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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1)
Liking What You See : A Documentary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스탕달
타메라 라이언스, 펨블턴 대학 1학년
믿기지가 않아요. 지난해 캠퍼스 견학 때는 이런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거든요. 대학에서 칼리를 의무화하려고 한다는 얘긴 여기 입학하고 나서 들었어요. 내가 대학 생활에서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그걸 없애고 다른 사람과 같아지는 거였는데. 계속 이걸 유지해야 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줄 알았으면 아마 다른 대학으로 갔을 걸요. 사기라도 당한 기분이네요.
다음주면 열여덟 살 생일이 돌아오고, 그날 난 내 칼리를 끌 작정이에요. 만약 학생 투표에서 칼리가 의무화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전학이라도 가야 하는 건가. 당장이라도 애들한테 가서 “반대표를 던져”라고 말하며 돌아다니고 싶은 심정이군요. 그런 캠페인이 있다면 기꺼이 참가하겠습니다.
마리아 데수자, 3학년, <철저한 평등 요구> 학생회의 의장
저희들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펨블턴 대학의 학칙에는 윤리 행동 규정이 있습니다. 이 규정을 만든 건 학생들 자신이고, 신입생들은 등록을 하면서 모두 이 규정에 따르겠다는 동의를 합니다. 저희가 추진중인 학칙 개정안의 골자는, 이 규정에 모든 재학생은 의무적으로 칼리아그노시아*2) 를 채택한다는 부수 조항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이런 개정안의 제출은 비자주 스펙스 버전의 발매로 촉발되었습니다. ‘비자주’란 눈에 스펙스를 끼고 사람들을 볼 경우 상대방이 마치 성형수술을 한 상태처럼 보이도록 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일종의 오락이 되었고, 이 사실에 대해 많은 대학생이 불쾌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항간에서 이것은 더 깊은 사회적 문제의 징후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저희는 이 개정안을 추진할 좋은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더 깊은 사회적 문제란 외모 지상주의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과거 몇십 년에 걸쳐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관해 기꺼이 토론해왔지만,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논쟁을 벌이는 일은 아직도 꺼려합니다 그러나 매력 없는 용모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퍼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이런 차별을 실행합니다.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한심한 일이지만, 현대 사회는 이런 경향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서 이 문제에 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테크놀로지가 개입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일종의 보조 수단으로 칼리아그노시아를 보아주십시오. 이 조치는 당신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표면을 무시하고 더 깊은 내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겁니다.
저희들은 이제 칼리를 주류사회로 도입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칼리 운동은 대학의 캠퍼스에서나 존재했었고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펨블턴은 다른 대학과는 다르고 이곳 학생들은 칼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저희는 다른 대학에게도 선례를 남기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에도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조지프 와인가트너, 신경학자
이 상태는 통각적 실인증이라기보다는 연상적 실인증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조치는 개인의 시각에는 간섭하지 않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인식하는 일에 간섭할 뿐입니다. 칼리아그노시아 조치를 받은 사람은 모든 사람의 얼굴을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뽀죡한 턱과 뒤로 들어간 턱, 곧은 코와 비뚤어진 코, 매끄러운 피부와 티가 많은 피부를 구분할 수 있는 겁니다. 단지 이런 차이들에 대해 아무런 심미적 반응도 경험하지 않을 뿐입니다.
칼리아그노시아가 가능한 것은 뇌에 어떤 신경 경로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동물은 배우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개체들의 번식 잠재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고, 진화를 통해 그 기준을 인식하게 해주는 ‘회로’를 발달시켰습니다. 인간의 사회적 교류는 얼굴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의 이 회로는 잠재적인 생식 능력이 상대방의 얼굴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에 관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이 회로의 작용을 상대방이 아름답다든지 추하다든지, 혹은 그 중간의 어느 단계에 해당된다든지 하는 감각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특징들을 전담 평가하는 신경 경로들을 막음으로써 우리는 인위적으로 실미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유행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를 감안할 경우,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각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여러 장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매력적인 순서대로 배열해보라고 하면, 여러 문화에 공통되는 극히 명료한 패턴이 나타납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도 어떤 얼굴들을 어른과 마찬가지로 선호하는 것입니다. 이런 실험을 통해 우리는 만인이 아름다운 얼굴로 간주하는 것에 공통된 특성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아마 가장 명백한 것은 매끄러운 피부일 겁니다. 이것은 새의 경우에는 선명한 깃털, 인간 이외의 포유류의 경우에는 반들반들한 모피에 해당합니다. 피부 상태가 좋다는 것은 아마 젊고 건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최상의 지표이고, 모든 문화권에서 높게 평가되는 형질입니다. 여드름은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더 심각한 병처럼 보일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형질은 좌우 대칭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얼굴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존재하는 밀리미터 단위의 차이까지 의식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가장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의 얼굴을 측정해보면 좌우의 균형이 가장 잘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좌우 대칭은 우리의 유전자가 언제나 목표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발달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획득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질입니다. 환경적인 스트레스 요인, 이를테면 영양 불량, 질병, 기생충 따위는 발육 단계에서 좌우 비대칭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좌우 대칭은 그런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저항력을 암시한다고도 할 수 있겠죠.
다른 형질들은 얼굴의 비율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집단의 평균에 근접한 얼굴 비율에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경향은 당연히 당신이 소속된 모집단에 좌우되지만, 평균에 가깝다는 것은 보통 유전적으로 건강하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평균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데도 사람들이 언제나 매력을 느끼는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성호르몬으로 인한 것입니다. 생식 잠재력이 높다는 걸 나타내니까요.
기본적으로 칼리아그노시아는 이런 형질들에 대한 반응의 결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칼리아그노시아 조치를 받은 사람들은 패션이나 미의 문화적 기준 등에 대해서 결코 무감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검정색 립스틱이 크게 유행한다면 칼리아그노시아가 그 사실을 잊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단지 검은 립스틱을 바른 예쁜 얼굴과 검은 립스틱을 바른 평범한 얼굴 사이의 차이를 못 느끼는 식이죠. 만약 주위 사람들이 모두 코가 낮은 사람들을 보고 비웃는다면 당신은 그 사실 또한 깨달을 겁니다.
따라서 칼리아그노시아 그 자체는 겉모습에 기반을 둔 차별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그것이 하는 일은 말하자면 핸디캡을 없애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리아그노시아는 타고난 소인을 제거하고, 그런 차별적인 경향 자체가 나타나는 것을 원칙적으로 막는 겁니다. 이 방법을 쓴다면, 사람들에게 겉모습을 무시하라고 가르치고 싶을 때 힘든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선 모든 사람이 칼리아그노시아를 채택한 환경을 만들고, 그다음 겉모습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지 말도록 사회화하는 방법이 이상적이겠죠.
타메라 라이언스
이 대학에 오고 나서 자주 받는 질문이 세이브룩 학교에서 칼리를 한 상태로 자랄 땐 어떤 기분이었느냐는 거예요. 솔직히 어렸을 때는 별거 아니었어요. 다들 하는 말처럼 어떤 환경이든 자기가 자라난 환경이면 정상적으로 느껴지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있지만 저희들은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제 친구들과 저는 영화를 보면서 어떤 배우가 정말로 잘생겼고 어떤 배우가 그렇지 않은지 알아내는 놀이를 하곤 했죠. 다들 자기는 알 수 있다고 했지만, 실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잘생긴 배우를 정말로 구분할 수 있는 애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냥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주인공 친구인지를 알아냈을 뿐이죠. 언제나 친구들보다는 주인공이 잘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백 퍼센트 맞는 건 아니었지만 주인공이 잘생기지 않았을 때는 언제나 어떤 힌트가 있으니까 힘들지는 않았어요.
칼리가 점점 마음에 걸리기 시작하는 건 더 나이를 먹고 나서예요. 다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놀 때면 자기는 칼리가 있는데 다른 애들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돼요. 그걸 가지고 누가 유난스럽게 구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세계를 못 보게 한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싸우게 되고. 하지만 그래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아요.
리처드 해밀, 세이브룩 학교 설립자
세이브룩은 주택협동조합의 부산물로서 생겨났습니다. 당시 이십여 가구가 있었는데, 모두가 공통된 가치관에 입각한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지요.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 설립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합을 가졌을 때, 학부모 중 하나가 매스미디어가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자식이 십대가 되면 모두 패션모델처럼 보이려고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조른다는 얘기였습니다. 부모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을 바깥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이들은 이미지에 사로잡힌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침 칼리아그노시아에 대한 최후의 법적 걸림돌이 해결된 무렵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칼리를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한 겁니다. 만약 사람들이 겉모습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그런 환경에서 우리의 자식들을 기를 수 있다면?
세이브룩은 협동조합에 소속된 가족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로 시작했지만, 칼리아그노시아를 선택한 다른 학교들이 뉴스거리가 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협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고도 자기 자식들을 우리 학교로 보낼 수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협동조합과는 분리된 사립학교인 세이브룩이 설립됐습니다. 입학 조건 중 하나는 자식들이 이 학교에 재적하는 동안은 부모들도 칼리아그노시아를 채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에 칼리아그노시아 공동체가 생겨난 건 결국 모두 이 학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이철 라이언스
타메라의 아버지와 저는 딸을 이곳에 입학시키기 전에 이 문제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공동체 주민들과 얘기를 해보고 그들의 교육 방침에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학교 견학이었습니다.
