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싸운 이유
최후진술서
- 이젠 노동자가 스스로 나설 것이다.
지난 날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수 많은 젊음들이 거리에서 학교에서 공장에서 투쟁하며 문민정부를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 노동자들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 무엇인가 해결되고 노동자의 생활도 변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 선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정부의 반노동자적인 정책에 절망하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명확히 알았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의 문제는 노동자들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천만 노동자들은 이 사회의 천덕꾸러기에서 우리 스스로가 굴레를 깨고 일어서서 노동악법을 개정시키고 반노동자적인 정책을 철폐시킴으로 노동자들이 정치세력화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헌법에 배치되어 악용되는 직권중재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거부하는 직권중재, 국제적으로 보수적이라는 ILO에서 조차 시정 요구를 하고 있는 직권중재 조항을 악용하여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불법화하고 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사용자가, 정부가 묵인하지 않는 단체행동권은 가능한 것인가? 과연 지하철 노동자가 헌법으로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저는 자신 있게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노동자의 슬픈 현실입니다.
- 지하철은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어야 한다
손뼉을 치기 위해서는 두 손을 마주쳐야만 소리가 납니다. 지난 지하철 파업과 그 이후 문제까지 노사가 같이 책임을 져야 하고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먼저, 파업을 실행한 노동자들은 이렇게 법정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하철 운행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지하철 공사 경영자들, 아무런 재량권도 가지지 못한 채 임금교섭에서 정부지침 3%를 녹음기처럼 말하던 복지부동의 공사 사장과 지하철공사의 모든 예산권과 인사, 경영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노사가 합의하고 문서로 체결한 사항조차 지키지 않으므로 노사분쟁을 조장하고 유발시키는 서울 시장, 그리고 노사 자율 교섭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정부 지침 3%를 강요하여 노동조합에게 항복하던지 아니면 파업을 하고 감옥엘 가던지를 요구하는 3자 개입의 정부 당국자가 이 자리에 나와서 옳고 그름과 책임의 소재를 밝혀야 함에도, 힘없고 약한 노동자들만 시민의 발이란 멍에 속에 희생양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부지침 3%
해마다 임금 협상 때면 정부 지침으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을 통제함으로 실질임금은 삭감되어 왔습니다. 국민에게 열악하다고 인식되는 공무원 보다도 더욱 열악해진 지하철 노동자의 삶은, 내일은, 도대체 누가 보상해 준단 말입니까?
우리는 지하철 노동자의 내일을 찾기 위해 정부 지침을 철회시켜야만 했습니다. 정부 지침 3% 철폐는 지하철 뿐 아니라 공공 부문 80만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입니다. 그런데 복지부동의 공사는 정부 지침 3%를 끝까지 고수할 수밖에 없었고 지하철 노조는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지하철에 입사하여 지금 40대 초반입니다. 지하철은 저의 젊음과 청춘을 모두 바친 기쁨과 슬픔, 웃음들이 배어있는 삶의 터전입니다.
지하철 공사는 6월 파업 이후 사법적 처리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루 아침에 파면시켰고 저는 삶의 터전에서 격리되고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 조합원 동지 곁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긴 세월 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묵묵히 남편의 뜻을 믿고 따라 준 사랑하는 아내와 지금도 아빠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정임, 요규 남매, 내키지 않아 하시면서도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의연하라고 격려하시는 늙으신 부모님께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합니다. 그리고 부족함이 많은 위원장을 어려움 속에서도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신념으로 힘을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해 준 조합 간부들과 처음부터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저자신도 어떻게 보답해야 할 지 모를만큼 너무나 열렬히 사랑해 준 자랑스러운 9천 동지들께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드리며 저는 반드시 조합원 동지 곁으로 달려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또 다시 저와 같은 아픔을 우리 동지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지난 6월 파업과 관련하여 불편을 당하신 모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끝까지 최후진술을 경청해 주신 재판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최후진술을 마치겠습니다.
1994. 11. 22. 서울지하철공사 노동조합 위원장 김연환
항소이유서
사건번호 : 95노273
피고인 인적사항 성명 : 김연환
주민등록번호 : 520209-1056119
칭호번호 : 안양교도소 제1914번
위 피고인은 1994.12.16.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죄로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의 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 항소하였는 바, 아래와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항소이유의 요지 [항소이유로 주장하는 항목에 O표를 합니다]
1. ( 0 ) 원심의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2. ( ) 피고인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범죄를 저지른 바가 없다.
3. ( 0 ) 원심의 판단에는 헌법, 법률, 명령, 규칙을 위반하였거나, 법리를 오해
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4. ( )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의 상태(술에 만취
되었거나 정신이상의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다.
5. ( ) 기타사항
항소이유에 대한 설명
[피고인이 내세우는 항소이유에 관하여 붙임과 같이 간략하게 서술합니다]
1995. 2. 23. 피고인 김연환
차 례
Ⅰ. 서론(항소이유서를 제출하면서)
Ⅱ. 상황개요
1. 노사간의 분쟁은 발생될 수밖에 없고 인내와 대화로써 해결해야 합니다.
2.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3. 해마다 서울지하철 노사는 벼랑끝까지 갈 수밖에 없습니다.
4. 합의사항 마저 이행하지 못하는 서울지하철공사
5. 94년 임금교섭 진행상황
6.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지하철 파업
Ⅲ. 공소사실에 대하여
1.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1) 제3자 개입금지(제13조의 2)
2) 직권중재(31조)
3) 사업장외 쟁의(12조3항)
2. 업무방해
Ⅳ. 항소이유서를 정리하며
Ⅰ.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며
유죄로 형이 확정되기 까지는 무죄로 추정됨을 법원칙으로 한다고 합니다. 피고인은 자기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형사 소송법상 구속사유는 일정한 주거가 없을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도망갈 염려가 있을 때 구속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정한 거주도 있고 자진출두하므로 증거인멸이나 도주할 염려는 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구속시킴으로 충분히 방어하고 변호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구속이라는 사법집행기관에 의한 의식 또는 무의식적인 인권침해가 적지 않으며 무죄 추정 원칙에 의해 인권보호가 우선 되어야 함에도 기관 편의 위주로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사법집행의 현실입니다.
결국 피고인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자기 방어를 하라는 식입니다.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제약된 상황에서 재판 자료 확보, 서류작성, 항소이유서 작성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과 제약이 따릅니다.
그나마 어려운 중에 조합원들이 영치해주는 책과 자료를 참고하고 변호사가 넘겨준 일부 소송자료를 참고하여 항소이유서를 작성해 보았지만 부족하고,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그대로 표현하지도 못한다는 능력적 한계를 가집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노동문제 전담 재판부가 없습니다.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 부족이나 소외되는 느낌을 가지면서, 교수나 변호사 등의 주장들이 저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은 그대로 인용하여 사용했습니다.
짧은 시간안에 한정된 시간과 공간속에서 항소이유서 작성은 어려웠습니다.
아무쪼록 항소이유서를 통해 생각을 부분적이나마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어 재판부가 사건을 올바로 판단하는 데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Ⅱ. 상항개요
1. 노사간의 분쟁은 발생될 수밖에 없고 인내와 대화로써 해결해야 합니다.
지난 94년 6월16일 미국에서는 하루 25만4천명의 시민이 이용하고 있는 뉴욕-롱아일랜드 구간의 철도노조와 도시 운송공사 사이에 진행되어 왔던 노동계약 갱신에 관한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금요일 아침 시민들의 출퇴근을 불편하게 한 파업이 발생하였음에도 어느 신문에서도 「시민 출근 볼모로 임금투쟁」이라는 식의 머릿기사는 없었습니다.
쿠우모 뉴욕주지사는 파업 현장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노조간부를 구속하는 대신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공권력에 의한 해결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결방법을 찾는 일」이라며 노사를 다시 협상테이블로 불러들였습니다.
클린턴 대통령 역시 양측의 합의를 권유하였고 노사 양측은 파업의 원인이 되었던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에 대하여 다시 협상을 시작하여 결국 6월21일 부터는 정상근무 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고 합니다. 만약 그러한 요구조건들이 협상을 통하여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할 경우 태업과 파업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합니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없지만 노동력이 있는 노동자가, 돈은 있지만 노동력이 없는 자본가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국 한 푼이라도 덜주려는 고용주가 있고,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노동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쟁의란 당연하며 이러한 쟁의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용주와 노동자는 지혜와 인내를 가지고 협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노동쟁의에 대한 공권력의 투입은 ‘획일’과 ‘무조건 복종’이라는 봉건적 의식구조의 산물이자 ‘정경유착’으로 자본가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던 군사정권 시대의 악습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일 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권리를 박탈하여 그들을 「자본주의 사회의 바깥으로 몰아 내려는 위험한 행위」입니다.
2.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보장 되어야 합니다.
노동운동은 본래 분배의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의 여러 모순을 시정해 나가면서 국민 중에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근로대중의 생활을 개선함으로 결국은 전체 국민생활의 진보에 이바지하는 운동입니다. 또한 노동조합법이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단결권을 비롯한 노동자 및 노동조합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법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노동조합의 대외적인 자주성과 대내적인 민주성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할 책무를 지는 동시에 노동조합의 결성, 조직, 운영 등 자율적인 활동에는 간섭․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헌법에 노동3권은 보장되어 있으며 헌법은 법률의 해석기준이며 심사기준입니다. 경제발전의 질적 지속을 위해서도 노동기본권 확보의 요구는 절실하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입니다. 노동기본권 행사를 통해 노동조건의 향상을 통한 근로자의 실질 임금의 증대와 실업해소(고용증대)는 노동자의 이익인 동시에 국민경제의 발전으로 귀착되게 됩니다. 노동기본권의 보장은 우리나라 산업사회에 지속적이고도 정상적인 발전을 위한 기초적 조건이며 이 조건이 충실히 확보될 때에만 산업사회에 공정한 경쟁조건을 제공하여 노사 관계의 진정한 안정을 기대할 수 있게 되고 자본주의 경제의 고도화를 기할 수 있습니다. 만일 자유로운 파업권 등이 법체제 안에서 정상적인 통로를 찾을 수 있도록 수렴되지 못한 경우 파업은 노동자들의 조합자유의 옹호를 위한 무기로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새로운 형태」로 사용될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쟁의행위가 당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의 개선과 향상을 목적으로 하며 폭력이나 파괴행위 또는 안전보호 시설을 위협하는 수단 등을 사용하지 않는 한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므로 쟁의행위에 대한 부당한 제한은 삭제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헌법 보호의 길이라고 믿으며, 이러한 요청의 실현은 노동정책을 근본적으로 정부 주도주의에서 노사 자치(자율)주의로 전환하여 정상화 하는 데서 주어질 것입니다. 또한 헌법 보호를 위한 사법부의 기능도, 노동재판 전담반 구성 등 적극적인 관심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3. 해마다 서울지하철 노사는 벼랑끝까지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지하철공사는 공기업으로서, 공기업은 그 사업내용이 국민 전체나 해당지역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경우에 공익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관료주의로 인한 경영의 비효율성을 방지하기 위해 설립하는 기업형태로 인사․경영․예산의 독립성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공기업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과도한 개입으로 설립취지가 훼손되고 있으며, 특히 지방공기업은 정부투자기관에 비해 자율성이 대단히 빈약해 노사관계의 악화를 제도적으로 조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지하철공사 노사관계는 일반기업체의 노사관계와는 다른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사관계가 노사간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마다 지하철 노사관계는 벼랑끝까지 가는 대치상태에서 협상이 타결되기를 반복하면서, 시민들은 이 때문에 「지하철 노조는 맨날 파업만 하는 강성 노조」라는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지하철 노사관계가 이처럼 극단적인 대치선을 유지하는 것은 노조가 강성이라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경영에 있어서 서울지하철공사가 자율권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원래 지하철공사는 서울시에서 자본금을 출자한 투자기관으로 공무원 조직이 갖는 관료조직으로서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성을 가미해서 만든 기업입니다.
