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8장 23~35절, 고린도후서 2장 10절, 에베소서 4장 32절, 골로새서 3장 13절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그런데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그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표준새번역>
여러분이 누구에게 무엇을 용서해 주면, 나도 용서해 줍니다. 내가 용서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용서한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표준새번역>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표준새번역>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숙제같은 단어가 바로 '용서'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어야 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눈물로 밤을 지새워도,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을만큼, 찬양하고 또 찬양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그 사랑을 '용서'를 통해서 이미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험한만큼 실천하지 못하는 참 나약한 그리스도인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난 용서 받았지만, 넌 용서할 수 없어!", "내가 용서받은 것과 네가 용서 받아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야!" 라고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야기합니다. 용서, 이 단어 앞에서는 언제나 부끄러워집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용서를 하는 것에는 여전히 예민하고 뭔가 못마땅할 때가 많습니다. 용서를 받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용서를 해 주는 것에도 익숙해지겠지라는 착각을 용서의 상황이 올 때마다 처절히 느낍니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은 단호하게,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용서'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코멘트나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권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명령'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내가 먼저 경험한 것을 그저 흘려보내는 통로의 개념으로 용서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용서의 문제가 '하늘나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늘나라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깊게 생각해보면 이내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각 가정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통해, 각 교회들을 통해 확장되어져 예수님의 재림 때에 완성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완성단계에 이르기까지 그 공동체 안에서 많은 시간들이 사랑하고, 용서하는데 인색하게 지나간다면 과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실감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지금 현재의 삶에서, 그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인 '사랑과 용서의 법칙' 그대로 살려는 노력이 없이, 어떻게 완성된 사랑과 용서의 충만함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속해져 있는 모든 공동체에서 사랑과 은혜, 용서와 평안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었을 때 온전히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아! 바로 여기가 천국이구나!" 어떻게 외칠 수 있겠습니까? 현재의 삶과 똑같은 곳이 천국이라면 지금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실로 지금 우리의 삶에서 행해지는 사랑과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명령하신대로 우리는 사랑과 용서를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것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사랑과 용서'라는 단어를 가르쳐주시는 것에서 멈추시지 않고, 그 사랑과 용서라는 것을 십자가를 통해 직접 무엇인지 보여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용서'라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져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온 것입니다. 결국 공동체를 이어온 힘은 사랑 그리고 용서였습니다.
지금 자신의 태도를 한 번 돌아보십시요. 오늘 본문은 만 달란트 빚진자와 백데나리온 빚진 자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 온도차를 느껴야 '용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표를 보신 후 지금 자신의 태도를 한 번 살펴 보십시요. 우리는 그저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한 정도의 용서를 빌었음에도 가엾게 여김을 받았으며, 놓임을 받았고, 빚도 없애주는 은혜의 용서를 경험했던 만달란트 빚진 자였습니다. 확실합니다. 우리는 결코 백데나리온을 빚진 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만달란트 빚진 자였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구한 순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진짜 실제 생활에서 120억을 빚졌다가, 당장 그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한 번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이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렇게 용서를 베푼 사람에게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18장 33절에서 만달란트 빚진 자를 질책하시는 예수님의 이 표현이 정말 뼈저리게 와 닿습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저는 그저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정도에서 용서를 받았는데, 지금 상대방은 엎드려서 간청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야 합니다.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애원을 주인은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 간청조차 들으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두 사람에 대한 성경의 비교는 정말 큰 온도차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릎만 꿇고 애원했을 뿐인데 용서받은 자가, 엎드려 간청하는 자를 용서하지 못한다니요? 그래서 에베소서 4장 32절은 이렇게 우리를 권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네. 주님. 이 온도차를 잊지 않겠습니다.
스스로를 백데나리온 빚진 자로 생각하는 오류를 벗어나고 나면 분명하게 이 온도차를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120억과 800만원의 차이만큼이나 우리는 어마무시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만달란트를 빚진 것을 다 탕감받은 용서받은 자답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800만원을 1,500번 탕감해주어야만 120억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 일흔번에 일곱번을 넘어서 1,500번을 용서해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그래서 용서 받은 것보다 용서를 한 것이 더 많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언제까지 용서받기에만 머물러 있겠습니까? 이제는 용서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젠 정말 용서의 시대입니다.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반드시 용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용서의 세계로 초청합니다. "함께 용서하러 가실까요?"
예수님은 이 본문을 마무리하면서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여기에서 진심으로도 아주 중요하게 밑줄 그어야 할 단어입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단어는 바로 진심으로 앞에 나오는 '각각' 입니다. 저는 이 '각각'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먼저 너희가', '먼저 너희끼리' 로 말입니다. 자기가 속해져 있는 공동체에서 먼저 자신이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속해져 있는 공동체에서 먼저 서로가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용서하고, 먼저 서로 용서할 때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제서야 하늘 아버지께서도,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해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주신 것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바로 마태복음 6장 12절의 말씀입니다.
죄송하게도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제 꼭 수행해 내야 할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열쇠입니다. 그 열쇠는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이미 당신은 그 열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열쇠를 사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잊지 마십시요. 그 열쇠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용서'란 열쇠로 땅에서도 풀리고, 하늘에서도 풀리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