세이브룩에는 골암이나 화상, 선천성 불구 등의 이유로 얼굴이 기형이 된 학생의 수가 일반 학교의 평균치보다 더 높습니다. 그런 자식들을 둔 부모들이 다른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받는 일이 없도록 이곳으로 전학을 오는 겁니다. 효과도 있어서, 제가 처음에 가본 교실에서는 열두어 살 먹은 학생들이 반장을 뽑고 있었는데, 반장으로 뽑힌 아이는 얼굴 반쪽에 화상 흉터가 있는 여학생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의 행동거지는 보기에도 정말 편하고 자연스러웠고,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았습니다. 다른 학교였다면 아마 바로 그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당했겠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환경에서 내 딸을 키우고 싶다고.
여자아이들은 언제나 자신의 가치가 용모에 직결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자라왔습니다. 어떤 업적을 이루더라도 예쁘면 크게 각광받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평가절하됩니다. 더 나쁜 경우가 있다면, 여자아이들 일부가 자신의 외모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수용하고 정신적 성장을 멈춰버린다는 사실이겠죠. 저는 타메라를 그런 종류의 영향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예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특징입니다.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그건 수동적인 노력에 불과합니다. 저는 타메라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가 아니라, 정신과 육체 모두를 함양해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제 딸이 수동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애가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마틴 라이언스
타메라가 성인이 되어 칼리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해도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저희 부부의 결정은 결코 타메라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 같은 세태에서는 사춘기를 거치는 일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또래끼리의 압력만으로도 종이컵처럼 우그러질 수 있는 겁니다.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고민하는 것도 그런 압력 중 하나이고, 그런 압력을 완화할 수만 있다면 그게 뭐든 무조건 좋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외모 문제에 관해서도 좀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좀더 자신을 가지고 안정된 상태에서 자신의 겉모습에 안주할 수 있게 되지요. 잘 생겼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나이에 이렇게 성숙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열여섯 살에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른 살 혹은 그 이상이 되어서야 겨우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여덟 살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이고, 이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을 믿고 최상의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타메라 라이언스
오늘은 저에게는 좀 이상한 날이었어요. 좋은 날이긴 했지만 역시 이상했다고나 할까. 오늘 아침에 칼리를 껐거든요.
끄는 거 자체는 쉬웠어요. 간호사가 저한테 센서를 몇 개 붙이고 헬멧을 씌운 다음에 여러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여줬죠. 그러고는 키보드를 일 분쯤 두들기더니 “칼리를 껐습니다” 하더군요. 그게 다였어요. 껐을 때 뭔가 일어날 거라고 상상하고 있었는데 실은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런 다음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다시 사진들을 보여줬어요.
다시 얼굴들을 보니까 그중 몇몇은…… 달라 보였어요. 빛이 난다고나 할까, 더 생동감이 있다고나 할까. 정확히 설명하는 건 힘들지만. 간호사가 나중에 테스트 결과를 보여줬어요. 제 눈의 동공이 얼마나 열렸는지, 피부의 전기 전도율이 얼마였는지 뭐 그런 수치가 나와 있었어요. 그런데 달라 보이는 얼굴들을 보았을 때는 그런 수치가 올라갔던 거예요. 간호사는 그것들이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했어요.
간호사는 이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금세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의 얼굴에 반응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거릴 거라더군요. 자기 얼굴의 경우엔 아마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그렇다나요.
맞아요. 처음 거울로 제 얼굴을 봤을 때는 옛날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잖아, 하고 생각했어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온 다음부터 캠퍼스에서 보는 사람들은 달라 보였지만, 제 얼굴은 하나도 달라 보이지 않았어요. 전 하루 종일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한동안은 제가 못생긴 건 아닐지, 또 못생긴 것이 뾰루지나 뭐 그런 것처럼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그냥 거울을 바라보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어쩌면 내가 그렇게 못생긴 건 아닌가보다 생각해요. 못생겼더라면 알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예쁘지도 않은가봐요. 예쁘다면 그것도 알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저는 평범 그 자체라는 얘기가 되잖아요? 완전 평균. 그럼 뭐 괜찮은 거겠죠.
조지프 와인가트너
실인증을 유발한다는 것은 특정 부위의 뇌 손상을 시뮬레이트한다는 뜻입니다. 이때 쓰이는 것은 ‘뉴로스태트’라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약제입니다. 극히 선택적인 마취제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이 약제의 활성화와 표적 설정은 모두 동적 조정이 가능합니다. 환자가 머리에 쓴 헬멧으로 신호를 보내 활성화거나 불활성화하는 겁니다. 이 헬멧은 체내 위치 정보도 제공하기 때문에 뉴로스태트 분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삼각 측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뇌세포 조직의 특정 부위에 위치한 해당 뉴로스테트만을 활성화시킬 있기 때문에 그 부위의 신경 임펄스가 지정된 역치 이하에 머물게 할 수 있습니다.
원래 뉴로스태트는 간질 환자의 발작을 제어하고 만성적 고통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개발됐습니다. 이걸 사용함으로써 신경계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약물에 부수되는 부작용 없이도 이런 중증 환자들의 치료가 가능해졌지요. 그 뒤로는 강박신경증, 약물의존증, 그 밖의 신경질환의 치료를 위한 각종 뉴로스태트 프로토콜이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이 약제는 대외 생리의 연구에도 다분히 소중한 연구 수단이 되어주었습니다.
뇌 기능의 특수화를 연구하는 신경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채택한 방법 중 하나는 여러 종류의 뇌 손상이 야기하는 결함을 관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한 뇌 손상은 보통 복수의 기능 부위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이 테크닉에는 처음부터 명백히 한계가 있었지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뉴로스태트는 뇌의 극히 작은 부분에서만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에, 실생활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가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국소화된 뇌 손상을 시뮬레이트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해당 뉴로스태트를 불활성화하면 이 ‘손상’은 사라지고 뇌 기능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방법을 써서 신경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실인증을 유발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얼굴 실인증, 즉 사람 얼굴을 보고도 누군지 분간해내지 못하는 증세입니다. 친구나 가족을 봐도 상대방이 뭐라고 말을 하지 않는 이상 누군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사진에 나와 있는 자기 얼굴조차도 알아보지 못하죠. 이것은 인지적이거나 지각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얼굴 실인증 환자들은 상대방의 머리 모양이나 옷, 향수, 걷는 모습을 보고도 누군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장애는 순전히 얼굴에만 한정되어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얼굴 실인증은 우리의 뇌 속에 얼굴의 시각적 정보처리를 전담하는 특수한 ‘회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로 간주되어왔습니다. 우리는 다른 물체들을 보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얼굴에 대해 우리가 실행하는 여러 정보처리 과정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얼굴 표정을 알아보는 일을 전담하는 회로도 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탐지하는 회로조차도 있습니다.
얼굴 실인증 환자를 관찰하면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이들이 상대방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그 얼굴이 매력적인지 아닌지에 관해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얼굴 사진들을 보여주고 매력적인 순서로 배열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얼굴 실인증 환자들은 일반인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사진을 가려냈습니다. 연구자들은 뉴로스태트를 사용한 실험을 통해서 얼굴의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신경 회로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실질적 칼리를 발명했던 겁니다.
마리아 데수자
저희 조직은 학생 보건 사무실에 설치한 뉴로스태트 프로그래밍 헬멧의 수를 늘렸고, 희망자에게는 누구나 칼리아그노시아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따로 예약할 필요도 없이 그냥 들어가서 신청하면 됩니다. 저희는 모든 학생에게 칼리아그노시아를 권장하고 있고, 하루 동안만이라도 시험해보고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아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한 느낌일 겁니다. 아는 사람 모두가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것으로 보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이 대인 관계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될 겁니다.
칼리가 혹시 성적인 욕구를 사라지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개인의 매력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가, 행동과 몸짓을 통해 어떤 일을 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중요하겠지요. 제 경우에 대해서 말하자면, 제가 어떤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그 남자가 제게 흥미가 있는 것처럼 보일 때입니다. 일종의 피드백 루프라고나 할까요. 그 남자가 당신을 바라보는 걸 깨닫고, 그 남자도 당신이 자기를 바라보는 걸 깨닫고, 모든 것이 여기서부터 커져가는 겁니다. 칼리는 이런 과정을 바꾸지 않습니다. 게다가 페르몬으로 인한 화학 작용도 진행되는 법이고요. 칼리가 이것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또 하나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칼리가 모든 사람의 얼굴을 똑같이 보이도록 할 거라는 걱정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의 얼굴이란 언제나 그 성격을 반영하기 마련이고, 칼리는 오히려 그 점을 한층 더 명확하게 해줍니다. 일정한 나이를 지나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격언을 들어본 적이 있으시죠? 칼리는 그 말이 얼마나 옳은지 실감나게 해줄 겁니다. 어떤 얼굴은 정말 단조롭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젊고 표준적으로 잘생긴 경우에 그렇습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없다면 이런 얼굴들은 그냥 따분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개성이 풍부한 얼굴은 칼리가 없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멋져 보이고, 칼리에 의해 더 멋져 보일 수 있습니다. 마치 좀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기분이 되는 겁니다.
