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로 로마유적(카리쿨라 황제의 목욕탕)을 무대로 쓰리 테너(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가 함께 출연하였을 때 파바로티가 솔로로 부르는 장면입니다.
지휘자는 주빈 메타입니다.
이 노래가 끝나면 파바로티를 비롯하여 쓰리테너의 주옥같은 여러노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화면을 골라서 꾸우욱 눌러주세요)
용음회 회원 여러분들에게!
오늘 소개하는 음악가들은 퍽으나 우리 귀에 익은 오 솔레미오,산타 루치아,돌아오라 소렌토로 등 나폴리 민요를 만든 이들입니다. 영원한 미성(美聲) 파바로티가 부르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들으면서 함께 남부 이탈리아로 여정을 떠나보도록 하지요.
[ 나폴리 민요 작곡가들,카푸아 그리고 쿠르티스 등]
'베디 나폴리 에 포이 무오리(Vedi Napoli e poi muori)' '나폴리를 보고 죽으라‘는 말이다.
나폴리는 전 세계적으로 미항(美港)의 대명사다.바닷가에 서면 항국의 긴 유보도(遊步道)와 활모양으로 굽은 나폴리만(灣)의 유선미(流線美),왼쪽으로 베스비오 산이 해만(海灣)을 굽어보고 건너편으로는 멀리 소렌토와 반도(半島) 끝이 아슴하여, 그 시원한 시야가 눈을 맑게 한다.
* 나폴리와 소렌토 지도
나폴리 만을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푸니쿨리 푸니쿨라로 유명한 베스비오 산이 있고 계속해서 내려가면 소렌토 반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로마 2대 황제 티베리우스(영화 '벤허'에서 나오는 황제,그러나 실제로 당시 황제는 카프리 섬에 기거하고 있었음)가 말년을 보냈던 카프리 섬이 위치합니다
‘오늘도 정신없이 아름다운 경치 구경에 시간을 다 보냈다.무슨 말로도 무슨 그림으로도 이 경치의 아름다움에는 당하지 못한다.나폴리에 오면 사람들 마음이 들뜬다더니 헛말이 아닌 것 같다’라고 괴테도 <이탈리아 기행>에서 썼다.
나폴리라면 미경(美景)도 미경이지만 또한 나폴리 민요가 우리의 귀를 간질이는 곳이다.나폴리에 와서 그 유명한 나폴리타나(나폴리 민요) 한 곡을 듣지 못한다면 경치의 아름다움은 맛이 반감된다.본시 노래를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지만 특히 나폴리 사람들은 더 좋아한다.
* 나폴리 항구(산타루치아 항구이기도 하다)
나폴리 민요 가운데 우리가 흔히 듣고 부르고 하는 노래의 하나가 <산타 루치아>.
나폴리 항을 해안로를 따라 서쪽으로 걸으면 만두(灣頭)의 돌출부에 입구를 방파제로 막은 소항(小港)이 나타난다.여기가 산타 루치아 항(港)이다.건너편 물 끝은 ‘보르고 마리나로(어부의 마을)’요 그 복판에 커다란 고성(古城)이 우뚝하다.
카스텔 델레보(달걀성)라 하여 13세기 때 세워진 이후 오랫동안 감옥으로 쓰여져 온 것이다.산타 루치아 항 둘레에는 식당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여기서 키안티 포도주와 함께 나폴리 명물인 생선찌개를 시켜서 먹거 있노라면 밴드가 <산타 루치아> 노래를 들려 준다.이 때 정말 나폴리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나고 나폴리 만(灣)의 아름다움이 다시금 눈여겨 쳐다봐진다.
* 카스텔 델레보 성
* 나폴리 시장
산타 루치아 항 입구의 해안로 끝에는 산타 루치아 문(門)이라는 돌문이 있고,그 옆이 산타 루치아 벤치가 있다.이 벤치에서 바라보는 나폴 리가 절경이다.
