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임술 선생님 영전에
정운종(전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겸 상임이사)
* 생전의 윤임술 선생님(전 부산일보 사장)
0- 편집기자의 대부로 언론사에 큰 족적 남겨
윤임술 선생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100세를 넘기신 고령임에도 골프와 수영으로 건강을 다지시고 인터넷으로 국내외신문을 검색해 읽으신다며 노익장을 과시하셨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삼가 명복을 빌며 졸지에 상을 당하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1965년 신아일보 창간당시 초대 편집국장으로 동분서주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선생님은 저에게 있어 큰 스승이요 자상하신 어버이 같은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1945년 조국광복과 더불어 언론계에 진출하신 이래 독창적인 신문편집과 방대한 언론사료집 편찬의 신기록을 세우셨습니다. ‘신문편집의 (제갈공명(諸葛孔明)’, ‘편집기자의 대부(代父)’란 닉네임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만드신 신문 지면은 언제나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가득 찼고 독창적인 편집 스타일은 선생님이야 말로 ‘신문편집의 달인’이셨음을 언론인 모두에게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편집기자에게는 국장 같은 책임, 하인 같은 책무가 따른다”는 선생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시대에 대한 정당한 견식을 토대로 뉴스의 가치 판단에 실수가 없어야 하고 여론을 좌우하는 것이 신문이니 한 줄의 제목에서나 몇 자의 기사표현에도 언제나 중용과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 하시던 그 편집기자관(編輯記者觀)과 일경언론재단 이사장으로 지방언론 발전에 기여하신 공로에도 후진들은 큰 박수로 존경을 표합니다.
선생님이 초대 한국언론연구원장과 조선일보 사료연구실 고문 재직 시에 펴낸 ‘대한매일신보’ ‘협성회회보’ 영인본과 ‘신문방송년감’ ‘한국신문백년지’ ‘한국언론인물지’ ‘언론비화 50편’, ‘신문과 언론인의식’ ‘한국신문사설선집’ 과 ‘한국신문통감’ 등은 모두가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을 때 민중계몽에 앞장서서 신문을 만들었던 소중한 기초사료(基礎史料)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작(力作)으로 선생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일을 해내셨습니다.
부산일보 사장직에서 물러나신 후 쓰신 역저 ‘신문풍진초’(新聞風塵抄) 는 신문경영인은 물론, 언론인 모두가 경청해야할 덕목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 언론계에 우뚝 솟은 큰 거목이셨습니다.
언제 뵈어도 온화한 성품으로 후배들을 대해 주셨던 선생님!
사모님과 사별하신 후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타는 그리움을 참을 수가 없어 매일 쓰신 일기를 모아 ‘나팔꽃 일기 10년’ 이라는 책을 쓰셨다며 눈시울을 적시던 선생님의 자상하신 모습이 그립습니다. 이제 그 나팔꽃 곱게 핀 하늘나라, 고통도 번민도 없는 저승에서 사모님과 해후하시면서 부디 영생극락 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대한언론 2023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