칼리를 강제할 작정이냐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희는 전혀 그럴 계획이 없습니다. 응시 패턴을 분석해 칼리 유무 여부를 상당히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고, 캠퍼스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들의 줌 기능 가지고서는 도저히 무리입니다. 결국 칼리를 강제하려면 모든 사람이 개인용 카메라를 휴대하고 데이터를 공유하는 수밖에 없겠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저희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단 사람들이 칼리를 사용해보면, 그 이점을 단번에 깨달을 거라고 저희는 확신합니다.
타메라 라이언스
세상에, 전 예뻤어요!
정말 굉장한 날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 앞으로 갔죠.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여전히 제 얼굴은 평범하게 보였어요. 나중에는 살금살금 거울로 다가가서 기습적으로 (웃음) 보기까지 했지만 효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좀 낙심했죠. 뭐랄까, 체념하고 운명을 받아들였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오늘 오후에 룸메이트 아이나하고 기숙사 친구 두 명하고 놀러 나갔거든요. 우선 제 자신이 익숙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칼리를 껐다는 얘긴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어요. 저흰 캠퍼스 반대편에 있는 어느 스낵바로 갔어요. 저는 거기 가는 것이 처음이었어요. 테이블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다가, 저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칼리 없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한번 보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애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전 그 아이를 보고 ‘정말 예쁜 아이네’라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에 (웃음) 정말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그제야 스낵바의 벽이 거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저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예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어요. 가만있어도 자꾸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더군요. 아이나가 뭐가 그렇게 좋냐고 해도 저는 그냥 고개를 젓기만 했죠. 저는 화장실로 갔어요. 제 얼굴을 좀더 바라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참 좋은 날이었어요. 저는 제 얼굴이 정말 좋아요!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에요.
제프 윈스럽, 3학년, 학생 토론회에서의 발언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물론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 ‘눈가림’은 결코 해답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칼리는 나쁜 것뿐 아니라 좋은 것까지 제거해버립니다. 차별의 가능성이 있을 때도 제대로 작동한다고 할 수 없고, 그냥 아름다움을 아예 인식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매력적인 얼굴을 바라본다고 해서 누구에게 크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칼리는 이럴 경우에도 구분을 허용하지 않지만, 교육이라면 그게 가능해집니다.
물론 누군가는 테크놀로지가 더 발달한다면 달라지지 않겠냐고 얘기하겠죠. 언젠가는 그들이 당신의 뇌에 전문가 시스템을 삽입하여 ‘이것은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데 적절한 상황인가? 그렇다면, 즐겨라. 그렇지 않다면, 무시하도록’ 하는 식으로 판단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이것이 사람들이 ‘도움받은 성숙함’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걸 성숙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전문가 시스템이 당신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일 뿐입니다. 성숙함이란, 차이를 눈으로 보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테크놀로지에 의한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데시 싱, 3학년, 학생 토론회에서의 발언
전문가 시스템에게 당신의 판단을 맡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칼리가 이상적인 것은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가 실로 작기 때문입니다. 칼리는 여러분을 위해 판단을 내려주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려는 일을 막지도 않습니다. 성숙에 관해 말하자면, 칼리를 선택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성숙함의 증거입니다.
누구나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인간의 장점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것은 교육 덕택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 세상이 선의로 가득하다 해도 사람들은 외모 지상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평하게 사람을 판단하고 상대방의 외모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동적인 반응만은 억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은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소망 충족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겁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보십시오. 매력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와 매력적이지 못한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이 보이는 반응에는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이 문제에 관한 연구에서는 모두 똑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외모가 매력적이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잘생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유능하고, 좀더 정직하며,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지만, 그들의 외모는 우리에게 그런 인상을 줍니다.
칼리는 눈가림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여러분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칼리는 당신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타메라 라이언스
그래서 전 캠퍼스 안에서 잘생긴 남자들을 구경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재미있어요.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재미는 있어요. 며칠 전 카페테리아에 갔다가 한두 테이블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본 적이 있어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줄곧 얼굴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 남자 얼굴이 어디가 특별하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그냥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더 눈에 띄었어요. 마치 그 남자 얼굴은 자석이고, 내 눈은 나침반의 바늘처럼 그쪽으로 끌려갔다고나 할까.
그리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니까, 그 남자가 정말 괜찮은 남자일 거 같은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거예요! 그 남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친해지고 싶었어요. 좀 이상했지만 절대로 나쁜 느낌은 아니었어요.
전국대학네트워크 관련, 에듀뉴스 방송에서
펨블터 대학의 칼리아그노시아 의무화 조치에 관한 최신 뉴스입니다. 에듀뉴스가 입수한 증거에 의하면, 홍보회사인 와이어트/헤이즈는 펨블턴 대학 학생 네 명을 음성적으로 고용해 칼리아그노시아 의무화 안에 찬성투표를 던지지 말라고 동료 학생들을 설득하는 일을 맡겼다고 합니다. 입수한 증거에는 ‘평판이 좋고 잘생긴 학생들’을 고르라고 권고하는 내용이 담긴 와이어트/헤이즈의 사내 메모와 이 홍보회사에서 펨블턴의 학생들에게 지불한 사례의 기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파일의 발신처는 미디어를 상대로 폭로활동을 펼쳐온 문화 게릴라 집단인 <세미오테크 전사들>이었습니다.
입장 표정을 요청하자, 와이어트/헤이즈는 사내 컴퓨터 시스템에 불법 침입한 문화 게릴라 집단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제프 원스럽
예, 맞습니다. 저는 와이어트/헤이즈에게서 보수를 받았지만, 특별히 무슨 선전을 하기 위한 계약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무슨 얘기를 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은 적도 한 번도 없으니까요. 제가 받은 보수는 단지 제가 안티-칼리 캠페인에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걸 가능하게 했을 뿐입니다. 교습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면 안 그래도 그렇게 행동했을 테니까요.
안티-칼리 운동의 관계자 두 사람에게서 더 이상 이 문제에 관해 공공연히 발언하는 것은 삼가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자기들의 대의에 금이 가기 때문이라는군요. 그 친구들이 그렇게 느낀다니 유감입니다. 인신공격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내놓았던 자신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일로 의견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항간에는 그런 구별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니까, 저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마리아 데수자
그 학생들은 자기들 뒤에 스폰서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어야 했습니다. 누가 걸어다니는 광고탑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가 이번 개정안을 비판하고 나서면, 혹시 돈을 받고 그러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반동이 안티-칼리 운동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홍보회사를 고용할 정도로 저희의 개정안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일종의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희는 개정안 통과가 다른 학교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을 기대했고, 이번 사건으로 기업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전국 칼리아그노시아 협회의 회장을 캠퍼스에 초청해 강연회를 열 예정입니다. 예전에는 전국적인 단체와 손을 잡아야 할지에 관해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분들이 강조하는 측면은 우리와는 다르니까요. 전국 단체는 매스미디어에 의한 미의 남용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저희 조직에서는 사회적 평등 쪽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와이어트/헤이즈의 책동에 대해 우리 학교 핵생들이 보인 반응을 감안한다면, 미디어 조작을 이슈화할 경우 분명 저희들의 목표 달성에 힘이 될 것입니다. 의무화 안을 통과시키는 최상의 수단은 광고주들에 대한 분노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평등은 그 뒤를 따를 테고요.
전국 칼리아그노시아 협회 회장 월터 램버트가
펨블턴 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발췌
코카인을 예로 들어봅시다. 천연 형태의 코카 잎은 쾌감을 줍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요. 그러나 정제하고 순화하면, 그것은 여러분의 쾌락 수용기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강렬하게 자극하는 약물로 변신합니다. 그러면 중독성이 생기는 거지요.