지방공기업법에 근거해 설립된 공사는 당초 설립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독립채산제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경영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독립성을 부여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서울시로부터 하나에서 열까지 통제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하철공사는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사업계획과 예산편성은 공사 이사회가 아닌 서울시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보수에 관하여는 서울시장이 내무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사 설치 조례 및 정관을 보면,
가) 공사 사업 계획을 수립하거나 변경할 시에도 서울시장의 승인을 받아 집행하여야 한다. (설치조례 제14조)
나) 공사 예산 편성 및 결산 또한 서울시장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설치조례 제16조, 정관 제25조)
다) 공사 기구 및 정원에 관한 사항, 임직원의 급여 및 퇴직수당 지급 기준에 관한 사항은 시장의 승인을 얻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설치조례 제22조, 정관 제8조)
서울시의 통제 정도를 (아래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부투자기관과 비교해 볼 때 그 정도가 매우 심합니다.
정부투자기관 |
비교항목 |
지하철공사 |
이사회 의결 |
기구 및 인원 |
국무총리 승인 |
자체예산편성조정 |
예산 |
서울시장 승인 |
이사회 의결 |
급여 및 사업계획 |
서울시장 승인 |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에 규정을 받는 정부투자기관은 상대적으로 이사회에 많은 권한이 주어짐으로서 경영의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투자기관은 사업계획 수립과 예산편성을 서울시장이 가지고 있으며, 임금에 관하여는 서울시장도 내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되어있는 등 경영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 모두에 대한 권한을 서울시장과 내무부장관이 독점․통제토록 된 제도적인 각종 제한에 따라 공사의 사장은 관리자에 불과할 뿐 심지어 사원식당 아줌마 한 명을 과외로 채용함에 있어서도 서울시장의 결재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서울지하철 공사 경영진은 실질적인 권한을 갖지 못하고 서울시 지침에 따라 대리 업무를 수행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지하철공사 경영진의 입장에서 보면 노사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자율교섭권이 보장되지 않음으로서 교섭을 통한 평화적 해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이 없기 때문에 강경한 태도를 고수할 수밖에 없으며, 노사관계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 서울시와 정부가 개입하도록 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4. 합의사항 마저 이행하지 못하는 서울지하철공사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서울지하철 공사가 노사간에 맺은 합의사항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결과로 표출되어 89년 3.16파업을 불러왔고, 93년 임단협 체결에서 조합이 임금을 양보하면서 공사가 약속한 승진 적체 해소를 위한 승진조치마저 서울시의 승인을 받지 못해 이행치 못하여 조합원들의 불신을 증폭시켰으며, 88년에 노사가 합의각서를 맺은 사항도 6년이 지나도록 이행치 않으므로, 이러한 불신과 불만이 이번 파업과도 결코 무관치 않습니다.
물론 조합과의 합의사항은 공사가 자율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사전에 서울시의 승인(묵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합의사항 이행에 대해 서울시의 무책임한 이러한 책임회피가 지속되고 공사에 실질적인 자율교섭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지하철 노사문제는 매년 파업직전의 상황까지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하철노조는 공사의 자율경영권 보장을 요구했고, 93년에는 6500여명의 조합원 서명을 받아 서울시의회에 청원을 하려 했으나 시의원들의 발의 회피로 무산되어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지하철이 진정한 「시민의 발」이 되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방공기업법을 개정해 권한을 대폭 이양하던지 실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가 직접 교섭에 상대자로 나서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항상 교섭을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지만, 전혀 자율적인 교섭권이 없는 공사 경영진과의 교섭은 결국 사태만 악화시킬 뿐입니다.
5. 94년 임금교섭 진행상황
지하철 노동조합에서는 93년 임단협을 치르면서 임금은 정부지침 3%를 수용함으로 조합원 가운데 상당히 불만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94년 들어서서 임금안을 준비하면서 실제로 쟁취해야 할 안을 만들어서 최대한 관철시키기로 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지하철 노동자의 임금실태를 보면 생산성 향상은 관두더라도 도표와
10%
7.5%
5.0%
2.5%
0% |
|
|
|
|
|
|
|
|
|
■ 정부 발표 소비자물가 | |||||||
|
|
|
|
|
|
|
|
|
□ 서울지하철 임금인상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90년 |
|
|
91년 |
|
|
92년 |
|
|
93년 |
|
아무리 서울시의 통제를 받고 예․결산이 맡겨져 있다 해도 더 이상 실질임금이 삭감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부분을 기준으로 기본급 7만원 인상 등 임금인상안을 확정하고 4월21일 1차 임금교섭에 임했지만 교섭진행 상황을 보면,
1차교섭 노사 상견례 및 조합 요구안 설명
2차교섭 조합 요구안에 대한 전체적 공사측 입장 설명
3차교섭부터는 노사 서로의 구체적인 입장과 주장에 대한 정당성과 타당성 등 실제적인 교섭에 들어 가야 할 순서인데 공사측은 교섭 진행과 관계없는 조합측 배석자를 문제 삼아 교섭을 거부 했습니다.
조합측은 교섭을 진행하기를 요구하며 저녁 5시까지 교섭 장소에서 기다렸으나 공사측은 교섭에 응하지 않고 퇴근을 해버림으로 교섭은 결렬되었습니다.
4, 5차교섭은 공사측의 3차교섭 거부에 따른 공방으로 교섭이 진행되지 못하고, 6월8일 쟁의발생 신고를 접수하면서 「노조는 자위의 수단으로 쟁의발생을 결의하였지만
교섭을 통한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해결의지가 충분히 남아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하철공사는 6월10일 09:30분에 7차교섭이 예정되었으나 교섭장소에는 공사측 대표위원인 사장을 포함한 공사측 교섭위원 3명이 교섭에 불참함으로, 또 다시 교섭이 진행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조합측 교섭위원들이 공사측 교섭위원 불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공사측 교섭위원중 한명인 유상길 노무계획과장이 「조합측에서 알 필요도, 알려 줄 의무도 없다」라고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상식적으로도 공사측 대표의원이 불참해서 교섭이 진행될 수 없다면 조합측에서 문의하기 전에 불참사유를 이야기하고 양해속에 교섭을 연기해야 할텐데 「조합측에서 알 필요도, 알려 줄 의무도 없다」라는 것은 공사측이 교섭에 임하는 입장과 자세를 대변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공사측은 대화로써 해결할 의지나 능력은 전혀 없고, 서울시나 정부가 빨리 개입하여 강압적으로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형태입니다.
7차교섭 결렬 이후 지하철 노동조합은 94 임금교섭이 공사와의 교섭으로만은 원만히 해결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이번 문제를 원만히 해결해 보고자 정부 관계 부처 노동부와 교통부에 장관 면담 신청을 하고 과천 청사에 6월16일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으며, 국무총리와 내무부 장관에게 성실한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 해결을 위해 면담을 요구하기도 하였지만 묵살당하였고 민자당 대표와 민주당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둥 꾸준히 해결 하고자 노력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사와 교섭을 진행해 왔고 6월24일이면 냉각기간 15일이 경과하여 적법한 쟁의가 가능하지만 시간을 좀 더 가지고 대화로 해결해 보고자 하여 3일간 더 연장하여 27일 쟁의행위 일정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6월21일 지하철 노사가 제9차 단체교섭을 하고 있는 중에 노동부에서는 중노위에 직권중재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냉각기간이 끝나는 24일 곧바로 직권중재에 들어갈 방침(국민 6/20) 이라고 합니다.
쟁의발생 시일을 6일이나 앞두고 노사가 대화로 해결하고자 교섭을 하고 있는 중에 노동부가 직권중재를 요청한다는 것은 지하철 문제를 대화로써 해결할 의사가 없고,
권력의 힘을 빌어 압력 행사를 하여 강제로 합의하게 하던지, 아니면 불법파업으로 몰아가려는 의사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우기 지하철 노동조합에서는 6월7일 6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직권중재 결정은 무시하기로 대의원들이 결의한 사항입니다.
그렇게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지금까지 과거 중재안을 보면 중재란 노사 양측이 일정부분 양보하는 선에서 중재안이 만들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상례적인 중재안은 사용자인 공사측안은 100% 그대로 수용되고 노동자인 조합측안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공사측 제시안보다 더욱 개악된 중재안을 내는 해괴한 사실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지하철 노동자들이 인정한다면 향후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이 주는대로 받으면 되지 교섭할 이유가 전혀 없어지며 이것은 선배노동자들이 피흘려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3권의 취지를 전혀 묵살하는 것이 되며 헌법에 위반되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하여튼 공사나 정부가 지하철 문제를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려는 의사가 없다는 것을 지하철노조는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6.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지하철 파업
이런 상황하에서, 23일 새벽4시에 공권력이 전국 14개 기관차 사무소에 정상적인 농성중인 기관사 및 검수원 613명을 불법 강제 연행하므로 전기협은 곧바로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렵다」는 속담처럼 누차 밝혀왔듯이 지하철노조 역시 공권력이 침탈할 것을 의미하고 궤도교통 노동자 강경 탄압을 예고했습니다.
