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출판물(웹툰, 웹소설, 종이책, 오디오북 등)을 종이책 도서정가제와 분리해야 하는 이유와 그 정당성에 대하여
※ 본 내용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 뿐, 누군가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전자출판물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청원에서 크게 두 가지의 이유로 전자출판물을 위한 도서정가제 개정을 청원했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첫 번쨰 이유인 전자출판물 고유의 특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려 합니다.
1. 한계 비용이 0이다.
organicmedialab.com/2013/07/01/4-characteristics-of-information/
한계 비용은 어떠한 재화를 추가로 한 단위 더 생산할 때 드는 비용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책 한권을 찍는 데에 종이값 및 인쇄비가 5,000원이 발생한다면, 이때 5,000원이 한계비용이 됩니다.
그러나 한계비용은 이처럼 고정된 값이 아닙니다. (*상단 링크 본문 복붙) 실물책의 경우 한계비용이 체증하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생산량이 어느 수준(물리적 제품의 비용곡선과 매출액선이 두 번째로 만나는 점)을 넘으면 규모의 불경제가 나타나 손실이 생깁니다. 하지만 전자출판물의 경우 제품의 고정비가 크고 한계비용이 0일 뿐 아니라 한계비용의 체증이나 생산용량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생산량이 늘면 늘수록 규모의 경제로부터 얻는 이익이 늘어나게 되지요.
이러한 비용구조는 원가에 근거한 가격설정(cost-based pricing)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고정비가 1억원이 든 e-book은 1,000개를 팔면 원가가 10만원이고 10만개를 팔면 1,000원입니다. 생산량 또는 판매량에 의해 단위원가가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하는 상황에서 ‘원가가 얼마이니 이윤을 20% 붙여 가격을 얼마로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인 재화의 경우 이윤이 극대화 지점은 한계비용과 한계수입이 일치할 때 입니다. (2계 조건에 대해서는 설명 생략)
http://blog.naver.com/hope8718/220868512818
그러나 고정비만 존재하는 전자출판물은 이처럼 최적 생산량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산하면 생산할수록 이윤이 늘어나니까요. (하단의 그래프 참조)
수량(quantity)가 늘어날수록 이윤의 크기, 삼각형이 커집니다.
생산자 손에 떨어지는 총수입은 <가격X수량>으로 결정됩니다.
수입은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2. 소유권 이전이 불가능한 전자출판물의 한계
전자출판물의 특성 중 하나인 소유권 이전 불가능이 정가제 예외 적용을 주장하는 근거로 동원되고 있다. 플랫폼이 운영을 중지하면 책을 볼 수 없게 되는 등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되지 않기 때문에 전자출판물은 종이책보다 더 할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손실에 대한 위험 부담을 플랫폼 사업자가 아니라, 저작권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포커스컬럼] “전자출판물과 도서정가제에 대한 잘못된 정보 바로잡기”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손실에 대한 리스크”가 존재한다면 이를 보상하는 리스크 프리미엄 역시 존재해야 합니다. 합당한 수준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없다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불만을 느낍니다. 할인은 저작권자에게만 위험부담을 지우는 무정한 방법이 아닙니다. 때로는 플랫폼 일방이 할인율을 부담하기도 합니다.
3. 웹소설 단행본 시장의 매출 형태
보통 웹소설 단행본 매출은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발생하지 않습니다. 출간 직후 몇달 안에 수익이 발생하고 그 이후 별다른 프로모션이 없다면 잊혀지는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할인 프로모션에 들어간다면 사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잊혀진 작품들이 프로모션 기간 동안 팔리고 운이 좋으면 뒤늦게 재발굴되어 입소문을 타 새로운 유입이 생기기도 합니다.