아름다움 또한 광고주들 덕택에 비슷한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진화는 우리에게 잘생긴 외모에 반응하는 신경 회로를 부여했고, 시각 피질의 쾌락 수용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것은 자연 환경에서는 유용한 자질이었지요. 그렇지만 백만 명에 한 명 밖에는 없는 피부와 골상을 가진 사람에게 전문적인 메이크업과 수정을 가한다면, 여러분이 보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천연 형태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제된 약제급의 아름다움이고, 미모의 코카인입니다.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초자극’이라고 부릅니다. 어미 새에게 거대한 플라스틱제 알을 보여주면 어미 새는 자기가 낳은 진짜 알들 대신에 이 플라스틱 알을 품습니다. 매디슨 애비뉴*3) 는 우리의 환경을 이런 종류의 자극으로, 이런 종류의 시각적 마약으로 채워놓았습니다. 우리의 미적 수용기는 진화로 얻은 처리 용량을 초과하는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단 하루에 우리 조상들이 일생 동안 받은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아름다움은 우리의 삶을 천천히 파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마약이 문제가 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을 통해서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간섭하는 거죠.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에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은 슈퍼모델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차원적인 이미지조차도 문제투성이인데, 스펙스가 보급된 지금은 광고주들이 슈퍼모델들을 여러분 눈앞에 출현시켜 여러분을 바라보게 합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예약 시간이 됐음을 알려주는 여신들을 제공합니다. 가상의 여자친구를 살아 있는 여자친구보다 더 선호하는 남자들에 관해서는 들어보셨겠지만, 영향을 받은 것은 그들만이 아닙니다. 화려한 미모의 디지털 유령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 세계의 인간관계는 더 큰 타격을 받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이런 이미지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습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아름다움이란 글자 그대로 이십사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지 않는 한 절대로 떨쳐버릴 수 없는 마약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래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은 다른 한 쌍의 눈꺼풀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마약을 차단하면서도, 눈으로 보는 것을 허용해주는. 바로 칼리아그노시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너무 지나치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이것을 충분히 필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테크놀로지는 감정적 반응을 통해 우리를 조작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테크놀로지를 쓰는 것 역시 정당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겐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펨블턴 대학의 학생회는 지금까지 줄곧 모든 진보적 운동의 선봉에 서서 활동해왔습니다. 이곳에 있는 여러분의 결정은 전국의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 것입니다.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칼리아그노시아를 채택함으로써, 여러분은 젊은이들이 더 이상 조작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광고주들에게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에듀뉴스 방송에서
전국 칼리아그노시아 협회 회장인 월터 램버트의 강연 후, 펨블턴 대학의 재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전체 재학생의 54퍼센트가 칼리아그노시아의 의무화에 찬성했습니다. 미국 전체 대학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평균 28퍼센트의 재학생이 자기 학교에서 유사한 조치를 의무화하는 데 찬성했고, 이것은 지난달에 비해 8퍼센트 증가한 수치입니다.
타메라 라이언스
코카인에 비유한 건 좀 심했다고 생각해요. 광고라는 마약을 손에 넣기 위해 도둑질까지 하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나요?
하지만 광고에 나오는 잘생긴 모델들하고 실생활에서 잘생긴 사람들 사이의 차이에 관한 그분 얘기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델들이 현실에서의 사람들보다 잘생겼다는 게 아니라 뭔가 달라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며칠 전 대학 매점에 있다가 이메일이 왔는지 보려고 스펙스를 꼈는데, 스펙스에 포스터 광고가 뜨더라고요. 샴푸 광고, ‘쾌락’이었던가 그랬는데, 전에도 봤던 광고거든요, 그런데 칼리 없이 보니까 달리 보이는 거예요. 거기 나온 여자 모델은 정말이지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카페테리아에서 그 잘생긴 남자를 보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는 뜻이 아녜요. 그 모델과 사귀고 싶다거나 뭐 그런 느낌은 받지 않았으니까. 그건 뭐랄까… 해가 지는 광경이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냥 거기 서서 그 광고를 한 다섯 번은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여자를 계속 더 보고 싶어서요. 사람이 그렇게, 뭐랄까, 스펙터클하게 보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뭐 사람들하고 말하는 걸 그만두고 맨날 스펙스에 나오는 광고만 보고 있겠다는 얘긴 아녜요. 광고를 보는 건 굉장히 강렬한 체험이지만, 진짜 사람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거든요. 광고를 보자마자 당장 거기 나온 제품들을 사고 싶은 기분이 된다는 얘기도 아녜요. 사실 제품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도 않거든요. 그냥 보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어요.
마리아 데수자
마약 타메라를 더 일찍 알았다면 칼리를 끄지 말라고 설득했을지도 모릅니다. 성공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상당히 굳은 결심을 한 것 같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메라는 칼리의 장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훌륭한 예입니다. 타메라와 말을 나누면서 그걸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를테면 타메라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아느냐고 제가 묻자 “왜요? 제가 아름다워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완전히 진심으로 한 말이었어요! 마치 자기의 키에 관해 말하듯이요. 칼리가 없는 여성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 상상할 수 있습니까?
타메라는 자신의 용모에 관해서 전혀 자의식이 없습니다. 허영심이 있거나 자신감이 결여된 것도 아니고, 아무런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자신을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실 타메라는 매우 예쁩니다. 그쯤 되면 많은 여성들이 언동 면에서 좀 우쭐대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타메라에게는 전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쭐대지 않는다면 거짓 겸손을 보일 때도 있고 이런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만, 타메라는 그러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정말로 겸손하기 때문이죠. 칼리와 함께 자라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했을 겁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군요.
아니카 린드스트롬, 2학년
이 칼리라는 건 정말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전 남자들이 쳐다보면 기분이 좋아요. 만약 안 그렇게 된다면 정말 실망할 거예요.
이 모든 일은 솔직히 말해서 별로 잘생기지 못한 사람들이 좀 나은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실행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자기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벌하는 거죠. 정말 불공평해요.
예뻐질 수 있다면 누가 그걸 마다하겠어요? 누구에게 물어봐도 싫다는 사람은 없을걸요. 이 운동을 뒤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더라도 백이면 백 같은 대답이 돌아올 거예요. 아, 물론 예쁘면 멍청이들이 가끔 귀찮게 군다는 단점은 있죠. 멍청이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만약 이 과학자 양반들이 남자들 뇌에 있는 멍청이 회로를 끄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거예요.
졸린 카터, 3학년
저는 의무화 안에 찬성표를 던질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칼리가 있다면 안도감을 느낄 거예요.
사람들이 저한테 친절한 건 제 용모 때문이에요.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걸 좋아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론 가책을 느낀답니다. 전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거든요. 물론 남자들이 저에게 주목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 탓에 다른 사람과 진심으로 사귀는 일이 어려워질 때가 있어요. 어떤 남자가 좋아질 때마다, 그 사람이 내 자신에 대해 흥미를 느낀 건지 아니면 내 외모에 흥미를 느낀 건지 궁금해하곤 하죠. 그건 알기가 힘든 것이, 모든 관계라는 게 처음에는 다 멋지잖아요? 정말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상대라는 걸 확인하는 건 시간이 좀 흐른 다음의 일이에요. 제 마지막 남자친구와도 그런 식이었어요. 그 남자는 제가 정말로 멋진 모습을 하고 있지 않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함께 있으면서 정말로 마음을 놓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그 남자와 아주 가까워진 사이였기 때문에 그 남자가 진짜 저를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선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여자들과의 관계도 있어요. 여자들 대다수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는 언제나 주위 사람들과 자기 용모를 비교하거든요. 때로는 마치 제가 무슨 경쟁에 참가하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드는데, 전 그러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칼리 생각을 한 번은 해보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걸 사용하지 않는 이상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더군요. 저 혼자 사용해봐야 주위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캠퍼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칼리 사용자가 된다면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타메라 라이언스
룸메이트인 아이나한테 고등학교 앨범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저와 옛날 남자친구인 개럿의 사진들이 나왔어요. 그래서 아아니가 그애에 대해 궁금해하기에 얘기해줬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줄곧 함께 다녔고, 제가 얼마나 그애를 사랑했었는지, 또 함께 있어 싶어했는지에 관해서요. 그랬더니 이러더군요. “아니 그럼 걔 쪽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했단 말이야?”
제가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까지는 좀 시간이 결렸죠. 자기 말을 들어도 화를 내면 안 된다고 두 번이나 다짐을 받더군요. 그러고는 개럿은 솔직히 그리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는 거예요. 전 개럿이 그냥 평범한 용모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칼리를 끈 다음에도 예전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아이나 말로는 틀림없이 평균 이하라는군요.
아이나는 개럿과 닮았다면서 다른 두 명의 남자 사진을 보여줬어요. 그걸 보니 저도 그 남자들이 별로 잘생기지 않았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멍청해 보였다고나 할까. 그다음 다시 개럿 사진을 보니까 그 남자들과 어딘가 이목구비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개럿의 경우에는 귀여워 보이는 거예요. 적어도 저한테는 말이죠.
아마 사람들 얘기가 사실일 거예요. 사랑이란 어딘가 칼리를 닮았다는 얘기 말예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방이 정말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눈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개럿에 대해 아직 감정이 남아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개럿을 보지는 않는 거겠죠.
아이나는 개럿처럼 생긴 남자가 저처럼 생긴 여자애하고 헤어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어요. 칼리가 없는 학교였다면 저와 데이트도 하지 못했을 거라나. 바꿔 말해서 우리 두 사람은 격이 다르다는 거죠.
그런 얘기를 들으니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럿과 사귈 무렵 전 항상 우리 두 사람이 맺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운명이나 그런 걸 믿는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냥 두 사람이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같은 학교에 다녔더라도 칼리가 없었다면 결코 사귀는 일이 없었을 거라는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아이나도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건 아녜요, 알아요. 하지만 저도 그애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단언할 자신이 없군요.
그러니까 제가 칼리가 있었다는 걸 감사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 덕택에 개럿과 사귈 수 있었으니까. 참 뭐라고 해야 하는 건지.
에듀뉴스 방송에서
오늘 전국 각지에 있는 십여 개의 칼리아그노시아 학생 조직의 인터넷 사이트가 동시에 서비스 불능 공격을 받고 접속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범행을 인정한 그룹은 아직 없지만, 전국 성형외과의사 협회의 사이트가 칼리아그노시아 사이트로 뒤바뀌었던 사건에 대한 보복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한편, <세미오테크 전사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피부과학’ 컴퓨터 바이러스를 유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의 비디오 서비스를 감염시켜 방송 내용을 변화시킴으로써, 얼굴과 몸에 여드름이나 정맥류 따위가 드러나 보이게 하는 바이러스입니다.