지하철 노동조합으로서는 어차피 침탈당할 수밖에 없다면 전기협 파업과 시기를 동일시 하는 것이 지하철에 다가오는 파장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냉각기간이 끝나
24일에 쟁의행위로 들어가기로 했지만 최후까지 파국을 막아 보고자 23일 공사와 11차 교섭을 재개해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공사측은 저녁 9시가 되자 미련없다는 듯이 훌훌 털고 할테면 해보란 듯이 교섭장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지하철 노동자들은 공사, 정부, 정당 다방면으로 대화로서 해결해 보고자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24일 파업을 하는 사태를 맞게 되었습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지난 파업(89년)으로 인해 알고 있습니다. 파업을 하므로 가장 피해를 입고 가장 아픈 사람은 ‘파업 노동자 스스로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파업으로 몰린 지하철 노동자들의 길을 우리는 당당히 선택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위법 여부를 떠나서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씀드리며, 파업기간 중에도 조속한 마무리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했고 공사측에 교섭요구도 해보았지만 공사측은 교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파업이 진행되면서 점차 위험이 가중되어 가는 지하철 이용시민들의 불편함과 일터를 떠나있는 조합원들의 불안과 갈등, 그리고 정비되지 않은 열차가 보수되지 않은 철길위를 달리는 데 대한 대형 살상위협을 우려하며 아무런 조건없이 우리 스스로가 우리 일터를 지켜야한다는 마음에서 자진하여 파업을 철회하고 현장에 복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에게는 많은 아픔이 남아있지만 지하철의 쟁의는 일단락 지은 상황입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이 요구하던 문제들이 쟁의를 겪고 나서 정부에 의해서 조금씩 개선되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정부는 정부투자기관간에 기본급에 차이가 있고 기업별로 경영실적이 달라 현재와 같이 획일적으로 모든 투자기관에 적용되던 단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개선키로 했다’ ‘정부는 노동위가 노동부 소속으로 되어 있어서 노동위 독립성이 약하고 불공정 판정 시비와 노동위원회가 수행하는 조정, 중재역할에 신뢰성 및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노동위원회의 위상강화와 독립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중이며 중앙노동위의 위원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부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부분적으로 나마 개선하려는 노력에 대해, 지하철 노동조합은 쟁의로 인해 많은 후유증은 있지만 스스로 위안을 해봅니다.
하지만 1심 재판의 판결문을 받고 나서 형량에 관계없이 공소장을 그대로 옮겨 적은 현실앞에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낍니다.
「법은 만인앞에 평등하다」는 엄중한 진리속에 피고가 인정할 수 있는 올바른 판단을 기대했지만, 구체적인 위법사항 제시는 고사하고 심지어 공소장 내용 중 검사 스스로 다른 사람의 공소내용이 잘못 기재된 것이라고 삭제를 요구한 부분 조차 그대로 옮겨 적은 판결문을 보면서 납득할 수 있는 올바른 판단을 기대했던 저의 마음을 부끄럽게 했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한정된 공간과 시간속에서 부족한 자료를 접하면서 정리해 봅니다.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Ⅲ. 공소사실에 대하여
1. 노동쟁의 조정법 위반
1) 제3자 개입 금지(제13조의 2)
「- 같은 해 6.23 04:00경 전기협이 파업에 돌입하고, 같은 해 6.25 부산교통공단(지하철)이 파업에 돌입하는 등 위 전기협 및 부산교통공단 노조에 대하여 파업을 조종, 선동하고...」
① 제3자 개입 금지의 적법성
노동쟁의 조정법의 제3자 개입 금지조항은 이미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에서 시대착오적 독소조항으로 규정해 한국정부에 폐기를 권고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3자 개입 금지 규정은 1980년 노동법 개정당시에 처음 신설되었으며 입법당국(당시는 국가보위 입법회의)은 70년대에 노사분쟁이 심했던 원인을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찾기보다는 외부불순세력의 조종, 특히 <도시 산업 선교회>를 비롯한 교회의 조종때문이라고 보고 노사 이외의 제3자가 노사문제에 개입하면 3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벌칙을 두어 제3자 개입을 법률로서 금지시켰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개념은 민중의 집단적이며 창조적인 노력이 따르지 않을 때는, 아름다운 구호로만 그쳐버리고 쉽게 그 실체를 상실해 버리고 맙니다. 현실의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그 실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집단은 국민 대다수, 즉 대중입니다. 그런데 이 대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이 바로 노동자들인 것입니다.
헌법상으로 법률유보없이 보장되어 있는 단결권 등 현행 노동조합법 중 제3자 개입금지를 비롯한 직권중재, 복수노조금지 등을 보면 이 법이 헌법정신에 따른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는 법률인지, 아니면 제한하는 법률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이던지 간에 자기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호소하고 여론을 획득해 나감으로써 문제를 바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민주주의 사회의 경쟁원리 조차도 노동자들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조항의 문제입니다.
더구나 오늘날 자본가들은 온갖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관권과 결탁하여 특혜를 받고 또한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신문, 방송 등의 언론기관, 연구기관을 동원해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등 여론을 조작하여 세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금지조항에 걸리지 않으므로 결국 제3자개입금지의 목적은 노동자측에 대한 규제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복수노조금지 조항과 함께 제3자개입금지 조항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문화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철도, 지하철 쟁의와 관련하여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지난 10월17일 국회에서 당시 남재희 노동부 장관이 이 두 조항을 철폐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잠정 확정했다고 밝힌 바 있으며 곧 국제적 상황에 맞추어 폐기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② 제3자 개입 적용의 문제점
공소장 총12면중 1면에서 7면까지를 방만하게 집회 진행상황까지 나열하면서 결론으로 「전기협 및 부산교통공단 노조에 대하여 파업을 조종, 선동하고...」 하면서 제3자개입을 했다고 공소장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1심 심리에서도 진술했듯이 대략적인 집회나 회의, 기자회견에 대한 일정과 참여는 인정하며, 구체적인 사항이나 발언 내용은 많은 시일이 경과한 관계로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전기협이나 부산교통공단 노조에 대하여 파업을 선동하거나 조종한 사실은 없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공소 내용처럼 파업을 선동하거나 조종할 의사도 없고, 그럴 위치도 아니며 몇 천 명의 공개적인 대중조직이 선동이나 조종에 의해 파업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을 노동조합의 생리와 현시점의 노동운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파업을 선동한다는 것은 제3자가 쟁의를 할 의사가 생기도록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부추기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또한 파업을 조종한다는 말은 파업을 하는
당사자의 생각과는 달리 제3자의 의지대로 쟁의행위가 진행되게 하는 것을 조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임의적인 전지협이란 틀로서 모여서 논의도 하고, 논의된 내용을 기자회견으로 발표도 하고 집회도 꾸려왔습니다. 이런 행위들을 제3자 개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각 단위 사업장 노조 나름대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서로 논의도 하고 자문도 구해 보았습니다. 서로가 다른 사업장 쟁의행위에 대해 파업을 하라고 하던지 하지 말라고 관여할 권한이나 이유도 없고 관여해서도 안됩니다. 다만 서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쟁의행위를 한다면 같은 시기에 하는 것이 스스로 문제를 관철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서로 동의하는 상황입니다.
상식적이고도 보편적인 예로서 부산교통관리공단의 문제가 단체교섭으로 해결되었는데 서울지하철의 노사문제로 해서 부산교통공단이 쟁의를 하겠다 한다면 부산교통노조 조합원들이 동의할 것인가? 만약 그런 노조 지도자가 있다면 조합원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추방될 것입니다.
기업별 노조에서, 더우기 대기업 당해 사업장의 쟁의는 사업장 조합원들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보편적인 사실을 외면하고 옛말처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으로 이치에 맞지 않게 법을 확대 적용하거나 악용해서는 안되리라 봅니다. 언젠가 어느 검사는, 예를 든다면 ‘서울시장도 한달만 시간을 주고 구속시키라 한다면 구속시킬 수 있다’ 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소한 작은 일들을 확대 해석하여 굳이 적용시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런 구시대적인, 군사독재시절에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입니다.
전기협 및 부산교통공단 노조에 대하여 파업을 조종, 선동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또한 당사자이지 제3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극단적인 예로 전기협이나 부산교통공단 노동조합 조합원들 중에서 열명만이라도 쟁의행위가 지하철 노조 위원장의 선동이나 조종으로 인해서 발생했다는 사람이 있다면 검사가 제기한 제3자개입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③ 제3자 개입은 서울시가 하고 있다
지하철 노동조합에서 서울시에 교섭요구를 하면 서울시는 ‘당사자가 아니니 공사와 교섭을 하라’고 합니다. 정부지침 3%를 지하철 공사에 강요하여 지하철 노사간의 자율교섭을 박탈함으로 노사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도록 조종한 서울시는 당연히 노동쟁의 조종법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노사간에 기합의된 사항 조차 지하철 공사가 이행하지 못하도록 강요하므로 노사간의 불신과 반목을 조장하여 분쟁이 발생토록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지하철공사에 대하여 제3자인가 아닌가는 확실히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하철 노동조합에서는 재판부가 제3자 개입을 서울시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서울시를 교섭 당사자로 규정하고 앞으로 서울시에게 교섭을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가 교섭 당사자로 나서지 않겠다면 서울시는 명확히 지하철 공사를 조종하여 쟁의를 유발시키는 제3자 개입금지조항을 위반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2) 직권중재
① 직권중재란
우리나라 헌법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기본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위법인 노동쟁의 조정법에서 공익사업장의 경우에는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노동쟁의조정법 30조 3항 ‘공익사업에 있어서 노동위원회가 그 직권 또는 행정관청의 요구에 의하여 중재에 회부한다는 결정을 한 때’ 중재를 행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쟁의행위는 결국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 조항을 설치하게 된 취지는 노동자의 쟁의행위가 단결권, 단체교섭권과는 달리 국가안보나 공공이익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쟁의권은 노동자들의 수많은 투쟁으로써 노동자의 「생존권」의 하나로서 확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단체행동이 제한금지 된 상태에서는 노동자의 단결, 단체교섭이란 힘없는 「구호」에 불과 합니다. 힘을 갖추지 못한 노동자들, 그리고 자기의 요구조건을 관철하는 단체행동권이 박탈당한 근로자들이 어떻게 단체교섭을 할 수 있고 단결할 수 있겠습니까?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따로따로 분리할 수 없는 삼위일체와 같은 권리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단체행동권 없는 단결권, 단체교섭권이란 「총없는 군인」과 같이 무의미하고도 무기력할 뿐입니다.
이상과 같은 단체행동권의 본질을 침해할 정도까지 법률이 이를 제한하는 중재조항은 헌법정신에 어긋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쟁의권의 보장내용 및 제한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률은 바로 노동쟁의 조정법입니다.
본래의 노동쟁의 조정법은 노사간의 분쟁(노동쟁의)을 예방하고 쟁의행위가 일어났을 때에는 공정하고도 신속하게 해결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입니다. 하지만 이 법률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현행법 체제내에서는 사실상 쟁의행위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노동쟁의를 당사자간의 실력대결에 들어가게 하지 않고 소정의 기간안에 평온하게 해결함으로써 쟁의행위를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규정입니다.
그러나 단체행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즉 노동자가 실력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당연히 사용자측이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됩니다.
반면 노동자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협상을 전개하기 어려우며, 또 근로자측의 유리한 조정결과가 나오기도 어렵습니다. 쟁의의 조정은 당사자가 실력대결 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할 수 있으며 다른 나라들에서도 쟁의행위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조정을 행하고 있습니다. 단체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서 조정을 한다는 것은 싸움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싸움을 말리는 격이라 하겠습니다.