4. 전자책 할인 프로모션 - 끼워팔기 전략
리디북스 뿐만 아니라,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역시 매월 정해진 기간 마다 일정 금액 이상 결제시 할인이 되는 쿠폰을 발행하였습니다. (유통사 할인 전액 부담, 2020년부터 전부 사라짐)
할인을 받기 위해서 정해진 금액 채워야 하는 소비자들은 일명 "테트리스"라고 불리는 작업을 합니다. 쿠폰 금액을 맞추기 위해 신인이나 무명작가들의 책을 끼워 산 것입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강화로 인해 이러한 할인 혜택이 사라지고 번들링 효과가 제거 되어 신인, 무명 작가의 책이 팔리지 않기 시작합니다. 예산 제약 하에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려는 소비자들의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할인이 없어지니 책값이 비싸졌고 소비자들은 같은 금액으로 평소보다 더 적게 구매했습니다. 가격이 상승하여 실질 소득이 감소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할인 프로모션의 부재로 인해 소비 심리가 얼어붙어 소비자의 지출 금액 자체가 줄어들기도 하였습니다.
가격이 같으면 기성/유명 작가와 신인/무명 작가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몹시 순진한 생각입니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소비자들은 신인/무명 보단 기성/유명 작가의 작품을 선호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위험을 회피하려는(risk-aversive), 위험기피자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인/무명 작가들의 책은 독자들에게 리스크가 존재하는 상품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요.
할인이 사라지자 독자들이 신인/무명 작가를 기피하는건 너무나 당연했고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그럼 왜 한국웹소설협회 회장이자 문피아 대표는 "웹소설도 종이책과 같은 도서정가제를 적용해달라"는 성명을 냈을까요?
일단 저는 문피아 대표, 금강 작가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니 문피아 대표의 소설은 무료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철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문피아는 판타지를 비롯한 남성향 장르 플랫폼의 선두주자입니다.
그러나 작년 문피아의 매출은 286억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카카오페이지의 매출은 1800억, 리디북스의 매출은 1100억이죠.
2019년 기준, 문피아의 유료 회원은 약 20만명인 반면 리디북스의 누적 가입자 수는 360만 명이며, 카카오페이지의 경우 누적 가입자 수가 2,200만명입니다.
즉 문피아는 이들만큼 충분한 수량(quantity)을 생산할 역량이 받쳐주지 않습니다.
문피아와 리디북스/카카오의 최대 생산량 차이를 간략하게 그림판으로 그려봤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수익에서 비용을 뺀 부분이 이윤이므로 할인된 가격으로 파는 것이 오히려 손해인 것 같네요.
그러나 수요곡선이 우하향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소비자들은 지불할 용의보다 가격이 비싸면 사지 않습니다.
때문에 가격이 비싸면 수요량이 줄어들죠.
이를 반영하여 그래프에 표시 했습니다.
문피아는 할인된 가격의 수요량만큼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인하지 않고 정가로 받는 것이 이득이죠.
실제로 문피아는 할인하지 않습니다.
25화 무료 보기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러나 여성향 장르, 로맨스 판타지 주력인 카카오페이지는 문피아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합니다.
판타지, 무협의 경우 편수가 200편이 넘는 장편이 많아 25화 무료 보기가 그리 치명적이지 않지만 여성향 장르는 이처럼 편수가 많지 않습니다. 편수가 50편인데 25화를 무료로 제공한다면 수익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죠. 카카오페이지는 5화만 무료로 제공하고 이후 편수는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로 제공합니다.
시장이 이렇게 다른데 웹소설 업계를 대표한다는, 한국웹소설협회 회장이라는 분이 전자책(단행본) 시장까지 언급하며 도서정가제를 적용해달라 성명을 내는 것은 다소 월권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업계에서도 저 협회가 도대체 어디길래 웹소설을 대표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옵니다.
문피아와 카카오가 갈등 관계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출판계와 손잡고 카카오 뿐만 아니라 여성향 시장 전체를 공격하는 모양새가 되어 심히 유감입니다.
문피아 대표 금강 작가에게 묻습니다.
웹소설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신다는 분이 이처럼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성명을 내는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에게 여성향 장르 작가들은 웹소설 작가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