워렌 데이비드슨, 1학년
고등학교 때 칼리를 한번 사용해볼까 생각했지만, 그 얘길 부모님한테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결국 못했어요. 그랬는데 대학에서 기회를 제공한다기에 한번 해보자 했죠. (어깨를 으쓱하며) 괜찮았습니다.
아니, 실은 괜찮은 것보다 더 나았습니다. (잠시 침묵) 저는 언제나 제 얼굴이 싫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거울을 보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칼리가 있으면 그때만큼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똑같은 얼굴로 보인다는 걸 알지만, 예전에 비하면 그리 중대한 문제라는 느낌을 안 받거든요.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해 훨씬 더 잘생겼다는 사실을 언제나 자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미적분 숙제를 못 풀어서 고민하는 여학생을 도와준 적이 있어요. 나중이 돼서야 깨달았는데, 예전의 저라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을 만한 학생이었어요. 예전의 저였다면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신경이 곤두섰을 텐데, 칼리가 있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 그애는 제가 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애한테 말을 걸었을 때 저는 제가 이상한 놈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칼리가 있기 전에는 너무 자의식이 강했고 그게 더 사태를 악화시켰어요. 하지만 지금은 훨씬 마음이 편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제 자신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칼리가 있어도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적어도 제 경우에는 칼리 덕분에 예전보다 고민이 줄어든 건 사실입니다. 이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렉스 비베스쿠, 펨블턴 대학 종교학 교수
일부에서는 칼리아그노시아에 관한 토론 전체를 다분히 피상적인 것, 메이크업이나 데이트의 성패 따위에 관한 논란으로 간단히 치부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주의를 기울여본다면, 그보다는 훨씬 더 깊은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문제는 고대부터 줄곧 서양 문명의 일부였던, 육체에 관한 아주 오래된 양가적 감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문화적 기반은 외모의 아름다움과 육체를 예찬했던 고대 그리스에 원류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의 문화에는 육체를 평가절하하고 영혼을 높이 보는 일신교의 전통도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이런 상반되는 충동에서 비롯된 오래된 갈등이 칼리아그노시아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칼리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진보주의자로 간주하고, 자신들이 일신교의 영향 아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이외의 누가 칼리아그노시아를 지지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보수적인 종교단체들이 아닙니까. 세 개의 주요한 일신교인 유대교, 크리스트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모두 칼리를 이용해 외부인들의 매력에 대한 젊은 신도들의 저항력을 키우려는 시도에 나섰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칼리를 지지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육체의 유혹에 저항한다”라는 식의 표현을 쓰지는 않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육체를 경시하는 이 오래된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일신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확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칼리 지지자들은 네오마인드 불교도들뿐입니다. 이 종파는 허상에 불과한 구별에 대한 기각을 없애준다는 이유를 들어 칼리아그노시아를 깨달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주는 수단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네오마인드 파는 뉴로스태트를 명상의 보조 수단으로 폭넓게 사용하고 있고, 이것은 다른 종교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급진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진보주의자나 보수적인 일신교 신자들이 이런 일에 동조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 연유로, 이 토론은 단지 광고나 화장품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사이의 적절한 관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에서 육체적인 부분을 최소화할 경우 우리는 더 완전해질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심원한 질문이라는 점에는 당신도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조지프 와인가트너
칼리아그노시아를 알게 된 후 어떤 연구자들은 피험자가 인종이나 민족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굴 인식과 관련된 여러 레벨의 카테고리 식별 능력을 감속시킨다든지 하는 방법을 써서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았지요. 그러나 그 결과 생겨난 결함은 언제나 불만족스러웠습니다. 피험자들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을 보여주면 누가 누군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실험에서는 실제로 프레골리증후군*4) 의 양성 변종에 해당하는 것이 생겨나, 피험자로 하여금 만나는 사람 모두를 가족 한 사람으로 착각하도록 만드는 경우조차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글자 그대로 자기 형제 취급한다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실생활에서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닙니다.
강박 행동 같은 증세의 치료에 뉴로스태트 요법이 널리 쓰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마인드 프로그래밍’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주치의에게 배우자와 같은 성적 취향을 가질 수 없겠느냐고 문의했습니다. 매스미디어의 식자들은 정부나 기업에 대한 충성심이나 이데올로기나 종교에 대한 신앙을 개인에게 프로그래밍할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습니다. 우리에겐 개인의 사고 내용에 엑세스할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인격의 넓은 양태를 형성한다든지 뇌의 자연스러운 특수화에 조응하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이것들은 극히 조잡한 조정에 불과합니다. 이민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신경 경로 따위는 마르크스주의나 발에 대한 페티시즘을 전담하는 신경 경로와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진정한 마인드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진다면 ‘인종맹(人種盲)’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교육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타메라 라이언스
오늘 강의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상사 시간에 앤톤이라는 강사가 한 말인데 옛날부터 매력적인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단어 중에 마법에 관련된 단어가 상당하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charm은 원래는 마법의 주문을 의미했고, glamour도 마찬가지였다는군요. enchanting이나 spellbinding이라는 단어들은 사실 그렇구나 싶고요. 앤톤이 그렇게 말하니까, 맞아, 그래, 했어요. 정말로 잘생긴 사람을 본다는 건 마법의 주문에 걸리는 것과 같잖아요.
앤톤은 마법의 가장 기초적인 용도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사랑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거였다고도 했어요. 그것도 딱 맞는 얘기예요. charm이나 glamour라는 단어에 관해 생각해보면 말예요. 왜냐하면 미를 본다는 건 사랑을 닮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아주 잘생긴 사람은 그냥 바라만 봐도 사랑에 빠져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개럿과 다시 연인 사이가 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개럿에게 칼리가 없다면 나와 또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리를 처음 묶어준 게 칼리일지도 모른다는 얘기 기억나세요? 음, 지금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건 실은 칼리일지도 모르거든요. 제가 실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볼 수만 있다면 개럿이 다시 저에게 돌아오고 싶을지도 몰라요.
개럿은 이번 여름에 열여덟 살이 됐지만 칼리를 끄지 않았어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죠. 지금은 노스럽 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친구 입장에서 전화를 걸어봤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곳 팸블턴의 칼리 의무화 안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어요. 뭐가 그렇게 난리를 칠 일인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제가 더 이상 칼리를 쓰지 않아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그애도 그래보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러면 양쪽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맞는 말인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그 이상 깊게 캐묻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너무 좋았어요.
대니얼 탈리아, 펨블턴 대학 비교문학과 교수
학생회의 안은 교수진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만약 그것이 통과된다면 교수들도 칼리아그노시아를 채택하리라는 압력이 가해질 건 뻔하겠지. 따라서 내가 그 안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지금 밝힌다고 해도 이르지는 않다고 생각하네.
정치적으로 적절한 태도는 통제력을 잃고 폭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안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되네. 칼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우리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과 똑같아. 아름다움으로부터 우리가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모욕적이야.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급기야는 학생 모두가 음악 실인증 조치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생회에서 나올지도 모르지. 재능 있는 가수나 연주자의 음악을 들어도 열등감에 시달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야.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경기하는 걸 보면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나? 물론 그렇지 않지. 그러기는커녕 경이감을 느끼고 감탄하지 않나. 그토록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거야. 그런데 왜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같은 느낌을 받으면 안 된다는 건가?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반응을 보이는 우리에게 반성해야 한다고 하겠지. 페미니즘은 미학을 정치로 치환하려고 하니까 그런 시도가 성공하면 할수록 우리의 문화는 빈곤해질 거야.
세계 최고의 미인을 목격한다는 건 세계 최고 소프라노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가슴 벅찬 일일세. 재능 있는 사람들만이 그 재능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냐. 우리들 모두가 그 혜택을 받는다는 얘길세. 받을 수 있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군. 그럴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야.
<윤리적 나노약품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돈을 댄 광고
(내레이션) 친구들에게서 칼리가 얼마나 멋진지, 얼마나 훌륭한 선택인지 강조하는 얘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그렇다면 칼리와 함께 자라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칼리를 끄고 나서 처음으로 매력적이지 못한 사람을 만났을 때는 움찔했습니다. 바보스럽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가 없더군요. 칼리는 제가 성숙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지속적으로 성숙을 막았던 겁니다. 저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그래픽 아티스트가 되려고 입학해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했지만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습니다. 저한테 눈썰미가 없는 건 칼리가 제 미적 감각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라고 선생님이 말하더군요. 제가 잃은 것을 다시 되찾을 방도는 없습니다.”