헌법상 노동3권 보장의 정신 아래서 노동쟁의를 조정하는 것이 노동쟁의 조정법의 목적이라면 30조 3항, 31조 중재조항은 앞뒤가 바뀐 규정이며 단체행동권을 크게 제약하는 조항입니다. 노사관계의 기본은 자율교섭입니다. 자율이 사라진 자리에 공권력에 의해 강요된 노사화합, 산업평화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유보이며 더 큰 문제의 잉태일 뿐입니다.
② 평등권에 위배되는 직권중재
(이 글은 문재인 변호사님의 위헌여부 심판제청 신청글을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노동쟁의 조정법 제30조 3호>
가. 노동쟁의 조정법 제30조 제3호는 관계 당사자의 쌍방이 함께 중재신청을 하거나(제1호) 관계 당사자의 일방이 단체협약에 의하여 중재신청을 한 때(제2호) 뿐 아니라 공익사업에 있어서 노동위원회가 그 직권 또는 행정관청의 요구에 의하여 중재에 회부한다는 결정을 한 때에도 노동위원회가 중재를 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법 제31조 및 제39조는 노동쟁의가 중재에 회부된 때에는 그 날부터 15일간 쟁의행위를 할 수 없고 중재재정은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익사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노사 쌍방 또는 일방이 중재신청을 하지 않더라도 중재기관이 노동위원회가 직권 또는 행정관청의 요구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중재에 회부할 수 있으며, 그와 같이 강제적으로 중재에 회부된 경우에도 그 날부터 15일간 쟁의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그 기간동안 중재재정이 행하여 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후에도 쟁의행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공익사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노동쟁의 조정법상의 절차를 모두 준수하더라도 위규정에 의하여 노동위원회가 노사관계자의 신청없이 언제든지 중재회부 결정을 할 수 있으므로 노동위원회가 그 권한 발동을 자제하지 않는 한 항상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러므로 위 규정은 공익사업 종사 근로자에 대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며, 동시에 공익사업 종사 근로자에 대하여만 그와 같은 불평등한 제약을 가한 것이므로 평등권에도 위배됩니다.
나. 87. 10. 29. 개정되기 전의 구헌법 제31조 제3항은 공익사업체 또는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나, 현행 헌법 제33조 3항은 위 규정을 삭제하여 법률이 정하는 주요 방위사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만 법률에 의하여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공익사업종사 근로자에 대하여 특별히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것은 헌법상의 근거가 상실되었으므로 위 헌법의 개정전이라면 모르되 현행 헌법하에서는 위헌임을 면할 수 없다 할 것입니다.
다. 중재제도는 노사간의 집단적 분쟁을 해결하는 보조적 수단으로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중재기관이 중재에 의하여 분쟁을 조정하여 주는 제도이며, 그러한 중재제도의 취지에 따라 일반 중재가 제시되면 노사 쌍방의 쟁의행위가 일정기간 금지되므로 노사관계자가 그러한 제한을 감수하고서 중재 신청을 한 경우에만 중재를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재제도의 취지에 부합합니다.
따라서 중재기관이 스스로 노사 관계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중재를 행하는 것은 중재제도의 취지에 반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나라와 법제가 동일한 실은 우리나라 노동쟁의 조정법이 모방한 일본의 노동관계 조정법은 전술한 제1호와 제2호 사유만을 중재 개시 사유로 규정할 뿐 위 제3호의 사유 즉 강제적인 중재회부제도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국민생활이나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익사업체에 대하여 단체행동권의 제한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으나 노동쟁의 조정법 제40조 및 제41조는 공익사업의 경우 긴급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그 경우 일정기간동안 쟁의행위를 중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노동관계 조정법도 마찬가지임)
그러므로 공익사업에 대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국민경제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현저한 쟁의행위와 마찬가지로 긴급조정의 방법으로 쟁의행위를 규제할 수 있으므로 그에 더하여 강제중재까지 할 수 있도록 한 위 규정은 공익사업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에 대한 불필요한 이중적 규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라. 위 규정에 위헌의 의심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노동법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바이며(김형배 노동법 518면, 한용직 개정 노동조합법 382면 등) 심지어 노동부가 설립 운영하고 있는 한국노동연구원 역시 위 규정에 강제조정제도가 바람직하지 못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쟁의조정제도 연구 101-103면, 239-240면) 노동부가 위촉한 노동법 심의위원회가 노동부에 건의한 노동법 개정 의견속에서도 위 제도의 폐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강제 중재 제도가 ILO규약에도 반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마. 설사 일정한 공익 사업에 대한 강제중재의 필요성이 용인된다 하더라도 공익사업이라 하여 언제나 강제중재가 허용되어서는 안되고 쟁의행위가 노사자치의 한계를 넘어 남용될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거나(김형배 신정판 노동법 611, 612면) 쟁의행위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손실과 단체행동권을 저해하지 아니하는 범위내에서만 허용되어야 합니다. (한용직 개정 노동조합법 382면)
그러므로 공익사업에 대하여 아무런 제한없이 강제적으로 중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위 규정은 헌법상 보장된 단체행동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바.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쟁의 조정법 제33조 제3항은 헌법상 보장된 단체행동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며 평등권에도 위배되므로 위헌조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사건 재판의 전제로서 위 조항에 대한 위헌의 결정을 구하기 위하여 이 신청에 이른 것입니다. (변호사 문재인 94/11)
③ 취지에 맞지 않게 악용되는 직권중재
해마다 서울지하철은 파업을 하는 것으로 시민들에게 인식되어 있고 또 공권력이 반드시 개입하기 때문에 파업을 ‘불법으로 한다’는 잘못된 생각들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지난해(94년)도 예년과 다름없이 지하철 노조가 사용자측인 공사와의 94년도 임금인상 단체교섭에서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아래 6월8일 「서울지하철의 임금협상에서 노사간의 의견이 불일치한다」는 쟁의발생신고를 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에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문방송등 언론에서는 ‘불법’이라고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의 파업 등 쟁의행위에는 언제나 불법이 판을 치고 있는가? 언론을 통해 발표되듯이 언제든지 ‘수사, 검거, 엄단’의 대상인가?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가?
우리나라의 노동관계법은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을 완벽하게 가로막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른바 ‘합법’으로 단체행동 등 노동쟁의를 할 수 있게 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과서에서는 노동3권 즉 ‘단결권, 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마치 완벽하게 보장된 것처럼 써있고, 일반시민들은 그런 줄만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불법을 저지르는 ‘철없는 일부 노동자들’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비록 헌법에는 노동3권을 보장하는 듯 하지만 하위법인 노동관계법은 도리어 완벽하게 불법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교묘하고도 애매모호하게 법률조항을 설치․운용하므로서 실제로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어떠한 권리주장이나 단체행동을 할 수 없도록 돼 있으며,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용자들은 항상 노동자들의 불법행위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마지막 해결 방법을 공권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서울 지하철 노조가 쟁의발생 신고를 한 것은 6월8일입니다. 법률에 의한 ‘냉각기간’ 15일간은 쟁의행위를 할 수 없도록 돼있고 이러한 내용은 일반시민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냉각기간 종료후에 이른바 ‘합법적’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쟁위행위의 합법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은 ‘직권중재’라는 족쇄때문입니다.
노동문제 해결의 사법부라 할 수 있는 중앙노동위원회는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직권중재’ 조항을 악용하여,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3권의 실행을 완벽하게 가로막는 것입니다. 직권중재는 재심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불복시 행정소송을 의지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도 직권중재 내용은 효력이 계속됩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소송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가로 막으며 ‘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합법을 요구하는 것은 임금협상을 비롯하여 모든 노사문제들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용자들이 성실한 자세로 노조와 협상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겠습니까? 노동쟁의는 항상 불법일 수밖에 없도록 돼 있는 것입니다.
④ 직권중재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
직권중재의 근본적인 취지와는 달리 해마다 노동부와 공사는 직권중재를 가지고 지하철 노동조합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때로는 교섭장소에서 합의하지 않는다면 직권중재를 내리려고 문밖에서 기다리며 위협하는 행위는 노사자율교섭이 아닌 강압적, 물리력으로 강요하는 것입니다.
또한 직권중재의 불공정성과 부당성입니다.
중재란 노사 양쪽의 중간에 서서 노사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양쪽 모두 불만일지는 모르지만 어느 한쪽의 절대적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타협적인 안을 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사례를 보면 공사측 안을 그대로 제시하거나, 아니면 공사측 안보다 더욱 열악한 안을 제시하므로 중재의 안이라고 할 수 없고 굴욕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압적 위협수단으로 강요해 왔으며 불공정한 직권중재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지하철 노동조합의 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에서 거부(무시)하기로 결의된 사항입니다.
지하철 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서 대의원대회의 결정사항은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사업장외 쟁의(12조 3항)
① 6년전 이야기
지난 6년전 89년 3월16일 서울지하철 파업이 있었습니다.
노동조합과 공사가 합의한 사항을 공사(서울시)가 이행하지 않으므로 「합의사항 이행하라」는 주장속에 파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동구 용답동 지하철 차량기지에서 3월16일 04:00부터 파업에 돌입한다는 것이 방송, 언론을 통해서 나오고 용답동 차량기지는 그 전날 15일 저녁부터 조합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조합원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모여서 밤을 새우면서 교섭이 진행되어 원만한 타결을 기대했지만 결국 교섭은 서울시의 거부로 진행되지 못하고 파업을 맞게 되었습니다.
3월16일 새벽 차량기지에 모여 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포크레인, 소방차, 페퍼포그차를 앞세우고 백골단들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6만평의 용답동 차량기지를 물샐틈없이 완전히 포위하고 정문으로, 또 담장을 부수고 난입해 들어오면서 부터 무차별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안개처럼 뿌옇게 최루까스가 쌓여 있는 속으로 지하철 노동자들은 사냥꾼에게 몰이당하는 노루 마냥 몰려 도망다녔습니다.
눈물과 콧물속에서 때로는 네 발로 걸어도 갔습니다. 하지만 사방이 포위되어 도망갈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쫓기어 다닐 뿐. 뿌연 최루가스 속에서 백골단들은 곤봉, 쇠파이프를 마구잡이로 휘둘렀고 가지고 있던 방패를 가지고 콜록거리며 엎드린 조합원들의 등, 허리, 어깨, 머리를 구분없이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더구나 객실이나 창고 등으로 도주했다가(숨었다가) 발각된 사람에게는 좁은 공간속에서 반항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했습니다. 너무 광적인 타격에 피를 흘리며 살려 달라고 하는 조합원에게 백골단은 ‘너희들 몇 놈은 죽여도 좋다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입으로 입으로 전해들었던, 믿기지 않았던, ‘설마 그럴리가’했던 광주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떠한 폭력도 행사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 당시 심하게 다친 지하철 노동자들 30여명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했고 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조합원이 있습니다. 결국 지하철 노동자 3천여명이 연행되었으며 시설물도 일부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원들은 민주당, 평민당 야당 당사에서 농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6년전 이야기입니다.
