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소일’ 두 글자는 석음(惜陰)과 상반되니, 크게 상서롭지 못한 말이다.
消日二字。與惜陰相反。大是不祥語。
(소일이자 여석음상반 대시불상어)
- 이덕무(李德懋,1741~1793),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사소절(士小節)」 士典3 교습(敎習)
신을 뜻하는 ‘God’과 인생의 ‘생(生)’이 합쳐진 신조어 ‘갓생’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로 자리 잡았다. 미라클 모닝 챌린지, 퇴근 후 운동 등 계획적인 자기계발로 하루를 채우는 갓생 모드가 젊은 세대에서 유행한 덕분이다. 물론 이렇게 분초를 아끼며 살아가는 세대의 이면에는 계속되는 취업난으로 인한 치열해진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팍팍한 삶, 타인과의 비교가 당연해진 세태 등 어두운 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갓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갓생이 오히려 자기 착취로 이어져 자신을 혹사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경고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긍정적인 면은 확실하다.
그런 반면 단군 이래‘ 킬링 타임’, 즉 시간을 죽이기 가장 좋은 시절이다. 게임, 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등 각종 분야에서 향유할 문화가 시시각각 쏟아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멍하니 시간을 보내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유튜브나 숏폼, 릴스에 빠져 시간을 때우고 있다. 요즘 ‘심심하다’는 말은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는 지금 즐기고 있는 것이 익숙하여 새롭지 않거나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뜻에 불과하다.
엄청난 독서량과 독서광으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눈도 밝고 손도 잘 놀리면서 게으름 피우기를 좋아하는 자는 툭하면 “소일(消日)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탄하는 것을 경계했다. 또한 자신은 비록 노둔하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평생 책과 함께 살아왔고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한 그가 바라보기에 소일이 어렵다고 한탄하는 이들의 모습이 결코 달가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요즘은 평균 수명이 늘어난 탓에 은퇴한 노인들의 입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인데 인생의 남은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입에 올릴 만한 말은 아니다. 이덕무가 말한 석음(惜陰)의 정신은 단순히 시간을 아낀다는 뜻을 넘어 찰나의 순간까지 소중히 여기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자신이 수동적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지 아니면 능동적으로 시간을 가치 있게 활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시간이 생명력을 얻을지 혹은 그대로 소멸할지는 모두 자신에게 달려있다. 갓생을 사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이덕무가 바라던 선비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쓴이 이현호
'한국고전종합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