“그건 마치 머릿속에 부모님이 들어 있고, 제 생각을 검열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칼리를 끄고 보니 제가 지금까지 어떤 종류의 학대를 받고 살아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내레이션) 칼리아그노시아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추천하지 않는다면,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여러분에게는 있습니다. 친구들이 뭐라든 간에 뇌 손상은 결코 추천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 데수자
<윤리적 나노약품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란 단체에 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조금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자생적인 조직과는 무관함이 드러났습니다. 기업 홍보를 위한 어용단체였던 겁니다. 최근 몇몇 화장품 회사가 회합해 이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광고에 출연한 사람들과는 연락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설령 솔직한 의견이라고 해도 당사자들이 전형적인 칼리 사용자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칼리를 끈 사람들 대다수는 아무런 지장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칼리를 한 상태로 자랐어도 그래픽 아티스트가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번 일을 겪고 예전에 본 광고가 생각나더군요. 칼리 운동 초창기에 어떤 모델 에이전시에서 낸 광고입니다. 슈퍼모델의 얼굴만 나온 단순한 광고였고, 이런 카피가 쓰여 있었습니다. “만약 이 여자를 보고도 더 이상 아름답다는 생각을 못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손해일까요? 이 여자? 아니면 당신?” 이번에 나온 광고도 기본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후회할 사람은 당신이다.” 하지만 예전 광고처럼 뻔뻔한 태도를 취하는 대신 우려 섞인 경고라는 느낌을 담고 있죠. 고전적인 홍보 전략입니다.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단체 뒤에 숨어서 소비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제3자라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타메라 라이언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광고라고 생각해요. 전 칼리 의무화 안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학생들이 찬성표를 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잘못된 이유로 반대표를 던지는 일 또한 원하지 않습니다. 칼리와 함께 자랐다고 해서 무슨 장애를 가지게 되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동정을 받거나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칼리를 끈 후에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의무화 안에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이번에 개럿과 다시 얘기를 나눴어요. 칼리를 막 끈 참이라고 하더군요. 좀 이상한 기분인 듯하면서도 지금까지는 괜찮다고 했어요. 전 제가 칼리를 껐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고 대답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좀 우습군요. 그래봐야 몇 주밖에 안 된 주제에 경험 많은 프로처럼 아는 척했으니.
조지프 와인가트너
연구자들이 칼리아그노시아에 관해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이 조치에 아무 ‘부작용’이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서 칼리아그노시아가 혹시 얼굴 이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능력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개략적으로 말해서 대답은 ‘아니다’인 것 같습니다. 칼리아그노시아 조치를 받은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는 듯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일단 그렇다는 것이지,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얼굴 실인증에서 관철되는 부작용에 관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얼굴 실인증 환자였던 어떤 낙농업자는 자기가 기르는 젖소들이 다 똑같이 보여서 어느 소가 어느 소인지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상상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자동차 모델들을 구별하기가 힘들어졌다는 환자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우리가 순수하게 얼굴을 식별하는 기준을 이따금 그 이외의 작업에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어떤 사물이―이를테면 자동차가― 얼굴을 닮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신경학적 레벨에서는 그것들도 마치 얼굴처럼 처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칼리아그노시아 조치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부작용이 존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칼리아그노시아의 효과는 얼굴 실인증보다 미묘하기 때문에 부작용도 그만큼 측정이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자동차 외양은 얼굴 외양보다 유행의 역할이 사뭇 중요하고, 어떤 차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지에 관해선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칼리 사용자가 아니었다면 매력적으로 느꼈을 어떤 차들을 칼리 사용자이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증세가 나타났다고 불평하고 나선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또 좌우 대칭성에 대한 우리의 심미적 반응에서 우리의 미-인식 모듈이 수행하는 역할에 관해서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회화, 조각, 그래픽 디자인 등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분야의 대칭적 아름다움을 존중하지만, 그와 동시에 비대칭적인 아름다움도 인정합니다. 예술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는 수많은 요인이 관여하고 있어서, 어떤 특정한 사례가 예술적으로 성공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일치된 의견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칼리아그노시아 공동체에선 진정 뛰어난 시각 예술가들이 나올 확률이 실제로 낮은 건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 흥미롭겠지만, 그런 예술가들은 일반 사회에서 출현한 빈도수도 현저히 낮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확실하게 판명된 것은 칼리 사용자들이 어떤 초상화들에 대해서는 다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 자체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초상화가 관찰자에게 끼치는 영향의 일부는 초상화 모델의 얼굴 모습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소한 부작용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식들이 칼리 사용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부모들 중 일부는 바로 그런 이유를 댔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이 <모나리자>를 감상할 수 있고, 가능하다면 제2의 <모나리자>를 그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 거지요.
마크 에스포지토, 워터스턴 대학 4학년
펨블턴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은 정말 황당 그 자체로군. 나라면 좋은 장난거리로 삼을 거야. 이를테면 사내 녀석한테 여자를 하나 소개해주면서 깜짝 놀랄 미인이라고 하는 거지. 실은 엄청난 추녀인데도 말이야. 하지만 그 녀석은 미녀인지 추녀인지 구별을 못하니까 내 말을 믿는 거야. 사실 상당히 재미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 칼리라는 걸 사용하지 않을 거야. 난 예쁜 여자애들하고 데이트하고 싶으니까. 왜 일부러 나 자신의 기준을 낮추는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아, 물론 예쁜 애들이 모두 딴 놈들하고 약속을 해서 부득이 남은 애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 일도 있어. 하지만 맥주라는 건 바로 그런 경우를 위해 있는 거 아니겠어? 그렇다고 항상 맥주 색안경을 끼고 있고 싶진 않다고.
타메라 라이언스
그래서 개럿하고 저는 어젯밤 또 전화로 얘기했어요.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게 화상 통화를 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좋다더군요. 그래서 얼굴을 보면서 통화했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말하기는 했지만 실은 상당히 시간을 들여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아이나한테서 화장하는 법을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솜씨가 좋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화장한 얼굴로 보이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썼어요. 그 덕택에 정말 달라 보였던 것 같아요. 아마 좀 과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개럿이 얼마나 눈치를 챘는지도 의문이고. 하지만 가능한 한 예뻐 보이고 싶었어요.
화상 통화로 바뀌자마자 개럿이 반응하는 게 보이더군요. 눈이 더 커졌다고나 할까. 그러더니 “정말 예뻐 보이는데” 하는 거예요. “고마워” 뭐 이렇게 대답했죠. 그러더니 개럿이 수줍어하면서 자기 못생긴 얼굴이 어쩌고 농담을 했어요. 저는 개럿의 얼굴이 좋다고 말해줬어요.
우리는 한동안 화상 통화를 했고, 저는 줄곧 저를 바라보는 개럿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어요. 기분이 좋았어요. 개럿이 저와 다시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쩌면 그냥 제 상상이었을지도 몰라요.
다음번에 전화할 때는 주말에 저를 한번 보러 오라고 하거나, 아니면 제 쪽에서 노스럽 대학으로 가겠다고 해볼 생각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군요. 그러기 전에 스스로 화장을 잘하는 법을 터득해 놓아야 하겠지만.
개럿이 저와 다시 사귀려는 마음을 먹을 거라는 보장 따위 없다는 걸 저도 알아요. 컬리를 껐다고 제가 개럿을 덜 사랑하게 된 게 아닌 것처럼, 칼리를 껐다고 개럿이 저를 더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캐시 미나미, 3학년
칼리 운동이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킨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든 압제자들의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퍼뜨리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복종이야말로 실은 보호라는 주장을 말입니다. 칼리 지지자들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들을 혐오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감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것을 지니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도 같은 기쁨인데, 칼리 운동은 여성이 자신의 용모에서 기쁨을 얻는 행위 자체에 대해 죄악감을 느끼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의 성을 억압하려는 또 하나의 가부장적 전략에 불과하고, 또다시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그 전략에 넘어갔습니다.
물론 아름다움이 지금껏 억압의 도구로 쓰여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름다움을 아예 말소해버리는 것은 결코 해답이 아닙니다. 경험의 폭을 줄이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해방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은 다분히 전체주의적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움의 개념입니다. 대다수의 여성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대신, 자신을 생각할 때 모든 여성이 기분 좋아지게 하는 개념 말입니다.
로런스 서턴, 4학년
월터 램버트가 그 강연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저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램버트가 썼던 표현을 고대로 쓰지는 않겠지만, 예전부터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년 전에, 그러니까 의무화 안이 상정되기 훨씬 전부터 칼리를 사용했습니다. 좀더 중요한 일들에 정신을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학업에만 관심이 있는 공부벌레라는 얘긴 아닙니다. 제겐 여자친구도 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칼리에 의해 바뀐 것은 저와 광고 사이의 관계입니다. 예전에 잡지 판매다 앞을 지나가거나 매체 광고를 보았을 때는 언제나 그것들에 대해 주의가 끌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제 의지에 반해서 억지로 흥분을 불러일으키려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특별히 성적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본능적인 레벨에서 저를 유혹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럴 경우 저는 습관적으로 그런 느낌에 저항하고, 그때까지 하고 있던 일로 다시 돌아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탓에 주의가 산만하게 되고, 그런 것들에 저항하려면 다른 일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소모됐습니다.
하지만 칼리가 있는 지금은 그런 유혹을 느끼지 않습니다. 칼리는 저를 그런 번잡한 것들로부터 해방시켜주었고 에너지를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칼리 사용에 대해 전면적으로 찬성합니다.
로리 하버, 맥스웰 대학 3학년
칼리는 겁쟁이들용이야. 난 맞받아치지. 추해 보일 만큼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런 걸 보여줘야 해.