② 사업장외 분산배치하게 된 이유
이 조항은 과열된 쟁의행위가 사업장 밖으로 확대될 때 생기는 사회질서의 문란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명분 아래 현행법에 처음 신설된 것입니다. 그러나 쟁의행위를 사업장내로 제한한 것은 쟁의행위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억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 노동조합은 지하철의 쟁의가 사업장 밖으로 확대되어 사회질서를 문란시키려는 의도는 없었고 또한 현실적으로 그런 사실이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6년전 상황과 같은 조합원들이 부상당하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배려를 했을 뿐입니다. 사업장외에 조합원을 분산 배치하므로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집단 연행됨으로서 교섭력을 확보하기 어려움을 방지하고 지속적인 교섭력 확보와 조합원들을 폭력 백골단으로 부터 보호하여 불필요한 사상자는 방지하여 조합원을 보호하고, 또한 해마다 그랬듯이 파업 예정일 새벽 극적인 타결(그런 예가 많음)이 될 경우 시설물이 피해가 없어야만(때에 따라 흥분한 조합원이나 외부인, 무지한 폭력경찰에 의해 시설물이 파괴될 수 있음) 즉시 정상 운행할 수 있으므로 시설물 보호 차원에서 분산배치를 했습니다.
2. 업무방해
1) 정당한 쟁의행위는 정당행위에 적용된다.
쟁의조정법상의 절차를 어겼더라도 쟁의조정법 위반에 따른 벌칙은 부과할 수 있지만 일반 형법의 적용은 받지 않는 것이 올바르다 생각합니다.
헌법 제33조는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함께 단체행동권을 기본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단체 행동권이란 노동3권 중 마지막 권리로서 단체교섭의 결과 사용자가 노동자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 부득이 파업 등의 단체적 실력행사를 통해 노동자가 그 요구를 관철할 수 있도록 헌법이 특별히 보장한 권리입니다.
따라서 단체행동권은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 즉 쟁의권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쟁의행위란 노동쟁의 조정법 제3조에서 정의한 바와 같이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쟁의행위 자체는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한다거나 노동력의 거래 계약에 따른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쟁의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므로 쟁의행위를 했다고 해서 형사상의 처벌이나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를 가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노동조합법 제2조 정당행위에는 「형법 제20조 규정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기타의 행위로써 제1조에 제기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행위에 대하여 적용된다」라고 규정하였고 또 노동쟁의 조정법 제9조에는 「근로자는 쟁의기간중에는 현행법 이외에는 어떠한 이유로도 그 자유를 구속당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했습니다.
형법 제20조의 규정이란 「법령에 의한 행위,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의사가 수술을 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상해죄에 해당하지만 정당한 업무이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법 제2조는 이와같이 형법 제20조에서 말하는 정당업무를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도 적용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노동운동 초기에는 외국에서도, 쟁의행위가 국가권력에 의해 공모죄(conspiracy)등으로 처벌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의 투쟁을 통해서 쟁의행위의 자유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필요한 권리라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고, 우리나라에서도 제헌 헌법에서 부터 계속 기본적 권리로 보장되어 왔습니다.
정당한 쟁의행위는 헌법에서 보장된 이른바 ‘법률 이전의 권리’ 이므로 정당한 쟁의행위를 했다고 해서 처벌받지 않으며, 이를테면 업무방해, 협박죄 등의 형벌 법령에 저촉된다고 해도 쟁의행위가 헌법상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처벌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규정한 것입니다.
2) 정당한 쟁의행위란
쟁의행위의 정당성에 관해서 논의한다면 우선, 쟁의행위가 정당한가 부당한가 하는 것과 그것이 적법한가 위법인가 하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입니다. 즉 노동쟁의 조정법상의 절차를 위반했다고 해서 반드시 정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쟁의행위는 법 절차의 준수여부에 관계없이 주체, 목적, 방법이라는 세가지 면에서 정당하다면, 민사상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올바르며 따라서 세가지 면에서 쟁의행위가 정당하다면 설사 쟁의조정법상의 절차를 어겼더라도 쟁의조정법 위반에 따른 벌칙을 부과할 수는 있지만 일반 형법의 적용은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주체에 관해서인데 쟁의행위는 단체협약 능력이 있는 노동조합이나 기타 노동자 단체가 주도해야 합니다.
둘째, 목적면에서 정당한 쟁의행위로 대사용자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노동자의 복지증진,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셋째, 방법면에서는 노동조합법 제2조 단서에 규정된 것처럼, 무엇보다도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쟁의행위의 정당성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의 기준이 되는 것이 주체, 목적, 방법면에서의 정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방해를 주는 것이라 하여 타인의 권리존중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안이하게 제한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원래 쟁의행위란 사용자 뿐만 아니라 공중에 대하여 어떤 형태로든 다소의 귀찮은 존재임은 틀림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단체행동권을 승인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감수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생존권 유지는 절대적 요청이며, 시민의 생활상의 편의와 같은 것은 상대적 요청으로, 질적으로 다를 뿐 아니라 쟁의행위는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최소의 ‘마찰손해’로 그치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며 단체교섭을 통한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 추진 및 그 관철을 위한 최후수단으로써의 쟁의행위야 말로 근로자를 포함한 사회전체의 유지 즉 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불가결한 중요 기능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노동기본권 행사는 그 수단과 목적이 합법적인 한 어떠한 격렬한 요구 관철이 시도된다 하여도 그 것만으로는 위법이 되지 않으며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사용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선에서 진행되는 수단과 목적이 합법적인 한 정당한 쟁의행위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설령 절차상 의무 조항 등을 위반했다 해도 쟁의행위 자체의 정당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조합측에 절차상 불이행에 대한 쟁의조정법상 책임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쟁의 조정법상 직권중재 조항을 위반하므로 발생된 절차상의 문제는 직권중재 위반에 대한 벌칙 부과로서 정리되는 것입니다.
절차법이 위반되었다 하더라도 고의적으로 열차운행을 방해하지 않는 한, 노동자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며, 형법 업무방해를 확대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더우기 노동3권 행사의 적법성 여부가 행정관청의 심사행위에 의해서 좌우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Ⅳ. 항소이유서를 정리하며
소박한 생활에 자족하며 살아보려고 합니다. 돈 못버는 남편이라 가끔씩 바가지를 긁어대는 마누라에게 짜장면 외식 한번 시켜주며 마음을 달래도 보고 , 비싼 과외는 못시켜도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보람으로 살아왔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것이 소박하나마 행복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 바램마저도 흔들릴 때 우리는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쓰레기 소각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가족의 건강을 위해 투쟁에 나서듯이 원전을 반대하며 생명을 위해 수천의 사람들이 싸움을 하듯이, 지하철 노동자들도 생계를 위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대화를 통해 타당한 요구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해보아도 「복지부동, 요지부동」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파업을 하는 것이 즐거워 하거나 원해서 파업을 하는 노동자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지하철의 경우에 파업을 함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지하철에 근무하고 있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은 몰리고 몰려서 결국은 직장인으로서 마지막이자 유일한 파업이라는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정법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개정될 때까지는 지켜져야 하며 지하철 노동자들의 행위가 실정법 위반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하고 달라지는 기술시대에 일하며 현장을 지키기도 바쁜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실정법을 알면 얼마나 알아서 법논리를 따질 수 있겠습니까. 다만 지하철 노동자들은 실정법이 위반되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길을 건너기 위해서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다 계속 빨간불이 켜져서 파란불로 바뀌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갑니다. 물론 그것은 신호위반입니다. 신호를 위반하지 않고 길을 돌아서 갈 수도 있습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노동쟁의 조정법상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한 법적용은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반사항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철 노동자들도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고 노사의 원만한 대화를 통해 위협받는 생계를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하철 파업은 이전부터 예견되어 온 상황입니다. 그러나 지하철 노동자 이외에는 아무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하철 노사간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해마다 서울지하철은 노사분쟁의 여지를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재판부에서 올바르게 판단하여 시대에 맞는 정의를 내리기를 바랍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있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야 할 가장의 최소한의 책임도 있습니다. 우리들도 소박한 행복을 지키며 살고 싶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995. 2. 23. 항소인 김연환
상고이유서
사건번호 : 95도1356
피고인 인적사항 성명 : 김연환
주민등록번호 : 520209-1056119
칭호번호 : 안양교도소 제1914번
위 피고인은 1995.5.10.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죄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의 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 상고하였는 바, 아래와 같이 상고이유서를 제출합니다.
상고이유의 요지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항목에 O표를 합니다]
1. ( 0 ) 원심의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2. ( ) 피고인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범죄를 저지른 바가 없다.
3. ( 0 ) 원심의 판단에는 헌법, 법률, 명령, 규칙을 위반하였거나, 법리를 오해
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4. ( )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의 상태(술에 만취
되었거나 정신이상의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다.
5. ( ) 기타사항
상고이유에 대한 설명
[피고인이 내세우는 상고이유에 관하여 붙임과 같이 간략하게 서술합니다]
1995. 7. 7. 피고인 김연환
차 례
Ⅰ. 상고이유서를 쓰면서
Ⅱ. 항소심 재판 결과에 대하여
Ⅲ. 법리견해
2. 제3자 개입 금지
8. 직권중재
9. 사업장외 쟁의
11. 업무방해
Ⅳ. 상고이유서를 마치며
1. 한국 노동자의 현실
2.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는 제도화된 폭력에 강제 당하고 있다
3. 법과 질서는 존중되어야 하고 지켜져야 하지만
4. 희망과 전망을 가지고 역사의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Ⅰ. 상고이유서를 쓰면서
1.
5개월전 항소이유서를 쓰던 생각이 납니다.
1심 재판 판결문을 받아들고, 구체적인 위법사항 제시는 고사하고 심지어 공소장 내용중 검사 스스로 다른 사람의 공소 내용이 잘못 기재된 것이라고 삭제를 요구한 부분 조차 그대로 공소장을 옮겨적은 판결문을 보면서 납득할 수 있는 올바른 판단을 기대했던 마음이 일순간에 참담한 실망과 주체하기 어려운 분노를 가졌습니다. 한정된 시간과 어려운 여건속에서 손가락이 얼고 귀가 얼도록 밤잠을 설치며 항소이유서를 쓰던 생각이 납니다.
2.
우리나라의 재판 진행을 보면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속에서 자기 스스로 충실히 변호하고 지킬 수 있도록 불구속 재판이 진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사유(?)없이 마구잡이 구속 수사(돈있고 힘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 구속이 되면 한 개인의 인권은, 자기를 변호하려는 노력은, 인권을 무시한 제도적 관료체제에서 서신왕래, 도서열독, 자료확보, 집필 등 모든 자유가 억압되고 제한 통제된 상황에서 항거해 보지만 누구나가 흡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위벽 앞에 빈 몸으로 마주선,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피고인 스스로 유․무죄에 관계없이 자신의 정당성을 포기하게끔 강제하는 것이 현 구속제도 입니다. 이렇게 구속을 남발하는 한 인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고 인권이 침해되는 한 올바른 법집행, 공정한 재판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3.
