요가원에서 수련을 계속하면서 동작교정과 단련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던 덕에 지난 연말에는 보리선생님에게 장공태극권을 전수받게까지 되었다.
아직 때이른 전수라 정확히 소화하지 못했지만 앞으로의 수련 길에
하나의 밝은 빛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광주의 태극권 모임의 총무일을 맡아보면서 매주 도반들과 수련하고 차 마시고 그도 지치면
국밥집에 가서 뜨끈한 국물에 시원스런 맛을 재미삼아 왔는데 그러다보니 여기 도반님들과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중국 아미산 삼년수련이 꿈만 같이 아득한데 타국의 말에 헷갈리고 음식에 부적응하고
혹 산생활 수련생활 고달프다가도 그동안 함께 수련하고 맘을 나누었던 도반들 생각하며
그리움 되살리면서 잘 살리라 다짐해본다.
사실 나의 수련여정에 큰 자극이 되었던 것은 부산에서 수련하시는 도반님들의 태극권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었다. 하루 열 번 스무 번의 타오루를 돌면서 즐거워하시는 부산의 도반님들!
부산 광주의 교류와 친목 모임 때 소년소녀처럼 살풋한 느낌으로 동요며 가곡 7~ 8십년대의
포크송들을 마음과 마음으로 손에 손을 맞잡고 친근한 오라버니, 언니처럼 불러주셨던
그 다정한 표정들과 말씨들은 나의 태극권을 중심으로 한 수련생활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실 것이다.
지금 아미산 3년 수련을 앞두고 나는 내가 가는 이 길이 '자리이타',
즉 나를 이롭게 하며 누군가에게 양생의 길을 열어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미산 높고 깊은 산속에서 길 잃지 않고 산새들과 꽃 나비 벌들, 그리고 산 생명들과
조화로운 기운 얻고 나를 찾아 태극의 현묘한 문 열고 불이의 궁극의 열쇠 찾아 ,
혹 여름휴가길 득공 오시는 님들 계시면 함께 북돋고 나눔으로 좋은 기운 드리도록
노력할 것도 즐거운 보람이 될 것이다.
욕심 같아선 중국 아미산으로 향한 '나' 의 작은 인생 여정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의
차문화 양생문화의 교류에도 보탬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 기회를 빌어 나의 생명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인도해주신 부모 형제 도반님들,
특히 길잡이가 되어주신 정암 사부님 보리선생님께 감사의 옷깃 여민다.
선단 황수정 두손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