산타 루치아(聖 루치아)는 나폴리 뱃사공과 어부들의 수호신 이름이다.산타 루치아 항으로 이어지는 산타 루치아 가(街)는 조그만 백악(白堊)의 사원(寺院)이 있고,이 사원 안에 산타 루치아의 상(像)이 모셔져 있다.
* 나폴리 뒷골목
나폴리 민요가 처음 생겨난 것은 1200년경.19세기 말엽에 와서 살바토레 자코모(1860-1934)가 등장함으로써 황금 시대를 이루었다. 나폴리 민요는 대개가 망향(望鄕)의 노래로 고향을 떠난 남부 사람들이 이국(異國)에서 부르는 노스탤지어의 곡이다.
나폴리 민요가 온 세계를 풍미하게 된 것은 나폴리에서 매년 열려 온 민요제 덕택이다.나폴리의 메르젤리나 역 앞에는 피에디그로타 성당이 있다.어민들의 수호신인 산타 마리아를 모신 곳이다.여기가 민요제의 본부다.1744년 카를로 7세가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한 뒤 그 축하를 위해 시작된 민요제는 1859년 이후부터 밤의 축제로 변했다.
* 나폴리 해변가
민요제 날은 피에디그로타 성당 앞에서 가수들이 아름다운 꽃수레에 나누어 타고 전국에서 응모해 온 곡들을 부르며 시내를 한 바퀴 돈다.인기 있는 노래는 당장 시민들에 의해 불려지고,그 반응에 따라 심사위원들이 입상작을 결정한다.이렇게 해서 태어난 대표적 노래가 <푸니쿨리 푸니쿨라>(1880년)요,<오 솔레미오>(1898년)요,<돌아오라 소렌토로>(1902년)요,<먼 산타 루치아>(1919년)다.
<오 솔레미오>는 카푸로(1859-1920) 작사에 카푸아(1864-1917) 작곡으로 민요제에서 2등 입상을 한 곡인데 카푸로가 러시아에 1년 동안 가 있으면서 나폴리의 밝은 태양이 그리워 쓴 것이다.둘 다 마폴리에서 태어나 나폴리에서 죽었지만 특히 카푸아는 자신이 극장과 카바레 등에서 연주를 하고 다니며 많은 민요를 작곡했다.
<산타 루치아>는 산타 루치아 지역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으로 민요제와는 상관없이 작곡자는 불명인 채 1850년 테오도레 코트라우라는 사람이 낸 악보집에 처음 실린 곡이다.
* 밤의 나폴리
나폴리 민요는 원래 나폴리 사투리로 불러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나폴리 토박이들이 부르면 ‘돌아오라 수리엔토로’가 된다.이 민요들은 만돌린,바이올린,기타,아코디온으로 반주되는 것이 보통이다.
많은 명곡들을 낳은 민요제는 1973년부터 중지되었다.젊은 층이 미국 노래만 좋아하고 민요를 싫어하는데다 대형 민요가수가 나오지 않아서 시들해졌다.식당에서도 민요를 부르는 사람은 옛날보다 훨씬 적어졌다.나폴리 민요를 살려 보려고 1984년에 어느 디스크 회사가 민요제를 부활시켜 보았으나 성과가 좋지 않아 중지되었다.
* 소렌토에서 내려다 보는 바닷가
나폴리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창을 열고 나폴리타나부터 부른다고 했다.이제 그것이 옛말이 되었다.나폴리타나는 오히려 나폴리 밖에서 더 많이 불려지고 있다.
나폴리에서 나폴리 만을 따라 사화산(死火山) 베스비오를 바라보며 달리다가 유명한 죽음의 도시 폼페이를 지나 대안(對岸) 끝에 이르면 거기가 소렌토다.육로로 48km,유람선을 타면 14마일을 한 시간에 닿는다.배는 소렌토에서 다시 20분 만에 카프리 섬까지 간다.