한국통신의 노사분쟁 사태를 두고 김영삼 대통령이 ‘국가전복음모’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것은 정부가 사태의 본질을 그릇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사분쟁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노사교섭의 과정에서는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며, 그 분쟁이 노조쪽의 잘못만으로 제기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노사분쟁의 해결에서 정부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최고 통치권자라고 해서 헌법과 관계법률이 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까지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것은 결코 아닙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법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노동자들 권리는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집니다.
4.
1, 2심을 거치면서 실형을 면해보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조합원들과 함께 부대낄 수 있는 작업현장으로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젠 조급하게 생각지 않고 긴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렵니다. 현장에 복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합원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입장이던 실정법 적용이던 편들기가 아닌 형평에 맞는 공정하고 올바른 판결을 구합니다.
상고이유서는 항소이유서로 대신하고 부족한 부분만 보충하고자 합니다. 또한 가지고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데 능력부족으로 인하여 한계를 느끼며 많은 부분의 글들을 책이나 잡지, 신문 등을 인용했으며 느낌이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노동자의 현실을 좀더 객관적이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Ⅱ. 항소심 재판결과에 대하여
1.
항소심 재판 판결문을 아직 송부 받지 못했음 - 생략
Ⅲ. 법리견해
1.
열사람의 죄인을 놓치는 한이 있을지언정 한사람의 무고한 시민을 억울한 범죄자로 만들지 아니 하겠다는 것, 설령 죄를 지은 자라 할지라도 그 죄에 값하는 적정한 형벌을 받는 것 이상으로 부당한 처우를 받거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형사소송법의 근본이념이라고 합니다.
2. 제3자 개입 금지
노동쟁의 조정법 13조 2항 <제3자 개입금지> 「직접 노동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자가 당해 노동조합 또는 사용자 기타 법령에 의하여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쟁의행위에 관하여 관계 당사자를 조종, 선동, 방해하거나 기타 이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좀더 간단히 쉽게 말하면,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는 쟁의행위를 더 가열시키거나 더 냉각시키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3자 개입금지 규정은 1980년 노동법 개정 당시에 신군부에 의해 처음 신설되었으며 군사독재 정권하에 입법당국(당시는 국가보위 입법회의)은 70년대 YH사건 등 노사분쟁이 심했던 원인을 근로자에 대한 극심한 탄압과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찾기보다는 외부 불순세력의 조종 특히 도시산업 선교회를 비롯한 교회의 조종때문이라고 보고 노사 이외에 제3자가 노사문제에 개입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법칙을 두어 제3자 개입을 법률로써 금지시켰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이던지 간에 자기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사회에 호소하고 여론을 획득해 나감으로서 문제를 바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민주주의 사회에 경쟁원리 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을 이 사회에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부분에서 격리시키고 노동자들의 양보와 타협이 아닌 강제된 희생을 강요하므로 노동자를 사회의 주체가 아닌 기계로써, 성장 제일주의와 군부독재 정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도구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제3자가 노사 어느 쪽에도 개입하지 말도록 하였지만 실제로 사용자측에는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적용된 예가 거의 없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결권을 일방적으로 침해하는 불평등한 도구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3.
제3자 개입금지는 우선 실정법상의 해당규정이 헌법이나 노동법의 기본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입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기본권에는 다른사람으로 부터 조언, 지원,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고 내란, 살인, 방화 등 범죄목적이 아닌 한 국민은 누구나 그 의사를 표명하여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자유 즉 표현의 자유 또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법으로도 제3자 개입금지 규정은 자주적 단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노동법 개악의 과정을 보면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선 이후 노동법개악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신군부 5공화국때 제3자 개입금지 조항신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6공화국 들어서 87, 88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등이 일부 개정되었으나 노태우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좌절되기도 했습니다.
국제 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서 수차례에 걸쳐 한국정부에 시대착오적 독소조항으로 폐기를 권고하고 있으며, 지난 10월17일 국회에서당시 남재희 노동부 장관이 복수노조 금지조항과 함께 제3자 개입금지조항을 철폐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잠정 확정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지난 (95년) 5월 19일 유엔은 제네바에서 열린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 (사회권 위원회)’ 회의를 마치면서 한국 정부에 즉각 노동관련법을 국제기준에 맞게 고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현 정부는 국제화 세계화 말은 거창하게 하면서도 가장 기초적인 인권인 실질적인 노동자들의 권리는 보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4.
이제 이 사회는 전세계가 1일 생활권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산업현장의 쟁의행위가 노사 당사자 문제로만 한정될 수 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당사자와 같이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게 하는 산업정보화 시대입니다.
지난해 전지협(철도, 지하철) 파업, 현대중공업 쟁의, 한국통신 문제를 신문 방송을 통하여 선복귀 후협상, 파업철회, 통신대란 등 일부 언론인, 정치인, 지식인, 일반인 할 것 없이 각자 대부분은 쟁의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쟁의를 선동했던 방해했던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정법을 확대 적용한다면 이런 행위는 명확히 제3자 개입금지 조항에 부합되지만 그 사람들에게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적용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확대적용 했을 때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속에서 위배되고 또한 노동쟁의가 이 사회에 몰고 올, 아니면 그들에게 닥칠 피해를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노동쟁의는 노동자와 사용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모든 사람의 문제이며 모든 사람이 당사자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노동쟁의의 제3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사용자에게 유리할 때는 적용하지 않고, 노동자만 일방적으로 묶어놓는 수단으로 법을 편의적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실정법 적용여부는 사법부가 국민의 정서와 국제적 여건 등을 참작하여 판단할 문제이지만 이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부당하거나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3자 개입금지의 법률규정이 수많은 노조간부들을 구속하고 통제하는데 유력한 방편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도 지적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노조들 사이에 정상적인 연대마저 가로막아 공동요구와 공동목표의 실현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내려온 유교사상에 인본중심으로 살아왔고 옆집에 슬픈 일이 있다면 같이 가슴아파하며 슬픔을 나누어 가져 아픔을 줄이고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즐거워하며 확대시켜 즐기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산업위주 물질중심에서 인간중심의 문화로 발전시켜야 할 책무를 우리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다 할지라도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사문화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5.
제3자 개입금지 조항 적용의 문제점
형벌 법규에서 규정하는 범죄 구성 요건은 그 의미가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의 기본적 요청의 하나이며, 이것은 국민으로 하여금 금지된 행위의 내용을 명확히 알고 행동하게 함으로써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케 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법집행자에 대한 자의적 법규해석 및 운용의 위험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형벌 법규는 통상의 판단 능력을 가진 일반인에 대하여 금지된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가 무엇인가를 식별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되어 있어야 하며 이같은 명확성을 결여할 경우에는 ‘막연하기 때문에 무효(Void for vogue-ness)’인 것으로 선언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법원리로서 승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6.
공소장을 보면 「전기협 및 부산교통공단 노조에 대하여 파업을 조종, 선동하고...」라고 기재하면서 전지협 결성부터 집회참석, 기자회견 등이 방만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3자 개입금지 조항을 위반했는지 지적이 없습니다.
결국 구체적 사실 없이 정황만 가지고 예측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설사 정황을 가지고 예측한다 하더라도 어느정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것을 가지고 예측해야지 아직도 구시대적인 구태의연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주 상식적인 판단도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쟁의행위를 조종이나 선동할 목적도 없고 개입한 행위도 없으므로 제3자 개입금지 조항 적용은 당연히 무죄입니다.
대단위 노동조합이 외부에서 개인적인 몇사람의 말이나 행위가 쟁의행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즉 조종, 선동, 방해 등 개입할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 현실적으로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위원장들이 무엇때문에 개입하겠습니까? 아직도 노동쟁의가 일부 불순한 사람들이 뒤에서 조종, 선동하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심하기 그지 없는 시대에 뒤떨어진 시각이나 생각도 문제지만, 일부 몇 사람의 선동으로 쟁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무모하게 실정법을 적용하여 노동자들을 통제하려는 간악한 인간들이 있는 한 노사평화의 실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7.
본인이 3자 개입을 안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상대방(철도, 부산지하철)이 개입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개입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개입한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내용도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막연히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무조건 개입했다고 단정짓는다고 해서 3자 개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만 존재할 국가의 공권력이 거꾸로 국민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적인 가치의 실현을 제약하는 파괴적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노동자를 그렇게 내몬다면 그같은 공권력은 더이상 존재하여야 할 의의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8. 직권중재
노동쟁의 조정법 31조 <중재시의 쟁의행위 금지> 「노동쟁의가 중재에 회부된 때에는 제14(냉각기간)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그날부터 15일간은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이 조항을 보면 중재에 회부되면 그날부터 15일간은 쟁의를 할 수 없고 15일 이후부터는 쟁의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쟁의가 원천적으로 영원히 봉쇄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15일 기다려서 쟁의할 것이지 그것을 못기다려 노동쟁의조정법을 위반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의, 노동자의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위법인 노동쟁의 조정법으로 쟁의행위를 근본적으로 봉쇄하여 노사간의 대등한 교섭 조차 하지를 못하게 하므로 오히려 노사간의 분쟁의 요인을 만들고 과격한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당하게 하는 것이 직권중재 조항입니다.
노동쟁의 조정법 30조 2항 <중재의 개시> 「공익사업에 있어서 노동위원회가 그 직권 또는 행정관청의 요구에 의하여 중재에 회부한다는 결정을 한 때」는 중재를 행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공익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노동쟁의조정법상의 절차를 모두 준수하더라도 노동위원회가 노사 관계자의 신청없이 언제든지 중재회부 결정을 할 수 있으므로 노동위원회가 그 권한 발동을 자제하지 않는 한 항상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됩니다. 또한 노사가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교섭을 진행중에 있다 하더라도 노동위원회가 노사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강제중재하므로 헌법에 보장된 단체교섭권 조차 자유로이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됩니다.
더우기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정당하냐 부당하냐가 어떻게 행정관청의 판단에 맡길 수가 있겠습니까? 수시로 이야기되는 사법권 독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부와 관계있는 소송에서는 행정부 편들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노동조합은 자율적, 자주적 조직으로 헌법의 노동3권 보장에 의한 조직입니다.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는 노동조합 스스로가 조합원에 의해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할 것이며 그 과정상 절차상 문제와 사회적 문제는, 노동쟁의 조정법에 따른 위법여부는 노동조합에서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쟁위행위의 정당성과 절차의 위법여부는 엄연히 별개의 것으로 처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9. 사업장의 쟁의
노동쟁의 조정법 제12조 3항 <사업장의 쟁의> 「쟁의행위는 당해 사업장 이외에 다른 장소에서는 이를 행할 수 없다」
사업장외 쟁의금지 조항은 제3자 개입금지 조항과 함께 신군부가 들어서며 제5공화국에서 80년 12월31일 노동관계법이 새로이 개정된 세계에 유래없는 조항입니다.