코를 제거한 건 작년 이맘때쯤의 일이었어. 듣기보다 훨씬 더 힘든 수술이지. 코 없이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코털을 더 안쪽에 심어서 먼지가 안 들어가도록 해야 하거든. 여기 보이는 이 뼈는 (손톱으로 툭툭 친다) 진짜가 아니라 세라믹으로 만든 거야. 진짜 뼈를 바깥 공기에 노출시키면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너무 크거든.
사람들이 날 보고 기겁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 어떤 때는 밥 먹고 있는 녀석들의 식욕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깜짝 놀라게 하는 게 목적은 아냐. 중요한 건 추해짐으로써 아름다움을 이기는 거야. 길을 가다보면 난 예쁜 여자들보다 훨씬 더 주목을 받아. 만약 내가 비디오 모델 옆에 서 있기라도 하면 어느 쪽에 더 눈이 갈 것 같아? 바로 나야. 그러고 싶지 않아도. 안 보고는 못 견디는 거지.
타메라 라이언스
개럿하고 어젯밤에 또 통화를 하던 중에, 요즘 서로 누구 사귀는 사람이 없냐는 얘기가 나왔어요. 전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애들하고 가끔씩 놀긴 하지만 특별히 사귀는 사람은 없다고 대답했죠.
그러고는 개럿한테 똑같이 물었어요. 처음에는 좀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더니, 결국 같은 대학 여자애들하고 정말로 친해지는 건 예상보다 더 힘든 것 같다고 털어놓더군요. 그리고 그게 자기 얼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당장 “말도 안 돼”라고 대꾸했지만, 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한편으로는 개럿이 아직 아무도 사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기뻤지만, 개럿이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그냥 놀랍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개럿은 똑똑하고 재미있고 멋진 애거든요. 예전에 저와 사귀었다고 하는 소리가 아녜요. 고등학교 때도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그때 아이나가 저와 개럿에 관해 했던 얘기가 생각나더군요. 머리가 좋고 재미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에 못지 않게 잘생겨야 대접을 받나봐요. 개럿이 예쁜 여자애들에게 말을 걸면, 걔네들은 개럿이 자기들과는 격이 안 맞는다고 느끼나봐요.
더 깊은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개럿이 그러고 싶은 눈치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서로 만나기로 한다면 개럿이 우리 대학으로 올 게 아니라 제가 노스럽 대학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고요. 제가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건 명백하지만, 만약 개럿의 대학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다니는 걸 본다면 개럿의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 일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 때가 있다는 걸 알거든요. 멋진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있으면 자기도 어쩐지 멋진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고,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을 멋지게 보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뭐 특별히 아주 멋지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제 외모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그게 개럿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예요.
앨런 허친슨, 펨블턴 대학 사회학 교수
저는 이 의무화 안을 추진하는 학생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의 이상주의는 저를 고무시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제 연령대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세월이 제 얼굴에 끼친 영향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익숙해지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이제 저는 제 용모에 만족하고 사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칼리 사용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어떤 곳일지에 관해 궁금증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아마 그곳에서는 젊은 여자가 방에 들어와도 제 또래 여자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만약 제가 젊었던 시절 칼리가 있었다면 저도 그것을 채택하게 되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나이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제가 느꼈던 고뇌는 어느 정도 줄여주었을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젊은 시절 저는 제 모습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걸 포기하고 싶어하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나이를 먹어오면서, 칼리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그 대가를 능가하는 시점이 정말로 존재했는지에 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학생들은 젊음의 아름다움을 아예 잃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 종류의 유전자 요법이 속속 등장하는 요즘 세태로 미루어보건대 이 학생들은 몇십 년, 아니 일생 동안 젊은 용모를 유지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경험한 것 같은 노화 적응은 아예 불필요해질지도 모르고, 그럴 경우에는 칼리를 채택한다고 해도 훗날 느끼게 될 고통에서 해방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따라서 이 학생들이 청춘의 즐거움 중 하나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려 한다는 생각을 하면 거의 화가 치밀 때조차 있습니다. 때로는 이 학생들을 부여잡고 마구 흔들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겁니다. “안 돼! 너희들이 지금 뭘 가지고 있는지 알아?”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싸우려는 자세에 대해 저는 언제나 호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청춘을 낭비한다는 진부한 격언에는 결코 공감해본 적이 없죠. 하지만 이 의무화 안은 이 진부한 격언을 현실에 더 접근시킬 것이고,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조지프 와인가트너
하루 동안 칼리아그노시아를 시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한정된 기간 동안 여러 종류의 실인증을 시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신경학자들이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고 감정이입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제 경우 장기간 실미증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환자를 봐야 한다는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칼리아그노시아와 환자 개개인의 건강을 시각적으로 관찰하는 능력 사이에는 조금이긴 하지만 상호 작용이 존재합니다. 칼리아그노시아가 상대방의 피부 톤을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하는 일은 없고, 칼리 사용자라고 해도 다른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증세들을 구분해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인지 작용만으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작업이니까요. 하지만 환자의 상태를 살필 때 의사들은 극히 미묘한 징후도 민감하게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감적으로 진단을 내릴 때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칼리는 핸디캡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순전히 제 직업적인 필요 때문에 칼리아그노시아 조치를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정직한 대답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만약 의사로서 환자와 접하는 대신 실험실에서 연구에만 전념한다면, 나는 자발적으로 칼리아그노시아를 선택할 것인가? 이것이 더 적절한 질문이겠지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예쁜 얼굴을 보면 좋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제 판단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만큼은 충분히 성숙한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메라 라이언스
정말 믿기 힘든 얘기를 들었어요. 개럿이 다시 칼리를 켰다는군요. 어젯밤 전화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화상 통화로 바꾸고 싶냐고 했더니 좋다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개럿이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봤더니 글쎄 칼리를 다시 켰다는 거예요.
개럿은 자기 얼굴이 만족스럽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했어요. 그래서 혹시 누구한테서 무슨 얘기를 들었냐고, 그런 거라면 그냥 무시해버리라고 했더니 그 때문은 아니라더군요. 그냥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을 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얼마나 귀여운데” 그런 결심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시험해봐라, 칼리 없이 좀더 지내봐야 된다면서 다시 칼리를 끄게 하려고 했어요. 개럿은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어떻게 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나중에 제가 개럿에게 한 얘기에 관해 생각해봤어요. 제가 개럿에게 그런 소리를 한 건 칼리를 싫어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얼굴을 그애가 좀더 보아주기를 원했기 때문일까? 뭐, 물론 개럿이 저를 보는 눈빛을 제가 좋아한 건 사실이고, 그것이 우리 사이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킬 걸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랬다고 해서 제 말에 무슨 모순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계속 칼리에 찬성하는 입장이다가 개럿의 경우에만 예외를 뒀다고 하면 그건 또 다른 얘기가 되겠죠. 하지만 저는 칼리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건 아녜요.
아아, 도대체 저는 누구를 속이려 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저 좋자고 개럿이 칼리를 끄기를 원했어요. 안티-칼리이기 때문이 아녜요. 따져보면 안티라고 할 수도 없죠. 칼리에 반대한다기보다는 칼리를 의무화하는 데 반대하고 있을 뿐이니까. 전 칼리가 제게 도움이 될지 여부를 다른 사람이 판단해주는 걸 원하지 않아요. 부모도, 학생회도. 하지만 칼리를 원한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그건 그 사람 자유죠. 따라서 저도 개럿 스스로가 판단한게 내버려둬야 한다는 걸 잘 알아요.
실망감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이미 장래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거든요. 개럿이 저의 매력에 두 손을 들고, 자기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깨닫게 되리라 꿈꿨던 거예요. 그래서 맥이 빠진 거예요.
투표 전날 마리아 데수자가 행한 연설에서 발췌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마음을 수정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적절한 걸까요? 우리는 자연 상태 그대로가 좋다는 생각을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자연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고 무조건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상태가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지는 우리들 자신에게 달렸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 정하는 것도 우리 몫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칼리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이 누군가를 아름답게 볼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에서 여러분은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용기 있는 행위나 고결한 행위를 볼 때 여러분은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여러분은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칼리는 여러분이 표면적인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할 뿐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사랑의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고, 그 어떤 것도 이것을 덮어서 감출 수는 없습니다.
<윤리적 나노약품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대변인 레베카 보이어가
투표 전날 텔레비전에 나와 행한 연설에서 발췌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야 순수한 칼리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절대 백 퍼센트의 찬동을 얻어낼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야말로 칼리의 약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채택한다면 칼리는 잘 기능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예외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 모두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칼리 조치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도 언제나 존재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회사 매니저가 매력적인 사원을 승진시키고 못생긴 사원을 강등시킨다고 해도 아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겁니다. 학교 선생이 매력적인 학생들에게 상을 주고 못생긴 학생들에겐 벌을 주어도 아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겁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이 증오하는 차별이 백주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언제나 옳을 일을 한다는 보증이 있다면 애당초 칼리가 생겨나지도 않았겠지요. 사실 그런 차별적 행동에 나설 경향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발각될 가능성이 없다면 한층 더 그런 행동을 하려고 들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종류의 외모 지상주의에 분노를 느낀다면, 어떻게 칼리 조치를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행동을 보고 즉각적으로 호각을 불어야 하는 유형의 사람이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일단 칼리를 켜고 나면 그런 것을 알아차릴 수 없게 됩니다.