* 절벽위의 소렌토
소렌토는 나폴리 만에 면한 높은 단애(斷崖) 위의 도시다.배를 타고 닿으면 높은 고대(高臺) 위로 한참 올라가야 한다.위에서 내려다보는 선창은 아득하다.인구 2만 5천.가로수에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온 거리가 향기롭다.남국의 정취가 물씬하다.사철 내내 길은 관광객들로 득실댄다.해안선을 따라 절벽 끝에 고급 호텔과 별장들이 줄 서 있다.
* 소렌토 올라가는 길
소렌토란 이름은 원래 해안에 있는 그로다 델 시례나의 시례나(바다의 요정)에서 나온 것이다.호메로스의 서사시(敍事詩)에서 율리시즈가 배를 타고 지나다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 발광을 하게 되자 선원들더러 배의 마스트에 자기 몸을 묶게 하는 곳이 바로 이 소렌토 앞 바다다.소렌토는 그런 유혹의 해항(海港)이다.이 곳을 찾아온 여행객에게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란 민요가 그 사이렌의 노랫소리처럼 귀에 울린다.
* 소렌토 시내
단애 위의 많은 호텔 중에서도 비토리오 베네토 가(街)에 있는 임페리알 트라몬타노 호텔 로비에 커다란 명판(名板)이 하나 걸려 있다.먼저 16세기 이탈리아의 대표적 시인 타소가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크게 내세운 뒤 궤테,바이런,키츠,셸리,스콧,라마르틴,롱펠로 등 쟁쟁한 이름의 시인 묵객들이 여기 머물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적어 놓고 있다.
<톰 아저씨 오두막>의 작가 스토 부인이 <소렌토의 아그네스>의 영감을 얻고,또 입센이 6개월간 체재하며 <유령>을 쓴 곳도 이 호텔이라는 것이다.그리고는 ‘쿠르티스가 유명한 노래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이 호텔의 테라스에서 작곡했다’라고 부기(附記)해 놓았다.
잠 바티스타 쿠르티스(1860-1926)는 시인 겸 화가였고 그의 동생 에르네스토 쿠르티스(1875-1937)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여서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형이 작사만 하고 작곡은 동생이 하였다고 한다.형은 당시 이 호텔의 주인이던 트라몬타노의 초청으로 호텔을 장식해 주기 위해 1891년 여기 왔고,그 후로 매년 6개원 정도를 이 호텔에서 지내며 그림을 그렸다.
* 소렌토에서 내려다 보는 지중해
1902년 9월 15일, 당시 수상이던 차나르델 리가 여행중 소렌토에 와서 머물렀다.형 쿠르티스는 수상의 체재를 기념하고 수상이 생전에 아름다운 이 곳으로 다시 찾아오기를 기원하여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썼고 동생이 곡을 붙였다. 이 노래가 나폴리 민요제에 나가 멀리 퍼진 것이다.
쿠르티스 형제는 1898년에 이미 합작으로 <아 프림마보타>라는 노래를 만들었고,그 후로도 많은 곡을 공동으로 만들어 명성을 떨쳤다.나폴리의 산타 마리아 안테세쿨라 가(街)에 있는 두 형제의 생가에는 기념판이 걸려 있다.
형 쿠르티스가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쓴 호텔의 테라스는 옛날 그대로다.멀리 나폴 리가 가물가물하는 바다, 그 바다가 눈부시다.특히 석양녘에 여기 서면 대해(大海)로 침몰하는 낙조(落照)에 소렌토의 온 단애(斷崖)가 벌겋게 익어, ‘고이 잠든 저 바다는...’ 하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가락이 절로 흥얼거려진다.낯선 타국인에게도 안온한 귀향감을 주는 소렌토다.
* 소렌토 뒷골목
소렌토의 기차역 앞에는 잠 바티스타 쿠르티스의 흉상이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기가 이 민요의 본향임을 일깨워 준다.작품을 쓴 지 꼭 80년 만인 1982년 9월 15일에 세운 것이다.동생 에르네스토의 기념상은 없으나 그의 곡은 소렌토의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목제 커리용(鐘樂) 속에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