노동조합은 80년들어 어용간부의 배척 등 노동조합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근로 조건을 개선 하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광범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노동자들의 쟁의를 서로 차단하고 사업장내로 묶어두기 위한 수단에서 만들어진 법조항입니다.
애초부터 헌법상의 규정과 입법취지에 걸맞게 노동기본권이 명실상부하게 보장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구태여 복잡한 논란보다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사업장의 쟁의가 적용되는 과정을 본다면
① |
노사교섭 |
|
⇩ |
② |
노동조합 쟁의발생신고 |
|
⇩ |
③ |
공권력 (불법)노동쟁의 엄단방침 |
|
⇩ |
④ |
사용자 고소고발 |
더받으려 하고 덜주려 하면 의견의 불일치는 생긴다. 대부분 노동조합에서 쟁의발생신고를 하게된다.
노동쟁의란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문제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또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에서는 국가 경제 운운하며 사용자를 옹호하고 노동자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사용자는 공권력에서 지원사격이 나오면 이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조합간부나 조합원을 고소고발한다. (고소고발할 적당한 내용이 없으면 아무 것이나 관계없다. 사소한 것이나 시기가 지난 것이라도 일단 고소고발한다 → 집행부는 어처구니 없는 일로 조합원을 구속하면 항의집회나 시위를 할 수밖에 없다 → 집회, 시위를 이유로 집행부 집단 고소고발)
|
⇩ |
⑤ |
공권력 사전영장 발부 |
|
⇩ |
⑥ |
사용자 해고 |
|
⇩ |
⑦ |
노동조합 쟁의 |
|
⇩ |
⑧ |
사용자 직장폐쇄
노동자 사업장외 쟁의 |
고소고발하면 사전영장 발부는 예정되어 있다. 구속의 정당성 여부는 별 의미없다. 다만 끌려가고 구속당할 것인가? 수배중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쟁의를 진행할 것인가?
구속(수배) →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항의집회 → 추가구속(사유제공)
1. 사업장과 조합간부간 격리를 위해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고. (노동자는 구속되었던 수배되었던 징계위 참석할 수 없음)
2. 해고절차의 정당성 여부는 큰 관계없음.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나중에 의의 제기하면 다시 해고시키면 되며 그것이 곤란하면 그때 복직시키면 됨. 그때는 노사관계가 정리된 이후니까)
이 상황에도 쟁의를 할 수 있는 조직은 아주 강한 역량의 조직뿐이다.
1. 대략 노동자들이 위축되어 근로조건 개선 등 요구사항보다 조합간부 고소고발 철회 등 적당히 수습하는 쪽으로 진행
2. 강한 조직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업장의 경우 애초의 요구사항과 지도부 구출을 포함하여 요구함으로 합의 가능성 어려움
사용자는 노동자들이 쟁의(파면)를 하면 교섭을 하여 합의를 이끌어 내던지 아니면 직장폐쇄를 하고 사업장내 노동자를 직장밖으로 내몬다. (자본을 다른 공장으로 빼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동자를 부추겨 쟁의를 하게 하고 직장폐쇄를 하는 기업주도 있다)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하면 이때 노동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각자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가 직장폐쇄를 철회하기를 기다리던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해 당연히 사업장외 장소에서 모여 요구사항 관철을 위해 쟁의를 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사업장외 쟁의이다.
절차가 조금씩 변동되기도 하지만 노사가 합의를 이루어 내지 못하면 이런 수순으로 노동쟁의는 진행됩니다.
결국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한다면 노동자들은 사업장외 쟁의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업장외 쟁의 금지조항은 노동자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방식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사업장 내에서 노사문제가 해결된다면 사업장 밖으로 나오라고 권유한다 해도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스스로 의사표현과 여론형성의 자유는 국민 개개인 인간적 존엄을 위한 기본권 뿐만 아니라 권력과 자본의 부패와 횡포를 방지하고 국민의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정치의 근간적 요소를 이루는 제도적 장치인 것입니다.
10.
사업장외 쟁의 금지 조항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지금까지 지하철 쟁의를 살펴보면 대략 <① 지하철 쟁의발생 → ② 공권력 투입 → ③ 조합원 연행(조합원 부상, 시설물 파손) → ④ 사업장외 장소 집결 → ⑤ 농성 → ⑥ 현장 복귀...> 이렇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지난해 6월 지하철 총파업을 하면서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다각도로 검토하여 결국 지난해는 <① 지하철 쟁의 발생 → ② 사업장외 장소 집결 → ③ 농성 → ④ 현장복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불필요한 희생과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공권력 투입, 조합원 연행(조합원 부상, 시설물 파손)의 과정을 제외하고 곧바로 명동성당이나 대학교에 집결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실정법을 위반했을지 모르지만 지하철 이용시민과 공사, 노동 조합을 포함한 모두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파업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고 지하철 노동자들 역시 가장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쟁의는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에게 사업장외 쟁의 금지조항 적용을 강요한다면 이후 파업이 발생하면 사업장내 공권력이 투입될 것이고 많은 희생과 피해 그리고 예견되는 대형사고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11. 업무방해
형법 314조(업무방해) 「전조(313조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만5천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소장에 의하면 「조합원인 다수의 근로자들과 함께 상호 의사 연락하에 작업장을 이탈하는 등 근로의 제공을 거부하여 위력으로 지하철 운행 등 지하철 공사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함으로써 40여억원 상당의 손해를 발생케 하는 등 업무를 방해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근로의 제공을 거부하는 것을 가지고 업무방해로 적용한다는 것은 법을 자의적으로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더우기 노동자들의 쟁의로 인한 근로제공 거부를 형법의 업무방해로 적용하려는 것은 노동법 기본 취지조차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동쟁의에서 업무방해를 적용하려면, 적어도 업무를 방해한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즉 근무자가 출근하는 것을 못하게 막는 행위를 한다든지 열차가 운행할 수 없게 앞에서 막는 행위, 공갈 협박하여 업무를 할 수 없게 위협하는 행위, 시설물을 파괴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여 업무를 진행할 수 없게 하는 행위 등 구체적인 행위가 있어야만이 업무방해 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법률이란 것이 원래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통사람들이 정하게 마련인 약속을 성문화해 놓은 것이며, 따라서 일반 국민들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행동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들의 행동은 합법적인 것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될 때 법률이 노동자들로 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12.
또한 노동쟁의 조정법 제3조 <쟁의행위의 정의>를 보면 「-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 운영을 저해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쟁의행위란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어떻게든 저해될 수밖에 없는 사실을 말하고 쟁의조정법에서 그것을 법 이전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해 6월 지하철 파업기간 중에도 상당한 열차는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지하철 노동자들은 일을 하지 않았을 뿐 열차운행을 하는 비조합원들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았고 그런 지시를 한 적도 없습니다. 사용자든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근무를 하려 하는 사람은 방해하지 않고 근무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지하철 노동조합에서 노동자들이 근로제공을 거부하고 더 나아가서 업무를 방해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열차는 전면적으로 전혀 운행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하철에 많은 부서가 있지만 어느 부서에서라도 열차를 전면적으로 운행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야말로 언론에서 정부에서 말하는 교통대란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노동자들의 다수의 생각은 근로제공을 거부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들의 의사를 충분히 표시할 수 있으며, 굳이 근무하려는 사람까지 막아서 교통대란을 발생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조합원들의 정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보수되지 않은 열차가 보수되지 않은 철길위를 수천명의 승객들의 생명에 위협을 방치한 채 달리는 것이 너무나 위험했습니다. 우리는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고, 현장복귀를 할 것인가? 업무를 방해하더라도 열차를 전면 세울 것인가? 고민속에 대다수의 조합원들의 정서와 더이상 시민들의 안전을 외면하고 불편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조건없이 현장복귀를 선택했습니다.
13.
다시 한번 말하면 공소장에서 말하는 「근로제공 거부」를 업무방해죄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멀쩡한 사람에게 도둑놈이라고 자꾸만 이야기해서 정말 도둑질하게 만들듯이, 순수 하기만 한 지하철 노동자들에게 업무방해를 적용하여 앞으로 정말 업무방해를 하는 사실이 발생하게 한다면 거기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을 과연 누가 질 수 있을 것입니까?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다고 일하기를 거부한다고 사용자가 업무방해로 고발하고 공권력에서 업무방해라고 적용한다면 더 이상 사법부의 독립성을 믿는 노동자는 거의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최소한의 법이란 그 내용이 이해 당사자는 제외한다 하더라도 길거리에 길을 막고 물어보았을 때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내용이 되었을 때 법이 존중되고 지켜질 수 있는 것이지, 다수의 사람이 반대한다면 그 법은 소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법이지 진정한 국민들의 법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법이나 공권력이 국민의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란 그 구성원인 국민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만 존재할 정당한 이유를 지니는 것으로 압니다. 만약 국가의 공권력이 거꾸로 국민의 인간적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적 가치의 실현을 제약하는 파괴적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노동자를 그렇게 내몬다면 그같은 공권력은 더이상 존재하여야 할 의의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Ⅳ. 상고이유서를 마치며
1. 한국 노동자의 현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세계 으뜸의 노동시간을 자랑합니다.
노동자들은 특히 지난 30여년 이래 극한적인 전장에 나선 전사처럼 일에 파묻혀 살아온 이들 이기도 합니다. 휴식은 마치 사치품인 것처럼 치부한 채 쉼없이 일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존할 수 없다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시대였던 것입니다.
권력에겐 철권을 마음놓고 휘두르기에 안성맞춤의 환경이었고 자본에겐 이윤을 포식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우리들은 자라나면서 일찍부터 부모들과 선배들과 사회로 부터 힘앞에 순종하고 체제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자기만의 안일을 추구하는 왜소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우리들 머리에 깊이 주입된 처세 철학에 의하면,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란 한낱 달걀로 바위치기에 지나지 않는 어리석은 짓이었고, 가난하고 억눌린 이웃에 대한 관심이나 인간답게 살기위한 최소한의 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곧바로 개인적인 몰락과 패가망신의 길을 가리키는 위험표지판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지난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잠자는 자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고 권리는 스스로 투쟁으로서 찾아진다는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사회, 법, 문화, 평등... 이라는 낱말과 관계없이 노예처럼 밥많이 먹는 것이, 배고픈 것이 죄인 줄 알고 엎드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이 사회에서 존귀하게 보호되고 온갖 특혜속에 노동자를 착취하며 풍요를 누려왔습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도 사람인 것을 알았고 인격적인 대우와 처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았고 이 땅 구성의 대부분이면서도 모든 부문에서 소외당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회에 부는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어서도 안되며 올바르게 분배됨으로 해서 아름답게 발전하고, 모두 함께 사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우리 모두의 것이고,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철도 전기협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변형근로제의 철폐, 그리고 지하철 노동자들의 자율교섭보장(정부지침 철회) 요구는 그야말로 너무나 당연하고 생존권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에 불과 합니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을 끌어안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전지협 궤도교통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전기협의 존재를 철저하게 묵살하고, 지하철 노동자들의 자율교섭하자는 당연한 요구를 직권중재라는 제도적 폭력으로 막으려 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을 스스로 강경책 이외에 다른 방법을 구사 할 수 없게 옭아매는 것입니다.