차별과 맞서 싸우려면,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합니다.
에듀뉴스 방송에서
펨블턴 대학의 칼리아그노시아 의무화 안은 64퍼센트 반대 36퍼센트 찬성의 비율로 부결되었습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투표 며칠 전까지는 과반수가 의무화 안에 찬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 의무화 안을 지지했던 학생들 다수는 <윤리적 나노약품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레베카 보이어가 텔레비전에서 한 연설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화장품 회사들이 칼리아그노시아 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라는 일전의 폭로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마리아 데수자
물론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본디 저희는 이 의무화 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과반수 학생의 의무화 안 지지는 요행이었기 때문에 그 학생들이 마음을 바꿨다고 해서 실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여기저기서 겉모습의 가치에 관해 사람들이 토론하기 시작했고, 이들 대다수가 칼리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 운동을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향후 몇 년은 매우 흥미로운 시기가 될 겁니다. 최근 한 스펙스 제조업체가 모든 것을 바꿔버릴 수 있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업체는 한 개인을 위해 특별 조정된 스펙스 한 쌍에 체내 위치 파악 비컨을 포함시키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헬멧도 필요 없어지고, 뇌 속의 뉴로스태트를 리프로그래밍하기 위해 보건실을 방문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냥 스펙스를 끼고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칼리를 켜거나 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완전히 포기해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문제는 더 이상 없게 됩니다. 대신 아름다움은 어떤 상황에서는 적절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할 때는 칼리를 켜놓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는 끈다는 식입니다. 이제 일반 대중도 칼리의 장점을 깨닫고, 최소한 파트타임제로는 칼리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칼리야말로 예절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적절하게 행동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널리 인정받는 것입니다. 사생활에 해당하는 시간에는 언제나 칼리를 끌 수 있지만, 공적인 관계에 있어서의 행동은 외모 지상주의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은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 양쪽이 동의했을 때만 행해지는, 상호 합의에 입각한 교류가 될 것입니다.
에듀뉴스 방송에서
펨블턴 대학의 칼리아그노시아 의무화 안에 관한 최신 뉴스입니다. 저희 에듀뉴스는 레베카 보이어의 연설에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조작이 가해졌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세미오테크 전사들>로부터 제공받은 파일에는 같은 연설의 두 가지 버전으로 보이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와이어트/헤이즈의 컴퓨터에서 입수한 오리지널 버전과 방송된 버전이 그것입니다. 파일에는 이 두 버전 사이의 차이에 관한 <전사들>의 분석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두 버전의 주요한 차이점은 주로 미즈 보이어의 오리지널 연설을 본 시청자들은 이것을 좋았다고 평가한 반면, 편집된 버전을 본 시청자들은 보이어의 연설이 굉장했고, 미즈 보이어가 대단히 다이내믹하고 설득력이 있었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전사들>은 와이어트/헤이즈가 준 언어적 신호를 세밀하게 조정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감정 반응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결론 내렸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쓰면 녹화된 프레젠테이션의 효과는 극적으로 증가하고, 특히 스펙스를 통해서 보았을 때 그 효과가 현저하다고 합니다. 칼리아그노시아 의무화 안을 지지하던 학생들이 생각을 바꾸게 된 이유는 <윤리적 나노약품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연설에 이것이 사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월터 램버트, 전국 칼리아그노시아 협회 회장
오랫동안 사회 활동을 해왔지만, 그들이 그 연설에서 미즈 보이어에게 부여해준 것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은 두어 명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현실조차도 왜곡할 수 있는 일종의 오라를 발산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 어떤 일도 거의 믿어버리도록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하고, 기꺼이 지갑을 열려 하고, 상대방의 요구에 무조건 동의하려고 합니다. 나중이 돼서야 본디 품고 있던 반대 의견이 되살아나지만, 그럴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업들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그런 효과를 유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크나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따져보면, 완전무결한 아름다움을 닮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종의 초자극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방어 수단을 하나 가지고 있었지만, 와이어트/헤이즈는 이 투쟁을 새로운 레벨로까지 격상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설득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을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아프로소디아라고 불리는 음조 실인증에 걸리면 귀에 들리는 목소리의 억양을 판별할 수 없게 됩니다. 들리는 것이라곤 단어들뿐이고, 상대방이 어떤 투로 말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겁니다. 표정을 판독하지 못하는 실인증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실인증을 채택한다면 여러분은 방금 언급한 종류의 조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습니다. 연설을 들어도 순수하게 그 내용만으로 연설을 판단하게 되고, 그 이외의 연출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실인증들을 여러분에게 권하지는 못하겠군요. 그 결과는 칼리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투를 듣지 못하거나 표정을 읽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능력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일종의 고기능 자폐증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항의의 표시로 이 실인증들을 정말로 채택한 회원이 몇 사람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소프트웨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사방팔방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설득력이 있는 선전 문구들의 공격에 직면하게 됩니다. 광고, 기자 회견, 전도 따위를 통해서 말입니다. 정치가나 장군은 몇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감동적인 연설을 할 것입니다. 사회운동가나 문화 게릴라 집단조차도 기존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이 소프트웨어의 적용 범위가 충분히 넓어진 후에는 영화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럴 경우 배우 자신의 능력은 영화하고는 무관해집니다. 출연 배우들 모두가 신들린 연기를 할 테니까요.
아름다움의 경우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이 초자극들로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고, 이것은 실제의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방송에 등장하는 발언자들 모두가 원스턴 처칠이나 마틴 루터 킹 수준의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평균적인 준언어적 신호밖에 갖추지 못한 보통 사람들을 무미건조하고 설득력 없는 사람들로 치부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느끼게 될 겁니다. 눈에 낀 스펙스를 통해 보는 영상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지금 제가 원하는 것은 뉴로스태트를 리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이 스펙스가 조금이라도 빨리 시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영상물을 볼 때만이라도 좀더 강한 실인증을 채택하라고 권고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도 실생활에서 자유롭게 감정을 나타내고 싶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상호 교류를 보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타메라 라이언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는 저도 잘 알지만…… 실은 다시 칼리를 켤까 생각하는 중이에요.
어떤 의미에서는 <윤리적 나노약품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비디오 방송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단지 화장품 회사들에서 사람들이 칼리를 사용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가 아녜요. 그건 아녜요. 하지만 설명하려니 쉽지 않군요.
사실 화가 나긴 해요. 그들은 대중을 조종하기 위해 트릭을 썼으니까요. 그건 공정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제가 정말로 깨달은 건 제가 개럿에게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아니면 그러려고 했던가. 전 제 외모를 무기 삼아 개럿이 다시 저에게 돌아오게 하려고 했던 거예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제 행동 또한 공정하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그 광고주들만큼이나 악질적이란 얘긴 아녜요! 저는 개럿을 사랑하는 거고 기업은 단지 돈 벌 생각밖에는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일종의 마법의 주문이라는 얘기 기억나세요? 그게 있으면 당사자는 유리해지니까, 그걸 악용하는 일도 아주 쉬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칼리가 하는 게 바로 그런 종류의 주문에 면역력을 심어주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개럿이 면역이 있는 쪽을 선택한다하더라도 제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당초 그런 이점을 얻으려고 했던 제가 잘못이니까요. 만약 제가 개럿과 다시 잘 되게 된다면 저는 공정한 방법을 쓰고 싶어요. 개럿이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말예요.
개럿이 칼리를 다시 켰다고 해서 저까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 저도 알아요. 사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개럿에게 면역력이 생기게 된다면, 저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서로 동등해지는 거잖아요? 만약 우리가 다시 사귀게 된다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그 스펙스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우리 둘만 있을 때는 칼리를 끌 수 있으니까요.
칼리를 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도 또 있어요. 그 화장품 회사들이나 다른 기업들은 단지 소비 욕구를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을 뿐이에요. 만약 그들이 공정한 방법을 썼다면 우리가 느끼지 않았을 욕구죠. 그게 마음에 안 들어요. 광고를 보며 현혹되고 싶다면 저는 제가 그럴 기분일 때나 그러고 싶지, 언제 어디서든 무차별적으로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음조 실인증 같은 다른 실인증 조치까지 받고 싶은 생각은 없고요. 적어도 지금은. 그 새로운 스펙스가 나오면 생각해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제게 칼리를 사용하도록 했다는 사실에 찬성하는 건 아니에요. 여전히 그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부모님은 아름다움을 제거하면 유토피아 건설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요. 아름다움 자체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걸 오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문제인데 칼리는 바로 그런 점에서 유용해요. 그런 오용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글쎄요, 어쩌면 이런 건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 세대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예요.
1)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367~424쪽.
2) 칼리아그노시아 calliagnosia 실미증. 미(美)나 선(善)을 뜻하는 접두사 calli와 실인증(失認症 지각 기능이 온전함에도 불구하고 뇌의 통합 기능의 손상으로 인해 시각이나 청각 자극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을 의미하는 agnosia를 결합한 조어.
3)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고급 쇼핑가. 미국 광고 산업의 총본산이다.
4)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어떤 특정 인물이 변장을 한 모습으로 보이는 망상 증세.