정부의 이러한 기조는 노동자 없는 자본주의를 실현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노동자를 상대자로 인정치 않는 자본주의는 심각한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고 결국 붕괴될 것입니다.
노동은 자본과 서로 존중하며 대칭축으로 상대방이 존재할 때 함께 존재하는 것이지 자본이 노동을 관리하는 것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무쟁의 원년을 선언하며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자연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사간의 분쟁을 폭력으로, 공권력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부당하며, 무쟁의 원년의 꿈은 깨어졌고 정부의 의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는 제도화된 폭력에 강제당하고 있다
지하철 노동조합은 6년전 89년 3월에 파업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 지하철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합의각서를 이행하라」였습니다. 노사가 합의한 사항은 설사 쟁의가 없더라도, 노동조합의 요구가 없다 하더라도 당연히 지켜져야 할 사항입니다.
그러나 공사나 시정당국은 노사가 문서로 합의한 사항마저 번번이 지키지 않으므로 「합의각서를 이행하라」는 당연한 요구를 가지고 파업을 하였지만, 지하철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는 제도화 된 폭력과 관제된 언론에 의하여 무차별 타격 당하고 동지들은 해고당하여 거리로 내몰리며 억눌려 왔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문제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지난해(94년6월) 또다시 「자율교섭 보장하라」는 당연한 요구가 해결되지 않으므로 파업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쟁의하게 된 원인과 무관하게 「시민의 발을 담보로...」 관제언론과 제도화된 폭력에 의해 정당성에 관계없이 정치적으로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합의각서 이행하라」「자율교섭 보장하라」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공사나 시정당국은 지키지 않으므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게끔 유도하여 공권력을 개입시키고, 파업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그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가해자가 오히려 심판관으로 둔갑하여) 노동자들에게만 모든 고통과 책임을 덮어 씌우는 모습입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자율교섭 보장하라」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정부의 노동통제 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현 정권이 성장 우선 정책에 희생양으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또 희생시키려 한다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더이상 재벌 정책에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지난해 6월23일 새벽 정상적인 전기협 농성장에 공권력을 투입하므로, 결국 전지협은 총파업으로 대응했고 파업으로 인하여 시민들은 불편과 혼란을 감수했어야 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구속 수배되고 더구나 10여년을 근무했던 일터에서 길거리로 내몰리는 아품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더욱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전국 연대 투쟁, 그리고 강경일변도의 빈곤한 정치력을 보인 것만으로도 정부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더우기 올해에는 한국통신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 및 통신개방안을 반대하는 단체교섭 활동에 대해, 파업은 커녕 쟁의신고 조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국가전복 저의’라는 위헌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므로 ‘부당한 공권력 반대와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범국민 대책위원회’는 각계 대표인사 1천5백여명의 서명을 받아 「대통령도 헌법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제목으로 김영삼대통령 탄핵소추 국회 청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현정부는 문민시대를 열었지만 대화와 화해의 정치는 열지 않고 폭력과 공권력에 의존하는 빈곤한 정치력을 보이므로 노동자들을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하고 있습니다.
올해 국정을 시작하며 김영삼대통령은 세계화를 국가 경영의 지침으로 제시했고 세계화는 모든 정부 정책의 기준이 되고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 경쟁력 강화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래서 「제2의 경제 동물」이 되는 것을 세계화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든가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는 세계화와 전혀 관계없는 일로 판단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19일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나 쟁의행위에 대한 경찰력 투입 등에 대해서는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을 쓰며 즉각적으로 고칠것을 권고 받았지만 정부는 (90년가입) 규약에 제시한 여러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지게 됐음에도 이러한 권고안에 대해 「이는 단지 충고사항일 뿐 우리 정부에 의무를 지우는 것은 아니다」라며 점진적으로 이루어 나가면 되는 것이라며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정부의 세계화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일입니다.
국민의 1.5%가 전체65%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전체 1억6천만평의 토지중 30대 재벌이 1억4천만평을 소유하고 있는 부의 편중현상과 지난 한 해만도 산재인원이 8만6천여명이며 3시간당 1명 꼴로 산재사고로 일터에서 죽어가고 있는 노동현실을 외면한 채 노동자들의 정당한, 절박한 요구는 제도화된 폭력에 강제당하고 있습니다.
3. 법과 질서는 존중되어야 하고 지켜져야 하지만...
어느 법관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 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또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 국가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요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서로의 이해에 반하거나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국회가 이를 개정하지 않고 있고, 그것이 정의의 관념에 반하여 최종적 법해석 기능를 가진 법원의 판단에 의해 배제되기 전에는 국민은 법의 규정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지켜지기 위해서는 법이란 대다수 국민이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형평에 맞게 적용될 때 존중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법의 적용여부를 보면 사용자들은 처벌을 받지도 않고 법정에 선다 하더라도 구속되는 예는 별로 없지만 노동자들은 고소고발만 되면 구속당하는 현실입니다. 또한 실정법상의 유․무죄의 문제를 떠나서 과연 우리 노동자들의 쟁의가, 인간답게 살겠다는 외침이 그것이 그토록 엄청난 범죄인가 하는 것입니다.
구태여 지난 1월 피어보지도 못한 채 숨져간 무학여고생을 비롯한 30여명의 생명과 국가의 자존심을 함께 물속에 수장시킨 성수대교 붕괴사고, 일순간에 100여명의 생명를 불덩이와 함께 날려버린 처참한 대구 도시까스 폭발사고,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모범을 보여야 할 현직 노동부장관의 뇌물사건을 구태여 일일이 비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쟁의가 15년동안 젊음을 바쳐 땀흘려 일했던, 삶의 일부였던 일터에서 한순간에 파면당하고, 그토록 사랑하는 9000동지들과, 조합간부 활동을 하면서 항상 마음 한구석에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남아 있던 가족들로 부터 격리되어 1년이란 시간을 차디찬 쇠창살속에 갇혀있어야 할 만큼 사회적으로 그토록 엄청난 범죄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한푼이라도 덜 주려는 고용주가 있고,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노동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쟁의란 당연하며, 이러한 쟁의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용주와 노동자는 지혜와 인내를 가지고 협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합의를 이루어 내지 못해 쟁의행위가 발생된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그 책임은 노사가 함께 부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더구나 지날 6월20일 항소10부 재판에서 ‘사용자인 지하철 공사측도 노조와 성실한 대화를 갖지 않는 등 단체교섭에 한계를 보인 만큼...’ 판결을 하는 것처럼 공사측은 성실한 교섭은 물론 적정한 임금안도 자율적으로 주장하지 못한 채 타당성도 없는 정부지침만 되풀이 한, 노동조합과 협상할 조건마저 갖추지 못한 공사측이 사회적인 책임의 우열을 말한다면 더 많다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노사가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해 발생한 쟁의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노사가 함께 부담해야 하는데 공사는 모든 사회적 책임을 노동조합에 넘기고 오히려 채권자로서 다가오고 있는 것은 형평성에 너무 어긋나는 느낌입니다.
과연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법이 적용되는지? 의심스러우며 요즈음 정부에서 행하는 것을 보면 법을 끝없이 확대 적용하여 노동쟁의의 발생은 ‘국가전복기도’이고 만약 쟁의가 발생하면 노동자들은 돌아다녀도 안되고 남에게 말을 하거나 말을 들어도 안되며 어떤 형태로든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도 안되고 가만히 집안에 숨어서 사용자가 해결해 줄 때까지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힘없고 돈없고 줄없는 노동자들만 당하는 느낌입니다.
법이 아무리 그물처럼 세밀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집행하는 사람이 악의적으로 운용하면 악법이 될 수밖에 없고 법이 조금 허술하다 하더라도 집행하는 사람이 잘하면 훌륭한 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법조항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일 뿐입니다.
4. 희망과 전망을 가지고 역사의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노동자도 농민도 도시빈민도 사법부도 예외없이 역사의 심판대에 서게 될것입니다.
항소심 재판이 끝나자 다수의 사람들이 상고를 하는 데 반대를 합니다. 그것은 항소심 재판 결과를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상고를 해보나 마나 그놈이 그놈인데...’ 라며 뻔한 것인데 괜히 상고해서 마음고생만 한다고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판결이 노동법 취지에도 맞지 않고 법적용도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려고 상고를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사법부를 불신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의 한사람으로 내 자신을 불신하는 것 같아 비애를 느끼면서도 저 역시 주변 사람들처럼 정치적 문제가 결부된 사건에서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판단하느냐의 문제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양심과의 문제입니다.
저는 처음에 구속되고 수감되면서 그리고 재판이 진행되고 동료들의 재판을 보면서 마구잡이로 얽어매는 형태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또한 점점 조합원들과 격리되므로 슬픔을, 가족들과 헤어짐에 깊은 아픔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 우리들의 투쟁에 대한 자부심과 가슴가득한 희망과 노동자들의 승리에 대한 전망과 확신을 가지고 임할 것입니다. 이제는 노동자들이 방관자가 아닌 노동자 스스로 정치 전면에 나설 것이며 법률도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만들어 낼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해주기만 바래왔습니다. 정치가들은 올바른 정치를, 국회에서는 올바른 법률 제정을, 사법부는 공정한 집행을, 자본가들에게는 올바른 분배를 바라고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생산하기도 바쁘기 때문에 생산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생산이란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더욱더 어려워졌고 모든 부문에서 소외당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나설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이땅의 주체로서 이땅에 정치를 올곧게 세워낼 것입니다.
이번 재판의 결과에 관계없이 그날이 올 때까지 겸허한 마음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생산의 주체와 역사의 주인으로 힘찬 진군을 계속하고 있으며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그 날을 반드시 만들어 내고야 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도 노동자들을 몰아세우며 반노동정책을 펴던 정부여당의 6․27지자제 참패와 노동자들 희생으로 재벌 살찌우기 성장우선정책에 대한,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피해자 가족의 눈물어린 외침을 적습니다.
「언제까지 죄없는 많은 국민들이 개발과 성장이라는 찬란한 허울속에 허망하게 죽어야 하는가? 앞으로도 그동안의 부실하고도 맹목적인 겉치레 성장의 값비싼 대가를 이런 식으로 거듭거듭 치를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고인 김연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